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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37


이날저녁 대원수님께서는 학습반을 끝내시고 동무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으시고 그들을 둘러앉히신 다음 신중한 어조로 물으셨다.

《너희들중에서 어제밤에 우리들이 한 일을 누구에게 이야기한 애가 있으면 말해봐라.》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누구도 말한 아이는 없지?》

대원수님께서 물으시자 모두들 이야기한 일이 없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덕범이만이 잠자코있었다.

《덕범이는 왜 대답이 없니?》

《난 우리 형님보구 이야기했어.》

이렇게 대답하는 덕범이의 목소리는 잦아드는것 같았다.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일제히 덕범이에게로 날카로운 눈총을 쏘았다.

《덕범이, 어디 말좀 해봐! 어째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자구 약속하구는 그 약속을 어겼니?》

대원수님의 엄한 목소리였다. 동무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달빛에 희끄무레하게 비치는 덕범이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러나 덕범이는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넌 어째서 그런 말을 마구 했는지 이야기하려마.》

윤병이의 독촉이였다.

《어제밤 집에 돌아가니까 우리 형님이 어디 갔댔느냐구 묻기에… 학습반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라구 했더니 거짓말 말라면서 명구네 집에 가보았는데 방마다 모두 불을 껐더라는거야. 그러면서 학습반을 마치구 못된 장난을 하러 돌아다니지 않았느냐구 바른대루 대라구 하지 않겠니. 그래서… 누구에게두 얘기하지 말라구 하면서 대강 이야기했어.…》

그는 울먹이는 소리로 띠염띠염 이야기했다.

《그래서 너의 형은 아무에게두 얘기하지 않았다구 생각하니?》

대원수님께서는 다우쳐 물으셨다.

《얘기하지 않았을거야.》

《네가 너의 형님에게 이야기했다는걸 나두 알구있는데!》

이 말에 덕범이는 놀라운 시선으로 대원수님을 쳐다보았다.

《우리들의 비밀을 새게 했구 약속을 어긴 덕범이를 어떻게 했음 좋겠는지 너희들 이야기해봐라.》

그러나 동무들은 어떻게 해야 좋겠는지를 몰라서인지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대원수님의 얼굴만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그럼 내가 한마디 하겠다. 우리들은 앞으로 왜놈들을 쫓아버리구 우리 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해서 싸워야 할 사람들이야. 어제 우리들이 돌무지를 쌓아놓구 자동차를 못가게 한것두 왜놈들이나 부자놈들을 반대하는 싸움이라구 하지 않았니. 나라를 찾는 큰 일을 하자는 사람이 비밀을 안지키구 약속두 안지키면 어떻게 되겠니. 누가 물어본다구 비밀을 척척 대준다면 만약에 놈들이 우리를 붙들어다 고문을 하면 무엇이나 다 털어놓을게 아니냐.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순사놈들에게 붙들려가서 몇번 고문을 받구서 조직의 비밀을 다 불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니? 숱한 사람이 다 잡혀갈게 아니냐. 그러기에 조직의 비밀은 생명보다 더 귀중한거야. 그런데 덕범이는 뭐냐? 어제밤의 비밀을 어제밤으로 드러내놓았구 어제밤에 약속한것을 어제밤에 어기지 않았니. 이런 아이를 어떻게 동무라구 믿구 어려운 일을 함께 할수 있겠니!

물론 덕범이에게두 좋은 점이 많다구 생각한다. 요즘에 와서는 동무들하구 쌈도 하지 않구 공부도 퍽 잘하게 되였구 몸을 아끼지 않구 힘든 일에 척척 나서구 또 이제두 자기 형님에게 이야기한것두 솔직하게 말한것은 좋은 점이라구 할수 있어. 그러나 덕범이는 어제 큰 잘못을 저질렀단 말이야. 비밀을 지키지 않구 약속을 어긴 이것은 내가 먼저 말한 좋다는 점에 비해서 더 중요하단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어겼으니 참 난처하지 않니. 그래서 나는 덕범이에 대해서 이렇게 하자고 생각한다.》

대원수님께서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시고 동무들을 둘러보셨다.

동무들은 모두 대원수님의 다음 말씀을 기다리고있었다.

《오늘부터 덕범이를 우리들이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우는 일에서 떼자구 한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언제까지 떼자는거냐?》 하고 윤병이가 물었다.

《그거야 언제까지라구 말할수 없지. 덕범이가 자기 잘못을 똑똑히 깨닫구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으리라구 생각될 때까지지.》

《자기 잘못을 깨달았다는건 뭘 보구 알아야 하나?》

《그거야 덕범이의 행동과 말하는것을 보구 알아야지.》

《내 생각엔 좀 과한것 같은데…》 하며 인삼이는 머리를 약간 기우뚱거렸다.

《과할게 없어. 잘못한것을 깨달으면 되겠는데.》

윤병이의 말이였다.

《그럼 그렇게 하는데 반대하는 아인 없지?》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 모두 어제밤에 모였던데로 가자. 덕범이는 집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는것이 좋겠다. 그리구 덕범이에게 한가지 더 이야기할것이 있다. 너희들두 똑똑히 들어둬라.》

대원수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덕범이가 만일 어제 우리들이 한 일이라든지 앞으로 우리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한다면 그때는 축구팀에서두 떼구 학습반에서두 떼구 우리들과는 손잡구 나가지 못한다는것을 알아두어라. 그렇지만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그것은 덕범이가 곧 자기의 잘못을 깨닫구 우리들과 같이 왜놈들을 반대하는 싸움에 나설것을 바란다. 덕범이 알만 하냐?》

그러나 덕범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만일 이때 달빛이라도 밝게 비쳤더라면 동무들은 그의 량볼로 흘러내리는 두줄기의 눈물을 보았을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이날은 곡괭이와 삽들을 가지고나오게 하셨다. 그들은 발걸음소리를 죽이고 어둠을 헤쳐 신작로로 나갔다. 어제만 해도 동무들은 돌무지를 쌓으면서 소곤소곤 이야기도 하고 휘파람도 간혹 불었는데 오늘은 한마디의 속삭임소리와 기침소리도 없이 숨소리를 죽여가며 재빨리 몸을 움직여나갔다.

전투가 방금 시작되였을 때였다. 조촌쪽에 있는 보초선에서 신호가 왔다. 뻐꾹새소리였다. 동무들은 재빨리 도구들을 걷어가지고 언덕너머로 달려가 몸을 숨기고 머리만 내놓고 신작로를 넘겨다보고있었다.

이윽고 조촌쪽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모두 자전거들을 탔는데 앞에 선 놈은 검은 양복을 입고 각반을 친것으로 보아 순사놈임에 틀림없었다.

동무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언덕에 착 붙어있었다.

순사놈들은 동무들이 숨어있는 언덕아래로 지나가며 일본말들로 지껄이고있었다. 걸걸거리는 목소리로 보아 거기에 최돼지도 끼여있는것이 분명했다.

어느덧 놈들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갔어! 제깍 내려가서 해치우자!》 하며 인삼이가 언덕아래를 내려다보려고 서둘렀다.

《가만있어. 그렇게 덤벼서는 안돼. 저놈들의 행동을 보구서 시작해야 돼.》

대원수님의 말씀이였다.

인삼이는 주춤거리며 서있더니 다시 언덕너머로 스적스적 걸어가는것이였다. 동무들은 그대로 숨어있었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아무 소식도 없지 않니. 아까 제깍 시작했더라면 벌써 절반은 했을건데.》하고 인삼이가 속삭였다.

《좀더 기다려보자. 무슨 소식이 있을거야.》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조금후에 큰 신작로쪽에서 보초선으로 와달라는 신호가 왔다.

《윤병이 네가 가봐라. 무슨 일인지 알아가지구 곧 와야 한다.》

《응.》

윤병이는 어느덧 언덕에서 뛰여내리더니 밭뚝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언덕에 숨어있는 동무들속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남포로 가는 신작로에 자동차가 불을 달고 나타나더니 쏜살같이 달리고있었다.

얼마후 윤병이가 달려왔다. 그의 련락보고에 의하면 놈들은 어제 돌무지를 쌓았던데까지 가서 이상이 없는것을 확인하더니 돌아와서 방금 최돼지네 집으로 모두 밀려들어갔다는것이였다.

《이젠 시작해두 될거야. 그놈들이 최돼지네 집으로 들어갔으면 또 밤새껏 술추렴들을 할거야.》

이러면서 인삼이가 다시 언덕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이바람에 윤병이와 다른 동무들도 따라내려가려고 하였다.

《좀더 기다려보자. 그놈들이 앉아서 한가하게 술추렴을 하진 못할거야!》

대원수님의 말씀이였다.

아니나다를가 보초선에서 고양이소리가 들려왔다. 신작로쪽에서 누가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그러더니 조금후에 자전거를 탄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아까 갔던 그놈들이였다. 이제는 별일 없으려니 생각하고 조촌주재소로 돌아가는것이 분명했다.

놈들의 그림자가 사라진 다음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을 데리고 신작로로 내려오시였다.

작업은 계속되였다. 동무들이 전투를 끝내고 마을로 들어온것은 밤이 퍼그나 깊어서였다.

돌아오는 길에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와 윤병이를 시켜 덕범이가 집에 돌아왔는가를 알아보고 오라고 부탁하셨다.

두 동무는 잠간사이에 덕범이네 집에 갔다오더니 방은 캄캄한데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토방에 덕범이의 신은 잡히지 않더라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시고 생각에 잠기시더니 동무들에게 몇가지 주의를 주신 다음 모두 돌려보내고 윤병이만 남게 하셨다.

《윤병이 나하구 같이 산에 올라가보자. 덕범이가 지금두 그대로 산에 앉아있을지 몰라.》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셨다. 아니나다를가 덕범이는 아까 그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에게로 달려가 그를 와락 품에 안아주고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셨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것은 동무의 결함을 고쳐주는데 좋지 않다고 생각하시였다.

《너 왜 내려가지 않구 아직까지 여기 앉아있니?》

대원수님께서는 아까 여기서 하시던 그 음성으로 물으셨다. 그러나 덕범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니? 우리들과는 말두 안할 작정이냐?》

《그런게 아니야. 너희들 먼저 내려가 자라우. 난 좀 있다가 내려가겠어.》

그는 역시 울먹이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지 말구 같이 내려가자. 이젠 밤두 깊었는데 너의 집에서 걱정하지 않겠니. 글쎄 이렇게 혼자 앉아있다가 승냥이라두 달려들면 어쩔셈이냐?》

대원수님께서는 아까보다는 무척 부드러우신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집에두 들어가구싶은 생각이 없어. 글쎄 너희들하구 떨어져서야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이가.》

덕범이는 겨우 이렇게 대답하더니 팔소매로 눈물을 씻는것이였다.

《야, 너 그럼 여기서 죽을 작정이댔니? 하하하…》

대원수님께서는 큰소리로 웃으셨다.

《죽기야 뭘 죽겠니, 조용한데 앉아서 좀 생각하댔지. 그런데 잘못한건 똑똑히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내가 잘못한걸 깨닫구 앞으로는 그런 일을 안할것이라구 동무들이 알아주겠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그 생각을 하댔니?》

《응…》

덕범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할게 없어. 잘못한걸 똑똑히 깨달았으면 앞으로 그런 일을 안하도록 단단히 결심하면 되는거야. 자, 그럼 내려가자!》

세 동무는 산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왔다.

《덕범이, 네게 한가지 숙제를 주겠는데 래일아침까지 나하구 윤병이하구 있는데서 대답을 해라.》

《그건 뭔데?》 하며 덕범이는 눈을 반짝였다.

《오늘저녁에 우리들이 앞신작로에 가서 무슨 일을 하구 왔는지 알아내란 말이야. 그걸 알아내면 네가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 애쓰구있다는걸 인정해줄테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신작로에 나가봐두 되지?》

《신작로에 나가봐두 좋구 동무들에게 물어두 좋다!》

《그럼 그거야 못알아내겠니?》

덕범이는 그제서야 히죽이 웃음을 지었다.

덕범이는 두 동무와 헤여진 다음 그길로 앞신작로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제 돌무지를 쌓아놓았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남포로 나가는 신작로까지 나가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자취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는 다시 돌아서서 조촌쪽으로 달려가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자취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것 참 이상한데?》

덕범이는 신작로복판에 우뚝 서서 잠시동안 량편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도무지 알길이 없었다. 동무들을 찾아가서 알아보는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리에는 《내 생각엔 좀 과한것 같은데.》 하고 말하던 인삼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라도 당장 인삼이네 집으로 찾아가서 알아보고싶었으나 밤중에 소동을 피우며 자는 아이를 깨울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는 하는수없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고말았다. 그는 잠자는 어머니를 흔들어깨워놓고 래일아침 밥을 지으러 나갈 때 꼭 깨워달라는 부탁을 하고 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는 일어나자바람으로 덕범이를 깨워주었다. 덕범이는 눈을 부비면서 먼저 인삼이를 찾아갔다. 인삼이는 아직 자던 모양인지 하품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네게 한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좀 대줄수 있겠니?》

《뭔데?》

《너희들 어제밤에 신작로에 나가서 무슨 일을 했니? 그걸 꼭 알아야겠는데 좀 대주려마.》

《그건 알아서 뭣하겠니?》 하며 인삼이는 시뜩해서 덕범이를 흘겨보았다.

《그걸 알아가지구 성주하구 윤병이한테 가서 이야기하겠어.》

《그건 난 모른다. 넌 나를 어떻게 보구 그딴 소리를 하니. 약속한 비밀은 생명보다도 귀하다는 말을 듣구두 그런 소리를 해? 흥! 그래서 신새벽부터 찾아왔댔구나. 얘얘, 그따위 싱거운 소리는 그만두구 어서 가서 아침먹구 학교에나 가자.

난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겠다.》

이러더니 인삼이는 팔다리를 몇번 놀려 운동을 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덕범이는 그의 뒤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볼뿐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그자리에 서서 동무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았다. 다른 아이라면 몰라도 인삼이만은 자기가 부탁하면 순순히 이야기해줄줄로 알고 제일먼저 찾아왔는데 도무지 붙어설수도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다른 아이들은 더할것이 아니겠는가.

이때에 덕범이의 머리에는 경만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경대에 가서 노래를 잘 불렀다고 《대포》연필을 상으로 받고 기뻐하던 그 모습을 그려보았던것이다. 덕범이는 분주히 집으로 돌아와서 《대포》연필 세개를 들고 경만이를 찾아갔다. 덕범이는 그에게 연필을 주면서 인삼이에게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아아, 그딴 소리는 하지두 말아라. 그런 비밀을 알아내려구 연필까지 가지구왔구나. 시시하다야.》

경만이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꽝 닫아버렸다.

덕범이는 난처하게 되였다. 제일 크게 믿었던 인삼이와 경만이가 그렇게 말하는데는 더는 다른 아이들을 찾아갈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만 생각되였다.

(결국 나만이 비밀두 지키지 못하는 멍텅구리노릇을 했구나!)

덕범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맥없이 발길을 돌렸다. 어쩐지 자신에 대해서 서글퍼지기만 하였다. 대원수님을 만날것조차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내가 잘못했다는걸 똑똑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런 숙제를 내주었댔구나.》

덕범이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날아침 대원수님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일찍 학교에 올라오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에게 덕범이를 불러오게 하시고 먼저 학교뒤산 참나무아래로 올라가셨다.

조금후에 윤병이가 덕범이를 데리고 올라왔다.

《덕범이, 너 어제밤에 준 숙제를 알아냈냐?》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알아내지 못했어.》

덕범이의 맥빠진 대답이였다.

《너 알아보려구 애두 써보지 않은것 같구나.》

《애를 안썼다구? 어제밤으로 신작로를 다 돌아다녔구 오늘 새벽부터 아이들을 만나러 갔댔는데두 알아내지 못하겠어.》

덕범이는 고개를 숙이고 발길로 돌멩이만 툭툭 차면서 오늘아침에 있은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넌 인삼이나 경만이를 어떻게 생각했니?》

《그애들은 다 나보다 나은 아이들이라구 생각했어.》

《좋아! 그걸 알았으면 됐어!》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가 확실히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있다는것을 짐작하실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새 과업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이때에 큰 신작로에서 자동차 한대가 짐을 가득 싣고 칠골로 접어드는것이 보였다. 공사판에 짐을 실어나르는 자동차였다.

《응, 자동차가 나타났다.》

윤병이가 이렇게 말하자 세 동무는 앞신작로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칠골학습반동무들이 대원수님의 곁으로 달려왔다. 자동차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왔던것이다.

속력을 놓고 달리던 자동차는 오리나무축동을 지나 씽씽 달리더니 갑자기 앞바퀴가 푹 박히더니 짐칸이 들리면서 멈춰섰다.

그바람에 차우에 산더미처럼 실었던 짐들이 앞으로 쏟아지면서 신작로와 옆도랑에 구겨박혔다.

신작로에 파놓은 깊은 도랑에 두바퀴가 빠져들어갔던것이다. 엊저녁에 그들은 자동차바퀴자리에 깊은 도랑을 파고 그우에 나무가지를 걸치고 흙을 덮어놓아 위장을 했던것이다.

자동차가 구겨박히는것을 본 동무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소리를 내여 웃거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야! 저겐걸 몰랐댔구나!》 하며 덕범이만이 주먹으로 넙적다리를 툭 쳤을뿐이였다.

이날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에게만 새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고 당분간은 왜놈을 반대하여 싸우는 일을 중지하게 하셨다. 매일 계속하는것보다는 얼마동안 끊었다가 놈들이 잊어버릴만한 때에 다시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셨기때문이였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덕범이는 조용히 대원수님을 찾아와서 자기가 맡은 과제를 다 수행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어디에 두었니? 그럼 가보자.》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함께 덕범이를 따라 메나골로 올라가셨다.

덕범이는 오리나무가 우거진 숲사이로 한참 올라가더니 수북이 쌓인 나무잎을 헤치는것이였다.

거기에는 퍼그나 굵고 긴 나무통이 있었는데 나무통에는 큰 못이 종종 꽂힌 판자가 붙어있었다.

《이걸 네가 혼자 만들었니?》

《우리 형님이 좀 도와주었어. 네가 하라는대로 말했더니 그런 놈들은 골탕을 먹여주어야 한다면서 어제밤에 나하구 같이 여기 나와서 만들었어. 그런데 판자에 못을 박아서 그대로 묻으면 안된다면서 이렇게 큰 나무통에 붙여놓았어.》

《판자만 묻으면 왜 안된다던?》 하고 윤병이가 물었다.

《판자는 가볍기때문에 앞바퀴에 못이 쿡 박히면 판자가 다이야에 붙어돌아간다는거야. 그러니까 앞바퀴들은 꿰뚫을수 있지만 뒤바퀴는 그대로 있을거라면서 이렇게 통나무에 붙여야 네바퀴를 다 꿰칠수 있다는거야.》

《응, 그것두 그럴듯하구나. 그럼 오늘밤에 우리 셋이서 이걸 가져다 묻자. 그리구 이 이야기는 우리 학습반 동무들에게두 이야기하지 말자. 우리 세명만 알고있으면 돼.》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가 비밀을 어느 정도 잘 지키는가를 아시기 위해서 이렇게 약속하신것이였다.

이날 학습반공부를 끝내신 대원수님께서는 두 동무와 함께 못판을 가지고 앞신작로로 나가 묻으셨다.

다음날도 역시 칠골로 들어오던 짐차는 짐을 가득 싣고오다가 다이야 네개가 모두 꿰졌다. 실었던 짐을 모두 내리고 네개의 다이야를 다 수리하다나니 이날은 하루종일 차를 신작로 한복판에 세워두지 않을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련달아 일어나자 순사놈들은 밤낮 칠골에 와서 살았고 이사람저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끌어가군 했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한 순사놈들은 마을사람들을 류치장에 가두지는 못했다. 놈들은 군경찰서에까지 보고를 했는지 말을 탄 순사놈들도 뻔질나게 칠골에 드나들었다.

이전같으면 벌써 최돼지네 집에서 술놀이가 여러번 벌어졌겠는데 요즘은 순사놈들이 와도 술판을 벌려놓지 못하는것으로 보아 벌벌 떨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동무들속에서는 누구도 비밀을 루설하지 않았다. 덕범이도 셋이서 한 일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느날 학습반원들을 모아놓으시고 덕범이가 그동안 한 일에 대하여서와 그가 자기의 잘못을 고치기 위하여 애써온데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시였다. 그리고 덕범이를 다시 왜놈을 반대하여 싸우는 우리 대렬에 넣는것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동무들은 모두 찬성하였다. 그리하여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를 다시 투쟁대렬에 넣는다는것을 선포하셨다.

이날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을 돌려보낸 후에 오래도록 책상앞에 앉으시여 깊은 생각에 잠겨계셨다.

왜놈들을 반대하는 싸움은 어른들만 할수 있는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잘 묶어세우기만 하면 능히 할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놀음놀이나 하고 창덕학교의 이름이나 날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하여 싸우겠다는 정신으로 동무들을 묶어세워야 하며 또 그렇게 넉넉히 할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옛날에도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싸움에 소년들도 용감히 나섰다는데 지금이라고 싸우지 못할 리유는 없지 않겠는가. 어려서부터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싸우는 그런 정신으로 자라야 어른이 된 후에도 더 잘 싸울것이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한사람이 열사람을 묶어세우고 열사람이 백사람을 묶어세우고 백사람이 천사람을 묶어세운다면 긴 세월을 두지 않고도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묶어세울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왜놈을 쳐부셔야 한다는것을 깨닫고 들고 일어선다면 오랑캐 왜놈들은 꺼꾸러질것이 아닌가.

우선 창덕학교에서부터 좋은 아이들을 그런 정신으로 더 튼튼히 묶어세워보자!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굳게 다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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