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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피여나는 꿈


4

오늘도 유명찬은 강명이가 대학교정에로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늘 마음속에 안고살고있었다.

강명이만이 아닌 우리 대학생들에 대한 그토록 크나큰 기대와 념원을 담아 그의 앞길을 축복해주신 최고사령관동지의 믿음과 사랑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자기를 다듬어나가기를 바라며 아버지로서, 교육자로서 요구성도 높이고 때로 눈뿌리가 화끈하게 닥달도 하군 했다.

그런데 장차 산업미술가가 되여 제 어머니가 생산부원으로 있는 어린이식료품공장의 식료품도안들이랑 맡아 멋있게 하겠다고 뻐기는 아들이지만 이번에 실습나갈 때 보니 영 철이 들지 않아보였다. 강명이가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와 원산구두공장을 실습지로 정하고 동해지구로 떠난 늦은저녁이였다.

안해가 슬그머니 하는 말을 들으니 자기에게 부탁하여 빵이며 사탕, 과자를 큼직한 려행가방에 잔뜩 넣어가지고 떠났다는것이 아닌가. 공장사람들에게랑 식료품을 맛보이겠다면서 가져갔다고 곁들이는 안해의 여사여사한 토설에 유명찬은 무슨 씨먹지 않은 생소리냐는듯 눈을 흡떴다.

공장사람들에게?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실습작품구상부터 먼저 해야지 대학물을 몇년 먹었다는 녀석이 뭐 빵, 단물?! 날줄 모르면서 활개만 치는 격이 되여서는 안되지.

오늘은 또 어떠했던가. 유명찬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섰을 때 안해는 부엌에서 저녁식사준비를 하던 젖은 손을 행주에 얼추 문대고 전화를 받고있었다.

증폭장치를 켜놓아서인지 전화로 소식을 전하는 아들의 청높은 목소리가 방안을 징- 울렸다. 실습지에 도착한 강명이의 문안인사 겸 《하루일과보고》였다. 오늘은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 갔댔고 래일은 구두공장에 간다느니 하는 말들이 곁에서 듣는것처럼 청청했다.

되게 기분이 좋았는지 통화내용도 별로 길어보였다. 일상생활에서 별로 사담을 즐기지 않고 전화도 간단명료하게 하는데만 습관된 유명찬으로서는 아들의 언행이 도무지 탐탁스레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옷걸이에 덧옷은 걸어놓았지만 전화기를 향해 쳐들린 유명찬의 넓은 이마아래 굵은 눈섭은 통화가 끝날 때까지 《휴식구령》을 받지 못하고있었다.

《실습이 아니라 야영을 간것 같구만. 넨장, 무슨 사내녀석이 걸핏하면 소릴 치고 흥분해서 들떠 그러는게 탈이거던.》

서글서글한 눈매며 여무진 입모습은 안해를 닮았지만 목소리만은 자기를 닮아 웅글고 청높은 소리인데도 이 시각엔 그 유전현상을 감감 잊고있는 그였다. 흥분하기 잘하는걸 보니 예술가가 되긴 되려는 모양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풍월을 외우는 안해를 보며 유명찬은 코등을 쓸었다.

《예술가로 되는 일이 헐한줄 아오? 예술이란 사랑이고 창조이고 열정이며… 여하튼 많이 우는 닭이 알을 많이 낳는건 아니란 말이요.》

그것은 산촌마을에서 흘러간 그의 소년시절의 관찰과 체험이 준것이였다. 집에서 키우던 닭들중에 하나가 알을 낳았다고 소래기를 지르면 덩달아 꼬꼬댁거리며 청을 돋구고 돌아가는 닭들도 있었는데 할머니는 소리만 듣고도 저 노랑닭이 또 빈소리를 치는구나 하군 하였다. 호기심에 이끌려 우리에 가보면 영낙없이 푸스스한 검부레기뿐이였다. 알낳이보다 소리로 제모양을 드러내는 닭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묻혀 가탈걸음으로 집뜨락을 맴돌면서 가라진 목청을 계속 뽑아대는 닭을 여겨보던 일이 잊혀지질 않는다.

이런 옛 추억을 더듬으며 그는 지금 아들의 방 벽에 걸어놓은 그림을 떠올리고있었다.

자기의 작품이 소묘축전에 입상한것을 기념한다면서 며칠 품을 들여 제 손으로 나무를 칼로 따내고 연마지로 쓸고 닦고 도색까지 하더니 보란듯이 척 걸어놓은 그림액틀이였다. 당선된 기쁨에 취해있는 아들을 축하해주고싶은 심정도 바이 없지 않았지만 그 액틀을 보는 유명찬의 입에서는 퉁명스런 소리가 먼저 튀여나갔다.

《벌써부터 액틀이니 뭐니 겉멋이 들었어. 큰걸 하나 해놓은 다음에 듬직하니 걸어야지.》 그렇게 한마디 핀잔을 해도 욕은 타지 않고 《아버지, 이제 두고보세요. 그옆으로 쭈욱- 걸자는거예요.》 하고 어깨를 솟구기만 하는 아들이다. 뭔가 들은게 있는지 전시회에 나갔던 학생가방도안도 제품생산에 꼭 도입될 때가 올것이라고 굳이 믿고있는 그였다.

(그 옆으로 쭉 걸겠다?)

연미색액틀속의 《새싹》을 바라보는 그의 눈시울이 불시에 핑 젖어들었다. 그 하나의 새싹이 무엇이라고…

유명찬은 자기 집에 찾아오시여 입학통지서를 강명이의 손에 들려주시던 그이의 친근하신 모습을 떠올리였다. 꿈은 그리움이고 희망이고 사랑이다, 꿈은 곧 삶의 희열이다라고 하시던 그이의 음성은 지금도 귀전에 쟁쟁하다.

유명찬이 그이로부터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였다.

잊지 못할 그 여름밤… 대학구내길에 깔린 푸릿한 달빛을 밟으며 그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신 곳으로 갔었다. 유명찬이 방에 들어섰을 때 그이께서는 펜을 쥐신채 넓은 책상우에 펴놓은 종이장들을 들여다보고계시였다.

책상우 탁상등은 그이의 사색세계를 밝히고있는듯 은은한 빛을 뿜고있었다. 탁상등아래에는 그이께서 애용하시는 낯익은 부호자와 색연필, 각펜들이 놓여있고 방금전까지도 표식들을 해가며 연구를 거듭하셨을 작전지도가 펼쳐져있었다.

문기척을 낸 방문객에게 응대는 하시고 지속적인 사색에 잠겨 눈길로만 맞으시는 그이이시였지만 안광에는 무엇인가 크낙한것이, 응심깊은것이 황황히 타오르는듯 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나이들어 좀 부해지기는 했으나 오래동안 몸에 배인 탄탄한 자세를 취하고 선 유명찬에게 의자를 권하신 후 책상우를 가리키시였다.

《전술안을 짜다가 피로도 풀겸 그림을 몇장 그려보댔습니다.》

이밤에 무슨 그림들을 그리셨을가?

《습관되여 그런지 이제는 손에서 놓게 되지 않습니다. 손으로 기량을 익히는 일은 잠간만 놔도 손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피아노같은 악기도 그렇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드문히 휴식삼아 몇장씩 그려보군 하는데 그림에 오늘의 아름다움과 사색도 담고 래일의 꿈과 지향도 담아보고…》

김정은동지께서는 유명찬의 앞으로 그림 몇장을 놓아주시였다.

그제야 유명찬의 눈길이 그림들을 더듬었다.

아니, 이것은 무슨 3차원, 4차원의 건물모형같고 또 이것은 기하학적도형같은데 필경 단순한 그림들이 아니다. 어이 알랴. 그이께서 구상하시는 미래의 세계일는지?!… 각이한 선과 점, 부호들로 이루어진 그 모든것은 정교함과 예술적기품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건축예술이라는 말이 그의 뇌리를 강렬하게 흔들었다.

《예술이란 단순히 아름다운것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고 키워주는것이 예술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술이 더더욱 아름다운것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한창 끓어솟던 심원한 사색의 세계를 그대로 안으신듯 잠시 방안을 거니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군사를 배우면서도 평화의 의지를 더 굳히고 이 땅의 모든것을 더 밝게, 더 아름답게 창조하고 가꿔갈 구상을 무르익히고있습니다.

내가 군사를 배우는 목적도 바로 총대로 나라를 굳건히 지키고 부강조국의 래일을 하루빨리 당겨오자는것입니다.》

그날처럼 명랑한 달빛이 방안으로 흘러들고있었다.

달밤의 고요속에 강명이의 소묘 《새싹》이며 학생가방도안들을 그려보던 유명찬이 눈길을 들었다. 먼 동해지구로 실습떠난 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

이번 실습은 현지에서의 도안창작을 위주로 평가한다는데 부디 들떠있지 말고 배우는 학생답게 자세를 다듬거라. 그리하여 돌아올 때엔 알속있게 영글찬 작품을 안고와다오.

하지만 그는 이틀후 강명이네들이 실습지에서 급히 평양으로, 대학교정으로 돌아오는 일이 생기리라는것을 알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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