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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9


학교에서는 새 교과서를 공동으로 사다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교과서로 공부하게 되였구나!)

이렇게 생각하신 대원수님의 가슴은 기쁨으로 한없이 설레이시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새책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시자 곧 책꾸레미를 푸셨다. 표지에 《조선어독본 5권》이라고 씌여있는 책이 먼저 눈에 띄였다. 편입시험을 받을 때에 본 책이여서 더욱 친숙해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차례와 그림들을 대강 훑어보시였다.

우리 나라의 옛이야기들도 있고 우리 나라의 노래도 들어있었다. 그리고 속담과 리언도 있었고 《사자와 산서》라는 재미있는 옛이야기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심청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그 제목을 보시자 대원수님께서는 어머님으로부터 심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던 일이 생각나셨다. 설죽화에 대한 이야기나 관창에 대한 이야기들과 함께 심청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싫지 않으셨다.

우리 나라는 산천도 아름답고 사람들의 마음씨 또한 아름다우니 이야기들도 아름다운것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교과서로 배우게 되였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매우 즐거워지셨다.

그런데 책을 한동안 뒤지시던 대원수님께서는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게 되셨다. 《조선어독본》이라고 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명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편도 보이지 않는것이였다. 그렇게도 재미있던 명장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우리 나라에 쳐들어오던 원쑤들을 용감히 쳐물리친 이야기가 한편도 없는것이 무척 허전하셨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한문》교과서를 펼치셨다. 모두 한문글자로 된것이지만 대원수님께서는 그대로 거침없이 내리읽으실수 있었고 뜻도 쉽게 리해하실수 있었다.

별로 배우지 않아도 알수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표지에 한문글자로 《국어독본 9권》이라고 씌여있는 책을 드셨다. 표지를 번져 첫장을 본 대원수님의 가슴은 섬찍해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다시 표지를 덮어 《국어》라고 쓴 두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보시였다. 일본말로 된 책인데 《국어》라고 쓴것이 아주 불쾌하기 그지없으셨다.

(이런 놈의 책으로 글을 배워야 하는가? 그리구 남의 나라 말로 된 책을 《국어》책이라구 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시니 온몸으로 피가 꺼꾸로 도는것만 같으셨다.

울분이 치솟으며 분노의 빛이 대원수님의 두눈에 이글이글 타올랐다. 지금껏 가슴속에서 설레이던 기쁨은 천쪼각만쪼각 산산이 부서져나가는것 같으셨다. 책을 내동댕이치거나 갈기갈기 찢어버리고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외할아버님의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책상앞에 마주앉아 두터운 책을 들여다보시며 무엇을 적어넣고계시였다.

《할아버지, 이 책을 가지구 글을 배워야 합니까? 그리구 일본말책을 어떻게 〈국어〉책이라구 할수 있습니까?》

대원수님께서는 책 한가운데를 쭉 펼쳐서 외할아버님앞으로 내미셨다. 책을 드신 대원수님의 손은 떨렸고 음성은 부드럽지 못하셨다.

이 말씀을 들으신 외할아버님께서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시고 머리를 약간 끄덕일뿐 한동안 대답이 없으셨다. 그러나 외할아버님의 눈에는 대원수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의 정이 넘쳐흘렀다.

《거기 앉아라.》

외할아버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외할아버님앞에 앉으셨다. 흥분된 나머지 가슴이 사뭇 두근거리는것을 어쩌는수 없으셨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시였다.

《우리 나라에 〈범에게 물려가두 정신만 똑똑히 차리면 죽지 않는다.〉고 하는 속담이 있단다. 물론 왜놈의 말루 된 책을 〈국어〉책이라구 한것은 아주 불쾌한 일이지. 그러나 그 책을 가지구 어떤 정신으로 배워주며 어떤 정신으로 배우는가에 있느니라. 너는 어려서 떠나서 이때까지 타곳에 가있었으니까 이곳 형편에 대해서 잘 모를게다.》

외할아버님께서는 들여다보시던 책을 덮어놓으시더니 대원수님과 마주앉으셨다.

《왜놈들은 조선을 빼앗기 전인 1905년에 벌써 〈림시학사확충안〉이라는 계획을 가지구 썩구 또 썩은 매국정부를 꾀여가지고 제놈들의 마음에 맞게 학제를 고친 다음 왜놈교원들을 조선학교에 박아넣기 시작했단다. 그래놓고는 1910년 8월에 조선을 강점하고 첫날부터 노예교육을 실시하면서 조선사람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날뛰였다.》

《〈황국신민〉이 무엇입니까?》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황국신민〉이란 한마디루 말해서 조선사람의 정신을 뽑아던지구 왜놈들의 정신을 넣어주자는것인데 말하자면 조선사람을 왜놈으로 만들자는 수작이란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쓴웃음을 지으신 후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그놈들은 조선사람들을 자기네들의 충실한 종으로 만들어서 소나 말처럼 부려먹자는게지. 그러기 위하여서는 백성들을 바보로 만들고 무식쟁이로 만들 필요가 있었단 말이다. 그저 일본말이나 배워주면 그만이라는거지. 그래서 만들어진것이 소위 〈공립보통학교〉라는게 아니냐!

거기서는 일본말을 해야 하구 우리 말은 통 못쓰게 되여있단 말이다. 그리구 우리 나라 력사는 쥐꼬리만큼두 배울수 없게 되여있단다.》

《일본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그놈의 말을 할수 있나요?》

《그러게말이다. 물론 학생들끼리야 서로 조선말을 쓰는것이고 또 조선선생들은 우리 말을 쓰는것을 보고도 눈을 감아주지만 살모사같은 왜놈선생앞에서 조선말을 썼다가는 봉변을 당한단 말이다. 그래서 새로 입학한 아이들과 일본말이 서툰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눈짓과 손짓을 하면서 벙어리시늉을 해야 하지. 눈을 뜨고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입을 가지고도 제 나라 말도 못하게 됐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냐. 그리구 우리 나라의 력사와 훌륭한 문화전통과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모조리 없애버리자는게지. 생각해봐라.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슬기롭고 용감하게 살아왔느냐. 벌써 1300여년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천문대인 첨성대를 만들어놓고 천문을 연구하였구, 700여년전에 세계에서 제일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기술을 발전시켰으니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슬기로우냐. 그뿐이겠니? 수나라의 300만대군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을 때에 을지문덕장군을 비롯한 우리 선조들은 침략군을 용감히 물리치지 않았니. 그리구 그후 거란침략자들이 세차례에 걸쳐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지만 강감찬장군을 비롯한 우리 조상들은 놈들에게 쌀 한알, 물 한모금 주지 않았으며 용감히 싸워 물리쳤단다.

임진왜란때에두 그렇지. 일본오랑캐들은 우리 나라를 삼켜보려구 7년간이나 날쳤지만 리순신장군을 비롯한 우리 나라 백성들은 한마음한뜻으로 용감히 싸워 승리하지 않았니?》

《그런 력사를 학교에서 배워주면 모두 제놈들을 반대하여 일어서겠으니까 못배우게 하겠지요?》

《네말이 맞았다. 바루 그거란 말이다. 그렇다구 그저 앉아서 한탄이나 하구 눈물이나 흘려서는 안되는 법이니라.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싸워야지.》

외할아버님께서는 너무나도 통분한 나머지 주먹까지 부르르 떠시는것이였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이야기를 계속하시였다.

《한해농사를 짓는데두 겨울동안의 준비가 있어야 하구 집을 지으려고 해두 터전을 튼튼히 다져야 하느니라.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구 기울어진 나라의 운명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단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를 양성하구 백성들을 묶어세워야 한단다. 말하자면 청년학도들을 나라를 사랑할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거든. 그래서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지자 뜻있는 사람들은 인재양성에 떨쳐나섰지. 네 아버지가 만경대 순화학교에서 교편을 잡은것도 그리고 강동에 가서 명신학교를 세우고 계몽사업을 한것도 뜻인즉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한 인재를 양성하자는것이였지. 물론 너의 아버지가 하는 일을 두고 말한다면 인재양성보다도 독립운동이 몇배 더 큰일이구 무거운 일이지. 말하자면 학교간판을 앞에 내걸구 왜놈들의 눈을 가리워가며 독립운동을 하는것이지. 그러나 나라를 찾구 튼튼한 새 나라의 터전을 닦기 위해서 인재를 키우는것이 결코 적은 일은 아니다. 우리 창덕학교도 그런 의미로 세운게 아니냐.》

《그런데 이따위 책이 아니면 공부를 할수 없습니까?》

《마음대로 한다면야 무엇때문에 그따위 책을 학생들의 손에 들려주겠니. 우리는 이따위 책이 아니라도 배워줄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지금 놈들의 눈초리가 사립학교에 쏠리고있단다. 어떤 트집이라도 잡아가지고 사립학교를 없애치우려구 눈이 뒤집혀있단 말이다. 그런데 교과서를 가지구 말썽을 일으킬수 있겠니. 사실은 우리 창덕학교두 인가는 4년제밖에 받지 못한 학교란다. 말하자면 5~6학년은 비법적으로 하는거지.》

《그래서 보습반이라고 합니까?》

《그렇다. 놈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보습반이란 명칭을 걸구 5~6학년 과정을 배워주고있다. 그러게 시학이란자가 자주 학교에 나와서 검열을 하는데 가끔 말썽을 부린단다. 그런데 놈들이 만들어놓은 교과서를 들고 문제를 삼았다가는 학교운명이 어떻게 되겠느냐. 어떻게 해서든지 배워야 한다. 물론 이 교과서에서는 별로 배울것이 없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언제나 귀담아들어야 할게다. 량선생만 하더라도 보통학교에서 선생을 할 자격이 없어서 창덕학교로 온줄 아느냐. 봉급도 변변히 받지 못하고 이런데 와서 교원일을 보는 사람들은 다 생각이 다른분들이란다. 보통학교같은데서 들을수 없는 이야기를 창덕학교같은데서는 들을수 있단 말이다. 남포에서 여기까지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거기엔 학교가 없어서 여기까지 오겠니? 같은 책을 가지고서도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중요한 문제란 말이다. 그리구 그 책내용에서는 배울만 한게 없지만 중요한것은 책을 읽을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앞으로 읽고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것이 아니냐? 책을 읽을만 한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서야 앞으로 어떻게 좋은 책을 읽을수 있겠으며 또 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울수 있겠니.》

이렇게 말씀하신 외할아버님께서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시더니 조금후에 들어와서 책 한권을 대원수님앞에 내놓으셨다. 책모서리에 곰팽이가 약간 쓴것을 보아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책임에 틀림없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아라. 꽤 읽을만 하겠는지는 모르겠다만.》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받아 뚜껑을 번지시였다. 인쇄한 책이 아니라 붓으로 곱게 쓴 책이였다. 술가리는 들기름으로 저루었는데 노랗게 되였다. 글줄을 들여다보시던 대원수님께서는 기쁨에 찬 시선으로 외할아버님을 바라보시였다.

《아버지가 쓰신 글씨구만요.》 하고 대원수님께서는 거의 환성을 올리다싶이 말씀하시였다.

외할아버님께서는 대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시며 빙그레 웃으시였다.

《알아보는구나. 네 아버지가 중강진으로 떠날 때 두고간 책이다. 꽤 읽을만 하냐?》

《읽을수도 있고 뜻도 알수 있어요.》

이렇게 대답하시는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의 글씨만 보아도 무척 반가우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번지시다가 남이장군의 시에 시선을 멈추시였다.

이 시를 보니 여섯살때에 만경대 할아버님에게서 《천자문》을 배우시던 기억이 어제일처럼 머리에 떠오르셨다. 그때 할아버님께서는 대원수님께 남이장군의 시도 배워주셨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소리를 내여 시를 읽으셨다.


백두산석 마도진이요

두만강수 음마무라

남아이십 미평국하면

후세수칭 대장부리요


白頭山石 磨刀盡

豆滿江水 飮馬無

男兒二十 未平國

後世誰稱 大丈夫


외할아버님께서는 수염을 내리쓰시며 대원수님께서 한시 랑송하시는 모습을 사랑에 찬 눈길로 바라보고계셨다.

《그래, 뜻을 한번 새겨볼만 하냐?》

《예!》

대원수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한시의 뜻을 풀어나가셨다.


백두산의 돌은 칼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먹여 다 말리리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평정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러주랴


《대장부의 기상이 얼마나 훌륭하게 잘 표현되였느냐. 〈백두산돌은 칼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먹여 다 말리리!〉 사나이 대장부의 포부가 그만이나 해야 하느니라.》

외할아버님께서는 계속 아래수염을 쓰다듬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천정을 쳐다보시며 잠시 무엇을 생각하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남이장군은 나라의 북방을 침공하려던 녀진족을 물리치는데서도 많은 공적을 쌓은분으로 20대에 병조판서에까지 오른분이란다.》

《병조판서라는게 뭡니까?》

《병조라는건 봉건사회의 륙조의 하나로 군사에 대한것을 담당한 나라의 제일 높은 행정기관이란다. 말하자면 그 당시의 륙군과 해군을 담당한 제일 높은 행정기관이지.》

《그럼 판서라는건 뭐나요?》

《륙조에서 각각 제일 높은 사람을 판서라고 했단다. 말하자면 륙조란것은 내각과 같은것이구 판서라는것은 대신이지.》

《그럼 병조판서란 군대를 맡은 대신이구만요.》

《말하자면 륙해군대신이지. 그런 큰 어른이 간신의 참소에 의하여 28살의 피끓는 젊은 시절에 무참히 희생된것은 정말 애석한 일이 아니냐?》

《참소가 뭐야요?》

《남을 헐어서 웃사람에게 거짓말보고를 하는것이란다.》

《어째서 그렇게 할가요?》

《나라를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자기만 높은 벼슬을 하려는 오랑캐놈의 사상이 대갈통에 가뜩 들어찼으니까 그렇지. 예로부터 우리 나라는 제 일신만 생각하는 량반귀족무리들이 서로 헐고 뜯고 하는 당파싸움때문에 결국 망하지 않았니?

임금이라는 등신은 나라와 백성의 형편은 살피지 않고 술과 계집에만 빠져 흥청거리다가 국난이 일어나면 옳은 말을 하는 충신은 잡아죽이구 간신의 말만 듣다가 망한 일이 얼마나 많으냐.》

외할아버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남이장군은 비록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한평생을 보람있게 살았단다. 그는 명장으로서 쌓아올린 업적도 크거니와 그가 남긴 이러한 시가들은 후세사람들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는데 얼마나 큰 힘을 냈냐. 시를 쓰려면 이렇게 힘이 솟구치는 시를 써야 하느니라.》

외할아버님께서는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이 시를 여러번 반복하여 읽으셨다.

그러나 읽고 또 읽어도 싫지 않으셨다. 읽으실 때마다 새맛이 나는 시였다.

《할아버지, 얼마나 공부를 하면 이런 훌륭한 시를 지을수 있을가요?》

《좋은 시를 지으려면 물론 공부를 많이 하구 남이 쓴 시를 많이 읽어야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수 없느니라. 좋은 글을 지으려면 남달리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타야 하구 옳고 좋은 일을 보고는 함께 기뻐할줄 알아야 하며 그릇된 행동을 보고는 미워할줄 알아야 하느니라. 소위 책권이나 읽은 선비들이 글쪼각을 쓴다구 하지만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구는 터럭만큼도 없이 글을 쓰니 글읽는 사람에게 무슨 감동을 주겠느냐? 겨레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따위 시야 써서 뭘하겠니? 그 책에 있는 시들이야말로 좋은 시들이다. 거기에는 너의 아버지가 지은 시와 노래두 몇수 있느니라.》

대원수님께서는 많은 시편들을 읽어나가시다가 짧고도 아주 마음에 드는 김지대의 시 한편을 발견하시였다.


나라의 걱정은 신하의 걱정이요

아버지의 근심은 아들의 근심이라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라위해 싸우면

충성과 효도를 함께 다함이로다


대원수님께서는 이 시를 몇번이고 읽고 또 읽으셨다. 어쩐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노래한것만 같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눈을 감으시고 아버님의 모습을 그려보셨다. 혁명동지들과 마주앉아 소곤소곤 이야기하시는 모습이며 밤늦도록 책상에 마주앉아 글을 쓰시는 모습 그리고 멀리서 온 소포꾸레미를 헤치면서 기뻐하시는 모습과 피로하신 얼굴로 책상에 마주앉으시여 깊은 생각에 잠기신 모습들이 떠오르셨다.

(빨리 커서 아버지를 도와 놈들과 싸워야겠다.) 이렇게 굳게 결심하신 대원수님께서는 시를 계속 읽어내려가시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탁 치시였다.

《아버님이 지으신 시가 있어요!》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부르짖으시며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셨다.


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할줄을 동무야 알겠느냐


나라의 독립을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리

몸이 찢겨 가루되여도 광복의 한길에서

굴함없을줄 동포야 믿어다오


이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 싸워서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양춘을 찾아올제

독립만세를 조선아 불러다오


시끝에는 《고향을 떠나면서 김형직.》 이라는 작은 글발까지 적혀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소리를 내여 시를 읊으셨다.

《얼마나 사람을 격동시키고 힘이 솟구치게 하는 시편이냐? 그러기에 시는 비록 짧지만 그속에는 시인의 사상이 반영되기때문에 잘된 시는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끌어가게 하는것이고 나쁜 시는 사람들을 망치게도 하는 법이란다. 그러기에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하느니라.》

《할아버지, 이 책을 다 읽구 드려두 괜찮아요?》

《잘 건사해가며 읽어라. 놈들의 눈에 띄였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게다.》

《예! 알겠습니다.》

《그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또 다른 책을 줄테니 많이 읽어라. 너희들처럼 기억력이 좋을 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나처럼 나이가 많아지면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단 말이다.

젊어서 읽지 못한것을 늙은 뒤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머리에 넣어두면 누가 빼앗을수도 없을뿐더러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에도 쉽게 고리를 풀수 있단 말이다. 알겠냐?》

《예.》

《그러니까 그놈의 교과서걱정은 별로 할게 없지 않느냐. 허허허…》

외할아버님께서는 수염을 흔드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교과서를 지내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많이 알아야 하느니라.

문제는 그 아는것을 어떻게 써먹는가에 달려있지.》

외할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잠시후에 대원수님께서는 조선어독본, 산술, 지리, 력사, 도화, 습자, 한문, 《국어독본》… 등 교과서들을 책보에 싸가지고 웃방으로 올라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다시 《국어》책을 드시고 표지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셨다.

아무리 보아도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제 나라의 훌륭한 말을 두고 남의 나라 말을 《국어》라고는 절대로 부를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한동안 표지를 들여다보시던 대원수님께서는 무슨 생각이 나셨는지 주머니 칼을 꺼내드시고 《국어》라고 씌여있는 나라 국(國)자의 테두리만 남기고 누구 혹(或)자를 깨끗이 갉아버리셨다. 그리고는 입 구(口)자 한복판에 한 일(一)자를 그으셨다. 그러니 제법 날 일(日)자가 되였다. 이리하여 《국어독본》은 《일어독본》으로 되였다. 즉 일본말독본이라는 뜻으로 고치셨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책을 맨 밑에 넣으시고 책보를 싸시였다.

그리고는 시편들을 적어넣은 책을 다시 펼쳐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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