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일화로 보는 위인상 1》중에서
대국상의 나날에도
2011년 12월은 우리 인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비통하고 애석한 지울수 없는 슬픔의 달이였다.
불세출의 대성인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천만뜻밖에도 인민을 찾아가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는 이 땅을 일순간에 비애의 바다로 만들어놓았다. 전체 군대와 인민이 장군님께서 어떻게 우리곁을 떠나실수 있는가고 통탄하며 조의식장을 찾아 목놓아 곡성을 터쳤고 슬픔의 파도는 낮과 밤이 지새도록 잦을줄 몰랐다.
야속하게도 12월의 혹한이 슬픔에 몸부림치는 인민들의 가슴을 더 얼어붙게 하였다.
거리들에 시민들의 곡성이 그칠줄 모르던 주체100(2011)년 12월 20일이였다.
김일성광장을 비롯한 야외조의식장들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장군님을 애타게 부르며 목놓아 통곡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원수님께서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우리 인민들은 정말 좋은 인민이라고, 이런 인민을 위해 손발이 닳도록 일하자고 일군들에게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3일후인 12월 23일 일군들은 자자구구 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넘쳐나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친필서한을 받아안게 되였다.
원수님께서는 서한에서 장의행사기간 인민들의 리익을 옹호하고 편의를 철저히, 우선적으로 보장하는데 중심을 두고 모든 행사를 조직진행하며 당조직들과 일군들은 추운 겨울밤 추위속에서 인민들이 떨고있다는것을 아시면 우리 장군님께서 가슴아파하신다는것을 명심하고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적으로 보장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글발마다 인민에 대한 뜨거운 정과 사랑이 넘쳐나는 원수님의 서한에 접한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은 오열을 터치였다.
사실 위대한 장군님의 령전에 조의를 표시하는것은 장군님의 슬하에서 행복만을 받아온 인민들모두의 마땅한 도리였고 가장 숭고한 의리였다. 그래서 하늘처럼 믿고 살던 장군님을 잃고 그이를 잘 모시지 못한 죄책감에 쏟아지는 눈속에서도 밤을 지새며 몸부림치고있는 인민들이였다.
너무도 응당한 도리를 두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인민들이 추운 겨울밤 추위속에서 떨고있다는것을 아시면 우리 장군님께서 가슴아파하신다고 그처럼 걱정하시니 친필서한에 접한 이 땅의 천만군민은 그 사랑이 너무 뜨거워 쏟아지는 눈물을 어쩔수 없었다.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야외조의식장을 찾는 인민들과 호상을 서는 사람들이 모자와 머리수건, 장갑 등을 착용하게 하고 조의를 표시할 때에만 벗도록 하며 그들이 추운 날씨에 불편을 느끼거나 동상을 입는것과 같은 현상이 절대로 나타나지 않도록 할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다음날 호상을 서는 사람들의 몸을 덥히는데 필요한 수만개의 발열붙임띠와 발열신발깔개를 조의식장들에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2월 25일에는 추운 겨울날 맹물을 끓여주는것보다 더운물에 사탕가루를 풀어주면 좋아할것이라고 시안의 조의식장들에 사탕가루, 산꿀, 우유가루, 빵, 과자 등 많은 식료품을 보내주시였으며 조의식장을 찾는 사람들과 호상을 서는 사람들이 추운 겨울에 동상을 입거나 감기에 걸리지 않게 의료보장대책을 세우도록 할데 대한 조치를 또다시 취해주시였다.
이 소식은 삽시에 사람들에게 전해져 얼음장같이 얼어든 가슴가슴을 뜨겁게 녹여주었다.
조의식장을 찾아 은정넘친 더운물과 꿀물, 발열붙임띠와 발열신발깔개를 받아든 사람들은 그에 얼굴을 묻으며 저저마다 북받치는 오열을 터뜨리였다.
(우리들이 좀 추운들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 따뜻이 보살펴주시옵니까. 그이는 진정 만민이 우러러따를 대성인이십니다.)
추모기간에 인민들이 받아안은 사랑!
정녕 이것은 겨울의 강추위가 아무리 대지를 얼구고 기승을 부리여도 따스한 빛과 열로 만물에 생의 자양분을 안겨주는 위대한 태양의 빛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