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22회


22


장마가 걷고 다시 무더운 날이 계속되였다.

마을뒤 느티나무아래에는 사람들이 삐일 사이가 없었다.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여 느티나무는 그늘이 좋을뿐아니라 그아래에는 개미가 많이 모여들지 않아서 쉼터로는 아주 그만이였다. 할머니들은 손자들을 업고 밭에 나가서 애기어머니들에게서 젖을 먹여가지고 돌아와서는 느티나무아래에 풍석을 깔아놓고 아이들의 낮잠을 재웠다.

농민들도 요즘은 점심이 끝나면 느티나무아래에 모여서 담배를 한대씩 피우고나서야 일터로 나가군 했다.

지루하게 계속되던 김매기도 팥밭 두벌매기로 완전히 끝나게 된다.

실로 농민들은 이른봄에 씨붙임으로부터 시작하면 가을이 지나 첫눈이 내릴 때까지 거의 쉴 날이 없었다. 더구나 밭농사를 하면서 벼농사까지 하는 이 고장에서는 개인 날은 밭으로 나가고 비오는 날에는 우장을 쓰고 논으로 나가야 한다.

고양이의 손까지도 빌려야 한다는것은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러나 밭농사군들도 팥밭김매기가 끝나면 한시름 놓기마련이다. 요즘 느티나무아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였다.

풍석틀을 들고나와서 풍석을 치는 할아버지도 있고 부채를 겯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한편에서는 장기를 두는 사람들도 있었다.

윤병이 아버지는 한켠에 앉아서 드레줄을 드리고있었다.

《드레줄은 웬걸 그렇게 길게 드리나. 자네네가 쓰는 우물은 기껏해야 서발이 드나마나 하겠는데.》 하고 황주집할아버지가 물었다.

《옳쉐다. 그런데 이 드레줄은 다른 우물에 쓸거웨다.》

《다른데라니?》

한번 말을 꺼내면 송두리채 캐고야마는 할아버지라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였다.

《학교집 우물에서 쓸 드레줄이란 말이웨다.》

《학교집에서는 드레줄도 드릴줄 모른다던가?》

《모르기야 왜 모르겠습니까? 인학이 그 사람이 못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뭐 자네 손까지 빌거야 있는가.》

《사실은 인학이네가 쓸 드레줄이 아니라 학교아이들이 쓸 드레줄입니다.》

《음, 그런가. 그럼 대뜸 그렇게 대답할게지. 그런데 인학이 그 사람네 집에서는 드레박두 빌려주지 않는 모양인가?》

《그럴리가 있습니까. 그 사람이야 자기네 아들딸은 없지만서두 학교아이들을 모두 자기네 아들딸루 생각하구 또 학교일이라면야 자기네 일을 밀어놓구라두 해내는 성미인걸요.》

《그런걸 잘 알면서 뭘 자네가 드레줄까지 드리구있는건가?》

《그럴만한 일이 있었쉐다.》

윤병이 아버지는 손바닥에 침을 묻혀가지고 드레줄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요 며칠전에 학교우물물이 차구 시원하더라니 팥밭김을 매러 갔다가 돌아오면서 학교우물근처로 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황주집할아버지는 무슨 신기한 이야기라도 나올것 같은 모양인지 귀를 강구고 윤병이 아버지의 얼굴만 바라보고있었다.

《그랬더니 인학이 그 사람이 허리를 굽히구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뭘 하구있더구만요. 그리구 아이들은 우물가에 죽 둘러서구있지 않겠습니까. 알구보니 아이들이 드레박을 우물에 빠쳤는데 그걸 건져주느라구 애쓰질 않겠어요. 드레박을 건져놓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얘들아, 이것 참 안됐구나. 그런줄 알았더라면 드레줄을 하나 더 드려주었을건데… 젖어서 옷을 마치겠구나. 내가 물을 길어줄게 물마실 아이들은 나란히 서라.〉 하며 아이들을 주런이 세우지 않겠습니까. 내 그때 가슴이 찔립디다. 그래서 그날로 드레줄을 하나 드려준다는것이 하루이틀 미루어오다나니 오늘에야 손을 대게 되지 않았소.》

《인학이 그 사람두 용하지만 자네두 참 훌륭할세!》 하며 황주집할아버지는 머리를 연방 끄덕이는것이였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한테 진셈입니다.》

《아니, 아이들한테 지다니?》

《그날 나는 물을 한모금 얻어마시구 내려왔는데 교감선생님의 외손자되는 그 학생이 우물가로 뛰여오더니 인학이를 들여보내구 자기가 물을 길어서 아이들에게 마시게도 하구 세면도 시켰다지 않습니까. 그리구 그날 저녁에는 드레박을 만들구 드레줄까지 드려가지구 올려갔다질 않소.》

《참, 용한 학생일세!》

황주집할아버지는 수염을 싹싹 문지르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윤병이 아버지에게로 다시 얼굴을 돌리며 《그래, 자네는 드레줄만 드릴셈인가?》 하고 물었다.

《드레박두 하나 만들었습니다.》

《음! 좋은 생각을 했네. 지나가는 손님에게 물 한그릇 떠주는것두 공이라구 하는데 숱한 아이들이 쓸 드레박을 만들어보낸다는건 적어보이지만 큰일이야.》

황주집할아버지는 몇오리 되지도 않는 수염을 배배 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그것두 내 주견으로 그랬다면 모르겠지만서두 결국 아이들한테 배운셈이지요.》

《그렇게 생각할것두 아니야. 워낙 교감선생님네 외손자는 나이는 어리지만 도량은 어른들보다 몇갑절 낫다니까. 암, 낫구말구. 집에서두 늘 얘기하지만 밀밭에 물을 주는걸 보구 나는 처음에 웃지 않았겠슴마. 그런데 남들은 모두 밀흉년을 만났다구 아우성치는데 교감선생님네만 밀풍년을 보았단 말일세. 그게 누구 덕분인줄 아나?》

《저두 밀밭에 물을 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 보라구. 어린 사람이라구 할수 없단 말일세. 늙도록 배운다구 하더니 정말 그 말이 옳단 말이야. 난 요즘 아이들한테서 많은걸 배우구있습네.》

《형님이야 뭐 배우신것두 많구 보고 들은것두 많지 않습니까.》

《아니야. 배웠다는것이 다 못쓸것들뿐인것 같애. 이 사람, 저기 새로 놓은 다리를 건너보았겠지.》

《건너보다뿐이겠습니까. 그 다리를 놓을 때 나두 가서 일을 좀 도와주었수다.》

《자네 용할세. 그런데 나는 그 다리를 놓는데 방해를 놓았거든. 그게 다 못쓸것을 배워넣어서 그랬단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윤병이 아버지는 시물시물 웃을뿐 더 캐묻지 않는 품이 아마 그도 그 내용을 알고있는것이 분명했다.

《나때문에 우리 손자놈들이 며칠 학교에서 제 동무들에게 되몰리웠던 모양입데. 왜 안그렇겠나. 남들은 모두 나무를 낸다 뭘 낸다 하는데 우리 애놈들은 아무것두 안가져갔을뿐아니라 다리놓는것까지 방해를 놓았으니까. 그런데 교감선생님의 외손자되는 그 학생이 그걸 알았다질 않나. 그 학생은 동무들을 모아놓구 단단히 꾸지람을 했다는걸세. 〈그건 할아버지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랬는데 그 아이들을 욕하면 뭘하겠는가. 또 그애들이 내기 싫어서 안가져온것이 아니라 없어서 못가져오지 않았는가. 훔쳐올수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나무와 못이 쓰고도 남아서 몇아이들이 가져온것은 되돌려보내기까지 했는데 그런것을 가지고 자기 동무들을 성화대서는 못쓴다.〉 이렇게 타일렀다질 않나.》

《그래서 그뒤로는 어떻게 되였다나요?》

《아, 그 다음날부터야 제 동무들두 아무 소리 하지 않더라는거지. 학교아이들두 그 학생의 말이라면 오히려 선생님의 말보다도 더 어렵게 생각한다누만! 참 그 학생은 나이는 어려두 속은 어른들보다두 몇배 낫다니까.》

《형님! 이제는 그럼 〈사주보감〉인가 하는 그 책두 필요없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됐네. 이제는 다리놓는 일을 둘러싸구 마을에서 내가 웃음거리가 된 모양이거든! 그리구 그 학생뿐만아니라 교감선생님에게까지 그 말이 들어갔겠으니 내가 망신을 해두 단단히 한것 같단 말일세.》

《그 말이 옳쉐다.》

곁에서 풍석을 치던 룡강집할아버지의 말이였다.

《그 학생은 사람을 묶어세울줄 아는 통솔력이 있단 말이요. 그것이 장차 큰일을 할수 있는 싹이 아니겠소. 교감선생님의 외손자가 오기 전에는 칠골이니 팔골이니 하면서 얼마나 싸움질을 했소.

그런데 그 학생이 와서 두 마을의 아이들을 묶어놓았단 말이요. 요즘 그 학생의 지휘하에 군사놀이하는걸 못봤소? 〈될성부른 나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있지만 역시 큰 인물은 어릴적부터 다르단 말이요.》

김응서장군의 12대손이라고 하면서 언제나 조상타령만 하던 룡강집할아버지였다.

《슬쩍 그렇게 운을 떠놓구 또 뼈다구자랑을 하자는게지?》 하며 황주집할아버지가 턱을 흔들며 한동안 웃어댔다.

《그런게 아니란 말이요. 황주집은 저렇게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줄 몰라서 탈이란 말이야.》

룡강집할아버지는 약간 불쾌한듯한 얼굴까지 보이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두 조상타령을 더러 한 일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잃은 백성으로 조상의 뼈다구타령이나 해서 뭘하겠소. 걸출한 인물이 우리 고장에서 탄생했다구 나는 생각하오. 력사책을 보면 과거 명장들두 어려서 군사놀이를 했다는 이야기와 계략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은 더러 있어두 교감선생님의 외손자처럼 인품이 높구 도량이 크구 동무들을 묶어세우는 그런 비범한 통솔력이 있었다는 그런 얘기는 없소. 두구보우. 교감선생님의 외손자는 장차 큰 사람이 될게요.》

《그러니까 김응서장군의 12대손도 투구를 벗었단 말이군요. 하하하…》

황주집할아버지는 또 큰 웃음통을 터뜨렸다.

《투구를 벗는것이 천백번 지당하지요. 어떤 집에서 태여난 손이기에 그러우. 벌써 증조부부터 열렬한 애국투사가 아니였소. 미국해적선 〈셔먼〉호가 대동강에 기여들어 〈쌀을 내라.〉, 〈통상을 하자.〉 하면서 정탐을 하구 행패를 할 때 김응우선생님께서는 그놈들을 대동강에 처넣는 싸움에 앞장서시지 않았소.

그리구 아버지 김형직선생님은 또 얼마나 훌륭한분이시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구 나라의 백년대계를 튼튼히 세우시기 위해 조선국민회를 조직해가지구 그 조직을 전국에 확대하시지 않았소. 나라를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우시는 뛰여난 지도자란 말이요. 그분께서는 지금 압록강연안에서 조선과 강건너쪽의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을 묶어세우시면서 우리 나라 독립운동을 이끌고나가신다구 그럽데다.》

룡강집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자못 신중한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하는것이였다.

《말할게 있소. 그분은 벌써 중학시절부터 반일투쟁의 열렬한 지도자로 얼마나 이름이 높았소. 매국역적 리완용이가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비통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선생님께서는 강진석선생님과 서로 붙안고 밤새껏 울었다고 하지 않소. 그리고는 빼앗긴 내 나라를 기필코 다시 찾자고 굳게 손잡고 맹세했다는거요. 왜놈들이 선생님을 잡아다 가둔다, 고문을 한다, 징역살이를 시킨다 했지만 어림도 없었지요. 그 선생님의 굳은 애국의 절개를 꺾을수 있겠소? 김선생님께서 재판을 받을 때 〈빼앗긴 내 나라를 찾으려고 했는데 내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고 하면서 들이댔는데 얼마나 도도했던지 판사놈이 쩔쩔맸다지 않소.》

김응서장군의 12대손이니 뭐니 하면서 롱담을 꺼냈던 황주집할아버지도 자못 심중한 얼굴로 연방 머리를 끄덕이는것이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외가집으로 번져갔다.

《조선사람치고 누가 이 성스러운 싸움터에 나서지 않겠는가? 조선독립운동에 참가하지 않겠거든 삼치와 삽을 가지고나와서 자기가 묻힐 구뎅이를 파고 들어가서 죽어야 마땅하다.…》

룡강집할아버지는 3. 1운동때에 외할아버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앞에서 연설하신 구절을 상기시키며 선생님께서는 한평생을 나라와 후대교육을 위해 몸바쳤다고 감탄조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외삼촌 강진석선생님께서 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놈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을 치게 한 이야기는 그들이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다시금 통쾌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화제는 어느덧 강반석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여지게 되였다. 어머님의 소녀시절에 대한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나왔다.

《옳쉐다. 정말 훌륭한분이시지요. 한마을에서 자라서 잘 압네다만 그때 동켠집 작은녀라구 하면 이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쉐다.》

윤병이 아버지의 말이였다. 그는 드레줄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열다섯살 잡히던 해 겨울이였는데 그해 우리 마을에 장질부사가 돌았쉐다. 그때 숱한 사람이 죽었지요. 그런데 인학이네는 여섯식구가 모두 장질부사에 걸리지 않았겠나요. 마을사람들은 그 집앞으로는 얼씬두 안했습지요. 그런데 하루는 그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통 나질 않았쉐다레. 온 가족이 죽은가부다 하면서도 누구도 그 집을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런데 명구 고모님이 그 집엘 찾아가질 않았겠나요. 문을 열어보니 신음소리들만 내고있는데 불을 때지 못해서 방안이 싸늘하더랍니다. 그래서 부엌으로 들어가 불을 지피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인학이 어머니는 사이문을 겨우 열고 하는 말이 우리는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 어서 돌아가라고 하더랍니다. 전염될것을 걱정해서였지요. 그러나 명구 고모님은 불을 훈훈히 때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미음도 쑤고 닭알을 구해서 삶아가지고가서 앓는 사람들에게 먹였답니다. 이렇게 며칠을 보살펴준 덕으로 여섯식구가 모두 추서지 않았겠나요. 정말 마음이 비단결처럼 고왔지요. 그러면서도 성격이 얼마나 시원시원하겠소. 남잔들 게서 더 활발하겠나요. 그 아버지, 그 어머니의 아드님이니 왜 큰사람이 못되겠나요.》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미있게들 하구있소. 또 김응서장군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구있소?》

아까부터 장기를 두고있던 두민령감이 장기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이쪽으로 돌아앉으며 하는 말이였다.

《승패가 어떻게 됐소?》 하고 룡강집할아버지가 물었다.

《장기도 적수가 있어야 할 맛이 있겠는데 상대자가 있어야지. 〈차〉나 하나 떼주구 한다면 어떻겠는지.》 하며 그 할아버지는 빈 대통을 터는것이였다.

《장기는 누구나 이긴다고만 하니 도대체 지기는 누가 지는지 모르겠더군요.》 하고 윤병이 아버지가 말하자 《열번 지구두 한번만 이기면 이겼다구 하는것이 장기군들의 배심이니까.》 하고 룡강집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백사람이 다 그럴지 몰라두 내게는 당치 않은 말이요.》 하며 장기를 두던 할아버지는 룡강집할아버지앞으로 한손을 내밀었다. 담배를 달라는것이였다. 룡강집할아버지는 담배쌈지를 내놓으면서 부시돌까지 밀어주었다.

《김응서장군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감선생님의 외손자이야기를 하댔소. 두민령감은 그 학생을 어떻게 보았소?》 하고 룡강집할아버지가 물었다.

《암! 일을 해두 앞으로 큰일을 할수 있는 대장감이라구 보았소. 글쎄 내 손자놈은 만날 락제만 하더니 그 학생이 온 후부터는 공부를 어찌 들이파는지 뭐 우등은 문제없다나요. 그리구 공부만 잘하게 된것이 아니라 례절도 밝아졌고 어찌 부지런해졌는지 아이놈이 영 달라졌단 말이요. 그러기 속담에 열은 하나를 꾸리지 못해도 하나는 열을 꾸린다구 하지 않았소. 그 학생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낫단 말입네다.》

《그러기 방금 김형직선생님과 그의 증조부 그리구 외가집이 모두 나라와 백성을 위해 열렬하게 싸워오신분들이였으니 그의 손이 이만저만 하겠느냐구 이야기하더랬소.》

이때에 대원수님께서 보패의 3학년 자습서도 구해보고 새로 나온 잡지도 알아보기 위하여 성안에 들어가셨다가 나오시던 길에 땀을 들이기 위하여 동무들과 함께 느티나무아래로 올라오고계셨다.

《마침 그 학생이 이리 오는구만.》

룡강집할아버지가 대원수님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할아버지들앞에 가시여 모자를 벗어드시고 공손히 인사를 하셨다.

《자네 참 잘 왔네. 자네 산술재간이 대단하다는데 내가 문제를 하나 낼게 대답해보겠나?》 하고 황주집할아버지가 수염을 배배 꼬며 물었다.

《제가 무슨 산술재간이 있나요 뭐. 다른 아이들하구 같지요. 이 애들두 다 저만큼은 공부를 합니다.》

《허! 겸손한건 좋지만 그럴 필요는 없네. 내 한가지 문제를 내지.》

《그러지 말구 내기를 하게. 문제를 못풀면 자네가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구 문제를 풀면 할아버지한테서 절을 받으란 말이야. 어떤가? 백번 해볼만 하지, 안그렇나? 할아버지에게 절을 한번쯤 하는데 자네 얼굴이 깎일건 없지 않은가. 그대신 자네앞에 엎디구 절을 하는 저 령감의 몰골을 한번 보자구! 으흐흐…》 하고 룡강집할아버지는 무릎을 치고 엉뎅이를 들썩이면서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게 아주 그럴듯한 방안이요. 황주집적은이, 어떻소? 한번 해볼만 하지 않소?》 하며 두민령감도 껄껄 웃어댔다.

《내기에서 제가 진셈으로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구 내려가겠습니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허! 그거야 안되지. 해두 안보구 졌다구 할수는 없단 말이야. 더구나 절을 받을수야 없지. 자! 그럼 문제를 하나 낼게 우선 잘 들어보라구.》

황주집할아버지는 잔기침을 두세번 하여 목을 닦고나서 문제를 내놓았다.

《어느 강가에 거부기하구 학이 모여있는데 머리수는 모두 열넷이고 다리수는 모두 마흔이라구 해. 그러면 거북은 몇마리며 학은 몇마리겠나? 어디 한번 천천히 계산을 해보게.》

산술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신 후에 할아버지들을 한번 둘러보시고나서 《내기를 걸구 하는겁니까?》 하고 물으셨다.

동무들은 대원수님께서 벌써 그 문제를 암산으로 풀어놓았다는것을 알고도 남았다.

《암! 내기를 걸구말구. 내기를 해야지. 누가 받든지 절을 받아야 한단 말일세.》

룡강집할아버지의 말이였다. 그러나 황주집할아버지는 웃고만 있을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기라면 전 안하구 돌아가겠습니다.》 하며 대원수님께서는 자리를 뜨려고 하셨다.

《왜 그래? 한번 해보려마.》

곁에 서있던 덕범이가 귀속말로 소곤거렸다.

대원수님께서는 가만히 있으라고 덕범이의 옆구리를 꾹 찌르셨다.

《좋네. 그럼 내기는 그만두기로 하고 천천히 알아맞추어보게.》

황주집할아버지는 구원이라도 받았다는듯이 닁큼 이렇게 말했다.

《그럼 대답하겠습니다. 거부기는 여섯마리구 학은 여덟마리입니다.》

대원수님께서는 생각할 긴 사이도 없었는데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대답하는건가? 벌써부터 알구있던 문젠가? 그렇지두 않겠는데.》

황주집할아버지의 말이였다.

《허허허… 벌써 투구를 벗었단 말이지?》 하고 두민령감이 핀잔을 주며 껄껄 웃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아냈는지 그 비결을 좀 말해주게. 참, 용하단 말이야. 그리구 계산은 언제 했나?》

《계산할게 있습니까. 간단히 암산으로 알아맞힐수 있는 문제인데요.》

《암산으로 알아맞히다니? 그럼 한번 설명을 해보게.》

《거부기와 학을 합해서 14마리니까 학의 다리하구 거부기 앞다리만 28이 아닙니까. 그런데 전체 다리의 총수는 40이라니까 40에서 28을 빼면 12가 남는데 그것이 거부기의 뒤다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거부기는 6마리란 말입니다. 모두 14마리중에서 거부기 6마리를 빼니까 8마리가 남는데 그것이 학의 머리수로 되지요. 그래서 거북은 6마리, 학은 8마리란 말입니다.》

《음, 역시 계산이 능하긴 능하군.》

황주집할아버지는 연방 머리를 끄덕이는것이였다.

《산술만 잘하는줄 아세요? 아무 과목이나 다 물어보세요.》 하고 덕범이가 말하자 대원수님께서는 그에게 은근히 눈총을 주셨다.

《그럼 한문제 더 내볼가. 자, 이제는 아까보다 좀 어려운 문제네. 어험, 어험!》 하며 황주집할아버지는 기침을 두어번 하고나서 새 문제를 내놓았다.

《어느 부대에 군대와 말이 있는데 말 한필에 군대 한명씩 타면 말 15필이 모자라고 말 한필에 군대 두명씩 타면 군대 9명이 모자란다구 해. 군대는 몇명이며 말은 몇필이나 되겠는지 맞춰보게. 아마 이 문제는 만만치 않을걸세. 천천히 잘 생각해보게.》

대원수님께서는 먼산을 바라보시며 잠간 생각하시더니 《그 문제는 아까 문제보다도 더 간단합니다. 사람은 39명이구 말은 24필입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느티나무밑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눈이 둥그래서 대원수님을 다시금 쳐다보는것이였다.

《역시 산술을 잘하긴 잘하는군!》

이러면서 황주집할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적은이! 이제는 어떻게 하겠소? 내기에 졌으니 학생앞에 엎디여 절을 해야 할게 아닌가. 절을 할려거든 코를 단단히 잡구 해야겠네. 하하하…》

두민령감이 들판이 덜덜 울리게 웃어대자 다른 할아버지들도 모두 큰소리로 따라웃어댔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대로 있기가 거북해서 곧 자리를 뜨려고 하시는데 덕범이가 할아버지들에게 말했다.

《성주는 공부도 잘하지만 장기두 잘 둡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제일 반가와하는분은 황주집할아버지였다.

《자 그럼! 두민령감, 한번 학생하구 장기를 놀아보지 않겠소? 학생, 이 령감하구 한번 두어보라구. 꼭 한번 지우란 말일세.》

《전 장기를 놀줄 모릅니다. 저희들은 돌아가겠습니다.》

대원수님께서 일어서려고 하시는데 황주집할아버지가 대원수님의 손목을 꼭 잡았다. 그리고 동무들도 해보라고 눈짓을 했다.

《산술을 잘하는걸 보니 장기두 잘 둘것 같은데 한번 놀아볼가? 아이들끼리 하는것보다 어른들하구 놀아야 장기수가 느는 법이라네.》

두민령감은 벌써 장기쪽을 놓기 시작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할아버지들앞에 나서기가 매우 민망스러우셨다. 그렇다고 장기쪽을 놓는것을 보고 돌아갈수도 없고 하여 난처한 립장에 처하게 되셨다.

《장기에는 좀 자신이 없는 모양이지? 괜찮네. 그럼 〈포〉를 하나 떼주구 하지.》 하며 두민령감은 놓았던 《포》를 걷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할아버지들한테 배우기도 할겸 한번 해보고싶은 생각이 드셨다.

《포》를 떼주겠다는 바람에 앞으로 쑥 나앉으시며 《할바에는 〈포〉를 떼지 말구 해보구싶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허허허… 져두 맞잡구 해서 지겠단 말이지. 역시 사내대장부의 열통이 그래야지. 자, 그럼 먼저 두게.》

이렇게 하여 장기는 시작되였다. 처음에는 한편 《졸》을 접고 《말》이 나가고 《포》가 《궁》앞으로 넘어오고 《졸》들을 접고 《상》이 나가는 등 거의 기계적으로 장기쪽들이 움직여졌다. 이러는 동안에 《졸》들도 몇개 떨어지고 《말》이나 《상》들도 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음! 역시 보통수는 아니란 말이야.》 하며 두민령감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생각도 깊이 하지 않고 장기쪽들을 옮기더니 《말》이 서뿔리 나왔다가 떨어진 다음부터는 한동안 생각을 하고서야 장기쪽을 옮기는것이였다. 옮겨놓고도 불안해서 군손이 가끔 나가군 했다.

두민령감은 우선 《궁》을 철옹성처럼 꾸리느라고 잡도리를 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중포》를 놓고 왔다갔다 하시다가 《포》를 넘기며 《장군입니다.》 하고 부르셨다. 《귀사》를 올려 장군은 막을수 있었으나 《차》가 떨어지게 되였다. 두민령감은 무릎을 툭 치며 깜박 속았다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자 제일 통쾌해하는분은 황주집할아버지였다. 어느덧 느티나무아래서 일을 하던분들도 모두 장기판을 둘러싸고 흥미있게 들여다보고있었다.

《내기장기인데 아예 훈수를 해서는 안되오. 두민령감 코를 잡고 절하는 꼴을 한번 보아야겠소. 으하하하…》 하며 황주집할아버지가 떠들썩 고아댔다.

장기는 점점 더 심각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런데 대원수님의 《말》이 나가서 상대편의 《면포》를 때렸다. 그리고 《차》들이 나가서 량편으로 달렸다. 《궁》이 한복판에 있고 《귀사》가 량옆에 붙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차》로 《귀사》를 갈겼다.

하는수없이 할아버지는 《차》를 때리는수밖에 없었다.

대원수님의 《차》가 남은 《귀사》를 치면서 《장군》을 불렀다. 《궁》이 피하는 바람에 한개 남았던 《포》도 맥을 못쓰고 떨어졌다. 어느덧 《차》와 《말》이 궁자리 한복판 구멍을 노렸다.

이리하여 장기는 대원수님의 승리로 끝났다. 둘러앉아서 구경을 하던분들은 대원수님의 장기수에 감탄을 했고 황주집할아버지는 두민령감에게 코를 잡고 절을 하라고 놀려주었다.

《한번 다시 두어보세.》

두민령감이 뒤통수를 쓱쓱 긁더니 장기쪽들을 다시 놓기 시작했다.

대원수님께서는 두민할아버지의 장기수를 짐작하실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두번씩이나 거듭 이길수도 없고 한번 이기고 그만두겠다고 물러서실수도 없었다. 그래서 두번째번에는 그리 아득바득 달라붙지 않으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졸》 하나를 움직이는데도 오래 생각하고서야 손을 대는것이였다.

그러나 원체 장기수에 차이가 있기때문에 두민할아버지가 또 몰리기 시작했다.

룡강집할아버지가 옆에서 훈수를 했으나 두민할아버지는 그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놀다가 대원수님의 《상》이 나가는 바람에 《포》가 떨어지게 되였다.

《허! 이거 또 실수를 했군. 하나만 물려주게.》

《예, 좋습니다.》

대원수님께서는 《상》을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으셨다.

《내기장기에 물린다는 말이 무슨 소리요. 졌으면 졌다구 항복을 할것이지!》 하며 황주집할아버지가 《상》을 다시 내다놓았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하여 두번이나 물려주시면서 양보하셨다.

이리하여 두번째 판에서는 두민령감이 이긴격으로 되였다. 결국 장기는 비기고말았다.

둘러앉았던 할아버지들은 한번 더 해서 결승을 하라고 하였으나 대원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두민령감은 요행 비겼을 때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더 두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원수님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동무들은 두번째 판에도 결국은 할아버지가 진것이라고 하면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병사인양 노상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