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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제 1 장

4


음악으로 후대들을 계몽시키고 음악의 힘으로 모교의 영예를 빛내이며 음악과 더불어 한생을 보람차게 살아가려는것은 정애경이 중학시절부터 품어온 꿈이였다. 그는 대중에게 음악을 보급하는 제일 큰 통로를 교단으로 보았다. 그래서 물멀기처럼 달려드는 오만가지 유혹을 물리치고 교육계에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정애경은 자기의 존재가치를 교단과 떼여놓고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풍금앞에 마주앉아 제자들에게 시창도 시키고 발성법도 가르치며 설날이면 100통쯤 되는 축하엽서를 받고 벙글거리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늘 눈앞에 그려보군 하였다.

1952년 가을부터 영천중학교에서 음악과목을 가르치던 리영란선생은 얼마전에 라남으로 시집을 갔다고 한다. 목청이 곱고 음감이 뛰여난 정애경은 중학시절에 리영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스승이 서있던 자리에 그가 서게 되였다. 교육부장도 배치장을 줄 때 그것을 암시하였다. 7살때부터 피아노앞에서 아버지의 개별수업을 받아온 그는 사실 교육간부학교시절에 전공과목으로 택했던 문학보다도 음악에 더 밝았다.

정애경은 흐뭇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영천중학교 교문에 들어섰다.

지난해 고덕탄광 건설직장로동자들이 지었다는 새 교사를 보니 더더구나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교정에서 줄넘기를 하느라고 고무공처럼 퐁퐁 튀여오르던 처녀애들이 교문으로 들어서는 정애경을 보자 뽀르르 달려와 꾸벅꾸벅 절들을 한다. 신간도서꾸레미들을 한짝씩 들고 중앙현관쪽으로 걸어가던 고학년처녀애들도 인사를 하느라고 부산스럽다.

4년전의 졸업생들을 맞는 모교의 표정이 퍼그나 살틀하고 친절하다.

《저… 어디서 오십니까?》

트레머리를 한 40줄의 서글서글하게 생긴 직일교원이 접수구가 달린 뙤창을 열고 중앙현관으로 들어서는 정애경을 향해 상냥스레 묻는다. 녀교원은 어째서인지 입가에 까닭모를 웃음을 흘리며 그의 차림새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정애경이 중학을 다닐 때의 스승도 아닌데 그 미소부터가 의미심장했다.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싶어 영천에 온 청진처녀가 모교에 배치되여온다는 소문이 벌써 이 학교 교원들의 귀에까지 날아든게 아닐가.

정애경은 그 트레머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도교육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 교원으로 임명되였습니다.》

《그러면 청진교원대학에 소환되여간 정수일선생의?…》

《네, 딸입니다.》

《이거 반가워요. 어쩐지 예감이…》

직일교원은 뙤창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두손으로 정애경의 팔을 덥석 끌어당기였다. 아버지를 잘 안다니 영천토배기임에 틀림없다. 아버지의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서름서름하던 기분이 싹 가셔졌다.

《선생님, 교장선생님을 만나려면 어느 방에 가야 합니까?》

정애경이 직일교원에게 묻는 말이다.

《교장선생님은 회의에 갔다가 오시지 않았는데요. 가만, 내가 교무주임선생한테 안내하지요.》

직일교원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 나들문밖으로 나왔다. 정애경은 손사래를 치며 그의 앞을 다급히 막아나섰다.

《아니, 괜찮습니다. 방이 어느쪽인지 그것만 대주십시오.》

《교무주임선생은 방에 계시지 않아요. 저기 후원에서 야외무대공사를 지휘하고있지요. 학생을 한명 붙여줄테니 어서 가서 만나보세요.》

직일교원이 달아주는 녀학생을 따라 복도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복도전체가 톱밥천지였다. 묵은 때를 닦아내느라고 어느 교실에서나 야단법석이였다. 복도의 때도 톱밥으로 닦아내고있다. 전쟁후 림시교사에서 공부할 때 송금주가 개발한 청소방법이 후배들한테까지 물려지고있다. 물기가 축축한 톱밥우에서 지치기를 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어느 교실에서인가는 뚝딱거리는 마치소리도 들려왔다. 새학년도를 맞는 모교의 흥분이 정애경의 가슴에까지 비집고들어와 흉벽을 두드린다.

복도를 나서자 ㄷ자형으로 된 교사의 굽인돌이를 에돌아 수백명의 학생들이 흙짐을 이고지고 개미역사를 하는 후원의 야외무대공사장으로 다가갔다.

교사후면 중심벽체앞에 흙과 돌로 쌓는 야외무대는 벌써 1메터남짓한 높이로 솟구쳐올랐다. 이 무대만 완성되면 학교 후원전체가 회의장으로 되고 야외극장으로도 될판이다. 송금주의 말에 의하면 학교후원에 야외무대를 만들자고 발기해나선 사람은 이 학교의 당세포위원장인 김영찬교무주임이라고 한다. 교무주임은 얼굴의 륜곽이 둥그스럼하면서도 이마가 경사지고 눈매가 날카로와 좀 범접하기가 어려워보이는 40대의 사나이였다. 키가 그리 크지 않고 작지도 않은 다부진 몸에서는 그 나이의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탄력과 균형이 느껴졌다. 물이 날은 군관복 어깨에는 견장이 붙어있던 자리가 또렷하게 남아있다.

정애경은 모교의 교무주임이 《써클광》이라는 소문을 청진서 고중을 다닐 때 들은적이 있었다. 직일교원이 붙여준 녀학생이 무슨 말인가 하자 땀을 철철 흘리며 석축작업에 여념이 없던 교무주임은 정애경의 앞에 다가와 무작정 손부터 내밀었다.

《정애경선생이지? 교무주임 김영찬이요.》

정애경은 깜짝 놀라서 김영찬의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내가 정애경이라는걸 저 선생이 어떻게 알아맞혔을가. 송금주가 미리 교무주임선생앞에서 나에 대한 초상묘사를 해두었을가. 아니면 무슨 륙감 같은걸 가지고 짐작했을가. 직일교원이나 교무주임의 태도를 보면 송금주와 정애경의 배치가 이 학교 교원들속에서 흥미있는 화제거리로 되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인사소개도 오가기 전에 첫선을 보는 사람을 《정애경》이라고 단박에 찍어놓는것도 놀라운 일이였지만 《선생》이라고 불러주는것도 놀라왔다. 모교에 명함장을 드리고 교단에 서보기도 전에 《선생》이라니. 정애경은 교무주임의 그 예상치 않았던 말마디들앞에서 자기를 싣고 달려온 인생렬차가 갑자기 새 궤도에 들어선듯 한 변화를 실감하였다. 김영찬은 그를 새생활에로 안내하는 전철수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교무주임은 《정애경선생이지?》 하는 그 한마디의 물음으로 정애경의 인생행로에 명백한 구획을 그어놓은셈이다.

《선생》이라는 그 례사로운 부름이 왜 이다지도 가슴을 뭉클하게 할가, 그리고 또 왜 한편으로는 이다지도 마음을 뒤숭숭하게 해줄가, 입학증명서가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청진고급중학교 정문으로 들어설 때에도 정애경은 이와 비슷한 감정을 체험한 일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심정은 마찬가지이다.

《자, 사무실로 갑시다.》

김영찬은 손을 탁탁 털며 공사장을 등지고 돌아섰다. 정애경을 바라보는 눈빛이 유난히도 따뜻했다.

《내 교육부장동지한테서 다 들었소. 정애경선생이 참 용소!》

그는 교사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런 말을 했다. 정애경이 도회지생활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데 대한 치하일것이다.

《교무주임선생님, 그거야 아무나 내릴수 있는 결단이 아닙니까.》

《아니, 그렇지 않소. 그런 결단은 아무나 내릴수 있는게 아니요.》

어째서인지 김영찬은 목소리를 낮추어 이 말을 하였다. 매 마디마다에 이름할수 없는 무게가 실리였는데 그것은 오히려 정애경으로 하여금 더 큰 사명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 학교에는 교무주임방이 따로 없었다. 교장과 소년단지도원만 독방을 쓰고 문학분과와 수물분과의 교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교원들은 교무주임과 함께 한방에서 일했다. 북쪽창문앞에 김영찬의 사무탁이 놓여있고 그것을 축으로 하여 좌우 량옆과 맞은켠에 교원들의 책상이 연줄연줄 머리를 맞대고있었다. 교원들이 모두 후원으로 나간 때여서 방안은 호젓했다.

정애경은 모서리가 탈색한 밤색의 량수책상을 가운데 두고 김영찬교무주임과 마주앉았다.

《본인이 용단을 내려 고향에 왔지만 객지이니만큼 살아가는 과정에 여러가지 난관에 부닥칠수 있다는것을 각오해야 하오. 때로는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천에 온것을 후회할수도 있소.》

김영찬이 이런 말을 꺼내자 정애경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선생님, 믿어주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고향땅에 영원히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장하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애경선생과 같은 재간둥이를 놓치고싶지 않소. 음악교원자리가 결원이여서 골머리를 앓는 때에 선생이 이렇게 와주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소. 호박이 저절로 굴러들었거던. 어떻소? 음악과목을 맡겨도 반대없겠지?》

《반대없습니다. 지금이야 다과목교원들을 내세우는 때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됐소. 나는 앞으로 애경선생을 중심으로 해서 이 학교의 음악소조사업을 발전시킬 작정이요. 우리는 어제 밤 교원협의회에서 새학년도의 과목분담도 하고 학급담임들도 발표하였소.》

김영찬은 사업일지를 펼친 다음 오른손 장지로 안경을 추슬러올리였다. 글줄을 찾아 한참동안 눈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책을 탁 덮으며 시원스레 말했다.

《애경선생한테 2학년 문학과 전교 모든 학년의 음악을 맡기기로 했소. 림시로 3학년 세 학급의 공작실습도 맡기고… 담임할 학급은 1학년 2반이요. 다른 의견이 없겠소?》

정애경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과목수도 그만하면 알맞춤했다. 그런데 림시로 맡긴다는 공작실습만은 어떤 과목인지 전혀 파악조차 없다. 교무주임이 《림시》라고 주해를 달았지만 어쩐지 께름직했다. 그는 지금까지 중학교과정안에 그런 과목이 있다는것조차 모르고 지내왔다.

《교무주임선생님, 다른건 다 좋은데 공작실습만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거야 남자교원들이나 맡을 과목이 아닙니까. 저같은게 그런 과목을 맡았다가 망신이라도 당하면 어쩝니까.》

김영찬은 두꺼운 근시안경밑으로 시꺼먼 눈섭을 쭝깃해보이였다.

《애경선생답지 않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녀자가 벽돌도 쌓고 선반기도 돌리고 자동차도 모는 시대에 공작실습이야 왜 못하겠소. 담임교원이 도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데 그저 눈 꾹 감구 두달만 맡아주오.》

두달이라는 말에 숨구멍이 활 열리는것 같았다. 교무주임에게 잠시나마 무슨 투정질이라도 한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애경은 고개를 쳐들고 바른편손으로 귀밑머리를 쓸어넘기며 애교있게 말했다.

《교무주임선생님, 용서하십시오. 공작실습이라는 말에 그만 겁을 집어먹었댔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사업에 착수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문학분과실은 2층에 있소. 숙소는 송금주선생과 같이 녀교원합숙에 정하는게 좋겠소. 구체적인 지시는 분과장선생한테서 받으시오. 내가 분과실로 안내하지.》

교원실을 나선 김영찬은 정애경을 데리고 층계를 따라 2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두단씩 층계를 건너디디는 걸음걸이가 여간 결패스럽지 않았다.

《문학분과》라는 패쪽이 달린 방앞에 이르자 손기척도 내지 않고 문을 열어제끼였다.

《금주선생, 짝패가 왔소.》

그는 이런 말을 하고나서 정애경을 방안으로 떠밀었다. 그리고는 분과실앞을 총총히 떠나갔다.

분과장의 책상을 머리맡에 두고 두줄로 놓인 책상들의 말석에 앉아 교과서를 뒤적거리고있던 송금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애경의 팔을 와락 잡아당기였다.

《애경아, 어떻게 됐니? 무슨 과목을 맡았니?》

《2학년 문학하구 음악하구 공작실습을 맡았어.》

송금주는 공작실습이라는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래서 학질약을 먹은 고양이상이였구나. 이 학교엔 공작실습을 맡을만한 교원이 그렇게도 없대?》

《두달만 맡아달라는거야. 담임교원이 도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중인데 두달후이면 돌아온다나.》

《그래두 그렇지. 너야 망치질을 해봤니, 끌질을 해봤니, 톱질을 해봤니. 두고보럼. 이제 그놈의 공작실습때문에 단단히 망신을 당하지 않나.》

《나도 자신은 없어. 그렇다고 못하겠다는 말이야 할수 없지 않니.》

송금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두손으로 묵묵히 턱을 고이고있다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 하고 내리치며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좋아, 공작실습은 내가 맡겠어. 그렇게 하는게 너를 위해서도 학교를 위해서도 리로울거야. 지금 당장 교무주임선생을 찾아갈테야.》

정애경이 미처 만류할 사이도 없이 그는 밖으로 사라졌다.

정애경은 온몸과 넋이 땅속에 잦아드는것 같은감을 느끼며 두손으로 턱을 고이고 책상앞에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송금주가 진실을 말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치밀어올랐다. 그래, 그의 말이 맞아. 나야 톱질도 못하고 바느질도 못하고 동자질도 못하는 밥통이 아닌가. 그런 무재간으로 공작실습을 맡는다는거야 자살행위지 뭐야. 금주가 나대신 공작실습을 맡겠다고 자진해나섰으니 그렇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쩔번 했는가. 금주야말로 그 과목을 맡을만한 적임자다. 그는 아무 일이나 다할줄 안다. 밥도 짓고 쪽박도 깁고 짚신도 삼고… 교무주임선생이 나를 뭘루 볼가. 고향과 모교에 자원해왔다면서 공작실습 하나도 못당하는 팔삭둥이로 보지 않을가. 금주야, 네가 나때문에 맘고생을 꽤나 하는구나. 넌 정말 천사같은 인간이야. 내가 영천땅에 마음을 못붙이고 동요할가봐 그렇게도 왼심을 쓴다는걸 난 다 알아.

정애경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여났다. 문설주밑에 송금주가 환한 얼굴로 서있었다.

《애경아, 됐어. 협상은 성공이야!》

《금주, 고마워!》

정애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팔로 송금주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그러나 눈물은 그의 눈에서가 아니라 송금주의 얼굴에서 흘러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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