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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세상에 부럼없어라

동 의 희

3


읍소학교운동장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야영을 떠나는 학생들과 학부형들이였다. 떠나는 학생들보다 바래주러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어느 집에선 아직도 새끼티를 벗어나지 못한 누렁이까지 따라나왔다. 그래도 이번 물란리에 그 개가 살아난게 용했다.

명단을 대조하고 학부형들을 만나느라 눈 돌릴 짬도 없었던 송희가 잠간 고개를 드는참이였다. 교실창문밑에 외로이 앉아있는 녀학생이 있었다. 그 애는 다름아니라 윤화였다.

눈앞에서 얼른거리는 애들과 따라나온 부모들을 애써 피하느라 한쪽구석에 앉아있는게 분명했다.

얼마나 부러우랴.

송희는 명단을 대조하느라 잠시라도 윤화를 잊었던 자신을 탓하며 누군가가 안겨준 간식꾸레미를 안고 그 애에게로 달음쳐갔다.

《윤화야, 이젠 우리도 가자. 자, 이건 가방에 넣어라.》

송희는 윤화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 손으로 그 애의 가방에 간식꾸레미를 넣었다.

윤화가 말없이 일어섰다. 아침에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깡충거리던 윤화가 본래대로 소침해졌다.

학생들의 대렬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둘러섰던 학부형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움직였다. 어떤 할머니가 《철성아, 너 내가 준 물통을 잘 건사했니?》 하고 큰소리로 물어보는 바람에 웅기중기 움직이던 사람들이 와그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그 할머니의 목청을 들으며 소리내여 웃으면서도 그다음부터는 경쟁적으로 저마다 제집아이들을 찾느라, 보느라 북적였다. 이제껏 이 고장에 태를 묻고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당해 못 본 사람들은 아이들의 대렬을 줄레줄레 따라오며 와야와야 웃고 떠들어댔다.

송희는 윤화의 손목을 꼭 잡고 걸었다. 대렬이 떠나자 윤화가 무의식중에 피끗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것을 보자 송희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따라나오고싶어하는 할머니를 힘들어할가봐 만류했는데 이제 와서는 괜히 막았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 애는 혹시나 자기가 아는 사람이 없는가를 찾는 모양이였다. 윤화처럼 바래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송희는 윤화의 손을 잡은 자기의 손가락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윤화야. 일없다. 네곁엔 언제나 이 언니가 있어.》

《예.》

불시에 고개를 팍 숙이며 대답하는 윤화의 목소리엔 눈물이 배여있었다.

송희는 찌르르해나는 가슴에 힘껏 바람을 넣으며 고개를 버쩍 들었다.

《자, 학생들, 우리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자요. 〈4월도 봄명절…〉 시작.》


4월도 봄명절 우리 장군님

초소의 병사들 찾아가는 길

야영을 떠나는 아이들 보며

차창에 손저어주시네

장군님은 전선으로

아이들은 야영소로


창창한 노래소리가 거리에 울리자 맹돌격을 벌리던 건설장에서 수십쌍의 눈들이 아이들에게로 집중되였다.

《아니, 야영가는 애들이 아니요?》

《우리 애들이 송도원에 야영을 간다!》 누군가의 청높은 소리.

《아니, 저기 우리 옆집의 철순이도 가는구나. 철순아- 》

건설자들이 일손을 놓고 달려와서 대렬을 막아섰다.

때를 맞은듯 뒤따라오던 학부형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이 야영을 떠나는 아이들을 저마다 붙잡고 떠들어댔다. 아이들이 야영을 가는지 어른들이 떠나는걸 아이들이 바래주는건지 분간하지 못하게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데 뭉쳐서 한동안 웅성거렸다.

송희는 난처해졌다. 이런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빨리 정거장으로 가야겠는데… 단호한 결심을 내리고 대렬을 움직일 결심을 하는찰나였다.

《아니, 윤화가 아니냐. 윤화야!》

흠칫 몸을 떨며 윤화가 소리나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뿔싸! 송희는 숨을 죽였다.

윤화란 특이한 이름이 아니다. 이 대렬에 또 다른 리윤화란 애도 있다. 분명 그 애를 아는 그 누군가가 반색하고 소리치는 모양이다.

혈육이거나 친척일지도 모르는 그 사람은 자기의 기쁨때문에 외로운 이 윤화의 가슴에 설음과 부러움이 가해지는줄도 모르고 연방 찾았다.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제발 더 찾지 말았으면, 당장이라도 그 목소리의 임자를 찾아내여 말리고싶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와졌다. 지꿎게도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투덕투덕 달려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송희는 어쩔수 없이 눈을 꼭 감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윤화의 움직임을 감촉하면서 숨을 죽였다.

《윤화야, 나다.》

화끈한 열기가 마쳐오는 바람에 송희는 눈을 뜨고 앞을 여겨보았다.

둥실한 얼굴이 검실검실하게 탄 웬 군관이였다.

《나를 모르겠니?》 목소리의 임자가 바싹 다가왔다.

《?》 윤화가 영문을 모르고 말똥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내가 너를 할머니에게 보내주지 않았니.》

《아, 군대삼촌!》 그제야 알아본듯 윤화가 그 군관의 팔목에 동동 매달렸다.

《그래, 군대삼촌이다. 그러니 윤화가 야영을 가는구나. 멋있다.》

어마나, 그러니 그 군관?

그 순간 송희는 그가 바로 윤화의 일기장에 적혀진 그 고마운 군관임을 알아보았다.

《군관동지, 고맙습니다.》 송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붓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발깃이 달아오른 얼굴에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알지도 못하고 괜히 말릴 생각까지 했었지.

《아니…》 당황한 군관이 거수경례로 답례를 하더니 《선생님입니까? 정말 기쁩니다. 윤화를 혼자 보내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이젠 됐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우리 윤화가 야영을 가는구만요.》

군관은 정말 자기가 친삼촌이나 되는것처럼 우리 윤화라고 불렀다.

입술이 방시시 벌어진 윤화가 군관의 팔목에 더 바짝 매달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목을 뽑은 그의 얼굴에서 눈빛이 반짝거렸다. 누구든 자기를 보아주었으면 하는 눈길이였다.

《동무들, 여기 오오.》

군관은 야영가는 아이들을 바래우는 사람들속에 섞인 병사들을 손저어 불렀다. 단발머리처녀병사들이 먼저 달려왔다.

《이 애가 내가 말하던 그 윤화요. 오늘 이렇게 송도원야영을 가는구만.》

《야, 정말 좋겠구나!》 녀병사들이 윤화를 둘러쌌다.

《날 알겠니?》

어느새 끼여든 키가 껑충한 병사가 대바람에 윤화를 버쩍 들어 안아올렸다.

《나두, 나두…》

《아, 이번엔 내 차례입니다.》

뒤미처 달려온 한 병사가 윤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오늘부터 우리 소대장동지가 마음을 놓겠구나. 매일같이 네 걱정을 하더니, 우리 윤화가 제일이다.》

그가 윤화를 버쩍 들어올리자 와 환성이 터졌다. 둘러섰던 병사들이 저마다 윤화를 안아보겠다고 싱갱이를 했다.

일시에 모두의 이목이 윤화에게로 쏠렸다.

부모들의 손에 이끌렸던 다른 애들의 부러운 눈길이 윤화가 들리는데 따라 공중을 오르내렸다.

아무리 바래주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윤화처럼 인민군대가 승벽내기로 안아주는 애는 없었던것이다.

이제껏 누구의 바래움도 없다고 생각했던 윤화에게 한개 소대나 되는 삼촌, 오빠, 언니가 생겼다. 공중에 쳐들린 윤화가 어줍게 목을 움츠렸다.

(윤화야, 활짝 웃어라. 설음을 가셔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송희는 뽀얗게 흐려지는 눈을 슴벅이며 이렇게 속삭였다.

한 녀병사가 날쌔게 뛰여가 무엇인가를 넣은 구럭을 가지고와서 윤화의 가방에 넣어주자 이번엔 병사들이 너도나도 자기들의 성의를 안고 달려와서 그 애의 가방에 넣어주었다.

가방은 이미 다 찼다. 그래도 병사들은 억지로 윤화의 손에 들려주었다. 한개, 두개…

이젠 손이 모자라 송희가 들지 않으면 안되였다.

《동지들, 이러지 마십시오.》 송희가 아무리 사양해도 구럭은 자꾸자꾸 늘어났다. 사실 야영 떠나는 애들을 위해 온 군이 떨쳐나서 부러운것이 없을 정도였다. 신발공장 로동자들은 아이들의 발에 맞는 신발을 생산하느라, 피복공장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에 드는 체육복을 만드느라, 식당에서는 도중식사를 준비하느라 밤을 새웠던것이다. 그래서 가방이 모두 불룩한데 이 많은걸 어디에 건사한단 말인가.

이윽고 대렬은 떠나기 시작했다.

송희는 그 소대장과 작별했다.

《소대장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동지는 우리 윤화의 가슴에 웃음을 되살려주었어요.》

《허- 그렇습니까. 야영생활을 마치고 우리 다시 만납시다.》

그가 다시 윤화를 안아주었다.

《윤화야, 잘 가거라. 너희들은 야영소로 가고 우리는 살림집건설을 끝내련다.》

《네가 돌아오면 새 학교가 일떠서고 새 살림집이 완공된단다.》

《잘 가거라- 》 둘러선 병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군대삼촌- 》 윤화가 까딱까딱 손을 흔들었다. 한결 밝아진 그 애의 얼굴을 보며 송희는 호 하고 단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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