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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9 회


39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진심으로 뭉치면 실로 큰 힘을 나타내기마련이다.

인삼이네를 도와주기 위하여 일떠선 학습반동무들은 첫 일요일 오후에 한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제각기 나무를 한짐씩 해지고 내려왔다.

이리하여 인삼이는 미안한 생각이 적지 않았으나 명랑한 기분으로 학교에 계속 다닐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학습반동무들, 특히 대원수님에 대해서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에 대해 생각하시는것이 많으셨다. 그동안 인삼이는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학교에서 공부가 끝나면 곧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학습반에는 한번도 참가할수 없었다. 그렇지만 숙제는 언제나 건느지 않았다. 그러느라니 그의 고생이란 말이 아니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를 학습반에 참가시키고 그대신 동무들이 좀더 도와주도록 하여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시작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것을 제기할수는 없어서 기회를 기다리고계셨다.

그러던 어느날 경만이가 벙어리장갑을 끼고 학습반에 나타났다.

《아니, 넌 뭐 벌써 손가락이 시려서 그따위 장갑을 끼구 다니니?》 하고 덕범이가 놀려주려고 덤벼들었다.

《누가 뭐 손가락 시려서 끼구 왔다던? 너희들두 이걸 보구 하나씩 만들라구 가져온게야. 이제 너 겨울에 나무하러 다니려면 얼마나 손가락이 시릴지 아니?》

《응, 정말 그렇겠구나. 어디 한번 껴보자.》

덕범이는 장갑을 껴보더니 자기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어머니께 부탁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자 장갑은 이아이 저아이 손으로 건너갔다. 모두 자기들도 그렇게 만들겠다는것이였다.

《너희들 그럼 눈보라칠 때까지 나무를 하러 다닐셈이냐?》 하고 대원수님께서 웃으시며 물으셨다.

《눈보라칠 때두 해야지 그럼 인삼이 혼자 하라구 내버려두겠니?》 하고 윤병이가 대답했다.

《인삼이 혼자 하라구 내버려둘수야 없지. 그런데 추운 겨울에 할것이 아니라 그때 할걸 지금 모두 해버리는것이 어떠니? 학습반에서 숙제를 좀 빨리 하구 나가면 매일 몇단씩은 할수 있지 않겠니.》

《정말, 그게 좋겠구나. 그렇게 하자. 추운 겨울에는 사실 고생만 했지 나무는 얼마 하지 못할거야.》

윤병이가 이렇게 대답하자 모두 그 말에 찬성해나섰다.

이리하여 그들은 다음날부터 인삼이와 함께 학습을 빨리 끝내고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해왔다. 이렇게 열흘이나 보름만 하면 겨울에 일요일마다 가서 해온만큼한 나무는 넉넉히 됨직하였다.

칠골아이들이 인삼이를 도와주는 일이 이렇게 벌어지게 되자 대원수님과 함께 공부하는 호철이도 나서게 되였다.

《호철이 너만은 그만두는게 어떠냐? 인삼이를 도와주는것두 좋지만 그것보다두 넌 공부가 더 급하지 않겠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이 말을 들은 호철이는 시물시물 웃으며 작은 수첩을 꺼내보이는것이였다. 거기에는 어려운 단어들과 까다로운 산술문제들이 적혀있었다.

《오늘 나무하면서 이 단어들만 따로외우구 이 산술문제만 똑똑히 풀면 되는거야.》

《응! 그것참 그럴듯하구나. 정말 꿩먹구 알먹기로구나.》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도 따라웃으셨다.

아닌게아니라 호철이는 길을 걸을 때나 나무를 할 때에도 중얼거리며 어려운 단어를 외웠고 까다로운 산술문제를 생각하군 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에게 호철이의 학습태도에 대해서 칭찬해주셨다. 이날부터 그들은 모두 나무하는 시간에도 학습을 할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칠골아이들이 인삼이를 도와준다는 소문은 호철이를 통해서 팔골아이들에게도 알려졌다. 학습반책임을 맡은 창호가 이 문제를 동무들에게 이야기했다. 나무를 하면서도 공부를 할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자 그들도 모두 인삼이를 도와주자고 의논이 되였다. 그들은 날마다 나무를 한단씩 해서 창호네 뜨락에 쌓아두었다가 성안으로 실어다 팔게 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칠골아이들에게 알리지 말고 몰래 하였다가 깜짝 놀라게 하자고 의논이 되였다. 이리하여 그들도 그날부터 곧 착수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두 마을의 학습반원들은 학습반공부를 끝내고 제각기 산으로 올라가서 나무를 하느라고 신바람들이 났다. 갈퀴로 솔잎을 긁는 아이, 도끼로 등걸을 패는 아이, 낫으로 나무가지를 치는 아이… 모두 성수가 났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는 골판을 쩡쩡 울렸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보다 나무 한짐을 먼저 해지시고 마을로 향하셨다. 얼른 한짐 져다두시고 다시 올라와서 동무들과 함께 내려가실 생각으로 발걸음을 다그치셨다.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어깨는 뻐개지는것 같으셨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참으시며 발걸음을 계속 다그치셨다.

어느덧 마을에 들어서신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이 해다 쌓은 인삼이네 새 나무낟가리가 보이자 가슴이 흐뭇해지셨다. 그래서 새 낟가리앞에 지게를 뻗쳐놓으시고 나무단을 내려 낟가리에 쌓으셨다.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계속 흘러내렸고 목에서는 단내가 났다.

대원수님께서는 우물가에 가시여 물을 길어 한모금 마시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시려고 지게를 지셨다.

이때 최돼지가 웬 낯선 사람 하나를 데리고 인삼이네 집으로 찾아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주춤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최돼지는 담배를 꼬나물고 단장을 휘두르며 인삼이네 집 뜨락에 가서 《에헴, 에헴》 기침을 하더니 거만한 목소리로 인삼이 아버지를 불렀다.

웃방에서 새끼를 꼬고있던 인삼이 아버지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에또, 나는 지방법원에서 나온 집달리요. 당신이 이 집 주인이요?》 하고 낯선 양복쟁이가 인삼이 아버지를 아래우로 훑어보며 물었다.

《그렇소.》 하고 인삼이 아버지가 목갈린 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네 집과 재산을 차압하러 왔소. 차압이 뭔지 아오?》 하고 그자는 야유조로 말하며 픽 웃었다.

이 말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저놈들이 끝내 인삼이네를 못살게 만들려는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최돼지놈을 노려보셨다. 유들유들한 최돼지의 볼따구니에 경련이 일어 푸르르 떨렸다.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 아버지를 바라보셨다.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할것인가가 자못 걱정되셨던것이다.

《차압을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는 며칠전에 저 량반네한테 식량까지 모주리 빼앗겼소.》하고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다 빼앗긴것이 문제가 아니요. 아직 빚을 다 갚지 못했기때문에 차압을 한단 말이요. 차압하는데 대한 딴 의견이 있으면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시오. 나는 집달리로서 상부의 명령을 집행할뿐이요.》

집달리는 이렇게 말하며 까만 가죽가방에서 붉은 딱지를 몇장 꺼내더니 우선 토방기둥에 붙이려고 풀칠을 하는것이였다.

《안되오. 내 집에 그따위를 붙이지 못하오!》

인삼이 아버지는 토방기둥을 콱 막아서며 소리쳤다.

이러는 동안에 마을의 조무래기들도 모여들었고 늙은이들도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그리고 물을 길러 갔던 인삼이 어머니도 돌아왔다.

《왜 이러오. 비키지 못하겠소?》

집달리의 추상같은 호령이였다.

《우리는 30원 빚을 내다쓰구 벌써 50원을 물어주었소. 내 집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오.》

인삼이 아버지는 여전히 기둥앞에 딱 붙어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옆에 섰던 최돼지가 단장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 미련한 사람아, 임자는 나라의 법도 모르고 관청나리도 모르는가! 썩 비키게, 공무집행방해죄로 괜히 콩밥먹지 말고.》

그러나 인삼이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흥 네놈이 그런다구 내가 공무집행을 못할줄 아느냐.》

집달리는 인삼이 아버지앞으로 마구 달려들며 그의 팔을 잡아 토방아래로 나꿔채는것이였다. 이바람에 인삼이 아버지는 토방에서 뜨락으로 허궁 떨어지면서 집달리를 콱 밀어뜨렸다. 이통에 집달리는 모로 쓰러졌고 인삼이 아버지는 그자의 우에 꺼꾸러지면서 몸뚱이로 콱 짓눌러놓았다. 둘러서있던 조무래기들이 깔깔 웃어댔고 어른들도 고개를 돌리고 키득거렸다.

《좋다! 네놈이 어물쩍하구 사람치는구나.》

집달리는 먼지를 털 사이도 없이 후닥닥 일어서더니 인삼이 아버지 뺨을 호되게 후려치는것이였다.

《해볼테면 해보자! 무서울것이라군 아무것도 없다!》

인삼이 아버지도 적삼을 벗어던지고 집달리앞으로 달려들어 멱살을 그러잡았다. 이바람에 집달리의 양복저고리가 찢어져나갔다.

《이놈이 미쳤나? 이분을 누구루 알구 함부로 달려드는거야!》

이번에는 최돼지가 눈을 부릅뜨고 인삼이 아버지의 턱을 쥐여박으며 앞을 막아서는것이였다.

《이건 또 뭐야.》 하며 인삼이 아버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최돼지의 척 늘어진 볼따구니를 힘껏 후려갈겼다.

《어이쿠!》

최돼지는 볼을 싸쥐고 흠칫 뒤로 물러섰다. 그놈의 코에서는 선지피가 쏟아져나왔다. 최돼지는 손바닥으로 인중을 문질렀다. 손바닥에 붉은피가 가득 묻었다. 그는 황황히 주머니를 더듬어 손수건을 꺼내더니 오리오리 찢어 코구멍을 틀어막았는데 그 몰골이 정말 가관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집달리나 최돼지앞에서 굽히지 않는 인삼이 아버지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드셨다. 밀과 벼를 털어 깡그리 최돼지한테 빼앗기고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던 인삼이 아버지가 아니였던가? 그런데 오늘은 전과 같은 그런 인삼이 아버지가 아니였다.

(확실히 인삼이 아버지는 달라졌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께서는 한결 마음이 든든하셨다.

최돼지의 몰골을 본 마을사람들은 깨고소하다는듯이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구경만 하고있을수는 없었던지 싸움을 말리는척 하였다.

《좋다. 네놈이 공무를 방해하구 공무원과 량민을 구타해? 네놈의 모가지가 며칠이나 붙어있나 두구보자.》

최돼지는 코맹맹이소리로 남들이 잘 알아도 듣지 못하게 중얼거리더니 단장을 팔에 걸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인삼이 아버지는 약한 몸에 지나치게 흥분을 한탓으로 가슴이 방망이질하듯이 후둑후둑 뛰였고 기침이 터져나왔다. 그는 기침을 하면서 잠시 뜨락에 쭈그리고앉아있었다. 인삼이 어머니는 겁이 나서 그의 팔을 부축하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삼이 아버지는 괜찮다면서 조금후에 일어섰다.

이때에 룡강집할아버지가 그리로 달려왔다.

《이 사람 어쩌자구 이러는가. 돈없구 권력없는 사람은 입이 있어두 말을 못하는 세상이야. 남은 자네만 못해서 머리를 숙이구 있는줄 아나? 어서 어디루 피하게. 귀동이 애비가 방금 자전거를 타구 주재소로 달려갔네.》

《내게 무슨 죄가 있다구 숨어요. 나는 아무 죄두 없어요.》

인삼이 아버지의 무뚝뚝한 대답이였다.

《답답한 사람아! 죄는 만들기마련이야. 임자가 법을 냈나? 죄라는건 법을 낸 놈들이 만들기마련이란걸 왜 모르나?》

《잡아가겠으면 잡아가구 죽일테면 죽이라지요. 내 처지에서 더 살아서 뭘 하겠나요.》

인삼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벼짚단우에 펄썩 주저앉는것이였다. 이러는 사이에 집달리는 토방기둥과 방안에 있는 의농이니 상자니 함지니 인삼이가 자작 만든 책상이니 돌아가면서 모조리 붉은 딱지를 붙였다. 그자의 마음으로는 더 붙이고싶었으나 붙일만한 물건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붉은 딱지를 다 붙이고난 집달리는 큰 승리라도 한듯한 기분으로 자전거를 타더니 어데론가 사라졌다.

대원수님께서는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도 모르고 땀을 흘리며 산에서 나무를 하고있을 인삼이를 생각하시니 가엾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려고 하시는데 최돼지와 하시모도가 나타났다.

《이놈입니다, 이놈.》

최돼지가 인삼이 아버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하자 하시모도는 다짜고짜 포승줄을 꺼내더니 그를 결박하는것이였다.

《내게는 아무런 죄도 없소!》

인삼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묶이우지 않으려고 반항하였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여보시오. 우리 인삼이 아버지에게 무슨 죄가 있다구 잡아가려구 해요.》

인삼이 어머니는 이렇게 부르짖다싶이하며 하시모도에게 달려들었다.

《저리 비켜!》 하며 하시모도는 인삼이 어머니를 발길로 힘껏 차던졌다. 인삼이 어머니는 그자리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먼지를 털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하시모도에게로 달려들려고 하였다. 하시모도는 재차 인삼이 어머니를 발길로 차려고 하였다.

이때에 대원수님께서 하시모도의 앞을 콱 막아나서시였다.

《이 어머니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구 발길질을 하면서 야단이요!》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대드시자 둘러서고있던 마을사람들도 몇명 우르르 앞으로 밀려나왔다. 하시모도는 대원수님과 마을사람들을 한눈에 쑥 둘러보더니 《임자는 누구야?》 하며 대원수님을 쏘아보는것이였다.

《이 마을에 사는 학생이요!》

대원수님께서는 하시모도를 마주 노려보시며 큰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하시모도는 더는 뭐라고 수작을 하지 못했다.

이때 원삼이가 어디서 몽둥이를 집어다가 아버지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이미 포승줄에 묶이워있었다. 원삼이를 바라보시는 대원수님의 가슴은 후비는듯이 아프셨다.

이무렵에 산에 갔던 동무들이 내려왔다. 자기네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것을 본 인삼이는 지게를 낟가리앞에 벗어놓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그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생각이 인차 떠오르지 않으셨다. 그냥 목이 메이고 가슴이 답답하실뿐이였다.

인삼이는 마당에 우뚝 서서 놀라운 시선으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하시모도놈에게 끌리여 조촌쪽으로 나가고있었고 치마자락과 저고리에 흙먼지가 가득 묻은 어머니는 주저앉아서 가슴을 치며 울고있었다.

《이놈들아, 왜 죄없는 사람을 잡아가는거냐. 엉? 이놈들아…》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켜세우려고 하였으나 그는 일어서려고 하지 않고 계속 통곡하고있었다.

《저놈이 왜 우리 아버지를 잡아가나요?》

인삼이는 둘러서있는 마을사람들을 바라보며 목메인 소리로 물었다.

《걱정말아라. 죄없는 사람을 붙들어다가 징역살이야 보내겠니?》

룡강집할아버지의 말이였다.

인삼이는 아버지가 끌려가는 조촌쪽으로 달려갔다. 그의 아버지는 벌써 동구밖을 지났던것이다.

《아버지!》 하고 인삼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며 어서 들어가라고 턱으로 시늉을 했다. 병과 가난에 허덕이며 몹시 파리해진 아버지가 놈들에게 끌려가서 고역을 겪을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인삼이는 그자리에 우뚝 서서 아버지의 뒤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한걸음, 두걸음 점점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어쩐지 다시는 보지 못할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흔들어놓았다.

어느덧 인삼이 아버지의 모습은 감실감실 보이더니 사라지고말았다. 인삼이는 길옆에 펄썩 주저앉아 땅바닥을 치며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조촌공사장으로 짐을 나르는 자동차가 지나가며 먼지만 들씌우는것이였다. 그러나 인삼이는 그냥 목놓아 울고있었다.

이때에 인삼이의 어깨에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대원수님께서 그를 부축하셨던것이다.

《그만하구 일어나라. 운들 무슨 소용이 있니?》

인삼이는 머리를 들어 대원수님을 쳐다보았다. 다른 동무들도 대원수님의 곁에 와있었다.

《성주, 난 이젠 어떻게 살아가면 좋아?》 하며 인삼이는 대원수님의 가슴에 와락 안기는것이였다.

《걱정말어! 그놈들이 너의 아버지를 붙들어갔지만 징역은 보내지 못해. 그리구 너의 아버지는 그놈들앞에 굴하지 않을거야. 오늘 집달리놈이랑 최돼지놈하구 싸워서 너의 아버지가 이겼단다.》

이 말씀에 인삼이는 머리를 쳐들고 눈을 번쩍 떴다.

《돈과 권력이 없어서 순사놈에게 잡혀가기는 했지마는 너의 아버지는 승리자란 말이야.》

대원수님께서는 방금 벌어진 사실을 간단히 이야기하셨다.

《그러니 울어서는 안돼. 어서 마을로 들어가자!》

동무들은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마을로 돌아왔다. 인삼이네 뜨락에는 아직도 남정들이 모여서서 이야기들을 나누고있었다. 그들은 최돼지와 순사놈 그리고 집달리놈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삼이네 살림이 앞으로 더 딱해지게 됐는데 우리들이 좀더 도와주어야겠어. 오늘 달도 밝은데 저녁에 군사놀이하는셈치구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한단씩 더 해오는것이 어떠냐?》

《응! 그렇게 하자. 그게 좋겠어. 한단씩이야 잠간 하지 뭐.》

윤병이가 먼저 이렇게 대답하자 모두 찬성해나섰다. 동무들은 아까 지고온 나무들을 낟가리에 가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달은 낮처럼 밝은데 동무들의 노래소리는 골짜기를 쩡쩡 울렸다.


× ×


인삼이 아버지는 주재소에 붙들려갔다가 아흐레만에야 놓여나왔다. 하시모도란 놈은 하루에도 몇번씩 인삼이 아버지를 류치장에서 불러내다가 《공무방해죄》니 《공무원구타죄》니 하면서 때리고 차고 밟고 하였다. 그러나 인삼이 아버지는 한본새로 대답하였다.

《난 공무를 방해한 일도 없고 공무원을 때린 일도 없소. 토방우에 서있는 나를 아래로 잡아끌기에 넘어지면서 집달리인가 하는 사람을 좀 다쳤을뿐이요. 그것을 어떻게 〈공무원구타죄〉라구 말할수 있겠소.》

《그럼 왜 차압증을 붙이지 못하게 했는가?》

《난 최가놈에게서 30원을 가져다쓰고 벌써 50원을 물었소. 그리고 그놈은 우리 땅을 공짜로 빼앗은 도적놈이요.》

《나쁜 놈같으니. 그래서 최선생을 때렸는가?》

하시모도는 격검대로 두들겨패며 호통을 쳤다.

《난 그자를 때린 일이 없소. 그자가 먼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것을 주먹으로 막았을뿐이요.》

하시모도는 인삼이 아버지에게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죄명을 씌워보려고 하였으나 씌울만한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며칠후부터는 신작로에 돌무지와 홈타기 그리고 못판묻기를 누가 했느냐고 강박하기 시작했다. 인삼이 아버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사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이리하여 하시모도는 인삼이 아버지를 놓아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날은 해질무렵부터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땅거미내릴무렵에 마을에 돌아온 인삼이 아버지는 자기네 집이라고 찾아갔으나 집은 괴괴하고 문에는 눈에 익지 않은 엄청나게 큰 자물쇠가 굳게 잠겨져있었다. 모든것이 끝장이 났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는 뜨락에 우뚝 서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눈은 소리없이 계속 펑펑 내리고있었다. 어둠에 잠겨가는 고향마을을 둘러보는 그의 마음은 처량하고 울적하기 그지없었다. 어둠속에 마을이 잠기듯이 자기의 가슴속에서마저 고향이 사라지지나 않을가 하고 생각하니 한없이 서글퍼졌다.

이때에 어디선가 《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인삼이가 나타났다. 그는 어느덧 아버지의 품에 안겨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삼이 곁에는 대원수님께서 서계시였다. 인삼이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인삼아! 내가 돌아왔는데 울기는 왜 우냐? 어서 눈물을 걷어라.》

그는 한참만에야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대원수님께서 인삼이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서시며 인사를 드렸다.

《지난날 선생님께서 겪은 고초에 비하면 나야 아무것도 아니지. 하기야 이렇게 살아온게 다행이기는 하지만…》

《마을에서는 아저씨때문에 모두 걱정들을 하고있었어요.》

《고마운 일이지. 허나 집을 그놈들에게 빼앗기구말았구나.》

인삼이 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쉬였다.

인삼이는 그제야 얼굴을 들고 이야기하였다.

《농하구 책상하구 함지는 귀동이네가 실어갔구 집은 당장 내라고 호통을 쳐서 다 내주었어요. 그리구 나하구 원삼이는 교감선생님네 집에 있구 어머니는 덕범이네 집에 가있어요.》

이 말을 들은 인삼이 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오막살이 한채마저 빼앗기고 세식구가 이집저집에 나누어있다는것을 생각하니 마을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만 호주로서 자기가 꼭 해야 할 의무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강한 느낌이 치솟아올랐다. 그러면서 자기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처럼 가난하게 살게 되였는가를 통절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알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넌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냐?》

그는 이미 결심을 짓고있는터였지만 안해와 아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서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가 나오시기만 기다리고있었지요 뭐.》

《그러냐?…》

인삼이 아버지는 《후》 하고 깊은 한숨을 지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함박눈은 계속 내리고있는데 어디선가 밤새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래일 새벽에 여기를 떠나자.》

아버지는 이미 류치장에서 결심한바대로 이렇게 말했다.

인삼이네는 대대로 칠골에서 살아왔다. 그의 선조들의 무덤이 여기에 있고 그가 나서자란 곳이 바로 여기이며 아이들이 자라고있는 곳도 칠골이였다. 그러나 그는 정든 이 땅을 떠나야만 하였다.

《래일이요?》

인삼이의 놀라는 목소리였다.

《꾸물거릴게 있냐. 곧 떠나는게 좋겠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곡산 두무동에 저애 5촌네가 살구있는데 그리로 가는수밖에 없지. 지주도 순사도 없는 세상에 가서 단 하루라도 살아보았으면 좋겠구나…》

《거기는 뭐 지주나 순사가 없나요?》

《거기라구 없기야 왜 없겠나? 그러나 산판을 일구구 부대긁이를 해먹는 심심산골이니까 몇해동안은 농사군이 부쳐먹을수 있다는거다. 거기에 가보구두 시원치 않으면 간도로라두 들어가야지…》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에 마을사람들이 그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삼이 아버지를 둘러싸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느냐고 하면서 최돼지와 순사놈들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저마다 인삼이 아버지를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끌었다. 그러나 인삼이 아버지는 룡강집할아버지네 사랑방에서 잠시 쉬다가 새날이 들면 가족을 데리고 길을 떠나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고향을 그렇게 쉽게 떠날수 있겠느냐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인삼이 아버지의 결심이 굳어졌다는것을 알게 되자 떠나도 며칠 지나서 천천히 떠나거나 밝은 낮에 떠나지 새벽에 떠날것이야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인삼이 아버지는 울먹이는 소리로 떠듬거리며 이야기했다.

《밝은 낮에는 조상들의 무덤도 보이겠지요? 내가 살던 집도 보일것이구. 그리구 최돼지 그놈네 집도 보일것이구요. 이 모든것이 보이지 않는 이른새벽에 떠나구싶어서 그럽니다.》

인삼이 아버지의 목메인 이 말을 듣는 마을사람들도 눈물을 머금었다. 그들은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이날밤 마을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남정들은 룡강집할아버지네 사랑방에, 아낙네들은 덕범이네 집 그리고 학습반동무들은 모두 대원수님의 방으로 모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삼이네 일을 자기네들의 일처럼 가슴아파하였고 서로 헤여지게 된것을 서글퍼하였다.

학습반동무들은 대원수님의 방에서 인삼이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몸은 서로 헤여져있으나 마음만은 언제나 함께 있자고 하였고 오래오래 잊지 말고 서로 편지도 자주 하고 앞으로 꼭 다시 만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쓸쓸한 노래도 불렀다. 노래는 어느덧 합창으로 되였다.

《야! 이렇게 쓸쓸한 노래들이나 불러서 되겠니? 인삼이네 원쑤갚을 얘기들이나 해보자!》 하고 윤병이가 말했다.

동무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최돼지에 대한 증오와 욕설로 화살이 돌려지게 되였다. 이때에 덕범이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후닥닥 일어서서 앞문을 열더니 목을 밖으로 내밀고 사위를 둘러보는것이였다. 그는 문을 닫고나서 학교에서 공부시간에 하듯이 동무들을 둘러보며 한손을 척 드는것이였다. 동무들의 시선은 일제히 덕범이에게로 쏠렸다.

덕범이는 동무들곁으로 다가앉으며 소곤소곤 이야기하였다.

《우리 오늘밤에 최돼지네 집에 불이라두 지르지 않겠니? 인삼이네 집을 빼앗았는데 그놈네 집을 하늘로 날려보내자꾸나.》

《응! 그게 좋겠다.》

《아주 멋진 생각을 했는데!》

동무들은 모두 덕범이의 의견에 찬성해나섰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만은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나보구 하라면 혼자라두 당장에 가서 불을 지르겠다. 10년묵은 갈낟가리에 불을 지르면 안채는 물론이구 사랑채까지 눈깜박할 사이에 하늘로 날려보낼수 있어. 밤엔 속잠뱅이만 입구 나서면 보이지두 않는거야.》

덕범이는 벌써 자기에게 과업이 떨어지기라도 한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망을 든든히 세워놓아야 해. 난 조촌쪽에 가서 망을 서겠다.》 하고 경만이도 성수가 나는 모양인지 벌써 엉거주춤하니 일어서서 대원수님의 대답만 기다리고있었다.

《불지르자는데 그럼 모두 찬성이구나?》

대원수님께서 동무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응! 나두 찬성이야. 남은 죽거나말거나 자기만 혼자 잘살겠다는 그런 놈은 한번 혼나봐야 되는거야!》 하고 윤병이가 대답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물론 대원수님께서도 덕범이의 말에 공감이 가셨다. 불지르는것보다 더 큰 그 어떤 복수라도 하고싶으셨다. 그렇다고 그런 일을 서뿔리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으셨다.

(불을 놓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신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인삼이 아버지가 일본순사놈에게 끌려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만일 최돼지네 집에 불을 지른다면 첫째로 의심받을 사람은 인삼이 아버지가 아니겠는가.

집에 불이나 지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것도 아닌데, 그에 대한 값은 몇배로 치르어야 할것이 아닌가? 그것은 인삼이네를 도와주고 원쑤를 갚아주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것으로밖에 되지 않을상싶었다.

그래서 대원수님께서는 머리를 좌우로 흔드셨다. 동무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대원수님의 말씀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집에 불이나 놓는다구 최돼지네가 망할줄 아니? 가난한 인삼이네 같은 집에서는 오막살이 한채만 빼앗겨두 못살구 쫓겨나게 되지만 최돼지네 같은 부자놈들은 기와집을 날려보내두 망하지 않아! 아마 지금 사는 집보다 더 큰집을 지어놓을게다.》

《새집을 지으면 또 불을 지르자꾸나. 제깟놈이 돈이 아무리 많아두 집을 지으려면 몇달 걸리겠는데 불이나 놓으려면 성냥 한가치면 그만이거든! 최돼지가 못견디나 우리들이 못견디나 한번 해보자꾸나.》

윤병이는 눈앞에 최돼지가 보이기라도 하는듯이 팔소매를 척척 걷어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최돼지네를 하나 망하게 했다구 하자! 그렇다구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이 잘살게 될줄 아니? 왜놈들을 우리 나라에서 다 쫓아내구 자기 배만 채우구 저만 잘살려는 최돼지같은 부자놈들을 다 없애야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거야!》

《그럼 최돼지네 집에 불놓는건 반대란 말이지?》 하고 덕범이가 물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셨다.

《야, 그럼 인삼이, 너네 원쑤를 갚지 못하구말겠구나.》 하며 덕범이는 인삼이의 목을 그러안는것이였다.

《덕범이, 넌 인삼이네 원쑤가 최돼지 한놈인줄 아니? 왜놈들과 우리 나라의 부자놈들은 다 인삼이네 원쑤구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원쑤야! 그 원쑤를 다 갚아야 하는거야.》

《그 많은 원쑤를 언제 다 갚을가?》

《그러기 힘들다는게지. 그렇다구 못할것은 아니야. 많이 배우구 우리의 힘을 기르구 그 힘을 합치면 되는거야.》

《빨리 어른이 될수는 없나? 어서 커서 그놈들을 모주리 족쳐보았으면 좋겠다.》

동무들의 이야기를 그저 듣고만 있던 인삼이의 말이였다.

《우리 서로 헤여지지만 앞으로 꼭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우자. 그러면 다시 만나게 될거야!》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밤이 퍽 깊어졌다. 동무들은 가끔 하품들을 하였다.

《자, 이제는 밤이 퍽 깊었는데 좀 자는것이 어떠냐?》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워야 잠두 오지 않겠는데 하루밤 앉아서 새우자꾸나. 언제 인삼이를 다시 만나서 이렇게 마주앉아보겠니. 야, 정말 인삼이, 너 래일은 떠나야 하니?》

윤병이가 인삼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동무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하루밤이 아니라 며칠밤을 새운들 끝이 있겠니. 인삼인 래일 종일 걷겠는데 좀 자야 할거야.》

《난 괜찮아.》 하고 인삼이가 대답했다.

《정말 인삼이는 좀 자야겠구나. 그럼 자자.》

대원수님의 생각을 알게 된 윤병이는 먼저 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되자 다른 동무들도 모두 가지런히 누웠다.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 곁에 누우셨다. 달빛이 창문으로 밝게 비치였다.

이때에 아래방에서 명구의 쏘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명구가 혹시 잠꼬대나 하지 않는가 해서 반쯤 몸을 일으키시고 사이문문턱을 넘겨다보셨다. 밝은 달빛에 명구와 명구또래의 다른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알고보니 원삼이 얼굴이였다. 두 동무는 서로 꼭 붙안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원삼이는 아까 어머니를 따라 덕범이네 집으로 갔댔는데 그후에 명구가 집으로 데려온것이 분명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숨소리를 죽이시고 그들의 이야기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러나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는 그들의 말소리를 알아들을수 없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중단시키고싶지 않으셨다.

(누가 저 어린 가슴들에 쓰라림을 안겨주었단 말인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다시 자리에 누우셨다. 덕범이는 벌써 잠이 든 모양인지 쌔근쌔근 코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윤병이는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 품이 잠이 잘 오지 않는 모양이였다.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인삼이와 지내던 가지가지의 잊을수 없는 사실들이 그림극처럼 나타났다.

인삼이를 만난것이 그리 오랜 기간도 아니건만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는가? 귀동이의 자전거를 밀어주고 그놈앞에서는 할 말도 못하는것으로만 알고있던 그가 동무와 원쑤를 분간할수 있게 되였고 원쑤를 반대해서 싸워야 한다는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는가. 같이 공부하고 함께 왜놈들과 싸우자고 굳게 맹세한 동무가 아니였던가! 그런데 이제 날이 밝으면 그와 헤여져야 하는것이다. 인삼이는 앞으로 어디로 갈것이며 어떻게 될것인가?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정방산에 갔을 때 혼자 숨어서 무우쪽을 먹던 인삼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가위날 만났던 장쇠의 얼굴도 나타났다. 인삼이와 장쇠의 운명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런 기구한 운명에 처해있는 아이들이 우리 나라에 그 얼마나 많겠는가! 대원수님께서는 요즘 어느 하루도 인삼이에 대한 생각을 잊으신적이 없으셨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학습반공부가 끝나기만 하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인삼이를 위해 나무를 해다주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보람이 없게 되지 않았는가. 인삼이네는 이제 새날이 들면 고향에서 떠나야 하며 정처없는 나그네의 길을 걸어야 한다.

(동무 하나를 건지구 도와주려다가 끝내 떠나보내구말게 되였구나. 우리들의 힘이 이렇게도 약하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께서는 마음이 몹시 서글프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다정한 동무에게 그 무엇이든 주고싶으셨다. 그러나 줄만 한것이 없었다. 옷이라도 한벌 주고싶었으나 단벌옷밖에 없으니 그러실수도 없으셨고 겨울내의라도 있으면 벗어주겠는데 그것도 없으니 주실수 없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책상서랍도 뽑아보시고 호주머니에 손도 넣어보시고 책꽂이도 살펴보셨다. 그러나 아무것도 줄만 한것이 없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가늘게 한숨을 지으시고 다시 자리에 누우셨다.

(가난이란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처럼 우정도 표시할수 없게 한단 말인가. 왜놈들과 부자놈들을 세상에 그대로 두고는 동무를 도와줄수도 없고 헐벗고 굶주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수도 없지 않은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니 자연히 두주먹이 불끈 쥐여지시는것이였다.

방안은 고요했다. 인삼이도 잠이 들었는지 모로 누운채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첫 닭의 울음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뜬눈으로 밤을 밝히신것이였다.

(벌써 새날이 들었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앞문을 바라보셨다. 문창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왔다. 날이 새고 닭이 우는것은 매일 있는 일이건만 이날만은 어쩐지 그것이 가슴을 후비는것만 같으셨다.

이때에 대원수님의 바로 곁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삼이의 울음소리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몸을 한번도 뒤척이지 않기에 잠든줄 알았는데 종시 잠을 들지 못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인삼아, 너두 잠들지 못했댔구나.》

대원수님께서 인삼이 어깨에 손을 사뿐히 대시였다. 그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있었다. 인삼이는 대원수님의 손을 꼭 붙잡는것이였다.

《벌써 닭이 우누나.… 난 이젠 떠나야겠어.》

인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그러나 원삼이는 아직 명구와 서로 부둥켜안은채 쌔근쌔근 자고있었다. 외삼촌어머님은 벌써 부엌에 나가 아침을 짓고계셨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윤병이 어머니가 찾아왔다. 그는 학습반동무들의 조반을 지어놓고 데리러 왔다는것이였다. 외삼촌어머님이 집에서 인삼이와 그의 동무들의 아침을 짓는다고 하였으나 윤병이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명구와 원삼이도 같이 가야 한다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명구와 원삼이의 얼굴들을 들여다보셨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다. 원삼이는 무슨 좋은 꿈을 꾸고있는지 입술을 약간 움직이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꿈속에서는 원삼이에게도 웃음과 기쁨이 있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계속 그들의 얼굴을 지켜보셨다.

그들은 지금 아무 근심과 걱정도 없고 힘들고 무서운것도 모르는 순간이였다.

그러나 잠에서 깨여나기만 하면 원삼이는 정처없이 먼길을 떠나야 하고 명구는 가장 다정한 동무를 떠나보내야 하는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가늘게 한숨을 지으셨다.

(천진스러운 이 어린 가슴에 무엇때문에 불행과 쓰라림을 안겨주어야 하며 눈물과 고통을 주어야 한단 말인가?!

행복하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면서 마음껏 배우고 마음껏 뛰놀게는 해줄수 없단 말인가? 이들에게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희망과 웃음을 꿈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속에서는 안겨줄수 없단 말인가? 눈물과 불행속에서 저렇게 자라고 한숨과 고통속에서 허덕이다가 죽는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더구나 조선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그럴수는 없다. 결코 그럴수는 없어!)

대원수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시는데 인삼이가 자기 동생을 흔들어깨웠다. 명구도 벌떡 일어났다.

간밤에 온 눈은 산과 들과 지붕을 하얗게 덮었다. 올망졸망한 짐들을 이고진 인삼이네 네식구는 먼동이 터올무렵에 칠골에서 떠났다. 마을사람들은 눈덮인 신작로까지 따라나오며 서글픈 심정으로 그들을 바래워주었다. 가다가 먹으라고 주먹밥을 만들어가지고 나와서 주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삶은 고구마를 싸가지고나와서 보자기에 찔러주기도 하고 가다가 엿이라도 사먹으라면서 백동전을 원삼이 주머니에 넣어주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고향을 하직하고 정처없이 떠나는 그들을 붙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떠날 사람들은 떠나야 할 길이였다.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작별인사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원삼이는 맨 뒤에 서서 연방 뒤만 돌아다보며 중얼거리였다.

《명구두 꼭 나오겠다구 그러더니 안나왔구나…》

《곤한데 나와서 뭘하겠니. 어제밤에 같이 자면서 실컷 얘기하구두 못다했니? 어서 가자!》

원삼이 어머니의 말이였다. 그러자 원삼이는 말없이 앞장에 서서 숫눈길을 헤치며 걸어나갔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과 함께 팔골등판에까지 따라나와 배웅하셨다.

얼마후에 명구가 숨이 차서 달려왔다.

《너 왜 이제야 오니? 난 안올라는줄 알았다.》 하며 원삼이는 명구의 어깨에 손을 척 올려놓는것이였다.

《이것땜에 인제야 왔어. 가면서 먹어라.》

명구는 종이에 싼것을 원삼이가 지고가는 작은 보따리에 찔러주는것이였다.

《그게 뭐야?》 하고 원삼이가 고개를 쓱 돌리며 물었다.

《누룽지야. 우리 어머니가 긁어주었어.》

두 어린 동무들은 서로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나 이것을 보는 인삼이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서들 들어가라우. 암만 가면 끝이 있나 뭐.》

인삼이는 목메인 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대원수님의 손을 꼭 잡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떠듬거리며 이야기했다.

《몸 든든해서 공부 잘하구 동무들을 잘 도와주라우. 나두 이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똑똑히 알았어. 산골에 가서 농사를 짓건 뭘하건 그동안 성주한테서 들은 말을 잊지 않구 그대로 힘써나갈테야.》

인삼이는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고마워. 어디를 가나 우리들이 서로 맹세한걸 잊지 말자구. 앞으로 우리들은 꼭 다시 만나게 될거야.》

《알겠어!》

인삼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나무를 팔아서 갚기로 하고 룡강집할아버지에게서 돌려온 돈을 인삼이의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나무를 판 돈인데 가면서 로비에라도 좀 보태써라.》

인삼이는 그 돈을 다시 꺼내들고 어쩔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자기 어머니에게 드리며 뭐라고 속삭였다. 돈을 받아든 어머니는 입술을 실룩일뿐 한동안 뭐라고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대원수님의 손을 덥석 잡더니 눈물을 머금고 겨우 이렇게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이 돈을 사양하지 않고 받겠네. 그리구 이제는 우리두 지주란 놈이 어떤 놈이란것을 똑똑히 알았어. 나두 이제는 인삼이를 전에처럼 키우지 않겠어.》

《저걸 사람 만들어주느라구 그렇게 애썼구 같이 공부해보려구 밤낮 고생들을 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고향을 떠나구야말게 됐구만! 어딜 가나 인삼이랑 원삼이를 꼭 공부시키겠어! 산골이 돼서 학교가 없다면 야학이라는데라도 찾아서 꼭 공부를 시키겠어! 우리 아이들은 어딜 가나 님자를 잊지 못할거야. 부디 공부 잘하구 아버님의 뜻을 이어 큰일을 하라구!》

인삼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인삼이도 대원수님의 손을 부여잡고 울었고 원삼이도 울었다. 인삼이는 대원수님과 동무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으나 목이 메여 말을 할수가 없었다.

《가자! 아무리 붙들고 운들 끝이 있겠니?》

인삼이 어머니의 말이였다.

인삼이는 그냥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작은 보퉁이를 지고 눈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인지 조금 걷다가는 뒤를 돌아보며 우뚝 서군 하였다.

고개마루에 서있는 학습반동무들도 눈물을 씻으며 손을 계속 흔들었다. 그들은 인삼이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움직일줄 모르고 오래도록 고개마루에 서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날 많은것을 생각하셨다.

(아무리 돈밖에 모르는 욕심쟁이 최돼지라고 한들 이 추운 겨울에 앓는 사람과 어린이들을 집에서 내쫓을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시니 지주란것도 도대체 사람인가싶으셨다.

거마리가 남의 피만 빨아먹고 산다더니 지주라는것이 바로 농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거마리가 아닌가. 지주란 실지 하는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농민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밭과 논에서 피땀을 흘리며 일할 때 지주란 놈은 그늘만 찾아다니면서 놀고있지 않는가. 그러다가도 가을에 가서는 소작인들이 지은 곡식을 모조리 빼앗아가니 도대체 이 세상이 왜 그렇게 돼먹었는가. 지주가 땅덩어리를 만든것도 아니며 개간을 한것도 아니다. 실지 산을 일구고 돌을 굴려내고 나무뿌리를 캐내서 밭을 만들고 논을 푼 사람은 농민이 아닌가. 그런데 지주가 무엇때문에 소작료를 받고 돈을 남에게 잠간 빌려주었다가 그렇게 비싼 리자를 받는단 말인가. 거마리가 세상에 필요없듯이 세상에서 지주란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 도리여 그놈들때문에 불행과 한숨과 눈물만 짓게 되는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남의 등을 갉아먹는 지주라는게 없어야 한다. 왜놈과 지주는 한배속이다. 왜놈과 지주가 없는 때라야만 모든 사람들이 편안히 잘살수 있다. 왜놈과 지주, 지주와 왜놈, 이것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결국은 꼭같은 놈들이다. 왜놈과 지주를 없애야 사람들이 마음놓고 행복하게 잘살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왜놈과 지주를 우선 없애버려야 하겠다.

대원수님께서는 일기장을 꺼내시여 이런 느낌과 결심을 적어넣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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