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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28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과 약속하신대로 스무날만에 만경대를 떠나 칠골로 돌아오시였다. 오랜 기간은 아니였지만 대원수님께서는 그동안 보람있는 나날을 보내시였다. 분주해하시는 할아버님네 일을 도와드린것도 기쁜 일이였지만 그보다도 대원수님의 가슴을 흐뭇하게 한것은 응화의 학습열의였다.

응화는 쉬운 책을 뜯어읽게 되였고 구구법까지 외우고 쉬운 승법을 배우게 되였다. 그리고 광호도 대원수님으로부터 글배워주는 방법을 많이 배울수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앞으로 만경대에 오실 때마다 응화의 학습정형을 따져보기로 하고 만경대를 떠나셨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 칠골로 넘어서는 언덕에 오르시여 새로 만든 운동장을 바라보니 아이들이 가득 모여 왁작 떠들며 뽈차기련습을 하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발걸음을 다그쳐 외가집으로 들어가셨다. 집에는 명구 혼자 있는데 그는 책상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있었다.

《명구, 너 잘 있었니?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구나.》

《형, 인제 오나? 형, 숙제검사 좀 해줘.》 하며 명구는 방학숙제장을 내놓았다.

《어디 보자.》

대원수님께서는 명구의 숙제장을 받아드셨다. 처음에는 글씨도 곱게 썼고 잘못된데도 없었는데 뒤로 오면서는 글씨도 되는대로 썼고 잘못된데도 가끔 눈에 띄였다. 방금 써놓은데는 글씨부터가 형편이 없었다.

《명구, 너 그동안 공부를 많이 했구나.》 하고 칭찬해주셨다.

《아니야, 다른 아이들은 벌써 방학숙제를 다 해놓았는데 뭐.》

《그래서 너두 빨리 하려구 서둘렀구나. 그런데 이것 봐라. 처음에는 글씨두 곱게 썼는데 여기서부터는 이게 뭐야? 글씨두 망탕 썼구. 이 그림이야 어디 됐냐? 소를 그린다는게 개두 아니구 말두 아니구 뭐냐? 뿔은 하나밖에 없구나. 하나는 뿔쌈을 하다가 빠졌나? 하하하…》

대원수님께서 큰소리로 웃으시자 명구는 얼굴이 빨개졌다.

《숙제는 빨리 하는것보다 잘하는게 더 중요하단다. 빨리 하구 나가 놀구싶어서 그랬니?》

《응.》 하며 명구는 머리를 숙였다.

《그럼 나가서 좀 놀다가 들어와서 해라.》

《보패누나가 공부 안하구 놀면 자꾸만 욕하는데 뭐.》

《내 보패누나에게 얘기해줄게 걱정말구 좀 나가 놀아라.》

《응, 알았어.》

명구는 어느덧 밖으로 뛰여나갔다.

대원수님께서는 보패의 숙제를 살펴보시기 위해 맏외삼촌네 집으로 가셨다.

때마침 보패는 아이를 업고 안뜨락에서 서성거리며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고있었다.

《누나 잘 있었나?》

《아! 오빠 왔구나!》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구있나?》

《오빠가 주고 간 력사책이야. 정말 재미있는데.》

《숙제는 다 했나?》

《응, 좀 검사해줘.》

보패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숙제장을 들고나왔다.

대원수님께서는 토방에 걸터앉아서 숙제장을 살펴보셨다. 한달동안에 하라고 내준 숙제를 벌써 다 해놓았는데 글씨도 곱게 썼고 모두 정확했다.

《숙제를 아주 잘했는데. 새 숙제를 또 내주어야겠구만. 우선 지금 읽는 그 력사책을 다 읽구 느낀점을 쓰라구. 그런데 며칠이면 다 읽을수 있나?》

《오늘밤까지 다 읽을수 있어.》

《그럼 산술문제두 몇문제 내줄게 사흘동안에 다 해놓아야 돼.》

대원수님께서는 승법과 제법문제를 몇문제 내주셨다. 그리고 명구를 좀 나가놀게 했다는것을 이야기하셨다.

이 말을 들은 보패는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명구는 꼭 붙들구 공부를 하래두 자꾸만 놀구싶어만 하는데 나가놀라구 하면 어쩔테야?》

《공부는 그렇게 억지루 붙들어놓는다구 하는게 아니야. 공부를 해야겠는데 하는 생각이 일어나게 도와주어야 하는거야. 내가 이따 잘 얘기해주겠어.》

《알겠어. 그리구 오빠, 윤병이랑 덕범이들을 만나보았나?》

《아직 만나지 못했어.》

《그애들이 어제저녁부터 기다리던데. 인삼이는 세번이나 왔댔어.》

《그래? 이제 곧 만나겠어.》

대원수님께서는 곧 새로 만든 운동장으로 달려가시였다.

운동장에서 뽈차기련습을 하고있던 동무들은 먼발치에서 벌써 대원수님께서 돌아오신것을 알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언덕아래로 밀려내려오는것이였다.

《너희들 벌써 시작했구나! 그동안 잘들 있었니?》

대원수님께서 동무들을 향하여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늬시였다.

《역시 약속한대로 오긴 왔구나! 만일 오늘 돌아오지 않으면 래일새벽에 우리들이 모두 만경대루 데리러 가려 했다.》 하고 호철이가 말하자 《봐라, 뭘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그랬니!》 하며 덕범이가 호철이를 흘겨보았다.

《뭐 데리러까지 다녀야 할 급한 일이 있었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만경대에 가서 얼마나 재미있게 지냈는지 보통학교아이들하구 축구시합할것까지 잊었댔니?》

《그거야 잊을수 없지. 그런데 보통학교아이들하구 의논을 좀 해봤니?》

《주장이 없는데 누가 의논을 해.》

《그럼 다들 모여서 그걸 좀 의논해보자.》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과 같이 앉아서 의논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도무지 신통한 안이 나오지 않았다. 축구주장에게 편지를 내자고 하였으나 누가 주장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방학때가 아니라면 그저 축구주장앞으로 편지를 보내도 닿을수 있겠으나 방학때여서 그럴수도 없었다. 학교선생에게 편지를 내려고 하여도 선생의 이름을 아는 아이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개학날을 기다릴수도 없었다.

《교장선생님에게 편지를 내는것이 어떠냐? 교장은 학교에 한명밖에 없는거구 또 학교에서는 교장이 제일 높지 않니? 그리구 높은 사람에게 제기해야 빠를수 있어.》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윤병이가 먼저 찬성해나섰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모두 찬성하였다.

《그럼 내려가서 편지를 쓰자. 빨리 보내야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할수 있지 않니?》

그들은 마을로 밀려내려와서 대원수님의 방으로 들어갔다.

대원수님께서는 책상앞에 마주앉으시여 편지초안을 쓰시였다.

《자, 한번 들어보아라.》

대원수님께서는 편지초안을 읽으시였다.


교장선생님 앞


교장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들은 창덕학교 축구선수들입니다. 이번 여름방학을 리용해서 우리 학교와 보통학교 학생들간에 친선축구시합을 하게 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장소와 날자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모여서 토의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장선생님의 회답을 기다리겠습니다.

계해년 팔월 열닷새날

창덕학교축구팀

선수일동


《어떠냐?》

《됐어! 봉투에 넣어서 제깍 부치자.》

덕범이의 말이였다.

《어디 다시한번 읽어보자.》

윤병이가 편지를 자기 손에 들더니 두세번 읽어보는것이였다.

《날자하구 장소를 정하는것이 어떨가? 그리구 〈선수일동〉이라구 쓰지 말구 〈주장 김성주〉 이렇게 쓰는것이 좋겠어.》

《응, 주장의 이름을 쓰는것이 좋겠어. 그래야 회답을 보낼수 있지 않니. 그리구 장소는 보통학교로 하자꾸나. 거기가 마당이 넓거덩.》

호철의 말이였다.

《그럼 주장의 이름을 밝히자. 날자는 30일에 하자구 쓰자. 그래야 거기 아이들두 련습할 시간이 있지 않겠니. 그런데 장소는 밝히지 않는것이 좋겠어. 그건 그쪽에서 하자는대로 하자. 어때?》

동무들은 모두 대원수님의 의견에 찬성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먹을 갈아서 외할아버님 빼람에 있는 백지와 봉투를 꺼내 능란한 글씨로 편지를 쓰셨다.

《자 내 제깍 뛰여가서 부치고 올게 누구 우표값만 내라.》 하고 덕범이가 나섰다. 우표값때문에 주머니들을 더듬어보았다. 요행 경만이에게 2전이 있었고 윤병이에게 1전이 있었다.

《좀 기다려라. 체육선생님의 승인두 받지 않구 우리끼리 편지부터 내서 되겠니?》

대원수님의 말씀이였다.

《아니야, 민선생님은 전에부터 보통학교학생들하구 축구시합을 한번 하자구 그러댔어.》

《그래두 물어보아야 해. 윤병이, 나하구 학교에 올라갔다 오자.》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함께 학교로 올라가셨다.

때마침 민선생님은 직원실에 혼자 앉아서 책을 보고있었다. 그는 대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편지도 보더니 매우 기뻐하며 교감선생님께는 자기가 말씀드리겠으니 우선 편지를 부치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오늘은 일직이니 래일부터는 자기가 지도해주겠다는것이였다.

이날저녁 대원수님께서는 빌려왔던 책들을 가지고 량선생님을 찾아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돌려드리시면서 잡지책 한권은 순사놈에게 빼앗겼다는것을 말씀하시고 그날 있은 사실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셨다.

량선생님은 가끔 머리를 끄덕이며 주의깊게 대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것이였다.

《제가 책을 잘못 건사했다가 그놈들한테 빼앗겼습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난 벌써 그 책을 다 읽기두 했지만 그 책때문에 할아버님이랑 성주학생에게 큰 걱정을 끼쳐서 오히려 내가 미안하네.》

《아닙니다. 정말 그 책은 제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구 해서 앞으로 사양하지 말고 마음대로 책을 가져다 읽으라구. 혹시 내게 없는 책이라두 성주학생이 읽구싶은 책이라면 동무들한테 빌려서라두 읽게 해줄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그놈들이 왜 그 책을 압수했을가요? 〈불쌍한 남매〉라는 그 글때문이 아닐가요?》

《그 글때문이겠지. 돈만 아는 이놈의 세상을 저주했으니까. 그놈들의 비위에 맞을리가 있나?》

《실지 지금 세상은 돈만 아는 세상이 아닙니까?》

이 말을 들은 량선생님은 《후-》 하고 긴 한숨을 짓는것이였다.

《돈만 아는 세상이지. 이놈의 세상은 돈없는 사람은 죽게 되여있는 세상이란 말이야.》

《쏘련(이전)에서는 지주, 자본가제도를 뒤집어엎구 로동자, 농민이 주인이 된 그런 나라를 세웠다구 하지 않습니까. 거기서는 모든 사람이 다같이 일하구 누구나 다 학교에 다닐수 있다지요? 그리구 병이 나면 누구나 병원에 갈수 있구요.》

《그렇다더군! 거기 대해서는 성주학생이 나보다 더 잘 아는구만!》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데 〈불쌍한 남매〉같은 그런 글이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글이라면 공산주의에 대해서 자세히 알구싶어집니다. 선생님에게 그런 책이 없습니까? 이번에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게 잘 건사해가며 볼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두 책이 적지 않게 있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책은 한권두 없구만. 나두 맑스주의에 대해서 공부하자구는 늘 생각하면서두 아직 손을 대지 못하구있네.

동무들한테 책을 좀 구해보지. 그런데 그런 책을 빌리기는 헐하지 않을거야. 가지구있으면서두 좀처럼 빌려주지 않을게거든.》

이날밤 대원수님께서는 집에 돌아오시여 어떻게 하면 왜놈들이 못보게 하는 그런 책들을 구할수 있을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셨다. 량선생님도 구할 자신이 없어하는것을 보니 여기서는 구할 길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만 알아보실수 있게 편지를 내야겠어. 그러면 어떤 편에라도 구해서 꼭 내보내주실거야.)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그날밤으로 아버님께 보낼 편지를 써놓으셨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해질무렵이였다.

외할아버님께서 봉투편지 한장을 가지고 학교에서 돌아오셨다.

《보통학교 교장이 자기네 심부름군아이를 시켜 내게 회답을 보내왔구나.》

《그래요? 뭐라고 썼어요. 시합을 하게 하겠답니까?》

《그런 대답은 없구 교장이 아주 노발대발했다.》 하시며 외할아버님께서는 껄껄 웃으시는것이였다.

《어째서요?》

대원수님께서는 정색해서 물으셨다.

《그 리유로는 여러가지를 늘어놓았더구나. 우선 학생들이 왜 조선말로 편지를 썼느냐는것과 년호를 대정12년이라구 쓰지 않구 왜 계해요 갑자요 하는 그따위로 썼느냐는것과 아이들끼리 시합을 하려거든 보통학교 아이들에게 편지를 낼것이고 학교적인 시합을 하려거든 교감선생이 편지를 낼것이지 왜 학생이 교장에게 편지를 냈느냐는것이다.》

《그저 그것뿐인가요?》

《또 있지. 글씨를 보니 아무래도 아이들의 글씨가 아닌데 왜 선생이 쓰고 아이들의 이름으로 냈느냐는거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시고나서 다시금 큰소리로 껄껄 웃으시는것이였다.

《알구보니 교장이라는 그 사람두 쬐쬐한 사람이구만요. 그거야 어디 뭐 노발대발할만한게 돼요? 조선사람이 조선말로 편지를 하는데 무슨 상관이예요. 더구나 그 편지는 누가 내라구 해서 낸것두 아니구 우리들이 자진해서 낸건데 조선말로 하건 일본말로 하건 우리들의 맘대로 할게 아니겠어요?》

《그건 아주 네가 잘했다. 왜놈들이 아무리 조선말과 조선글을 없애구 제놈들의 말과 글을 억지로 쓰게 하려고 하지만 어디 어림이나 있는 일이냐? 그놈들은 보통학교아이들에게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하지만 소용이 있다더냐? 그 아이들도 왜놈선생앞에서는 어물어물하지만 조선선생이나 아이들끼리는 조선말만 쓰고있는데.》

《그렇습니다. 그리구 금년이 계해년인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리구 일본법에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편지두 못내게 되여있는가요? 편지라는것은 서로 떨어져있는 관계로 말로는 할수 없어서 말대신 글로 쓰는건데 왜놈들은 그럼 아이들하구 어른들사이에는 얘기두 못할게 아닙니까?》

《암, 그렇구말구. 네 말이 백번 옳은 말이다.》

《그리구 내 글씨를 보구 선생님들의 글씨라구 하는걸 보니까 그 교장의 실력이라는것두 짐작할만 하구만요.》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도 소리를 내여 웃으셨다.

《그런데 너희들 그 아이들하구 시합을 하면 자신이 있느냐?》

《하게만 된다면 죽기내기루 해서 이기겠습니다.》

《잘 련습을 해라. 하도록 주선을 해보자.》

외할아버님께서는 이튿날 민선생을 보통학교에 보내셨다.

민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보통학교체육주임은 대번에 찬성해나섰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이 학교는 체육이 근방에서 가장 락후했었다. 군내학교들이 모여 련합체육대회를 할 때면 언제나 마지막에서 첫째나 둘째로 꼽혔다. 그래서 교장이 군학무계에 특별히 교섭을 하여 체육에 실력이 있고 열성이 있는 선생을 끌어왔던것이다. 그는 부임하는 첫날부터 체육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련습에 착수하였다. 이젠 군내 련합체육대회가 있을 날을 기다릴만큼 어지간히 발전하였다.

그런데 사립학교인 창덕학교에서 시합을 제기해왔으니 그동안 련습한 자기네 학교학생들의 실력도 한번 시위하면서 자기 공로도 자랑해보자는 배심이 생겼던것이다.

그는 민선생을 잠간 기다리게 하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얼마후에 체육주임은 버드렁이를 내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직원실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교장선생의 승인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감선생님에게 보낸 편지는 교감선생님만 알고있을것이고 학생들에게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것까지 덧붙여 말했다.

이리하여 날자는 앞당겨 23일로 하고 장소는 창덕학교운동장으로 하자는것이였다. 그것은 새학기준비에 지장이 없도록 하자는것과 사립학교아이들을 《신성》한 보통학교운동장에 들여놓지 못하게 하려는 교장의 처사였던것이다. 그리고 상품으로는 두 학교에서 각각 뽈을 하나씩 사서 하나는 당일에 차기로 하고 하나는 상으로 주되 차던 뽈까지 무상으로 이긴 편에 주자는것이였다. 두 선생간에 이런 문제들이 아주 순조롭게 협의되였다.

민선생이 학교에 돌아와 이 소식을 전하자 선수들은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서로 부둥켜안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모자를 공중으로 올리며 고아대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호철이와 인삼이, 덕범이가 제일 기뻐했다. 그들은 벌써 이기기라도 한것처럼 우쭐렁거리는것이였다.

민선생이 운동모를 눌러쓰고 운동장으로 뛰여나왔다.

《벌써 선수들이 다 모였구만! 본때있게 련습해가지구 창덕학교이름을 한번 번쩍하게 내보자구.》

민선생은 뽈을 들고 운동장 한복판으로 가며 이런 말을 했다.

이날 창덕학교선수들은 땅거미 내릴무렵까지 민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련습을 하였다.

민선생은 헤여지기 전에 선수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련습을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보통학교아이들하구 시합을 하는데 학부형들도 많이 올거요. 보통학교학부형들도 많이 오고 구경군들도 많이 올거란 말이요. 그런데 오늘처럼 철레철레하는 옷들을 입구서야 어떻게 경기장에 나가겠소. 보통학교아이들은 운동복과 운동모를 척 쓰고 나서겠는데 우리 선수들은 어떻게 하겠소? 옷부터 걸려서는 사기를 잃을거구, 사기를 잃으면 경기에서 진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도 운동복을 만드는것이 어떻소?》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모두 기뻐 날뛰며 운동복을 만들자고 했다. 운동복색갈에 대해서도 가지가지의 의견들이 나왔다. 누구는 흰 빤쯔에 파란색 샤쯔를 해입자고 하는가 하면 누구는 흰 샤쯔에 검은 빤쯔를 해입자고 하였고 누구는 빨간 샤쯔에 검은 빤쯔를 해입자고 하였다.

그들은 여러가지로 의논한 끝에 흰 빤쯔에 하늘색 샤쯔를 만들기로 하였고 운동모는 지금 쓰는것을 잘 빨아서 쓰기로 하였다. 그리고 운동복앞뒤에 붙일 수자를 만들데 대한 문제도 구체적으로 토의하였다. 두 학교의 축구시합이 있다는 소문은 며칠사이에 근방마을들에 쫙 퍼졌다.

창덕학교선수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처럼 맹렬한 련습을 계속하였다. 민선생은 선수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열성적으로 지도하였고 량선생님과 다른 선생들은 물론이고 교감선생님도 가끔 운동장에 나와서 그들이 련습하는 모습을 보군 하셨다. 선수들의 실력은 날을 따라 늘어갔다.

경기를 앞둔 이틀전이였다. 이날은 모두 새로 만든 운동복들을 입고 운동장에 모이기로 하였다.

먼저 나온 아이들은 벌써 새 운동복을 입고나와서 뽈들을 차기 시작했다. 운동복을 갖추어입으니 보는 사람들의 기분도 퍽 달라졌고 믿음성이 더 가는것이였다.

시간이 가까와오자 선수들은 거의다 모였다. 민선생도 벌써 운동장에 나와서 선수들축에 섞여서 뜬 뽈을 차고있었다. 그런데 인삼이가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나 일찍 나오던 그가 아직 올라오지 않은데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음에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하신 대원수님께서는 민선생에게 이야기하고 마을로 뛰여내려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열린 문으로 인삼이네 방안을 들여다보셨다. 방안은 텅 비여있는데 먹을 갈아놓은 벼루만이 한복판에 놓여있었다. 문이 모두 열린것으로 보아 빈집같지는 않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두루 살피는데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인삼이가 부엌에서 무엇을 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대원수님께서는 부엌으로 가보셨다. 그런데 인삼이는 랭수마찰을 하는 모양인지 수건으로 몸뚱이를 문지르고있었다.

《아니 넌 지금에야 일어나서 세면을 하니? 선수들이 다 모였어. 난 네가 오지 않기에 데리러왔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삼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몸뚱이를 다 씻고나서 맥빠진 걸음으로 부엌에서 나오는것이였다.

《너 왜 무슨 일이 있었니?》

《운동복이 안됐어.》

인삼이는 잦아드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미리 그런 말이라두 하지 왜 아무런 얘기두 하지 않구 있었니?》

대원수님께서는 민선생이 처음 운동복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노상 걱정이 안되는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동무들은 모두가 할수 있다고 대답하였고 그후에도 운동복때문에 걱정하는 동무는 없었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 그날 학교에서 돌아오시는 길로 외삼촌어머님을 만나 운동복을 만들만한 천이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외삼촌어머님은 서슴없이 만들어주겠다고 대답하였고 다음날 련습을 하고 돌아오니 벌써 운동복이 책상우에 놓여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외삼촌어머님이 시집올 때 친정어머님이 해주신 광목치마를 뜯어서 운동복을 만들어주었다는것을 그후 외할머님으로부터 알게 되였을 때 여간 미안하게 생각되지 않으셨다. 그런데 지금 인삼이의 딱한 사정까지 알게 되니 어깨를 지지누르는것 같으셨다.

인삼이도 전과는 달리 기가 죽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어머니는 내 운동복을 꼭 해주겠다면서 똬리를 이틀이나 결었단다. 어제 그걸 가지구 장에 갔는데 네개밖에 못팔았어. 글쎄 그 돈으로야 운동복 만들 천을 어떻게 사겠니?》

《그럼 진작 올라와서 그런 말이라두 선생님께 해드려야지 여기서 랭수마찰만 하구있으면 어쩔셈이냐?》

《누가 뭐 랭수마찰을 했다던?》 하며 인삼이는 히죽이 웃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운동복은 되지 않구 약속한대로 오늘 번호는 달구 가야겠기에 이렇게 번호를 만들어서 메구갈려구 했더니 거치장스러워서 안되겠어.》 하며 인삼이는 농짝뒤에 밀어넣었던 끈이 달린 마분지를 꺼내보였다. 거기에는 《1》자가 그려져있었다.

《자, 어때. 안되겠지?》

인삼이는 번호를 쓴 마분지끈을 한편어깨에 척 메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할수가 없어서 빙긋이 웃고마셨다.

《이건 안되겠기에 이번에는 가슴에다 〈1〉자를 먹으로 써넣구 거울을 보았더니 그것두 안되겠더구나. 우선 나는 글씨가 서툰데다 자기 가슴에 글을 쓰니까 더 망측하게 보이더란 말이야. 그래서 부엌에 나가서 지우구있댔어. 네가 내 앞가슴과 등에다 곱게 번호를 좀 써주려마. 오늘 하루만 그렇게 하구가면 될거야. 저녁때쯤 되면 우리 어머니가 똬리를 팔아서 천을 사가지구 올거야. 그렇게 하면 래일부터는 문제없어.》

인삼이는 진심으로 부탁하는것이였다.

이 말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코허리가 찡해지셨다.

(운동복을 마련할 길이 없으니까 그런 생각까지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니 가난에 허덕이는 인삼이가 한없이 가엾었다. 한편 번호만이라도 써붙여가지고 경기장에 나가겠다는 그가 무척 미더웁기도 했다.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몇달전에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소년축구대회가 있던 그날의 일이 머리에 떠오르셨다. 그때만 하여도 인삼이 어머니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어디에 가도 축에 섞이지 못한다고 성안에 들어가는것도 탐탁치 않아하였는데 오늘은 아들을 내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있는가.

창덕학교의 영예를 위하여, 동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몹시 고심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인삼이 어머니나 인삼이가 지난날보다는 확실히 달라지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으셨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싶지 않았고 또 그럴만한 시간도 없으셨다.

《그대로 올라가자. 오늘은 련습을 하는 날이니까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리면 될거야. 맨몸에 먹으루 글을 써넣어서야 되겠니. 우선 땀이 흘러서 다 지워지구말게다.》

대원수님께서는 남들이 보면 웃음거리로 될것이라고 이야기하시려다가 그 말은 꺼내지 않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올라오셨다. 인삼이는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이 아이, 저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는것이였다. 민선생으로부터 오늘은 괜찮으니 시합을 하는 날은 꼭 운동복을 입고오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는 마음이 놓이는듯싶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축구련습을 하시다가 쉬는 시간에 인삼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였다.

(오늘두 똬리를 팔지 못하면 운동복을 마련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셨다. 그러나 인삼이는 벌써 운동복에 대한 생각은 깡그리 잊은듯 동무들과 웃고 떠들고있었다. 지금 입고있는 잠뱅이는 무릎우에 껑충 올라가기는 하지만 깨끗이 빨기만 하면 이러나저러나 빤쯔로 대용할수 있겠는데 적삼이 문제였다. 천 한쪼각이면 운동샤쯔를 만들수 있는데 그것이 없어서 그애 어머니는 며칠동안 고생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가난한 살림이란 실로 눈물과 한숨과 고생의 련속이라고 생각되셨다. 인삼이는 자기 어머니가 오늘 무슨 변통을 해가지고 돌아오리라고 크게 믿고있지만 오늘도 똬리가 변변히 팔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때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외삼촌어머님이 치마를 뜯어서 운동복을 만들고 천이 좀 남았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셨다. 그래서 그길로 집으로 뛰여내려오셨다.

집에는 외할머님 혼자서 어린애를 업고 실꾸리를 겯고계셨다.

《할머니, 요전에 내 운동복을 만들구 천이 좀 남았다고 하셨지요?》

《글쎄, 그건 뭘하게?》

《좀 급히 쓸데가 있어서 그래요.》

《어디 얻어보자꾸나.》

외할머님께서는 반짇고리도 뒤져보고 천쪼박들을 넣은 둥구리도 열어보고 의롱문도 열어보더니 운동복 만들고 남은 쪼박천을 찾아내셨다.

《여기 있구나. 그런데 운동샤쯔를 마련잡아놓았구나. 응, 명구샤쯔를 만들셈이로구나. 아직 가위질은 하지 않았으니까 긴히 쓸데가 있다면 가져다 쓰려무나.》 하시며 외할머님께서는 천을 대원수님앞에 내놓으시였다.

《명구운동복은 며칠후에 내 운동복을 줄여서 만들어줘두 돼요. 그리구 삼촌어머님의 허락을 받아야죠 뭐. 전번에 내 운동복 만든것두 미안한데 허락두 받지 않구 써서 되겠어요.》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나서 인삼의 딱한 사정을 말씀드리셨다.

《그 집에서는 오늘 똬리를 판다구 해두 호세를 바쳐야 할게다. 동장이 요즘 호세를 물지 않는다구 얼마나 으름장을 놓기 그러느냐. 진상할 배두 먹는다는데 우선 천을 쓰구 볼판이지 뭘 그러느냐.》

《할머니, 넣어두세요. 이따 삼촌어머니한테 알아봐야겠어요.》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다시 학교운동장으로 뛰여올라가셨다.

오전 축구련습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과 함께 마을로 내려오셨다.

대원수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외삼촌어머님은 운동복을 만들고계셨다. 인삼이의 운동복이였다.

《삼촌어머니!…》

대원수님께서는 목이 메여 그 다음말이 나가지 않으셨다.

《…벌써 운동복을 만드시누만요.》

대원수님께서는 한참만에야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삼촌어머님은 실밥을 끊으며 대원수님을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셨다.

《뽈차기련습만 잘해라. 운동복때문에 싸움판에 나가지 못해서야 되겠니?》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고마운 생각과 미안한 생각이 한데 엉키여 맴돌아쳤다.

련습이 끝난 후에 대원수님께서는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운동장 한편에 모이도록 하시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경기에서 주의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금 강조하셨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친선경기가 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보통학교에는 귀동이와 같은 부자집아이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런 집 아이들은 몇명 되지 않는것이고 절대다수의 아이들이 창덕학교아이들처럼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는것을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경기를 진행하는 과정에 헛다리질을 하거나 욕질을 하거나 야비한 말을 써서는 안되며 어떤 일이 있든지 싸움을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의견이 있으면 심판이나 선생님들에게 정식으로 제기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하여 경기에서 져도 좋고 이겨도 좋다는 그런 태도를 가져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시면서 기술을 모두 발휘하여 꼭 승리의 기발을 휘날려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동무들은 모두 대원수님의 말씀대로 하리라고 속다짐하고 헤여졌다.

이날도 인삼이 어머니는 성안에 들어가서 똬리를 두개밖에 팔지 못했다. 그는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지친 다리를 끌고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인삼이는 매우 반갑게 어머니를 맞이하였다. 그는 벌써 해질무렵에 대원수님의 외삼촌어머님으로부터 새로 만든 운동복을 받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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