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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회

전선에서 만나자

백 상 균

4


《홍원88》호에 짐을 싣는 원산항부두는 불도가니마냥 부글부글 끓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수천개의 붉은기와 세상의 한다하는 서예가들이 여기에 다 모여와 솜씨전람회를 펼친듯 주런이 세워져있는 선전화게시판들에는 전투장의 들끓는 분위기를 격동시키는 힘찬 글발들이 맥동치고있었다.

《싸우는 고지에 총포탄을 보장하는 심정으로!》

《여기도 전투장이다! 짐상선을 지체하면 승리의 날이 늦어진다.》

《북부에서 날아온 소식, 결사전에 떨쳐나선 전투원들 사흘만에 살림집완공! 마감자재도착을 기다린다. 분발하고 또 분발하라!》

심장의 피를 펄펄 끓이는 글발에 호응하듯 부두가에 줄느런히 늘어선 기린처럼 목이 긴 왁새기중기들이 경쟁적으로 마감건재와 자재들을 연방 물어다가 배선창에 앉히였다. 짐싣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떨쳐나선 원산시안의 로동계급과 가두녀성들이 지게차가 배가까이에 날라다놓은 짐들을 잔등이며 머리에 지고 이고 배사다리를 타고 오르는데 그 광경은 전화의 그날 전선에 포탄상자를 나르던 남강마을사람들을 방불케 하였다.

그들을 고무하는 방송선전차 방송원의 격동에 찬 목소리가 항구내를 흔들었다.

잔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사다리로 오르는 사람들속에 처녀의사도 있었다.

갑판에 서있던 리효영이 그를 발견하고 얼른 사다리로 다가가 처녀의 짐을 두손으로 받쳐주었다.

리효영의 도움으로 짐을 갑판에 내려놓은 처녀가 허리를 펴고 얼굴을 돌리다가 범을 본 토끼처럼 깜짝 놀랐다.

《어마나!》

이렇게 리효영과 맞다들릴줄 생각 못한듯싶었다.

그를 보며 리효영이 면구한 웃음을 지었다.

《의사선생, 미안하오.》

처녀가 리효영을 처음 보기라도 하듯 새침해서 입을 열었다.

《항전투지휘부에 찾아가 소동을 피운 저를 원망하시겠지요. 선장동지를 돌려세울수 없을줄 알면서도 행여나 해서 항전투지휘부에 찾아갔댔습니다. 저야 인간의 생명을 책임진 의사가 아닙니까.》

처녀의 진정에 리효영은 좀전의 고까왔던 감정이 봄눈녹듯 하였다.

《고맙소. 의사선생.》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 진심으로 권고하는데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더구나 바다길에 나서면 마음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겠는데…》

《명심하겠소.》

의미있게 고개를 끄떡여보인 처녀가 돌아섰다.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내리듯 몸중심을 가까스로 유지하며 사다리를 내리는 처녀의 등뒤를 아니아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리효영은 무엇인가 뇌리를 치는 생각이 있어 헤덤비며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까 병원에서 처녀가 누구에겐가 전화를 할 때 렬차로 가야 한다느니, 락오자가 될가봐 속상하다느니 하던 말이 생각히웠던것이다.

그것이 혹시 북부전선으로 하루빨리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하소한것은 아닌지.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 배와 함께 가면 될게 아닌가.

바닥으로 내려선 리효영은 사방을 두릿거리며 처녀를 찾았으나 물묻은 바가지에 깨알 엉겨붙은듯 복작거리는 사람들속에서 그를 찾기가 솔밭에서 바늘찾는 격이 되여 단념하고말았다.

아쉬웠다. 인정도 품앗이라는데 그를 도와줄 기회를 놓친것이 손에 쥐였던 보물을 놓친것만큼이나 아쉬웠다.

심신이 풀려 갑판으로 올라오니 기관장 최영규가 다가왔다.

《선장동지, 상선작업이 끝났습니다.》

《짐수량이 얼마요?》

《예, 마감건재 1만여립방에 탄원자가 800명입니다.》

《음, 대단하구만. 한번 본때있게 달려보기요. 어서 출항고동을 울리라고 하오.》

《예.》

최영규가 씨엉씨엉 조타실로 올라갔다.

미구하여 출항을 알리는 배고동소리가 원산항 구내를 흔들었다.

《붕.》

출항을 알리는 배고동소리에 부두의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홍원88》호주위로 몰려왔다. 북부전선으로 떠나는 배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바다를 이른 그들이 저마다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잘 가십시오.》

《무사히 갔다오십시오.》

전선줄에 나란히 앉은 제비떼모양 배란간에 늘어서서 열광적으로 환송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저어주며 화답을 하는 리효영과 선원들의 낯빛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하여 근엄하였다.

배가 서서히 부두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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