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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7


3월도 마감고비에 들어서니 벌써 봄기운이 완연히 느껴지며 날씨도 무척 따뜻해졌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움돋기 시작했고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그늘밑에서는 아이들의 구성진 호드기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만경대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사이를 지나 송산리굽이를 돌아서신 대원수님앞에는 보습을 기다리는 넓은 벌판이 한눈에 펼쳐졌다. 검붉은 흙덩이들은 겨우내 얼어붙었다가 따뜻한 봄바람에 녹아 쥐기만 해도 부실부실 부서질듯 하였다.

봄의 선구자라는 진달래는 불그레한 망울이 앉았고 벌판에서는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피여오르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고향의 봄날이 류달리 따사로움을 느끼시면서 칠골외가집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계셨다.

따스한 볕을 받은 산과 들, 나무와 풀들은 사람들의 품에 한결 더 정답게 안겨왔다. 말랐던 가지에서 새싹이 뾰족뾰족 움돋고 멎었던 시내물이 소리치며 흐르고 잠자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는 이 모든 봄의 정경은 새 희망에 가슴설레이시는 대원수님의 마음을 한결 더 즐겁게 해주었다.

들판에서는 소바리와 등짐으로 두엄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조밭가래질을 하는 농민들의 모습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올해의 농사가 바야흐로 시작된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높지 않은 고개들을 몇개 넘으시여 어느덧 남포로 나가는 신작로에 접어드셨다. 여기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곧은 길로 한참 걸으면 소나무와 오리나무숲이 한눈에 보인다. 그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마을이 칠골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기쁨에 찬 시선으로 한동안 마을을 바라보셨다.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은 집이 100호가량이나 되였는데 군데군데 기와집도 있었지만 거의가 초가집들이였다.

대원수님의 시선은 그리 크지 않은 한 초가에 멎었다. 새 이영을 이었고 갈바자를 쭉 둘러쳤는데 알뜰하게 꾸려진 초가였다. 바로 그 집이 대원수님의 외가집이였다. 집만 바라보아도 벌써 반가움이 샘솟듯 치밀어오르셨다.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명절때마다 어머님의 손에 이끌리여 외가집을 찾아오시던 어리실적의 옛 기억들이 떠오르셨다.

그때 외가집에 간다면 왜 그리도 기뻤는지 알수 없으셨다. 외가집에서도 살림이 가난한데다가 식솔들이 많아서 대원수님께서 가셔도 그리 탐탁하게 대접을 하는것도 아니였으나 외가집에 가는 날은 명절에 생일을 겹친것처럼 기쁘셨다. 정이 오고가는것은 진정한 사랑과 진심에 따르기마련이다.

아무리 값진 음식을 차려놓고 대접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사랑과 진심이 없다면 정이 끌릴수 없다. 그러나 죽물을 떠놓았을망정 거기에 꾸밈없는 사랑과 진정이 깃들어있을 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기마련이다. 그때 외가집에 가기를 즐겨하신것도 아마 대원수님께 쏟아붓는 온 가족의 사랑이 넘쳐 흘렀기때문이였으리라.

대원수님의 시선은 어느덧 마을 뒤쪽 산비탈에 자리잡고있는 창덕학교로 옮겨졌다. 기와집 한채와 《ㄱ》로 꺾어지은 초가집 한채가 창덕학교 교사였다.

(이제부터 저기서 공부하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벌써부터 마음이 즐거워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낯익은 마을을 정겨운 눈으로 둘러보시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어느덧 한 기와집앞에 이르셨다. 넓은 마당에는 로적가리가 가지런히 서있고 여러해 묵은 큰 나무낟가리가 있는 품이 굉장히 잘 사는 집인 모양이였다. 그런데 로적가리뒤에서 한 아주머니가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닦고있는데 그의 곁에는 허줄하게 입은 한 중년사나이가 마주서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삽을 들고 도랑을 치던것으로 보아 이 집의 머슴군임에 틀림없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시며 무심코 그들을 바라보셨다.

《글쎄, 이렇게 로적가리를 쌓아놓구 쌀이 없다구야 말이 돼요! 빚을 물것 같지 못하니까 안주겠다는 말이지. 하기야 이미 진 빚두 갚지 못하구 또 찾아온 내가 잘못이예요.》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였다.

《그럼, 농사두 그만두구 굶어죽으란 말인가? 이놈의 세상이 왜 이렇게 공정칠 못할가요.》 하며 중년사나이가 한숨을 지으며 하는 말이였다.

(이 집으로 빚을 얻으러 왔다가 못얻어가는 모양이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그 집 마당에 들어서시였다. 기와집 사랑방에서는 술추렴이 벌어졌는지 토방에는 구두와 편리화들이 가뜩 놓여있었다. 왁작 떠드는 남자들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간드러진 녀자의 코맹맹이소리와 웃음소리가 간간이 섞여서 들려왔다.

초록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받쳐입은 열대여섯살가량 되여보이는 아이가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있는데 두 아이가 뒤에서 밀어주고있었다.

자전거를 타고있는 아이는 자전거손잡이를 잡고있을뿐이고 가누기는 자전거를 밀어주는 아이들이 하고있었다. 밀어주는것도 자기 차례가 오지 않는 모양인지 몇아이는 자전거를 주런이 쫓아만 다니고있었다.

그중의 한 아이는 키가 날씬하고 눈이 류달리 컸으며 또 한 아이는 단지팽이같이 뚱뚱해서 인차 눈에 띄였다.

(흥! 저애들은 너절하게 뭘 저리 주런주런 쫓아다니구들 있을가?)

대원수님께서는 아니꼬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시며 기와집마당을 스쳐지나시는데 사랑방에서 노래소리가 요란스럽게 흘러나왔다. 류행가를 부르는것이였다.

(남들은 모두 농사일에 바빠하는데 이 집은 딴세상이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사랑방을 흘깃 바라보시며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때에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훌쩍 뛰여내리더니 대원수님을 마뜩지 않게 바라보며 새된 목소리로 《뭐야?》 하고 소리치는것이였다.

얼굴은 밀지짐처럼 둥글넙적하고 볼살이 척 늘어졌는데 코끝은 가위로 자른것처럼 발딱한 꼴이 정말 보기만 해도 우습강스러웠다. 어찌나 잘 먹었는지 얼굴에는 개기름이 번지르르 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새서방처럼 차려입고 아이들을 시켜 자전거를 밀게 하는 꼴이 밉살스러웠는데 밑도끝도없이 《뭐야?》 하고 소리치니 더욱 아니꼬우셨다.

대원수님께서는 가던 길을 우뚝 멈추시고 한동안 그애를 노려보고나서 굵은 목소리로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애는 잡고있던 자전거손잡이를 다른 아이에게 맡기더니 대원수님앞으로 다가섰다.

《사람인줄은 나두 안다. 뭣하러 어디로 가는가 말이야?》

그애는 턱을 재치고 뒤짐을 착 지더니 제법 따져드는것이였다.

(돈냥이나 있다구 아주 건방진데. 버릇없이 되는대로 자란 놈의 자식이로구나!)

대원수님께서는 한동안 그애를 노려보셨다.

《남이야 뭣하러 어딜 가든 그건 알아서 뭘하겠니. 너는 어서 자전거나 배워라. 아직 서툰 모양이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아니꼽던 나머지 빈정대는 투로 이렇게 대꾸하셨다.

《뭐 어쩌구 어째?》 하며 그 아이는 대들기라도 할듯이 한걸음 다가서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아이놈을 노려보시였다. 그 아이놈은 대원수님과 시선이 마주치자 겁부터 앞섰던 모양인지 감히 달라붙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제 동무들에게 고개짓을 하는 꼴이 힘을 보태여달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아이놈을 두둔해나서지 않았다.

《너 싸움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꼭 한번 붙어보아야 하겠냐?》

대원수님께서는 침착하신 어조로 이렇게 물으며 빙긋이 웃으셨다.

그 아이놈은 뭐라고 대답은 하지 못하고 제 동무들만 둘러보면서 눈만 깜박이고있었다.

《이거 뭐 만나자바람으로 싸움부터 하겠니. 나도 이 동네로 살려온다. 정 붙을테면 붙어도 좋다만 너 그런 새옷을 입구 먼지구뎅이에 한바탕 굴면 옷이 꼴이 되겠니?》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는 하셨지만 정 해볼테면 해보자는 눈치가 보였던지 그 아이는 볼만 살살 긁을뿐 더는 대들지 못했다.

대원수님께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시자 마당에 있던 두세아이가 대원수님뒤를 좇아왔다.

《너 그애하고 맞섰다가 진짜 달라붙으면 어쩔려구 그러댔니? 그애 힘이 얼마나 센지 아니? 20년묵은 산삼을 세뿌리나 먹었어.》 하고 키가 날씬하고 눈이 큰 아이가 말하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 아이를 흘깃 바라보셨다.

이때에 단지팽이처럼 통통하게 생긴 아이가 먼저 이야기한 아이를 흘겨보며 대꾸했다.

《산삼이면 다가? 너같은 애나 개삼이나 산삼을 부러워하지 누가 부러워하는줄 아니? 난 조밥에 토장만 먹어두 그따위 시라소니같은건 다섯명두 당해내겠다.》 하고 툭 쏘아주는것이였다.

《나두 부러워 안해. 그새끼는 이걸루 한대 먹여대면 그만이야.》

먼저 말을 꺼낸 아이가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 켕기는 모양인지 기와집쪽을 흘깃 돌아보는것이였다.

그들은 말없이 한동안 걸었다.

《너 이 동네로 살려 온다는데 어느 집으로 이사오니?》

키가 날씬하고 눈이 큰 아이가 물었다.

《살려 오는것이 아니라 우리 외가집으로 공부하러 온다. 너희들두 창덕학교에 다니냐?》

《응! 너두 창덕학교에 다닐셈이냐?》

《응.》

《그래? 그럼 너의 외가집이 어느 집이냐?》

이번에는 단지팽이처럼 통통한 아이가 물었다.

《저기 보이는 저 집이 우리 외가집이야.》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네 말이구나!》

그 아이는 발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대원수님을 다시 바라보는것이였다.

《너 그럼 간도에서 오지 않니?》

《간도에서 온다. 그런데 우리가 간도에서 산다는건 네가 어떻게 아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되물으셨다.

《알지 않구. 이래뵈두 내 눈은 만리경이야!》

그애는 시치미를 뚝 따고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로서도 웃음이 나갔던지 돌아서서 주먹을 입에 대고 키득키득 웃는것이였다.

《그건 허튼소리구 이 근방에 사는 사람치구 너의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줄 아니. 너의 아버지가 간도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계시는지 다 알구있단 말이야.》

대원수님과 통통한 아이가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키가 날씬하고 눈이 큰 아이가 자기 엉뎅이를 툭 치더니 《응, 그랬댔구나. 너희들은 천천히 오너라. 내가 빨리 교감선생님네 집에 가서 알려드리마.》 하며 마치 단거리경주라도 하듯이 웃길로 달려가는것이였다.

《네가 먼저 알리겠다구? 흥, 어림두 없다!》 하며 이번에는 통통한 아이가 먼저 달아나는 아이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어느 사이에 그 아이는 먼저 달려간 아이를 따라잡더니 앞섰다.

(재미있는 아이들이로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천천히 걸으셨다.

외가집앞에 이르자 외할아버님, 외할머님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밀려나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모자를 벗어드시고 외할아버님과 외할머님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셨다.

《어! 우리 성주가 이제 오는구만. 그래 팔도구에서 지금 나오는 길이냐?》 하고 외할아버님께서 물으셨다.

《만경대에서 하루 묵구 오는 길입니다.》

《잘했다. 그래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편안하시더냐?》

《예!》

《팔도구집에서두 다 잘들 있구?》

《예!》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과 어머님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시려다가 우선 이렇게 대답하셨다.

《철주랑 영주두 이제는 퍼그나 컸겠구나.》

《예, 철주두 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영주두 이제는 방심부름을 곧잘하는데요.》

《암, 그래야지! 그러지 않아두 네가 온다는걸 알구있었다. 네 어머니가 보낸 편지가 그저께 도착했더구나.》

외할아버님께서는 매우 반가와하시였다.

《자기 늙은것은 몰라두 남 자라는것은 안다구 정말 몰라보게 컸구나. 거리에서 만나면 몰라볼번 했구나.》

가운데외삼촌의 말이였다.

《네가 기다리던 네 형님이야. 인사를 해야지.》

외할아버님께서는 대원수님의 외사촌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가 그럼 명구나요?》

《그렇다.》

《야, 굉장히 컸구나. 그때는 젖을 먹었는데.》

대원수님께서는 놀라운 눈으로 명구를 바라보셨다.

명구는 까만 눈을 반짝거리며 생글생글 웃었다.

《너 이제는 학교에 다니겠구나?》

《래일 1학년에 붙어.》

《잘됐다. 나하구 같이 공부하자. 너 학교에 붙으면 처음부터 공부를 잘해야 한다.》

대원수님께서는 명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명구는 머리를 까딱까딱했다.

《자! 어서들 들어가자.》

외할아버님의 말씀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외할아버님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서시였다. 외가집도 만경대 할아버님네 집처럼 방안에 놓인것이란 낡은 궤짝 하나뿐이였다. 만경대집과 다른것은 외할아버님의 방에는 자작 만든 책장이 하나 놓여있는데 거기에 책이 주런이 꽂혀있는것과 벽에 사진틀이 걸려있는것뿐이였다.

《이 방이 네가 공부할 방이다. 그리구 이것이 네 책상이구. 나하구 함께 공부를 해보자. 배우지 않던 과목들이 있어서 아마 한동안은 애를 써야 할게다. 래일이 개학날이니 오늘은 푹 쉬구 래일아침에 학교로 올라가자.》

책상과 책꽂이도 자작 만든것으로서 외할아버님께서 만드신것이 분명했다.

이윽고 외할아버님께서는 일이 있다면서 학교로 올라가셨다.

《어머니두 같이 오지 않구 왜 너 혼자 왔니. 네 어머니를 한번 만나면 래일 죽어두 한이 없겠는데…》

외할머님께서는 사랑에 찬 얼굴로 대원수님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님두 오시구싶어하셨지만 집을 떠나실수 있어야지요 뭐. 어머님의 일이 얼마나 많기에 그러세요.》

《일복 있는 사람은 어딜 가나 바쁘니라. 너의 어머니는 처녀때에만 해두 숱한 일을 했단다. 무슨 일이나 막히는데가 없었지. 바느질두 잘하구 음식두 잘 만들구 농사일은 또 얼마나 잘했겠니. 열살때부터 부엌일을 맡아서 했는데 부뚜막은 매일 물매질을 하구 솥뚜껑은 언제나 번들거렸구 독에는 언제나 물이 출렁출렁해있었단다.》

외할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무슨 생각이 나시는지 혼자 웃으시는것이였다.

《할머니, 왜 웃으셔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네 어머니 얘기를 하니까 옛날생각이 나는구나. 네 어머니가 일곱살 잡히던 해 겨울이였지. 그때 나는 밤늦게까지 물레질을 하다가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어슴푸레하게 물레질소리가 들려오지 않겠니. 그래서 눈을 떠보았더니 너의 어머니가 혼자 일어나서 물레질을 하구있지 않겠니. 그런데 물레질을 곧잘 하더구나. 어느짬에 물레질을 배웠느냐구 물었더니 어머니가 하는걸 보구 해보니까 되더라는게 아니겠니. 글쎄 열살나서 베를 짰으니 말할게 있냐.…

그렇게 일을 하구두 먹을것도 먹지 못하구 입을것을 입지 못하구 고생만 하구있으니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나 되겠는지.》

《할머니, 우리 나라두 독립을 찾구 잘살 때가 와요.》

《그래야지. 네 아버지, 어머니, 외삼촌들이랑 숱한 사람들이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으려구 애쓰는데 왜 못찾겠니. 그런 생각을 하기에 네 어머니 보구싶은 생각두 누르면서 살아오기는 했다.

하기는 너를 이렇게 만나보니 네 어머니 본것보다 더 반갑긴 하다만…》

외할머님께서는 말끝을 얼버무리고마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사진틀에 넣은 많은 사진들에 시선이 쏠리셨다. 이때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언젠가 어머님께서 가족사진을 외가집에 보내시던 기억이 떠오르셨다.

그래서 대원수님께서는 사진틀앞으로 다가서시여 빠른 시선으로 사진들을 죽 훑어보셨다. 집에서 보낸 가족사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사진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보낸 우리 가족사진은 받지 못했나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외할머님께서는 말없이 한동안 대원수님을 바라보시더니 《왜 못받았겠니? 받은지 벌써 오랬지. 깊숙이 건사해두구 가끔 꺼내본단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럼 왜 사진틀에 넣지 않았어요?》 하고 다시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이 말을 들으신 외할머님께서는 가늘게 한숨을 짓고나서 천천히 입을 여시였다.

《너의 아버지사진을 버젓이 내걸구 살 때가 왔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기야 그런 세상이 멀지 않아 오기야 오겠지.》

서운하시던 대원수님의 심정은 어느덧 울분으로 바뀌여졌다.

(개놈들! 사진도 마음대로 걸지 못하게 하는구나! 우리 아버지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외가집의 가족사진을 죽 훑어보셨다. 거기에는 애티있는 맏외삼촌의 사진도 있었다.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림강에서 마지막길을 떠나시던 맏외삼촌의 모습이 환히 떠오르셨다. 그리고 맏외삼촌께서 원쑤놈들의 손에 붙들렸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가슴을 부여잡고 방바닥을 치시면서 비분에 싸이셨던 아버님의 모습도 떠오르셨다.

강진석선생님께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혁명을 위해 몸바쳐 싸우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하시고 그 조직을 평양과 평안남북도일대 그리고 황해도에까지 확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김형직선생님과 긴밀한 련계밑에서 혁명활동을 전개하셨다.

김형직선생님께서 1917년 3월에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자 강진석선생님께서는 이 조직의 핵심으로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셨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중강을 거쳐 혁명활동무대를 림강으로 옮기신 후에도 강진석선생님께서는 국내에서 활동하고계셨다.

선생님께서는 3.1인민봉기가 폭발되자 군중의 선두에 서서 용감히 싸우셨다. 놈들은 선생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다. 사태가 매우 위급하게 되자 선생님께서는 국내에서 투쟁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여 간도로 들어가게 되셨다. 간도로 들어간 후부터는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더욱 구체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혁명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세차례나 조선에 건너와서 활동을 하고 네번째로 다시 국내에 들어왔던것이였다.

강진석선생님께서는 평양에 나와서 동지들도 만나보고 군자금도 모집하는 등 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황해도로 나갈 준비를 하고계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선생님께서 가지고계시던 5련발권총이 고장났다. 그래서 권총을 수리해가지고 나가기 위하여 지체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 강진석선생님께서는 평양대동려관에 들어계셨는데 여기서 억울하게도 일제경찰에게 체포되고말았던것이였다.

《맏외삼촌의 소식은 전연 모르고있나요?》

사진을 보시던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면회를 간다고 하면서 아직 한번도 못갔다. 그놈의 돈이 있어야 면회도 갈게 아니냐. 금년농사나 잘 지으면 어떻게 되겠는지…》

외할머님의 대답이였다.

《어머니는 늘 큰어머니때문에 걱정을 하신답니다. 가까운데라면 자주 만나러라두 갈수 있겠는데 먼곳에 있으니 가볼수두 없구 만날 눈물로 세월을 보내지나 않는지 모르겠다구 말입니다.》

《눈물을 흘린들 무엇하구 가슴을 친들 무엇하겠니. 나라잃은 백성이라 그것을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면서 크게 마음을 먹구 살아가야지.》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시는데 일터에 나갔던 맏외삼촌어머니와 외사촌형 명식이네 부부와 작은외삼촌이 달려왔다. 그리고 대원수님보다 한해 우인 맏외삼촌의 딸인 보패누나도 뛰여왔다. 너무 반가와서 서로 부여안고 어쩔줄 몰라했다.

이날 저녁에는 맏외삼촌네 가족들도 외할아버님네 집에 모였는데 두집 식구는 모두 열세명이나 되였다. 이날은 모두가 명절날기분이였다.

그러나 차려놓은 음식은 메기알같은 조밥과 시래기를 가뜩 넣은 비지였다.

외가집어른들은 멀고먼 곳에서 찾아온 대원수님을 위하여 맛다른 음식을 대접하고싶은 생각이 산같았으나 명절이나 외할아버님의 생신날에도 흰쌀밥을 대접하지 못하는 살림에 어쩔수가 없었다.

《이것참, 오래간만에 왔는데 안됐다. 흰쌀밥에 고기국으로 알구 많이 먹어라.》

외할아버님을 모시고계시는 가운데외삼촌어머님의 말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심정을 모르실리 없었다.

《별말씀 다하시는군요. 저는 비지를 제일 좋아해요.》

대원수님께서는 저녁상앞에 마주앉으시여 소담스럽게 들기 시작하셨다. 열세명이나 되는 식구가 모두 한그릇씩 맡았다. 그들에게는 실로 비지가 별식이였다.

《흰쌀밥에 고기국을 놓고도 소화가 안돼서 갤갤하는것보다 조밥에 토장이라도 입달게 먹는것이 제일이니라.》

외할아버님께서는 가족들을 둘러보시며 만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말타면 견마잡히구싶다더니 너를 만나니까 너의 어머니까지 만나구싶구나. 너의 어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란다. 이 동네사람치구 너의 어머니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던? 언제나 한번 만나보게 될는지.》

맏외삼촌어머님께서는 대원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것이였다.

《글쎄요. 오래지 않아 만나게 되겠지요. 왜놈들이 우리 나라에서 기승을 부리면 얼마나 부리겠나요.》

이날 대원수님께서는 밤늦도록 집소식을 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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