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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약 속

민 경 숙

1

병원에서 퇴원한 혁이가 참지 못하고 학교운동장에 달려간것은 한낮이 퍽 기울어서였습니다.

훈련에 한창 열이 올라있던 혁이네 축구학급동무들이 반기며 달려와 저마다 그 애를 껴안았습니다.

《언제 퇴원했니? 수술자린 일없니?》

《너 다리가 근질거려 어떻게 참았니?》

《체, 퇴원하자바람에 운동복차림으로 달려온것만 보렴.》

겨끔내기로 떠들어대는 애들속에서 진명이가 청높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혁이야, 너 병원에서 새 집에 오고파 안달이 났댔겠구나.》

《말두 말아. 밤마다 병원창가에서 불장식이 번쩍번쩍하는 우리 집만 바라보군 했어.》

혁이가 그렇게 말할만도 했습니다. 창전거리 새 집에 이사한지 사흘도 못되여 급성충수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혁이였습니다. 그래 아까 퇴원해와서도 몇번이나 방안을 돌았는지 모릅니다. 오죽했으면 소학교에 다니는 동생 남이까지도 《형, 벌써 일곱번째야.》 하고 셈세기를 다 했겠습니까.

혁이의 말에 아이들은 새 집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이야기는 어느덧 앞으로 진행되는 경기들에 자기들은 창전거리의 명예를 걸고 나가게 된다는데로 이어졌습니다.

경상동에서 살던 애들이 다 창전거리 새 살림집에 들었으니 당당히 가슴을 내밀만도 하였습니다.

《옳아. 이거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우리 기어이 우승하자! 그래서 창전거리에서 사는 자랑을 빛내이자!》

빙 둘러섰던 아이들은 금방 경기에 출전하기라도 하듯 어깨들을 결으며 《야!》 하고 담찬 소리를 합치였습니다.

이어 운동장에서는 공을 몰아가는 아이들의 달음박질소리, 호각소리가 그칠새없이 울렸습니다.

혁이는 한옆에 있는 나지막한 평행봉우에 걸터앉았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운동장에 뛰여들고싶었으나 갓 수술을 받은 몸이라 애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현듯 혁이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습니다.

(호- 창전거리에서 사는 자랑을 떨치자구?… 그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가.)

이제 몇달후에 시적으로 중학부문 축구경기가 진행되게 됩니다. 종전처럼 낮은학년과 높은학년 두 부류로 나누어 하게 되여있는데 학교 낮은학년에서는 2학년인 혁이네 축구학급을 기본으로 팀을 구성하여 경기에 나가게 되여있습니다.

혁이의 눈앞에는 얼마전에 있은 과외체육학교 애들과의 경기장면이 텔레비죤의 화면처럼 펼쳐졌습니다. 정확한 공련락, 순간속도에 있어서 혁이네와 대비도 되지 않는 높은 수준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중앙공격수인 자기까지 급성충수염수술을 받고 이 꼴이 되였으니…

(에익, 안되겠어. 우린 기술적으로 아직 어려. 그런것도 모르고 저들끼리 제일인체 했으니…)

9월의 문어구에 들어서기 바쁘게 제법 가을맛을 내는 선들바람이 불어옵니다. 건드러지게 술렁대는 키높은 백양나무에서 왜 벌써 초들초들 말라버렸는지 모를 잎새 하나가 혁이의 무릎우에 떨어져내렸습니다. 마치도 축구마당에 뛰여들지 못하고 한구석에 밀려난 자기 신세같아 혁이는 얼른 손으로 툭 쳐버렸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학교의 창문들에 석양의 노을빛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과외체육학교에 가셨다던 선생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혁이는 문득 안절부절하고있을 남이생각이 났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바람에 어머니한테서 형이 어디 나다니지 못하게 단단히 통제할데 대한 《임무》를 받은 남이였습니다. 형이 문밖에 나설 기미만 보여도 즉시 어머니한테 전화로 알리게 되여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이는 형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딱 한시간만 눈을 감아주기로 한것입니다.

《형,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알지?》

《알았다니까.》

그런데 어느결에 저녁이 되여오고있었습니다.

《빵빵-》

유난스러운 승용차의 경적소리가 운동장을 울렸습니다. 운동장이 좁다하게 뛰놀던 아이들이 일시에 정문쪽을 바라봅니다.

측백나무가 쌍보초를 서고있는 정문으로 까만 승용차 한대가 들어서고있었습니다.

혁이의 눈길도 호기심에 그쪽으로 쏠렸습니다. 그러던 그의 눈이 떡 굳어졌습니다. 차가 멎어서자 조그마한 애가 홀랑 뛰여내렸던것입니다.

(아니?…)

깜짝 놀란 혁이는 혹시 잘못 보지 않았는가 해서 눈시울을 연신 슴뻑거렸습니다. 분명 동생 남이였습니다. 금방까지도 이 형때문에 안절부절하고있으리라 여겼던 남이가 난데없이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다니…

남이는 애들의 놀란 시선을 꿰지르며 이쪽으로 곧추 달려오고있었습니다.

《형!》

남이는 와락 혁이의 두팔에 매달렸습니다. 숨을 가삐 내쉬며 붕어처럼 입만 벙싯거리다가 가까스로 말을 이었습니다.

《형, 우리 집에… 우리 집에… 원수님께서 오셨어!》

《?》

혁이는 벙벙해서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실히 작은 남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 애가 혹시 잠에 들었다가 꿈이라도…)

그런데 저 승용차는?…

다음순간 혁이의 가슴이 널뛰듯 쿵쿵 뛰였습니다. 남이의 뒤에 서있는 구역당책임비서를 알아보았던것입니다.

《혁이야, 어서 가자! 창전거리 새 집에 이사한 가정들을 돌아보시려 나오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지금 너의 집에 와계신다. 아버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네가 학교에 갔다는걸 아시고는 시간이 좀 지체되더라도 너를 만나보고 가자고 하셨단다.》

순간 《야!》 하는 환성이 어스름이 내려앉는 운동장을 들었다놓았습니다.

《히야, 이거 꿈이 아니야?》

《혁이야, 너 듣니? 원수님께서 널 기다리고계신대.》

부러움에 찬 목멘 소리들이 굳어졌던 혁이를 흔들어깨우는듯…

혁이의 두눈에 뜨거운 눈물이 츠렁츠렁 차올랐습니다.

(원수님께서 나를 기다리시다니… 창전거리 그 많은 집들가운데 어떻게 우리 집을… 어떻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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