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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10


대원수님께서는 이른아침에 책보를 끼시고 학교로 올라가셨다.

명구와 그의 동무들은 새옷과 새 모자를 쓰고 운동장 한켠에 모여서서 손들을 내밀고 서로 들여다보며 다정하게 이야기들을 주고받고있었다.

고개를 젖히는 아이도 있고 목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꼴이 누가 세면을 잘했는가를 자랑하는것이 분명했다.

대원수님께서는 4, 5학년이 복식으로 공부하는 《ㄱ》자로 꺾어지은 교실로 향하시였다.

교실에 들어서니 벌써 3~4명의 학생들이 책을 펴놓고 아침공부를 하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도 조용히 자리에 앉으시여 책을 펼쳐놓으셨다.

교실은 그리 넓지 않으나 무척 아늑하였고 칠판과 교탁 그리고 책상과 걸상들이 그리 훌륭한것은 아니였지만 깨끗이 거두었고 질서있게 정돈되여 첫눈에 정이 드는것이였다.

더구나 아버님의 크나큰 뜻을 받들고 내 나라, 내 고향에 와서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로 우리의 력사와 우리의 지리를 배우게 되였고 조국과 겨레에 대하여 더 자세히, 더 잘 알기 위해서 한걸음두걸음 나아가게 되였다고 생각하시니 가슴이 흐뭇해지시는것이였다.

첫 수업이 시작되였다. 오전 첫 과목은 수신시간이였는데 이 시간에는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교감선생님께서는 수신책은 밀어놓으시고 새 학년을 맞이하면서 상급생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다. 두번째 시간은 조선어였고 다음시간은 습자였다. 이렇게 오전학습이 끝났다.

대원수님께서는 오전수업에서 학습분위기와 동무들의 학습정형을 살피시는데 관심을 돌리셨다.

오후 첫시간은 산술시간이였다. 담임선생님은 암산문제를 제시하는것으로 새 학년 새 학기의 산술수업을 시작하였다.

《어느 농가에 닭둥지 열개가 있었습니다. 첫 둥지에는 닭알이 한알, 두번째 둥지에는 두알, 세번째 둥지에는 세알, 네번째 둥지에는 네알, 다섯번째 둥지에는 다섯알, 여섯번째 둥지에는 여섯알, 일곱번째 둥지에는 일곱알, 여덟번째 둥지에는 여덟알, 아홉번째 둥지에는 아홉알, 열번째 둥지에는 열알이 있었다고 합니다. 닭알이 모두 몇알이나 되겠습니까?》

담임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 대원수님의 손이 제일먼저 올라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담임선생님이 문제를 낼 때 벌써 앞질러가시면서 속으로 계산을 해내가셨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 손을 드신 얼마후에 윤병이와 몇 아이가 손을 들었다. 어떤 아이들은 두손의 손가락을 모두 내놓고 폈다꼬부렸다 하면서 중얼중얼 계산하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아리숭해서 계산을 할수 없는 모양인지 머리만 좌우로 갸우뚱거리고있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슬그머니 종이와 연필을 꺼내가지고 필산을 하고있었다.

《먼저 손을 든 김성주학생, 대답해보시오.》

《예! 쉰다섯 알입니다.》

《맞았습니다!》

손을 들었던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또 한문제 맞춰봅시다.》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해놓고도 좀처럼 문제를 내놓지 않고 시물시물 웃으며 학생들을 한동안 둘러보는것이였다.

학생들은 몸가짐을 바로하고 선생님을 바라보고있었다.

《학생들, 사과나무에 사과가 굉장히 많이 달린것을 본 일이 있지요?》 하고 담임선생님이 물었다.

《예,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대답하며 무슨 문제를 내놓으려는가 기다리고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이윽고 문제를 내놓았다.

《어느 큰 과수원집 아이가 그 마을에 있는 자기와 친한 동무들을 모두 데려다가 크게 사과턱을 냈답니다. 그런데 두알씩 주면 한알이 모자라고 한알씩 주면 한알이 남더랍니다. 그러니 데리고온 동무는 모두 몇명이고 사과는 모두 몇알이나 되겠습니까?》

대원수님께서는 이 문제도 그리 어렵지 않게 푸실수 있으셨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일먼저 손을 드셨다.

그런데 퍼그나 시간이 지날 때까지 다른 학생들은 누구도 손을 들지 못했다.

얼마후에야 손으로 턱을 고이고 골똘히 생각하고있던 윤병이가 손을 들면서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예, 말하시오.》

《사과가 몇알인가 대주든지 아이들이 몇명인가 대주든지 둘중의 하나는 대주어야 알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량선생님은 혼자 껄껄 웃더니 《문제를 그렇게 쉽게 내주면야 2학년학생들도 풀수 있지. 좀더 생각해보시오.》 하고 말했다.

윤병이는 손을 내리고 머리를 갸우뚱거리기만 하는것으로 보아 아마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모양이였다. 윤병이가 풀지 못하는것을 보고 다른 아이들도 자신을 잃은 모양인지 여기저기서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럼 김성주학생, 대답하시오.》 하고 량선생님이 말했다.

《예! 아이는 두명이고 사과는 세알입니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어떻습니까?》 하고 량선생님이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이 둥그래서 서로 바라볼뿐 대답이 없었다.

량선생님은 칠판에 아이 두명과 사과 세알을 그려놓더니 《자, 한알씩 나누어봅시다. 몇알이 남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한알이 남았습니다.》하고 학생들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그럼 이번에는 두알씩 나누어봅시다. 몇알이 모자랍니까?》

《한알이 모자랍니다.》

이번에도 또 일제히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모두 웅성거리는것이였다. 그렇게 쉬운것을 몰랐다느니, 동무들이 몇십명 밀려간것으로 알았다느니 하며 떠들썩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대원수님을 바라보면서 수학박사라고 감탄하는것이였다.

《자, 조용들 합시다. 그런 쉬운 문제도 풀지 못해서 되겠습니까?》 하며 량선생님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런데 이때 덕범이와 함께 앉은 경만이가 팔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쿨쩍쿨쩍 울고있었다.

《경만이는 왜 울고있소?》 하고 량선생님이 놀라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경만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계속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만 했다. 학생들의 시선은 모두 경만이에게로 쏠렸다.

《덕범이! 경만이가 왜 우는가요?》

량선생님이 다시 묻자 덕범이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의자에서 부스스 일어섰다.

《이자식이…》 하고 덕범이가 말을 떼는데 《이자식이 뭐요?》 하고 량선생님이 그의 대답을 가로막았다.

《경만이는 선생님이 내주신 암산문제가 틀렸다는겁니다.》하고 덕범이가 대답했다.

《왜?》 하고 량선생님이 묻기가 바쁘게 경만이가 발칵 성을 냈다.

《내가 언제 암산문제가 틀렸다구 하던?》

《너 틀렸다구 말하지 않았니?》 하며 덕범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한대 먹여주려다가 선생님앞이라는것이 피뜩 생각났던지 주먹을 스르르 풀었다.

《언제 그랬니?》 하며 경만이도 만만치 않게 대들었다. 두 아이는 다시 싸움을 벌릴것 같았다.

《싸우지 말구 차근차근 말을 해요.》

량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자 덕범이는 눈을 껌벅이고나서 대답했다.

《경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덕범이는 말을 떼놓기는 하고도 경만이가 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인지 《메사니》소리만 연방 하면서 낑낑거리더니 생각이 났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한 동무들을 다 데리고갔다는데 도무지 두명밖에 없었을가? 그리구 큰 과수원집 아이라는데 사과 세알을 내놓구 쬐쬐하게 한턱을 냈겠니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는 말했다!》

경만이가 내뱉듯이 대답했다.

《그게 암산문제가 틀렸다는게지 뭐가?》

《그게 어째서 암산문제가 틀렸다는거야. 그리구 사람을 마구 때리구 힘깨나 쓴다구 장땅이야?》

경만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연방 씻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마자 이야기를 해요. 경만이가 왜 울게 됐는가 그걸 얘기하란 말이요.》 하고 량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아이들은 마치도 무슨 연극이야기라도 듣는것처럼 조용해서 재미있게 듣고있었다.

덕범이가 볼을 살살 긁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큰 과수원집이면 귀동이네처럼 부자집이겠는데 그딴 놈하구 친할 놈이 누구란 말이야. 둘도 많은셈이지. 그리구 부자집 아이새끼가 사과 세알에서 더 내놓칸? 세알두 아마 벌레가 먹었거나 썩어서 떨어진걸 내놓았을게다 하고 내가 말했더니 이새끼는, 아니 경만이는 입을 비쭉했습니다. 그래서 너 귀동이한테서 사과를 얻어먹어봤니, 난 한알두 얻어먹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더니 이자식은 넌 뭐 귀동이에게 사과를 얼마나 주었니 하고 지껄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새끼 내가 사과먹으면서 안주었니, 없어서 못주었다 하고 옆구리를 한대 먹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저렇게 찔찔 짭니다.》

덕범이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대더니 웅성거리는것이였다. 량선생님도 따라웃었다.

《덕범이는 우선 그렇게 상스럽게 하는 말부터 고쳐야겠습니다. 〈이자식〉이니 〈이새끼〉니 하는 말은 나쁜 말입니다. 학생이 그런 말을 써서는 안됩니다. 그리구 사람을 그렇게 때리기 좋아해서는 안돼요. 노가다가 사람을 치기 좋아하는데 노가다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덕범이가 경만이에게 한 말은 옳아요. 돈있는 사람들이 더 린색한것은 사실이니까요.》

대원수님께서는 지주네 아이를 미워하는 덕범이의 성격이 아주 마음에 드셨다. 선생님께서 덕범이를 두둔해서 좀더 이야기해주었으면싶으셨다.

흥미있는 암산시간이 지나간 후 담임선생님은 첫 페지에 있는 계산문제를 풀도록 과제를 내주고 4학년 학생들에게로 갔다. 4학년은 조선어시간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남먼저 계산문제를 다 풀어놓으시고 4학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으셨다.

한시간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였다. 학생들은 모두 운동장에 뛰여나가 제각기 즐기는 운동들을 하고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쟁가당》 하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5학년 교실 뒤문 창유리가 깨여졌다는것을 잠시후에야 알게 되였다. 운동장에서 놀던 학생 몇명이 깨여진 창문앞으로 달려갔을 때에는 창밖에도 그리고 교실안에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수 없었다. 교실에는 먼지가 자욱했고 뒤에 놓인 책상이 넘어져있는것으로 보아 교실에서 학생들이 가댁질을 하다가 창유리를 깨뜨린것이 분명한데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수 없었다.

이윽고 두번째 수업종이 울렸고 학생들은 모두 교실로 들어갔다. 담임선생님도 들어왔다.

《창유리를 누가 깨뜨렸습니까?》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둘러보고나서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는 누가 남아있었습니까?》 하고 담임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서로 바라만 볼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교탁앞에 선채 담임선생님은 한동안 말없이 학생들을 둘러볼뿐이였다. 방안은 매우 고요하였다.

이윽고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여러 학생들은 이 학교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잘 알고있을줄 압니다. 이 학교는 여러 학부형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학교입니다. 조촌에 있는 보통학교는 일본놈들이 조선백성들의 세금을 받아가지고 세운 학교입니다. 그러나 우리 창덕학교는 여러분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힘을 모아가지고 세운 학교가 아닙니까. 창덕학교는 가난한 집의 자녀들을 위하여 세운 학교란 말입니다. 유리 한장이 깨지고 책상다리 하나라도 부러지면 결국 누구의 손해입니까. 결국 가난한 여러분들의 손해로 된단 말입니다. 앞으로 학교의 벽이 떨어지고 운동기구 하나라도 마사지면 그것을 누구의 손으로 고쳐야 하겠습니까? 바쁘신 여러분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손을 빌어야 한단 말입니다. 결국 창덕학교는 누구의 학교인가? 여러분들의 학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유리 한장도 깨뜨리지 않고 책상다리 하나라도 부러뜨리지 않는다면 이 학교에 들어오는 여러 학생들의 동생들은 그만큼 깨끗한 자리에서 공부할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 학생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처럼 가난한 살림속에서도 왜 이 학교를 세웠겠습니까? 학교에 모여서 장난이나 하라고 세웠겠습니까?》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며 학생들을 둘러보자 그들은 일제히 《아닙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옳습니다. 그건 다 여러 학생들이 글을 배우고 장차 조선의 훌륭한 일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운것입니다.》

담임선생님은 조용히 앉아 자기 말을 귀담아듣고있는 대원수님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여기 앉아있는 김성주학생은 여러분도 다 아는것처럼 먼곳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공부하러 나왔습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학교가 없어서 여기에까지 나왔을가요? 아닙니다. 거기에도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멀고먼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나왔겠습니까? 제 나라에 있는 학교에 와서 글도 배우고 우리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더욱 똑똑히 배우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이런 행동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유리 한장도 귀중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가슴아픈것은 학생들이 정직하지 못한 그것입니다. 〈제가 깨뜨렸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나서지 못하는가 말입니다. 오늘 그렇게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래일도 좋고 모레도 좋고 그후에도 좋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한 담임선생님은 유리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불안했다. 누가 유리를 깨뜨렸는지 알고싶었으나 알길이 없었다.

이날 수업은 여섯시간이였는데 체조까지로 일과는 끝나고 청소검열을 받은 후 모두 흩어지게 되였다.

대원수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시여 책상앞에 마주앉아 오늘 배운 학과목을 복습하시는데 외할아버님께서 돌아오셨다.

《할아버지, 인제 돌아오셔요?》

《오냐. 학부형회 회장을 좀 만나야겠기에 일찍 돌아왔다. 신입생들은 많이 들어왔는데 새 학년도 준비가 잘 되지 않아서 걱정이구나. 그런데 오늘 공부를 해보니 어떻더냐. 과히 어렵지 않더냐?》

《지금까지 전혀 배우지 못한 과목은 좀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럴수 있지. 남들이 4년간 배운것을 따라잡구 뛰여넘어야겠으니까. 한동안 애를 써야 할게다. 방금 량선생한테 네 실력에 대해서 자신있다는 말두 들었다만 걱정할건 없다. 힘은 쓸수록 생기는 법이란다. 더구나 너는 바탕이 있으니까 걱정할건 없어. 몇달내에 따라잡도록 하여라. 공부하는데도 목표가 있어야 하느니라.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도 몇달후에는 동무들을 따라잡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단 말이다. 너 백사장을 걸어본 일이 있느냐?》

《압록강에 백사장이 있습니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응. 백사장이나 눈내린 들판을 목표없이 한참 걸어간 후에 그 발자국을 돌아보면 어떻더냐?

발자국이 구불구불해서 보기 흉하니라. 그렇지만 어떤 목표물을 바로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곧바로 걸어간 후에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면 어떻더냐? 아마 그때에는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은 보기 좋게 곧바로 나게 될게다.

그렇게 모든 일에 다 목표가 있어야 하느니라. 요즘 어떤 젊은이들은 아무런 목표나 지향이 없이 물에 떠다니는 개구리밥처럼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밀려다니며 뜻없이 세월을 보내고있는데 그래서는 안되느니라. 공부를 하는데서도 숙제를 내주는 날은 하고 내주지 않은 날은 그만두고 하고싶은 날은 하고 하기 싫은 날은 그만두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단 말이다. 자기자신이 목표를 똑바로 정하고 한본새로 걸어나가야 한단 말이다. 알겠느냐?》

《예!》

《그럼 어서 공부를 해라. 곧 다녀오겠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고 두루마기를 입으시더니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외할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을 깊이 새기시며 앞으로의 학습목표를 어떻게 세울것인가를 생각해보셨다.

우선 처음 배우는 과목들을 따라잡는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는 그들을 앞서야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5학년 교과서에만 매달리지 말고 아래학년의 교과서부터 훑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더구나 오늘 4학년 조선어시간에 들려오던 새로운것들을 생각할 때 그것이 꼭 필요할것만 같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펼쳐놓으셨던 책들을 주섬주섬 정리하여 책보에 꼭 싸놓으신 다음 밖으로 나가셨다.

이때에 명구는 제또래들과 함께 마당에 둘러앉아서 글자쓰기내기들을 하고있는데 오늘 아침에 입은 새옷이 먼지투성이가 되여있었다.

《야, 너희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이렇게 마구 땅에 앉아서 되겠니? 그 먼지를 좀 봐라.》

대원수님께서는 명구의 손을 잡아일으켜 바지의 먼지를 털어주셨다. 그리고 같이 놀던 아이들의 먼지도 털어주셨다.

《명구, 너 윤병이네 집하구 인삼이네 집을 알지?》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알아! 이애가 인삼이 아우야.》

《그래? 네 이름이 뭐냐?》

《원삼이야.》

《몇살이냐?》

《일곱살이야.》

《아직 학교에 안붙었겠구나.》

《응!》

《그럼 너의 형한테 같이 갈가?》

이때 같이 놀던 명구또래들이 저희들끼리 소곤거리더니 《우리 같이 갈가?》 하고 묻는것이였다.

《너희들 아주 용하구나. 그럼 같이 가자.》

대원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잡으시고 인삼이네 집으로 향하셨다. 인삼이네 집에 가니 그는 낟가리옆에 앉아서 새끼로 무엇을 만들고있었다. 그는 대원수님을 바라보더니 새끼뭉치를 북데기속에 쑥 밀어넣는것이였다.

《너 뭘 하댔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아무것두 하는게 없어. 그저 놀댔지 뭐.》 하며 인삼이는 얼굴을 약간 붉히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더 따져물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너한테 뭘 좀 빌리러 왔는데 있겠는지 모르겠구나.》

《뭐말이냐?》

《이전에 배우던 교과서들이 있으면 좀 빌려주렴.》

《그건 뭘하게?》

《내가 좀 볼려구 그래.》

《그건 봐서 뭘해?》

《난 그 책들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우리 집에는 내가 1학년때부터 공부하던 교과서가 모두 있었단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교과서를 뜯어서 도배를 했거든.》

《교과서루 도배를 해?》

《그럼 어찌겠니. 종이 사올 돈두 없구 도배는 해야겠는데 할수없이 책이라두 뜯어서 하구 말았지 뭐. 하기야 읽지도 않을 책을 가지구있어서는 뭘하겠니.》

《배운 책인데 가끔 읽어야 하지 않니?》

《당장 배우는 책두 볼 짬이 없는데 옛날 배운 책을 볼게나 뭐니. 가만 있거라. 내 4학년 책만이라두 가져올게.》

인삼이는 집으로 뛰여들어갔다. 대원수님께서는 밖에서 기다리고계셨다. 이때 대원수님께서는 아까 인삼이가 북데기속에 무엇을 감추었는지 알고싶어서 북데기를 슬며시 헤치시였다. 거기에는 새끼로 틀어만들던 짚뽈이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혼자 빙그레 웃으시며 만들던 짚뽈을 다시 북데기속에 밀어넣으셨다.

조금후에 인삼이가 4학년책 몇권을 들고나왔다.

《여기에 참고서까지 있다. 〈이문당〉에서 발행한건데 우리 동무한테서 얻은거야. 이놈만 있으면 그만이야. 급할 때는 산술숙제같은건 이대루 베껴가면 그만이거든.》

인삼이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자기루 생각해서 숙제를 해야지 참고서를 보구 그대로 베껴서야 공부가 되겠니. 그건 선생님을 속이는것이구 선생님을 속이는것은 결국 자기를 속이는거야.》

대원수님께서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자 인삼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네 말이 옳다. 그런데 집에서 몹시 바빠할 때는 할수 없어. 제깍 보구베끼구 밭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거든! 그런 때는 보구베끼는게 숙제를 안해가는 호철이같은 애보다는 낫지 않니.》

이렇게 대답하는 인삼이는 노상 태연하였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배운 책은 몇번 읽어야 되지 않니?》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셨다.

《그건… 그래.》

이렇게 대답하는 인삼이의 얼굴은 다시 빨개졌다.

《책을 빌려줘서 잘 보겠다.》

《그런데 너 다른 책들두 구해야 할게 아니가?》

《구해야지.》

《나하구 함께 윤병이네 집으로 가보자.》

인삼이는 뽈 숨겨둔 북데기를 슬금슬금 바라보더니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희들 고맙다. 그럼 가서들 재미있게 놀아라.》

대원수님께서는 명구와 그의 동무들을 돌려보내고 인삼이 뒤를 따르셨다. 그들이 몇집을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짜르릉 짜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쪽에서 귀동이가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다.

그는 인삼이를 보더니 오라고 손짓을 하는것이였다. 인삼이는 흘깃 바라볼뿐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오라는데 가보렴. 무슨 수작을 하나 들어보란 말이야.》

《그럼 내 갔다올게.》

인삼이는 스적스적 그애옆으로 걸어갔다.

대원수님께서는 길옆에 비켜서시여 인삼이에게서 빌린 책을 들쳐보기 시작하시였다.

조금후에 인삼이가 돌아왔다.

《흥, 싱거운 자식 다 보겠네.》

인삼이는 돌아오자바람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다.

《뭐라고 하던?》

《돈 한푼 줄게 자전거를 밀어달라는거야.》

《그래 뭐라고 하고 왔니?》

《누가 너의 머슴이라던 하구 쏘아줬지 뭐.》

《그건 아주 잘했다. 그런 놈의 종질을 해서는 안돼. 그러니까 뭐라던?》

《아 그랬더니 그자식이 자전거 탄 값을 내라는거야.》

《그래서 주겠다구 했니?》

《주긴 뭘 줘. 자전거 밀어준 값부터 내라구 손을 쑥 내밀었지 뭐.》

《거 아주 말 잘했구나! 그러니까 뭐라고 하던?》

《흥, 그자식 개소리치거덩. 제 말을 안들으면 애비에게 말해서 집을 빼앗구 이 동네에서 내쫓겠다나?》

《너희가 사는 집이 뭐 그애네 집이냐?》

《그애네 집은 아니지만 우리 아버지 약값때문에 집문서를 잡히구 그 집에서 돈 30원을 빚내왔거든.》

《30원값에 집을 빼앗구 내쫓는단 말이냐?》

《그렇게 하면 할수도 있지 뭐. 땅두 그 새끼네 땅을 부치구 집문서까지 잡혔으니까 어쩌겠니?》

《그런다구 만만히 빼앗겨서는 안돼. 그런 놈들과는 뼈가 부러져두 싸워야 한단 말이야.》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귀동이하구는 절대로 싸워서는 안된다고 했어. 귀동이하구 싸웠다면 우리 어머니는 당장 나를 내쫓을지도 모를거야. 생각해보려마. 귀동이 아버지는 순사놈들하구 짝자꿍하는데 그애네하구 싸워서 되겠니? 아마 당장 이렇게 될게다.》 하며 인삼이는 자기의 두손목을 겹쳐보이며 잡혀가는 시늉을 하는것이였다.

《그렇다구 나 죽었소 하고 그놈들이 하라는대로 수걱수걱 해봐라. 그놈들은 점점 더 못살게 굴게다. 그리구 너희 어머니가 귀동이하구 싸우지 말란다구 해서 요전에 자전거까지 밀어주었니?》

이 말을 들은 인삼이는 귀밑까지 빨개지면서 얼굴을 숙이였다.

《돈없다구 빌붙기 시작하면 아마 그 집에서는 너의 온 가족을 종으로 부려먹자구 덤벼들게다.》

《그건 네 말이 맞았다. 우리 아버지가 앓기 전에는 그 집의 일을 얼마나 많이 해주었는지 몰라.》

《지금은 안해주냐?》

《앓아누워있으니까 못해주지 뭐. 그대신 그 집에서 이젠 장리쌀도 못얻어오게 됐어. 요전에도 우리 어머니가 그 집에 장리쌀을 얻으러 갔다가 빈손으로 왔단다.》

《응, 너 자전거 밀어주던 그날말이지?》

인삼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귀동이네 마당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한숨을 짓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인삼이 어머니였다는것을 알게 되니 그의 가족들에 대하여 더욱 동정이 가는것이였다.

《귀동이 아버지의 욕심은 땅보다 더 두텁단다. 그러기 최돼지라구 그런단다. 요즘은 뭐 평양에 비단공장까지 차려놓았다나? 그런데 밑천이 모자란다면서 돈을 받으러 우리 집에도 몇번 왔댔는지 몰라. 이제는 리자에 리자가 붙어서 70원이 됐다나?》

《흥! 아이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됐구나. 그런 놈의 돈은 물지 않아도 돼.》

《돈을 물지 않으면 진짜 최돼지는 우리를 쫓아낼거다.》 하며 인삼이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학교에 보낼것 같지 않다구 지금도 걱정하구있단다.》

《학교에는 꼭 다녀야 해. 배워야 그런 놈들하구 싸움도 할수 있단 말이야. 학교에 내는 돈이 어렵다면 우리 외할아버지께 말씀드려줄게 걱정말어!》 이 말을 들은 인삼이는 히죽이 웃으며 대원수님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두 학교에 돈을 내지 않구 다니는데 뭐. 교감선생님이 돈을 내지 말구 학교에 다니라면서 붙여주었어.》

《그랬구나. 그런데 너의 어머니는 왜 학교에 못보내겠다구 그러냐?》

《하나는 교감선생님을 보기가 미안하다는거구, 하나는 일손이 없어서 일을 해야 되겠다는거야.

밭에 김이 묵는다구 최돼지가 얼마나 성화를 대는지 아니?》

《돈 안낸다구 미안해할건 없어. 그리구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에는 계속 다녀야 해.》

대원수님께서는 인삼이와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시면서 윤병이네 집으로 찾아가셨다.

거기서 대원수님께서는 1학년에서부터 3학년까지의 요구되는 교과서들을 모두 빌리실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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