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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30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학기 첫날이 돌아왔다.

방학동안에 산과 강, 논과 밭으로 찾아다니며 해볕에 몸들을 태워 구리빛으로 변한 동무들은 모두 씩씩한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났다.

한달동안이나 학교정원을 거의 비워두었기때문에 이구석저구석에는 풀들이 무성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풀을 뽑고계셨다.

이때 팔골재등으로 어른들과 아이들이 한패 밀려내려왔다.

그들은 모두 창덕학교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어른들중에는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와 감투를 쓰고 긴 대통을 든 할아버지도 있었고 조골조골하게 구겨진 중절모자를 눌러쓴 아저씨도 있었다. 호철이가 얇은 판대기같은것을 신문지에 싸들고 맨앞에 서서 바삐 학교정문으로 들어왔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줄레줄레 달고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뒤를 따랐다. 아이들의 옷에는 먼눈에도 여기저기 먹이 묻은것이 보였다.

《너희 동네사람들이냐?》

대원수님께서 호철이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물으셨다.

《응, 우리 동네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러 왔어.》

《한문서당에 다니던 아이들이구나.》

《맞았어. 서당이 깨졌단다.》

《깨지다니?》

《서당에 다니겠다는 아이가 한명두 남지 않았으니까 깨질밖에 없지 않겠니.》

《그것 참 잘됐구나. 그런데 어째서 서당에 안다니겠다구들 그랬다던?》

《학교에 오면 칠골아이들이 때려준다구 안오던 아이들인데 네가 온댐부터야 어디 싸우는 아이들이 있니? 그리구 이번에 축구시합에서 우리가 이기는 바람에 창덕학교 이름이 버쩍 올라갔거덩.》

《그래? 그런데 너 옆에 끼고 온건 뭐냐?》

《이거?》

호철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풀뽑던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호철이에게로 쏠렸다. 호철이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유리야, 유리.》 하고 대답하였다.

이때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이 학교에 들어온 첫날 아침에 있은 일과 인삼이를 만났던 일들이 떠오르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일순 호철이를 얼싸안고싶으신 충동을 느끼셨다. 만일 다른 아이들이 없었던들 대원수님께서는 그대로 계실수 없었을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반가운 나머지 호철이를 바라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이때 덕범이가 물었다.

《유리는 뭣하러 가져오니?》

《내가 깨뜨린 유리를 이제라두 가져와야 할게 아니가.》

호철이는 들릴락말락하게 중얼거렸다.

덕범이도 그제야 생각났는지 《자식같으니, 네가 깨뜨리구 시치미를 뻑 따구있었댔구나. 선생님께 빨리 갖다드려라.》 하며 무릎으로 호철이 엉뎅이를 툭 찼다.

《그럼, 선생님께 드리구 올게.》

호철이는 엉뎅이를 슬쩍 만져보더니 직원실쪽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아이들의 생활이 점차 달라지는것을 보시고 대원수님께서는 마음이 한없이 즐거우셨다.

조금후에 호철이가 뛰여나왔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원수님곁으로 왔다.

《드렸니?》

대원수님께서 호철이와 함께 풀을 뽑으며 물으셨다.

《응!》

《뭐라구 말씀하시던?》

《난 선생님이 이제는 잊었으리라고 생각했댔는데 그대루 기억하구 계시지 않겠니? 꼭 유리를 가져오거나 사죄를 할줄 아셨다는거야.》

《어떻게 네가 깨뜨린걸루 아셨을가?》

《그거야 뻔하지 뭐. 다른 애들이 깨치구서야 이제껏 입을 다물구 있었겠니?》

《네가 끝내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가?》

《졸업하구 나갈 때 말씀하실려댔다는거야. 야! 난 정말 오늘 기분이 좋다. 속이 후련해졌어.》

《유리는 사왔니?》

《우리 어머니보구 어제야 말했어. 그랬더니 어제 당장 성안에 들어가서 사오지 않았겠니.》

《너의 어머니는 뭐라고 말씀하시던?》

《전같으면야 또 호되게 욕달구지나 얻어먹었을건데 어제는 칭찬하시더라. 살림은 가난해두 마음이 곧아야 한다는거야.》

《너의 어머니두 훌륭한분이시구나. 그런데 지금까지 숨기구있던건데 어떻게 돼서 너의 어머니께 이야기하게 됐니?》

《나도 그것때문에 많이 생각했어.》

호철이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경위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호철이는 개학날 유리를 깨뜨리고 별로 량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었다. 누구도 그 비밀을 몰라주기만 바랐던것이다.

그런데 대원수님께서 창덕학교에 오신 후부터 학교도 점점 달라졌고 아이들의 생활도 달라졌다. 호철이는 대원수님의 도움으로 공부도 잘하게 되여 칭찬도 가끔 받게 되니 마음도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는 가끔 새로 끼운 창유리를 바라볼 때마다 개학날의 생각이 떠오르군 하였다.

(성주같은 학생이 만일 유리를 깨뜨렸다면 그길로 곧 선생님께 가서 사실대로 말했을거야. 그런데 나는 왜 그것을 숨기고있을가?)

호철이가 사실을 밝히지 않은것은 유리값을 물고 안무는 거기에 있은것은 아니였다. 《장난만 하는 아이》, 《쌈만 하는 아이》, 《말썽만 일으키는 아이》라는 그런 말을 듣는것이 더 싫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장난도 싸움도 점차 하지 않게 되고 공부에 취미를 붙이게 되니 유리에 대한 문제가 가끔 머리에 떠오르면서 가책을 받게 되였던것이다.

(이제라도 선생님에게 솔직히 이야기할가?)

이렇게도 여러번 생각해본 호철이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가뭇 사라지고 《앞으로나 잘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더 넓은 자리를 차지했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낮이였다. 호철이가 개학을 앞두고 책들을 정리하고있는데 누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으기 놀란 그는 밖으로 뛰여나갔다.

인삼이가 온것이였다.

《아니 너 어떻게 이렇게 찾아왔니? 들어가자꾸나.》 하고 호철이가 말했다.

《아니야, 방에 들어가지 말구 저기 산에 가서 얘기하자.》 하며 인삼이는 턱으로 뒤산을 가리켰다.

그들은 산으로 올라가서 잔디우에 가지런히 앉았다. 인삼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얘기하려마.》

호철이의 얼굴은 굳어졌다. 인삼이는 호철이의 눈치를 흘끔흘끔 훔쳐보더니 《난 전에부터 얘기를 하자구 하면서도 못했어.… 이건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너 성부터 내서는 안된다.》 하고 다짐을 두었다.

《나를 위해서?》

호철이는 인삼이를 한참 바라보고나서 《성을 내지 않을게 어서 얘기해라.》 하고 대답했다. 인삼이는 호철이를 또 슬금슬금 바라보고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 한가지 비밀이 있지?》

《비밀?》

호철이의 머리에는 유리를 깨뜨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인삼이가 무엇에 대해서 하는 말인지 딱히는 알수 없었다.

우선 그것부터 알고싶었다.

《비밀이야 뭐 하나뿐이겠니? 여러가지 있을수 있지. 너두 아는 비밀인 모양인데 이야기하려마.》

《내가 말하는것보다 네가 말하는것이 좋을것 같애. 너 학교에서 저지른 일을 숨기고있는것이 있지 않니?》

호철이는 인삼이앞에서라도 털어놓고싶었다. 그러면 속이 좀 후련할것 같았다.

《숨긴것이 있어. 개학날 유리를 깨뜨린것 말이지?》

《응, 바로 그거야.》

《그런데 너두 그걸 알았댔니?》

《그때 나는 바루 창밖에 있었는데 뭐.》

《그럼 왜 상기두 말하지 않구있었니?》

《네가 숨기구있은거나 내가 입을 다물구있은거나 같은거지 뭐. 난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걸 요즘에 와서야 똑똑히 알았어.》

《내가 유리를 깨뜨렸다는걸 너만 알구있니?》

《아니 또 한 학생이 알구있어.》

《너하구 같이 보았니?》

《내가 이야기해주었어.》

《그 애는 뭐라구 말하던?》

《나보구 네게 잘 얘기해서 스스로 깨닫게 해주라구 했어. 누군지 알만 하지?》

《알지 않구. 이제라도 선생님께 얘기하면 될가?》

《되지 않구, 아직 늦지 않았어.》

호철이는 인삼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돌려보내고 그길로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사실을 밝혀 이야기했던것이다.

호철이의 이야기를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셨다.

호철이가 자기의 결함을 깨달은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인삼이가 옳은 일을 위하여 어려운 말을 할수 있게 되였다는것이 더욱 기쁘셨던것이다.

《잘됐다, 너두 아마 숨기구있을 때보다 기분이 퍽 좋을게다.》

《정말 이제는 무거운 짐이라두 벗은것 같애. 다 네 덕택이지 뭐.》

《내 덕일게 뭐냐, 넌 별말을 다하는구나.》

이때에 직원실에 들어갔던 갓을 쓴 할아버지가 다른분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학생들을 둘러보더니 교감선생님의 외손자되는 김성주라는 학생이 어느 학생이냐고 물었다.

《제가 김성주입니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일어서시며 공손히 대답하셨다.

《응, 이 학생이로구만.》

그 할아버지는 같이 온 로인들을 바라보며 연방 머리를 끄덕이였다.

《자네가 아주 용하단 말은 들었네. 우리 동네 아이들을 오늘 여러 녀석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자네가 좀 잘 돌봐달라구.》

갓을 쓴 할아버지의 말이였다.

《제가 뭐 돌보구말구 할게 있나요. 같이 공부하겠습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때는 뭐라구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이렇게 대답하셨다.

할아버지들이 산언덕길로 올라갈 때였다.

《저 할아버지두 이제야 눈을 뜨기 시작한 모양이야.》 하고 호철이가 말했다.

《눈을 뜨다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글쎄, 학교글은 쓸데 없구 한문글만 글이라나. 한문이 진짜 글이구 우리 나라 글은 쌍글이라고 하던 할아버지야.》

《지금은 그러지 않니?》

《좀 나아지기에 아이들을 학교루 데려오지 않았니? 그래두 눈을 번쩍 뜰려면 아직 멀었어.》

《팔골아이들은 뭐 칠골아이들이 때려서 학교에 안다니댔다면서?》

《넌 한손으루 손벽을 칠수 있니? 두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아이들은 가기 싫어했구 또 부모들은 안보낸거지 뭐냐?》

《훈장은 밥통이 떨어졌겠구나.》 하고 덕범이가 한마디 했다.

《할수 없지. 그러면서도 큰소리만 땅땅 치는거야. 장수원에서두 오라구 하구, 또 뭐 어디서두 오란다구 노상 으시대구있단다.》

《오라는데가 없을 때까지 돌아다니자는셈이겠지.》

그들은 서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너희 동네서 온 아이들은 한문글을 많이 읽었겠구나.》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많이 읽었지. 〈명심보감〉을 읽은 아이두 있구, 〈사략초권〉을 읽은 아이두 있구, 점장(지금의 학급장같은것)인가 하는 아이는 〈론어〉라는 책을 읽던 모양인데 그 아이는 오지 않았어.》

《그앤 왜 안왔니?》

《그 아이는 열아홉살인데 벌써 령감이 다 됐단다. 신학문은 필요없구 한문이 제일이라나? 그러면서 자기는 학교에 와두 배울게 없다는거야.》

《그애에게두 네가 잘 말해서 데리구오너라. 안오겠다면 끌구라두 오려마.》

호철이는 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앉아서 말없이 풀을 뽑고있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듯이 대원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글두 잘 짓구 글씨두 잘 쓴다구 하니까 너하구 글씨고누기해보겠다는 아이두 있단다. 오늘 그애두 학교에 붙었어. 그 아이는 장지를 여러권 썼단다.》

《내가 뭐 글씨를 잘 쓰니?》

《아니야, 네가 이길거야. 그리구 그앤 자기가 배우는 책두 네게 보여주겠다구 했어. 그래서 너하구 친하게 지내겠다고 그런단다.》

《나하구만 친하게 지낼게 있니. 다 친하게 지내야지.》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예비종소리가 울렸다. 학생들은 뽑은 풀들을 운동장 한편에 모으고 손들을 씻었다.

민선생이 단우에 올라가서 모이라는 구령을 쳤다. 새학기 첫 구령에 따라 아이들은 곧게 줄지어섰다. 2학기가 시작된것이다.

이날 대원수님께서는 쉬는 시간에 조용히 인삼이를 만나셨다. 인삼이도 오늘 호철이가 유리를 가지고 온것을 보고 매우 기분이 좋았다.

《너 호철이를 만나서 아주 그럴듯하게 얘기했더구나.》 하고 대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하라는대로 했는데 뭐. 난 그애가 성이나 내지 않겠나 하구 속으로 걱정했는데 오히려 고맙다구 그러거덩. 그럴줄 알았으면 벌써 얘기했을걸 공연히 질질 끌었댔어.》

《자기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성을 왜 내겠니. 호철이도 나쁜 아이가 아니야.》

《그애도 이제는 영 달라졌기에 그렇지, 전에 그런 말을 했다면 아마 내 뼈다귀도 남아있지 못했을게다.》

《그럼, 뼈다귀 부러질가봐 말을 못했댔니?》

대원수님께서 웃으시며 이렇게 물으시자 인삼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뼈다귀가 부러져도 할 말은 해야 하는거야. 할 말두 하지 못하구 살아서 뭘하겠니.》

《알겠어. 나두 이제는 공연히 벌벌 떨지는 않겠어.》

《그래야지. 너의 어머니는 귀동이가 아무런짓을 해두 맞서서는 안된다구 그러냐?》

《뒤에서는 욕하면서두 앞에서는 꼼짝 못한단다.》

《애써서 지은 밀을 깡그리 다 빼앗기구두 그래?》

《하는수 있니 뭐. 그건 빚값에 가져간건데.》

《뭐 빚값에? 너두 결국 너의 어머니 생각하구 비슷하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셨다. 대원수님의 두눈에서는 불빛이라도 튕겨나올듯싶었다.

《귀동이네는 그 밀이 아니면 죽는다더냐? 그런데 너희는 그 밀을 빼앗기구 나물죽두 배불리 못먹구있지 않니. 그런데두 나 죽었수다 하구 머리를 숙이구있어야 한단 말이냐? 너의 동생 원삼이는 금동이 그놈앞에서 벌벌 떨지 않더구나. 넌 왜 원삼이만두 못하냐?》

대원수님의 말씀은 전에 없이 날카로우셨다.

《우리 원삼이두 몇해 있으면 금동이한테 못견디게 될거야. 귀동이는 뭐 이전에 나한테 견디댔는줄 아니?》

인삼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럼 그 아이들한테 견딜수 있는데 일부러 져준다는 말이지?》

대원수님의 격하신 목소리였다.

《그러기 돈없는 사람은 섧다는게지 뭐.》

《인삼아!》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의 두손을 꼭 잡으시며 계속하셨다.

《넌 왜 그렇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가난하다구 해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단 말이야. 요전에 보통학교아이들하구 축구경기를 할 때에두 꼴을 먹어주면 돈을 주겠다느니 만년필을 주겠다느니 말하더라지?》

《응, 진짜 그랬어!》

《그것두 다 너를 깔보구 하는 수작이야. 글쎄 남의 학교하구 축구경기를 하는데 누가 돈을 받구 일부러 져주겠니. 그런데 그애는 네게 그런 말을 하면 들어줄것 같으니까 그런 수작을 했을게 아니냐?》

《씨, 내가 뭐 그딴말 들을가?》

《물론 듣지야 않지. 그렇지만 그애는 확실히 너를 얕보구 있단 말이야. 그날두 넌 그애에게 약하게 대답했어. 갈꼴 말이냐, 돌피꼴말이냐 하는 식으로 대답할것이 아니라 다시는 너를 깔보지 못하게 왜 콱 박아주지 못했니. 가난하다구 해서 돈있는 놈들한테 그렇게 끌려가서는 안된단 말이야.》

《그건 나두 알아. 그러기에 이제는 나두 귀동이 그자식앞에서 벌벌 떨지 않는단 말이야. 요전에는 그자식이 나보구 뭐라구 말했는지 아니?》 하며 인삼이는 대원수님을 쳐다보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자식은 나를 보더니 노상 반가워하는척 하면서 명구네 집에 가서 공부하지 말구 자기네 집에 와서 자기하구 같이 하자는거야. 자기네 집에는 올가을에 전기가 들어온다나? 전기불아래서 공부하면 더 잘된다구 지껄이지 않겠니. 그리구 자기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집은 전기를 켤수 있지만 자기 아버지 말을 안듣는 사람은 전기를 못쓴다나?》

《그래서 뭐라구 대답했니.》

《남포등아래서도 얼마든지 공부할수 있다구 하면서 안가겠다구 대답했지 뭐. 그랬더니 제 말을 안들으면 재미없다구 지껄이는거야.》

《그래서?》

《재미있든 없든 안가겠다구 대답하구 헤지구 말았지 뭐.》

《넌 아직두 약해서 안됐어. 그자식이 그딴수작을 꺼내지두 못하게 콱 박아주란 말이야. 가난하다구 해서 밸까지 썩어서는 안돼. 그리구 너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두 최돼지란 그놈앞에서 벌벌 떨지 말라구 이야기하란 말이야.》

《응, 알겠어. 우리 아버지두 이젠 전과는 달라졌어. 우리 어머니보구 그 집의 빨래두 해주러 가지 못하게 하는데 뭐.》

《네가 잘 얘기해주면 너의 어머니두 깨닫게 될거야. 어때, 내 말이 잘못됐어?》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셨다.

《잘못될게 뭐야, 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가난한 집 아이라구 해서 그런 놈들앞에서 굽신거리구 비겁하게 굴어서는 안돼. 그러면 그놈들은 우리를 점점 더 깔본단다.》

대원수님께서는 뜻깊은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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