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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27


만경대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에 안개가 흐르고있었다. 이른아침에는 산과 벌판까지도 안개속에 묻혀 숨박곡질이라도 하는듯이 종적을 감추고있더니 해가 높이 솟아오르고 안개가 차차 걷히면서 산봉우리도 륜곽이 나타났고 키높은 나무들과 집들이 우뚝우뚝 제모습을 드러내보였다.

안개는 산봉우리에서 골짜기로 계속 흐르고있었다. 어느덧 산마루에는 찬란한 해빛을 뿌려 풀과 나무잎들이 더욱 령롱하였으나 골짜기에서는 아직 숨박곡질이 계속되고있었다. 안개속에서 불쑥 나타난 산봉우리들은 바다에 뜬 작은 섬과도 같았고 구름우에 두둥실 높이 떠서 움직이는것 같았다. 안개흐르는 만경대의 아침경치는 어느 조선화에서 보는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소를 앞세우고 순화강 강뚝길을 걸어 벌로 향하셨다. 동구밖에 있는 큰 소나무에 소를 매시고 꼴단까지 안겨주신 대원수님께서는 호미를 드시고 분주히 밭으로 나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김매기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게 하시려고 소를 먹여오고는 매일처럼 밭으로 나가시군 하셨다.

안개가 깨끗이 걷히면서 날씨는 무척 무더웠다. 밭에 따라나온 검둥이는 버드나무 그늘밑에 누워서도 혀를 길게 뽑고 침을 흘리며 헐떡이고있었다. 쑥밭에 숨어있던 개구리도 물웅뎅이로 쩜벙 뛰여들어가서 네다리를 쭉 뻗치고 떠있더니 물이 뜨거운 모양인지 다시 뭍으로 헤염쳐나와 풀숲에 숨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작은어머님곁에서 김을 매고계셨다. 해볕이 정수리에 사정없이 뜨겁게 비치였고 땅에서는 더운 김이 확확 솟아올랐다. 김을 매시는분들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대원수님께서는 작은어머님에게 뒤질세라 땀도 씻지 않으시고 계속 김을 매나가시였다.

점심참이 거의 되여갈무렵이였다. 광호와 응화가 헐레벌떡거리며 밭으로 달려나왔다. 응화가 연방 뒤를 돌아보는 꼴이 확실히 무슨 급한 일이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할아버지! 큰일났어요. 할아버지네 집에 순사 두놈이 와서 방금 사립문을 마구 뜯구 들어갔어요.》

이러면서 광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는것이였다.

《사립문을 뜯구 들어가?》

할아버님께서 노기띤 목소리로 다시 물으셨다.

《예, 그랬어요. 한놈은 신을 신은채 방안으로 뛰여들어가서 옷들을 토방으로 마구 던졌어요.》

광호는 대원수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구 네가 가져온 그 잡지책을 가지고나와서 제놈들끼리 쑤군거렸어. 그 책은 일본순사놈이 가졌단다.》

《뭐, 일본순사놈이?》

대원수님의 격하신 목소리였다.

《책이라니, 무슨 책을 가져왔기에 그러냐?》 하고 할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아이들이 보는 잡지책이예요.》

《아이들이 보는 잡지책을 가지구 그놈들이 무슨 쑥덕공론을 하더란 말이냐?》

《무슨 수작들을 하는지는 듣지 못했어도 큰일이 난것처럼 제놈들끼리 쑥덕거렸어요.》

할아버님께서는 담배를 붙여무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지금껏 이야기를 듣고만 계시던 할머님께서 성나신 목소리로 입을 여시였다.

《아니, 개놈들이 빈집에 들어가서 지랄을 치구있다는데 령감은 그렇게 앉아서 담배만 피울셈이시우? 이놈들이 사람을 어떻게 보구 그러는지 모르겠구나.》

할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일어서더니 수건의 먼지를 터시면서 바삐 밭뚝으로 나가시는것이였다.

《임자는 가만히 있으라구!》

할아버님께서는 방금 붙여무신 담배를 털어버리시고 결연히 일어서시였다.

《들어가보자.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또 날강도짓을 하는 모양이구나.》

할아버님께서는 호미를 꽁무니에 차시면서 성큼성큼 밭뚝길로 나가셨다.

《우리들도 같이 가보자.》

대원수님께서도 동무들과 함께 할아버님의 뒤를 따르셨다.

이렇게 되자 작은아버님, 작은어머님께서도 모두 일어서시였다.

마을에 들어서자 동네사람들이 먼발치에 서서 쑤군쑤군 걱정들을 하고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사립문은 날아나 안뜨락에 딩굴고있었고 토방아래에 딱 뻗쳐서서 모자줄을 턱아래로 늘인 왜놈순사앞에는 옷가지들이 마구 흩어져있었다. 란장판을 벌린것이였다.

이 모습을 보신 할아버님께서는 마당에 썩 들어서시면서 불호령을 내리셨다.

《어디 불한당들이 남의 빈집에 들어와서 난탕을 피우느냐?》

할아버님의 목소리는 마을을 쩡쩡 울렸다. 이바람에 뜨락에 섰던 일본순사놈은 흠칫 놀라면서 밖으로 나왔고 방안에서 집뒤짐을 하고있던 순사놈도 밖으로 달려나왔다.

《령감상, 어디 가서 숨었댔소?》

일본순사놈은 할아버님한테 놀란것이 한편 분했던지 이렇게 생트집을 걸었다.

《내가 뭐가 무서워서 숨는단 말이요. 난 항상 떳떳한 사람이요!》

《그럼, 어디 갔댔는가?》

일본순사놈은 성을 발칵 냈다.

《이걸 보면 알게 아니요.》

할아버님께서는 호미를 추켜올리시더니 그놈의 코앞에 바싹 들이대고 흔드셨다. 이바람에 일본순사놈은 호미날에 찍힐가봐 겁이 났던지 목을 자라목처럼 움츠렸다.

《그런데 당신들은 이게 뭐요? 남의 빈집에 들어와서 무슨짓들이냐 말이요. 이게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준다는 〈법관〉의 행동이요?》

할아버님의 주먹이 후들후들 떨렸다.

《우리는 빈집에도 드나들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요. 특히 령감상네 집에는 언제나 자유로 들어와서 가택수색을 할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있단 말이요.》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도적이나 불한당만이 남의 빈집에 드나든단 말이요. 아무리 도덕과 례의가 없기로서니 남의 집 사립문을 뜯고들어와 궤문을 열고 남의 물건에다 손을 대?》

할아버님께서는 두주먹을 불끈 쥐시고 불빛이 튕겨나올듯한 시선으로 순사놈들을 번갈아 노려보셨다.

《좋다.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한 대답이나 하시오.》

일본순사놈은 이렇게 말하더니 빠른 발걸음으로 할아버님앞으로 다가서는것이였다.

《큰아들에게서 요즘 무슨 새소식이 왔는가? 그거나 똑똑히 대면 우리는 앞으로 이런 일을 하지 않을것이요. 그리고 령감상을 높이 모시게 될거요.》

왜놈순사는 갑자기 숙어드는척 하면서 삵의 웃음을 띠우며 흥정을 거는것이였다.

《아무 소식도 온것이 없소.》

《거짓말하지 마시오! 우리는 당신 아들에게서 새소식이 온것을 다 알구있소.》

《알면서 무엇때문에 모르는 나한테 와서 구태여 묻는거요.》

《음! 말하지 않겠단 말이지. 좋소, 그럼 박창걸이가 무엇때문에 여기 왔댔는지 그거나 말하시오.》

일본순사놈은 마치도 박창걸선생이 만경대에 왔다가는것을 제눈으로 보기라도 한듯이 따지는것이였다.

(저놈이 진짜 박창걸선생이 왔던것을 아는 모양일가?)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할아버님께서는 태연히 대답하셨다.

《박창걸이가 누구요? 난 그런 사람을 모르오.》

이렇게 대답하시며 할아버님께서는 대통에 담배를 담으시더니 담배를 붙여무시는것이였다.

《모른다. 하하하…》

일본순사놈은 한참 웃고나서 표독스러운 상판으로 돌변하더니 《령감!》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할아버님께서는 담배연기만 풀썩풀썩 내뿜고계셨다.

《이 책은 누가 가져왔는가? 앙?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이 책을 누가 가져왔는가 말이요? 아직도 박창걸을 모른다고 하겠는가?》

이때에 대원수님께서 순사놈의 앞으로 썩 나서시며 큰소리로 대답하셨다.

《그 책은 내가 가져온 책입니다.》

《무엇이?》

일본순사놈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눈을 크게 떴다.

《임잔 누군가!》

《내 손자요.》

할아버님께서 의젓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순사놈들은 저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매우 놀라는것이였다.

《그럼, 저 압록강건네에 가있는…》

《그렇소, 형직이 아들이란 말이요.》

할아버님께서는 순사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대답하시였다.

《좋다. 그런데 이 책은 어디서 샀는가?》

일본순사놈은 눈을 빠끔히 뜨면서 대원수님께 물었다.

《줄곧 책을 여기저기서 사는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둘수 있어요? 동명서점에서 샀는지, 일광서점에서 샀는지, 어느 고서점에서 샀는지 똑똑치 않군요.》

《자기가 산 책을 어디서 샀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난 책을 사는 목적이 그 책속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를 배우기 위해서이지 어디서 사온 책인가를 알아두기 위해서 사오는것이 아니니까요.》

일본순사놈은 그 책의 출처를 대원수님께서 이야기하시지 않으리라는것을 짐작해서인지 아니면 더 중요한것을 알아내기 위해서인지 이야기를 딴데로 돌리는것이였다.

《그건 그렇구, 무슨 련락을 가지구 여기에 왔는가?》

《련락을 가지고온것이 아니라 넉달전에 공부하러 왔소.》

《앙?》

일본순사놈은 입을 짝 벌리더니 옆에 서있는 구장을 흘깃 돌아보는것이였다.

《넉달전에 왔다는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새학년초에 왔으니까요.》 하고 구장이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왜놈순사는 구장에게 눈총을 보냈다. 그의 눈초리에서는 왜 제때에 보고를 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을 읽을수 있었다.

《사실은 넉달전에 오기는 했지만 그동안 칠골에 가서 공부하다가 요즘 방학을 하구 만경대로 온 모양입니다.》 하고 구장이 덧붙여 중얼거렸다.

《칠골은 칠골이고 당신은 고평면 남리구장이 아닌가?》

《예 예, 제가 그만…》

구장은 말끝을 얼버무리며 두손을 마주잡고 어쩔줄 몰라했다.

《좋아, 좋아. 그 얘기는 따로 하기로 하고…》

순사놈은 할아버님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공부는 아버지 있는데서 하지 않고 왜 여기와서 하는가?》

대원수님께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할아버님을 쳐다보셨다. 할아버님께서도 매우 노기띠고 서계셨다.

《여보시오, 조선사람이 제 나라에서 공부를 하는데 뭐가 잘못됐단 말이요. 더구나 내 손자는 세상이 다 알고있는 창덕학교에서 공부하고있는데 당신이 무슨 관계요?》

이 말에서 일본순사놈도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그놈은 한동안 눈만 꺼벅이고있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할아버님을 쳐다보았다.

《령감, 손자가 집에 돌아왔으면 주재소에 보고를 해야지 왜 가만히 있었는가? 비밀련락을 가지고왔으니까 어물어물하지 않았는가?》

할아버님께서는 자못 불쾌하신 태도로 대통을 돌멩이우에 땅땅 터시더니 대꾸하셨다.

《그래, 당신네 법은 집안식구들이 자기네 집에 들어설 때마다 법관에 보고를 하게 돼있소?

우리 손자애로 말하면 만경대가 나서자란 고향일뿐아니라 이 집의 엄연한 주인이란 말이요. 그래 자기 집에 돌아왔는데 어디다 보고를 한단 말이요?》

《저 학생은 아버지를 따라 압록강을 건너가서 살지 않았는가?》

《그건 우리 안살림에 관한거요. 아버지와 함께 살든 할아버지와 함께 살든 그거야 당신이 관계할게 뭐란 말이요.》

《우리는 그런것두 다 관계하게 돼있단 말이요. 주재소 주임나리께서 일부러 나와서 말씀을 하시는데 귀담아듣구 잘못한걸 사과해야지 그것이 뭐요?》

같이 온 다른 순사놈이 말참견을 했다. 이 말을 들으신 할아버님께서는 격분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여보, 우리가 잘못한게 뭐가 있다고 사과를 하란 말이요!》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이따위 책을 들고다니는게 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는 서점에서 파는 책을 사왔을뿐이요. 여러말 말구 그 책이나 돌려주시오.》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돌려주지 않으리라는것을 아시면서도 한번 더 그놈들과 맞서보기 위해서 이렇게 들이대셨다.

《이 책은 못돌려줘!》

《안주겠으면 그만두라요. 사실 그 책은 벌써 내게는 필요없는 책으로 됐단 말이요.》

《다 읽었단 말이지. 령감상, 손자가 귀하거든 이따위 책은 들고다니지 못하게 하란 말이요. 그리고 아들에게서 사람이 오거나 무슨 련락이 오면 주재소에 곧 보고하란 말이요. 가만히 있다가는 좋지 않소.》

이런 말을 남기고 순사놈들은 자전거를 타더니 마을에서 사라졌다.


× ×


이날 저녁이였다.

농촌의 저녁은 낮과는 달리 저으기 한가로왔다. 낮에는 그토록 뜨거운 해빛아래서 땀을 흘리며 종일 김을 매다가도 황혼이 깃들무렵 집으로 돌아가서 세면을 하고 나물죽일망정 끼니를 하고 뜨락에 나서면 낮에 힘들던것도 덥던것도 잠시나마 잊을수 있게 되는것이다.

마을사람들이 대원수님네 마당에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사놈들이 달려들어 행패를 할 때에는 버젓이 나서지 못했지만 언제나 할아버님네 일이자 곧 자기네들의 일로 생각하고있는 그들이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순사놈들이 사라진 뒤에도 할아버님네 집으로 달려와 걱정해주었고 이 저녁에도 찾아온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풍석을 내다 뜨락에 펴고 마을사람들을 앉게 하셨다. 그리고 풍석곁에 모기쑥불을 피워놓으셨다. 구수한 모기쑥내는 농촌의 저녁정취를 한결 인상깊게 해주었다.

마을 여기저기서 아이들은 반디벌레를 잡으려고 손벽을 치는가 하면 호박꽃초롱에 반디벌레를 넣어가지고 뛰여다니기도 하였다. 마을 웃쪽에서는 아이들의 무슨 놀음놀이가 벌어졌는지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님께서는 담배를 피우시며 천천히 밖으로 나오셨다. 마을사람들은 풍석에서 우르르 일어서서 손들을 모으고 할아버님께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님, 오늘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하고 광호 아버지가 말하자 모두 같은 심정이라는듯이 일제히 할아버님을 쳐다보았다.

《어서들 앉게. 줄곧 겪는 일인데 놀랄게 있나. 난탕을 치다가 제김에 기진맥진해지면 돌아가게 마련인걸.》 하시며 할아버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셨다.

《그러느라니 얼마나 가슴아프겠나요.》

광호 아버지가 긴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가슴아픈 사람이 이 나라에 어찌 나 하나뿐이겠나. 2천만겨레가 다 피눈물나고 가슴아픈 일을 당하고있지. 나라잃은 백성의 설음을 불사르고 버젓이 사람구실을 하며 살기 위해선 빼앗긴 나라를 꼭 찾아야 하네.…》

할아버님의 말씀이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늘에는 뭇별들이 사뭇 반짝이였다. 가끔 별찌가 소리없이 금을 그으며 멀리로 떨어지군 하였다. 뒤산에서 밤새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왔다.

《야! 정말 김선생님께서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아가지고 돌아오시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한 젊은이가 침묵을 깨뜨렸다.

《아마 그때는 만경대가 떠들썩할거야.》

《만경대뿐이겠나. 온 나라가 떠들썩할 판이지.》

《우리 나라뿐이겠어요! 온 세상이 떠들썩하겠는데요.》

《야! 정말 생각만 해두 어깨가 으쓱해지누나. 그때는 순사놈들과 왜놈들앞에서 알랑거리던 놈들은 모두 한몽둥이로 두들겨패게 될거야.》

풍석에 앉은 마을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였다.

《자네들은 나라의 독립을 찾는다는것을 잃었던 무슨 보퉁이를 찾아가지고오는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구만. 허허허…》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계시던 할아버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아니지요. 나라찾는것이 어떻게 잃었던 보퉁이를 찾는것처럼 간단하겠나요.》 하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청년이 대답했다.

《어느 한두사람이 나라를 찾아가지고 돌아올 날을 앉아서 기다리고있는 자네들의 생각이 너무나도 모자라서 답답해하는 말일세. 나라의 독립이라는걸 선물을 가져오듯이 그렇게 누가 가져다주는것도 아니고 몇몇 사람이 할 일도 아니란 말일세.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온 나라 백성들이 다 달라붙어야 한단 말일세.》

《글쎄, 우리 농민들이야 뭘 알아야 독립운동을 할게 아닙니까요.》

응화 아버지가 딱한 얼굴로 말했다.

《마음뿐이지 우리 농사군들이야 무슨 힘이 있어야지요.》 하고 한 젊은이가 맞장구를 쳤다.

《농사군의 힘이 약하다구? 아니 이 세상에서 로동자나 농사군처럼 힘이 센 사람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할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갑오농민전쟁때에 농민들이 슬기롭고 용감하게 싸운 사실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다.

마을사람들은 할아버님의 말씀을 옛이야기보다도 더 재미있게 듣고있었다.

이때 마을 웃쪽에서 왁작 떠들며 놀던 아이들이 한패 밀려왔다. 그들은 어른들이 앉은 자리를 쑤시고 들어와 앉아서 할아버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였다. 할아버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신다는 소식이 그들에게까지 전해졌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마른 쑥우에 진쑥을 올려놓아 모기쑥불이 사그라지지 않게 하셨다. 구수한 모기쑥내는 계속 뜨락에 풍겼다. 할머님께서는 대원수님과 그리고 곁에 앉은분들에게 가끔 부채로 모기를 날려주군 하셨다.

할아버님께서는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실 한오리는 보잘것 없지만 그 실을 천만오리 합쳐서 바를 드리면 황소힘으로도 끊을수 없지 않은가? 농민 한사람의 힘은 약할수 있지만 조선농민이 모두 힘을 합쳐보게. 왜놈은 고사하구 그놈들보다 더한 놈두 짓부실수 있을걸세.》

《그러나 우리네 농민들이 총과 대포를 가지고있는 왜놈군대들하구 싸워 이길수 있겠는가요?》

《힘을 합치구 머리를 짜내면 좋은 방도가 생기는 법이라네. 한가지 물어보겠네.》

마을사람들은 귀를 강구고 할아버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할아버님께서는 담배불을 몇모금 빠시더니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자네들 아까 낮에 내가 순사놈들한테 단련을 받고있을 때 왜 달려와서 좀 도와주지 못했나? 〈아무 죄두 없는 할아버지를 왜 괴롭히는가. 당장 돌아가지들 못하겠는가?〉 이렇게 말 한마디라도 왜 해주지 않았는가 말일세. 〈령감 될대로 돼라. 난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했더랬나?》

할아버님께서는 시침을 따시고 이렇게 물으셨다.

《아, 원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리가 있습니까? 까놓구 얘기하면 그놈들이 무서워서 접근하지 못했습지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난 그놈들에게 언제나 대들지만 머리털 하나 다치지 못하더군.》

《사실이야 그놈들이 할아버지를 무서워하니까 그렇습지요. 글쎄 생각해보십시오. 할아버님네 식구를 다쳤다가는 김선생님한테 귀신몰래 죽는다는걸 그놈들이 왜 모르겠나요.》

《그럼 자네들은 왜 그렇게 못하는가 말일세.》

《허허허… 우리들이야 어디 그런 담이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으슥한 골목에서 왜놈순사를 맞다들면 나두 해낼수 있습니다. 때마침 내 꽁무니에 도끼라도 있다면 말입니다.》

이 말에 마당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왜들 웃어요. 사실입니다.》

그 젊은이가 눈을 크게 뜨고 사람들을 둘러보며 류달리 큰 목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다시 웃음통이 터져나왔다.

《바루 그거란 말일세. 천대받고 고생하는 로동자, 농민들이 힘을 합치구 자네처럼 그렇게 결심이 굳다면 왜놈들을 넉넉히 짓부실수 있단 말일세. 아까 자네는 농민들이 어떻게 총과 대포를 가진 일본군대놈들과 싸울수 있겠느냐구 걱정했지?》

《예!》

《처음부터 총과 대포가 있어야만 맛인가? 어느 깊숙한데 가서 야장간이나 하나 차려놓구 우선 창이니, 칼이니, 쇠몽둥이를 만들어가지구 그놈들이 자는 밤에 뛰쳐들어가서 요정을 내면 될게 아닌가. 자네같은 돌장군이 자는 놈 댓놈이야 제끼지 못하겠나?》

《자는 놈이야 다섯놈뿐이겠나요? 열댓놈이야 문제없지요.》

《거 보라구! 작당을 해가지구 들어가서 그놈들을 요정내구 그놈들이 쓰던 총을 걷어오면 우리 농군도 총을 멘 군대가 될게 아닌가? 그런 일을 어느 한두마을에서만 할것이 아니라 8도강산 방방곡곡에서 한다면 제놈들이 배겨내지 못한단 말일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쳐들어오는 왜적들을 용감하게 물리쳤는데 오늘이라구 못해낼것이 없지 않은가?》

《할아버님, 하나 물어봅시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쳐들어오는 왜적들을 잘 막았다는데 왜 우리 나라가 망하구 아 그 쪽발이놈들한테 멕히웠습니까?》 하고 응화 아버지가 물었다.

《그건 백성에게 죄가 있는게 아니지. 조정에 앉아있는 놈들의 죄란 말일세. 나라를 다스린다는 놈들이 제 배만 채우기 위해서 날뛰였거든.…》

할아버님께서는 세개나 되는 풍석에 가득 모여앉은 어른들과 아이들을 둘러보시더니 《아이들도 많이 모였는데 옛말이나 한마디 할가?》 하고 말씀하셨다.

할아버님의 이 말씀에 어른들도 좋아했지만 무등 아이들속에서는 손벽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자네들, 개가 비단옷을 입구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나?》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개가 벼슬을 하다니요? 그런 일도 세상에 있었는가요?》

《그런 일이 우리 나라에 있었다네.》

할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조선봉건왕조때 철종이란 왕이 있었다네. 철종은 열아홉살 먹은 더꺼머리총각으로 별로 배운것이 없이 왕위에 올라앉았구만. 그러니 제 주장대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지.

명색은 왕이라고 하지만 실지 왕의 권한은 대감들의 손에 쥐여져있을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대감놈들이 나라나 백성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제 배나 채우기 위해 눈이 어두웠단 말일세. 돈만 가져오는 사람이면 높은 벼슬을 주었구만. 말하자면 돈으로 벼슬을 사고팔고 했단 말일세.

이때 전라도 보성군 사또로 새로 내려가게 된자도 역시 대감놈에게 돈 2만냥을 바치고 사또벼슬을 샀더란 말일세. 이자는 사또로 내려오자 고을을 다스릴 생각은 하지 않고 돈냥있는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구만.》

《돈을 좀 빼앗아보자는 수작이겠지요?》

한 젊은이가 물었다.

《물론이지. 벼슬을 사가지고왔으니 그 보충도 해야겠구 그보다 더 많은 로략질을 하자는거지.》

《그러니 나라가 망할수밖에 없지 않겠나요?》

《이야기를 더 들어보게.》

할아버님께서는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그런데 이 고을 어느 마을에 한 과부가 살고있었는데 그 집의 살림은 넉넉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구만. 그래서 이 과부는 검정개를 자식처럼 귀히 길렀는데 그 검정개의 발에 누런 털이 있었단 말일세. 그래서 그 개이름을 〈황발〉이라고 짓지 않았겠나. 마을사람들은 아이가 없는 과부네 집이라 그 집을 〈황발이네 집〉이라고 불렀다는걸세. 〈황발이〉네 하면 그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끔 되였다누만.

그런데 새로 부임한 사또는 〈황발이네 집〉살림이 넉넉하다는걸 알고 그것이 사람인지 개인지도 모르고 벼슬을 하나 얻어주고 그 값으로 돈을 한뭉치 받아먹을 생각이였구만.

그래서 사또는 이 고을에 황발이란 사람이 있는데 인격이 높을뿐만아니라 덕이 있고 학식이 많으니 벼슬을 주는것이 좋겠다고 나라에 건의하지 않았겠나.

사또가 제기한대로 나라에서는 황발이에게 〈감역〉이라는 벼슬을 주지 않았겠나. 사또는 은근히 기뻐하며 관속들을 보내서 이 사실을 전달하라구 했구만.

관속들이 내려가보니 참 딱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황발이가 사람이 아니라 개라고 벼슬을 취소해달라고 나라에 제기할수도 없지 않겠나.

그런데 황발이는 제가 높은 벼슬을 하게 된것도 모르고 손님들에게 자꾸만 짖어대지 않겠나. 그리고 과부는 황발이가 무슨 큰 공을 세웠기에 벼슬까지 주게 되였는가고 묻구 관속놈들은 대답이 궁하게 되였지. 그래서 한다는 수작이 〈예예. 도적을 잘 지켜서 감역벼슬을 주게 되였지요. 그런데 사또어른께서는 황발이에게 감역벼슬을 얻어주기 위해 돈 8천냥을 들였답니다.〉 하고 뇌까리지 않았겠나.

벌써 이런것쯤은 짐작하고있던 과부는 서슴지 않고 돈 8천냥을 관속놈들에게 내주어 돌려보냈다네.

다음날부터 과부는 황발이에게 비단옷을 해입히고 관가에 데리고 다녔다는걸세. 그러나 개야 개노릇밖에 더하겠나. 허지만 사람들은 그때부터 황발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황감역〉이라고 불러야 했다는걸세.》

할아버님께서는 이야기를 끝마치고나서 담배를 다시 붙여무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응화 아버지에게 나라가 누구때문에 망했는지 알만 하냐고 물으셨다.

《알만 합니다. 나라의 우두머리에 앉은 놈들이 그따위짓들을 하구있었으니 나라가 망하지 않을 탁이 있겠나요.》 하고 응화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러기 백성들이 아무리 슬기롭고 용감하여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제구실을 잘못하거나 제 배나 채우려고 날뛰게 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라네. 그렇지만 우리 나라가 아주 망하지야 않겠지. 왜놈들을 내쫓구 조선독립을 찾는 날이 꼭 온단 말일세.》

할아버님의 말씀에는 힘과 정열이 이글이글 타번지는듯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밤이 퍽 깊어서야 헤여졌다.

이날밤 대원수님께서는 많은것을 생각하셨다. 왜놈들을 우리 나라에서 쫓아버리고 나라의 독립을 찾을뿐만아니라 로동자, 농민이 잘사는 행복한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직접 싸우고계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은 말할것도 없고 원쑤놈들의 갖은 천대와 멸시와 억압아래서 굳세게 살아가시는 할아버님과 할머님 그리고 온 가족에 대해서 더없는 존경과 사랑과 믿음이 가시는것이였다. 더구나 오늘저녁에 할아버님께서 하신 이야기는 얼마나 마을사람들에게 힘을 넣어주었는가. 조선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가지고 그놈들이 자는 틈을 타서 요정내고 총을 빼앗아올수 있다는 이야기는 옛날 어느 장수들의 싸움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게 들으셨던것이다. 그리고 마을사람들도 아버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고 할아버님과 온 가족의 편에 튼튼히 서있다는것을 오늘 똑똑히 알수 있으셨다.

(하기는 그것이 만경대사람들의 심정만이 아닐거야. 우리 나라 온 겨레의 한결같은 심정이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께서는 어서 빨리 자라서 싸우고싶은 생각이 더욱 불같이 솟구쳤다.

그리고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오늘 순사놈들이 빼앗아간 그 잡지에 담겨져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더욱 생생히 떠오르는것이였다. 그중에서도 《불쌍한 남매》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에서 사라질줄 몰랐다.

더우기 마지막에 쓴 필자의 말이 생생하게 안겨오는것이였다.

얼마나 불쌍한 남매였으며 또 남매에 대해서 옳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돈만 아는 세상이기에 두 남매는 부모를 잃었고 살길이 없어 허덕이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런 옳은 말을 하는것이 공산주의를 선전하는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공산주의란 얼마나 좋은것인가? 아버님으로부터 공산주의에 대해서, 레닌에 대해서, 사회주의10월혁명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셨지만 대원수님께서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싶으신 생각이 용솟음쳤다.

(앞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책을 많이 구해다 공부해야겠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시였다.

그런데 그런 책을 어디서 구하겠는가가 문제였다. 책방에서는 물론 내놓고 팔지 않을것이고 설사 내놓고 판다 하더라도 무슨 돈이 있어서 사다보겠는가?

(량선생님이 그런 책을 가지고계시지 않을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칠골에 돌아가면 우선 량선생님께 부탁해보리라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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