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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14


수리날 아침이였다. 하늘은 맑고 사뭇 푸르렀다.

대원수님께서는 광호와 응화 그리고 몇동무들을 데리고 평양성안으로 떠나셨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만경대동무들은 큰 출입이라도 하는듯이 떠들썩 고아대면서 행길에 나섰다.

길떠나기 앞서 작은어머님께서는 떡 몇개를 자그마한 보자기에 싸서 대원수님께 들려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점심보자기를 가지고가는것이 어쩐지 쑥스러워 사양하시였으나 작은어머님께서는 금강산구경도 배가 불러야 한다면서 굳이 들려주셨다.

그런데 할아버님께서는 할아버님대로 10전짜리 백동전 두개를 대원수님께 주시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떡을 가지고가는데 돈을 가지고가서 무엇에 쓰겠는가고 하셨으나 할아버님께서는 남자의 주머니에 돈이 떨어져서는 안된다면서 평양국수라도 한그릇 사먹고 오라는것이였다.

가난에 쪼들리고 일에 쫓기우던 농민들도 이날만은 명절이라고 일손을 떼고 무명옷일망정 깨끗이 빨아입고 거리로 나섰다. 만경대에서도 젊은축들이 한패 밀려 성안으로 향했다. 큰길에 나서니 허리굽은 할머니도 지팽이를 짚고 나섰고 젊은 색시들과 처녀들도 옷단장을 하고 떨쳐나섰다.

성안에 이르니 경상골아래 넓은 마당에 자리잡은 씨름판은 벌써 사람들로 바다를 이루었다.

장사군들은 이통에 돈푼이라도 긁어보려고 끓고있었다. 씨름판이 잘 보이는 곳에는 부자놈들이 다락들을 2층, 3층으로 주런이 지어놓고 다락세를 받는것이였고 다락아래서는 사이다니 맥주니 얼음과자들을 파느라고 야단법석이였다.

씨름판밖에서는 행상군들이 수풀처럼 모여서서 종을 치며 《싸구려》를 부르는가 하면 온몸에 울긋불긋한 천들을 걸고 목에 피대를 돋구며 웨치는축들도 있었다. 한손으로 나팔을 불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징을 울리고 발로는 북을 칠수 있는 장치를 해가지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뚤레레 삐삐 쿵짜쿵짜》 하는 약장사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사람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난듯이 죽 둘러서서 한참 구경하다가 약광고가 시작되자 한사람, 두사람씩 흩어져버리군 하였다.

좀장사치들은 아이들의 코묻은 돈이라도 긁어보려고 호두기달린 고무풍선에 색색이 물감칠을 한 닭털을 달아가지고는 몇개 남지 않았으니 다 팔리기 전에 어서 사가라고 떠들어대고있었다. 신수좋은 사람들은 1전을 내고도 50전짜리 상품도 탈수 있고 10전짜리나 5전짜리 과자도 탈수 있다고 고아대며 1전짜리 떼기판을 벌려놓고 나무통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런것들을 한눈에 스쳐보시며 동무들과 함께 씨름판쪽으로 달려가셨다.

씨름판에는 벌써 사람들이 꽉 차서 도무지 들어갈수가 없었다.

《야!》 하고 구경군들은 일제히 환성을 올렸다.

씨름이 시작된것은 분명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뒤로 돌며 칠골동무들을 찾아보셨다. 그러나 아는 얼굴은 하나도 만날수 없으셨다. 이러는 사이에 만경대에서 온 동무들까지 거의 놓치고마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광호와 함께 큰 다락옆으로 달려가셨다. 거기서도 씨름하는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락아래서는 사이다와 맥주들을 다락우로 올려가기에 분주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무심코 곁에 있는 2층 다락우를 쳐다보셨다.

거기에는 《하오리》를 입고 맥고모자를 쓴 안경쟁이왜놈이 제 녀편네와 아이들을 데리고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데 그놈의 곁에는 칠골 최돼지란놈이 백세루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앉아있었다.

최돼지는 왜놈의 턱아래에 매달려서 체통에 맞지 않게 간사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아양을 떨면서 뭐라고 지껄이였다. 그러나 왜놈은 듣는지마는지 딴전만 팔고있었다.

최돼지는 고뿌에 맥주를 따라 왜놈앞에 내밀며 머리를 소짝소짝하는것이였다.

(농민들에게서 빼앗아다가는 왜놈들의 배를 채워주는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원래 최돼지같은 놈은 인간으로 보지 않으셨다.

그런데 지금 왜놈앞에서 굽신거리고 아양을 떠는 꼬락서니를 보니 더욱 미운 생각이 북받쳐올라 그놈들이 있는데로는 눈도 돌리고싶지 않으셨다.

이때에 광호의 역겨워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흥! 저놈들의 배때기에는 거라지들을 차고다니는 모양이구나.》

대원수님께서는 광호를 흘깃 돌아보셨다. 광호가 다른 다락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였다.

대원수님께서도 그리로 눈을 돌리셨다.

그 다락 한복판에는 양돼지처럼 생긴 뚱뚱보가 앉아있는데 얼굴은 허여멀쑥하고 이마에서는 개기름이 질질 돌고 배에는 함지라도 달았는지 남산만 했다. 그자의 곁에는 기생년 둘이 붙어서 량편에서 부채질을 해주고있었다.

그런데 그 양돼지처럼 생긴 놈은 앞에다 먹을것을 한상 차려놓고 계속 입을 후물대는것이였다.

《그러기 가난한 사람은 굶어죽구 돈많은 놈들은 배터져 죽는 세상이라는거야.》

대원수님의 말씀이였다.

이때 씨름판에서 《야!》 하는 환성이 다시 터지더니 웨침소리와 박수소리 그리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그런데 씨름하는것은 보이지 않았다.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마구 쑤시고 들어가면 앞에 있던 사람들은 죽는 소리로 비명을 올렸다. 다락옆은 사람들이 밀고닥치고 하는 바람에 수라장이 되였다. 다락우와 아래는 딴세상같았다.

(씨름판도 왜놈들과 부자놈들의 세상이로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칠골동무들을 찾아보려고 씨름판뒤를 계속 돌고계셨다.

이때 광호가 대원수님의 손을 끄는것이였다.

요행 자리가 생겼던것이다.

《이제는 됐어. 여기서 구경하자.》

씨름판에서는 아이들의 씨름이 한창 벌어지고있었다. 여라문살 되나마나한 아이들이 제법 샅바를 쥐고 마주서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명구도 어디서 지금 씨름구경을 하고있으리라 생각하시며 사방을 둘러보셨으나 눈에 뜨이지 않았다.

씨름은 점점 큰 아이들의 차례로 번져나갔다.

한 아이가 넘어지면 사방에서 많은 아이들이 왁 밀려나가 저마다 샅바를 빼앗으려고 싱갱이질이였다. 심판원은 샅바를 들고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그중 제일 작은 아이에게 맡기군 하였다. 어떤 아이들은 샅바를 빼앗으려다가 차지하지 못하게 되면 혀를 쑥 내밀며 코살을 찡긋하고 물러서군 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무심코 샅바를 빼앗으려고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시다가 거기서 덕범이를 발견하셨다.

《야! 저기 우리 창덕학교 아이두 나갔구나.》

대원수님께서는 곁에 서고있는 광호의 어깨를 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몇아이의 씨름이 끝난 후에 덕범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의 상대는 키도 좀 작았고 몸집도 가늘었다. 그들은 샅바를 쥐고 심판원의 호각소리만 기다리고있었다.

이윽고 호각소리가 울렸다. 덕범이는 샅바를 왼팔에 걸고 일어나자바람으로 배지개를 냉큼 들어 오른편으로 획 돌리며 오른손으로 그애의 왼다리를 꾹 눌렀다. 그애는 별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넘어지고말았다.

덕범이는 이런 식으로 하여 들어오는대로 넘어쳤다. 한 아이를 넘어뜨릴 때마다 관중들은 환성과 박수를 보냈다.

대원수님께서도 덕범이가 관중의 절찬을 받으니 몹시 기쁘셨다.

차차 덕범이보다 큰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덕범이는 들어오는 족족 보기 좋게 넘어쳤다. 심판원도 연방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이제는 덕범이보다 훨씬 큰 아이에게까지 서슴없이 샅바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누구도 덕범이를 당해내지 못했다.

대원수님께서도 덕범이가 한 아이를 넘어뜨릴 때마다 손바닥이 터져라 하고 박수를 보내셨다.

아이들의 씨름도 이렇게 볼만 한데 어른들의 마루씨름은 얼마나 굉장할가싶으셨다. 수천명의 군중이 모인데서 도장원을 하여 소를 끌고가는 사람의 기분이란 얼마나 흐뭇할가 하고 생각하셨다.

대원수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계시는데 관중들의 높은 환성이 터져올랐다. 덕범이가 자기보다 월등 큰 아이를 지운것이였다.

이때 맞은편 다락옆에서 방금 나왔던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큰 아이가 씨름판으로 뛰여나왔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대원수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호철이가 씨름판으로 뛰여들었기때문이였다.

《저건 너무 크다!》

어디서 이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심판원은 두리번거리다가 그대로 호철이에게 샅바를 넘겨주었다.

《아이들의 씨름을 빨리 끝내고 비교씨름을 시작하려는 모양이로군.》

대원수님의 곁에 서있는 뚱뚱한 사나이의 말이였다.

《저애두 우리 학교 아이야.》

대원수님께서 광호에게 알려주셨다.

《결국 23명은 문제없이 넘어지게 됐구나.》

광호의 이 말에 대원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과연 호철이가 부러 져주려고 들어갔는지 아니면 이겨보려고 들어갔는지 짐작하실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샅바를 잡았다. 호철이는 어깨를 앗아보려고 무척 애를 쓰며 돌아갔다.

이윽고 심판원의 호각소리가 울렸다. 덕범이는 일어서면서 배지기를 들려고 하였으나 키도 월등컸고 두팔을 벌리고있었기때문에 잘 들수 없었다.

그들은 일어서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호철이는 덧낚시를 걸고 왼편으로 넘겨보려고 하였지만 덕범이는 걸린 다리를 재빨리 풀면서 두다리에 힘을 주어 중심을 잃지 않았다. 서로 만만치 않은 적수들이였다.

《이번에까지 메치면 도장원은 저 아이에게 주어야겠다!》

구경군중에서 누가 이렇게 큰소리로 고아댔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 손을 쓰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호철이가 허리를 펴며 안낚시를 걸고 덕범이의 허리를 꺾으면서 뒤로 냅다 밀었다. 덕범이는 키도 작거니와 너무 지쳤고 또 불의의 습격을 받게 되여 호철의 힘과 기세를 막아낼수 없었다.

이리하여 덕범이는 그만 모래판에 깔리고말았다.

《야!…》

관중들은 일제히 비명을 올렸다. 덕범이가 넘어지는것을 무척 아수해하는것이였다. 안내원이 덕범이의 손을 잡고 시상석앞으로 데리고갔다. 아이들의 씨름에서는 다섯명이상을 넘어친 아이들에게 상품을 주게 되여있었다. 덕범이는 22명을 넘어뜨리고 단연 최고의 성적을 보였던것이다. 관중들은 시상석앞으로 달려가는 덕범이에게 요란한 박수를 보내면서 그를 오래 지켜보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도 계속 박수를 보내셨다. 덕범이는 학습장 여러권과 연필 몇타스를 받아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를 부르거나 그가 달려가는 뒤로 따라가고싶은 생각이 없지 않으셨으나 많은 사람들앞에서 그럴수는 없으셨다.

호철이는 그다음 자기또래와 맞붙게 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시고 호철이를 쏘아보고계셨다.

《아니 저 아이두 진짜 창덕학교 학생이가?》 하고 광호가 물었다.

《응.》

《아까 그 꼬마씨름군두 창덕학교 학생이구?》

《그럼!》

광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계시는 대원수님께서는 그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으셨다.

《그럼, 저 키꺽다리는 미쳤거나 대갈통이 돌지 않았니?》

대원수님께서는 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그저 광호를 바라보며 웃으시였다.

(어쩌면 아이가 저렇게 돼먹었을가?)

대원수님께서도 혼자 이렇게 생각하셨다.

호철이들의 씨름이 시작되였다. 그는 일어서자바람으로 상대방으로부터 궁둥배지기에 들려 호되게 넘어졌다. 그는 머리와 등에 가득 묻은 모래를 털며 뛰여나오고말았다.

호철이가 나온지 얼마 오래지 않아서 비교씨름이 시작되였다. 사흘이나 계속되는 씨름대회의 첫날이기때문에 비교씨름은 별로 볼만 한것이 되지 못했다. 평양의 큰 씨름군들은 하루나 이틀에 끝내는 함흥이나 원산으로들 내려갔다는것이였다.

오종이 울린지 오래지 않아서 오전씨름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였다. 큰 동산밑에 자리잡은 그네경기장에도 점심시간인지 그쪽에서도 사람의 물결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우리 동네 애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만날수 없구나.》 하고 광호가 말했다.

《우리 둘이라두 헤여지지 말자.》

대원수님께서는 광호의 손을 잡으시고 대동강쪽으로 빠지셨다. 사람들에게 밀려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여도 자연 움직이게마련이였다. 한동안 밀려나가시던 대원수님과 광호는 사람들이 좀 삐인데로 빠져나갈수 있었다. 옷은 땀으로 푹 젖었고 얼굴에는 먼지가 가득 묻었다. 큰 동산과 작은 동산은 그냥 사람들로 바다를 이루고있었다.

거리와 골목들에는 사람의 물결뿐이였다. 평양성안과 그 부근 사람들이 모두 떨쳐나온것 같았다.

대원수님께서 대동강변에 이르렀을무렵이였다.

누가 뒤에서 대원수님의 어깨를 툭 쳤다. 윤병이였다.

《야! 너 어디 앉았댔니? 난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맨앞에 앉았댔어. 우리들은 첫새벽에 떠났댔는데 뭐. 우린 네자리까지 잡아놓고 기다렸는데 도무지 와야말이지. 결국 나중에는 자리까지 빼앗기구말았다야.》

《우리들도 일찍 떠나기는 했는데 거리가 멀어서 좀 늦어졌어.》

《너 그럼 덕범이 씨름하는걸 못보았겠구나?》

《아니야. 덕범이 나가기 썩 전부터 와있었어.》

《호철이 그자식은 확실히 나쁜 자식이야. 래일 학교에 가면 덕범이가 가만 있지 않을게야. 또 칠골하구 팔골이 붙을 판이지.》

《가만 있지 않으면 어쩔테냐. 씨름을 하다가 진걸 가지고 쌈을 걸겠니?》

《그럼, 성안에까지 와서 제 학교 아이를 메쳐야 옳니?》

《글쎄, 그건 나도 기분이 나쁘긴 하더라만 씨름하다가 졌다구 쌈을 걸수야 없지.》

《모르긴 해두 덕범이가 가만 있지 않을게다.》

《그렇다구 쌈을 걸어서는 안돼. 참 너희들 서로 모르겠구나. 이애는 칠골에 있는 윤병이구 이애는 만경대에 있는 광호란 애야.》

대원수님께서 동무들을 소개해주셨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며 싱긋 웃는것으로 첫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덕범이랑 인삼이들은 어디 있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내내 같이 있었는데 방금 왁 헤질 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윤병이는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애들은 보이지 않았다.

세 동무는 그대로 서서 대동강을 바라보고있었다.

대동강에는 수많은 놀이배들이 떠서 오락가락하였다. 두세사람이 타는 작은 배가 있는가 하면 지붕같이 뚜껑을 씌운 굉장히 큰배도 있었다.

울깃불깃한 양산들은 마치 강우에 뜬 꽃송이들같았다. 지붕을 씌운 배우에서는 왜놈들과 부자놈들이 기생들을 데리고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술들을 처먹고있었다.

장사치들은 배를 타고 강가운데까지 들어가서 노를 저어 그들을 따라다니며 요구하는 료리와 술과 과일들을 섬겨주고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을 흘려 일을 해도 목구멍에 풀칠하기가 어려운데 저놈들은 그늘에 가만히 앉아서 부채질만 하다가도 저렇게 뚱땅거리며 처먹구있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대원수님께서는 두눈을 바로뜨고 바라보실수 없으셨다. 결국 농민들이 피와 땀을 흘려서 지은 곡식으로 왜놈들과 부자놈들의 배를 채워주는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농민들이 한없이 가엾게 생각되고 왜놈들과 부자놈들이 끝없이 미워나셨다.

그리고 그놈들의 꽁무니를 줄줄 따라다니며 굽신거리고있는 장사치들은 볼수록 구역질이 났다. 장사군은 저렇게 해야만 물건을 팔수 있겠는가 생각되셨다.

《야, 저기 강가에 내려가서 씨원히 세면이라도 하자꾸나. 이거야 어디 더워서 견디겠니.》 하고 광호가 손바닥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말했다.

아닌게아니라 날씨는 지독히 더웠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보이지 않았고 뜨거운 해빛은 지질듯이 내리쪼이고 아래서는 더운김이 훅훅 올라왔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왜놈들과 부자놈들이 노는 대동강에서 같이 세면도 하고싶지 않으셨다.

《더워서 죽겠니? 다른데로 가자!》

대원수님께서는 광호의 팔소매를 끌어당기셨다.

광호는 눈이 둥그래서 대원수님을 쳐다보았다.

《저놈들이 없는데 가서 점심두 먹구 세면도 하잔 말이야!》

광호는 그제야 알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세 동무는 버드나무가지가 휘늘어진 릉라도를 바라보며 대동강기슭을 거슬러 올라갔다. 청류벽아래에 이른 그들은 거기서 맑은 샘물로 세면도 하고 점심요기도 하였다.

깎아세운듯이 아찔하게 쳐다보이는 청류벽바위옆으로는 산비둘기가 푸드득거리며 날아들고 릉라도 버들숲에는 황금빛 꾀꼴새가 제시절인양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오락가락하고있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시간가는줄 모르고 버드나무그늘에서 땀을 들이고있었다.

《얘들아, 여기서만 시간을 보내겠니? 을밀대에나 올라가보자.》 하고 대원수님께서 일어서시자 두 동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세 동무는 부벽루를 지나 을밀대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금수산은 사람들로 뒤덮였는데 사진사들은 세다리사진기를 뻗쳐놓고 손님들의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했다. 풀밭에 들어앉아 맥주니 사이다를 마시며 왁작 떠드는 패거리도 있고 가랑잎에 싸온 떡을 헤쳐놓고 서로 권하는 아낙네들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사방을 둘러보셨다. 금수산에 우뚝 솟은 모란봉과 을밀봉에는 푸르른 소나무들이 우거졌고 대동강복판에 자리잡은 릉라도의 수양버들은 너울너울 춤을 추는듯 하여 더욱 아름다왔다. 시내 한복판을 꿰뚫고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의 맑고 푸른 물줄기는 평양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듯 하였다.

《야! 정말 경치가 좋구나!》

윤병이는 마치 시인이나 된것처럼 여기저기를 바라보면서 감탄조로 말했다.

《그러기 옛날 시인이 부벽루에 올라와서 붓을 꺾었다구 하지 않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붓은 왜 꺾었을가?》 하고 광호가 물었다.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답구 황홀하니까 자기 재간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다 노래할수 없었단 말이야. 그래 안타까와서 붓을 꺾구 말았다지 않니.》

그들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한동안 말없이 사방을 둘러보고있었다. 이윽고 을밀대에 이르렀다. 을밀대에 오르니 시야도 넓어지고 바람도 시원히 불어들어 기분이 상쾌했다. 을밀대에서는 평양성안이 한눈에 안겨왔다.

거리에는 집들이 꽉 들어찼는데 이삼층집들이 있는가 하면 고래등같은 기와집도 있고 게딱지같은 작은 집들도 수없이 많았다.

거리 량편으로는 울긋불긋한 여러가지 모양의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대동강너머 동쪽을 바라보셨다.

굉장히 넓은 벌판인데 곡식은 한대도 없는 풀밭이였다. 한끝에는 해빛을 받아 번쩍이는 비행기가 날개를 펴고 앉아있었다.

《저기가 비행장이구나.》

대원수님의 말씀이였다.

《응, 저건 비행장이구 또 저건 군대병영이란다.》

윤병이는 눈길을 시내쪽으로 돌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본군대놈들이 있는데야. 77련대라나? 봐라. 얼마나 크게 자리잡구있니. 저쪽에서 이쪽까지거든. 그래두 모자라서 창광산너머 강촌이라는데 훈련장이 또 있단다. 저기 군대들이 지나간다. 총까지 멨구나. 명절이니까 맘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지. 개새끼들같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저놈들한테 빼앗겼으니 정말 기가 막히지 않니?》

《정말 그래!》

《도깨비감투만 하나 있으면 그놈들을 모주리 쓸어눕힐수 있겠지.》

광호의 울분에 찬 말이였다.

《도깨비감투란건 옛말에나 나오는거지 진짜 있는것은 아니야. 도깨비감투가 없어두 조선사람들이 힘을 합쳐가지구 들구 일어서면 왜놈들을 박산내고 우리 나라 독립을 할수 있어. 임진왜란때에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 나라에 기여든 왜놈들을 모주리 쳐부시구 승리하지 않았니. 한 왜장놈은 계월향이라는 녀자한테 뒈지고 숱한 왜놈들이 조선군대들한테 삼대쓸어지듯 했다는거야! 그때 이 을밀대에서도 싸웠다는거야. 몇십명밖에 안되는 인원으로 수만명의 적들과 싸워서 이겼다구 하지 않니.》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어떻게 그렇게 이겼을가?》

《거기에는 훌륭한 전법이 있었지. 왜놈들이 쳐들어온다는걸 알구서 나무가지에 흰옷을 가득 걸었다는거야. 그것을 본 왜놈들은 진짜 조선군대들이 진을 치구있는것으로 알구 감히 접어들지를 못하고 달아나구말았지.》

《야! 그것 참 머리를 잘 썼는데!》

《전쟁을 하려면 그렇게 머리두 잘 써야 하는거야!》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씨름판에서는 다시 씨름이 시작되였는지 《야!》 하는 환성과 함께 벅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시작했구나. 어서 내려가보자.》 하고 윤병이가 말했다.

《너희들 잘들 구경하구 돌아들 가라. 난 집이 멀어서 먼저 떠나야겠어.》

광호의 말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같이 왔다가 동무만 먼저 돌려보내는것이 어쩐지 미안하셨다.

《우리두 같이 가는게 어때? 가면서 거리구경이나 하자꾸나.》

대원수님의 말씀을 들은 윤병이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세 동무는 을밀대에서 천천히 거리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세 동무는 그리 크지 않은 상점앞에 이르렀다.

대원수님께서는 상점에서 담배 《장수연》 한통을 사서 만경대할아버님께 전해달라고 광호에게 부탁하셨다. 그리고 남은 돈 5전으로는 명구에게 줄 피리를 하나 사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거리를 걸으시면서 호철이와 덕범이에 대해 생각하셨다. 씨름판에서 한 호철이의 행동은 생각할수록 불쾌하시였다. 한학교 한학급에서 같이 배우고 같이 뛰놀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겠는가? 오늘 씨름판에 모였던 사람들이 두 학생이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것을 알았다면 창덕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생각만 하여도 등골이 서늘해지셨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호철이에게서만 찾을수는 없는 일이였다.

호철이가 우선 나쁘기는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게 된데는 덕범이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지 않겠는가? 덕범이는 확실히 호철이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것은 사실이였다. 호철이와는 언제나 엇서는것이 대원수님의 눈에도 띄였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오늘 씨름판에서 벌어진것과 같은 그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칠골과 팔골아이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결국 호철이와 덕범이가 친해지게 되면 모두 풀리게 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셨다.

칠골과 팔골아이들 그리고 호철이와 덕범이들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놀음놀이나 체육으로부터 시작하는것이 가장 효과적일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윤병이, 너는 호철이를 영 못쓸 아이로만 생각하니?》

대원수님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물으셨다. 갑자기 묻는 바람에 윤병이는 뭐라고 대답할지 말마디를 찾기 어려워했다.

《글쎄… 넌 아까 씨름판에서 보구서두 그러누나.》

《그렇다구 호철이만 나쁘다구 볼수는 없어.》

《하기는 덕범이두 잘못이 있어. 그애는 우리 동네에 학교가 있다구 터세를 한단 말이야.》

《그건 네 말이 옳다. 이제라도 서로 결함을 고치구 칠골아이들과 팔골아이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야 우리 학교도 잘돼나갈수 있어.》

《하기는 덕범이하구 호철이하구만 친해지면 편싸움도 없어질수 있을거야.》

《나두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애들을 친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가?》

《없을거야. 덕범이는 호철이가 〈와.〉하면 뛰구 〈이랴.〉 하면 서는 아이거든.》

《그애들은 뭘 제일 좋아하니?》

《그애들만 아니라 아이들이야 뽈차기를 제일 좋아하지. 우선 나부터 말이야.》

《그런데 뽈차기하는걸 볼수 없더구나.》

《뽈이 있어야지. 그렇다구…》

윤병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대원수님을 바라보며 약간 눈웃음을 짓더니 입을 다물고말았다.

차마 짚뽈을 차자는 말은 내놓을수 없었던것이다.

《뽈을 하나 장만할수는 없을가?》

《글쎄, 돈이 있어야지.》

《뽈을 하나 장만하자. 우리들이 하자꾸나 하고 맘만 먹으면 넉넉히 할수 있어. 하다못해 밀이삭이라도 주으러 나가자꾸나.

우리모두 떨쳐나서 며칠 주으면 뽈 한개 값이야 벌지 못하겠니.》

《응! 그것참 멋진 생각이구나. 그렇게 해보자.》

윤병이의 두눈은 기쁨으로 하여 사뭇 반짝이였다. 그런데 아직도 밀이삭을 주으려면 한달이 지나야 했다. 그때까지야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대원수님께서는 당장 좋은 방도는 없을가 하고 생각하시며 계속 발걸음을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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