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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36


대운동회에 모였던 수백명 관중의 태도만 보아도 조선사람은 누구나가 다 왜놈들을 미워하고 조선을 사랑한다는것을 넉넉히 알수 있었다.

결국 왜놈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놈이란 최돼지와 같은 부자놈들이 몇명 있을뿐이라는것을 대원수님께서는 더욱 똑똑히 아실수 있었다. 그리고 대중의 압력으로 하시모도란 놈의 《중지명령》을 꺾어놓은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사람모두가 한데 뭉쳐 단결만 한다면 왜놈도, 그 어떤 놈도 무서울것이 없겠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하시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칠골에 낯모를 사람들이 여러명 나타났다.

그들은 누런 양복을 입고 다리에는 각반을 쳤는데 엄지발가락이 째진 쪽발이 지하족들을 신고있었다.

그들은 마을과 벌판으로 싸다니면서 세다리 달린것을 뻗쳐놓고 한눈을 지그시 감고 유리알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무엇을 부지런히 계산하기도 하고 긴 줄을 늘이고 거리를 재보기도 하였다.

마을아이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듯이 주런주런 따라다니며 낯모를 사람들이 하는짓을 눈여겨 살펴보았다.

아이들속에서는 여러가지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어떤 아이들은 귀동이네가 메나골을 자기네 땅으로 만들기 위하여 군청에서 데려온 측량쟁이라고도 하였고 어떤 아이들은 칠골앞으로 기차가 다니는 철길을 놓기 위하여 측량을 한다고도 하였고 어떤 아이들은 보통학교를 더 크게 짓기 위해서 측량을 한다고도 하였다. 그들은 모두 자기의 말이 옳다고 목에 피대를 세우며 우겨댔다.

《너희들은 몰라! 귀동이 그놈네 집에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서 측량을 하는거야. 귀동이 그자식이 그랬단 말이야.》

인삼이가 이렇게 말하자 더는 우겨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부터 길다란 전주와 구리줄 그리고 뚱단지들을 날라오기 시작했다. 인삼이는 자기의 말이 맞지 않았느냐고 뻐기였고 아이들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후에는 밭뚝과 논판에 말뚝들이 박히기 시작했다. 인삼이네가 부치는 밭에도 말뚝이 여러개 박혔다.

이렇게 되자 아이들은 인삼이를 공박해나섰다.

정말 인삼이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며칠후에 그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똑똑한것을 알수 있었다. 알고보니 조촌에는 왜놈들이 철도공장을 짓고 인삼이네가 부치던 밭에는 최돼지네가 큰 정미소를 짓는다는것이였다.

이런것을 아시게 된 대원수님께서는 팔도구에서 아버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것 같았다.

늦은 가을 어느날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른아침에 세 아드님을 데리고 압록강변으로 나와 산보를 하시는데 때마침 강으로 떼목이 떠내려오고있었다. 물줄기를 따라 천천히 떠내려가는 떼목우에서는 구성진 노래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노래소리를 들으시며 잔잔히 떠내려가는 떼목을 바라보고계셨다.

《아버지, 저 나무는 어디루 자꾸만 떠내려가나요?》 하고 영주동생이 물었다.

《신의주로 간단다.》

《거기가 저의 집이나요?》

《떼목네 집이야 백두산이지.》

《백두산은 저 우에 있다는데 왜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나요?》 하고 철주동생이 물었다.

《떼목두 말하자면 왜놈들한테 끌려가는거다. 왜놈들은 우리 나라의 보물들을 모두 저렇게 빼앗아간단다. 우리 나라 백두산에 있는 귀중한 재목들을 저렇게 빼앗아가는게 아니냐? 그놈들은 저렇게 떼목을 끌어다가 신의주에서 톱으로 켜가지고 제 나라루 실어간단다.》

《끌려가기 싫어서 저렇게 우나요?》 하고 영주동생이 물었다.

동생은 떼목트는 소리가 《삐걱삐걱》나는것을 아마 우는소리로 들었던 모양이였다.

《아마 그런가부다.》 하고 아버님께서는 서글프게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아버님께서는 철주와 영주 두 아드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왜놈들이 조선에 나와서 철도를 놓구 길을 닦구 공장을 세우구 수로를 째는것들이 모두 우리 나라에서 금은보화와 쌀과 재목들을 빼앗아가기 위해서란다. 하루라도 빨리 저놈들을 우리 나라에서 쫓아버려야 우리 조선사람들도 떳떳하구 행복하게 살수 있겠는데 그 일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구나!》

아버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철도공장이나 정미소를 세우기 위하여 전기를 끌어온다는것이 심상치 않게 생각되셨다.

어느날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보시다가 바람을 쏘일겸 밖으로 나와 뒤산으로 오르시는데 자재들을 운반하는 자동차가 먼지를 일구면서 신작로로 달려오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시였다.

이때에 칠골아이들이 거기에 나타났다. 그들은 모이면 언제나 끝없는 이야기가 벌어지군 했는데 이날도 역시 이야기들이 시작되였다.

그러나 오늘은 이전에 주고받던 이야기들과는 류다른 이야기들이였다.

칠골에 전기가 들어오는것이 좋겠는가 나쁘겠는가 하는 론쟁이 벌어졌다. 경만이는 전기가 들어오는것이 좋다고 하였고 덕범이는 자기네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나쁘다고 하였고 윤병이는 전기를 끌어오겠으면 끌어오고 공장을 짓겠으면 짓고 제놈들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공부나 하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서로 자기의 말이 옳다는것을 증명해보려고 목에 피대를 세우고 옥신각신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시여 윤병이의 똑똑치 않은 립장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윤병이, 너는 그럼 그놈들이 전기를 끌어와두 좋구 안끌어와두 좋단 말이냐? 그래선 안돼, 그놈들이 무엇때문에 전기를 끌어오는가를 생각해보란 말이야. 조선사람들을 밝은 세상에서 살게 하려구 전기를 끌어오는줄 아니?》

대원수님의 이 말씀을 듣던 덕범이는 신바람이 나서 한마디 덧붙여 말했다.

《너희들은 전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나 하면서 그러니? 전기줄에 몸이 한번 척 닿기만 하면 공동묘지에 간단 말이야. 자! 그래두 전기를 끌어오는게 좋으냐? 결국 전기는 써보지도 못하고 남먼저 공동묘지에 가기 쉽단 말이야.》

《지금은 전기를 못써두 앞으로야 쓸수 있을지 누가 아니?》

경만이는 이렇게 말하며 대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똑똑한 대답을 해달라는 눈치였다. 윤병이와 덕범이도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 경만이를 바라보시며 대답하셨다.

《그건 네 말이 옳다. 그렇지만 왜놈들이 어째서 여기루 전기를 끌어오는지 똑똑히 알아야 해. 그놈들이 칠골사람들이나 조촌사람들이 고와서 밝은 방에서 살아보라구 전기를 끌어오는게 아니란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윤병이는 한동안 생각하고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하기야 그놈들의 배속에 딴 꿍꿍이가 있을지두 모르지!》

《네 말이 옳아. 딴 궁리가 있단 말이야! 그놈들은 조촌에 철도공장을 지어놓구 거기서 기차방통을 더 많이 만들어가지구 우리 나라에서 쌀이니 재목이니 땅속에 가득차있는 보물들을 빼앗아가려구 그런단 말이야!》

《응, 그렇구나! 그런걸 귀동이 그자식은 일본사람들이 조선사람들을 위해서 전기를 끌어온다구 새빨간 거짓말을 했댔구나.》하고 경만이가 말했다.

《그런 부자집아이놈들이야 전기불을 켤수 있으니까 좋아할테지. 더구나 귀동이네는 전기를 끌어다가 정미소를 차려놓는다구 하지 않던. 정미소에서 조선농민들이 지은 벼를 찧어서 일본놈들에게루 보낸단 말이야.》

대원수님의 말씀이였다.

《그딴 놈의 공장을 만들지 못하게는 할수 없을가? 우린 땅을 떼우게 될지 모르겠거덩.》 하고 인삼이가 말했다.

《우리들이 꾀와 힘을 모으면 그놈들에게 골탕을 먹일수도 있구 잘하면 그놈들이 공장을 짓지 못하게 할수도 있지!》

《어떻게?》 하며 동무들은 대원수님의 두리에 쭉 둘러서는것이였다.

《그건 우리들모두가 잘 생각해보면 좋은 방법이 나올수 있어. 우리 다같이 생각해보자.》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의 꾀를 한번 시험해보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실뿐 자세한 방법은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동무들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였다.

《응! 이렇게 하면 되겠어!》 하고 덕범이가 먼저 동무들앞으로 쑥 나섰다.

《어떻게?》 하고 인삼이가 먼저 귀가 솔깃해서 물었다.

《신작로 한복판에 순응골 물웅뎅이만한 구뎅이를 파놓구 그우에 나무가지를 얼기설기 걸쳐놓구 말이야. 그우에 풍석을 척 깔아놓구 흙을 슬쩍 덮어두거덩. 그럼 그우를 자동차가 짐을 가득 싣구 지나가다가 풍덩 빠지면 멋이 있지 않겠니.》

이렇게 말하면서 덕범이는 자기딴에도 그럴듯한 생각을 했다는듯이 동무들을 둘러보았다.

《그 웅뎅이에 물을 가득 길어다 붓자꾸나.》 하고 인삼이도 한마디 말했다.

《그건 고양이목에 방울다는 격이야!》 하고 윤병이가 말했다.

《어째서 고양이목에 방울달기란 말이가?》 하고 인삼이가 성을 발끈 냈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장수라면 몰라두 우리들끼리 순응골 물웅뎅이같은걸 파려면 아마 한달두나마 걸려야겠는데 그놈들은 눈을 감구있다던? 귀동이 애비같은 놈이 보면 주재소에 고자질하기나 좋겠다.》

《그럼 넌 저놈들이 하는걸 그대루 내버려두잔 말이가?》 하고 이번에는 덕범이가 쏘아댔다.

《나두 그대로 두자는건 아닌데 함정은 안되겠단 말이야. 그런데 인삼이는 물까지 채우자는데 그렇게는 더구나 할수 없지 않겠니.》

윤병이의 이야기를 들은 덕범이와 인삼이도 더는 고집하지 못했다.

《그건 앞으로 더 생각해보기루 하자. 그렇다구 다른 아이들에게 묻거나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그건 여기 있는 우리들끼리만 생각하잔 말이야.》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들도 모두 왜놈들을 미워하는 생각이 많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들과 일년이 넘도록 함께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시니 매우 기쁘셨다. 그들과 함께 힘을 합치고 머리를 짜낸다면 왜놈들을 반대하는 투쟁도 넉넉히 해낼수 있을것만 같으셨다.

이날밤 대원수님께서는 학습반공부를 끝마치시고 동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셨다. 얼레빗같은 반달은 서산을 넘었는지 하늘에는 뭇별들만이 반짝이고있었다. 마을은 쥐죽은듯이 고요한데 성안으로 기차가 들어오는 모양인지 기적소리가 멀리서 들려올뿐이였다.

《얘들아, 우리 낮에 하자구 하던것을 지금 하는게 어떠냐?》 하고 대원수님께서 동무들에게 물으셨다.

《뭐 말이냐?》 하고 덕범이가 되물었다.

다른 아이들도 벌써 까맣게 잊어먹었는지 대원수님을 바라볼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너희들 벌써 잊어먹었구나. 저기를 봐라. 그러면 아마 생각날게다.》

대원수님께서 신작로쪽을 가리키셨다.

아이들은 그제야 알겠다는듯이 손바닥을 찰싹찰싹 치는것이였다.

《그런데 아무런 차비도 없이 당장은 할수 없지 않니?》 하고 윤병이가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필요없어.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우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되는거야.》

《그런 생각이야 누가 없겠니?》

《그럼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우겠다는 아이들은 나를 따라오너라.》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앞장에 서시여 신작로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학습반동무들은 한명도 떨어지지 않고 모두 대원수님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기분은 전투장에 나가는 병사들마냥 저으기 긴장되였다.

일행은 어느덧 신작로옆에 있는 밭뚝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돌무지가 여기저기에 쌓여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을 밭뚝에 앉게 하시고 말씀하셨다.

《자, 이제부터 우리들은 왜놈들이 전기를 끌어다가 공장을 짓구 조선사람들의 보물과 쌀을 빼앗아가려는것을 반대해서 싸워야 한다. 더구나 최돼지놈은 인삼이네가 부치는 땅에다 정미소를 지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인삼이네는 땅을 떼우고말게 아니냐. 농사군이 땅을 떼우면 어떻게 되겠니. 결국 굶어죽구말게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우선 그놈들이 전기를 끌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거야. 이건 군사놀이가 아니라 진짜 왜놈들과 지주놈을 반대하는 싸움이란 말이야. 이제부터 우리들은 여기 있는 이 돌들을 들어다가 신작로에 쌓아놓자. 그래서 우선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게 하잔 말이야. 자동차가 못다니게 되면 전기를 끌어올수도 없고 공장을 지을수도 없지 않니. 너희들 다른 의견들이 있으면 이야기해라.》

그러나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곧 큰 신작로쪽과 조촌에서 들어오는 두곳에 보초를 서게 하셨다. 보초들은 누가 나타나면 뻐꾸기소리를 하라고 일러주었다.

《자, 그럼 시작이다. 누가 제일 큰 돌을 굴려가나 내기해보자.》

대원수님의 구령이 떨어지셨다.

그들은 돌들을 굴려오기 시작하였다. 큰 돌은 두세명이 맞들어오고 언덕우에 있는 돌들은 신작로로 내리굴렸다. 잠간사이에 신작로 한복판에는 돌무지들이 여기저기에 쌓이였다.

《자, 오늘은 그만하고 돌아들가자. 그런데 너희들 오늘 우리들이 한 일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알겠지?》

대원수님의 말씀에 동무들은 긴장된 얼굴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왜놈들과 싸우는것은 어른들만 하는게 아니야. 아이들두 이렇게 왜놈들을 골탕먹일수 있단 말이야. 조선13도에 우리들같은 아이들만 해두 얼마나 많겠니. 그러니 우리 아이들 힘만 모아서 왜놈들과 싸워두 아마 대단할게다. 그렇지 않니?》

《응, 정말 그래!》

동무들의 대답이였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일찍 학교에 올라가신 대원수님께서는 운동장에서 노는척 하시면서 남포로 나가는 신작로쪽을 바라보고계셨다. 이윽하여 큰 신작로에 자동차 한대가 나타나더니 비석거리를 지나 칠골로 들어오는 신작로로 접어들었다.

《왔다. 왔어!》 하며 동무들은 소곤거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자동차만 바라보고있었다.

화물차는 어느덧 돌무지앞에 이르더니 우뚝 멎었다. 조금후에 운전사와 납작모자를 쓰고 각반을 친 왜놈이 운전대에서 내렸다. 왜놈은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더니 운전사에게 뭐라고 지껄이는 모양인지 단장으로 연방 마을과 공사장 그리고 돌무지를 가리키는것이였다. 그런데 운전사가 왜놈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모양인지 그는 단장을 머리우로 올려 운전사를 내리치려 하였다. 이때 운전사는 왜놈의 단장을 한손으로 잡아 빼앗더니 멀리로 집어던지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운전사는 운전칸으로 오르고 말았다. 땅딸보 왜놈은 운전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모양인지 운전대앞에서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더니 밭가운데 들어가 단장을 집어들고 귀동이네 집쪽으로 달려가는것이였다.

이윽고 최돼지와 왜놈이 밖으로 나왔다. 최돼지는 왜놈앞에서 연방 굽신거리더니 자전거를 타고 조촌쪽으로 달려가는것이였다.

《어때, 멋이 있지? 저런 놈들은 저렇게 골탕을 먹여주어야 하는거야. 운전사두 그럴듯한데!》

대원수님의 속삭이시는 말씀이였다.

《응! 멋이 있어! 오늘밤에는 큰 바위돌을 굴려다가 신작로를 아예 막아버리구말자.》 하고 인삼이가 말했다. 동무들도 모두 그러자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어느덧 아침공부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칠골학습반동무들은 교실로 들어가면서도 연방 신작로쪽을 바라보고는 서로 마주보며 빙긋이 웃었다. 공부시간에도 덕범이는 자주 창밖을 내다보다가 곁에 앉은 경만이의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뭐라고 소곤거렸다.

한시간 공부를 끝내고 나왔을 때에도 화물자동차는 신작로 한복판에 그대로 우뚝 서있었다. 그런데 조촌주재소에서 하시모도를 비롯한 순사놈들이 나와서는 왜놈과 최돼지놈과 같이 마을로 분주히 왔다갔다 하는것이였다. 하시모도는 모자줄을 턱에다 척 걸고 노상 우들거리며 이집저집으로 드나들기도 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다.

이날 신작로옆에 있는 몇집의 남자들과 동장이 주재소로 불리워갔다.

그러나 누구도 돌무지사건에 대해서 알지 못하므로 하는수없이 해질무렵에 돌려보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날저녁에도 학습반공부를 끝내고는 놈들과의 싸움을 계속하리라 생각하고계셨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대원수님께서 저녁상을 물리시고 산보를 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오시는데 덕범이 형 덕보가 대원수님을 찾아왔다.

《한가지 꼭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하며 그는 매우 말하기 어려워하는 눈치를 보였다.

《예. 말씀하시지요.》

《왜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야. 우리 농군들이 땀흘려 곡식을 지어놓으면 그놈들이 빼앗아간단 말이야. 그건 나두 알아! 그런데…》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지 못하는것이였다.

이 말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머리에 핑하고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덕보앞으로 급히 다가서시였다.

《그런데요? 말씀하세요.》

《그놈들은 칼자루를 잡구 우리는 칼날을 잡은셈이란 말이야. 그런데 헴없는 아이들끼리 그런 노릇을 하는것은 삼가야 하지 않을가?》

《그런 노릇이라니요? 무엇말인가요?》

《어제저녁에 그놈들의 차가 다니지 못하게 신작로에 돌무지를 쌓아놓은것 있지 않나. 그거 아주 멋진 일이기는 한데 만일 그놈들한테 들키는 날이면 어찌겠나? 그놈들은 지금 눈이 벌컥 뒤집혀서 날치는데 그러다가 큰일날것 같애.》

《누구한테 그런 말을 들었습니까?》

《우리 덕범이한테 피뜩 들었는데 다른 사람이야 물론 모르지. 하지만 낮말은 새가 듣구 밤말은 쥐가 듣는다구 혹시 그놈들의 귀에 들어가거나 눈에 뜨이면 좋지 않겠거던. 콩밥먹는 판이야!》

《어떻게 돼서 덕범이 형님이 그것을 아시게 됐는지 잘 모르겠구만요. 그런데 덕범이 형님은 그런 일을 나쁜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아니지! 왜놈들이 미운 생각을 해서야 그놈들이 하는 일을 모주리 두들겨엎구싶지! 그렇지만 우리네야 어디 힘이 있어야지.》

《한오리의 실은 약하지만 많은 실오리를 모아 바를 들이면 힘이 센 황소두 끊지 못하지 않아요? 가난한 사람두 힘을 모으면 강해지는거예요. 왜놈들이 무섭다구 벌벌 떨기만 하면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왜놈이나 부자놈들의 종노릇밖에 할게 없지 않나요?》

대원수님의 말씀을 들은 덕보는 대답을 못하고 가늘게 한숨만 짓는것이였다.

《덕범이 형님이 우리 밀마당질 오셨을 때 말씀하셨지요. 장대기로 하늘을 찔러서 비를 한번 오게 하구 죽으면 농민들이 가을에 덕범이 형님의 말이라두 하지 않겠느냐구요. 나는 그때 덕범이형님을 무척 훌륭한분으로 생각했어요. 자기가 죽더라도 남에게 좋은 일을 하겠다는 그 생각이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 조선사람들은 왜놈의 발꿈치아래서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습니까? 먹을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것을 입지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는것이 모두 왜놈들때문이 아니나요? 그런데 왜놈들은 조촌에 큰 공장을 짓구 우리 나라에서 보물과 쌀과 나무들을 빼앗아가려구 하지 않나요? 최돼지놈은 여기다 정미소를 세우고 우리 농민들이 지은 벼를 빼앗아다가 찧어서 일본으로 보내려구 해요.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둘수 있겠어요? 어른들이 그놈들을 반대해서 싸우지 않기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싸우는거예요. 그런데 덕범이가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우는것이 겁이 나서 그러는가요?》

대원수님의 말씀에는 힘과 정열이 넘쳐흐르는것이였다.

덕보는 한동안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니야, 겁날건 하나두 없어. 그런 보람있는 일을 하다가 죽어두 원이야 없지. 우리 덕범이두 왜놈들이나 부자놈들을 반대해서 제대로 싸운다면야 좋은 일이지. 그런 일에 덕범이두 나섰다면 난 아무 의견이 없어. 나두 오늘 성주한테서 많은것을 배웠네. 우리 덕범이두 사람구실하도록 잘 배워주라구.》

《배워줄게 있나요. 같은 동무들끼린데요. 그리구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물론이지, 그런 말을 누구한테 하겠나.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가 콩밥이나 먹을라구.》

대원수님께서는 덕보가 돌아간 후에 많은것을 생각하셨다. 그는 원쑤가 누구인지를 알기는 하면서도 그를 반대해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는데 잘 깨우쳐주기만 하면 그도 넉넉히 싸움터에 나설수 있는분이라고 생각하셨다. 몇마디 이야기하지 않는 사이에 자기의 부족점을 깨닫는데 아버님같으신분이 붙어서 가르쳐주었더라면 벌써 투쟁의 길에 나섰을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싸움의 길로 이끌어주는것은 꼭 어른이 되여야 하는것은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에 대해서도 이모저모 생각해보시였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그처럼 단단히 이야기했는데 그애는 어째서 그런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는가. 그렇다고 덕범이를 무턱 나쁜 아이로만 볼수는 없지 않는가. 비밀을 지키고 약속을 지키는것이 왜 필요한가를 몰라서 그랬을것이 분명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것을 똑똑히 깨우쳐주어야겠다고 속다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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