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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회


41

대원수님께서는 작은아버님과 함께 평양역에 도착하시였다.

방금 어디서 기차가 들어왔는지 손님들이 개찰구쪽에서 길이 메이게 밀려나오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대합실쪽으로 발길을 옮기시였다. 이때 윤병이와 호철이 그리고 덕범이와 경만이들이 불쑥 나타났다.

《너희들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대원수님께서 깜짝 놀라며 물으셨다.

《여기가 뭐 멀어서 못오겠니? 네가 가야 할 천리길에 비하면 여기야 문앞이지 뭐.》

윤병이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어제저녁에 작별인사까지 했는데 왜 또 여기까지 나왔냐 말이야?》

《사실 어제야 작별인사두 변변히 못했지 뭐.》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고있는데 차시간을 알아보러 가셨던 작은아버님께서 나타나셨다.

《너의 동무들이냐?》

《칠골에 있는 우리 반 동무들입니다. 우리 작은아버지야.》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소개하시자 동무들은 모자를 벗어들고 작은아버님께 인사를 드렸다.

《동무가 떠난다구 일부러 정거장에까지 나왔구나. 그럼 여기에들 있어라. 내 매표구에 가서 차표를 사오겠다.》

작은아버님께서 매표구쪽으로 가시려고 하는데 윤병이가 성급히 이야기했다.

《표는 벌써 샀을거야요.》

《아니, 표를 누가 샀단 말이냐?》

대원수님께서 매우 놀라시는 눈으로 물으셨다.

《명식형님하구 호철이 어머니가 표를 사겠다구 간지 오랬어. 아마 이제는 샀을거야.》

이때 호철이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는 대원수님을 보더니 와락 달려오며 두손을 덥석 잡는것이였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공부를 하러 나왔다가 도중에 돌아가다니. 그렇게 악독한 놈들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나. 글쎄 선생님께서 무슨 죄가 있다구 또 붙잡아간단 말인가, 응?》

호철이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분노의 빛이 타번지고있었다.

《저녀석을 사람 만들어주려구 그렇게 애쓰더니 이렇게 헤여지구말게 됐구만. 세상이 야속한가, 내가 박복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사람 살아가기가 힘든지 모르겠구만.

우리 저녀석은 어제밤에 늦게 돌아와서 한잠두 못자구 밤새껏 울었다네. 저녀석이 섧어하는걸 보니 내 마음두 좋지 않더구만! 하기야 임자에 비해서야 아무것두 아니지. 너무 상심말라구.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이라네. 제놈들이 선생님을 붙잡아가두 어떻게 못해, 못하구말구. 선생님은 하늘이 낸 어른이 아니신가?…》

호철이 어머니는 대원수님의 손을 꼭 잡은채 놓을줄 몰랐다. 친아들과 작별한들 이에서 더 서글퍼하겠는가? 그의 두눈에서는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호철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철이는 꼭 큰사람이 될수 있어요.》

《고맙네. 임자가 그처럼 애써준 보람이 나타날걸세. 어딜 가나 저녀석을 잊지 말라구.》

《예, 우리들두 서로 그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때 명식형님이 차표를 사가지고 나타났다.

일행은 대합실로 가서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대합실은 무척 어수선하였다. 락화생껍질, 밤껍질, 사과껍질들이 이구석저구석에 마구 흩어져있었다.

《야! 정말 이렇게 빨리 헤여질줄은 몰랐구나. 꿈결에 만났다 헤여지는것 같구나. 호철아, 넌 안그러니?》 하고 윤병이가 말했다.

《난 더하지 뭐. 넌 그래두 만나서 처음부터 학습두 같이하구 재미있게 지내지 않았니. 난 정말 바보였어!》

호철이의 말이였다.

《바보는 왜 바보겠니. 이제는 공부두 잘하구 체육두 잘하구 품행도 모범인데!》

대원수님께서 호철이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내가 떠나두 너희들 지금과 꼭같이 공부해야 한다. 중요한것은 무엇때문에 공부를 하는가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거야. 그리구 윤병이랑 호철이는 자기 공부도 잘하면서 덕범이랑 경만이 그리구 학습반동무들을 계속 잘 도와주도록 해라. 아마 윤병이가 수고를 많이 해야 할게다.》

《수고랄게야 뭐 있겠니. 네가 있을 때처럼 제대로 해나갈것 같지 못해서 걱정이지 뭐.》

윤병이의 대답이였다.

《지금처럼 하면 돼. 잘 모를것이 있거나 새로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동무들하구 잘 의논하면 되는거야. 우리 후에 다시 만나면 나라를 찾기 위해서 누가 훌륭한 일을 많이 했는지 서로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리끼리 그런 큰일을 꽤 할수 있을가?》 하고 호철이가 물었다.

《왜놈을 미워하는 생각만 있으면 할수 있는거야. 아이들이라구 못할건 없어.》

대원수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동무들을 둘러보셨다.

《좋아! 그렇게 해보자.》

동무들은 힘있게 손들을 잡았다.

이때 확성기에서 신의주행 렬차의 개찰을 알리는 소리가 역구내에 울려퍼졌다.

《야! 인젠 진짜 헤여지게 됐구나. 기차를 좀더 잡아놓을수는 없나?》

덕범이의 말이였다.

《기차는 잡아놓을수 있겠지만 시간은 잡아매둘수 없지 않니? 성주는 어서 한시간이라도 빨리 가서 아버님의 소식을 똑똑히 들어야 해!》

윤병이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네 말이 맞았다. 자, 그럼 이젠 그만 떠내보내기로 하자꾸나.》

명식형님의 목메인 소리였다.

손님들은 벌써 밀고닥치고 하면서 서로 다투어 개찰구쪽으로 밀려나가고있었다. 그러나 동무들은 아직 대원수님의 손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 이제 손들을 놓으면 언제 다시 다정한 손길을 잡아보겠는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동무들은 부여잡은 손길에서 뜨거운 사랑과 두터운 정을 느끼면서 서로 놓으려 하지 않았다.

신의주행 렬차가 벌써 들어오는지 《꽥―》 하고 기적소리가 길게 울려왔다. 그 소리는 헤여지기 싫어하는 동무들의 가슴을 후비는것 같았다. 동무들은 대원수님의 손을 놓지 않을수 없었다.

《목이 메여 말로는 할수 없어서 몇마디 적은 편지야. 가다가 기차칸에서 펴보라구!》 하며 윤병이는 봉투편지 한장을 대원수님의 주머니에 넣어주었고 호철이는 먹을것을 싼 작은 꾸레미를 들려주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사양하지 않으시고 받으셨다. 사양할 사이도 없었다.

《호철이 어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대원수님께서는 호철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목이 메여 뭐라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작은아버님과 명식형님에게도 각각 인사를 드리셨다.

《매사를 이 학생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구 너희들도 오늘 다진 맹세를 어기지 않구 지켜나간다면 앞으로 싸움의 길에서 우리 성주를 다시 만나게 될게다. 그럼 어서 떠나거라.》

작은아버님의 말씀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사람들속에 끼여 홈으로 나가셨다. 차를 타시면서 뒤를 돌아보니 배웅나온 사람들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차에 올라 차창을 여시고 줄곧 밖을 내다보셨다. 행여나 그리운 얼굴들을 한번 더 볼수는 없을가 하고 개찰구쪽으로 시선을 옮기셨다. 거기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몰켜서서 밀고닥치고 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먼발치에서라도 정다운 얼굴들을 한번 더 보시고싶었으나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서운한 마음을 가시지 못하신채 차창으로 홈 맞은편을 무심코 바라보셨다. 그런데 그리운 얼굴들이 거기에 있지 않는가. 그들은 어느 사이에 정거장대합실마당을 벗어나 가시줄울타리에 매달려서 기차쪽을 유심히 바라보고있었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차창으로 얼굴을 내놓으시고 손을 흔드셨다. 그때에야 그들은 대원수님을 찾아보고 두손을 힘껏 들어 세차게 흔드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도 계속 손을 흔드셨다.

기차는 요란한 기적소리를 울리더니 《덜커덩》 하고 차체를 흔들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기차는 윤병이들이 서있는 곳으로 점점 가깝게 움직여갔다. 그들은 더욱 세차게 손들을 흔들었다. 윤병이와 호철이는 팔소매로 연방 눈물을 씻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도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기차는 점점 속력을 내면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그들의 정다운 모습이 사라지지 않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계속 차창으로 얼굴을 내놓으시고 밖을 내다보고계셨다.

정든 평양의 거리와 집들, 산과 강들이 얼씬얼씬 지나갔다. 고향을 떠나시는 대원수님의 심정은 서글프기 그지없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렇듯 쓰라린 체험을 겪으시는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같은 나이의 동무들이 철부지로 집에서 응석을 부리고있을 때 대원수님께서는 나서자라신 고향 만경대를 떠나 강동으로 가셔야 하였고 거기서 아버님의 체포로 하여 가슴아픈 체험을 겪으셔야 하였다.

그후에는 다시 만경대를 떠나 멀고먼 북쪽으로 옮겨가셔야 하였고 거기서도 중강, 림강, 팔도구 등 자주 자리를 옮기시지 않으면 안되셨다. 그럴 때마다 대원수님의 앞에는 험산준령과 거친 파도가 부닥쳤으며 살뜰하던 동무들과 헤여져야 하셨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험난한 가시덤불길을 헤치시고 앞으로 나아갔으며 손잡고 나아갈 새 동무들을 사귀군 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의 생애를 통하여 혁명의 길은 그처럼 간고하고 순탄치 않다는것을 나어린 시절부터 몸소 겪으셨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한동안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계셨다. 그러시다가 윤병이로부터 받은 편지생각이 나서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뜯으셨다. 그런데 거기에는 학습장을 뜯어서 쓴 편지와 함께 돈 3원이 들어있지 않는가! 대원수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어제저녁 헤여지기 바로전에 돈을 구하려다가 구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걱정하던 윤병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밤에 애써서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구해다준것이 분명했다. 3원이면 벼 한가마니값이 잘되겠는데 가난한 살림에 웬 돈을 이처럼 많이 넣었는가고 생각하시니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감이 더 크셨다.

대원수님께서는 편지쪽지에 시선을 옮기셨다. 거기에는 몸은 서로 헤여져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함께 있자는것과 아버님의 일이 무사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윤병이와 지내던 가지가지의 일들이 삼삼히 떠오르셨다. 바쁜 일을 하다가도 대원수님께서 어디 가시는것을 보게 되면 언제나 따라나섰고 학습반이나 놀음놀이에서도 대원수님께서 하자고 하는 일이면 언제나 무조건 앞장에 나서던 윤병이였다.

(네것내것을 가리지 않고 학습과 모든 활동에서 모범적인 아주 좋은 동무야.)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편지쪽지를 봉투에 넣으셨다.

기차는 계속 달리였다.

대원수님께서 개천에 도착하신것은 그날 해질무렵이였다. 안주에서 기차를 갈아타시기 위하여 여러 시간을 보내신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개천의 한 려인숙에서 하루밤을 주무시고 다음날 이른아침에 신들메를 든든히 조이시고 팔도구를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걸으셔야 하였다. 한번 걸어보신 길이여서 묻지 않아도 쉽게 길을 찾으실수 있었다. 새벽에 길을 떠나시여 줄곧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걸으셨다. 그리고 땅거미져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야 집에 들어가시여 쉬군 하셨다.

이리하여 대원수님께서는 만경대에서 떠나신지 10여일만에 강계를 지나 포평에 이르셨다.


× ×


압록강을 눈앞에 두신 대원수님께서는 강건너 마을을 바라보시였다. 이제 얼음판을 건느시면 크지는 않으나 아늑하게 꾸린 집이 있고 그리운 어머님과 보고싶은 동생들이 있는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집이 가까와오자 아버님의 일이 더욱 걱정되셨다. 간악한 왜놈들에게 붙잡혀가신 아버님께서 갖은 고초를 겪으셨을터이니 약하시던 몸이 얼마나 더 쇠약해졌을는지 알수 없었다.

대원수님께서는 팔도구를 떠나 천리길의 첫 발자국을 떼던 그때의 일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셨다. 그리고 그때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것만 같으셨다.

나라를 빼앗기고 헐벗고 굶주림속에서 신음하고있는 우리의 겨레가 어떻게 살고있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며 어느 길을 걸어야겠다는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고 하시면서 조선을 배우라고 천리길을 떠나보내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씀을 그동안 얼마나 수행하였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셨다. 창덕학교시절이 그리 긴 기간은 아니였지만 실로 많은것을 보셨고 직접 체험하셨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강도배들이 조선의 보물들을 어떻게 빼앗아가고있으며 우리의 겨레들을 어떻게 악착스럽게 탄압하고있는가를 똑똑히 보시였다. 그리고 왜놈들과 한배속인 지주와 자본가놈들이 조선의 로동자들과 농민들의 기름을 어떻게 짜내고있는가에 대하여 똑똑히 보셨으며 우리의 로동자, 농민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멸시와 천대속에서 분노와 울분에 가득차있는것을 똑똑히 보셨던것이다. 타는 불을 튕기면 더욱 세차게 불길을 일으키듯이 분노와 울분에 찬 우리 나라의 로동자와 농민을 튼튼히 묶어세우고 그들을 옳은 싸움의 길로 이끌어만 준다면 원쑤 왜놈들과 지주, 자본가놈들을 반대해서 용감히 싸울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느끼신것이다.

그 성스러운 싸움은 비단 남자들만이 아니라 녀성들속에서도 벌릴수 있는것이며 어른들만이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할수 있다는것을 직접 체험하셨고 거기서 무한한 힘과 자신을 얻으신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를 다시금 똑똑히 깨달으실수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시고 밟아오신 조국땅을 돌아보셨다. 눈쌓인 스산한 벌판만이 한눈에 안겨왔다.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이 비낀 조국땅은 엷은 안개속에 싸인듯이 뽀얗게 바라보일뿐이였다. 어둠의 장막이 온 누리를 덮으려고 시시각각으로 재촉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그속에서 아름다운 만경대의 밝을 아침을 내다보셨고 조국땅의 아름답고 찬란한 산과 강을 그려보셨다. 산좋고 물맑은 아름다운 내 조국, 금은보화 가득하고 오곡이 물결치는 내 나라, 착하고 슬기롭고 부지런한 겨레들이 반만년동안이나 살아온 금수강산 내 조국을 바라보셨던것이다. 그리고 조국땅은 어둠속에서 허덕이고있으며 밝은 새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있다는것을 절감하셨다.

(내 기어이 싸워서 이기고야 조국땅에 돌아오리라!)

대원수님께서는 다시금 두주먹을 힘있게 틀어쥐시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포평나루터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한 굽인돌이를 돌아서시니 나루터가 한눈에 보이는데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찬바람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메마른 나무가지들을 세차게 흔들며 휘몰아쳐왔고 눈가루를 흩날려 마구 뿌려놓았다.

나루터에는 살래야 살수 없어 고향산천을 뒤에 두고 올망졸망한 보짐들을 이고지고 모여든 류랑민들이 서성거리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는 순간 곡산으로 떠나던 인삼이네와 간도로 들어가야겠다고 하던 장쇠네, 살길이 없어 허덕이던 영길이네와 첫째네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조선의 수많은 로동자들과 농민들의 모습을 그려보시였다.

류랑민들사이로 개털슈바를 뒤집어쓰고 총칼을 번쩍이면서 그들의 보짐을 뒤지며 뭐라고 꽥꽥소리를 지르는 순사놈들의 가증스러운 몰골이 나타났다.

(저놈들때문에 추운 날씨에 강을 건느지 못하구 떨구들 있구나!)

대원수님의 눈에는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시였다. 당장 그놈들을 요정내여 압록강얼음장밑에 처넣고싶으신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셨다. 그러나 아직 그럴 때가 못된다고 생각하시니 저절로 한숨이 나갔다.

대원수님께서는 눈꼴사나운 왜놈순사놈들이 있는 나루터로 가시지 않으시고 부러 그아래 생눈길을 헤쳐 얼음을 건느시기로 결심하셨다.

얼음길에 들어서신 대원수님께서는 다시 나루터쪽을 바라보시였다. 류랑민들은 아직 서성거리고있었다.

(압록강을 건느기만 하면 마치 살길이라도 있는것으로 알고 정든 고향산천을 두고 불원천리 여기까지 찾아왔건만 찬바람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이 추운 겨울에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그나마 강마저 손쉽게 건느지 못하고있으니 저분들의 앞길은 어떻게 될것인가. 장차 그들의 앞에는 어떤 기구한 운명이 기다리고있을것인가?)

대원수님의 심정은 매우 쓰리고 아프셨다.

눈쌓인 벌판에 황혼이 어리였다. 락조를 받아 붉게 물든 서쪽하늘의 엷은 구름떼가 천천히 움직이며 노을이 점점 사라지고있었다. 오래지 않아 들과 산천초목이 어둠의 장막속에 파묻히고말것이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뽀얗게 눈가루가 휘날려 얼음길우에 뿌려졌다.

이때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가 떠오르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노래를 부르시며 압록강의 얼음길을 한걸음두걸음 옮겨디디셨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대원수님께서는 노래를 부르시면서 간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 강을 건느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찬바람을 안으시고 열흘나마 걸어오시면서 칠골과 만경대에서 다지신 결심을 더욱 굳히셨던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이루어지겠는지는 좀처럼 기약할수 없는 일이였다.

(내가 자라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을 언제 다시 밟아본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께서는 비장한 심정을 금할길이 없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노래를 계속하셨다.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


노래는 대원수님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듯싶었다. 노래를 부르시는 사이에 더 큰 힘과 굳은 결의가 다시금 솟구쳤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다시금 몸을 돌리시여 조국땅을 바라보셨다. 황혼이 짙어가고있었다.

《조선아! 기다려다오. 내 기어이 너를 다시 찾고야말리라!》

대원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시고 다시금 얼음길을 힘차게 밟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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