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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회


35


학교에서는 가을대운동회준비로 모두가 분주하였다. 학생들은 대운동회날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대운동회는 매해 가을마다 진행되여왔지만 이해 가을에는 다른 해보다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교감선생님을 비롯하여 전체 선생님들이 머리를 짜서 유쾌하고 흥미있는 대운동회 순서를 마련하였다.

그중에서도 대원수님의 발기에 의하여 대본이 만들어진 음악유희 《열세집》은 제일이라고 벌써부터 소문이 자자했다.

4, 5, 6학년 학생전원이 출연하게 되는 이 음악유희는 조선에 대한 노래로 13도의 특징을 재치있게 살려서 가사를 지었고 거기에 맞추어 곡과 무용을 붙인 재미있는 종목이였다.

《열세집》이 끝나갈무렵에 큰 액틀을 우로 올리는 역은 대원수님과 호철이가 맡았다.

손꼽아 기다리던 운동회날이 돌아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날 이른아침에 밖에 나오시여 날씨를 살펴보셨다.

날씨도 경사스러운 이날을 축하해서인지 높고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고 바람마저 잠들었다.

창덕학교 학생들은 한모양의 운동복과 운동모들을 눌러쓰고 이른아침부터 학교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함박웃음이 넘쳐흘렀다.

학부형들은 벌써 아들, 손자들의 손목을 잡고 학교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칠골과 팔골에서는 물론 근방마을에서까지 앞을 다투어 구경군들이 모여들었다.

더구나 지난해에 보통학교 아이들과 축구시합을 하여 창덕학교 학생들이 이겼다는 소문이 쫙 퍼졌기때문에 더 많은 구경군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던것이다.

이윽고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운동장으로 울려퍼졌다.

아이들은 재빨리 운동장 한복판에 정렬하여 줄지어섰고 학부형들과 구경군들도 운동장둘레에 모여섰다.

개회식이 시작되였다. 교감선생님이 단에 올라가 개회사를 하시자 뒤이어 민선생님이 경기에서 지켜야 할 몇가지 점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어느덧 흰 운동모와 붉은 운동모를 쓴 두패의 학생들이 나팔소리와 북소리에 발걸음을 맞추어 량편으로 갈라졌다.

드디여 경기가 시작되였다.

1학년 학생들부터 나와서 키순서대로 여섯명씩 조를 무어가지고 달리기를 하였다.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소리와 북소리, 응원가소리로 운동장이 떠나갈듯 하였다.

맨 처음으로 나간 여섯명조에 명구와 창수도 들어있었다. 명구는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 뒤떨어져 달렸지만 한아이, 두아이 앞서기 시작하더니 맨 나중에는 제일 선참으로 테프를 끊었다. 그리고 창수가 3등으로 들어섰다.

다음에는 조금 큰 아이들이 달리기를 계속하였다. 경기는 예견대로 흥미있게 진행되였다.

달리기로부터 시작하여 공굴리기, 눈감고달리기, 장애물극복경주, 높이뛰기, 너비뛰기, 기발꽂기, 뒤로달리기, 모두발뛰기 등 별의별 재미있는 경기가 다 있는가 하면 여럿이 나와서 하는 집단체조, 봉체조, 줄당기기 등 씩씩한 경기도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바늘귀꿰기도 있었고 할아버지들의 담배불붙이기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여러번 상을 받으셨는데 높이뛰기와 너비뛰기는 전교적으로 단연코 첫자리를 차지하셨다.

재미있는 순서들이 계속 순조롭게 진행되고있었다. 이날은 시간이 류달리 빠르게 가는것만 같았다. 어느덧 점심때가 가까와왔다.

노래소리와 응원소리는 계속 운동장을 떠들썩 흔들어놓았다.

학부형들도 모두 기쁜 얼굴로 아들딸들의 씩씩한 모습들을 보고 기뻐하며 하루를 즐기고있었다.

학생들마다 이날은 모두가 운동선수로 된듯 하였고 앞으로 모두가 큰 체육가라도 될듯한 씩씩하고 용감한 모습들이였다.

재미있는 경기들이 한창 진행되고있을 때였다.

조촌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큰 신작로쪽으로 가다가 창덕학교쪽으로 돌아서더니 분주히 자전거발디디개를 누르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조촌주재소에 있는 순사부장 하시모도라는 놈이였다.

하시모도는 교감선생님과 학부형회 회장과 그밖의 손님들이 앉은데로 오더니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러 대운동회가 있는것을 알고 나왔는지 아니면 지나가던 길에 들렸는지는 알수 없으나 흥겨웁던 분위기는 적지 않게 가라앉고 침울하고 불길한 공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저놈은 뭘하러 나타났누?》

《흥, 할 일이 없는 모양이지요.》

《할 일이 없으면 집에 들어가서 낮잠이나 잘게지 아이들 운동회하는데는 뭘 먹겠다구 얼굴짝을 내민단 말인가.》

《아이들이 노는것두 맘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지요.》

학부형들속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고갔다. 어쩐지 응원과 노래소리로 운동장을 들었다놓던 학생들의 목소리도 좀 낮아진듯 했다.

벌써 그것을 눈치챘던지 량선생님이 학생들앞으로 달려왔다.

량선생님이 응원대장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자 학생들은 다시 노래와 응원으로 기세를 올렸다.

얼마후부터는 순사부장놈이 있거나없거나 문제가 아니였다. 누구도 그놈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전경기의 마지막차례인 음악유희 《열세집》도 오래지 않아서 진행되게 되였다.

운동장에서 《사람찾기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열세집》준비를 책임맡은 큰 학생들은 운동장 한복판에 풍금을 들어다놓고 4, 5, 6학년 학생들은 의상과 소도구들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하였다.

드디여 음악유희 《열세집》이 시작되였다.

량선생님이 타는 풍금소리에 발을 맞추어 경쾌하게 차린 녀학생대렬이 운동장으로 사뿐사뿐 행진해나가기 시작하였다. 관중들은 박수를 보내면서 열광적으로 그들을 환영하였다.

한 녀학생이 황금나락이 물결치는 그림을 들고나와서 가벼운 률동으로 춤을 추며 돌아가자 그의 뒤를 따라 여러 학생들이 들판에 씨를 뿌리고 모를 심고 김을 매고 낟알을 거두어들이는 춤을 추면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춤이 고조를 이르게 되자 그림을 들고 춤을 추던 학생이 그림을 운동장 한복판에 걸려있는 큰 액틀에 달고 춤을 추며 들어갔다.

이렇게 첫 대렬의 춤과 노래가 끝나자 다음대렬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흰구름같은 수많은 양떼를 그린 그림을 들고나와서 양몰이처녀의 춤을 추며 돌아가면 그의 뒤를 따라 많은 녀학생들이 나와서 랑만과 희열에 가득찬 춤을 추면서 명랑한 노래를 부른다.

노래와 춤이 끝날무렵에 그림을 들고 춤을 추던 학생이 앞에 걸린 큰 액틀에 그림을 달고 춤을 추며 들어간다.

이렇게 하여 금은보화가 번쩍이는 지하보물을 그린 그림도 나붙게 되고 하늘을 찌를듯이 우거진 원시림을 그린 그림도 나붙게 되고 펄펄 뛰는 물고기를 그린 그림도 나붙게 되였다.

이러는 동안에 운동장 한복판에 걸려있는 큰 액틀은 굉장히 큰 조선지도모양으로 점점 그 모습을 갖추어나가게 되였다.

조선 13도의 특징을 표현한 그림들이 모두 나붙게 되면 훌륭한 조선지도로 될것이며 지도는 둥실둥실 우로 높이 올라가게 되며 지도에서는 찬란한 빛을 뿌리게 되는것이다.

이것을 보게 되면 관중들속에서는 요란한 박수와 환성이 터져나올것이였다.

량선생님은 풍금에 열중하였고 학생들은 노래와 무용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 높은 예술적기교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관중들은 약동적이면서도 향취짙은 예술적감화력에 심취되여 기쁨과 희망과 환희로 줄곧 가슴이 뿌듯했다.

바로 이때였다.

운동장을 노려보고있던 하시모도란 놈이 앞에 있는 책상을 《탕》하고 치며 뭐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곁에 있는 몇사람이나 들었을뿐 수많은 관중의 귀에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더구나 노래와 춤에 신바람이 난 학생들의 귀에는 들릴리 없었다.

량선생님은 계속 머리와 몸을 움직이며 흥겨웁게 풍금을 쳤고 학생들은 명랑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돌아갔다.

그러자 하시모도란 놈은 후닥닥 일어서더니 칼로 땅바닥을 구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음악유희를 중지하라는것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관중들은 흘금흘금 하시모도를 바라보며 《열세집》을 흥미있게 구경하고있었다.

량선생님 역시 하시모도의 목소리를 들었고 음악유희를 중지하라고 고아댄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풍금을 멈출수 없었다.

밤잠을 자지 않고 련습을 하며 기뻐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고 계속 들려오는 수많은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였다.

앞으로 어떤 추궁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앙양된 사기를 꺾어버리고싶지 않았다.

지금 풍금을 멈추는것은 학생들과 학부형들에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되였고 하시모도의 칼이 가슴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풍금을 계속해야 한다고 속다짐하였다.

그것은 교육자로서의 응당한 량심이며 태도라고 생각하였다.

액틀곁에서 노끈을 부여잡고 흥분된 가슴을 누르며 기다리고계시던 대원수님께서는 량선생님의 굳게 다물린 입과 번뜩이는 눈 그리고 흥분과 긴장속에서 움직이는 그의 쩍 벌어진 어깨를 보셨다.

량선생님은 언제나 희망과 정열에 불탔고 학생들을 위하여 몸을 아낄줄 모르는 훌륭한 선생님이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긍지와 자부심이 넘쳐흐르고있었다.

지금도 량선생님의 얼굴에서는 칼자루를 잡은 원쑤놈에게 꺾일지언정 결코 굽히지는 않는다는 결의가 넘쳐흐르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 긴장한 순간에 그 어떤 방법으로라도 량선생님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셨다.

《열세집》을 련습할 때에는 녀학생들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노래소리가 작품내용과 무용에 잘 어울리였다.

아니 아까까지만 하여도 그들의 노래소리는 내용과 률동에 잘 조화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사람들의 비등된 심정에 만족을 주지 못하는듯 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열세집》을 놓고 하시모도와 벌어진 지금의 이 싸움은 한낱 하시모도 한놈과의 싸움인것이 아니라 전체 조선사람들과 일본강도놈들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셨다.

노래와 률동으로 하시모도란 놈을 깔아뭉개야 한다고 생각하신 대원수님이시였다.

그런데 노래소리는 잔잔했고 률동은 힘과 박력이 약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앞가슴을 내미시고 녀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우렁찬 목소리로 따라부르기 시작하셨다.

호철이에게도 따라부르라고 신호를 했다.

두 학생의 우렁찬 목소리가 량선생님의 귀에 들려왔다.

량선생님은 대원수님께서 무엇때문에 노래를 따라부르시는가를 알아차렸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머리를 약간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계속 풍금을 치면서 다른 한손을 높이 들더니 다섯손가락을 쭉 펴고 흔들었다.

량선생님은 음악시간에 언제나 손과 손가락으로 신호를 하였다.

노래를 따라부르라는것도 그리고 노래를 그치라는것도 손으로 신호를 하였다.

그의 손길에 따라 노래를 크게도 부르고 잔잔하게도 부르는것이였다.

손가락 하나를 들면 한줄만 따라부르라는것이였고 다섯손가락을 다 들면 모두 일제히 부르라는 신호였다.

량선생님은 한손을 높이 들고 다섯손가락을 쭉 펼치고 박자에 맞추어 힘있게 흔들었다.

손에 땀을 쥐고 흥분된 량선생님을 지켜보고있던 학생들은 막혔던 동이 터지듯이 우렁한 목소리로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하시모도란 놈은 앞뒤를 둘러보며 뭐라고 고아댔다.

그러나 학생들의 우렁찬 노래소리는 하시모도의 고함소리를 가뭇없이 집어삼키고말았다.

량선생님은 다섯손가락을 무용수들앞으로 흔들었다. 무용수들은 높이 든 량선생님의 손을 보고 어떻게 하라는 신호인지 알고도 남았다.

노래소리가 높아지고 률동이 격화되는 가운데 그림을 들고 춤추며 돌아가던 무용수들은 일제히 그림을 액틀에 달았다.

대원수님께서는 호철이에게 신호를 하면서 액틀을 둥실둥실 우로 올렸다.

높이 오른 조선지도는 찬란한 빛을 뿌렸다.

관중속에서 요란한 환성이 터져나왔다. 종일토록 학생들이 응원가를 부르고 북을 치고 만세를 부른것을 모두 합친것보다도 몇배나 더 우렁찬 함성이 터져나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련습할 때와는 비교도 할수 없으리만큼 통쾌하셨다. 그것은 수많은 학부형들과 관중들이 모인데서 진행하기때문만이 아니였다.

하시모도란 놈이 못하게 하는것을 박차고 기어이 해냄으로써 승리자의 영예와 보람을 느끼셨기때문이였다.

공중으로 두둥실 올라가서 빛을 뿌리는 지도가 한낱 지도로서만 아니라 놈들에게 짓밟히고 억눌렸던 우리 나라가 놈들의 멍에에서 벗어나 승리의 찬란한 빛을 뿌리는것만 같았다.

그 지도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던 수많은 우리의 겨레가 환희로 들끓는것만 같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운동장 한복판에 높이 떠있는 조선지도를 오래도록 내리고싶지 않으셨다.

하시모도는 계속 칼자루를 구르며 목부러진 게사니소리로 고아댔다.

그러나 군중의 위압에 눌리여 달리는 어쩌지 못했다. 관중들은 그놈이 고아대면 더욱 통쾌하게 바라볼뿐이였다.

점심시간이 선포되였다. 하시모도는 교감선생님에게 오후에 조촌주재소로 오라고 한마디 이르고는 자전거를 타고 부랴부랴 달아났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태연하셨다.

교감선생님은 점심이 끝나면 곧 운동회를 계속할것을 선생님들에게 부탁하고 량선생님을 크게 칭찬하셨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교감선생님은 《열세집》대본과 5학년지리교과서와 지리부도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주재소로 향하셨다.

《열세집》에 대한 소문은 잠간사이에 근방마을에까지 쫙 퍼졌다.

오후에는 더 많은 관중들이 모인 가운데서 운동회가 성과적으로 계속되였다.


× ×


운동회가 끝난 후 대원수님께서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셨다.

낮에 주재소로 가신 외할아버님께서는 해가 넘어가도록 돌아오지 않으셨다.

저녁상을 차려놓았으나 누구도 술을 들지 않았다.

두집 식구가 모두 모여앉아 걱정들만 하고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내려왔다.

학교에서 교감선생님을 기다리다가 혹시 집으로 돌아오시지나 않았나 해서 내려온것이였다.

《아무래도 무사치 않을것 같구나. 보패 애비가 그놈들에게 끌려가서 고역을 겪는것만 생각해두 가슴이 아픈데 너의 할아버지까지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어쩐단 말이냐.》

외할머님께서는 울상을 짓고 이렇게 말했다.

외할머님께서는 벌써 밖을 몇번이나 드나들었는지 알수 없었다.

《할머니, 걱정마십시오. 이제 곧 돌아오십니다. 글쎄 교감선생님이야 무슨 죄가 있다구 안돌려보내겠습니까. 〈죄〉가 돌아온다면 제게 돌아올것이지요.》

량선생님의 말씀이였다.

《그러기 웃어른노릇하기가 힘들다구 하지 않습마. 하기야 뜀박질하는게 죄가 되기야 무슨 죄가 되겠나. 조선사람들은 찍해두 죽구 짹해두 죽게마련이니까 걱정이지.》

외할머님의 대답이였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밖에서 교감선생님의 기침소리가 《에헴에헴》하고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 문을 차고 밖으로 뛰여나가셨다.

선생님들과 가족들도 달려나갔다.

《아니, 왜 이렇게들 모였소. 뭐 나때문에 걱정들을 하구있었소? 걱정들두 많기는 하다.》

교감선생님께서는 노상 태연하시였다.

《그래 무사하셨소?》

외할머님의 물음이였다.

《무사하지 않구. 우리가 무슨 못할 일을 했다구?》

《그런데 왜 그놈들은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 하구 야단이우?》

《제 버릇 개 못준다구 그놈들이야 그게 제 버릇이 아니겠소.》

교감선생님께서는 두루마기와 모자를 벗어 제자리에 거시더니 자리에 앉으셨다.

《순사부장놈이 뭐라구 지껄입디까?》 하고 량선생님이 물었다.

아닌게아니라 교감선생님께서 태연한 얼굴로 돌아오시자 누구보다도 제일 반가와한 사람은 량선생님이였던것이다.

《흥, 그놈이 많은 사람들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는지라 혼찌검을 내주리라구 든든히 접어들었더군. 그렇지만 그놈의 낮은 수로는 강돈욱이를 굴복시키지 못하지.》 하며 껄껄 웃으시더니 교감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시작하시였다.


교감선생님께서 주재소에 들어가시자 하시모도란 놈은 상통을 찡그리고 눈을 희번득이더니 다짜고짜로 수작을 건늬는것이였다.

《학교나 페교해야겠소. 여기에 동의서를 쓰시오.》 하며 그놈은 종이를 내놓는것이였다.

이 말을 들은 교감선생님께서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종이를 책상 한편 모서리로 밀어놓으시며 말없이 한동안 하시모도란놈을 바라보고계셨다. 이윽고 교감선생님께서 입을 여셨다.

《페교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야지요. 그런데 우리 학교를 페교해야 할 무슨 리유가 있는가요?》

교감선생님께서는 문제가 문제인만큼 처음부터 강경한 태도를 취하셨다.

하시모도는 의자에서 후닥닥 일어서더니 차렷자세를 하고 연설조로 말했다.

《학생들을 천황페하께 충성을 다하도록 교양할 대신에 당신네 학교에서는 대일본제국의 교육원칙을 란폭하게 위반했단 말이요.》

하시모도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는 이마와 목으로 흐르는 땀을 씻으면서 수작을 계속했다.

《그런 학교를 우리는 인정할수 없소! 오늘 당신네가 취한 행동은 바로 대일본제국을 반대하는것이며 당국에 반항하는 행동이란 말이요!》

하시모도는 사람을 집어삼킬듯이 성을 펄펄 내며 구두발로 마루를 구르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교감선생님께서는 매우 침착하셨다.

《우리 학교에서는 잘못한것이 없소. 그것은 날조요. 근거있는 사실을 가지고 말하는것이 좋겠소.》

교감선생님께서는 날카롭게 들이대셨다.

《날조라구? 경찰당국에 대해서 그렇게 대할수 있는가? 오늘 운동회에서 한 음악유희 〈열세집〉은 뭐요? 그것이나 대일본제국의 교육원칙을 위반한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누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따위를 하라고 했는가?》

《그래 그것때문에 학교를 페교하라는거요?》

교감선생님께서는 하시모도를 저주와 증오의 눈초리로 바라보시고나서 가지고오셨던 교과서와 《열세집》대본을 그놈의 책상우에 내놓았다.

《자, 여기 〈열세집〉의 대본이 있소. 그리구 총독부에서 만든 교과서두 있소. 우리는 엄격히 여기에 근거해서 대본을 만들었을뿐이요.》

《이 교과서대로 하면 문제나 없단 말이요. 〈열세집〉인가 하는 그것이나 이 교과서 어디에 있단 말인가? 찾아놓으란 말이요.》

하시모도는 교과서를 교감선생님앞으로 내동댕이치며 호통을 쳤다. 교감선생님께서는 흥분을 억지로 누르시며 조선지도를 그린 지리부도를 우선 펼치셨다.

《왜 그렇게 흥분하시오? 그런다구 무서워할 사람이 아니요. 자, 보시오. 우리가 만든 그 지도는 지리부도에 있는 조선지도를 크게 확대해서 만든것이요. 그리구 책을 좀 보시오.》

교감선생님께서는 5학년지리교과서를 펼쳐놓으셨다.

《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읽어보시오. 조선에는 땅이 비옥하구 남쪽으로 가면서 평야가 많아서 쌀이 많이 난다구 씌여있지 않소. 그래서 오곡백과 무르익는다는것을 노래한것이구. 또 여기를 읽어보시오. 조선에는 금, 은, 동, 철을 비롯해서 수많은 지하자원들이 있다구 씌여있지 않소. 그래서 땅속에는 보물들이 가득찼다구 노래하였구. 또 여기를 읽어보시오.》

교감선생님께서 계속 책장을 번져가시면서 이야기하셨다.

《남쪽에는 목화가 잘되구 북쪽에는 양을 많이 친다구 양떼가 물결치는 그림까지 이렇게 받쳐져있지 않소. 그래서 그것을 노래한것이구, 자 여길 또 읽어보시오. 조선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기때문에 물고기가 많다구 씌여있지 않소. 그래서 물고기들이 펄펄 뛰논다구 노래한것이구. 그리구 또 여기를 읽어보시오. 압록강과 두만강주변 그리구 백두산록과 그밖의 산맥들에는 몇천년 묵은 원시림이 가득 들어차있는데 거기에는 전나무, 잣나무, 이깔나무, 봇나무, 황철나무, 참나무들이 하늘을 찌를듯 하다구 씌여있지 않소. 그래서 그것을 그대루 노래한것이구. 자 또 여기를 좀 읽어보시오.…》

교감선생님께서 다 시 책장을 넘기시려는데 순사부장놈이 교감선생님의 손을 막아나섰다.

《좋아좋아.》

《우리는 보다싶이 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그대로 노래를 짓고 춤을 만들었소. 이를테면 교과서에 있는대로 학습을 더 잘하게 하자는것이였소. 그런데 그것이 뭐 잘못됐는가요?》

이렇게 오히려 교감선생님께서는 역습을 들이대셨다.

하시모도는 대답이 궁해진 모양인지 도살장으로 묶이여가는 돼지처럼 눈만 한동안 꺼벅이더니 성냥가치를 꺼내서 이발사이만 쑤시는것이였다.

그러던 하시모도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성냥가치를 내동댕이치더니 다시 호통을 치는것이였다.

《조선은 일본 전령토의 한 부분이요. 대일본제국이 있기에 조선이 있는거란 말이요. 대일본전체를 모르고 조선만 알아서는 필요없어! 누가 조선만을 그렇게 내세우라고 했는가? 그것은 대일본제국의 교육원칙에 어긋나는것이고 조선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하는것이며 나아가서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불온한 사상이란 말이요.》

《우리는 고유한 력사적전통을 가진 조선민족이요.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란 말이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조선땅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요. 자기가 살고있는 향토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있는것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본성이요. 이 진리는 누구도 막지 못할것이요. 당신이 당신의 고향을 사랑하듯이 조선사람은 조선땅덩어리를 사랑한단 말이요.》

《그것은 지역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상문제에 관한거요. 사상문제!》

하시모도는 주먹을 내흔들면서 피대를 세우고 고아댔다.

《거기에 대한 당신의 해석은 당신의 자유일것이요. 그러나 자기를 낳아서 키워준 제 고장을 사랑해서는 안된다는것은 누구도 강요하지 못할것이요. 그리고 그런것을 구실로 학교를 페교한다는것은 얼토당토않은 말이요. 당신이 페교처분을 해볼테면 해보시오. 나는 거기에 대해서 항거해나설것이요.》

교감선생님께서는 아주 강경한 태도를 취하셨다.

하시모도는 무슨 딴 궁리를 하는 모양인지 한동안 담배연기만 내뿜고있더니 수작을 계속했다.

《그건 그렇구. 당국에서 중지하라면 중지할것이지 어째서 건방지게 말이나 듣지 않고 계속 음악유희를 했소? 그것도 당국에 대한 반항이 아닌가? 그런 놈의 선생은 당장 철직을 주어야겠소. 량선생인가 하는 그자를 오늘로 내쫓으란 말이요.》

하시모도는 궁지에 빠졌던 자기의 립장을 돌이킬 근거라도 찾은듯이 노상 두눈을 굴리며 떠들어댔다.

《량선생은 당국에 반항한 일이 조금도 없소. 그 선생은 이 교과서에 있는것을 가지고 노래와 춤을 만들어 배워주었을뿐이요. 그래 그것이 반항인가요?》

《중지하라면 중지할것이지 못들은척 하구 계속하는것이 반항이 아니구 뭐란 말이요?》

《그것은 생억지요. 백여명의 학생들과 천여명의 군중이 그렇게 떠드는 속에서 풍금을 치면서 음악무용을 지휘하는 사람이 어떻게 당신 한사람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겠소. 나두 한참은 하시모도상이 무엇때문에 고함을 치면서 왔다갔다 하는지 똑똑히 몰랐댔소.》

교감선생님께서 시침을 따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순사부장놈은 뭐라고 말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니 서있었다.

《그리구 음악유희 〈열세집〉은 누구도 중지시킬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오. 엄격히 교과서에 의거해서 만든 작품인데 그것을 중지시킬수 있는가 말이요. 당신이야말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받을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교감선생님께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시모도를 쏘아보시며 이렇게 들이대셨다.

《무슨 소리요?》

하시모도는 당장 자기 가슴에 칼이라도 들어오는듯이 한동안 씨근덕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리유여하를 막론하고 당국에서 중지시키면 중지해야 한단 말이요. 그것이 우리 대일본제국의 법이란 말이요.》

《어느 나라에도 그런 법은 있을수 없소. 정정당당하게 공무를 집행하고있는 사람에 대해서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어떤 부당한 처벌을 내리고 그 처사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철직을 시킬수 있는가 말이요? 있다면 그것은 일본에만 있을수 있는 법률일거요.》

《본인이 모르게 부당한 처사를 내렸다구? 천만에, 내 명령은 부당한 처사도 아니거니와 량선생인가 하는 그자는 내가 중지하라는 명령을 확실히 알고있었단 말이요.》

하시모도는 두눈을 번들거리며 교감선생님을 흘겨보았다.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수 있소?》

《마지막에 하는 그자의 행동을 보구 넉넉히 알수 있소. 응, 이 하시모도를 멍텅구리로 생각하는가?》

순사부장놈은 달려들기라도 할듯이 주먹으로 책상을 《탕》 치는것이였다. 그렇다고 그놈앞에서 놀라실 교감선생님이 아니시였다.

《마지막행동이라니? 무엇을 두고 말하는거요?》

교감선생님께서는 낮은 소리로 물으셨으나 매우 날카로왔다.

《마지막에 선동적으로 전체 학생들에게 노래를 시킨것말이요. 그것이 당국에 대한 항거가 아니구 무엇인가. 량선생인가 하는 그자는 당국에 반항하는 행동에 군중을 추동했단 말이요.》

《허허허…》

교감선생님께서는 큰소리로 한동안 웃으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음악무용 〈열세집〉의 대본이 바로 그렇게 돼있단 말이요. 글쎄 생각해보시오. 량선생은 계속 풍금만 치고있었는데 련습할 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백여명이 일시에 노래를 부를수 있었겠는가 말이요. 참 하시모도상이 〈열세집〉련습을 한번이라도 와보았더라면 그런 오해까지는 하지 않았겠는데 참 유감스럽군요. 허허…》

교감선생님께서는 쓴웃음을 지으시며 야유조로 말씀하셨다.

하시모도는 뭐라고 대답할 말마디가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였다.

그는 한동안 눈만 껌벅이더니 담배를 꺼내 붙여물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는것 같은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건 그렇구. 한가지 물어볼것이 있소. 고평면주재소에서 조회문건이 온것도 있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한번 선생을 만나려고 했던 참이였소.》

하시모도는 아까와는 달리 부드러운 태도로 말머리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의 눈길 돌리는것을 보아 아까문제와 비할수 없는 신중한 이야기를 꺼내려는것이 분명했다.

《말씀하시지요.》

교감선생님께서도 마음의 준비를 든든히 하시고 응대하셨다.

하시모도는 무슨 말부터 시작하겠는가를 궁리하는 모양인지 연방 담배만 뻑뻑 빨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후에 그는 말마디가 생각났다는듯 절반도 타지 않은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끄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네 집에 손님이 와있다면서요?》 하고 묻는것이였다.

《손님이 아니라 내 외손자가 와있소.》

《외손자라면 평양형무소에서 복역을 한 김선생의 아들이란 말이요?》

《그렇소.》

《온지가 퍼그나 오랜것 같은데요?》

《지난해 봄에 왔소.》

《무슨 큰 련락임무를 가지고왔기에 아직 돌아가지 않았소?》

《련락을 가지고온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려고 나왔소.》

《공부? 물론 여기 나와서 공부할수도 있소. 그런데 누구와 함께 나왔는가요?》

《그애 혼자 나왔소.》

《나도 그렇게 퍼뜨린 소문을 들었소. 그런데 혼자 나왔다면 누가 곧이 듣겠소?》

《글쎄, 곧이 듣지 않겠다면 그만두라지요. 그애는 우리 집이 부산에 있었드라면 부산까지라도 혼자 걸어가면서 팔도강산을 다 구경했을번 했는데 조선의 절반도 못되는 평양에 있는것이 유감이라구 그러더군요.》

《천리길을 혼자서 걸어왔단 말이 사실이요?》

《사실이 아니면 누가 거짓말을 하겠소.》

하시모도는 한동안 말없이 교감선생님을 뚫어지게 바라보는것이였다.

《그건 그렇구, 김선생이 아들에게 사람을 보냈다구 그러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돌아갔는가요?》

《사람을 보내다니요. 내가 모르게 사람이 왔다갔을리는 없겠는데요.》

《학용품과 옷을 가지고왔다고 하던가?》

《허허허… 하시모도상이 좀 착각을 일으킨것 같군요. 내 외손자가 공부를 끝마칠 때까지는 내 딸이나 사위되는 사람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거요.》

《좋소. 그런데 그 학생이 지금도 불온한 사상독소를 가진 그런 책을 읽고있는가요?》

《무슨 말씀인지?》

《말하자면 공산주의서적을 계속 읽고있는가 말이요.》

《아하! 알만 합니다. 내 외손자가 작년에 고평면주재소 주임한테 책을 빼앗겼다는 말을 들은바있소. 그런데 그 책 어느 대목에 공산주의사상이 들어있었는가요?》

《그건 당신이 내게 물을 필요가 없는거요.》

《하기는 그렇소. 그렇지만 소학생이 공산주의서적을 읽는다고 경찰에서 관심사로 하고있다는것은 대일본제국의 경찰에게만이 있을수 있는 신경과민이 아닐가요?》

교감선생님의 이 말씀은 확실히 하시모도를 빈정대고 하시는 말씀이라는것을 누가 들어도 알만 하였다.

《닥치시오! 신성한 황국의 경찰관을 희롱하지 말란 말이요.》

《희롱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단 말이요. 나도 깊이 알지는 못하오만 공산주의란 높은 과학적인 리론에 기초하여 사회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정치적문제가 아닌가요? 물론 내 사위가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를 반대하고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 싸운것은 사실이요. 그로 인해서 형무소생활까지 했다는것은 당신도 잘 알구있는거구. 그렇다구 해서 그의 아들인 소학생을 공산주의자로 운운하는것은 지나친 신경과민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요. 그리구 고평면주재소 주임한테 빼앗겼다는 그 책은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는 잡지책이란 말이요. 당신이 옳은 립장을 취하려거든 신경과민에 걸려가지구 공산주의를 운운할것이 아니라 그 잡지책을 도로 찾아주는것이 지당하다고 생각하오.》

《그것은 내 권한에 속한 일이 아니요. 하여간 우리는 강선생을 신임하고 학교인가까지 내주었으니까 매사에 정신을 차리고 똑똑히 하는것이 좋겠소.》

《나야 언제나 한본새지요.》

교감선생님께서 하시모도를 만났던 일은 이렇게 끝났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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