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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1. 도덕의리의 숭고한 세계 펼치시여


인민과 함께 하신 그리움


사람들은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공헌한 위인들에 대하여 오래동안 잊지 않고 기억해오고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위인들이 인류력사와 더불어 사람들의 추억속에 전해져오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모두는 지금도 인류의 기억속에 살아있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인민이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수령의 영생은 단순히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기에만 머물러있어서는 안된다.

수령에 대한 인민의 한없는 그리움의 세계가 수령이 서거한 후에도 생존시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펼쳐질 때 수령과 인민의 혼연일체의 최고뇌수로 수령은 영생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숭고한 도덕의리에 기초한 수령과 인민의 혼연일체를 반석같이 다져나가는 위대한 령도자를 모셔야만 실현될수 있다.

수령영생의 새로운 경지가 펼쳐진 이 땅의 현실은 그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을 담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주체조선의 영원한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수령영생위업실현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뜻밖에 서거하신 12월의 그 나날 이 땅에 펼쳐졌던 그리움의 숭고한 세계는 장군님을 운명의 태양으로 모시고 살아온 이 나라 인민의 깨끗한 마음, 숭고한 도덕의리가 얼마나 뜨겁고 진실하며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와 혼연일체를 이룬 주체조선의 참모습이 어떤것인가를 세상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주체100(2011)년 12월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리키신 길을 따라 부강조국건설을 위한 걸음을 힘있게 내짚고있었다.

이해의 12월은 위대한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20돐이 되는 달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예술공연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행사들이 준비되고있었고 거리와 마을들은 명절을 맞이하는 열기와 흥분으로 설레이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해에도 조국과 인민의 부강번영을 위한 토대를 하나하나 마련해나가시는 현지지도강행군으로 분분초초를 긴장하게 보내시였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에 들어와서도 불편하신 몸이였지만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인민군대의 여러 부문 사업을 지도하시고 인민들에게 보다 큰 행복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개선청년공원유희장과 함경남도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하나음악정보쎈터와 광복지구상업중심도 련이어 찾으시여 인민들에게 제일 좋은것을 안겨주려는것이 당의 드팀없는 의지이고 결심이라고 하시면서 일군들이 인민의 참된 복무자가 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기도 하시였다.

그러던 12월 19일 낮 12시였다.

인민을 위한 초강도강행군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 길에서 너무도 뜻밖에 서거하시였음을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알리는 방송원의 비분에 젖은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울려퍼졌다.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

처음 사람들은 방송원의 말을 도저히 리해할수 없어 자기들의 귀를 의심하며 서로 마주보기만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꿈아닌 현실이라는 느낌으로 하여 온 나라 인민들은 하늘처럼 믿고 따르던 어버이를 잃은 비통함과 애석함,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와 몸부림쳤다.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위대한 장군님은 수령, 령도자이시기 전에 이 세상 그 누구도 줄수 없었던 가장 진실하며 열렬한 사랑과 정을 주시던 위대한 인간, 자애로운 친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그리움의 마음, 이것은 장군님과 함께 시련과 영광의 길을 헤쳐오는 과정에 그이께서 인민에게 주시던 무한한 사랑과 뜨거운 정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뜻밖의 서거가 우리 인민으로 하여금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강렬하게 폭발시킨것도 그이와 뗄래야 뗄수 없이 맺고있던 그 사랑과 정때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인민사랑에 원천을 두고있던 정, 장군님과 그처럼 뜨겁게 맺어져온 정이 너무도 갑자기 끊어졌으니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절절한 그리움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더욱 사무쳤다.

피눈물의 대하가 흐르던 그 나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하신 말씀 한마디, 취해주신 조치 하나하나에는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인민들의 진정한 그리움이 가장 순결하게, 가장 숭고하게 슴배여있었다.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렇게도 갑자기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였다는 비보를 장군님께서 생전에 그처럼 사랑하시던 인민들에게 알려야 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정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져나가는듯한 괴롭고 고통스러운것이였다.

나는 아직 가야 할 곳이 많다고, 내가 가야 온 나라에 승리의 불길이 타번지고 인민들이 잘살수 있게 된다고 하시며 앞을 막아나서는 일군들에게 오히려 쓰러지지 않도록 건강을 잘 돌보라고 하시던 장군님의 그 음성이 금시라도 다시 들려오는것만 같으시였다. 지금의 건강상태로는 현지지도를 하실수 없다며 울면서 그이의 앞을 막아나서던 의사들의 모습도 떠오르시였다.

자신의 탄생일마저도 언제 한번 편히 쉬지 않으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신 위대한 장군님께 70돐상이라도 성의껏 차려드렸더라면 이다지도 절통하지 않을것만 같으시였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에 제일먼저 접한 일군들이 애석함과 비분을 억제하지 못하고있던 그 시각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중에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에 접하면 오열을 터칠 인민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시였다.

세상에 령도자는 많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처럼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한 현지지도의 강행군길우에서 순직하신 위인은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 있어서 인민들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의 길을 끝까지 함께 갈 친근한 동지, 전우였다.

그이께서는 어려운 과업이 제기되여도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였고 기쁜 일, 가슴아픈 일이 생겨도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시였다. 언제나 나의 병사, 나의 인민들이 기다린다고 하시며 풍랑사나운 파도를 헤치고 칼벼랑길도 서슴없이 넘으시며 천리방선과 공장과 농촌, 두메산골 그 어디에나 찾아가신분이 바로 위대한 장군님이시다.

인민을 품어주고 보살피는 열의인, 정의인이 되시여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신 위대한 어버이이시기에 인민은 영원히 그이의 품에 길이 살리라의 노래를 부르며 장군님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뵈옵는것을 그토록 소원하였다. 한번 뵈옵고는 헤여지는것을 제일로 서운해하였고 헤여지면 언제면 또다시 만나뵈올수 있을가 생각하면서 그이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불후의 고전적명작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노래속에 날과 달, 해를 보낸 인민이였다.

절세의 위인에 대한 그리움은 위훈창조의 원천이다.

우리 인민이 세상을 놀래우는 위훈을 창조할수 있은것도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열화와 같은 그리움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고난과 슬픔도 웃음으로 맞받아나가 강국건설의 꿈과 리상을 꽃피워나갈 튼튼한 토대를 마련할수 있은것도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때문이였다.

정녕 위대한 장군님께 있어서 우리 인민은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 아끼고 내세워주고싶으시였던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민이였다. 인민에게 있어서 장군님은 자기들의 모든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맡기고 따르는 삶의 태양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정을 자신들의 숨결로, 명줄로 간직하고 살아온 이 나라 인민이였기에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더욱 절절해지기만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절절한 그리움을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이 자기들의 그리움을 장군님께 한껏 터놓을수 있도록 하여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장의행사를 통하여 위대한 장군님과 우리 당을 믿고 따르는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를 온 세상에 남김없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위대한 장군님을 추모하시면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언제나 인민과 함께 나누시였다.

조의식장에 나오시여 눈가를 뜨겁게 적시시며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령전에 묵상하고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시는 그이의 모습은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그리움을 더욱 커지게 하였다.

대국상의 비보에 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장군님을 뵈올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며 무작정 평양으로 향한 렬차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의 간절한 이 마음을 헤아리시여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금수산기념궁전(당시)에 올수 있게 특별렬차와 비행기의 운행을 조직하도록 해주시였다.

이렇게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령전으로 온 나라 인민의 마음과 마음들이 끝없이 달려오게 되였다.

온 나라가 피눈물속에 잠겨있던 10여일의 애도기간에 연 2억 6 000여만명의 인민들이 자기들의 슬픔과 애석함, 그리움을 마음껏 터칠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령전을 직접 찾아뵙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이의 자애로운 영상을 뵈오며 자기들의 마음속진정을 아뢰고싶었던 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깊이 헤아려 평양시와 각 도소재지들에 장군님의 태양상을 모신 야외조의식장을 꾸리도록 하신분도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이시다.

이 땅에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가 추모의 꽃송이와 꽃다발을 엮어들고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웠다. 새날이 밝으면 조의식장에서 곧바로 일터로 가고 하루일이 끝나면 일터에서 조의식장으로 달려오는 인민의 거대한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속에 위대한 장군님을 그리는 낮과 밤, 날과 날이 흘렀다.

군중들이 끊임없이 달려와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초상화앞까지 불과 200여m였지만 네시간이상 걸려서야 초상화앞에 이를수 있었다는 이야기, 10대의 어린 학생들이 어버이장군님의 태양상을 모신 도소재지의 조의식장을 찾아 수십리 눈보라길을 걸어 추모의 꽃송이를 드리고 밤새워 호상을 섰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애도기간에 꽃펴난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이 땅 어디에 가나 무수히 들을수 있었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언제나 인민과 함께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과 혼연일체를 이룬 이 나라 인민이 펼친 숭고한 도덕의리의 화폭들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위대한 장군님과의 영결행사 전 과정은 장군님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과 인민의 그리움에 뿌리를 둔 숭고한 도덕의리와 혼연일체의 진모를 세계앞에 남김없이 보여준 숭엄한 대화폭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서거하신 다음날을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장군님과의 영결식을 우리 식대로 새롭게 할데 대하여서와 장군님과 영결하는 의식을 잘 조직할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면서 그를 위해 나서는 문제들을 일일이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과의 영결행사에 참가하려는 인민의 절절한 심정과 장군님에 대한 인민들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깊이 헤아리신 그이께서는 영결행사의 로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과 영결하는 100리연도에 하늘땅을 진감하는 인민들의 그리움이 바다를 이루었으며 이르는 곳마다에서 세인을 놀래우는 화폭들이 련이어 펼쳐졌다.

그 하나하나의 화폭들은 그대로 장군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살아온 이 나라 인민이 그이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뜨거운 마음의 분출이였다.

2011년 12월에는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렸다.

어버이와 영결하는 인민의 마음인양 소리없이, 하염없이 눈이 내려쌓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을 찬눈길에 모실수 없었기에 인민들은 영결의 거리를 쓸고 또 쓸었다. 그것도 부족한듯 저저마다 솜옷과 목수건을 벗어 장군님 지나가실 길에 정성들여 폈다. 지어 가정들에서 단 한번도 덮어본적이 없는 새 이불과 담요까지 가지고 나와 장군님의 령구차가 지나갈 도로에 펴드렸다.

영결의 거리들에서 어버이장군님은 인민을 두고 절대로 못가신다고 목놓아울며 령구차를 에워싼 인민들의 눈물겨운 화폭, 아프고 쓰린 마음을 달래지 못하여 령구차를 따라 영결의 거리를 달리다가는 쓰러지고 령구차가 멀어져 더는 보이지 않게 되였을 때에는 그 자리에 어푸러져 일어설념을 하지 못하고 땅을 치며 뜨거운것을 쏟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영원한 그리움의 군상으로 력력히 새겨졌다.

어버이를 찾고 부르던 그 눈물겨운 광경, 이것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 볼수도, 지어낼수도 없고 흉내낼수도, 재현할수도 없는 인류력사에 전무후무한 감동깊은 화폭들이였다.

당시 위대한 장군님과의 영결식을 직접 목격한 한 해외동포는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령구차가 지나가게 될 길에 눈이 쌓이는것을 념려한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평양시민들은 남녀로소가 혼연일체가 되여 이불과 담요를 가지고 나와 아스팔트길을 덮기 시작했다.

이불과 담요뿐 아니라 목도리와 겉옷까지 펴서 눈이 내리는 길을 덮고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령구차가 지나갈 길우엔 헤아릴수 없이 많은 평양시민들이 나와 눈을 치고 얼음을 까고있었다.

나는 어느 한 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왜 눈을 치고 얼음을 까고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녀성의 대답은 단호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을 편안히 하기 위함이다.〉

그 녀성의 눈엔 눈물이 글썽하였고 목메인 음성이였다.

그런 녀성을 보며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이번 대국상을 통해 〈수령, 당, 인민 3위1체〉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영결하는 의식이 금수산기념궁전광장에서 거행되였는데 그 진행과정과 군중들의 참가질서에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였다.

나는 그때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고 또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이번 북녘의 갑작스러운 대국상에 재미동포의 한사람으로 참가하여 말로만 듣고 알고있던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현지지도의 길에서 쪽잠을 주무시고 줴기밥을 드셨다는 사실과 또 핵무기보다 강한 일심단결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하고 충분히 리해하고 돌아왔다.》

위대한 장군님을 추모하는 행사가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전인민적인 조의행사로 엄숙히 거행되고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그리움이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발휘될수 있은것은 인민이 지닌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의 최고체현자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세심하신 은정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신 또 한분의 절세위인을 모시여,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지극한 경모심과 깨끗한 도덕의리심을 지닌 인민의 진정, 신뢰의 정에 떠받들려 위대한 장군님은 인민의 심장속에 영원한 태양으로 더욱 깊이 간직되게 되였다.

세계는 자기의 령도자와 운명의 공동체를 이룬 주체조선의 참모습을 다시한번 똑똑히 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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