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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20


저녁식사를 할 때부터 굵은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쏟아졌다.

《한보지락 올려는 모양이군!》 하고 외할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랑물이 쫠쫠 내리게 한참 퍼부었으면 좋겠쉐다.》

가운데외삼촌의 대답이였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연방 밖을 내다보았다.

가운데외삼촌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흘렀고 이마에서는 주름이 펴지는듯싶었다.

비는 계속 쭈룩쭈룩 소리를 내면서 쏟아져내렸다.

저녁상을 물린지 오래지 않아서 학습반동무들이 우장들을 쓰고 모두 모여왔다. 그중에서도 인삼이의 웃는 얼굴을 보신 대원수님께서는 한결 마음이 놓이시였다.

《너희들 비와서 오늘은 못모일줄 알았는데 모두 왔구나!》

대원수님께서는 기쁜 얼굴로 동무들을 둘러보셨다.

《여느때라면 몰라도 학기말시험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그냥 앉아있을수 있어야지.》

덕범이의 말이였다.

《네 말이 옳다. 이번 학기말시험에는 우등, 최우등들을 해야겠는데 모두 자신있지?》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우등, 최우등은 못해두 난 락제국만 면해두 좋겠다.》

인삼이는 아까 최돼지네 마당에서 눈물을 흘릴 때와는 판판 달리 아주 명랑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뭐 락제국? 그딴 시시한 소리는 하지두 말아!》 하며 덕범이는 인삼이를 흘겨보더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락제국 끓이는 가마는 엿장수한테 벌써 팔아먹었단 말이야. 이제는 그따위 락제국은 끓이지두 않는거야.》

이렇게 말하며 덕범이는 노상 눈을 디굴디굴 굴렸다.

동무들은 밤늦도록 학기말시험준비에 몰두하였다. 졸음이 오면 밖으로 나가서 추녀끝에 흐르는 물을 받아 세면을 하고 들어와서 공부를 하였다. 그들은 열한시가 넘은 후에야 집으로들 돌아갔다. 이때까지도 비는 계속 내리고있었다.

다음날 이른새벽에 대원수님께서는 비소리에 잠에서 깨여나시였다. 작은외삼촌은 벌써 소를 끌고 밖으로 풀을 먹이러 나갔다.

외할아버님께서는 토방에 서서 비내리는것을 보고계셨다.

《무슨 큰 소문을 낼것 같군. 한동안은 가물져 걱정, 이제는 장마져 걱정, 농민들은 한시두 걱정보따리를 버릴수가 없구나.》

외할아버님께서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리시였다.

대원수님께서도 외할아버님곁에 서시여 밖을 내다보고계셨다.

《밤새도록 이렇게 비가 많이 왔나요?》

《새벽에는 이보다두 더 억수루 퍼부었단다. 내 가난골 조밭에 잠간 나갔다오겠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우장을 쓰시더니 삽을 드시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동켠하늘은 훤해지는데 서쪽과 북쪽하늘은 점점 더 캄캄해왔다. 하늘 한복판에서 번개가 번쩍하고는 조금후에 우뢰소리가 《우르릉 땅땅》 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벼락이라도 치는것 같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아침상을 물리시고 잠간 책을 들여다보시다가 학교로 올라가시려고 책보를 꾸리고계셨다. 이때에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쪽다리를 건너다니는 선내동어린이들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우장을 쓰시고 얼른 밖으로 달려나가셨다.

칠골 한복판을 흐르는 내물은 동뚝을 넘을듯이 가득차 흐르고있었다. 조금만 더 세게 흐르면 뚝이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대원수님께서는 나무다리 있는데로 분주히 달려가시였다. 벌써 아이들이 쪽다리를 건너오고있었다.

(내가 늦었구나.) 하고 생각하신 대원수님께서는 그리로 발걸음을 다그치셨다.

이때에 1학년 어린애가 마대를 접어쓰고 언덕으로 올라오다가 미끄러져서 물웅뎅이에 첨벙 들어갔다. 대원수님께서 그 아이곁으로 뛰여가보시니 명구와 한책상에 앉는 창수라는 어린애였다.

창수는 한손에는 책보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나막신을 들었는데 책보에서는 흙물이 쭈르르 흘러내렸다. 물참봉이 된 창수는 책보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젖히고 울음통을 터뜨렸다.

《얘, 내가 한발 늦었구나.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대원수님께서는 창수를 업고 집으로 분주히 돌아오시였다.

《삼촌어머니, 명구의 헌옷이라도 좀 입을만 한것이 없나요?》

문밖에 이르신 대원수님께서 다급히 소리치셨다.

외삼촌어머님께서 밖으로 뛰여나오시더니 《에그머니, 저걸 어쩌나!》 하며 창수의 손을 잡고 우선 방으로 들어가셨다.

《명구두 단벌옷밖에 안돼서 야단났구나. 전에 입던 헌옷이라도 얻어보자.》

외삼촌어머님께서는 의농문을 열더니 농밑에서 작년에 입던 헌 여름옷 한벌을 꺼내놓으셨다.

《야, 이 옷이야 어디 남의 어린애에게 입히겠니.》 하며 외삼촌어머님은 꺼낸 옷을 들어 대원수님께 보였다. 옷이 작기도 하거니와 여러군데 더덕더덕 기운 옷이였다.

《엄마, 그걸 내가 입구 이걸 벗어서 창수 줄래.》

명구는 어머님의 대답이 채 떨어도 지기 전에 벌써 적삼을 훌렁 벗었다.

《응, 그게 좋겠다. 우리 명구가 아주 용해.》

외삼촌어머님의 말씀이였다.

이리하여 창수는 명구가 입었던 옷을 갈아입었다. 명구가 입은 옷은 팔소매도 깡충했고 잠뱅이는 거의 무릎에 쳤다.

《애개, 이것봐. 이거 내가 이렇게 컸구나.》 하며 명구는 기뻐 날뛰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다시 밖으로 뛰여나가시였다.

비는 계속 억수로 퍼부었다. 좁은 나무다리는 무척 미끄러웠다. 나무다리우를 잘 걸어보지 못한 아이들은 엎디여 벌벌 기기까지 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 건늬여주셨다. 작은 아이들은 업어건늬였고 조금 큰 아이들은 손을 잡고 건늬여주시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마지막아이까지 건늬여주신 다음 집으로 들어오시여 책보를 드시고 학교로 올라가시였다.

명구의 옷을 빌려입고 학교에 올라간 창수는 명구와 함께 현관에 서서 비내리는것을 구경하고있었다. 그는 대원수님을 보더니 손가락을 꼭 잡으며 생글생글 웃는것이였다.

《네 옷은 벌써 빨아널었더라. 이따 돌아갈 때는 찾아입구 갈수 있을거야.》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창수는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기뻐하는것이였다.

이날 5학년아이들은 절반 조금 남짓하게 모였고 4학년아이들은 몇명 나오지 못하였다 . 그래서 수업은 오전에 끝났다. 대원수님께서 공부를 끝내시고 집으로 돌아오시니 창수가 명구와 함께 앉아서 공부를 하고있었다.

《너희들 먼저 왔구나. 어서들 공부를 해라.》

《우리들하구 같이 공부해.》 하며 창수는 대원수님의 팔을 끌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들곁에 앉아 책을 펼쳐놓으시였다. 명구와 창수는 가지런히 앉아 묻기도 하고 대주기도 하면서 오손도손 공부를 하는것이 무척 귀여웠다.

《이젠 숙제를 다했는데 갈래.》

창수는 주섬주섬 책보를 싸며 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있었다.

《창수, 너 우리 집에서 명구와 함께 자구 래일아침에 학교루 바루 가려마. 저렇게 비가 오는데 어디 가겠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자면 안돼. 내가 물에 떠내려간줄 알구 우리 어머니가 걱정해. 마대를 쓰구가면 돼.》 하며 창수는 책보를 어깨에 메더니 마대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것이였다.

《그럼 나하구 같이 가자.》

대원수님께서는 창수를 업고 우장을 쓰신 후 밖으로 나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나무다리를 지나 언덕길을 돌아서 선내동으로 향하시였다.

《이젠 됐어. 나 혼자서두 갈수 있어.》

등에 업혀서 우장사이로 밖을 내다보고있던 창수의 말이였다. 업혀가기가 미안한 모양이였다.

《가만히 업혀있어라. 너 혼자 가다가 또 물웅뎅이에 빠질려구 그러니?》

《이젠 안빠져.》

《아침엔 뭐 빠지구싶어서 빠졌니? 그러지 말구 가만히 업혀있어라.》

대원수님께서는 그냥 업고 창수네 집으로 향하시였다. 때마침 창수 어머니는 우장을 쓰고 밖으로 나오다가 마당에서 대원수님과 서로 마주쳤다.

창수 어머니는 우장속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대원수님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업혀오는 애가 창수가 아닌가고 묻는것이였다. 창수는 우장을 들치고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너 어찌된 일이냐?》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 반색을 했다.

《아이구, 이런 고마울데가 어디 있겠나. 남의 아이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우리 창수만 돌아오지 않기에 어찐 일인가 하구 지금 막 학교루 찾아가던 참이지. 독같은 아이를 업구서 여기까지 왔구만.》

창수 어머니는 너무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창수를 그 집 토방에 내려놓으시였다.

《어머니! 오늘아침에두 이 형님이 나를 업어서 다리를 건네주었어. 나 오늘아침에 물에 빠졌댔어. 여기까지 말이야.》 하며 창수는 손으로 목을 가리켰다.

《원 저런, 큰일날번 했구나.》

《그런걸 이 형님이 건져서 업어다주었어. 이 옷은 이 형님네 어머니가 빨아서 다리미루 말리워주었구. 난 오늘 명구의 옷을 입구 학교에 갔댔거덩. 어머닌 명구가 누군지 모르지?》

《모른다.》

《교감선생님이 명구 할아버지야. 어머니는 그것두 모르네.》

이 말을 들은 창수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대원수님을 바라보는것이였다.

《아니 그럼, 학생이 교감선생님의 외손자되시는분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내 글쎄, 아까 저녀석을 업구올 때부터 물어볼가 했드랬지. 그렇게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구 사랑한다구 소문이 자자했는데 난 오늘에야 만나게 됐구만! 우리 집에 좀 앉았다 가라구.》

《후에 또 놀러오겠습니다.》

《하기는 들어가야 뭐 대접할것두 없구. 그럼 후날 꼭 오라구!》

창수 어머니는 마당에까지 따라나와서 배웅해주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길로 보패네 집으로 찾아가시였다. 보패는 학습장을 펴놓고 숙제푼것을 살펴보고있었다.

《오래 기다렸니?》

《기다리긴 뭐. 비가 오기에 오빠한테 찾아갈라구 했더니 오는구만.》

《비온다구 약속을 어길가? 자, 어디 숙제한걸 검사해보자.》

대원수님께서는 산술숙제 내준것을 검사해보셨다. 두자리제법계산문제를 열문제나 내주었는데 모두 다 정확히 계산해놓았다.

대원수님께서는 3학년 산술책을 펴놓으시고 응용문제를 골라서 같이 푸시면서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였다. 보패는 응용문제를 몇문제 풀어놓고 매우 기뻐했다. 산술이 그렇게 재미있는것인줄은 처음 알았다.

이날 대원수님께서는 응용문제와 계산문제들을 골라서 숙제를 내주고 돌아오시였다.


× ×


그날밤에도 계속 비가 내렸고 다음날 오전에도 비는 멎지 않았다.

오후부터야 하늘이 차차 환해지더니 비방울도 점점 작아졌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무렵이 되자 가랑비로 변했다.

얼마후 가랑비도 멎고 하늬바람이 쌩하고 불어왔다.

구름이 깨끗이 밀려나간 북쪽하늘은 류달리 맑고 높아보였다. 새 기분과 정기가 도는것 같았다.

바람이 휙 지나가자 아카시아나무에서 굵은 물방울들이 후두두 떨어졌다. 마당 한복판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꺼비란 놈이 어기적어기적 기여가고있었다. 강아지가 그리로 달려가 코로 쿡쿡 맡아보더니 두꺼비앞으로 가서 앞발을 툭툭 치며 놀이를 하고있었다.

어느덧 동쪽하늘에 무지개가 비끼였다. 쌍무지개였다. 무지개는 아롱다롱 정말 고왔다. 무지개는 점점 더 령롱하게 나타났다.

이때에 덕범이가 대원수님의 앞으로 달려오며 왁작 고아댔다.

《대동강으로 물구경 나가자. 지금 굉장하다는거야.》

《물구경? 우선 저 무지개부터 보구 가자. 쌍무지개야! 얼마나 고우냐.》

대원수님께서는 계속 무지개를 바라보고계시였다.

《무지개야 아무때구 볼수 있지 않니. 남들두 다 가는데 우리두 어서 가보자.》

덕범이는 대원수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가보자. 다른 아이들은 안가겠다던?》

《벌써 저 신작로에서 기다리구있어. 그동안 어디 갔댔니? 너를 찾으려구 온 동네를 다 찾아다녔는데 안보이더니 여기 있는걸 몰랐댔구나.》

이러면서 덕범이는 떠들썩 고아댔다.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와 함께 신작로쪽으로 달려가셨다. 거기에는 윤병이, 인삼이, 경만이 그밖의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모두 물란리소식들로 이야기판을 벌리고있었다. 어디서는 한 마을이 모두 물에 떠내려갔다느니, 어디서는 강물에 집이 떠내려가는데 그 지붕우에 사람이 있었다느니, 어디서는 소가 떠내려가는데 소꼬리에는 사람이 달려 고함을 치고있었다느니, 어느 동밑에 있는 마을은 밤에 동이 터지는 바람에 몰살했다느니 별의별 이야기들이 많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시면서 동무들과 함께 대동강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눈부신 해발이 비쳤다. 풀과 나무잎에 맺힌 물방울들에 해빛이 비치니 진주보석처럼 아름답게 반짝이였다.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나무잎들은 새 정기를 받은듯 령롱하였다. 나무에 앉아있던 참새들도 몸을 포르르 떨더니 어디론가 날아갔다.

일행은 대동강변에 이르렀다. 강물은 정말 무섭게 흘러내렸다. 사람이건 집이건 그냥 막 삼킬듯 하였다.

검붉은 물이 사품쳐 흘렀다. 아름드리 재목도 떠내려오고 나무낟가리도 떠내려오고 주인없는 배도 빙글빙글 돌면서 떠내려왔다.

《저기 사람 떠내려온다.》 하고 누가 소리쳤다. 아이들은 모두 그리로 시선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라 돼지였다. 퍼그나 큰 돼지가 떠내려오고있는데 물속에 쑥 들어갔다가는 솟아오르면서 머리를 쑥 우로 들군 하였다. 얼마후에 집 한채가 떠내려왔다. 초가집이였다.

《토성랑에 있던 판자집들은 떠내려가지 않았을가?》

대원수님께서 걱정어린 얼굴로 윤병이에게 물으셨다.

《글쎄, 양덕에서 물이 나면 평양에는 스무시간쯤 걸려서 도착한다는거야. 그러니까 토성랑판자집들은 어제 저녁때쯤 떠내려갔거나 그렇지 않음 물에 잠겼을거야.》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던 토성랑의 판자집들의 모습이 환히 떠오르셨다.

《장쇠네 집은 어떻게 됐을가?》

《글쎄, 밑에 있었으니까 외상없이 떠내려갔을거야.》

대원수님께서는 그대로 서서 물구경이나 하고있을수는 없으셨다.

《넌 토성랑에 가보지 않겠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윤병이에게 물으셨다.

《모두 밀어버렸겠는데 거긴 가서 뭘하겠니.》

《아니야, 가봐야겠어. 그럼 내 혼자라두 곧 갔다올게.》

대원수님께서 혼자 떠나시려고 하자 윤병이도 따라나섰다.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함께 토성랑쪽을 향하여 줄달음치셨다.

윤병이의 말이 옳았다. 토성밑 강변에 내려앉았던 판자집들은 더러는 물에 잠겨있으나 거의 대부분은 떠내려갔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들이 간 곳이 없고 강기슭은 번번했다.

강물이 넘어서 부근은 바다를 이루었다. 어디가 어딘지조차 알아볼수 없게 되였다.

토성우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함께 그리로 달려가셨다. 사람들은 이불짐과 보퉁이들을 꾸려가지고 나와서 시름없이 앉아있었다. 이야기할 기력마저 잃었는지 묵묵히 앉아들 있었다. 아이들을 오롱조롱 네댓명 앞에 앉히우고 한숨만 짓고있는 할머니도 있고 이불짐을 이고지고 우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앞뒤에서 우는 아이를 손잡고 달래느라고 서성거리는 녀인이 있는가 하면 돌멩이들을 주어다가 길가에 솥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측은한 마음으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계셨다.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오늘 밤부터라도 당장 어디서 자며 무엇을 먹고 살아간단 말인가!

대원수님께서는 한 아주머니앞으로 다가가시여 《아주머니, 저밑에서 살던 장쇠네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시나요?》 하고 물으셨다. 그 아주머니는 대원수님을 흘깃 쳐다볼뿐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하여 입을 열었다.

《그밑에서 산 사람들중에는 잘못된 사람들이 많다네. 장쇠인지 하는 아이네는 모르겠네만 지난 밤에 많은 사람들이 종적을 잃었다네.》

그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보게나. 저런 물결이 한밤중에 막 밀려들었으니 견딜수 있었겠나. 잠꾸러기들이야 영영 팔자를 고치구말았지. 하기야 이렇게 살바에야 그편이 나을런지두 모르지.》

대원수님께서도 한동안 강물을 바라보고계셨다.

《돌아가자 얘.》

윤병이의 말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발길을 돌리시여 오래동안 잠자코 걸으셨다. 장쇠와 그 집에 대한 생각이 줄곧 사라지지 않으셨다.

만일에 장쇠네 세식구가 물에 떠내려가서 죽었다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다는 사람으로 태여나서 그렇게 살다가 죽고만다면야 사람으로 태여났던 보람이 무엇이며 무엇을 가지고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다 그렇지 않은가. 산과 들에 자라는 이름없는 풀들도 한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윽한 향기를 풍겨 벌과 나비들이 찾아들게 하며 벌레들도 새들도 자기의 한시절을 마음껏 노래하며 즐기는데 사람으로 태여나서 죽는 날까지 어느 하루도 기쁜날 없이 눈물과 한숨으로 한평생을 보내다가 그대로 사라져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중에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도 잘먹구 잘사는 놈들이 있지 않는가. 그런 놈들은 세상에 그리 많지 못한것 같은데 가난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칠골만 해도 백집이 넘는 가운데 큰 지주는 귀동이네 한집이고 그 집만큼 큰 부자는 못되지만 지주라는 집이 서너집이 있을뿐 그밖에는 모두가 남의 땅을 부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 아닌가. 백집도 넘는 소작인들은 서너너덧집밖에 안되는 지주에게 얽매여 살아야 하며 뼈가 휘도록 일을 해서는 거의다 그놈들에게 빼앗겨야 하니 도대체 어느 놈이 그따위 법을 만들어놓았단 말인가.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가지고 지주놈들과 싸우면 넉넉히 이길것만 같은데 무엇때문에 그놈들이 하라는대로만 수걱수걱 하고있는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그저께 저녁에 있은 일이 삼삼히 떠오르셨다. 최돼지가 밀 한가마니를 줄 때 그놈의 말대로 수걱수걱 한가마니만을 가져갔더라면 어떻게 되였겠는가? 외할아버님께서 사리를 따지고 단호하게 처리하셨기때문에 문제는 옳게 해결된것이 아닌가. 인삼이 아버지도 《두고보자.》고 할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대들었더라면 최돼지도 쩔쩔맸을는지 모른다. 인삼이 아버지만이 아니라 온 마을의 농민들이 힘을 합쳐 싸운다면 무슨 끝장이 날것만 같으셨다.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문득 《지원》이라는 두 글자가 우련히 나타났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지원》에 대해서 늘 이야기해주시던 말씀들이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듯싶으셨다.

(그렇다. 원대한 뜻을 품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힘차게 싸워나간다면 반드시 이길수 있다.)

대원수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시며 머리를 숙이시고 발걸음을 옮기시는데 길바닥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것이 보였다. 큰 지렁이가 개미떼에 물려서 끌려가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윤병이도 우뚝 섰다. 지렁이 한마리에 수많은 개미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있었다. 지렁이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마나 요동을 썼는지 이제는 늘치분해졌다. 때때로 꿈틀거리기는 하지만 계속 개미떼에게 끌려가고있었다.

(조선사람들이 힘이 약하구 가난한 사람들은 권력이 없다구 하더라도 저렇게 힘을 모아가지구 싸우면 일본놈들이나 지주놈들두 넉넉히 이겨낼수 있을거야.)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며 계속 지렁이와 개미들을 들여다보셨다.

《어서 가자. 별걸 다 들여다보누나.》

윤병이의 말이였다.

《너 이 큰 지렁이가 어떻게 되여 작은 개미한테 끌려가는지 아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그대로 서신채 물으셨다.

《개미는 여럿이구 지렁이는 한놈이니까 끌려가지 뭐.》

《네 대답은 절반밖에 맞지 않았어. 개미가 여럿이기두 하지만 죽을 기를 쓰구 달라붙기때문이야. 저것 봐라. 저 개미는 지렁이에게 깔리면서두 물어뜯구있지 않니.》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지렁이는 한뽐이나 되게 끌려갔다. 대원수님께서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일본놈들이나 지주놈들이 아무리 권세가 있구 힘이 강해보이지만 개미들이 지렁이를 끌구가듯이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가지구 달라붙으면 넉넉히 이길수 있어.》

《너는 언제나 그 생각뿐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것이 나쁘냐?》

《아니야, 좋은 생각이야.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이 잘 나지 않거덩.》

《그래두 자꾸만 생각해야 해. 그래야 우리들이 더 큰댐에 왜놈들과 지주놈들을 반대해서 싸울수 있지 않겠니?》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며 퍼그나 저물어서야 칠골로 돌아오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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