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16회


16


학교에서 돌아오신 대원수님께서는 책상앞에 마주앉으시며 방금 책을 펼쳐놓으시였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보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얼른 문을 여시였다.

《오빠, 혼자 있나?》

《응, 어떻게 왔니? 들어오려마.》

《괜찮아. 오빠 또 어디 가지 않나?》

《가지 않아. 왜 무슨 일이 있었니?》

《큰일은 아니야.》

《뭔데? 이야기하려마.》

《오빠는 언제 좀 짬이 있나. 낮에는 자기의 공부를 해야 하구 밤에는 동네아이들을 모아놓구 글을 배워주어야 하구, 도무지 짬이 없겠구나.》

《사람은 언제나 분주해야 되는거야. 한가하면 건달이 된단 말이야. 알겠어?》

《호호호… 그래서 얘기할 짬두 없이 만날 분주하게 돌아가나?》

《지금두 이렇게 얘기하구있지 않니. 그런데 뭐 굉장히 긴 얘기가 있니?》

대원수님께서는 보패를 바라보시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셨다. 그러나 보패는 아래입술을 감빨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어머니가 또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우시던?》

《오빠두 참! 어머니는 뭐 만날 울기만 하는 사람인가?》

보패는 생긋 웃으면서 대원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럼 왜 말하기 힘들어하니? 말을 해야 알지.》

《오빠, 저… 내게두 글을 좀 배워줄수 없어? 동네 남자아이들에게는 모두 배워준다면서?》

《아, 정말 내가 한번 찾아간다는게 잊었댔구나. 할아버지한테서 말을 들었어.》

《배울 사람이 찾아와야지 배워줄 사람이 찾아다니겠니. 그런 말은 그만두구 어서 좀 배워줘!》

《자, 그럼 들어와 앉어. 내가 먼저 찾아가지 못해서 안됐다야.》

《오빤 별소릴 다 하네.》 하며 보패는 방으로 들어와앉았다.

《누나는 학교에 꼭 다녀야 할텐데…》

《누구는 뭐 다니구싶지 않아서 안다니나? 다닐 형편이 못돼서 못다니지.》

《형편은 무슨 형편이야. 책보를 싸가지구 학교에 가면 되는거지!》

《호호호… 오빠두 참!》

보패는 고름끈을 입에 대고 한참 웃었다.

《할아버지두 학교에 올라오라구 말씀하시구 어머니랑 오빠두 학교에 다니라구 하지만 난 학교에 안다니기로 결심했어.》

《왜?》

《내가 학교에 다니느라구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지 못하면 약한 어머니는 고생끝에 인차 쓰러지구말거야. 어머니는 오래오래 살아야 해. 그래서 왜놈이 망하구 우리 나라가 독립하는것을 봐야 할게 아니야? 그땐 아버지두 나오시게 될거구 나두 맘놓구 학교에 다닐수 있게 될거야. 지금은 학교에 다니지 못해도 좋아. 어머니의 고생만 좀더 덜어드릴수 있다면 좋겠어.》

보패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씻는것이였다.

《그 생각은 좋은거지만 가만히 앉아서 독립될것을 기다려서는 안돼.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워야 하는거야. 누나두 잘 배워가지구 싸움에 나서야 한단 말이야.》

《나두 전에는 배워야 한다는걸 잘 몰랐는데 어머니 얘기를 들으면서부터 꼭 배워야겠다구 생각하게 됐어.》

《어머니가 뭐라구 말씀하시던?》

보패는 한동안 대답이 없이 옷고름만 매만지더니 얼마후에야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늘 우리들에게 〈내가 글을 안다면 네 아버지가 하던 일을 대신이라도 하겠는데 눈뜬 소경이니 무엇에다 쓰겠니. 배우지 못한것이 정말 한스럽구나.〉 이렇게 말씀하시지 뭐.》

이 말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셨다.

《어머님 말씀이 옳아. 왜놈들과 싸우려면 꼭 배워야 해. 누나 결심이 아주 대단한데! 그렇게 결심이 굳으니까 학교에 다니지 않아두 공부를 할수 있다구 생각해. 나두 아는데까지 배워줄게. 그리구 모를거는 할아버지한테 물으면 될게 아니야?》

《응, 그렇게 하겠어. 팔도구 고모님두 학교에 다니지 않으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글읽는 소리를 들으시구 굉장히 큰 책을 같이 외웠다구 그러지 않아. 나두 고모님처럼 오빠한테 글을 배우면 되지 뭐.》

보패는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빠! 이런 말을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해서는 안돼!》

《뭔데?》

대원수님께서는 정색하시여 보패를 바라보셨다.

《어제 어머니는 호별세를 물겠다구 할아버지 몰래 된장을 이구 성안에 들어가서 고생만 하구 그냥 돌아왔어.》

《장을 팔아?》

《장이라두 팔아야지 뭐. 구장은 매일처럼 와서 세금을 물라는거야. 우리때문에 온 동네가 벌금을 물게 된다나?》

《그래, 조금두 팔지 못했나?》

《큰집에 들어가면 찍어먹어보구 장이 달지 않다구 타발을 하구, 작은집들에선 돈이 없다구 못사더라는거야.》

보패는 어깨를 떨구며 한숨을 지었다.

《세금이구 뭐구 안물면 어때!》

대원수님께서는 두주먹을 불끈 쥐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빠는 정말,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구 그래. 조선사람들이 그렇게 기를 펴구 사는 세상이나?》

보패는 제법 어른답게 대꾸했다.

《그럼 뭐 방법이 있나?》

《오늘 또 이구나갔으니까 팔아오겠지 뭐. 그건 그렇구 어서 글이나 배워줘. 난 학교에 안다녀두 오빠한테 배우면 돼.》

대원수님께서도 한숨을 지으시고 책상에 마주앉으셨다. 그리고는 학습장을 펼쳐놓으시고 《가갸 거겨…》 하고 써내려가기 시작하셨다.

이것을 본 보패는 《호호호…》웃으며 연필을 드신 대원수님의 손을 꼭 잡았다.

《그건 나두 알아. 우리 말로 된 책은 다 읽을수 있어. 다른걸 배워주어.》

《그래? 그거 대단하구나. 어디서 배웠나?》

대원수님께서는 글쓰시던 손을 멈추시고 놀라운 눈으로 보패를 바라보셨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붙들구 배웠지 뭐.》

대원수님께서는 배우려고 그처럼 애쓰고있는 보패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럼 뭘 배워달란 말이냐?》

《구구법을 배워줘. 곱하기를 배워야겠어.》

《더하기 덜기는 배웠나?》

《응.》

대원수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사랑에 가득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구구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주셨다.

《며칠이면 외울수 있나?》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사흘이면 외울수 있어.》

《사흘? 야, 누난 머리가 무던히 좋은 모양이구나! 이것만 외우면 승법이니 제법이니 소수니 분수니 할것없이 다 배워줄게.》

《오빠! 내게만 배워주지 말구 명식오빠에게두 글을 배워줘.》

《명식형님두 4학년밖엔 못다니셨지?》

《응, 어머닌 이젠 머리가 굳어져서 글을 배울수 없지만 명식오빠하구 나하구는 글을 배워야 할게 아니야. 어머닌 글을 몰라서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하지 못하지만 우리들이 물려받아 해야 할게 아니야?》

《누나 말이 옳아. 맏외삼촌의 원쑤를 우리가 갚아야 해. 내가 아는데까지는 누나와 명식형님에게 꼭 배워드리겠어!》

대원수님께서는 보패를 볼 때마다 아이들이나 업어주고 동방구리로 물이나 길어오고 빨래나 하는 어리무던한 처녀로만 알았는데 지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되는 점이 많으셨다. 지금까지 그와 마주앉아 살뜰하게 이야기도 해보지 못했고 그렇게 배우고싶어 하는것조차 알지 못하고 지내온것이 무척 미안하게 생각되셨다.

벌써 구구를 외우기 시작하는 보패의 마음속에는 원쑤 왜놈들을 미워하는 생각이 이글이글 끓어번지는듯 하였다.

이때에 밖에서 어린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명구가 우누나.》

보패가 문을 차고 뛰여나갔다. 대원수님께서도 따라나가셨다. 아닌게아니라 명구가 팔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들어오고있었다. 그의 뒤로 인삼이 동생 원삼이가 따라오고있었다.

《명구, 너 왜 우니. 응?》

대원수님께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으시였다.

그러나 명구는 흑흑 느끼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학교 다니는 학생이 울어서 쓰나? 울지 말구 얘기해라. 왜 우니?》

대원수님께서는 수건을 꺼내 명구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금동이새끼가 때렸어.》 하고 원삼이가 대답했다.

《왜 때렸니?》

《그새끼 칼가지구 노는걸 만졌다구 때려.》 하며 명구는 그냥 흐느끼고있었다.

《금동이가 누구냐?》

《저기 저 기와집 있지 않아? 그 집 둘째아들의 이름이 금동이란다. 명구보다 좀 큰애가 있어.》

보패의 말이였다.

《응, 귀동이 아우말이구나. 울지 말아라. 그딴 놈의 새끼한테 맞을게 뭐냐. 한대 박아주구 오지.》

대원수님께서는 주먹을 쥐고 명구앞에 내흔드시였다.

《나보다 이만큼이나 큰데 뭐. 그리구 귀동이새끼두 거기 있지 않아?》

《명구야, 이제부터 그자식이 때려두 절대루 울지 말구 박아주구 오란 말이야. 울면 그애가 너를 깔본단다. 울면 결국 네가 그애한테 지는거야. 그런 아이들은 저한테 못견디는 아이들을 자꾸만 때린단다. 그러게 아파두 울지 말구 달라붙어서 그놈을 울려주란 말이야. 그래야 그후엔 너한테 얼씬 못한단다. 부자집아이들한테 맞아서는 안돼. 그대신 가난한 집 아이들끼리는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해. 원삼이같은 아이들하구는 싸우지 말구 친하게 놀아야 한다. 알겠니?》

《응.》

명구는 머리를 끄덕이며 주먹으로 눈물을 쓱쓱 문질렀다.

《우리들은 쌈 안해. 명구야, 그렇지?》 하며 원삼이는 명구의 어깨에 자기의 손을 척 올려놓는것이였다. 명구는 원삼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젠 귀동이 그새끼가 때려두 울지 않구 같이 때려주자.》

원삼이의 말이였다.

《응.》 하며 명구는 울음을 그쳤다.

《형! 나두 귀동이새끼 가지구있는 그런 칼 만들어줘. 번쩍번쩍하는 길다란 칼말이야.》

명구는 대원수님의 바지자락을 잡고 졸라댔다.

《칼은 해서 뭘하겠니?》

《칼루 왜놈 잡지 뭐. 왜놈은 나쁜 놈이야. 그렇지? 형!》

《나쁜 놈이구말구. 그래 몇놈이나 잡겠니?》

《난 백놈 잡을래.》

《백놈? 그럼 만들어주지. 그런데 칼이 뭐 좋다던? 칼보다 더 좋은 총을 만들어주마.》

대원수님께서는 며칠전부터 명구한테 주려고 만들고계시던 《기관총》생각이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조금만 더 손질하면 될것이였다.

《아이 좋아! 그럼 좀 만들어줘.》

대원수님께서 채 만들지 못한 《기관총》을 방안에서 꺼내오자 명구는 너무나도 기뻐서 손벽을 짝짝 치며 돌아갔다.

명구와 원삼이는 대원수님앞에 지켜앉아서 기다리고있었다. 총신과 총탁은 다 되였기때문에 방아쇠를 만들면 되는것이였다.

그런데 이때 덕범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다.

《아니, 넌 오늘 뽈차기련습을 그만둘 작정이야. 이건 또 뭐야. 〈기관총〉을 만들구있구나. 시간이 되였겠는데 왜 안오나 했더니 이런 장난을 하면서 안오댔구나.》

《가라 가라, 우리 형은 안가!》

명구는 덕범이를 막 밖으로 쫓아내려고 하였다.

《잠간만 기다려라. 이제는 다 됐다. 명구야, 너 그러면 안돼. 자기네 집에 온 형을 내쫓으면 되나.》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명구도 슬며시 물러섰다.

《하여간 빨리 만들어라. 네가 오지 않아서 아직두 뜬뽈들만 차구있다. 난 뭘 좀 도와줄게 없니?》

《먹이나 좀 갈아다구. 명구, 너 벼루집을 좀 내오너라.》

명구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벼루집을 내왔다. 멋지게 만들어진 총에다 먹칠까지 해놓으니 아주 그럴듯 하였다.

《자, 한번 쏴보자.》

대원수님께서 《기관총》방아쇠를 돌리셨다. 《따따따따!》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야! 멋이 있구나.》

명구는 손벽을 찰싹찰싹 쳤다.

《옛다, 받아라.》 하시며 대원수님께서 명구앞으로 《기관총》을 내놓으셨다.

명구는 《기관총》을 받아쥐고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명구는 원삼이와 함께 총을 들고 새로 만든 운동장으로 뛰여올라갔다.

대원수님께서도 덕범이와 함께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사실은 명구 〈기관총〉을 만들어주려구 늦은것이 아니라 우리 보패누나때문에 늦어졌어. 난 보패누나가 그렇게 글을 배우려고 애쓰고있는것을 오늘이야 알았어.》

《그래? 보패는 학교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는데 편지두 얼마나 잘 쓰는지 모른대. 동네아주머니들의 편지는 거의다 보패가 써준다구 그러더라. 난 보패때문에 요전에 우리 어머니한테 본때있게 욕먹었다 얘.》

《왜?》

《보패는 학교에 안다녀도 글을 잘 아는데 나는 아는것이 없다는거지 뭐. 하여간 보패에게 글을 잘 배워줘라. 정말 그애는 숱한 고생을 한단다.》

《알겠어. 내 공부를 못해도 보패와 우리 명식형을 도와드려야겠어.》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운동장에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귀동이가 새 축구뽈을 구럭에 넣어가지고 운동장으로 올라오는것이였다.

《저놈도 뽈차는것 구경하러 올라오는구나.》

《그애도 뽈차기를 잘하냐?》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보통학교 축구선수라구 우쭐렁거린단다.》

《그래?… 너두 저애 뽈을 좀 차봤니?》

《그 깍쟁이가 나같은 아이에게 차게 한다던? 차라구 해두 안차겠지만. 근데 경만이 그자식은 상기두 귀동이새끼하구 논단다. 그것이 틀려먹었단 말이야. 귀동이 그새끼가 뭐 친해서 경만이하구 노는줄 아니? 부려먹을려구 같이 노는거야.》

《네가 경만이에게 그런걸 잘 이야기해주려마.》

《흥! 그애가 그런걸 알려면 상기두 멀었어. 글쎄 남들은 모두 가물어서 굶어죽겠다구들 하는데 그애는 례배당에 가서 〈하느님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면서 밤낮 기도만 하구있는걸 알면서도 그러누나.》

《그것도 몰라서 그래. 하느님이 없다는것을 똑똑히 깨닫게 되면 례배당에도 가지 않게 될거야.》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어디서 《따따따따…》 하고 기관총소리가 들려왔다.

운동장에 둘러서있던 아이들은 총소리가 나는데로 모두 달려갔다. 명구와 원삼이가 바위뒤에 숨어서 《기관총》을 두르고있었다.

《야, 멋지구나! 어디 좀 보자.》

아이들은 저마다 총을 보려고 야단법석이였다.

《기관총》은 아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계속 옮겨져갔다.

이날 뽈차기련습은 해질무렵까지 계속되였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