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그밤, 그 새벽
2
맑고 서늘한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여물어가고있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방금전에 도착하였습니다.》
한세건은 평소와 같은 표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침착히 말씀을 드리였다. 그는 이 며칠째 참기 어려운 죄송스러움으로 온몸을 짓태우고있었다. 그딴에는 그리도 흥분했고 지지했던 《물의 환희》가 유미주의적인것으로 준절히 평가될 때 눈앞이 아뜩하고 심장이 멎어버리는것 같았다.
그런데 이밤
《마식령스키장건설장에 나가있는 집의 아들애는 힘들어하지 않습니까?》
《?!》
한세건은 어정쩡해졌다. 예상밖의 물으심이였다. 언제인가 가정형편을 알고싶어하시여 말씀드렸는데 아들애의 일까지 어떻게 다 아시는지…
《실은 저의 아들애가 외아들이다나니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좀 힘들고 어려운 속에서 키우고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 일을 보면서도 아들애를 한번도 만나지 않았겠군. 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는 식인가요? 그는 자식이기 전에… 당의 부름이라면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영웅군인건설자의 한 성원입니다. 오늘 우리 군인건설자들이 조국땅 곳곳마다 건설의 전성기를 펼쳐가고있는것은 그들이
《…》
한세건은 송곳방석에 앉은듯 몸둘바를 몰라했다. 한낱 부자간의 관계로만 리해했고 또 아들애의 성장에 지장이 될가봐 보고싶으면서도 눌러버렸던 그것이 오히려 용렬한짓인줄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어저께 아들애의 편지를 받고서야 너무 무정했던
한세건은 이 순간 느닷없이… 사랑하는 어머니가 첫걸음마 떼여준 정든 고향집뜨락이 조국이라는 《조국찬가》의 한구절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눅눅히 젖어들었다.
밤은 신비한 빛에 둘러싸여 소리없이 깊어갔다.
《참, 전부터 알고싶었는데… 그 〈물의 환희〉는 어느 건축가의 착상입니까?》
한세건은 뜻하지 않은
《제가 안목이 트이지 못하여… 사공복천동무가… 그만 그런 안을 내놓았습니다.》
한세건의 입에서는 한마디한마디 힘들게 흘러나왔다.
《아, 물놀이장에 덕수를 고집한 젊은 건축가?》
《그렇습니다.》
초기 문수물놀이장 내부공간구성을 놓고 설계집단에서는 엇갈린 주장들이 있었다. 실내공간에는
그날 밤이였다. 현장지휘부에서 침식하며 바삐 보내던 한세건을 찾아 웬 젊은이가 왔었다.
《설계원 사공복천 만날수 있습니까?》
군인기질이 몸에 푹 배인 젊은이였다. 뼈마디굵은 건장한 몸집에 타는듯 한 눈빛, 짧게 깎은 머리, 얼굴이 네모나고 날파람있어보였다.
한세건은 선선히 응해주었다. 젊은이는 놀랍게도 물놀이장형성안을 그린 도안을 내놓았다. 특색있는것은 뽈트라스형식으로 꾸민 지붕이였다. 다면체로 된 뾰족지붕의 각이한 면에서 자연채광을 받아들여 실내에 온실효과를 일으켜 온도를 최대한 리용할수 있게 하는 첨단적인 록색건축방식이였다. 그리고 실내공간형성은 이미 론하고있는대로 되였지만 덕수수조를 첨부한것은 일종의 도전으로 여겨졌다.
《설계를 전문했소?》
《건축학으로 박사원을 나왔습니다.》
(허, 이것 봐라. 꽤나 희떠운 녀석인걸.)
한세건은 말투가 곱지 않게 나갔다.
《동무, 뽈트라스착상은 론할 가치가 있다고 보오. 덕수는 안돼. 밀집된 공간에 그것까지 넣으면 조잡해질수 있소.》
젊은이의 기색은 흙빛으로 일그러지고 타는듯 한 눈빛은 이글거리는 불덩이같았다.
《그렇다면 다른 수조를 들어내더라도…》
날카롭게 울리던 젊은이의 목청은 끊어졌다.
(챠, 이녀석 배짱이 여간 아니군.)
그러나 한세건은 이내 다른것, 젊은이의 검은 눈동자에 어리는 초물같이 진한것을 엿보며 이마에 의혹의 주름살을 잔뜩 모았다.
《좀 앉소.》
한세건은 그를 자리에 앉히고 차를 한고뿌 따라주었다.
《무슨 사연인지 내가 알면 안되겠나?》
젊은이는 눈을 내리깔았다. 못 잊을 지난 일을 더듬는듯 눈언저리에 아픔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분대원들은 어깨와 잔등에 해체한 박격포부분품들을 메고 지고 산정을 톺았다. 740령은 오를수록 가파롭고 험했다. 자칫 헛짚으면 창살처럼 뿌죽뿌죽한 바위너설에 찢기고 낭떠러지에 곤두박힐수 있었다. 분대장 복천은 포가다리를 둘러메고 대오의 앞을 헤쳐나갔다. 그뒤로 무거운 짐에 눌리운 분대원들이 헉헉 단숨을 뿜으며 따라섰다.
이번 가을철훈련은 돌발정황에 따르는 신속기동과 불의적인 기습을 배합한 실전배비훈련이였다. 복천이네 박격포중대는 740령너머에 포를 전개하고 《적》의 일선참호를 소멸할 명령을 받았다.
얼마후 복천이네들은 령을 넘어섰다. 예정시간보다 20분이나 앞당겨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커다란 기쁨에 휩싸여 중대로 돌아섰다. 그들이 음달을 벗어나 구릉지대와 접하는 산중길에 나섰을 때 소연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몇걸음앞에는 골짜기에서 내려온 골개수가 수직으로 깎이운 높지 않은 둔덕에서 떨어져내리고있었다. 젖빛물안개가 서린 덕수터, 물보라가 해빛에 구슬알처럼 반짝이며 날리였다.
마치도 땀투성이가 되여 오늘의 전투훈련을 성과적으로 치른 그들을 축하하며 어서 오라 부르는듯싶었다. 콩죽같은 비지땀에 온몸이 절어있던 복천은 때맞춤한 행운에 기분좋게 구령을 주었다.
《분대 10분간 휴식!》
분대원들은 저마끔 환성을 지르며 물속에 뛰여들었다. 복천은 내리쏟아지는 덕수에 몸을 잠그었다. 머리와 어깨에서 물보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숨길은 금시에 활 열렸다. 몸은 날을듯 거뿐해지고. 세상에 이런 상쾌감이 또 있을가… 하지만 일생 잊을것 같지 않던 덕수의 쾌감이 일생 씻지 못할 가책으로, 괴로움으로 번져질줄이야…
이날 복천이네 중대는 천만뜻밖에도 전선시찰을 나오셨던
중대는 삽시에 폭풍같은 환희로 끓었다. 꿈결에도 그리던 소원, 서로서로 얼싸안고 터뜨리는 감격… 촬영대 맨 앞줄에서
복천은 몸부림쳤다. 여기저기서 억눌린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이보라구 중대장, 병사들이 왜 이래? 울면 사진이 안돼. 웃으면서 찍어야지, 웃으면서…》
《아버지!-》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와- 병사들이 일시에 눈물동을 터쳤다. 환호의 열풍으로 끓던 중대촬영장은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그날
《그러니 덕수를 맞으면서
《그 젊은 친구의 소원이 참 멋있었습니다.》
한세건은 이왕 말이 난김에 젊은이를 더 자랑하고싶어 계속 말씀을 드리였다.
그날 밤 복천이한테 반했던 한세건은 직무와 나이의 격차를 넘어 인츰 그와 허물없는 사이가 되였다. 젊은 친구 역시 자기가 그린 건축도안들을 자주 가지고와 의견을 나누군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의 최대의 소원은
그후 한세건은 복천을 기둥설계가로 하는 건축집단에 물놀이장 전체 형성안을 맡겼었다. 그들은
《한동무가 이밤 또 잠들것 같지 않아 찾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가장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해주려고 우리의 힘과 지혜로 세상에서 으뜸가는 문명국을 건설하고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문명이란 일정한 력사적시기에 인류가 창조한 가장 높은 정신물질문화의 총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일군들은 당에서 인민들에게 안겨줄 사회주의문명이 도대체 어떤것인지,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이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되는지 정확히 표상을 가지고있지 못합니다. 문수물놀이장중앙홀형성안이 당의 의도에 맞게 형상되지 못한 주되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주의문명 말입니까?》
한세건은 얼결에 뇌이면서도 알쑹달쑹 명확한 인식이 없었다.
《한동무, 이젠 잠자리에 들기엔 케가 글렀습니다.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것 같은데 바람도 쐬일겸 물놀이장현지에 나가봅시다. 혹시 알겠습니까, 좋은 구상이 떠올라 우리 건축가들에게 방조를 주게 될지.》
한세건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낮을 이어 밤에도 때없이 현장에 나오시여 언제 주무시는지 알지 못하는
《아니, 동무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낮이고 밤이고 일하시다…
《어쩌겠습니까, 항상 시간이 모자라는걸. 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