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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제 3 장


1926년 여름 (2)


1

취기로 축 처져있던 우회장의 눈꺼풀이 찬물이라도 들쓴듯 치들렸다.

《최박만이한테서 돈을 빌리시겠단 말씀이요?!…》

곽칠성은 머리를 끄덕이며 설명을 달았다.

《예. 금광이라구 하나 차려놓긴 했소만 자금이 딸려서 애로가 이만저만 아닌걸요. 그래 최박만씨가 큰돈을 움직인다는 소문을 듣구 생각하다가 우선 형편부터 알아볼가 해서 이렇게 우회장을 찾아온거요.》

그러자 우회장이 머리털이 빠져 대우를 낸것처럼 반들거리는 정수리를 제끼며 너털웃음을 치는것이였다.

《흐허허허…》

도심과 떨어진 동소문안의 뒤골목이여선지 청료리집 구석방은 한적했다. 마고자를 입은 남자접대원 하나가 늦은 오후의 해볕이 자글대는 창문쪽에서 식탁을 거두느라 얼른거릴뿐이다.

잠시후 우회장은 배추를 둔 돼지고기볶음을 한점 집어 짜증스레 씹으며 도리질을 쳤다.

《내 사촌과 막역지우라니 툭 터놓고 말씀드리는건데 최가의 낯판대기에 씌워진게 사람가죽인줄 아시오? 개가죽이라오.》

칠성은 그러는 그의 모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차림새로 보아서는 밥술이나 뜨는 사람이였지만 부석부석한 눈두덩이며 거푸시한 머리칼들, 풀기가 빠져버린 와이샤쯔 등 어디라 없이 시름기가 잔뜩 낀 모습이였다.

그래도 명색은 금은세공품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어느 상회 회장인지라 그런 사람과 마주앉아있는 곽칠성 역시 전날의 품팔이군행색은 씻은듯이 가셔버린 모습이다. 자기를 어느 회사의 전무로 소개한데 어울리게 회색세루양복을 빼입고 기름을 발라 고수머리를 한옆으로 갈라붙인 칠성의 차림새는 제법 은행원이나 실업계인물을 방불케 했다.

우회장이 또다시 술잔을 잡는다. 벌써 여러잔째였다. 두눈을 지르감은채 독한 빼주를 단숨에 삼켜버리는 그의 얼굴에 울혈이 서려있었다.

칠성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우회장은 최박만씨의 덕을 단단히 보신게군요.》

그 말에 우회장은 한숨을 쏟아놓더니 게면쩍은듯 투덜거리는것이였다.

《어휴, 돈나는 모퉁이 죽을 모퉁이라더니만 말도 마시유.》

그리고는 화가 치받쳐 씩씩거리며 복장이 터지는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난 몇년전부터 시세에 따라 금은세공품의 재료를 샀다팔았다 하면서 폭리를 추구하는 원료투기에도 손을 대왔더랬지요. 근데 올 정초에 귀가 번쩍 틔는 소문이 들려왔소그려.

글쎄 상해의 은값이 오른다는게 아니요. 소식줄을 통해 확인해보니 과연 상해의 어느 서양은행에서 은을 닥치는대로 사들이고있다는게요.

서양투자가들이란게 오죽이나 셈이 빠른가요. 자세한 내막은 알길없었어도 그 량반들이 마구 은을 사들일 땐 필경 머지않아 은시세가 폭등할거라는 조짐이 아니랴싶었소. 그런즉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을 사들이면 여불없이 땡을 잡을것같더군요.

난 은값이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대로 자금을 털어 은을 사들이기 시작했지요. 그러다나니 상회의 자금만으론 성차지 않아 최박만이한테서 반년기한으로 5만원의 고리채까지 빌렸구요.

막상 최가한테 손을 내밀자니 처음엔 께름하더군요. 최박만이라면 돈독이 올라도 더럽게 오른 수전노로 장안에 소문난 작자이니까요. 허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다가 돈은 언제 벌겠는가싶었소. 수전노의 돈이든 자선가의 돈이든 재간껏 빌려다 리문만 걷으면 그만이라고 난 생각했더랬지요.

허, 근데 이런 도깨비조화라구야. 거액의 자금을 던져서 은을 사들인 뒤 이제나저제나하면서 은시세가 폭등하기만을 고대했건만 천만뜻밖에도 얼마후 은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는게 아니겠소.

난 간이 록두알만해져서 손발이 닳도록 행운을 빌었지요. 그랬건만 은값은 나날이 곤두박질쳐서 나중엔 본래시세의 절반가까이로 폭락하고말았소그려.

눈앞이 새노래지더군요. 돈벼락을 꿈꾸면서 들이밀었던 상회의 숱한 자금은 어떻게 건져내며 더군다나 리자조차 물 길이 막막한 최박만이의 엄청난 빚은 무슨 수로 갚는가 말이요.

최가가 어떤자게요. 모기다리에서도 피를 뽑아낼 인간이지요.

아닐세라 채무상환기일이 가까와지자 기다렸다는듯이 최가가 올가미를 조여오더군요. 그자의 수작인즉 계약을 어기는 경우 제잡담하고 상회를 내놓으라는게요. 내가 문턱이 모지라지게 찾아다니면서 상환기일을 늦춰달라고 통사정을 했건만 애초부터 괭이 기름종지 넘겨다보듯 상회를 탐내던 최가가 그런 소리에 귀기울일리 있나요.

땅을 칠 노릇이지요. 도마우의 고기신세라고 결국 며칠후면 난 최가한테 꼼짝없이 상회를 뺏기게 됐소그려. 흐흐흐…》

우회장의 목구멍에서 쓰거운 웃음소리가 새여나왔다. 괴롭게 얼굴을 찡그리며 그는 후회하듯 중얼거렸다.

《허욕이 패가라더니 어휴- 난 지금 접시물에라도 빠져죽고싶은 심사요.》

칠성은 탄식에 절은 푸념소리를 들으며 쓴입을 다셨다.

탐욕에 눈이 멀어 파산에 직면한 우회장의 꼴도 눈꼴사나왔지만 그보다도 등치고 배 째먹는 최박만의 짓거리는 얼마나 가증맞은것인가. 남의 눈물로 환락을 누리려는자들의 치사한 넉두리를 듣고있자니 역겨움을 금할수 없었다.

허나 어쩔 도리가 없는 자리여서 칠성은 묵묵히 침묵만 지키고있었다. 그럴 사정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 박상궁이 사동궁쪽에서 귀띔해온 소식이라면서 그에게 전갈을 급히 보내왔던것이다.

윤대비가 빚독촉에 쫓기우는 아버지의 끈질긴 성화에 못이겨 끝내 황제어새를 내여주었고 아버지 윤택영은 곧바로 옥새를 최박만이라는 채권자에게 넘겨주었다는것이 아닌가.

칠성은 창졸간에 앉은벼락을 맞은 심정이였다.

윤대비가 황제어새를 내주다니? 게다가 윤택영이란 량반은 선임금이 맡긴 옥새를 사사로운 빚막이로 꺼리낌없이 넘겨주었다니 참으로 기구멍이 막히는노릇이 아닐수 없었다.

한때는 《국모》라고, 《부원군》이라고 자처하며 만백성의 섬김을 받던 황실족속들이 아닌가. 뭇신하들에게 늘쌍 《위국충절》을 지엄하게 훈시하던 어르신네들이 아닌가.

그러던 그네들일진대 아무리 세상이 뒤바뀌여 왜놈천하가 되였다한들 어쩌면 한쪼각의 체면마저 집어던진채 나라의 마지막옥새를 엿가락인양 팔아버릴수 있단 말인가!

개돼지만도 못한것들이라는 사나운 욕설이 곽칠성의 입에서 거세게 튀여나왔다. 하기야 나라와 백성까지 저버리면서 저들의 안락만을 부둥키고 살아온 족속들이니 이제 와서 옥새 하나 덤으로 더 팔아넘겼다 하여 새삼스러울게 무엇이랴.

그런 추물들한테 《대의》니 《충절》이니 하는것을 기대하며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온 자기나 박상궁이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칠성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안된다!)

결단코 황제어새를 시정배들의 흥정거리로 내맡길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옥새를 손에 넣어 절통하게 떠나간 상건형의 원혼을 위로하고 독립혈전을 위한 군자금을 마련해야만 했다.

북치듯 쿵쿵대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칠성은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아나갔다.

다시 생각해보니 차라리 잘된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왜놈들의 경계가 삼엄한 구중궁궐속에 있는 물건이여서 가까이 다가갈 방도조차 묘연했었지만 인제는 황제어새가 궁밖으로 나왔으니 불행중다행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독살스러운 왜놈들의 마수가 언제 뻗쳐올지 모르고 돈밖에 모르는 시정아치들이 당장이라도 옥새를 또다시 넘겨버릴 판국이니 순간도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하여 그길로 나선 칠성은 화급히 줄을 놓아 최박만이라는 작자에 대해 캐보았고 이 시각에는 이렇게 최가의 빚을 얻어썼다가 쫄딱 망하게 되였다는 우회장을 방조자의 소개로 만나고있는것이다.

별안간 오기가 발작한듯 우회장이 된욕을 퍼붓는다.

《최박만이 이놈! 어디 몇대나 누려먹나 두고보자! 네가 망하는 꼴을 보기 전에 내가 꺼꾸러질줄 아느냐!》

곽칠성은 최가에 대해 더 알아보고싶어 짐짓 우회장을 눙치려들었다.

《설마한들 최씨가 그렇게까지 몰인정하게 나올라구요. 그쪽에서두 돈을 잃을가봐서 우야 되게 나오는가부지요.》

우회장이 가소롭다는듯 코방귀를 뀌였다.

《헝, 소가 웃다 꾸레미 터질 소릴랑 하지도 마시오. 언젠가 웬 쓸개빠진 녀석이 최박만이한테 부자되는 비결을 물었다는구려.

그때 최가가 대답하길 〈그야 참 쉬운 일이지. 오줌 쌀 때 한쪽발 들고 싸게나.〉 했다는게 아니요. 물어본 녀석이 아연실색해서 그건 개가 하는짓이 아닌가고 되물으니 최가는 천연스레 〈암! 사람다운짓으론 절대 돈일랑 벌수 없당께.〉 하고 그루를 박았다는게요.

최박만이란게 워낙 그런 말종이란 말이요. …》

달아오른 우회장의 입에서 최가의 너절한 리면사가 장마에 넘어난 하수마냥 꾸역꾸역 쏟아져나왔다.

하찮은 장돌뱅이로 이장저장 떠돌아다니던 최박만이 벼락부자가 될수 있은것은 두말할것없이 왜놈들 덕택이였다.

왜놈들이 밀려들자 남먼저 머리를 깎고 《일진회》에 드나들던 그자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시작되자 함평에 기여든 왜놈측량군들을 따라다니면서 조선농민들의 땅을 수탈하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는것이다. 그 공으로 동척농장의 농감이 된 최가는 동양척식회사가 빼앗은 함평만일대의 진펄을 논으로 개간하기 위해 농민들의 등가죽을 사정없이 벗겨내며 오두발광했다고 한다.

왜놈들은 저들에게 충실한 사환군에게 거의 한달갈이나 되는 땅을 헐값으로 불하해주었고 그리하여 이전날의 장돌뱅이였던 최박만은 일약 함평벌에서 제노라 하는 지주로 둔갑하였던것이다.

지주가 되자 최가의 치부욕은 더욱 악착스러워졌다. 흉풍을 가리지 않고 소작농들에게서 6~7할이나 되는 소작료를 에누리없이 받아낸것은 물론이고 땅세와 비료값도 소작인들한테 모조리 들씌웠다.

땅세야 땅임자가 무는것이 응당하고 비료값도 수확물을 차지한 몫만큼 지주가 무는것이 마땅치 않느냐고 소작인들이 들이대면 최가는 그렇게 똑똑한것들이 왜 남의 땅에 빌붙어 사느냐며 가차없이 땅을 떼버리는것이였다. 지어 소작료를 제대로 못바친다고 촌수가 밭은 친척들한테 소작주었던 땅도 서슴지 않고 뗐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가 하면 변놓이도 소작료 못지 않게 최가의 재산을 불궈주는 요술방망이였다.

왜놈들한테 아부하여 장기저리로 빌려온 자금을 령세상인들에게 단기고리로 빌려주고 닷새에 한번씩 돌아오는 장날마다 돈을 회수하는 장변놀이는 말그대로 누워서 떡먹는 돈벌이였다. 최가는 소작인들을 상대로도 변놓이를 해먹었는데 그 수법이 참으로 새우간 빼먹을 지경이였다.

처음에는 상대의 밑천을 보아가며 고리대를 놓고는 상환기일이 지나도록 본전은 채근하지 않은채 몇달에 한번씩 리자만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리자를 본전의 몇갑절 되게 따먹고나서야 본전채근을 하는데 빚을 못갚으면 집달리를 내몰아 집이고 세간이고 무작정 차압하게 했고 소작인들이 억울함을 참을수 없어 대들면 대뜸 순사를 불러대군 하였다.

어디 그에만 그쳤던가. 보리고개를 넘기기 어려워하는 절량농가들에 장리쌀을 꿔줄 때에는 말질을 해도 닭알섬 다루듯 곡식을 조심스럽게 말에 쏟아넣게 하였지만 가을에 가서 곱절로 받아내는 곡식은 자갈 처넣듯 말에 콱 들붓고 흔들어놓기까지 하는걸 보아야 마음을 놓았다는것이다.

그렇게 그악을 부려서인지 날이 감에 따라 최가의 재산은 날개라도 돋친듯 늘어만 갔다.

했건만 바다는 메워도 탐욕은 못메운다고 최가는 돈구멍수를 찾아 도적개 헌바자 찌르듯 계속 허발을 쳐댔다.

정미소를 세우기만 하면 돈을 곽지로 거둬들일수 있다는 소문을 듣자 정미소를 두개씩이나 차려놓고 도정료를 긁어들였는가 하면 밑천 적게 들이고 돈벌기는 물장사가 제일이라는 소리를 얻어듣고는 함평천에 보를 막고 소작인들에게 관개용수를 팔아먹기도 하였다. 하면서도 남에게는 감기고뿔도 거저 주기 아까와 몸살치살하는 최박만을 두고 여느 사람들은 물론이고 친척들까지도 돈 다음에 나온 놈이라며 하나같이 혀를 털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듯 린색하기 짝이 없는 최가가 왜놈관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제 재산을 통채로 들이밀듯 극성을 떨었다는것이 아닌가.

온통 왜식으로 꾸며놓은 집에 왜놈나부랭이라도 들리면 최박만은 당장 미소시루(일본된장국)를 만들어라, 사시미(일본식생선회)를 만들어라 하며 분주탕을 피웠고 언젠가 왜놈의 집에 가서 보고 온대로 닭도 산채로 털을 뽑아 료리해야 일본사람들이 좋아한다며 집안것들을 들볶아댔다. 거기에다가 기회만 생기면 왜놈고관들한테 뢰물을 섬겨바치면서 갖은 비나리를 다 치군 하였고 지어 도지사라는자가 함평에 내려왔을 때는 순금으로 만든 꽃병까지 들고 찾아가 왜놈의 입이 가로 터지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가 아부하던 왜놈고관들이 본국으로 소환될 때면 만사불구하고 부산까지 따라가 석별의 눈물을 쥐여짜군 하였다니 실로 개가 웃을 일이 아니랴.

밑구멍도 기꺼이 핥는 최가의 아첨에 순사나 면서기따위들은 말할것도 없고 경찰서장이며 판검사, 군수와 도지사에 이르기까지 녹아나지 않는자가 없었으며 그런것으로 하여 권세의 덕을 한두번만 맛보지 않은 최박만이였다.

한번은 도경찰부장을 하다가 경무국 고관으로 승진해간 왜놈과 만나 료정에서 먹자판을 벌려놓은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옛정을 잊지 않는 최가의 끈끈한 《의리》에 감동해난 왜놈이 넌지시 비밀 한가지를 뚱겨주었다. 서울 한강기슭에 있는 한남동일대의 토지를 미리 사두라는것이였다.

그때껏 논밭만 사오던 최박만으로서는 뒤로 나자빠질 소리가 아닐수 없었다.

대체 뭘 담보로 생소하고 머나먼 도회지땅에다 수십만원어치의 돈을 줴뿌리란 말인가. 하지만서도 제 말대로 하면 횡재를 할테니 혼자만 먹지 말라고 오금박는 왜놈의 말에 배심이 생긴 최가는 마침내 그 말을 따르게 되였다.

아닌게 아니라 이듬해부터 친일파들의 주택이 왜놈관청의 허가를 받아 한남동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땅값이 껑충 뛰여오르는통에 사들인 값의 몇곱절 되는 값으로 토지를 되팔아버린 최가는 자기에게 은총을 베풀어준 경무국 고관에게 거액의 사례금을 찔러주고도 엄청난 폭리를 남길수가 있었다.

그 일을 통하여 일본사람들의 권력이야말로 천행만복을 가져다주는 박씨라는것을 새삼스레 절감한 최박만은 더욱 든든한 세줄을 잡기 위해 서울출입을 빈번히 하게 되였고 나중에는 아예 서울로 자리를 옮기고말았다는것이다.

최가의 더러운 행적을 듣는 곽칠성의 눈앞에 이태전에 들렸던 황해도의 어느 농촌마을정경이 다가왔다.

꺼칠하게 마르고 수심에 찬 농부들의 주름투성이얼굴들, 누렇게 들뜨고 검버섯이 핀 시골녀인들의 얼굴들과 맨발인 아이들의 주린 모습들 그리고 거적을 뒤집어쓴듯싶은 궁기흐르는 초가들이며 춘궁기의 끼니거리로 껍질을 벗기운채 하얗게 말라죽어가던 소나무들…

악운과 가난, 횡포에 쫓기는 그 모습들이야말로 왜놈들과 주구배들에게 뜯기우고 쪼들리는 이 땅의 모습이 아니던가.

왜놈의 삽살개가 되여 동족의 피눈물로 살찌고 배를 불리는 최박만같은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욱 치밀어올랐다. 그런 놈들한테 옥새마저 욕보일수는 없다고 거듭 다짐하며 칠성은 입술을 악물었다.

눈앞에서는 분기가 충천한 우회장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내두르며 줄창 최가를 욕질해대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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