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그밤, 그 새벽
3
고요한 안식이 깃든 창전거리로 까만 승용차가 미끄러져오더니 옥류교쪽으로 꺾어들었다.
대동강상류에서 불어오는 누기진 바람이 낮동안 달아오른 물면을 쓰을며 어슴푸레한 잔물결우에 안개를 피워올렸다. 안개발은 그물그물 다리주변과 초고충건물아래로 몰려가며 울긋불긋 번쩍이는 장식등빛을 가리웠다. 승용차가 옥류교를 넘어서자 희뽀얀 안개너울을 쓴 류경원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저 류경원을 볼 때면…》
말씀의 문을 여시려던
서늘한 미풍이 일었다. 길바닥과 건물의 아래자락을 감돌던 안개발이 쫓기우듯 밀려가고 황이 오른 가로수의 잎새들이 달빛에 이슬방울을 반짝이며 설렁거렸다. 그 미세한 음향은 다감한 선률처럼
《나라가 고난을 겪던 때 있은 일인데… 그때
우리는 2월명절날이 오기를 눈이 까매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날
흰눈이 내려쌓인 골짜기로 시퍼렇게 독을 품은 맵짠 바람이 사납게 요동질하였다.
쌍매천언제건설장 현지지도를 마치신
발전소건설장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작업나온 부부들에게 집을 따로 마련해주고 분교도 내왔다. 향긋한 송진내가 풍기는 아담한 분교는 살림집처럼 꾸려져 학생들이 뜨뜻한 온돌방에서 공부하고있었다.
《학생들이 다섯이라더니 한명은 왜 보이지 않습니까?》
녀교원이 꿈같은 감격에 눈굽을 훔치며 말씀을 드리였다.
《좀전에 리신아학생이
《그애가 우리와 길이 어긋난 모양이군.》
그때 불쑥 한 처녀애가 뒤에서 수원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오더니 《아버지장군님!》 하며 어푸러질듯
《오냐, 네가 신아로구나. 그래 발전소언제작업장까지 갔댔니?》
《아닙니다. 집에 갔다왔습니다.》
《집에는 왜?》
신아는 재빨리 가지고온 빨간 비로도로 싼것을 풀어헤치였다. 하얀 종이로 싼 물건이 나졌다. 그것을 두손에 받쳐든 신아의 도두룩한 입술에는 열적은 미소가 피여났다.
《아버지장군님께 …이걸 …드리고싶었습니다.》
의혹과 호기심에 찬 눈빛들이 애한테 모아졌다. 신아의 깜장눈은 자랑에 겨웠으나 고운 입가에는 여전히 그것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웃지 않을가 하는 소심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있었다. 약간 좀자르던 신아는 용기를 내여 흰 종이포장을 헤쳤다.
《내가 뜬겁니다.》
한컬레의 밤색모실장갑이, 서툰 솜씨로 뜬 정교하지 못한 장갑이 사람들의 가슴을 쿵 흔들며 눈뿌리를 얼얼하게 하였다.
《너 몇살이냐?》
《열두살입니다.》
《애야, 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느냐?》
신아는 살풋이 웃었다. 정이 한가득 고인 미소였다. 신아는 낮은 소리로 도란도란 속살거렸다.
《우리 아버지가 혁명일화를 읽어주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어느 학교에 가셨을적에… 장갑낀 손으로 한 학생의 학습장을 들고 보셨는데 그 학습장이 글쎄… 닳아진 장갑실밥에 걸려… 우리 할머니랑 엄마랑 다 울었습니다.》
얼핏
《일없다. 얘야, 이 아버지가 보는건.》
불시에 가슴도 마음도 찢는 아픔, 그 처절한 아픔에
(어쩜 우리 아이들과 인민은 저들의 고생은 달게 여기면서 나를 더 걱정하다니… 나 하나만 믿고사는 그들에게 이 세상 만복을 다 안겨준들 이 마음이 성찰수 있을가.)
《우리
한세건은 이 땅에 또 하나의 문명으로 자랑높은 승마구락부가 어째서 마련되였는지 그 고결한 의미가 새삼스레 가슴을 쳤고 그때문에 내내 심혈을 기울이고계시는
승용차가 속도를 늦추었다. 문수물놀이장 물결형정문이 전조등빛에 확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