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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제 1 장

2


군인민위원회 교육부장이 주관하는 중등반교원들의 배치담화는 날이 어슬어슬해질 때에야 끝났다. 송금주는 모교인 영천중학교 문학교원으로 가라는 발령을 받았다. 영천중학교라면 대학과 전문학교와 양성소들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수재급들만 간다고 소문난 문턱이 높은 학교이다. 그는 모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데 대해 못내 만족스럽게 생각하였다.

부임학교인 모교에 가서 교장을 만난 다음 저녁요기까지 하고나니 청진의 정애경한테 전보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애경이란 중학시절과 교육간부학교시절의 송금주의 단짝이다. 그도 고향은 영천이였다.

그가 송금주와 헤여진것은 영천중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청진교원대학으로 소환되여가던 때였다.

정애경은 청진에서 고급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두 처녀는 도교육간부학교에서 끊어질번 했던 인연을 다시 이어놓게 되였다.

교육간부학교를 졸업한 후 정애경은 무슨 리유로 해서인지 부모형제들이 살고있는 청진을 떠나 영천에 가서 교편을 잡을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태를 묻은 고향이니 그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학우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의혹을 감추지 못하였다.

송금주와 정애경의 우정이 친자매사이의 혈연보다 못지 않다는것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몇몇 동창생들만이 그의 영천행을 동무따라 강남 가는 길이라고 평가하였다.

송금주가 청진을 떠날 때 정애경은 역까지 따라나와 퇴거수속이 끝나면 인차 영천으로 떠나겠으니 급한 일이 생기면 전보로 알려달라고 하였다. 오늘 교육부장은 배치담화를 하면서 새학년도도 가까와오는데 영천군에 오게 되여있는 타지방출신졸업생들의 도착이 늦어진다고 걱정하였다. 정애경에게 퇴거수속을 빨리 끝내라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종합식당에서 군체신소로 가는 도로 량쪽 기관건물들의 처마밑에서는 어느새 외등들이 켜져 부나비들의 성화를 받고있었다. 그 별치 않은 정경마저 오늘은 어쩐지 정답게만 안겨왔다.

발밑에서는 매끈매끈한 포장돌들이 기분좋게 밟히였다.

비만 내리면 구정물같은 진창으로 사람들의 신발을 매닥질해놓군 하던 점토질의 도로는 한해사이에 돌포장을 한 멋쟁이도로로 변신하였다. 영화관앞마당에도 청석을 깔았다. 길 량옆에다가는 배수로를 일매지게 째고 가로수들을 심었다. 한해전까지만 해도 초가이영을 이였던 건재상점과 송배전소, 리발소건물들은 기와지붕으로 모자를 바꾸었다. 청진의 거리들에서 보던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라는 선전화가 이 고장의 공공건물들에도 나붙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고덕역에서부터 영천시가지 북쪽변두리까지의 4키로메터구간에서는 철도인입선이 놓여 개통하는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이 철도와 평행선을 그리며 시가지중심부를 꿰지르고 지나간 간선도로옆에는 영천군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3층짜리 아빠트가 일어서고 화대천제방뚝 가까이에는 2층으로 된 영천중학교 교사가 건설되여 공설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고급중학교 교사와 대칭으로 마주섰다.

천리마는 여기 영천땅에서도 힘차게 날고있다. 영천은 번영하는 조국과 더불어 거인같은 보폭으로 1950년대를 줄달음치고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벅찬 시대에 살고있는가. 나는 지금 얼마나 보람찬 인생의 분기점에 서있는가.

이런 생각에 잠겨 설레는 마음을 다잡고있던 송금주는 볼편에 와닿는 중발머리를 귀방울너머로 홱 흔들어 제치며 체신소 현관문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40와트짜리 전등이 던지는 누르끼레한 불빛아래서 얼굴도 몸매도 팔뚝도 죄다 오동통하고 깜찍하게 생긴 인형같은 처녀가 무슨 대장 같은것을 열심히 정리하고있었다. 일에 얼마나 옴했는지 나들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감색반소매에서 풍기는 포근하고 은근한 인상과 달리 처녀는 별스럽게 쌀쌀해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송금주가 이렇게 인사를 하자 주인은 답례로 《어서 오십시오.》 하였다. 그러면서도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태도는 무례하다고 할 정도로 얄미웠으나 말투에서는 인정이 철철 넘치였다.

《어떻게 오셨나요?》

처녀가 대장에 눈길을 박은채 묻는 말이였다.

송금주는 대답대신 접수구앞으로 소리없이 다가갔다. 《전보, 전화》라는 뼁끼글이 찍혀있는 유리간막이앞에 발을 못박아세우고 시물시물 웃으며 불빛이 어룽거리는 간막이너머로 사무에 다쫓겨 머리조차 들지 못하는 오만하면서도 상냥하고 거드름스러우면서도 친절한 야간당직원을 정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중학시절에 련립방정식을 잘 풀어 대수선생의 칭찬을 독차지하던 앵선이, 한번 무슨 일에 골몰하면 옆에서 벼락이 터져도 꿈쩍하지 않는 글뒤주 앵선이, 중학을 졸업한 다음 라진재정경제전문학교(당시)에 간다고 북행렬차에 몸을 싣더니 어느새 벌써 학교를 졸업하고 이 방에 틀고앉아 《어서 오십시오!》 인가.

《그 성민 여전하구나.》

송금주의 인사이다. 4년만에 동기동창생을 만나는 처녀의 인사치고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산문적이였다. 그 인사에는 그 나이의 처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군 하는 떠들썩한 시적울림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 침착하고 저력있는 말마디들에서 무엇을 감촉했는지 고개를 쳐들고 의자우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유리간막이앞에 바투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송금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마나, 금주였구나. 이게 몇해만이냐!》

《4년이지. 고덕역에서 너희들을 바래주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우린 벌써 이렇게 어른이 되여 다시 만나는구나. 저런, 파마까지 다 하구.》

《우리 소장아바이 성화에 못이겨 머리를 지졌다. 파마를 안하면 손님들이 업신여긴다나.》

《넌 사무원틀이 다 잡혔구나. 이런 요새에 들어앉아 〈어떻게 오셨나요?〉…》

송금주는 방금전까지 앵선이 하던 말을 그대로 흉내냈다. 그 말을 듣자 최앵선은 허리를 접으며 까르르 웃었다. 그러다가 사무실과 대기실을 갈라놓고있는 벽 한쪽구석에 있는 나들문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문고리를 절컥 벗기였다.

《금주,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오늘 밤 여기서 나와 함께 회포나 실컷 풀자꾸나.》

송금주는 사양의 표시로 두손을 바삐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사이가 없다. 회포는 다른 날 만나서 풀기로 하고… 지금은 당장 전보를 쳐야겠다. 용지를 한장 좀 다구.》

《그럼 그렇게 하자. 시간을 꼭 내야 해.》

최앵선은 전보용지책에서 용지 한장을 쭉 찢어 접수구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책상앞에 다시 마주앉았다. 일에는 달라붙지 않고 멍청한 표정으로 바람벽만 바라보았다. 욕망대로 교감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허전함에 좀 기가 질린듯 한 표정이였다.

찌르릉 하는 소리에 뒤이어 벽시계가 여덟점을 친다. 이 시각에는 그 평범한 금속음조차도 비상히 중요한 어떤 계시의 울림처럼 들린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벽시계의 음악이다. 온몸과 마음을 깊숙이 담그고 한생을 헤쳐가야 할 생활이 뚜렷한 형체와 음향을 가지고 눈섭아래까지 바싹 다가드는것 같은감이 들었다.

송금주는 손가방속에서 만년필을 꺼내들고 접수탁의 전보용지에 고개를 숙이였다. 시간이 더 가기 전에 바삐 서둘러야 했다. 그는 오늘밤중으로 고모를 만나 도착보고를 해야 했다. 전쟁때 부모를 다 잃은 송금주는 어려서부터 고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에게 있어서 고모와 이모는 어머니인 동시에 아버지였다. 송금주가 교육간부학교에 입학한 다음에도 그의 뒤바라지는 줄곧 고모가 하였다. 고모는 몇해전에 집을 리합숙으로 전환시키고 그 책임자 겸 취사원으로 되였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읍중학교 교원으로 배치받았다는 사연을 알게 되면 고모는 얼마나 대견해하실가. 또 양호진에 있는 이모와 이모부의 마음도 꼭같으리라. 송금주는 이런 생각을 하며 전보용지우에 펜을 달리였다.


청진시 신암구역 천마동 22반 정수일 방 정애경 앞

모교에 배치받음. 교육부가 기다린다. 속히 오라.

금주


전보값을 얹어 전보용지를 접수구안에 들이밀고난 송금주는 큰 대사라도 치르고난 사람처럼 가슴을 쭉 펴고 숨을 길게 내그었다. 어쩐지 갑자기 하루사이에 철학가가 된듯 한 성취감이 들었다.

첫 담화, 첫 입직, 첫 전보… 인생의 제1장이란 바로 이런게 아닐가.

《애경이도 영천에 배치받게 되니?》

최앵선의 목소리가 송금주의 상념을 휘저어놓는다.

《응, 여기루 자원했어.》

얼결에 자원이라는 말을 내뱉았으나 실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애경이가 참 용쿠나. 도시처녀가 여기로 온다는게 어디 쉬운 일이냐. 애경이네 부모들도 굉장히 돋보인다야.》

최앵선은 좀전처럼 또 멍청해서 초점없는 눈으로 중학시절의 동무를 바라보았다. 격정이 치밀 때일수록 더 덤덤해지고 멍청해지는것이 그의 성미라는것이 기억속에 얼른 되살아올랐다.

잠시후 체신소를 나선 송금주는 고모가 살고있는 아간으로 발길을 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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