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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32


대원수님께서 창덕학교에 오신지도 어느덧 한해가 지났다.

연분홍색진달래로 앞산과 뒤산을 뒤덮은 짙은 봄이 이 강산에 다시 찾아왔다. 마을에는 살구꽃과 개나리꽃이 활짝 피였고 종달새는 공중에 높이 떠서 지종지종 제 시절인양 노래하고있었다.

아이들이 산으로 들로 마음껏 놀이터를 찾아다니는 즐거운 계절이였다.

창덕학교 5, 6학년학생들은 량선생님과 함께 정방산으로 원족을 떠나게 되였다.

이날 창덕학교운동장에는 날이 채 밝기도 전에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하늘에는 아직도 별들이 총총한데 새벽바람이 불어 날씨는 쌀쌀했다.

학생들은 제각기 점심보자기들을 어깨에 둘러메고 경쾌한 옷차림으로 운동장에 나타났다.

이윽고 먼동이 터오자 집합을 알리는 류랑한 나팔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흔들었다. 학생들은 량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운동장에 정렬해섰다.

교감선생님께서는 원족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몇가지 주의를 준 다음 무사히 다녀오라고 그들을 배웅해주시였다. 신바람이 난 학생들은 나팔소리에 발을 맞추어 대렬을 짓고 성안으로 향했다.

평양역에서 학생들을 태운 남행렬차는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교울타리안에만 갇히워있다가 이렇게 기차까지 타니 매우 상쾌한 모양인지 차창을 열고 노래를 부르는 축도 있고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고 떠드는 축들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차창을 여시고 넓은 벌과 산과 강을 감회깊게 바라보셨다. 오늘의 이 원족도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실현하는 한 부분이라는것을 생각하실 때 조밭에서 애벌김을 매는 아낙네들이나 논갈이를 시작하는 보잡이군의 모습 하나까지도 소홀히 지나칠수 없으셨다.

기차가 황주역을 지났을 때였다.

《김성주학생은 정방산구경이 처음이겠구만.》

량선생님이 대원수님의 곁으로 와서 앉으며 하는 말이였다.

《그렇습니다. 북쪽에는 산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리루 나오면서는 넓은 벌이 많구만요.》

대원수님께서는 량선생님에게 자리를 넓히 내드리시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렇지, 황해도는 원래 곡창지대니까. 큰산으로는 아흔아홉봉이라는 구월산이 있고, 아름답다고 해서 황해금강이라고 하는 장수산이 있고, 해주의 수양산과 여기 정방산들이 있지.》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에 아이들이 하나둘 그리로 모여들었다.

량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대원수님께서는 언젠가 아버님께서 임진조국전쟁당시 정방산로적봉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던것이 기억에 떠오르셨다.

그래서 《선생님, 로적봉이 어디 있습니까? 임진조국전쟁때부터 그렇게 불러왔다는 봉우리말입니다.》 하고 물으시자 아이들은 귀가 솔깃해지는 모양인지 량선생님에게로 시선들을 모았다.

《로적봉말이지. 여기서 아마 보일거다.》 하며 량선생님은 왼쪽 창밖을 내다보는것이였다.

《음, 저기 로적봉이 보이는군! 임진조국전쟁때 우리 선조들이 저 봉우리를 갈갓으로 덮어가지구 왜적들을 물리쳤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산을 갈갓으로 덮어가지고 어떻게 왜적들을 물리쳤습니까?》 하고 윤병이가 물었다.

《산봉우리를 갓으로 덮었으니까 왜적들은 그것을 로적가리로 알았지. 군량을 저렇게 많이 마련해놓았으니까 무기와 군대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여기서 싸우다가는 뼈다귀도 찾지 못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놈들은 모두 달아났지.》 하고 량선생님이 설명해주셨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기차는 가끔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계속 달리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적과 싸우려면 군대도 강해야 하지만 꾀도 있어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생각하시며 계속 로적봉을 바라보고계셨다.

로적봉도 점점 멀어지더니 이제는 보이지 않게 되고말았다.

대원수님께서는 반대쪽 차창인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논벌이 끝없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재령나무리벌과 봉산벌의 일부가 한눈에 안겨온것이였다. 그런데 집들이 모두 물속에 잠기다싶이 되였다.

《선생님, 저 집들은 모두 물에 떠있는것 같구만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가을에 벼를 베구서는 다음해 농사를 짓기 위해서 시내물을 잡아두어야 하니까 저렇게 집들이 물에 잠기다싶이 되는게지.》

《선생님, 그럼 겨울에는 저기가 모두 얼음판이 됩니까?》 하고 덕범이가 물었다.

《얼음판이 되지.》

《야! 멋이 있겠구나. 저기서 스케트를 타구 냅다 달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넌 네 생각만 하구 로인들과 어린애들의 생각은 안하니? 미끄러운 얼음판으로 로인들이 다니다 넘어지면 어쩌겠니?》

《너 저런데서 학교에 다닐걸 좀 생각해봐라.》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추겠구나.》 하며 덕범이는 목을 움츠리고 동무들을 쑥쑥 둘러보는것이였다.

《학생들의 말이 옳소. 저렇게 물이 찬 곳에서 사느라니 농민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소. 돈냥이나 있는 사람들은 매생이를 타구 다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무슨 돈으로 매생이를 사오겠소. 그래서 함지를 타구 다닌답니다.》

《그러다가 함지가 벌컥 뒤집히면 물참봉이 되겠구만요.》 하고 윤병이가 말하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요. 저기 보이는 구월산에서부터 저기 멀리 보이는 장수산과 이 정방산을 둘레로 해서 재령나무리벌과 봉산벌, 신천벌들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곡식을 다 쌓는다면 큰산보다 더 높을게요. 왜놈들은 그 많은 곡식들을 빼앗아가면서 저수지 하나 만들지 않구 수로 하나 째지 않으니 농민들이 해마다 저 고생을 한단 말이요. 하기야 여기 농민들뿐만이 아니지. 조선땅 어디인들 왜놈의 등쌀에 찢기우고 뜯기우지 않는 곳이 있겠소?》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기차는 어느덧 계동역에 이르렀다. 역은 작았지만 정방산구경을 오는 사람들때문인지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서 5리가량 걸으면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정방산으로 올라가는 길옆에는 파란 주단이라도 편듯한 넓은 풀밭이 펼쳐져있었다. 일행은 넓은 초원사이로 뻗은 산길을 더듬어 올라갔다. 길이라기보다도 산판을 뒤덮을듯이 활짝 핀 살구꽃의 꽃대문아래를 헤쳐나가는것 같았다.

일행은 어느덧 정방산성 성문앞에 이르렀다.

량선생님은 일행을 큰 살구나무아래에 멈춰세웠다. 일행은 모두 풀밭에 앉았다.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에 살구꽃잎은 마치도 눈송이처럼 춤을 추며 풀밭에 소복이 내려앉았다. 꽃잎은 소리없이 그들의 모자와 옷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럼 잠간 정방산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하고 량선생님이 말하자 저저마다 왁작 떠들던 학생들은 이야기들을 멈추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량선생님은 임진조국전쟁당시에 우리 선조들이 이 산에서 왜적을 물리친 이야기를 하고나서 산성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지금은 총과 대포를 비롯한 현대적무기들을 가지고 전쟁을 하지만 옛날에는 창과 칼 그리고 기껏해야 활을 가지고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돌로 성을 높이 쌓고 성문을 든든히 닫으면 누구도 성안에 들어올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가는 곳마다에 산성이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외래침략자들의 불의의 침습을 막기 위한 불타는 애국심의 표현입니다. 정방산성은 지금으로부터 3백년전에 도원수 김자묵이라는분의 지도밑에 백성들이 수축하였다고 합니다. 성의 둘레는 30리나 되고 성벽높이는 서른자가 넘는데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벽과 성문이 무너진데가 많습니다.

우리는 허물어져가는 옛성터와 성벽을 볼 때에도 무심코 보아서는 안됩니다. 거기에는 우리 선조들의 불타는 애국의 넋이 깃들어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방산에서 이름난것은 성불사라는 절과 절에 있는 5층탑입니다. 이 절과 탑들을 보면 우리 선조들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훌륭하였는가에 대하여 짐작할수 있습니다. 성불사는 지금으로부터 1천여년전 신라시대에 지었고 탑도 그때 만든것입니다. 절은 그후 고려시대에 고쳐지은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옛날모습을 그대로 본따서 지은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선조들의 건축술이 얼마나 높았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정방산에 원족온것은 그저 하루를 유쾌하게 지내고 살구꽃이나 보고 절구경이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력사의 발자취들을 더듬어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자는데 목적이 있는것입니다.…》

량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산성과 절들을 구경하면서 주의해야 할 몇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한 후 자유롭게 구경하도록 하였다.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무지개형으로 만든 성문을 지나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성안에도 살구꽃이 만발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몇동무들과 함께 성문앞에 서시여 우람하게 쌓아올린 무지개형성문과 성벽을 바라보고계셨다. 성문높이가 어른의 키로 너덧길은 잘됨직하였다. 성문안으로 들어서니 이 성을 지킨 장수가 있었다는 집터도 있었고 무기와 군수품들을 넣었다는 창고자리와 군대들이 쓰던 우물터들이 남아있었다.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투구와 갑옷을 떨치고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면서 말을 타고 달리는 우리 나라 장수들의 용감하고 슬기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일본침략자들이 우리 나라 장수들앞에서 삼대 쓰러지듯 꺼꾸러지는 모습도 련속 나타났다.

대원수님께서는 흩어져있는 작은 성돌 하나까지도 무심하게 보지 않으셨다. 돌 하나에도 침략자들로부터 조국을 지키려는 수많은 인민들의 애국심이 깃들어있는것이며 그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것이였다. 그 많은 바위들을 굴려다가 정으로 쫏고 다듬어서 성벽과 성문을 쌓은것은 다름아닌 가난한 백성들이였으리라고 생각하시니 수많은 군중이 누데기옷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힘겨운 일에 시달리고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싶으셨다.

대원수님께서 성문과 허물어져가는 성벽 등을 바라보시는 동안에도 구경군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계속 들어오고있었다.

정방산의 이름난 살구꽃들이 필무렵에는 언제나 이렇게 구경군들이 삐이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산성을 한바퀴 돌아보고싶은 생각이 없지 않으셨으나 30리나 된다는 거리를 다 돌아보실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다.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볼가?》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동무들은 모두 찬성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과 함께 절간으로 발길을 돌리시여 대충 둘러보셨다. 괴상망측하게 생긴 문지기와 부처들 그리고 5백라한을 돌아보시고 5층탑을 보시려는데 나팔소리가 골안을 울렸다. 점심시간이 된것이였다.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아서 점심들을 펼쳐놓았다. 그런데 인삼이가 보이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덕범이 그리고 경만이들에게 물어보았으나 그들도 인삼이의 간 곳을 알지 못했다. 분명히 점심을 싸가지고오는것을 보았는데 어디 가서 혼자서 먹을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신 대원수님께서는 여러 아이들을 붙들고 물어보셨다. 그런데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것이였다.

맨 나중에 5학년의 제일 작은 아이에게 물었더니 혼자 빠져서 뒤켠에 있는 절간뒤로 가더라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드셨다. 절간뒤에서 혼자 점심을 먹을상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숨어서 무슨 좋지 못한 장난을 하려고 간것으로도 생각되지 않으셨다. 무슨 곡절이 반드시 있는것만 같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를 데려오겠다고 동무들에게 이야기하고 절간뒤채로 달려가셨다. 아니나다를가 절간 맨 뒤채 모서리에 인삼이 혼자 돌아앉아있는데 무엇을 먹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왜 저애가 여기 와서 혼자 먹을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발걸음소리를 죽이고 인삼이곁으로 한걸음, 두걸음 다가가셨다.

그런데 무엇인지는 똑똑히 알수 없으나 흰것을 들고 연방 깨무는것이였다.

(흰떡을 가져올수는 없겠는데…)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를 부르시려다가 혹시 그애가 어색해할것 같아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다시금 자세히 바라보셨다. 그런데 인삼이가 먹는것은 무우쪽이였다.

(점심을 가져오지 못하고 무우쪽을 꾸려가지고왔으니까 혼자 피해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의 가슴은 후비는것 같으셨다. 동무들에게 점심을 가져오는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자루전대를 만들어 둘러메고오던 인삼이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셨다. 그러면서도 오늘 인삼이의 얼굴에서는 그늘을 찾아볼수 없었다. 얼마나 동무들과 함께 명랑하게 웃고 떠들었던가?

대원수님께서는 그자리에 우뚝 서시여 인삼이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계셨다. 인삼이는 무우를 다 먹었는지 무우꽁다리를 멀리 내던지고는 자루처럼 만든 전대를 접으며 무심코 뒤를 흘깃 돌아보는것이였다. 이때에 대원수님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 순간 인삼이는 큰 잘못이나 저지른 사람처럼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원수님께서는 입술이 약간 떨리셨다.

잠시후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 앞으로 다가가시여 두팔을 벌려 그를 한품에 꼭 껴안으셨다.

《인삼아! 너 점심을 못가져왔으면 동무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할게지 그게 뭐냐.》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는 주먹으로 인삼이의 어깨를 가볍게 치셨다.

《점심을… 먹었는데 뭐.》

인삼이는 떠듬거리며 겨우 이렇게 대답했다.

《너 동무들에게 나누어먹자는 말은 못하겠더냐? 동무가 좋다는게 뭐냐.》

대원수님의 두눈에는 눈물이 어리였다.

《난 진짜 점심을 먹었어!》

《자, 그러지 말구 어서 내려가자. 모두 너를 기다리구있어.》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의 손목을 잡으셨다. 그는 더는 고집하지 못했다.

동무들은 아직 점심들을 들지 않고 기다리고있었다.

《봐라! 이렇게 너를 기다리구있지 않니?》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먼저 먹었다는데두.》 하며 인삼이는 뒤통수를 쓱쓱 긁었다. 그러나 동무들은 그가 점심을 가져오지 못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서로 다투어 자기의 점심에서 인삼이의 몫을 나누어주었다. 량선생님을 모시고 점심을 펴놓은 학부형들도 그리로 먹을것을 날라왔다.

어느덧 점심이 끝났다. 학생들은 다시 흩어져서 계속 자유롭게 구경들을 하게 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몇동무들과 함께 5층탑앞에 가시여 탑을 바라보시며 우아하고 정교로움에 감탄하시였다.

이때에 저쪽 《운하당》앞에서 중이 몇아이들을 세워놓고 꾸지람을 하고있었다. 탑앞에 모여 서있던 학생들이 그리로 달려갔다.

대원수님께서도 천천히 그리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알고보니 아이들이 《운하당》기둥에 자기들의 이름을 칼로 새기다가 중에게 들켰다는것이였다.

《절간기둥에 이름을 왜 새기댔을가?》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시자 《흥! 거기에 이름을 새기면 뭐 오래 산다나?》 하고 대답하며 윤병이가 고개를 젖히고 깔깔 웃어댔다.

대원수님께서도 따라웃으시며 어떤 아이들인데 그런짓들을 하였는가를 알아보시려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가.

《아니 너 만경대에서 살던 영길이 아니냐?》

대원수님께서 그애앞으로 달려가시며 큰소리로 부르셨다.

《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증손이를 여기서 만났구나!》 하며 영길이도 대원수님앞으로 달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영길이의 손을 으스러지게 부여잡으셨다.

《그런데 너 어떻게 여기에 왔니? 너의 집이 이 근처냐?》

《우리 집은 저기 보이는 재령나무리벌에 있어. 여기서 20리만 가면 돼. 석해나루만 건느면 고대거던. 그런데 넌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간도에서 아주 나왔니?》

《아니야. 나 혼자 나와서 우리 외가집에서 창덕학교에 다녀.》

《응, 공부하러 나왔구나. 그럼 여기로 원족왔댔구나!》

《응!》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에 중은 아이들에게 한두마디 주의를 주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너희는 좋은데 와서 사는구나. 거기는 먹구 남는다구 해서 나무리벌이라구 한다지?》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그것은 옛말이구 이제는 먹구모주리벌이라구들 그런단다.》

《아니 어째서 나무리벌이 모주리벌로 되였니?》

《재령나무리벌에 일본놈들이 밀려나오면서 이젠 망했어. 좋은 땅은 그놈들이 모주리 다 차지했단다. 조선사람들이 부치던 땅들을 빼앗아서 그놈들에게 주었단다. 1년에 천집씩 나온다니 말할게 있니?》

《그럼 너희두 땅을 빼앗겼겠구나?》

《우리라구 안빼앗길수 있니. 우리 먼 친척되는분이 무척 애써서 겨우 소작지로 얻은 땅을 절반나마 빼앗겼어. 글쎄 다섯명식구인데 논 천평이나 가지구 뭘하겠니?》

《그럼 어떻게 살아가니?》

《온 집안이 가마니를 쳐 먹구 살지 뭐. 벼짚은 구할수 있으니까. 온 집안이 달라붙어서 밤낮 가마니만 짜구있어. 나두 개량가마니를 하루에 여덟개는 칠수 있어.》

《그럼 막가마니는 열댓개 치겠구나.》 하고 호철이가 말참견을 하였다.

《그쯤이야 치지 뭐.》

《그런데 오면서 보니까 물때문에 야단이겠더구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함지를 타구 다닌다면서?》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함지를 타구서라두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야 얼마나 좋겠니. 난 물을 헤치구서래두 학교에 가라면 춤을 추면서 다니겠다야.》

대원수님께서는 《그럼 너는 학교에 도무지 다니지 못했냐?》 하고 물으시려다가 그만두고마셨다. 묻지 않아도 알수 있는 일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영길이는 대원수님의 심정을 짐작한 모양같았다.

《우리에게도 준몰장거리에는 보통학교가 있구 거슬포라는데는 큰 사립학교가 있구 그밖에두 서호학교니 공명학교들이 있지만 우리같은 아이들이야 학교에 다닐수 있다더냐. 저애들두 다 목동애들이야.》

영길이는 같이 온 아이들을 가리키며 깊은 한숨을 짓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학교에는 못다녀두 배나 곯지 않았으면 좋겠다야. 사실은 오늘두 가마니를 짜야 할건데 저애들이 4월 파일에두 오지 못했는데 절구경이나 가보자구 자꾸만 졸라대서 따라왔댔어. 하기는 오늘 여기 왔기에 너를 이렇게 반갑게 만날수 있긴 했다만… 그런데 원족 올려면 초파일날 오지 왜 이제야 왔니? 초파일엔 굉장하단다. 이젠 살구꽃두 저렇게 떨어지구있지 않니?》

《초파일엔 뭐 신통한게 있니?》

《사람들이 꽉 들어차다싶이 한단다. 하긴 그날은 평양이나 사리원에서 돈냥이나 있는 놈들이 와서 진탕치듯 먹구 노는 꼴이 보기 싫긴 해.…》

《나무리벌에는 자주 큰물이 난다는데 그게 사실이냐?》 하고 윤병이가 물었다.

《큰물이 자주 나지. 우리도 나무리벌에 이사와서 빚을 내다가 오막살이를 한채 장만했더랬는데 재작년에 물에 떠내려보내구말았어. 우리뿐인줄 아니. 숱한 집들이 떠내려갔지. 남동이 터져서 산더미같은 물이 막 밀려드는데 정말 무섭더라. 지붕에 올라가서 사람 살리라구 고함을 치다가 집이 무너져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우리두 죽을건데 동뚝에 올라간 덕으로 살아났어.》

《그렇게 큰물이 자주 나니?》 하고 인삼이가 물었다.

《자주 나지.…》

《남동을 막아서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수는 없다던?》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물론 막으면 된다는게지. 그런데 그 큰 동을 누가 막겠니? 왜놈들은 그런건 꿈도 꾸지 않구있지, 농민들의 힘으로는 막을수 없지, 죽는건 조선사람뿐이지 뭐.》

《그렇다구 농민들은 가만히 앉아있을수는 없지 않니. 농민들의 힘으로 막지 못할거라면 밀려가서 왜놈들에게 막아내라구 들이대야 할게 아니냐?》

영길이는 잠시 이야기를 할가말가 망설이면서 대원수님과 아이들을 둘러보는것이였다.

《안그래? 영길아.》 하고 대원수님께서 다시 물으시였다.

《왜 가만히 앉아만 있겠니? 소작인들도 들구일어났단다. 무슨 동맹을 무어가지구 〈소작료를 감해달라, 땅을 함부로 떼지 못한다, 세금은 지주놈이 물어라.〉 이렇게 들이댔단 말이야.》

《그래 너두 그축에 한몫 끼웠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난 끼우지 못했어두 우리 아버지는 한축 들었댔어.》

《참, 너의 누나 소식은 알구있니? 어느 공장으로 끌려갔다는게 정말이냐?》

《우리 누나는 빚값에 평양양말공장에 끌려갔는데 얼마나 고생하구있는지 몰라. 지난 정초에두 왔댔는데 거기서두 파업이 일어나구 대단한 모양이더라. 너 평양성안에 들어가면 우리 누나를 만나보려마. 영옥이라면 공장에서두 다 아는 모양이더라. 우리 누나두 파업하는데 앞장에 선 모양이야. 그러기 그놈들한테 잡혀가서 매까지 맞았다질 않니.》

《응, 그랬니? 너의 누나는 아주 훌륭해졌구나.》

《사실이야. 우리 아버지가 무슨 동맹엔가에 한축 들게 된것두 우리 누나의 덕이지 뭐. 우리 누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 죽었소 하고 앉아만 있으면 안된다구 늘 우리 아버지보구 얘기한단다.》

《너의 누나처럼 너두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워라.》

《나두 어른이 되거든 싸울래.》

영길이는 빙그레 웃었다.

《언제 어른이 될 때를 기다리구있겠니. 아이들은 못싸우는줄 아니?》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집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너는 더 놀다 가겠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우리두 돌아가야겠어. 그애들 쓸데없는 장난들을 하는 바람에 공연히 나까지 말을 들었네. 중한테 욕을 먹다니, 재수없지 않니.》 하며 영길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대원수님께서는 키만 자란것이 아니라 생각도 깊어졌고 누가 원쑤라는것도 알고있는 영길이를 미더운 눈으로 바라보시였다.

《그럼 후에 또 만나기로 하자.》

대원수님께서는 영길이의 두손을 꼭 잡으셨다.

《너 우리 집근처에까지 왔댔는데 바루 가겠니? 우리 집에 가서 하루밤 자면서 조밥에 토장국이라두 먹어보려마!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너를 만나면 굉장히 반가와할거야.》

《고맙다. 그렇지만 가야 해. 우리는 단체로 왔으니까.》

대원수님께서는 영길이와 섭섭히 헤여지셨다.

일행은 곧 정렬하여 나팔소리를 울리며 정거장으로 향했다.

기차에 몸을 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영길이가 하던 말들을 생각하시며 물속에 잠겨있는 봉산벌과 나무리벌을 줄곧 바라보셨다.

(흐르는 물을 막아두었다가 농사철에 내려보내면 사람들이 저렇게 고생하지 않을것이고 남동을 막으면 큰물도 막을수 있을것이 아닌가! 그렇게 못하는것은 모두가 왜놈들때문이야. 그놈들을 하루빨리 두들겨없애야 조선사람들은 마음놓고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살림을 알뜰히 꾸려가며 행복하게 살수 있어!)

대원수님께서는 멀어져가는 봉산벌과 나무리벌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생각하셨다. 기차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계속 달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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