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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8


개학날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이튿날 아침에 뒤산으로 올라가시여 참나무아래에서 간단히 아침체조를 하시고 마을을 내려다보셨다. 굴뚝들에서는 아침연기가 피여오르고 여기저기서 닭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오늘부터 우리네 학교에서 우리 말로 공부하게 되였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한없이 기쁘셨다. 이제 몇시간만 지나면 선생님들도 만나뵙고 개교식에도 참가하고 동무들과도 낯익히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시니 흥분되기도 하고 또 그 시각이 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기다림도 크셨다. 그래서인지 새로 나온 잡지를 펼쳐드셨으나 어쩐지 가슴이 설레여 글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마을을 내려다보시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셨다.

명구는 새로 사온 모자를 눌러쓰고 부엌으로 드나들며 아침을 재촉하였다.

《늦지않어. 걱정말구 어서 세면이나 해라.》 하며 외삼촌어머님이 세면물을 떠주었다.

명구는 세면물을 받아가지고 고양이 세면하듯이 얼굴에 물을 찍어바르고 뜨락으로 뛰여나왔다.

그는 새로 빨아놓은 수건으로 얼굴을 북북 문질렀다. 수건 한복판은 흙물로 큰도장을 찍은것 같아졌다. 이것을 보신 대원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명구에게 물으시였다.

《너 전에도 매일 세면하댔니?》

《응!》

《명구, 아주 용한데! 그런데 이제는 학교에 붙었으니까 전에처럼 세면을 해서는 안된다.》

명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듯이 까만 눈을 반짝이며 대원수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세면하는것두 뭐 두가지가 있나?》

《두가지뿐이겠니? 여러가지 있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어떻게 세면을 해야 하는지 대줄게. 저고리를 벗어라.》

명구는 재미있다는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저고리를 벗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세면물을 떠다가 명구의 머리와 목 그리고 손과 팔까지 깨끗이 씻어주셨다. 그리고 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씻어주시고 수건을 명구앞에 내보이시며 말씀하셨다.

《자 봐라! 수건이 깨끗하지 않니? 그런데 네가 씻은 수건은 이게 뭐냐? 수건을 매일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어머니가 빨래하시기 힘들지 않겠니?》

명구는 새물새물 웃을뿐이였다. 그는 아침술을 놓자바람으로 모자를 눌러쓰고 부랴부랴 학교로 뛰여올라갔다.

이날 대원수님께서는 외할아버님과 함께 학교로 올라가 직원실로 들어가셨다.

직원실에는 4~5명의 교원들이 있었다.

《어제 얘기한 내 외손자요. 우선 입학할 수속을 해야겠소.》

대원수님께서는 선생님들을 향하여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몇학년에 입학하게 됩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 선생이 물었다. 어깨가 쩍 벌어지고 몸이 통통한게 체육선수처럼 보였다. 그는 검은테 둥근안경을 썼는데 누런단추 다섯개가 가지런히 달려있는것으로 보아 중학교를 나온지 오래지 않은것 같았다.

대원수님께서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그분에게 시선이 끌렸다.

《4년제 소학교를 졸업했는데 몇학년에 넣는것이 좋겠는지.》

외할아버님께서는 이러시면서 선생님들을 둘러보시더니 체육선수처럼 생긴 그분에게 말씀하셨다.

《량선생님이 우선 시험을 받아보시지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학생, 이리루 오시오.》

대원수님께서는 량선생님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량선생님은 대원수님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공부하던 정형을 간단히 물어보더니 성적증을 가지고왔느냐고 묻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가지고오셨던 성적증을 내보이셨다.

《음! 아주 대단한 성적인데. 전과목이 〈갑〉이구만. 최우등생이란 말이야. 결석이나 지각, 조퇴두 없구 품행두 아주 모범이군 그래!》

이렇게 말하면서 량선생님은 매우 만족한 얼굴로 대원수님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량선생님은 곁에 있는 선생에게 가서 무어라고 이야기하더니 4학년 교과서들을 몇책 가져왔다.

그는 4학년 《조선어독본》을 펼쳐놓더니 대원수님앞에 내놓으면서 읽어보라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받아드시고 거침새없이 읽어나가셨다.

《좋아, 좋아! 이번에는 산술문제를 하나 풀어보라구.》

량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더니 소수계산문제를 골라주는것이였다. 4학년 교과서에 있는 문제치고는 꽤 복잡한 문제였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그자리에서 별로 어렵지 않게 정확히 계산하셨다.

《보통실력이 아닌데!》

량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곁에 앉은 선생을 바라보는것이였다.

《그럴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오.》

량선생님은 자기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을 뽑더니 대원수님앞으로 내놓았다. 《조선어독본 5권》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받아드시고 첫페지를 펼쳐놓으셨다. 우리 나라 글에 한문글자가 퍼그나 많이 섞여있는 국한문으로 된 책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책을 두손으로 받쳐드시고 거침없이 줄줄 내려읽으셨다. 책상앞에 마주앉아 무엇인가 분주히 쓰고있던 선생들도 일손을 멈추고 대원수님의 글읽는 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은 놀라운 시선으로 대원수님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는것이였다. 창밖에서도 아이들이 발돋움을 하며 방안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창옆에 자리잡은 선생은 아이들에게 연방 손짓을 하며 물러서라고 신호를 하였으나 아이들은 물러설 생각은커녕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어느덧 대원수님에 대한 소문이 그들속에 퍼졌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어깨싸움을 해가며 창너머로 들여다보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계속 읽어내려가셨다. 그만했으면 실력을 넉넉히 알만도 하였는데 량선생님은 그만 읽으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 제1과를 다 읽으신 뒤였다. 량선생님은 큰 목소리로 《됐어! 됐어!》 하며 선생들을 둘러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다시 5학년용산술책을 펴놓으며 대분수계산문제를 풀어보라고 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자리에서 쉽게 슬슬 풀어놓으셨다. 뒤짐을 지시고 대원수님뒤에서 계산해나가는 글발을 유심히 들여다보시던 외할아버님께서도 빙그레 웃으시며 머리를 약간 끄덕이시였다.

《교감선생님, 이만한 실력이면 보습반 1학년에서도 앞장서나갈수 있습니다.》 하고 량선생님이 말했다. 이 말을 들으신 외할아버님께서는 매우 반가와하셨다.

《교과서가 전혀 다른것으로 공부를 했지마는 하여간 소학교를 마쳤으니 대담하게 보습반에 넣어볼가요?》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량선생님도 훌륭한 학생을 맡아서 가르치고싶은 생각이 많았던것이다.

《량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합시다. 하긴 공부라는거야 본인이 하기나름이고 선생들이 가르칠나름이지요. 본인이 열성을 내구 담임선생이 힘을 들이구 집에서 도와만 주면 학생들의 성적이란 몇달안에도 버쩍 올릴수 있는 법이니까.》

이리하여 대원수님께서는 보습반 1학년에 편입하게 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명랑한 기분으로 직원실에서 나오셨다.

이때에 아이들이 대원수님 곁으로 우르르 밀려왔다. 거기에는 어제 기와집마당에서 놀다가 앞장에 서서 외가집으로 달려가던 아이들도 있었고 자전거를 밀어주던 아이들도 있었다.

《야, 너 몇학년에 붙었니?》

어제 만났던 키가 날씬하고 눈이 큰 아이가 물었다.

《보습반 1학년에 붙게 되는가부다.》

《5학년 말이지. 그럼 우리들과 같이 공부하게 됐구나. 됐어! 우리반에 또 한명 늘었구나!》

그애는 손가락을 마주쳐서 《딱》 하고 소리를 내며 단지팽이처럼 생긴 아이를 흘깃 바라보았다.

《또 한명 늘었다. 얼씨구 좋다!》

단지팽이처럼 생긴 아이는 두팔을 쑥 벌리더니 둥기둥기 춤을 추면서 빙그르 돌았다. 그바람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대원수님께서도 따라웃으셨다.

《얘들아! 이 학생도 우리반에서 같이 공부하게 됐는데 너희들두 알구 놀아라.》 하며 단지팽이처럼 생긴 아이가 제 동무들을 둘러보았다.

《교감선생님이 이 학생의 외할아버지야. 그리구 이름은 뭐라구 하더라? 아명은 알지만 학교에서는 아명을 부를수 없지 않니.》

그애는 대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성주라고 부른다.》

대원수님의 대답이시였다.

《우리들의 이름두 알아둬라. 내 이름은 덕범이라고 부른다.》

이때에 누가 뒤에서 《덕범이라고 하면 잘 모른단다. 배나무방치라구 해야 제꺽 알어!》 하고 말했다.

《그건 네 맘대로 불러라. 그렇지만 그건 나한테 꼼짝달싹 못하는 아이들이 부르는 별명이란다.》

이렇게 말하며 덕범이는 대원수님을 흘깃 쳐다보는것이였다.

《난 덕범이라구 부를게 걱정말아라.》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그애는 주먹으로 코를 쓱 문지르더니 싱긋 웃었다.

《여기 눈이 왕방울같이 큰 애가 있지 않니. 이애 이름은 인삼이야. 그런데 뽈차기에서는 문지기밖에 할줄 모르기때문에 우리들은 인삼이라구 부르지 않구 개삼이라구 부른단다. 그다음 이애 이름은 경만이라구 부르는데 아이들은 메뚜기라구 부른단다. 보려마. 저 이마가 메뚜기처럼 생기지 않았니? 그리구 이애는 우리 5학년 학급장인데 윤병이라구 부른다.》

덕범이는 뒤에 서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그애는 아주 의젓해보였다. 덕범이는 이런 식으로 제또래들을 모두 소개하였다.

《학교에 새로 붙어서 모르는게 많은데 너희들이 잘 배워다구.》 하고 대원수님께서 부탁하셨다.

《배워달라구? 윤병이한테나 배워라. 인삼이는 어떻겠는지. 내나 경만이 같은 아이들한테서는 쥐뿔두 배울게라군 없을게다. 매일 먹는다는건 락제국밖에 없는데 우리들이 뭘 배워주겠니?》 하며 덕범이는 코살을 찡긋했다.

《인삼이랑 경만이는 요즘 귀동이한테 배워가지구 하따라 마따라 하면서 일본말두 곧잘 하던데!》

윤병이의 빈정대는 말투였다.

《귀동이가 누구냐?》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저 건너 기와집에서 사는 최돼지아들이 귀동이란다. 지난 겨울에는 장가를 가더니 요즘은 또 자전거까지 사왔다나?》

《그놈이 밸머리가 얼마나 센지 아니? 저의 아버지두 그애를 휘지 못해! 요전에 자전거를 안사다준다구 저의 아버지 자전거를 멨다쳐 호구를 꺾어놓았단다.》

《그러기 그날 당장 사다주지 않았니?》

둘러서있던 아이들의 말이였다.

《제 애비를 닮아서 아주 못난 자식이야. 그런데 인삼이랑 경만이 저애들은 자전거를 밀어주면서 야단법석이란다.》 하고 덕범이가 말했다.

《밀어만 주는줄 아니? 타기두 해.》 하고 경만이가 머리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하루종일 밀어주구 한두번 타보면 뭘하니. 자전거 못타서 죽겠니? 그애네 종처럼 줄줄 따라다니면서 그게 뭐냐? 에익 메스껍다. 퉤!》 하고 윤병이는 침까지 탁 뱉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어제 기와집마당에서 자전거를 밀어주던 아이들을 슬쩍 둘러보셨다.

그애들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대원수님께서는 덕범이와 윤병이의 말이 아주 마음에 드셨다.

이날아침 학교운동장에서는 개학식이 있었다. 교감선생님의 말씀이 계신 후에 학급담임을 발표하였다. 량선생님이 4, 5학년을 담당하게 되였다고 했을 때 학생들은 손벽을 치면서 기뻐하였다.

개학식이 끝나자 기념으로 학교둘레에 나무를 심게 되였다.

담임선생님은 5학년 학생들과 4학년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산과 강변, 마을과 학교둘레에 나무를 심는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나무가 많으면 경치가 좋을뿐아니라 대체로 나무잎은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기때문에 공기가 맑아져서 사람들의 위생에 좋으며 가는 곳마다에 나무가 많으면 큰비가 내려도 단꺼번에 물이 흘러내리지 않아 홍수를 막을수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살림에서 나무는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귀중한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책상과 걸상을 비롯하여 나무로 만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나무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절실히 필요한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선조들은 나무심기를 좋아했고 또 심은 나무를 가꾸기도 좋아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날조된 《한일합병》이후에 일본놈들은 나무를 계속 찍어가기만 하고 심지는 않아서 산은 어느덧 붉어졌고 마을들에도 나무를 심는 좋은 습관이 점점 없어져갔다고 하면서 우선 학교둘레에 나무를 많이 심자고 힘주어 이야기하였다.

담임선생님은 나무심는 방법까지 설명해주면서 기념으로 나무를 심는만큼 좋은 어린 나무들을 구해다가 정성들여 심자고 강조하였다.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을둘레로 돌아다니면서 아카시아묘목을 떠오는 아이들도 있었고 자기네 집 울타리뒤에 있는 개나리를 캐오겠다고 마을로 내려가는 아이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립던 학교에 편입한 기념으로 좋은 나무를 떠다 심어야겠는데 어떤 나무를 떠다가 어디에 심는것이 좋겠는가를 생각해보셨다.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강동에 계실 때 아버님께서 명신학교 정문에 소나무를 떠다심으시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그후 아버님께서는 가끔 소나무를 바라보시며 무엇을 깊이 생각하시기도 하였고 그앞을 거닐기도 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께서 언제나 좋아하시던 나무를 떠다가 정문앞에 심으리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소나무를 두그루는 심어야겠는데 혼자서는 해낼상싶지 않으셨다. 그래서 누구와 같이 소나무를 떠올가 하고 생각하시면서 흩어지는 동무들을 둘러보셨다. 이때에 키가 후리후리하고 힘꼴이나 써보이는 5학년 학생이 분주히 백양나무가지를 따는 아이들쪽으로 달려가고있었다. 호철이라는 학생이였다.

《야! 너 어디로 가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호철이를 불러세우셨다.

《백양나무가지를 좀 개평하러 가댔다. 근데 그건 왜 묻니?》

《너 나하구 같이 소나무를 떠다가 정문 량편에 심지 않겠니?》

《소나무?》

호철이는 어처구니없다는듯이 대원수님을 바라보더니 《떠다 심어서 제일 살리기 어려운 나무가 뭔지 아니? 소나무란 말이야, 소나무!》 하고 말했다.

《어렵다구 해서 못할건 없지 않니.》

《구태여 어려운걸 골라서 할건 뭐란 말이야? 더구나 정문에 심으려면 한길은 잘되는 나무를 떠와야겠는데.》

《한길되는 나무라구 못떠올건 없지 않니.》

《그러지 말구 저리로 가자. 백양나무가지나 몇개 개평해줄게. 백양나무가 제일이야. 아무렇게나 꺾어서 꾹꾹 찔러두면 산단 말이야.》

이러면서 호철이는 가던 길을 스적스적 걷기 시작했다.

대원수님께서는 호철이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계셨다. 호철이는 대원수님을 다시 흘깃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좋은 나무를 심어도 한그루, 나쁜 나무를 심어도 한그루로 잡아줄텐데 글쎄 뭣때문에 힘든 일을 골라하자구 그러니?》

이때에 윤병이가 어디서 불쑥 나타나며 말했다.

《좋다, 나하구 같이 가자.》

이리하여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와 함께 마을로 내려가서 삽과 새끼 그리고 헌 가마니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런데 정문에 심을만한 모양있는 소나무가 눈에 잘 뜨이지 않았다. 한동안 산판으로 돌아다니다가야 외따로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를 윤병이가 발견했다. 키와 모양이 알맞춤하였다.

《어때? 이만하면 만점이지.》

윤병이는 메고있던 낡은 가마니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소나무를 뜰 잡도리를 하였다.

《가만… 이 나무를 뜨면 안되겠어.》

대원수님의 말씀이였다.

《왜, 이만하면 괜찮지 않니?》

윤병이는 의아한 눈으로 대원수님을 바라보았다.

《아주 좋기는 한데 이 나무를 떠내면 산판이 엉성해서 이발빠진것같이 되겠어. 학교에 나무를 떠다심는것두 중요하지만 산두 생각해야 하지 않을가? 네 생각에는 어떠냐?》

《네 말이 옳다. 다른 나무를 골라보자.》

이리하여 대원수님을 따라 윤병이는 다른 나무를 찾아 산판을 거닐었다. 마침내 소나무들이 비교적 많은데서 맞춤한 소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 나무를 뜨기로 합의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소나무직경의 3배쯤 되게 연장하여 둥글게 금을 그어놓으셨다. 그리고는 금을 따라 둘레를 도랑처럼 파나가기 시작하셨다.

가끔 돌멩이들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그리 힘들이지 않고 소나무를 뜰수 있었다.

어느덧 뿌리를 가마니로 싸고 새끼로 칭칭 감아놓았다. 그런데 둘이서는 도무지 들고갈수가 없었다. 윤병이는 동무들을 데리려 학교쪽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대원수님께서는 다른 소나무 한그루를 더 골라서 뜨기 시작하셨다.

조금후에 윤병이가 칠골아이들 몇명을 데리고 올라왔다. 거기에는 덕범이와 인삼이도 있었다. 그들은 파놓은 소나무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야! 아주 멋진 소나무를 떴구나! 우리들두 소나무를 떠갈걸 공연히 아카시아나무를 떠다심었구나.》 하고 덕범이가 떠들어댔다.

《걱정할게 있니? 이제 같이 떠다심구 잘 가꾸면 될게 아니냐!》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들두 이 소나무를 떠메가기만 해두 같이 떠다심은걸루 잡아주겠단 말이지?》

《물론이지!》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덕범이는 《얼씨구 좋구나!》하며 자기 궁둥이와 인삼이 등을 철썩철썩 번갈아 갈겨대며 두팔을 벌리고 빙빙 돌아갔다.

《팔골아이들두 몇아이 데려올건데 호철이 그자식때문에 못데려왔네.》

윤병이가 혼자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호철이가 왜 못데려가게 하더냐?》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그애는 칠골아이들하구는 앙숙이란다. 〈칠골아이들 하는 일을 뭣때문에 팔골아이들이 도와준단 말이가?〉 그러면서 제 동네아이들을 여기루 못오게 하거던.》

《그런다구 못오는 아이들두 그애나 비슷한 아이들이지 뭐냐.》

《팔골아이들은 호철이주먹안에 들어있으니까 할수 없어.》

이 말을 듣자 덕범이는 팔소매를 척척 걷어올리며 앞으로 썩 나섰다.

《야 야, 메스껍다. 팔골아이들 아니면 이따위 소나무 하나 못가져가겠니? 내 혼자라두 메구갈테다.》

이렇게 말하며 덕범이는 비스듬히 누워있는 소나무뿌리를 두손으로 그러안고 일어서려고 힘을 썼다. 그의 얼굴은 빨개졌고 피대줄이 곤두섰다. 둘러서고있는 아이들은 어디 보자는 식으로 우두커니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아이구 안되겠구나.》

덕범이는 소나무앞에 펄썩 주저앉고말았다.

《그래, 너희들두 좀 도와주진 않구 돌미륵처럼 우뚝 서서 구경들만 할 작정이냐, 이리들 오란 말이야.》

덕범이는 호령조로 이렇게 말하며 둘러서있던 아이들을 쏘아보았다. 방금 올라온 아이들이 소나무앞으로 죽 모여섰다. 그들은 어렵지 않게 소나무를 닁큼 메고 일어섰다.

대원수님께서 다른 소나무를 떠가지고 몇아이와 함께 메고 운동장에 내려가셨을 때에는 벌써 학교정문에 구뎅이까지 파고있었다. 거기에는 량선생님도 계셨다. 량선생님은 운동모를 쓰고 런닝그를 입었는데 삽으로 구뎅이를 파고있었다. 흙밥을 떠올릴 때에는 팔뚝의 근육이 불끈불끈했다.

량선생님은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소나무 캐온 솜씨를 보니 전문원예사 못지 않단 말이요. 누가 이런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있소?》 하고 물었다.

《김성주의 솜씨입니다. 이 소나무두 김성주가 떠다심자구 했습니다.》

윤병의 말이였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정성스럽게 심구 잘 키우자구.》

아이들이 소나무를 들어왔다. 그런데 아이들은 방향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량선생님도 나무방향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는것 같지 않았다.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가 아까 까밝히는 바람에 좀 게면쩍게 생각되셨으나 그대로 있을수 없으셨다. 그래서 둘러서있는 동무들을 헤치시고 앞으로 나가셨다.

《이 가지가 남쪽으로 뻗었던 가지입니다.》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윤병이는 아까 나무를 뜰 때 대원수님께서 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말했다.

《선생님, 나무를 옮겨심을 때에는 그 나무가 본시 서있던 그 위치대로 심어야 잘 산답니다. 그렇지?》

윤병이는 대원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얼굴에 약간 웃음을 띠우실뿐 대답은 하지 않으셨다.

《그 말이 옳소. 본시 위치를 변동시키지 맙시다.》

량선생님의 말씀이였다.

《그리구 흙을 메울 때에는 우에 있던 흙을 밑으로 내려가게 하구 밑에 있던 흙은 우로 올라가게 메워야 한답니다. 그렇지, 성주?》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역시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볼우물을 지으며 빙긋이 웃으실뿐이였다.

《역시 그 말두 옳은 말이요. 그래야 부식토가 나무뿌리 가깝게 닿아서 영양을 잘 보내게 될게 아니겠소. 역시 김성주학생이 식물에 대해서 아는것이 많소. 자! 와서 총지휘를 하기요. 나는 꽃밭만드는데를 좀 가보아야겠소.》 하며 량선생님은 4학년 아이들이 일하는 꽃밭만드는데로 갔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과 함께 소나무 두그루를 정성들여 심으시고 물을 길어다주셨다. 아이들은 일한 보람을 느끼면서 소나무앞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정문에 소나무를 심으니 학교가 더욱 위풍있게 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흐뭇한 심정으로 소나무를 한동안 바라보셨다. 아버님께서 여기에 안계시지만 어쩐지 아버님과 함께 소나무를 떠다심은것 같은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셨다.

(아버님께서 학교정문에 소나무를 떠다심었다는것을 아시면 무척 기뻐하실거야!)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며 소나무를 바라보고계셨다. 소나무사이로 아버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는것 같았고 아버님께서 부르시는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노래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것 같으셨다. 그리고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도 굴하지 않듯이 그 어떤 어려움앞에서도 굽히지 말아야 한다고 타이르시는것 같으셨다.

(편지로라도 오늘의 소식을 아버님께 알려드려야겠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정문앞에 가득 모여서서 흩어질줄 모르는 동무들은 이런 훌륭한것을 발기했고 직접 소나무를 떠다심은 대원수님의 환한 얼굴을 매우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것이였다.

기념식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대원수님께서도 동무들과 함께 운동장을 지나 천천히 언덕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오고계셨다.

이때에 학교앞에 있는 나무다리옆에 많은 아이들이 둘러서서 왁작 고아대고있었다. 무슨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하였다.

《우리두 가보자!》

대원수님께서는 윤병이들과 함께 단숨에 그리로 뛰여가셨다. 아이들이 어깨성을 쌓고 죽 둘러섰는데 좀처럼 뚫고들어갈수가 없었다. 그런데 안에서는 《투덕투덕》 하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누가 싸우니?》 하고 윤병이가 물었다.

《칠골하구 팔골하구 또 붙었어.》

먼저 와서 구경을 하고있던 한 아이의 대답이였다. 윤병이는 아이들틈을 쑤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원수님께서도 그의 뒤를 따르셨다.

아이들이 죽 둘러선 한복판에서는 열한두살가량 되여보이는 두 아이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뒹굴고있었다.

아래에 깔린 아이는 무라치 숨쉬듯이 씨근덕거리며 다시 뒤쳐보려고 안깐힘을 쓰면서 다리를 버둥거리고있었다.

우에 올라탄 아이도 등에 먼지가 가뜩 묻은것으로 보아 아래 깔렸던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깔린 아이를 덮어누르고 연방 주먹으로 내리치고있었다. 밑에 깔린 아이는 팔을 쭉 뻗치고 그애 주먹을 막느라고 무진애를 쓰고있었다.

그런데 둘러선 아이들은 누구 하나 그들을 뜯어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구경들만 하고있었다. 싸움하는 아이들의 바로 옆에는 호철이가 서있는데 그는 마치 씨름판에서 심판원이나 된것처럼 허리를 척 굽히고 무릎우에 두손을 짚고 싱글벙글 웃으며 재미있게 들여다보고있었다.

《아니, 싸우는데 너희들은 구경들만 하구있니?》

윤병이가 앞으로 썩 나서며 말했다.

《가만있어라!》

호철이가 윤병이앞을 콱 막아섰다.

《여직껏 팔골이 깔렸댔는데 겨우 뒤쳐놓았다. 저 이마빼기 벗어진걸 좀 봐라.》

이렇게 말하는 호철이의 기세는 아주 등등했다. 그는 두눈을 왕방울처럼 디글디글 굴렸다. 윤병이가 싸움을 말리려고 더 앞으로 나선다면 그애는 가만있을것 같지 않았다. 자칫하면 칠골아이들과 팔골아이들사이에 패싸움이라도 벌어질것만 같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윤병이도 기가 꺾이고마는듯 하였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호철이를 아니꼬운 눈초리로 바라볼뿐 더 나서지를 못했다.

호철이는 두팔을 척 굽혀 허리를 짚으며 가슴을 내밀고 아이들을 쑥 둘러보았다.

호철이의 위세에 눌리여 누구도 윤병이를 도와나서지 못했다.

이때에 《비켜라!》 하고 소리치시며 대원수님께서 앞으로 썩 나서시였다.

《칠골이구 팔골이구가 뭐냐? 싸우는걸 보구서야 말려야지!》

대원수님께서 달려들어 우에 타고앉은 아이의 겨드랑을 잡아일으키셨다.

그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두다리를 버둥거렸으나 대원수님의 억센 힘에 어쩌는수 없었다.

아래에 깔렸던 아이는 이때라는듯이 후닥닥 일어나더니 그에게 달려들려고 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한팔로 그애 앞을 가로막으셨다.

이때에야 칠골아이들이 그애를 붙들었다. 이리하여 싸움은 겨우 끝났다.

그런데 호철이는 노기가 등등하여 대원수님을 한동안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그러나 대원수님의 위풍에 기가 눌려 대들 엄두는 내지 못했다.

《넌 무슨 상관이냐?》 하고 호통을 칠뿐이였다.

대원수님께서도 엄한 태도로 호철이를 흘겨보셨다.

《누가 할 말을 네가 하는지 모르겠다. 한학교 아이들끼리 싸움이 뭐냐? 그리구 넌 작은애들이 싸움을 하면 말려야지 그게 뭐냐? 상급생이면 상급생구실을 해야지!》

대원수님께서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힘있게 말씀하셨다.

대원수님과 호철의 시선은 한동안 날카롭게 마주쳤다. 그러나 호철이는 감히 대들지는 못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둘러서있던 아이들은 손에 땀을 쥐고 대원수님과 호철이를 번갈아 바라보고있었다.

《싸우겠으면 왜놈들과나 싸워라. 제 나라 사람들끼리 싸우면 돼?》

대원수님의 엄한 목소리였다.

호철이는 그만 어떻게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애오라지 입만 놀렸을뿐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한학교 아이들끼리는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해! 너희들두 한학교에 다니면서 그렇게 쌈을 해서는 안된단 말이야.》

대원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싸우던 아이들에게 이렇게 타이르시였다. 아까 싸우던 아이들은 대원수님과 호철이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거칠어지자 먼지들도 털지 못하고 눈들이 둥그래있었는데 대원수님께서 웃으시는것을 보고서야 저으기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였다.

싸우던 아이들은 서로 저희들끼리 시선이 마주쳤다. 먼지구뎅이에서 한참 뒹군 그들의 몰골은 정말 망측했다. 얼굴과 머리에서부터 저고리와 바지에까지 모두 먼지투성이였다. 상대편을 바라보면서 자기 꼴도 그러하리라 생각하니 그들도 웃음이 나갔다. 그들은 어느덧 싸운 일을 잊은듯이 서로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넌 뭐가 좋아서 웃니? 어서 가자.》

호철이가 팔골아이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하는 말이였다. 팔골아이들은 호철이를 따라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한데 밀려 언덕길을 걸어올라갔다.

《좋다! 두고보자!》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호철이는 혼자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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