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피여나는 꿈
김 일 수
1
《참, 미술을 지망하던 아들이름이 유강명이지요?》
《그렇습니까. 그럼 전국소묘축전에 〈새싹〉이라는 작품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전류를 타고 흘러오는것은 놀라움에 간간이 끊어지는 강좌장의 목소리와 단숨을 내긋는 소리였다.
《그…렇습니다. 그때
《그랬댔구만. 소묘축전작품들중에서 그 〈새싹〉도 보았습니다. 생각납니까? 아들의 숙제장때문에 속을 태우던 일이…》
《전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땀이 다 납니다.》
유명찬의 대답을 들으시며
《그대신 우리가 전망성있는 미래의 화가를 찾아내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어느날 강의를 위해 교탁에 선 유명찬강좌장은 부피가 그리 크지 않은 강의안들을 펼치다가 그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한듯 눈길도 손도 굳어졌다.
다음순간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규격이 작은 학습장 한권을 들어 교탁 한켠에 밀어놓고 그우에 강의안철을 덮어놓는것이였다. 물론 그것은 한찰나의 일이였다. 그러나 그 행동에는 평소의 정돈되고 규칙적인 자세와는 다른것이 느껴졌다.
이내 유명찬은 본래의 자세를 되찾고 강의를 시작하였다. 오랜 교원생활경력을 가진 그는 역시 자기 분야에 정통하고 능란한 강의술을 소유한 교육자였다.
해가 서켠으로 퍼그나 기울었을적에
《강의안철속에 아들애의 학습장이 끼워있는줄을 모르고 오늘 강의에 들어갔더랬습니다.》
포신처럼 올곧은 성격에 절도있던 강좌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뜻밖의 소리에 더욱 의아해나신
《아들애의 학습장이라니요?》
책상 한켠에 놓아두었던 학습장을 끄당겨오는 유명찬의 손등에는 굵은 피줄들이 퍼렇게 살아올랐다.
《이게 우리 아들의 숙제장입니다.》
《그 책뒤켠이 문제입니다.》
여적 감정을 삭이지 못한 강좌장은 에누리를 모르는 직방치기성격그대로
《제 아들녀석이, 저… 맏아들이 한땐 기계체조를 배운답시고 들떠다니면서 팔도 부러지고, 도무지 차분히 엉치를 붙이고있을 녀석같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즈음에 와서 책상우에 착실히 앉아있군 하길래 난 그저 공부를 하는가부다 했습니다. 이제야 좀 철이 드는가 했는데 그 애가 공부는 안하고 숙제장에 온통 그림을 그리지 않았겠습니까. 수업시간에까지 이런 판을 벌려놓았답니다. 그것도 어제 저녁 담임선생의 통보를 받고서야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했습니다. 이러다가 총대가정에 쭉정이가 나오겠구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장난에만 정신팔린 애가 얼마나 제구실을 할가 하는 실망감도 생기고… 자식교양을 등한시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유명찬의 말을 들으시며
《둘째는 아무탈없이 잘 나가는데 이건 맏이라는 녀석이 자꾸 뒤뚝거리는게 도무지… 어제밤 되게 욕도 했는데 이래저래 속도 편치 않지, 자식의 앞날을 두고 속을 썩이다가 강의시간이 되여 급히 나간다는게 그만…》
강의안철속에 꽂아두었다가 저도모르게 들고온 숙제장을 놓고 무척 땀발이 섰을 유명찬의 심정이 십분 헤아려지시였다.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의 펜화도 인상적이였다. 몇개의 간략된 선과 점을 그었을뿐인데 교원을 둘러싼 몇몇 학생들의 모습, 그들의 외형적특성이 세부적으로 확연하게 안겨왔다.
《그림들이 재미있습니다.》
《예?!》 자책과 실망감에 젖어있던 강좌장의 눈빛이 허공에서 굳어졌다.
《오래간만에 어린 학생의 그림을 보았더니 머리가 거뜬해지는것 같습니다. 생신하고 진취적인 새 세대의 사고수준, 미술실기수준에 대한 파악도 생기고… 여하튼 아들을 잘 두었습니다.》
별안간 유명찬의 두눈에서 불빛이 어룽거렸다. 그림에 대한 견해를 말하라면 필경 음악처럼 감상하기는 좋은데 잘 모르겠다는 정도로 설퉁하게 응대할 그였다. 그런데다가 도가 넘는 장난으로만 여기고있는 그림들을 두고 뜻밖에도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시는
《뭐, 아이들 그림이란게 그저…》
《아, 그런게 아닙니다. 싹정도가 아니라 전망이 환해서 그럽니다.》
덩둘해졌던 유명찬의 눈빛이
《그림을 잘 그리자면 공간표상능력과 형태, 비례, 색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강명이의 그림들에서는 그것이 느껴집니다. 가령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특징을 하나만 정확히 도출해내여 그것만 잘 그려도 형태가 잡힙니다. 여길 보십시오. 인물화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에서 속사하려는 대상들의 특징을 잘 파악했는데 이것은 천성적인 소질과도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건축설계에서도 미술이 기초로 됩니다. 말하자면 건축과 미술은 정비례관계에 있다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허나
《도움이 되겠는지. 이걸 강명이에게 전해주십시오.》
숙제장을 받아안은 유명찬의 얼굴은 감격의 빛으로 물들여졌다. 결국
《우리 그 애를 잘 이끌어줍시다. 나도 한번 짬을 내여 가정방문을 하든가 그 애에게 편지라도 써보낼가 합니다. 그를 고무하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난 이번 소묘를 보면서 강명이의 솜씨가 퍽 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큰걸 맡겨도 되겠습니다.》
더욱 황송해진 유명찬은 그저 《너무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강명이는 철들자면 멀었습니다. 아직 배우는 학생인데…》 하고 말끝을 흐리였다.
강좌장과의 전화대화를 마치신
《새싹!》
몇년전 보실 때보다 구도가 한결 편안해졌으며 점과 획, 명암으로 연필화의 특성을 잘 살려 채색화 못지 않은 조형적형상을 창조한것이였다.
밝은 해살을 받으며 봄언덕우에 움터나는 새싹에 담겨진 의미는 또 얼마나 깊은 사색을 불러주는가. 기운차게 움터오르는 새싹들의 힘과 지향성을 은근하면서도 강한 선처리로 부각시킨것이 더욱 마음에 드시였다. 화폭에서 새싹의 꿈, 래일의 행복, 그것은 창조해야 하고 쟁취해야 하고 노력으로 앞당겨와야 한다는 뜻을 심을줄 아는 대학생으로 자란 강명이를 그려보시며
그런데 한가지만은 아쉽거던. 지금도 새싹이라고? 이젠 그 싹을 활짝 피울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전문가로 되기 전이여서 아직 이르다는것인가? 대학생의 오늘을 여전히 새싹에 비유하고있다면, 만일 강명이
창너머 가을빛에 물든 키높은 정원수들이 미풍에 소리없이 흐느적이고있었다.
언듯
그때 리주영이 조용히 방으로 들어섰다. 건축설계부문 책임일군의 한사람인 그는 이제 곧 있게 될
잠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