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2. 영원한 태양의 모습으로
생전의 모습그대로
수령의 영생을 실현하는데서 가장 중대하고도 선차적인 문제는 수령이 서거한 후 생전의 모습그대로 모시는것이다.
수령을 생전의 모습으로 잘 모셔야 대대손손 인민들의 심장속에 수령의 존함과 영상이 깊이 간직되게 하고 그 어떤 광풍이 몰아쳐도 부강조국건설위업을 끝까지 이룩할수 있다.
주체100(2011)년 12월 17일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의 고귀한 생애와 혁명업적을 천추만대에 길이 빛내이기 위하여 국가장의행사를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며 장군님의 뜻대로 모두가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책임적으로 일해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날 제일 중요하게 강조하신 문제의 하나는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모셔야 한다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위대한 수령님과 꼭같이 금수산기념궁전에 생전의 모습으로 잘 모셔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셔야 한다!
여기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와 다름없이 늘 장군님을 찾아뵙고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모든 사업을 오직 장군님식대로 해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드팀없는 의지가 어려있었다.
인민들이 지난 시기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뵙고 수령님과 마음속대화를 나누어온것처럼 생전의 모습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자주 만나뵈옵고 인사도 올리고 자기들의 사업정형을 보고하며 가르치심도 받게 하시려는 그이의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인민들이 수령이 생존해계실 때처럼 스스럼없이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며 그이와 마음속대화를 나누면서 운명개척의 옳바른 길을 찾는것, 인민들모두가 기쁜 일이 있어도, 괴로운 일이 있어도 생전의 모습그대로 계시는 수령을 찾아 사연을 아뢰고 가르치심을 받게 하는것, 이것이 다름아닌 수령의 영생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모시는것을 장군님의 영생을 지켜드리는데서 제일 선차적이고도 중대한 사업으로 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위대한 장군님을 잃고 맞이한 새해의 첫아침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을 찾으시여 하신 뜻깊은 말씀이 있다.
부대지휘관들에게 오늘 아침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새해의 인사를 드리는데 어서 105땅크사단에 가보라고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이 귀전에 울려와 그달음으로 찾아왔다고 하신 말씀이다.
그이께서는 2012년 12월 과학자, 기술자들이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과적으로 발사하였을 때에도 그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시면서 평양에 올라와 자신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에 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찾아뵈옵고 인공지구위성을 성과적으로 발사한데 대한 충성의 보고를 드리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여기에는 자신뿐 아니라 온 나라 인민들이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언제나 뵈오면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고 그이께 사업보고도 올리는 심정으로 사회주의강국건설에 이바지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의지가 맥맥히 흐르고있었다.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당시)에 함께 모셔야 한다고 보시였다.
사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를 받으시였을 때 그이께서 당하신 상실의 아픔과 비통한 심정은 그 무엇에도 비할수 없이 큰것이였다. 온 우주가 통채로 내려앉는듯한 가슴저미는 고통이였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이겨내시며 오로지 어떻게 하면 위대한 장군님을 인민의 절절한 념원대로 모시겠는가를 먼저 생각하시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시였다.
이 나라의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떠난 위대한 장군님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없다.
위대한 장군님은 곧 위대한 수령님이시고 수령님은 곧 장군님이시라고 늘 굳게 믿어온 인민들이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언제나 함께 계시였다. 그래서 인민들은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전에 따로따로 계시는것으로 생각해본적이 단한번도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함께 모시는것은 인민의 이 심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철저히 구현하는것으로 된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인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담아 자신께서 하셔야 할 중대한 사업의 의미를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대국상의 비보를 전하는 자리에서 일군들에게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생전의 모습그대로 모시고싶은것이 나의 마음입니다. 장군님은 언제나 수령님과 함께 계시였으며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에도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주체의 한길을 드팀없이 걸으신 수령님의 가장 가까운 전우, 동지이시였습니다. 수령님과 장군님을 금수산기념궁전에 함께 모시는것은 도덕의리적으로 보아도 조선의 혁명가, 장군님의 전사들이 꼭 하여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함께 모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신다고 하면 인민들이 적극 지지할것입니다. …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셔야 한다는 중대결단은 이렇게 내려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높이 모시기 위한 사업에 온갖 심혈과 로고를 다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과의 영결식이 거행된 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일군들에게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시는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확고한 의지이라고 하시면서 이 사업을 최대의 성의를 가지고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2011년의 마지막날에도 그이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시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우리가 장군님을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하였는데 이제라도 장군님께 못다 바친 마음까지 합쳐 순결한 량심으로 장군님을 영원히 높이 우러러모셔야 한다고, 그렇게 하여 우리 인민이 얼마나 숭고한 도덕관을 지닌 인민인가를 온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면서 장군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모시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시기로 결심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장군님께서 생전에 늘 입고 다니시던 옷, 인민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잠바옷을 입으신 모습으로 모시도록 하시였다.
인민에 대한 헌신성, 열렬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야전복인 잠바옷과 색날은 솜옷차림으로 인민들속에 계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에게는 아직 제낀형옷을 입을 경황이 없다고, 일을 많이 하자면 옷도 전투적으로 입는것이 좋다고, 자신의 잠바는 자신에게 있어서 전투복이나 다름없다고, 자신께서는 활동형의 옷이 좋다는 교시를 하신적이 있다.
그이께서는 한여름의 불볕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속에서 온몸을 땀에 푹 적시면서도 늘 야전복차림의 잠바옷을 입으시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계시였다.
인민들에게 있어서 그이의 야전복은 단순한 전투복이 아니였다.
세월의 모진 비바람과 강추위도 다 막아주고 사랑의 넓은 품에 따뜻이 안아준 다심한 친어머니의 정깊은 옷자락이였다.
야전식이 제일이라고, 야전식생활은 자신의 몸에 완전히 푹 배였다고, 혁명하는 시대에 야전복을 계속 입을것이라고 하시며 한평생 야전복차림으로 인민을 위해 마음써오시다가 그 야전복, 잠바옷차림을 하신채로 인민행렬차에서 순직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그래서 인민들에게는 야전형의 잠바옷을 입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이 친어버이의 모습으로 정깊게 새겨져있었다.
주체조선의 존엄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기 전에는, 인민들에게 이 세상 만복을 다 안겨주기 전에는 절대로 벗지 않으시려는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도 그 야전복차림으로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