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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화선결혼식》

김해룡


진눈이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늦은저녁녘 우산도 없이 영아는 구내길에 서있었다. 물기가 섞이여 구질구질 내리는 진눈은 영아의 옷을 다 적셔놓고 몸을 얼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아는 오돌오돌 떨면서도 광명을 기다렸다.

광명은 지금 앞에 보이는 건물뒤에서 자기가 데리고 온 동무들과 함께 벽체미장을 하고있었다. 아직 군복을 입기 전이였으므로 시간이 좀 있었던 광명은 처녀들만 있는 영아네 부서의 건물보수를 도와주겠다고 솔선 나서주었던것이다. 그리고는 영아더러 마음놓고 집에 가라고 등을 떠밀었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에 떠날수 없었고 또 광명의 동무들이 있는 작업장에는 부끄러워 다가설수도 없어서 영아는 지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어둠이 짙어서야 작업이 끝나 동무들을 보내고 구내길로 씨엉씨엉 걸어오던 광명이 놀라서 뚝 멈춰섰다. 분명 지하철도역까지 바래워주었는데도 그냥 여기에 남아있는 영아를 발견하고 기가 막혔던것이다. 영아는 우유병을 내밀었다.

광명에게 주려고 따끈한 우유를 사서 품에 안고있었던것이다.

《어서 몸을 좀 덥히세요.》

그러자 광명은 성난듯 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앞으로 다신 이러지 마오. 이거 도와주었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고뿔을 만나게 했다는 송구함에 잠을 못 자게 됐구만. …》

이러며 광명은 오히려 그 따끈한 우유병으로 몸을 덥히라고 품에 넣어주었고 자기의 겉옷까지 벗어 영아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때 영아를 내려다보는 광명의 걱정스런 눈엔 따스한 정이 어려있었다. 그 눈빛에는 얼어든 몸을 후덥게 해주는 열이 있었다. 마음속을 뜨겁게 하여주는 류다른 정이 있었다. 그후 영아는 꿈결에도 광명의 그 눈빛을 보군 했다. …

(내가 그 눈빛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던가?…)

분명 그 정은 남다른 정이였고 깊은 정이였다. 허나 아니였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다. 그 정에 반해 결혼을 약속했다고 하기엔 그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영아는 혼합물을 이기는 녀맹원들속에 섞여 세괃게 삽질을 해댔다.

탁아소건물은 벌써 한개 층을 거의 마무리하고있었다. 그럴수록 불꽃튀는 전투는 더더욱 기세를 올리고있었다. 아직 휘틀을 떼지 않은 1층의 벽체우에 병사들과 돌격대원들이 또다시 층막을 칠 휘틀을 대고있었다. 그 층막치기로 그밤도 새웠다. 그야말로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였다.

그속에서 군대와 인민의 정은 더더욱 깊어만 갔다. 서로 위하는 그마음에 떠받들려 시간마다 건설속도도 높아갔다.

그날 저녁 영아는 여러 건설감독일군들과 이곳을 돌아보는 아버지를 보았다. 결혼식을 꼭 제 날자에 하라고 다심히 이르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어렸을적부터 딸들을 무척 사랑해온 아버지였다. 설계를 하느라고 밤을 새우면서도 딸들에게 언제나 관심을 돌려주어 자주 국수집에도 데려다가 식사도 시키고 릉라인민유원지에 가서 유희도 태워주군 하였다. 휴식날이나 명절날 저녁이면 모두들 모여 노래를 부르군 하였다. 순아는 손풍금을, 영아는 피아노를, 아버지는 기타를 탔다.

어머니는 유일한 청중이였고 또 심사원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사실 배우처럼 생겼다. 배우처럼 성량도 풍부하고 노래도 잘 부른다. 아버지가 기타를 들고 《새별》 노래를 부를 때면 영아의 어머니는 황홀한 눈길로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군 하였다. 아버지가 《장군님 생각》을 부를 때면 영아의 어머니는 눈물까지 흘리군 하였다.

가정에서는 드문히 어머니들이 성날 때가 있다.

그때면 아버지는 《애들아, 엄마가 성났다. 모두 나가서 어머니가 기뻐할 일을 한가지씩 하자. 자, 난 엄마가 좋아하는 매운탕을 하고 순아는 전실, 영아는 아래방 청소…》 하고 임무를 분담하며 앞치마를 두르군 했다.

아버지는 그토록 가정을 사랑했고 딸들을 사랑했다.

영아는 삽질에 바쁜 속에서도 대견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을 느낄수 있었다.

어느덧 밤이 깊었는데 갑자기 부대지휘관의 힘찬 구령소리가 들려오는것이였다.

《…날 따라 구보로 갓!》

이어 군인들은 렬을 지어 말등덕쪽으로 달려가는것이였다.

영아는 돌격대원들에게서 사연을 듣게 되였다. 세멘트를 싣고오던 차가 말등덕너머에서 고장이 났다는것이였다. 그 많은 세멘트를 저 산너머에서 등짐으로 날라온단 말인가? 녀맹원들은 기가 막혀 입을 다셨다.

《인민군대의 투쟁정신이야 결사관철의 정신이 아니요.》

이렇게 혀를 끌끌 차며 돌격대원들도 녀맹원들도 군인들의 뒤를 따라섰다.

그러는것을 부대정치위원이 막아섰다.

《걱정마십시오. 자, 여기에서도 할일이 많지 않습니까. 세멘트가 오면 제꺽 혼합을 할수 있게 모래도 옮기고 물도 길어놓고 또 떼놓은 휘틀도 정리하고…》

영아는 광명을 따라가고싶었다. 군인들처럼 세멘트를 날라와야 마음이 시원할것 같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결혼식으로 이 전투장을 떠나야 할텐데 그때까지라도 힘을 깡그리 바치고싶었다. 영아는 몰래 그곳을 빠져 멀어져가는 군인들의 대렬을 종주먹을 쥐고 따라갔다. 적지 않은 돌격대원들과 녀맹원들도 건설장을 빠져나와 산길에 들어서고있었다.

말등덕너머에 고장난 화물차가 있었다. 수백리길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다나니 차의 기관이 견디여내지 못한것 같았다. 영아도 등을 들이밀었으나 누구도 그에게 세멘트지대를 지워주려 하지 않았다. 군인들에게 세멘트지대를 넘겨주던 나어린 병사는 코웃음을 쳤다.

《…어림도 없습니다. 저 중턱에도 오르지 못해요.》

영아는 하는수없이 광명에게 매달렸다. 그의 등에서 세멘트지대를 받아메였다. 광명은 다시 가서 세멘트지대를 메고왔다.

《견딜수 있겠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으며 영아는 입가에 그 고운 미소를 띠운다.

아래입술을 꼭 옥물고 영아는 광명의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려고 애썼다.

광명이 자기가 지겠다고 몇번 빼앗으려 했지만 영아는 세멘트지대를 놓지 않았다. 저앞에서도 군인들이 돌격대원들과 영아네와 같은 싱갱이질을 하고있었다. 야밤의 말등덕은 군인들과 돌격대원들의 힘찬 노래소리로 충천했다. 그것은 전화의 그 나날 싸우는 고지우로 탄약과 포탄을 나르던 군대와 인민들의 불사신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언덕우에 거의 올라섰을 때 영아는 끝내 세멘트지대를 광명에게 빼앗기고말았다.

세멘트지대를 두개나 지고도 앞장에서 씽씽 달려가는 광명의 모습을 바라보는 영아의 눈앞엔 1년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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