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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31


한가위날 아침이였다. 대원수님께서 이곳 칠골에 오신 이후로 외가에서는 이날 처음으로 흰쌀밥을 하고 봄에 깨운 닭도 잡았다. 외삼촌어머님께서는 이날만이라도 할아버님과 대원수님께 흰쌀밥을 한그릇 떠드리려고 며칠전부터 밭벼밭에 나가 여기저기 익은데로 골라다니며 밭벼를 몇뭇 베다가 살훑이(벼훑는 옛날식도구)로 훑어 멍석에 펴서 해빛에 말리워가지고 절구에 찧었던것이다.

이날도 두 집식구가 모두 할아버님네 집에 모였다. 명구는 닭도 잡고 흰쌀밥도 했다고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형님! 오늘은 명절인데 하루 쉬여야지요?》

대원수님께서는 아침상을 물리시며 명식형님에게 물으셨다. 수리명절때 이모님과 약속한 일도 있고 해서 송평으로 놀러 가지 않겠는가고 묻고싶었으나 하루라도 일을 못하면 못살것으로 알고있는 형님이 과연 가겠는가가 똑똑치 않아서 이렇게 말씀하셨던것이다.

《오늘은 하루 놀아야겠다.》

《형님도 노는 날이 있구만요. 뭘 하시면서 놀 작정입니까?》

《뭘하면서 놀다니, 넌 그동안 잊어먹은게로구나. 한가위명절에 송평에 가서 밤 따먹자구 벌써 약속하지 않았니?》

《형님도 역시 기억하구 계셨군요.》

《흥, 내 머리가 이래뵈두 한번 약속하거나 한번 들으면 잊어먹지 않는 머리야.》 하며 명식형님은 시물시물 웃었다.

《그럼 갑시다. 난 오늘도 형님이 일하러 나가시면 어찌나 하구 막 걱정하던 참이였어요.》

이때 아래방에 있던 명구가 불쑥 나타났다.

《형! 나두 갈테야.》

형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명구는 대답도 기다릴새없이 모자부터 쓰고 앞장에 나섰다.

《넌 멀어서 못가. 널 데리구 갔다가는 가다오다 말게? 그대신 밤을 많이 따다주지.》

명식형님의 말이였다.

《명구는 나하구 산에나 올라가자.》

외할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명구는 거기도 가고싶은 모양이였다.

《정말 밤 많이 따와야 해!》

《많이 따오구말구, 이렇게 자루까지 가지구가지 않니.》

명식형님이 자루를 내보였다.

《그럼 난 산에 갈래.》

명구는 어느덧 할머니곁으로 가서 치마자락을 잡았다.

대원수님께서는 명식형님과 함께 이른아침에 송평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공동묘지가까이 이르자 신작로에는 오가는 길손들이 류달리 많았다. 어제까지도 땀투성이가 되여 논과 밭에서 뼈가 휘게 일을 하다가 오늘은 한가위날이라고 희끄무레한 옷들을 갈아입고 음식들을 싸가지고 산소에 찾아가는것이였다.

공동묘지는 사람들로 거의 뒤덮였다. 벌초를 깨끗이 하고 사람들이 그앞에 모여앉은 무덤이 있는가 하면 돌아볼 사람마저 없어졌는지 쑥대와 잡초가 무성한 무덤들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역과 굶주림, 천대와 멸시속에서 허덕이며 설음과 울분을 겨우 참아오다가 산소에 올라와서는 고인에 대한 추억과 자신의 슬픔이 한데 섞이여 소리높여 울게 되는것이다.

(올망졸망한 수많은 저 무덤들속에는 먹을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것을 입지 못하고 가난과 천대속에서 허덕이다가 불쌍하게 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겠구나. 그중에는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싸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간분들도 있을거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의 귀에는 그 어떤 신음소리와 울분과 분노의 웨침소리가 들려오는듯싶으셨다. 아까 신작로에서 보꾸레미들을 들고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는 마치 산놀이라도 가는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보였고 농민들도 오늘 하루만은 허리를 펴고 쉬게 되였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흐뭇하셨는데 정작 산에 올라와 여기저기서 나는 울음소리를 들으시니 대원수님께서는 슬픈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없으셨다.

외할머님께서도 산에 올라가 형무소에서 고생하시는 외삼촌을 생각하실거구 만경대할머님께서도 아버님을 생각하시며 걱정하시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쓸쓸한 생각이 드셨다.

(그러면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 편안한 날이 단 하루도 없단 말인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셨다. 갈수록 산골길이였다. 그동안 칠골에서 만경대 또는 평양성안에나 드나드시다가 오래간만에 산골길을 걷게 되니 듣지 못하던 산새소리, 풀벌레소리들이 더욱 정다웁게 들려왔다. 골짜기로 한동안 올라가시는데 산언덕아래서 연기가 풀풀 피여오르고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볼 때에는 산불이라도 나는것이 아닐가 하고 걱정하셨는데 가까이 가보니 움막집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감자움처럼 보이는데 굴뚝이 있고 연기까지 떠오르는것을 보아 거기에 사람이 살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지주놈에게 뜯기우다 못해 이런 산골에 와서 부대기를 일쿠면서 살아가는 모양이지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인생으로 태여나 죽지는 못하구 저렇게 살아가려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니.》

명식형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깊은 한숨을 짓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 송평집에 도착하신것은 해가 중낮쯤 올라왔을 때였다. 뜨락에서 대원수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모님이 문을 활짝 열더니 신도 똑바로 신지 못한채 뛰여나오는것이였다.

《역시 잊지들 않았댔구나, 어서 들어가자. 할아버지, 할머니랑 모두 편안들 하시지?》

《예, 편안들 하십니다.》

명식형님의 대답이였다.

《그래 성주두 몸 든든해서 공부를 잘하댔니?》

《예, 전 별일 없습니다. 외할머님댁에 와서 괴롬만 끼치지요.》

대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였다.

《성주는 최우등을 한답니다.》

《그래! 여기 와서 처음 배우는것이 많다구 아버님도 걱정하시던데 네 글재간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하여간 잘됐다. 무슨 일에나 남들보다 앞서야지. 그리구 명식인 어머니를 모시구 오지 않구, 남들은 모두 산소에 가는데 혼자 방구석에 앉아있겠구나.》

《어머니는 오늘도 일하러 나갔을거예요.》

《뭐, 오늘같은 명절날도 일을 해? 네가 어머니를 잘 돌봐야겠다.》

《나보구야 하루 쉬겠다구 했지만 어머니성미에 웬걸 쉬겠나요?》

《어서 이놈의 세상이 끝장이 나야겠는데… 앉아들 있어라.》

이렇게 말하며 이모님은 부엌으로 나가더니 떡을 들여왔다.

《그래두 고모네는 떡두 치구 제법 명절답게 맞았구만요.》

《올벼를 베다가 급작스럽게 좀 했다. 먹어봐라. 그래 칠골서는 떡두 못해 먹었니?》

《작은어머니가 밭벼를 훑어다가 절구질을 해서 오늘아침엔 흰쌀밥에 닭고기국을 먹었어요.》

《한가위에 떡 한개두 못해먹었구나. 어서들 먹어라.》

《방금 밥을 먹구와서 배고프지 않아요. 우린 밤 따먹으러 나가겠어요.》

《그래두 한개 맛이나 보구 나가보렴. 금년엔 밤이 아주 풍년이란다.》

이윽고 대원수님께서는 명식형님과 함께 집뒤를 돌아 골짜기로 올라가셨다. 골짜기는 어지간히 깊고 넓은데 거기에 밤나무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굵은 나무들이 많은데 사이사이에는 심은지 몇해 안되는 애숭이나무들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산비탈에 서시여 사위를 둘러보셨다. 산등성이에는 사과나무들도 대여섯그루 서있는데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리고 산밑에는 복숭아나무와 추리나무도 몇그루씩 서있었다.

《형님, 사과나무는 저렇게 높은 산에서두 아주 잘되누만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글쎄 말이다. 사과나무는 펀펀한 밭에만 되는줄 알았더니 산비탈에두 제법 잘되는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잠시동안 사과나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시고 생각에 잠기셨다. 만경대할아버님께서 언덕과 뚝에 복숭아나무를 심는것은 보았으나 이렇게 높은 산비탈에 사과나무를 심은것은 처음 보신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천리길을 걸으시면서 높고낮은 령을 많이 넘으셨고 수많은 산들을 보셨다. 어디에나 산발들이 뻗어있었다.

산을 지나면 그앞에 다른 산이 새로 나타났고 그 산을 지나면 또 다른 산이 보이군 했다.

그 많고많은 산에 여기처럼 골짜기에는 밤나무를 심고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데는 사과나무나 복숭아나무, 추리나무들을 심으면 얼마나 많은 과일을 딸수 있겠는가. 그러면 조선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것이 아닌가.

《어서 올라가자. 뭘 그리 바라보구있니?》

명식형님이 이렇게 독촉을 해서야 대원수님께서는 발걸음을 옮기셨다.

밤나무마다에는 밤송이들이 가득 달려있었다. 벙싯벙싯 아금이 버그러져 불그레한 밤알이 보이는가 하면 아름이 진 밤송이도 있었다. 다른 밤송이들도 조금만 있으면 모두 송이가 터질것 같았다.

명식형님은 밤나무아래로 다니며 밤아름을 줏고있었다. 그는 사위를 둘러보더니 물매 하나를 얻었다. 그는 밤송이가 많이 붙은쪽을 향하여 물매를 힘껏 던졌다. 밤송이가 후두두 하며 몇송이 떨어졌다.

《너두 와서 밤 까라.》

명식형님은 밤송이 하나를 나무가지로 퉁겨주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한발로 밤송이를 밟고 나무가지로 까기 시작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형님이 밤 까는것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계셨다. 그런데 형님의 솜씨가 노상 시답지 않으셨다.

《형님! 우리 누가 밤을 많이 따나 내기해볼가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해보자꾸나. 네가 나한테 견디겠니?》

《길구 짧은거야 대보아야 알지요.》

《허, 네가 언제 밤을 따봤기에 그러니?》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세알배기 밤송이 하나를 까놓았다.

《까먹어라.》

그는 한알을 자기가 쥐고 두알을 대원수님앞으로 내밀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밤알을 받으면서 《뭘 대구 내기를 할가요?》 하고 물으셨다.

《글쎄, 뭘 대구 할가? 지는 사람에게 볼기를 여라문개 치기루 할가?》

《그건 안돼요.》

《왜 안돼? 자신이 없니?》 하며 그는 시물시물 웃는것이였다.

《자신이 있으니까 안된단 말이지요. 생각해보세요. 글쎄 어떻게 제가 형님의 볼기를 칩니까.》 하고 대원수님께서 대답하시자 그는 고개를 젖히고 큰소리로 한동안 웃어대는것이였다.

《아니, 그럼 네가 나를 이기겠단 말이냐?》

그는 한참 웃고나서 이렇게 따지는것이였다.

《글쎄, 내기라는것은 언제나 마지막에 봐야 아는게 아닙니까.》

《하긴 그렇다. 그럼 지는 사람이 돌아갈 때 밤자루를 메구가게 하자.》

《그럼, 그렇게 합시다.》

이리하여 내기가 시작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모님네 집으로 뛰여내려가시여 작대기와 각쟁이 그리고 마당비와 삼태기니 판대기들을 메고 올라오셨다. 그리고는 밤이 제일 많이 달린 나무로 올라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작대기로 밤나무가지를 두들기기 시작하셨다. 밤송이들이 우박처럼 《후두두 후두두》 떨어졌다.

대원수님께서는 한 나무가지에 붙은 밤송이를 다 터시고는 다른 가지로 옮겨가시여 또 두드리시였다.

한참동안 이가지 저가지로 오르내리시며 후려갈기셨다. 밤나무아래에는 밤송이가 수북하게 쌓이게 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형님쪽을 바라보시고 나무에서 내려오셨다. 형님은 저쪽 큰 밤나무아래서 연방 물매를 던지고있었다.

나무에서 내려오신 대원수님께서는 각쟁이로 밤송이를 벅벅 긁어모으셨다. 밤송이가 무둑하게 쌓여 작은 무지가 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밤송이를 삼태기에 담아가지고 판판한 바위앞으로 가시여 밤송이를 바위우에 쌓아놓으셨다. 그리고는 판대기를 그우에 놓고 올라서시여 밤송이를 한참동안 비벼놓으셨다. 밤송이들이 툭툭 터져서 밤알이 쑥쑥 나왔다.

판대기로 한동안 비벼놓으시고는 마당비로 밤송이를 쓸어내셨다. 밤송이는 마당비에 모두 쓸려나가고 밤알만 수북이 남았다.

이렇게 몇번 하신 대원수님께서는 명식형님을 바라보시면서 밤을 자루에 넣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떨어진 밤알들도 모두 긁어넣으셨다. 어느덧 자루에는 밤이 그득하게 찼다. 이제는 더 넣을래야 넣을 그릇이 없게 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밤넣은 자루를 숲에 슬쩍 숨겨놓으시고 형님이 밤을 따고있는 밤나무아래로 다가가셨다. 명식형님은 아까와 같은 식으로 열심히 밤을 따고있었다.

《형님, 얼마나 땄어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시자 《자, 봐라.》 하며 적삼주머니를 내보이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큰소리로 한참 웃으시고나서 《아니, 여직껏 고걸 땄어요?》 하고 물으셨다.

《그래, 넌 얼마나 땄니?》

《난 자루루 하나밖에 못땄어요. 형님은 두주머니 가뜩 땄구만요. 하하하…》

대원수님께서는 계속 크게 웃으시였다.

《거짓말하면 이리한테 물려가.》 하며 명식형님은 곧이 듣지 않았다.

《노상 못땄니? 딴것은 다 먹었니?》 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밤을 한줌 꺼내서 대원수님앞으로 내밀었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대원수님께서는 형님이 주는 밤은 받지 않으시고 언덕아래로 뛰여내려가시여 감추어두셨던 자루를 메고 올라오셨다.

《자, 믿어지지 않으면 보여드리지요. 어때요?》 하며 자루를 털썩 내려놓으셨다.

《아니 그게 정말 밤이란 말이냐?》 하며 그는 의아한 눈으로 대원수님을 바라보는것이였다.

《그런데 너 어떻게 그렇게 많이 땄니?》

그는 리해할수 없다는듯이 대원수님앞으로 스적스적 걸어오더니 밤을 넣은 자루를 꾹꾹 눌러보고나서 《진짜 밤은 밤이로구나!》 하고 시물시물 웃는것이였다.

《기계루 땄어요, 기계루.》

대원수님께서도 따라 웃으셨다.

《기계루 따다니, 어디 가보자.》

명식형님은 대원수님께서 따시던 밤나무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대원수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머리를 끄덕이면서 《야! 네 궁리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며 경탄하는것이였다.

《형님! 나한테 졌지요?》

《졌다, 졌어. … 그런데 넌 밤나무가지를 많이 꺾어놔서 안됐구나.》

《아니야요, 밤나무가지를 꺾어줘야 명년에 밤이 더 많이 달려요.》

《건 어째서?》

《가지가 부러지면 작은 가지가 여러개 돋아나거든요. 그러니까 새 가지에서 밤이 더 많이 달리지요.》

《들어보니 아주 그럴듯하구나.》

대원수님과 명식형님이 밤자루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이모님도 깜짝 놀랐다.

《아니 벌써 그렇게 많이 땄니?》

《글쎄, 성주는 밤따는데두 날구뜁니다. 뭐 기계루 땄다나요.》

《그럼 떡들을 먹구 한자루 더 따가지구 가거라.》

《이젠 그릇이 있어야지요 뭐.》

대원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릇이야 주지 않으리. 그리구 밤청대도 해먹구 가거라.》

《밤청대가 뭐야요?》

《밤송이를 그대루 불에 묻었다가 가시가 그슬려지구 송이가 탄 후에 까먹으면 아주 별맛이란다.

그런데 식혀 먹어야지 덤비다가는 입 덴다.》

이모님도 밤청대를 먹다가 입을 데본 일이 있는 모양인지 이런 말을 하며 싱글벙글 웃는것이였다. 두분은 점심을 드시고 다시 밤나무아래에 가서 밤을 한자루 더 따왔다. 그리고 밤청대도 했다.

대원수님께서는 하루를 재미있게 노시고 해가 퍽 기울어져서야 송평을 떠나셨다.

《내기 해서 내가 이기긴 했지만 형님의 몫을 제가 좀 져다드려야겠군요.》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는 자루 하나를 걸머지셨다.

《추리와 복숭아를 먹을 때 왔더라면 좋았을건데. 사과 먹을 때 꼭 한번 더 오너라. 대국광맛이 아주 좋단다.》

《산마루에 심은 사과나무가 이모님네것인가요?》

《우리 사과나무란다. 몇나무 되지는 않아두 가을에는 사과를 지천으로 먹는단다. 꼭 오너라.》

《예, 짬을 봐서 오겠습니다. 그런데 사과나무는 왜 밤나무처럼 많이 심지 않았습니까?》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밤나무는 이 마을의 조상할아버지들이 아들, 손자들을 위해서 심었는데 어디 지금이야 멀리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있다더냐. 하기야 당장 먹을것이 없는데 어떻게 7~8년후에 먹을것까지 생각하겠니?》

《그런데 이모님네는 사과나무를 용케 심으셨구만요.》

《그건 우리 시아버님이 심어주신 덕에 지금 잘 따먹구있단다. 시아버님이 다섯해만 더 계셨더라면 저 뒤산이 모두 과일동산이 되였을게다. 시험삼아 심어본다면서 심은 사과가 저렇게 주렁주렁 달리지 않았겠니.》

대원수님께서는 송평을 떠나시면서 많은것을 생각하셨다.

(왜놈들을 쳐부시구 나라의 큰 살림군이 나서기만 하면 우리 나라의 수많은 산들을 과일동산으로 만들수 있겠구나. 깊은 골짜기들에는 밤나무들을 심고 경사가 뜬데는 사과와 배들을 심고 마을들에는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추리나무들을 심으면 봄에는 꽃동산, 가을에는 과일동산이 될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로 될수 있겠는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면서 산길을 걸으셨다.

대원수님께서 명식형님과 함께 비탈길을 걷고계실 때였다.

저쪽 오솔길로 웬 처녀애와 어린애가 나무단을 이고지고 아래로 내려오는것이 보였다.

(명절날에도 나무를 하러 다니는 아이들이 있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연방 그쪽을 바라보셨다.

그 처녀아이와 어린애도 대원수님께서 내려가시는쪽으로 계속 내려오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어린애들이 가까이 내려오는것을 보자 깜짝 놀라시였다.

《아니, 이게 누구냐. 남북이랑 장쇠가 아니냐?》

대원수님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부르시였다.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소년축구대회가 있던 날 토성랑에서 어머니의 시체에 매달려 목놓아울던 그들의 모습이며 아버지를 찾으러 일판으로 함께 돌아다니던 기억이며 일본십장놈의 모진 채찍과 눈초리가 환히 떠올랐다.

남북이는 이고가던 나무단을 길가에 내려놓더니 《오빠!》 하고 소리칠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두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글썽해졌다. 장쇠도 대원수님을 알아보겠는 모양인지 벌씬벌씬 웃으며 쳐다보는것이였다.

《너희들 어떻게 여기 와서 나무를 하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우린 이리루 이사왔어요. 저아래 움막집이 우리 집이예요.》 하고 처녀애가 대답했다.

《언제 이사왔니?》

《그때 공장을 짓겠다구 집을 헐라는걸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헐지 못하겠다구 뻗치구있었지요 뭐. 그랬는데 하루는 그놈들이 자동차를 타고 와서 집을 밀어버리지 않겠어요. 그리구 우리 아버지는 일판에서 일자리까지 떨어지구말았어요.》

《그럼 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냐?》

《이 산너머에 새 공사판이 생겼는데 거기서 흙파는 일을 하고있어요.》

《그래서 여기다 움막집을 지었구나.》

《예.》

남북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이며 잦아드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일두 못하겠다구 해요.》

《왜?》

《일은 몹시 고되구 돈두 제때에 주지 않는다구 그 일두 그만두어야겠다구 해요. 벌써 이리루 온지 두달이나 됐는데 돈은 상기 한번두 못받아봤어요.》

이 말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가슴이 답답해지셨다.

《그럼 다른데 어디 일자리라두 있다구 하던?》

《다른데 일자리가 있으면 벌써 그리루 갔지요 뭐. 아버지는 북간도로 들어가겠다구 해요. 아마 며칠후에 떠나게 될것 같아요.》

《그래?》

대원수님께서는 북간도도 여기와 같으니 들어가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싶으셨으나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으셨다.

《아는 아이들이냐?》 하고 명식형님이 귀속말로 물었다.

《토성랑에서 만났던 오누이인데 불쌍한 어린애들이예요. … 이 밤을 주고 갈가요?》

《주구 가자꾸나.》 명식형님도 서근서근 대답하였다.

《그럼, 너희 집으로 내려가자. 가서 집구경이라도 하자꾸나.》

《집구경이야 뭐 할게 있나요. 부자집 돼지우리만두 못한데요.》

일행은 움막으로 내려갔다. 뒤는 언덕을 허물어 벽으로 만들고 량옆을 떼로 막고 앞에는 나래를 달았는데 지붕은 나무가지를 걸치고 조짚을 아무렇게나 덮어놓았었다. 그리고 그옆에는 작은 솥이 하나 걸려있었다. 우선 이 움막에서는 겨울을 날것 같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이 불쌍한 두 남매의 장래를 생각하시니 자꾸만 눈물이 쏟아져나올것 같아서 그대로 서있기조차 민망하셨다. 도와줄 아무런 방도도 없는 한 그자리를 뜨는것이 차라리 나을것만 같으셨다.

《남북아! 이 밤을 장쇠에게 삶아주어라.》

대원수님께서는 자루를 남북이에게 내주시였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야요.》

남북이는 펄쩍 뛰는것이였다.

《누나!》

장쇠는 누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밤을 받으라는 눈치였다. 장쇠의 두눈에서는 밝은 빛이 넘쳐흘렀다.

《너희들 잘 있어라.》

대원수님께서는 밤자루를 주시고 움막에서 나오셨다. 그러나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으셨다. 그대로 두고가서는 안될 아이들을 버리고가는것만 같아 죄스러운 감을 느끼셨다.

《오빠, 안녕히 가세요.》

《형, 잘 가요.》

두 남매는 언덕에까지 따라와서 배웅해주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돌아오시면서 줄곧 두 남매에 대해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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