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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제 2 장

1

영천중학교 녀교원들의 합숙은 이태전에 고덕탄광 건설직장 로동자들이 토피로 지었다는 교원사택 맨 끄트머리에 있는 두칸짜리 방이였다. 처음부터 교원합숙으로 설계하고 꾸린 집이여서 방들도 널직널직하고 가구들도 그쯘하였다. 두 방의 벽면들은 다 진록색의 참대무늬가 찍힌 도배지로 도배를 하고 장판우에는 개성특산으로 소문난 왕골돗자리도 깔았다. 녀성교원들에 대한 이 학교 일군들의 후끈하면서도 다심한 배려가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합숙이였다. 사감도 없고 관리원도 없는 자취방이지만 모든게 말쑥하고 알른알른했다.

이 자취방에서 얼마전까지 녀교원들이 합숙생활을 하다가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한 교원은 이웃학교로 조동되여가고 다른 두 교원은 짝을 만나 다른 고장들로 떠나갔다는것이다. 얼마나 깔끔하게 뒤손질을 해놓았는지 흠을 잡을만 한 건덕지가 하나도 없다. 정갈하고 아늑한 합숙방들을 새 주인들에게 넘겨주고 떠나간 선배교원들에게 인사라도 보내고싶은 심정이였다.

선배들은 여기에 한개의 책걸상과 한개의 네모밥상, 싸리로 엮은 한개의 휴지통을 남기였다. 사과와 수박을 그린 아래방의 정물화와 해칠보 강선문의 웅자를 담은 옷방의 풍경화도 그들이 집들이를 할 때 마련한것이라고 한다. 방마다 벽장을 둔것은 이 살림집의 거주자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보장해주려는 설계자들의 웅심깊은 마음씨의 반영이리라.

부엌세간도 그만하면 알쭌했다. 당반우에 놓여있는 석단짜리 찬장에는 여러가지 용도의 그릇들이 가득차있었다. 합숙방 이모저모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숨결이 느껴졌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송금주와 정애경은 저녁시간을 타서 방정돈을 열심히 하고있다. 정돈이라고 하지만 개작이나 수정은 별로 없다.

그저 새로 구입해들인 물건들과 사품들을 여기저기에 전개하고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는 정도였다. 그들은 오늘 공업품상점에서 세면기로 쓸수 있는 법랑소랭이 두개와 수저 두조, 수저통 1개와 먼지털개 1개를 사다놓았다. 살림살이를 보태는데서 오는 즐거움이 코노래로 건들건들 흘러나왔다.

《합숙치고는 참 보기드문 합숙이야. 지난해 난 아버지를 만나러갔다가 교원합숙을 본 일이 있는데 이보다는 미끈하지 못했어. 금주, 여기서 지낸 선배교원들이 백년쯤 앞을 내다보고 합숙을 꾸린것 같은감이 나지 않아?》

정애경이 아래방 장판바닥과 돗자리를 걸레질하며 부뚜막앞에서 그릇을 가시고있는 송금주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물이 담긴 소랭이에 걸레를 헹구어 손으로 비틀어짠 다음 한바탕 한담을 벌릴 기세로 그 소랭이를 사이문앞에 옮겨다놓았다.

《누구든지 무슨 일을 설계할 땐 10년, 100년씩 앞을 내다보는것 같애. 그거야 미래를 생각하고 후대를 생각하는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어.》

송금주는 늄대야에 방금 식탁에서 거두어들인 수저들을 넣고 와락와락 행구다가 마른 걸레로 닦으면서 짝패의 말을 긍정하였다. 정애경은 문설주에 머리를 엇비스듬히 기대고 명상에 잠긴듯 한 표정으로 또 말을 꺼냈다.

《이 아늑한 보금자리에 깃을 틀고보니 여기서 너하구 나하구 둘이 꼬부랑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고싶은 생각이 다 드는구나.》

송금주는 그 말을 듣자 눈을 치뜨고 물었다.

《시집은 어떻거구?》

《시집? 시집 같은건 꿈만 하구나. 그게 우리 둘이서 아무 구속도 받지 않고 공동체생활을 하는것보다 더 재미있을가.》

《저런 변이라구야. 네가 벌써 어느새 수도승흉내를 내게 됐니. 우리 고모가 뭐랬는지 알아. 처녀가 시집 안간다고 하는 말과 늙은이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 장사군이 본전도 못 찾았다고 하는 말은 믿지 말라고 했어. 뭐, 시집 같은건 꿈만 하다구? 그런 가살은 떨지 않는게 좋아.》

《좋아, 그럼 위선이라고 치자. 아무때건 시집이야 가게 되겠지. 그런데 시집을 가더라도 너하구 나하구 아래웃집에서 처마를 맞대고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교편도 영영 한학교에서 잡고… 우리야 사실 친자매이상 가까운 사이가 아니냐. 그런데 그렇게 죽자살자하다가 결혼이라는 멍에때문에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자주 만나도 못 보고 남남처럼 지낸다는거야 얼마나 슬픈 일이니.》

정애경은 송금주와의 작별이 금시 눈앞에 닥쳐오기라도 한것처럼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송금주는 수저를 씻은 가시물을 문밖에 내다버리고나서 수건으로 손을 문대며 말했다.

《이것 봐, 애경이. 그런 넉두리는 그만하구 이 자그마한 합숙방을 락원으로 꾸릴 궁리나 해보자.》

정애경은 《락원》 이라는 말에 눈이 올롱해졌다.

《이만하면 락원이지 더이상 뭘 더 꾸린다는거냐?》

《형식은 번쩍번쩍한데 내용은 좀 빈약해. 례를 들어보자. 저 웃방에 책상은 있는데 책꽂이가 없어. 책 한권도 없는 합숙이 무슨 교원합숙이야. 명색이 교원합숙이라면 적어도 천권쯤 되는 책이야 있어야잖니. 로동자들의 합숙도 이렇게 메마르진 않아.》

《욕심두 참, 이만하면 락원이지 뭘 그래. 네 말대로 한다면 이 합숙집에 굉장한 서가를 꾸려야 한다는건데 그게 필요할가? 책이야 학교도서실에서도 얼마든지 볼수 있지 않니.》

《글쎄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그 도서실엔 1 5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매달려있어. 1 500명이라는 수자를 생각해봤니?》

정애경은 입을 다물고 그 큰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무엇인가를 골뜰히 생각하였다. 1천 5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자에 압도당한듯한 기색이였다. 송금주도 머리를 짓수굿하고 눈의 초점을 모아 부뚜막의 한지점을 응시하였다.

《지금 당장은 고성기라도 있으면 좋겠다.》

《정말 이제 보니 고성기가 없구나.》

《백을 알고 하나를 가르쳐야 할 교육자들의 합숙에 가장 기초적인 계몽수단이라고 할수 있는 고성기조차 없다는거야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애경이, 이제부터 우리는 비상한 창조정신을 가지고 생활을 멋있게 개척해야겠어.》

응당 격동적인 억양으로 엮어대야 할 이 대목에서 송금주는 오히려 음조를 낮추었다. 그것은 남들의 귀를 솔깃하게 해주는 그의 독특한 화법이다. 특별히 력점을 찍어야 할 계기점에서 목소리를 낮추는 방법으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그의 말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비한 저력이 느껴졌다.

《넌 무슨 일에서나 용감한 선구자였지. 중학시절에도 교육간부학교시절에도 좋은 착상은 늘 네가 했댔지. 청진 서항부두에서 수출사과들이 썩는다는 소식을 듣고 교장선생님한테 달려가서 썩는 사과를 골라내는 애국로동을 하자고 호소한게 누구였니? 너였지. 무산-연사지구의 답사를 열렬히 주장해나선것두 너였구. 그래서 온 학교가 송금주, 송금주 하지 않았어.》

《그래서 어쨌다는거야?》

《이 합숙에서도 선구자가 돼달라는거야. 네가 구상하고 발기하면 난 기꺼이 네뒤를 따라가겠어.》

《선구자가 뭐 따로 있다구 이렇게 다사스럽게 비행기를 태우니. 누구나 앞장서서 몸만 내대면 다 선구자가 되는건데.》

정애경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생각나니? 화학섬유공장견학을 갔다온 다음 네가 민청회의에서 유해가스가 심한 합성직장 로동자들에게 마스크를 해주자고 제기하던 일이. 그때 몇몇 동무들은 네가 그런 발기를 한데 대해 시큰둥하게 대했어. 지어 어떤 사람들은 너를 허영에 뜬 소란스러운 존재로 여기기까지 했단 말이야. 그 대표적인물이 누구였는가. 나였어. 그런데 로동자들이 눈물이 글썽해서 우리가 주는 마스크를 받는 광경을 보고서는 네가 참으로 좋은 궁리를 했다고, 너야말로 우리 집단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됐지. 이건 죄다 사실이야.》

송금주는 눈을 흘기였다.

《잘두 나불거린다. 무슨 서정시라도 읊는것 같구나.》

그러거나말거나 정애경은 열에 떠서 그냥 찧고 까불었다.

《요는 뭔가. 앞으로 교단에서도 선구자, 선창자가 되여 날 잘 끌어 달라는거야. 네가 뻐스라면 난 도레라야.

아이고, 연설을 좀 했더니 노곤해진다야.》

그는 브라우스를 벗어던지고 시작한 걸레질을 마무리하고나서 송금주에게 물었다.

《이번엔 어디에 손을 댈가?》

《벽장안을 정리해야지. 아까 보니까 무슨 잡동사니 같은것들이 가득 들어찼더라.》

송금주는 부뚜막앞을 떠나 아래방으로 자리를 옮기였다. 고무줄이 풀리면서 꽁졌던 머리카락들이 어깨우에 흐트러져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률동적으로 물결쳤다. 그는 벽장안의 물건들을 와락와락 꺼내여 돗자리우에 쌓아놓았다. 정애경도 웃방의 벽장에 달라붙었다.

《여긴 깨끗해. 이부자리밖에 없어.》

그가 벽장문을 닫고 아래방으로 내려오면서 하는 말이였다. 그는 돗자리우에 쌓이는 물건들을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것 보지, 잡화상점이라도 차리겠다.》

전등갓, 덧버선 , 잉크병 , 교편대, 실감개 , 종이꽃, 약봉지… 이전날의 거주자들이 몹시 덤벼치며 이 합숙을 떠나갔다는것을 말해주는 증거물들이였다.

깨진 전등갓과 잉크병, 약봉지를 덧버선과 함께 휴지통에 넣고 쓸만한 물건들은 발치에 밀어놓았다. 그 잡동사니들우에 갑자기 난데없는 오선지들이 날아와 내리였다. 송금주가 벽장에서 집어낸 오선지들이였다.

정애경은 그중 몇장을 무심결에 들고 한장한장 심심풀이삼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오선지에 눈길을 박고 《미화쏘 쏘라씨》 하고 소리를 내여 흥겹게 시창을 하였다.

《갑자기 미화쏘 쏘라씨는 뭐가?》

벽장을 정돈하던 송금주가 일손을 멈추고 물었다.

《애들이 악보에다 작곡훈련을 했구나.…》

정애경은 손에 들고있던 오선지들을 송금주에게 넘겨주었다. 16절지에 펜으로 제가끔씩 그린 오선지들이였다. 오선지의 맨 웃단에는 어느것에나 다 《어머니의 생일》 이라는 공통제목이 적혀있었다. 중학교과정안에는 음악시간에 작곡훈련을 하라는것이 없다. 그것은 음악대학 작곡학부나 사범대학 예능학부 같은데서나 할 일이다. 그렇다면 이 악보는 무슨 목적으로 그리게 했을가. 리주선, 태인순, 인연숙, 송미라, 강보금… 악보아래에 있는 이름들을 보면 모두가 녀학생들이다. 제목은 다같은 《어머니의 생일》 이지만 15명의 머리에서 나온 악보는 서로 다르다. 이 악보처럼 인간도 인생길도 각양각색이다. 장기간의 훈련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이런 수준의 소묘를 할수 없다.

그렇다면 이 악보의 주인공들은 도대체 무슨 처녀애들인가? 한학급학생들은 아닌것 같다. 한학급에서는 작곡을 할 정도의 기량을 가진 아이들이 이처럼 무더기로 나오지 못한다. 이 15명의 수수께끼같은 인물들은 선발된 처녀애들임에 틀림없다. 무슨 목적으로 14~15살밖에 안되는 학생들에게 이런 훈련을 시켰을가?

15장의 오선지에는 점수도 없고 평정도 없다. 애당초 평정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훈련이였을가? 아니면 너무도 총총히 이 합숙방을 떠나는 통에 미처 평가를 내리지 못했을가? 15명, 이 15명이라는 수자속에 분명 음악교원이 시도하려고 한 그 무엇이 있을것이다. 15명, 15명을 가지고 무엇을 할수 있을가?

송금주의 추리는 종착점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그의 뇌리에서 돌연 섬광같은것이 번쩍했다. 리영란선생의 구상은 음악적감수성이 뛰여난 학생들로 녀성중창단을 뭇자는것이였을것이다. 녀성중창조, 바로 그것이다. 이 구상은 리영란선생의 이동으로 하여 좌절되였을것이다. 송금주는 샬로크 홈스라도 된듯 한 흐뭇한 기분으로 방바닥에 널린 오선지들을 주어모아 정애경에게 넘겨주며 좀 들뜬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경이, 너에게 좋은 일감이 생긴것 같구나. 이 아이들로 중창조를 무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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