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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서포땅의 녀인들

최학명

6


어느덧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있었다.

바로 그 시각 역장방에서는 긴급히 소집된 회의가 진행되고있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5만평방의 색철판지붕재들이 화물역에 실려왔다. 기성관념으로 계산해볼 때 이러한 화물을 싣자면 적어도 3일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다. 역장 리현일은 저녁어스름이 슬밋슬밋 내려앉기 시작한 역구내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제 어디 가서 그 숱한 장정로력을 얻어온단 말인가?

바로 그때 회의소식을 듣고 녀맹위원장 허정희가 방에 들어섰다.

《역장동지, 그 일을 우리가 맡겠습니다.》

회의에 참가했던 한 일군이 도리머리를 하며 말했다.

《이건 일반 지원물자를 싣던 때와는 전혀 다른거요.

색철판기와 두장이면 거의 백kg이나 된단 말입니다. 남자들도 힘들어하는것인데다 위험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녀맹에선 제발 나서지 말아주시오.》

《우리도 압니다. 하지만 우린 꼭 해낼수 있습니다.》

순희가 안타까이 호소했다.

《이건 결코 욕망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저 밖을 내다보십시오. 벌써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숱한 아이들과 남편들, 시부모들이 지금 가정주부들인 동무들을 기다리고있단 말이요. 그래 그걸 생각해보았소?》

일군의 설득력있는 호소에 회의참가자들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허정희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격해졌다.

《그건 우리 서포땅의 녀인들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뜻밖의 어성에 놀란듯 회의장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허정희의 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북부지구 피해복구전투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저희들은… 남편과 아이들, 자기 가정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그런 평범한 녀인들이였습니다. 역전에서 울리는 저 기적소리를 들으면서도 역가까이에서 살기때문에 응당 듣는 소리로 심상히 여겨왔지요. 마치 이른아침 녀인들이 밥가마뚜껑을 여닫는 소리처럼, 학교길에 울리는 아이들의 노래소리처럼…

하지만 당중앙위원회 호소문이 발표된 그날부터 저 기적소리는 우리 서포땅녀인들의 가슴에 그저 평범한 기적소리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생각들 해보세요. 전화의 그날 싸우는 고지로 탄약과 식량을 나르고 손에 보탑을 쥐였던 녀성들, 폭격에 마사진 철교복구를 위해 제 집기둥을 뽑아내고 온몸이 그대로 침목이 되여 전시수송을 보장한 우리 녀성들이 아닌가요. 정시로 떠나보내는 저 기적소리야말로 북부전역으로 잇닿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이고 온 나라 인민들, 우리 서포땅의 녀인들이 북부전역의 참전자들과 보폭을 같이하는 벅찬 시대의 숨결이 아니겠습니까?》

격정을 쏟는 녀인의 말에 회의참가자들모두가 후더운 눈길로 정희를 바라보았다.

리현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섰다.

그러다가 놀란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동무들, 저 밖을 좀 내다보시오.》

리현일의 말에 모두가 일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천여명이 훨씬 넘는 녀맹원들이 손에 손전지와 홰불을 들고 화물장주변에 모여들고있었다.…

천여명이 붐비는 화물역주변은 대낮같이 밝았다.

8명의 녀맹원들이 한조가 되여 들어야 하는 색철판기와는 보기와는 달리 여간만 무겁지 않았다. 정희와 한조가 되여 색철판을 마주잡았던 순희가 갑자기 《앗-》비명을 지르며 나가넘어졌다. 철판의 예리한 면에 그만 손을 베였던것이다. 손바닥을 흥건히 적신 피가 찢어진 작업장갑을 물들이며 팔소매를 따라 주르르 흘러내렸다.

누군가 급히 약품지함의 포장을 뜯으려 했다.

《뜯지 말아요.》한팔을 싸쥔 순희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모두가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는데 순희가 지함에 써넣은 글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북부피해지역에 보내는 의약품. 평천제약공장 로동자일동》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모두가 감동에 젖어 눈시울만 붉히는데 정희가 자기의 속옷에서 흰천 한쪼박을 찢어내여 그의 손바닥을 감쌌다.

아리잠직한 그 손바닥을 감싸쥐고보니 정희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것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이젠 좀 쉬여요. 피가 멎을 때까지만이라도…》

정희는 애원하다싶이 말했다. 순희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정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지치고 피곤한 기색들이다.

낮에 화물싣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전투에 돌입한 그들인지라 저녁밥도 건넸던것이다.

자칫하면 이대로 주저앉아버릴수도 있었다. 그들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헌데 과연 무슨 힘으로? 정희는 마르고 터진 입술을 감빨며 안타까운 눈길로 가까스로 걸음을 옮겨디디는 녀맹원들을 바라보았다. 방금전까지 곁에 있던 순희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역구내에 서있던 방송선전차가 침목들을 타고넘으며 화물선철길을 따라 작업장가까이에 들어섰다.

방송에서는 전시가요의 장중한 선률과 함께 장시 《조선은 싸운다》가 격조높이 울려나왔다.


…불속에서도 연기속에서도

인민은 살며 싸운다

조선은 싸운다!

캄캄한 밤길!

시한탄에 밤이 튀는 신작로

죽음이 목숨을 틀어잡은 여기

무슨 그림자냐 말소리냐


순희의 목소리였다.

돌격전으로 부르는 진격나팔소리런듯 컴컴한 밤하늘을 흔들며 울려퍼지는 그의 시랑송에 힘들어 주저앉았던 녀인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겁게 짓누르던 피곤도 가뭇없이 사라진듯 했다. 녀인들의 얼굴에 그 어떤 비장하고도 굳센 결심이 비껴흘렀다.


…어둠을 뚫고 새벽에 뻗치여

낮과 밤을 이어대는

싸우는 조선의 밤 모르는 후방


그렇다. 전쟁이다. 비록 총포성은 울리지 않아도 지금 북부전역에서는 우리의 인민군군인들과 건설자들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결사관철하기 위해 생명도 바치며 불멸의 위훈을 세워가고있는것이다.

(순희야, 정말 고맙다.)

허정희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이 말을 곱씹었다.

언제 그랬더냐싶게 화물역은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기에도 아름차보이던 색철판기와들이 하나, 둘 유개화차의 방통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또 한무지의 색철판기와를 싣고났을 때 안영옥이 황겁히 달려와 다짜고짜 정희를 한켠구석으로 끌어냈다.

《위원장동지, 크… 큰일났습니다. 글쎄…》

불길한 예감이 머리속을 획 스쳐지나갔다.

《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

《저, 글쎄 세대주들이…》

사색이 된 안영옥은 무슨 말부터 떼야 할지 몰라 끙끙 갑자르다가 사연을 이야기했다.

방금전 중당동 기동예술선동대장의 남편한테서 손전화가 걸려왔는데 녀맹원들의 세대주 십여명이 아이들까지 자전거에 태우고 서포역으로 떠났다는것이였다. 안영옥의 얼굴엔 혹시 그들이 작업장에 달려와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일으킬가봐 걱정하는 빛이 확연히 비껴있었다. 중당동에서 서포역까지는 십리길이다.

사실 허정희는 중당동이 교통상 먼것으로 하여 그들만이라도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중당동녀맹원들은 자기들도 야간전투에 참가하겠노라 완강히 고집해나섰다. 정말 안영옥의 말대로 한두명도 아니고 십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욱 밀려들어 작업장의 분위기를 흐려놓는다면…

허정희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밤 11시였다. 그러니 작업을 시작한지 벌써 4시간이 되여온다.

허정희는 서둘러 중당동녀맹원들이 일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안영옥의 말대로 십여대의 자전거가 눈에 띄였다.

《뭐라구? 다시 말해. 잘못했다구?》

격하게 따져묻는 소리가 작업장 한끝에서 들려왔다.

고양이앞에 선 쥐모양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있는 녀인은 다름아닌 중당동 기동예술선동대 대장이다.

중당동녀맹원들이 일손을 멈추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강구고있었다.

정희는 조금도 주저없이 그들의 한가운데 나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아주머닌 참견하지 마십시오.》

뜻밖에 나타난 정희를 아니꼽게 훑어보던 기동대장의 남편이 결패사납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다시금 안해에게 물었다.

《다시 말해보라는데… 뭐 잘못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거요? 이 남편앞에 아니면 저 철옥이앞에? 난 그래도 여기로 달려오면서 저 철옥이한테 장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자구, 너희 엄마가 얼마나 훌륭한 녀성인가 보게 하자구 생각했는데… 조국앞에, 사회앞에 더없이 아름답고 떳떳한 당신을 저 밤하늘이 떠나가도록 소리쳐 자랑하고픈 심정이였단 말이야.》

온통 거칠고 응어리진 욕설이였으나 허정희는 저도 모르게 몇발자국 물러섰다. 사나이의 말대로 그가 참견할 일이 아닌듯싶었다.

녀인은 불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하긴 내가 잘못했지. 한생을 같이 가야 할 남편이 얼마나 못미더웠으면 저녁을 굶구서도 가져다달란 말 한마디 못하구 그저 미안하다, 용서해달라는 말뿐이니…》

맥없이 중얼거리고난 사나이는 자전거바구니에서 자그마한 보꾸레미를 꺼내 안해의 손에 들려주었다. 철옥이라고 부르는 그의 딸애가 커다란 빵구럭지를 안고 자기 엄마에게 다가섰다.

《엄마, 이거 아버지가 다른 엄마들이랑 같이하라구 사왔다.》

《철옥아…》

차마 눈물이 없이는 볼수 없는 광경이였다.

안영옥과 허정희는 저도 몰래 눈굽을 적시며 돌아서 걸어갔다. 그들이 묵묵히 생각에 잠겨 걸어가는데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역사앞으로 수많은 전지불이 밀려오고있었다. 200일전투의 하루과제를 넘쳐수행하고 밤늦게 돌아온 남편들이 자기의 안해들을 도우러 달려오고있었다. 퇴근길에 올랐던 낯도 모르는 사람들도 미처 작업복을 갈아입을새 없이 여기에 뛰여들었다. 이무렵 구역안의 종합식당과 봉사망들에서 준비한 주먹밥과 간식들을 차에 싣고 역구내에 들어서고있었다.

인원은 삽시에 거의 두배로 불어났다.

좀처럼 줄어들줄 모르던 색철판기와들이 어느새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 자기의 안해를 맵짜게 닦아세우던 기동예술선동대장의 남편이 열이 오른김에 방송선전차로 달려가 마이크를 잡았다.

《어쩌나, 저인 두번째 가라면 섭섭해할 음치인데…》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내지르며 저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는 그를 보며 중당동의 녀인들은 웃음을 머금고 방송소리에 귀를 강구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뜻밖에도 정서가 짙은 한편의 시가 흘러나왔다.


불타는 고지에서

사나이들만이 전쟁을 이겼던가

그대들의 가정과 보금자리를

녀인들은 그 작은 두손으로 지키지 않았던가


…이런 녀성들이 준엄했던 그 시절

끊어진 전화선을 온몸으로 잇지 않았던가

동지를 구원하고 눈을 감으면서도

마지막당비를 부탁하지 않았던가


우리 조국이 이렇듯

영광의 오늘에로 전진하여왔음은

뼈굵은 사나이들과 함께

강의한 그대들이 있었기때문이거니


기억하자 조국이여

사나이들이 흘린 피와 함께

결코 물일수 없는 녀인들의

귀한 땀과 눈물을…


작업장을 울리며 절절하게 흘러나오는 우리 시대 녀성들에 대한 끝없는 매혹의 찬가가 아득한 밤하늘의 저 멀리로 메아리쳐갔다.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 기존공식으로 3일이 걸린다던 상차작업은 시작되여 불과 10시간만에 끝나고 렬차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서포역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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