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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회


38


대원수님께서는 호철이와 함께 아침공부를 하시다가 거의 시간이 되여서야 바삐 학교로 올라가셨다. 그런데 학교운동장 한편에서 학생들이 어깨성을 쌓고있었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겼거나 누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는것이 분명했다.

대원수님께서도 호기심에 이끌리여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셨다. 거기에는 윤병이, 덕범이들을 비롯해서 6학년의 여러 학생들이 모여있었는데 경만이의 이야기를 듣는 모양인지 그를 둘러싸고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두 있었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인삼이가 귀동이네 집으로 머슴살려 들어간대.》라고 덕범이가 눈이 둥그래서 대답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대원수님께서는 자못 놀라시여 이렇게 물으셨다. 경만이는 어느덧 대원수님의 곁으로 나서더니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어제 저녁에 내가 학습반에서 공부하고 돌아가는데 말이야, 귀동이 그자식이 어디서 쑥 나타나더니 인삼이가 자기네 집 머슴군으로 온다구 그러거든. 뭐, 자기네 말을 잘 안들어서 머슴군으로 끌어간다나? 그러구 나두 제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머슴군으로 끌어간다는거야. 그놈 나중엔 별수작 다하지 않니!》

《그래 인삼인 아직 오지 않았니?》 하시며 대원수님께서 동무들을 둘러보시였다.

《오지 않았어.》 윤병이의 대답이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따가 인삼이한테 똑똑히 물어보자.》

이러는데 공부시작종이 울렸다.

이날 공부가 시작될 때까지 인삼이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어느 하루도 지각이나 결석이 없던 인삼이가 나오지 않는것으로 보아 확실히 무슨 일이 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공부시간에도 인삼이에 대한 걱정이 문득문득 떠오르군 하셨다.

이날 인삼이가 학교에 올라온것은 두번째 시간이 방금 시작되였을 때였다. 그는 울다가 올라온 모양인지 눈가녁이 빨개져있었다.

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일제히 인삼이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너 왜 오늘 늦게 왔니?》 하고 윤병이가 먼저 물었다.

《집에 좀 일이 있었어.…》

《무슨 일?》

《차차 알게 될거야.》

인삼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대원수님께서도 아이들이 많은데서 따져물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경만이가 정통을 찔렀다.

《인삼이, 너 귀동이네 집에 가서 산단 말이 정말이냐?》

《누가 그따위 수작을 하던?》

인삼이가 이렇게 쏘아주자 경만이는 뒤통수만 쓱쓱 긁으며 얼굴이 빨개져서 허거프게 웃었다.

이날 오전공부가 끝난 후에 대원수님께서는 학교뒤산에서 조용히 인삼이를 만나시였다.

아무리 보아도 그에게 그 어떤 걱정이 있다는것이 얼굴에 나타났기때문이였다.

《너 무슨 걱정이라두 생기지 않았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인삼이는 입술을 깨물고 한동안 말없이 한군데를 노려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난 아무래두 학교에 다닐것 같지 못해.》 하고 대답하는 인삼이의 목소리는 매우 쓸쓸하게 들렸다. 그는 요즘 자기네 집에서 있은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칠골에 전기를 끌어오는 공사는 학습반원들의 투쟁에 의하여 적지 않게 지연되였다.

인삼이네가 부치는 밭에 말뚝을 꽂은것이 아무리 보아도 심상치 않아서 인삼이 아버지는 어느날 최돼지를 찾아가서 사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그 밭에 정미소를 짓겠다는것이였다.

《우리가 부치는 밭이라구는 그 밭 한뙈기밖에 없는데 그럼 다른 밭을 대신 주어야겠는데요.》

《답답한 사람아! 나더러 밭을 만들라는가. 없는 밭을 어떻게 준단 말인가. 새로 정미소를 차려놓으려니까 있는 땅두 좀 팔아야겠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랍니까?》

인삼이 아버지는 울상을 지었다.

《이 사람아, 내가 자네네 살림에 대해서 알게 뭐란 말인가! 나중엔 별 뚱딴지같은 수작을 다 하는구만. 세상에 땅을 가진 사람이 나 하나뿐인가?》

최돼지는 와락 성을 냈다.

《다른 땅이라면 몰라도 그 밭에 대해서 그렇게 할수 있어요?》하고 인삼이 아버지도 맞서 성을 냈다.

《야 이놈아! 그 땅이 뭐 어쨌단 수작이야. 그래 그 땅이 네 땅이란 말이냐?》

《우리가 무식한게 탈이였수다.》 하며 인삼이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지었다.

인삼이네가 부치는 그 밭은 인삼이네 할아버지가 개간해서 대를 물려가며 가꾸던 땅이였다. 그때는 산판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 자기네 땅으로 되기마련이였다. 그런데 왜놈들이 조선을 빼앗고 토지조사를 한다면서 세부측량을 하였는데 그때 최돼지는 일본놈들을 끼고 이 근방의 수많은 땅을 자기의 이름으로 측량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자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남들이 개간한 숱한 땅을 빼앗았다. 인삼이네 땅도 그렇게 되여 빼앗기고 울면서 겨자먹는 식으로 소작료를 물면서 부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최돼지는 왜놈들이 조선에 기여들어오는 바람에 갑작부자가 된것이였다.

《그런 덜된 수작을 하려거던 썩 물러가게! 나두 바쁘이.》

《가란 말 안해두 가겠수다.》 하며 인삼이 아버지는 발꿈치로 문을 《쾅》 하고 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갑자기 오한과 기침이 나서 최돼지네 안뜨락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이놈, 어디 얼마나 오래 기승을 부리나 두고보자!》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 며칠이 지났다.

인삼이네는 최지주네 마당에서 벼를 털었다.

논 천평을 부쳤는데 인삼이네 몫으로 벼 닷섬이 차례지게 되였다. 벼 닷섬을 조로 바꾸어 죽을 쑤어먹으면 명년봄까지의 식량으로는 이럭저럭 될수 있었다.

그런데 최돼지는 봄에 80원이던 빚이 100원으로 늘었다고 하며 벼를 모조리 빼앗았다. 그러면서도 아직 50원이 남았다고 하면서 그 돈은 언제 물겠느냐고 따지는것이였다.

《아니 우리 몫으로 돌아오는 밀두 창고루 다 들어갔는데 무슨 놈의 빚이 아직 50원이나 남아있단 말이요?》

인삼이 아버지는 약간 어성을 높여 따지듯 물었다.

《아 이 사람아, 밀을 들여갔기에 50원이 남았단 말일세. 벼 닷섬에 40원, 밀값으로 10원, 이래서 겨우 50원이 아닌가? 그러니 100원에서 50원을 제하면 얼만가?》

최돼지는 산판을 퉁기면서 눈을 번들거렸다.

《하여간 시재는 한푼도 없수다. 차차 벌어서 물지요.》

《벌어서 물다니? 당장 내놓아야겠네. 공장을 차려놓느라고 나도 옹급해서 그러네.》

《그건 너무합니다요. 글쎄 없는걸 어떻게 당장 뭅니까? 우리 살림형편을 알면서 그럽니까요.》

《너무하다니,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엉, 임자는 내 돈 아니면 벌써 죽었을 사람이야!》

최돼지는 이렇게 한바탕 늘어놓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제법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두 자네네 가긍한 살림에 대해서 노상 모르지는 않네. 나는 자네네 집 생각을 하면 걱정이 된단 말일세. 그래서 이렇게 하는것이 어떤가.》 하며 최돼지는 인삼이 아버지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인삼이를 내게 맡기게. 그애가 이제 공부를 한다면 얼마나 하겠나? 농사군은 제 이름자나 쓰구 가감승제나 할줄 알면 돼! 어차피 중학교에는 못보낼게 아닌가. 윤병이니 팔골아이들은 중학교에 간다구 절썩거린다데만 그 집들에서두 중학교에 붙이지 못해! 그럴바에는 어려서부터 기술을 배우는게 상수야. 우리 공장을 짓는데 내 집에 와서 일도 도와주고 공장을 지어놓은 후에는 기술을 배우게 하잔 말일세. 3년만 우리 집에 와있으면 돈 50원도 탕감해주겠네. 3년후에는 그애두 넉넉히 밥벌이를 할게 아닌가? 그때는 임자두 팔자가 늘어질게구. 우선 인삼이는 배불리 밥을 먹을수 있지 않겠는가. 허허허…》

최돼지는 마치 크게 생각이라도 하는듯이 이렇게 늘어놓으며 너스레를 부렸다. 그러나 최돼지의 본심은 딴데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나 말처럼 부려먹던 민서방이 이제는 나이가 많아져서 일을 못하게 되니까 어린 머슴군을 데려다가 민서방처럼 종신머슴으로 부려먹을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래 그런 대상을 톺고있었는데 마침 인삼이가 적당하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래서 최돼지는 인삼이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 집에서 살아갈수 없게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미소자리부터 거기에 정했던것이였다. 그리고 여름에 밀을 모두 다 빼앗고 이번에 벼까지 모조리 긁어간것도 그런 꿍꿍이속에서 나온것이였다. 그는 소작인들을 몹시 가난하게 만들고 손발을 꼼짝 못하게 얽어매야 자기에게 유리하다는것을 생활속에서 찾아낸것이였다.

그러나 최돼지의 이런 승냥이배속을 인삼이 아버지는 알리 없었다. 그는 최돼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머리가 뗑해져서 도무지 분간할수가 없었다. 진정 그렇게만 된다면 불행중 다행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대답할수는 없었다. 그는 가족들과 의논을 해보아야겠다고 하면서 똑똑치 않은 대답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저녁이였다. 인삼이네 집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이야기가 벌어졌다. 인삼이 어머니는 큰 글도 못하고 계속 빚에 쪼들리는것보다는 차라리 그편이 낫겠다고 하였고 인삼이 아버지는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있었다. 인삼이의 결심에 따라 이 문제는 처리될수 있게 되였다.

《네 생각에는 어떠냐? 실지로 가서 살아야 할 네가 좋도록 해야 할게 아니냐.》

인삼이 아버지의 말이였다. 인삼이도 역시 간단히는 대답할수 없었다. 다른 집이라면 형편에 따라 심부름군이건 머슴군이건 가리지 않고 갈수도 있겠지만 귀동이네 집으로는 가고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빚을 물지 못하고 그대로 두면 리자는 자꾸 늘어나서 명년에 농사를 또 짓는대도 모두 최돼지에게 빼앗기고말것이 아닌가. 그러니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우선 당장 먹을것부터 없지 않은가? 갈수도 없고 안갈수도 없고 참 딱한 형편이였다.

이렇게 생각하던 인삼이의 눈앞에는 동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원수님께서 창덕학교에 오신 후로부터 얼마나 즐겁고 보람찬 나날이 계속되였던가. 인삼이는 동무들과 떨어지고싶지 않았고 대원수님의 사랑과 보살핌속에서 떠나고싶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최돼지네 집으로 들어간다는것은 죽음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지는것 같기만 하였고 동무들을 배반하는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어떻게 하겠는지 이야기를 하려무나. 아무래두 내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수밖에 없을것 같구나.》

인삼이 어머니의 독촉이였다.

《동무들하구 좀 의논해보아야겠어요.》

《동무들?》 하며 인삼이 어머니는 아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럼 명구 형님한테나 물어보려무나.》 하고 말했다.

《예.》

《래일 만나서 잘 의논해보아라. 명구 형님의 생각이 우리 셋이서 의논하는것보다 나을게다.》

어제밤 이야기는 이상으로 끝났다.

오늘아침이였다. 인삼이는 일찌감치 일어나 우물길을 쓸고있는데 귀동이가 자전거를 타고 인삼이앞을 지나다가 자전거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그는 밑도끝도 없이 《너 우리 집으로 언제 오겠니?》 하고 묻는것이였다. 이 말을 들은 인삼이는 어쩐지 매우 불쾌하였다.

《내가 너의 집에 뭘하러 간단 말이가?》 하고 그는 귀동이를 흘겨보면서 툭 쏘아주었다.

《다 알아! 너 우리 집에 머슴군으로 오지? 우리 아버지가 벌써 다 말해주었어.》

《내가 무엇땜에 너네 머슴군으로 간단 말이가?》

《너네 우리 빚 못물었지? 그래서 머슴군으로 오는거야. 변소간이랑 외양간두 쳐내구 비오는 날 우리 금동이를 업구 학교에두 가구 부엌에 물두 길어와야 해. 너 진짜 공장에서 일하는줄 아니? 민서방은 어른머슴군이구 넌 새끼머슴군이란 말이야. 너 이젠 내 말 잘 듣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당장 쫓아낸다!》

이 말을 들은 인삼이는 화가 벌컥 치밀어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이자식! 뭐 내가 새끼머슴군이라구?》

인삼이는 와락 달려들면서 유들유들한 귀동이의 볼따구니를 한대 후려갈겼다. 그랬더니 귀동이는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나가 넘어졌다. 이윽고 그는 부시시 일어나더니 옷에 묻은 흙도 털 생각을 않고 《좋다. 이 새끼, 네가 나를 치누나! 내가 너따위 말라꽁이한테 못견딜줄 아니?》 하며 자전거를 넘어진채로 내버려두고 인삼이앞으로 마구 달려드는것이였다.

인삼이의 머리에는 왜놈이나 부자놈들앞에서 비굴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던 대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원삼이가 금동이를 박아주던것도 생각났다.

(이놈의 새끼한테 내가 져서는 안된다!)

이렇게 생각한 인삼이는 뽈을 차던 솜씨로 다가오는 귀동이의 배때기를 발바닥으로 힘껏 차던졌다. 그러면서 주먹으로 그놈의 볼따구니를 다시한번 갈겨댔다. 이바람에 귀동이는 배를 움켜쥐고 비칠거리며 두세걸음 물러서다가 쓰러졌다.

그는 죽는 시늉을 하더니 후닥닥 일어서서 자전거를 끌고 달아나는것이였다. 퍼그나 달아나서야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면서 《이 새끼, 너 두고보자.》 하고 주먹을 내흔들었다.

《볼테면 이제 보자꾸나.》 하며 인삼이가 다우쳐가자 귀동이는 자전거를 끌고 부리나케 달아나버렸다.

《흥! 산삼을 세뿌리나 먹었다구 우쭐거리더니 너두 허풍선이댔구나!》

인삼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인삼이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아침상을 들여오고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니 어쩐지 눈물이 쑥 나왔다. 가난하게 산다고 해서 사람을 그처럼 깔보는것이 여간 섧고 원통하지 않았다.

《아니, 너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있었니?》

인삼이 어머니의 놀라는 목소리였다. 인삼이는 밖에서 귀동이한테 들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굶어죽으면 죽었지 그놈네 집에는 절대로 못가겠어요.》

인삼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인삼이 아버지는 정신이 후닥닥 드는것 같았다. 최돼지의 검은 속심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놈이 설마 입술에 침을 바르고 달콤한 수작으로 그렇게 얼려넘길줄은 몰랐던것이다. 그는 뻔뻔스럽게 사탕발림을 하던 최돼지의 상통에 침을 뱉아주지 못한것이 분하기 짝이 없었다.

《네 말이 옳다. 하마트면 승냥이같은 그놈한테 깜박 속을번 했구나.》

인삼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인삼이 어머니는 인삼이가 귀동이를 두들겨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나무라지 않았고 또 겁나하지도 않았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최돼지가 불쑥 나타났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꼴이 귀동이한테 이야기를 듣고 달려온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이 매맞은 이야기부터 꺼내지는 않았다. 아들이 누구에게 매를 맞는다는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더구나 인삼이와 같은 가난한 집 아이한테 매를 맞는다는것은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최돼지였다. 그놈은 아들의 뺨을 갈기며 그런 아이한테 왜 맞고다니냐고 욕설까지 퍼붓고 오던 참이였다. 그런데 인삼이를 보니 가슴에서 불이 펄펄 이는것 같았다.

생각같아서는 인삼이를 엎어놓고 한참 두들겨주고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마을사람들의 눈과 입이 무서웠다.

《그래 인삼이를 어떻게 하겠나. 오늘은 결판을 내야겠네.》

최돼지는 가까스로 분기를 누르느라고 공연히 팔소매를 척척 걷어올리며 문턱에 걸터앉더니 담배를 꺼내 무는것이였다.

《인삼이는 굶어죽으면 죽었지 못보내겠쉬다.》

인삼이 아버지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못보내겠다? 좋네! 그거야 자네 아들이니까 자네 마음대로 하는수밖에 없지. 그러면 남은 돈 50원을 당장 내놓게!》 하며 최돼지는 손바닥을 인삼이 아버지 코앞에 내밀며 흔드는것이였다.

《돈이 없수다. 앞으로 천천히 벌어 물지요.》

《돈이 없다? 흥! 큰소리치는구나. 올챙이는 배때기나 믿는다는데 자네는 뭘 믿구 그러는가?》

《아무것도 믿는게 없수다. 그리구 큰소리는 누가 치는지 모르겠수다.》

인삼이 아버지는 여전히 딩딩한 태도였다.

《좋네좋아, 자네 배짱대로 실컷 해보게. 나두 내 배짱이 있다는것만 알아두게. 그리구 인삼이 너두 어디 며칠이나 사람을 그렇게 잘 치나 두구보자.》 하더니 최돼지는 밖으로 씽하니 사라졌다.

《저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것 같군요.》

인삼이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쩌겠소. 산 사람의 배야 째지 못하겠지.》

이때 눈이 둥그래서 인삼이 곁에 서있던 원삼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금동이네 하구 우리하구 쌈해보자는거나?》

《응, 싸우자구 그러는 모양이다.》

인삼이 어머니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자면 해보지 뭐. 금동이 그새끼는 나한테 못견디구 귀동이는 아까 형한테 꼼짝달싹두 못하던데 뭐. 아버지! 금동이네아버지한테 견디지?》 하고 원삼이는 입을 꾹 다물고 아버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것이였다.

인삼이 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고있다가 《견디지!》 하고 대답했다.

《그럼 됐어! 금동이 그 새낀 저네가 부자라구 우쭐대거든.》 하며 원삼이는 디그르르 눈알을 굴리는것이였다.

물끄러미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원삼이를 와락 끌어안더니 《아버진 앓기는 한다만 금동이 애비따위는 몇놈두 당해낼수 있다! 그런데 우린 돈이 없구나. 돈없는 사람들은 할 말두 하지 못하구 죽게만 마련이다.》 하고 말했다.

《우리는 왜 돈이 없나? 금동이네는 돈이 많다는데.》

이 말에는 대답할 말마디를 찾을수 없었다.

《넌 왜 우리 집처럼 가난한 집에 태여났니. 금동이네처럼 돈많은 집에 태여나지 못하구.》

인삼이 아버지의 서글픈 대답이였다.

《난 금동이 그새끼네 아버지보다 우리 아버지가 더 좋아, 씨―》

이렇게 말하며 원삼이는 아버지의 목을 꼭 끌어안는것이였다.

《그래?》 하며 인삼이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자기의 여윈 볼로 원삼이의 볼을 비비였다. 그의 두눈에는 눈물이 고이더니 어느덧 푸시시한 수염턱을 스쳐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눈물을 씻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것을 본 인삼이도 그의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여 아침상을 들여오기는 하였으나 누구도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들은 가난에 대해서 한탄을 하며 눈물을 머금을뿐이였다.

이리하여 인삼이는 오늘아침 학교에 늦어졌던것이였다.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는건 너 혼자의 생각이냐, 너의 아버지나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냐?》

인삼이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신 후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그거야 내 생각이지 뭐.》

《귀동이네 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네 말에 대해서 나두 옳다구 생각한다. 그런 놈과 어떻게 함께 살겠니. 그런데 학교엔 어떻게 해서든지 다녀야겠는데…》

《나두 학교에서 떨어지구싶지는 않어. 그런데 이젠 내가 일을 해야 되겠거덩! 아버지는 아파서 힘든 일은 못하구 당장 먹을것이 떨어졌는데 어쩌겠니? 내라두 일을 해야지. 나무라두 해다 팔면 살림에 조금이라두 보탤수 있을게 안야.》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큰 신작로로 매일아침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팔러 성안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달구지에 싣고가는 사람, 소바리에 싣고가는 사람, 지게에 지고가는 사람들이 아침이면 줄을 짓다싶이하여 지나가는것이였다. 거기에는 늙은이도 있지만 인삼이또래의 소년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사정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붙들고 가정형편을 묻는다면 모두 인삼이와 다를바 없을것이라고 생각되시였다. 그들모두가 학교문안에도 들어가보지 못했을것이며 먹고 살기 위해서 허덕이고있을것이 아니겠는가.

(그들모두는 고사하고 인삼이만이라도 무슨 방법으로 도와줄수는 없을가?)

이런 생각을 하시던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셨다. 그래서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교에 다니는걸 그만둘수는 없어. 우리들은 앞으로 왜놈과 싸워야겠는데 그놈들과 싸우려면 알아야 해. 배우지 않고서는 그놈들과 싸울수 없는거야. 그래서 이렇게 하는것이 어떠냐?》

《어떻게?》

《네가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학교에 다니면서도 나무쯤은 해올수 있지 않니?》

이 말을 들은 인삼이는 놀라운 눈길로 대원수님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그의 얼굴에서 읽을수 있었다.

《학교에 갔다와서두 저녁 늦도록 하면 나무 한짐이야 설마 못해오겠니. 그건 네가 결심하기나름이야.》

《꽤 그렇게 할수 있을가?》

《있지 않구! 그리구 우리 학습반동무들이 일요일같은 때 산에 놀러 가는셈치구 나무를 한짐씩 해다줄수두 있지 않겠니.》

《그렇게야 어떻게 하겠니.》

《못할것두 없어. 그러기 동무들이 좋다는게지. 내 동무들하구 의논해보겠다. 아마 그애들두 반대하지는 않을거야. 어떻게 하든지 우리 같이 배우도록 해보자.》

이날저녁에 대원수님께서는 학습반공부를 끝내신 후 인삼이만을 돌려보내고 다른 동무들은 잠시 기다리게 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네 딱한 가정사정을 이야기하시고나서 그를 도와주는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으셨다. 학습반동무들은 일치하게 도와주고싶어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었으면 좋겠는지를 몰라 안타까와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아까 생각하신대로 일요일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한짐씩 해다주는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하시였다. 동무들은 한결같이 찬성해나섰다.

이리하여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에게 나무를 할 도구들―지게니, 낫이니, 갈퀴들을 모두 준비하게 하고 다음 일요일 오후에 가기로 약속한 후 모두 돌려보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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