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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그밤, 그 새벽


3

고요한 안식이 깃든 창전거리로 까만 승용차가 미끄러져오더니 옥류교쪽으로 꺾어들었다.

김정은동지께서 타신 승용차였다. 그이의 곁에는 한세건이 자리잡고있었다.

대동강상류에서 불어오는 누기진 바람이 낮동안 달아오른 물면을 쓰을며 어슴푸레한 잔물결우에 안개를 피워올렸다. 안개발은 그물그물 다리주변과 초고충건물아래로 몰려가며 울긋불긋 번쩍이는 장식등빛을 가리웠다. 승용차가 옥류교를 넘어서자 희뽀얀 안개너울을 쓴 류경원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김정은동지의 따뜻한 시선이 거기에 한참이나 머무르시였다.

《저 류경원을 볼 때면…》

말씀의 문을 여시려던 그이께서는 사무치는 그리움에 목메이시여 잠시 동안을 두었다 이으시였다.

《장군님께서 목욕시설이 위주인 저 건물의 형성안을 놓고 장차 대중물놀이봉사기지를 크게 세워 인민들이 계절에 구애없이 즐기게 해야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장군님은 한평생 오직 인민의 행복밖에 몰랐습니다.》

서늘한 미풍이 일었다. 길바닥과 건물의 아래자락을 감돌던 안개발이 쫓기우듯 밀려가고 황이 오른 가로수의 잎새들이 달빛에 이슬방울을 반짝이며 설렁거렸다. 그 미세한 음향은 다감한 선률처럼 그이의 가슴을 흔들었다. 무중 그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소중한 추억이 뭉게뭉게 피여났다.

《나라가 고난을 겪던 때 있은 일인데… 그때 장군님의 생신날을 앞두고 우리는 장군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압니까. 승마였습니다. 새해벽두부터 선군길을 걸으시는 장군님께서 생신날 하루만이라도 겹쌓인 피로를 승마로 다소나마 풀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우리는 2월명절날이 오기를 눈이 까매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생신날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썩 후날에야 오신 장군님께 그 사연을 말씀드렸더니 그이께서는 〈난 지금도 달리고있지 않는가.〉 하며 웃으시였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듯 선군길을 계속 달리신다는 뜻의 유모아였습니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만나셨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였습니다.》…


흰눈이 내려쌓인 골짜기로 시퍼렇게 독을 품은 맵짠 바람이 사납게 요동질하였다.

쌍매천언제건설장 현지지도를 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떠나시던 걸음에 산골학교 분교에 들리시였다.

발전소건설장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작업나온 부부들에게 집을 따로 마련해주고 분교도 내왔다. 향긋한 송진내가 풍기는 아담한 분교는 살림집처럼 꾸려져 학생들이 뜨뜻한 온돌방에서 공부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학생들이 춥지 않게 지내는것이 흠썩 기쁘시여 녀교원에게 다정히 물으시였다.

《학생들이 다섯이라더니 한명은 왜 보이지 않습니까?》

녀교원이 꿈같은 감격에 눈굽을 훔치며 말씀을 드리였다.

《좀전에 리신아학생이 장군님께서 발전소건설장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막 달려갔습니다.》

《그애가 우리와 길이 어긋난 모양이군.》

장군님께서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산촌의 저녁어스름이 서둘러 깃을 펴고있었다. 그속에서 골재를 실은 화물자동차들이 꽁무니에 눈가루를 구름처럼 날리며 오고갔다.

그때 불쑥 한 처녀애가 뒤에서 수원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오더니 《아버지장군님!》 하며 어푸러질듯 장군님품에 안겨들었다. 급히 달려온양 할딱이는 숨결, 추위에 빨갛게 언 볼, 몸은 연약하나 류달리 반짝이는 눈정기를 지닌 이쁜 애였다.

《오냐, 네가 신아로구나. 그래 발전소언제작업장까지 갔댔니?》

《아닙니다. 집에 갔다왔습니다.》

《집에는 왜?》

신아는 재빨리 가지고온 빨간 비로도로 싼것을 풀어헤치였다. 하얀 종이로 싼 물건이 나졌다. 그것을 두손에 받쳐든 신아의 도두룩한 입술에는 열적은 미소가 피여났다.

《아버지장군님께 …이걸 …드리고싶었습니다.》

의혹과 호기심에 찬 눈빛들이 애한테 모아졌다. 신아의 깜장눈은 자랑에 겨웠으나 고운 입가에는 여전히 그것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웃지 않을가 하는 소심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있었다. 약간 좀자르던 신아는 용기를 내여 흰 종이포장을 헤쳤다.

《내가 뜬겁니다.》

한컬레의 밤색모실장갑이, 서툰 솜씨로 뜬 정교하지 못한 장갑이 사람들의 가슴을 쿵 흔들며 눈뿌리를 얼얼하게 하였다.

장군님의 심중에서는 확 열풍이 일었다.

《너 몇살이냐?》

《열두살입니다.》

《애야, 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느냐?》

신아는 살풋이 웃었다. 정이 한가득 고인 미소였다. 신아는 낮은 소리로 도란도란 속살거렸다.

《우리 아버지가 혁명일화를 읽어주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어느 학교에 가셨을적에… 장갑낀 손으로 한 학생의 학습장을 들고 보셨는데 그 학습장이 글쎄… 닳아진 장갑실밥에 걸려… 우리 할머니랑 엄마랑 다 울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린것이 갸륵하고 대견하여 두팔로 꼭 껴안으시였다. 너까지 내 장갑을… 그러지 않아도 자신의 야전복과 장갑을 보고 인민들이 보내온 지성어린 선물들과 위문편지들이 나날이 쌓이여 그 고마움에 보답할 생각뿐이시였다.

얼핏 그이의 시야에 신아의 솜저고리 량옆주머니에 찔러넣은 장갑끈이 띄우시였다. 그 끈을 당기시였다. 신아가 감촉하고 얼른 손으로 꼭 눌렀다.

《일없다. 얘야, 이 아버지가 보는건.》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그의 장갑을 뽑아드시였다. 조그마한 통장갑, 보풀진 손바닥을 기운 덧천…

불시에 가슴도 마음도 찢는 아픔, 그 처절한 아픔에 그이께서는 눈을 지그시 감으시였다.

(어쩜 우리 아이들과 인민은 저들의 고생은 달게 여기면서 나를 더 걱정하다니… 나 하나만 믿고사는 그들에게 이 세상 만복을 다 안겨준들 이 마음이 성찰수 있을가.)

그이께서는 별안간 벅차게 호흡하시였다. 가슴속에서는 눈보라폭풍이 울부짖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과 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시려는 철의 의지가 더 억척스레 다져지는 마음속 뢰성이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회억에서 깨여나시였다.

《우리 장군님의 초강도강행군길은 변함없이 더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승마도 잊으셨습니다. 그렇게 즐기시던 승마였지만 타실 시간적여유가 없었습니다. … 나는 장군님의 뜻대로 그 승마를 인민들에게 주고싶었습니다.》

김정은동지의 음성은 퍼그나 갈리시였다. 한세건은 눈물이 끓어 손수건을 적시고있었다. 장군님의 한생은 가지가지 고생과 눈물겨운 헌신으로 이어져 조금만 다쳐놓아도 울리는 금선처럼 마음을 줄곧 울리였다.

한세건은 이 땅에 또 하나의 문명으로 자랑높은 승마구락부가 어째서 마련되였는지 그 고결한 의미가 새삼스레 가슴을 쳤고 그때문에 내내 심혈을 기울이고계시는 그이의 로고가 온몸을 후덥히였다.

승용차가 속도를 늦추었다. 문수물놀이장 물결형정문이 전조등빛에 확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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