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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6


《성주 왔다지요?》

밖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대원수님께서 문을 열어주시기도 전에 아이들이 자기 집에라도 들어오듯이 문을 벌컥 열고 우줄우줄 들어왔다.

앞집에 사는 광호와 웃마을에 있는 응화또래들이였다. 모두가 낯익고 무척 반가운 얼굴들이였다. 광호는 자기 아버지가 일할 때 입는 저고리를 입었는지 두루마기처럼 무릎을 가리우고 품이 큰 옷을 껴입었고 응화는 조끼도 입지 못했는데 저고리앞섶에는 큰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주머니에는 무슨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는지 불룩해있었다. 그립던 동무들을 만나니 대원수님께서는 무척 반가우셨다.

《야! 너희들 오래간만이구나. 그동안 굉장히들 컸구나!》

대원수님께서는 그들앞으로 다가가 손들을 덥석덥석 잡으셨다.

《넌 우리들보다 더 크구 그러니? 네 키는 어른의 키만 하다야!》 하며 광호는 싱글벙글 웃는것이였다.

《여기들 앉아라.》

대원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히셨다.

《큰놈이랑, 정첫째랑 그리구 영길이들두 다 잘 있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큰놈이는 잘 있어. 네가 왔다는걸 알면 곧 올거야. 내 가서 데려오란?》

광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만둬. 이제 만날수 있겠는데 뭐. 우선 너희들한테서 얘기나 좀 듣자꾸나. 그런데 영길이랑 정첫째는 무슨 일이 있었니?》

광호는 잠시 머뭇거리며 응화쪽을 바라보더니 힘없이 대꾸했다.

《정첫째는 재작년여름에 죽었단다.》

《뭐, 정첫째가 죽었어? 그렇게 든든하던 아이가 죽었단 말이냐? 그것 참 안됐구나. 그애는 외아들이였지?》

《그러기 정첫째가 죽은 댐에 그애 어머니는 밥두 안먹구, 자지두 않구, 자꾸만 동네안팎으로 돌아다니면서 울기만 하다가 정신병자가 되구말았단다. 정말 불쌍하게 됐어.》

광호는 노상 어른처럼 이야기했다.

《그래, 지금두 여기 계시냐?》

《안계셔. 지난 겨울에 정첫째 아버지가 아주머니를 데리구 멀리루 이사했단다. 그댐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

《무슨 병에 걸렸기에 그렇게 든든하던 아이가 죽었니? 거짓말같구나.》

《아니야, 진짜야. 그렇지? 응화야.》

《응.》

응화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광호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배에 물이 잡혀서 이렇게 뚱뚱해졌댔단다.》 하며 광호는 손으로 자기의 배를 불룩해보이였다.

《병원에 가서 물을 뽑으면 될건데 돈이 없어 그랬겠구나.》

《맞았어. 병원에 갔으면야 죽지 않았을지두 모르지. 그런데 병원에 갈 돈이 있었다던? 하루에 두끼 죽쑤어먹을 쌀두 없었는데 어떻게 병원에 가겠어. 무슨 풀이라더라? 그 풀뿌리를 고아먹이면 낫는다구 하면서 그애 어머니는 매일 풀뿌리만 캐다 삶아주었단다. 그러니 나을게 뭐야? 배가 불러서 못먹겠다구 하는데두 그애 어머니는 마셔야 산다구 하면서 자꾸 물만 먹였단다. 정첫째는 살겠다구 먹기 싫은 약물을 수태 먹었지만 그냥 죽고말았어. 얼마나 좋던 아이댔니.…》

광호는 이렇게 말하면서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죽지 않을 아이가 결국 돈이 없어서 죽었구나.》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얼굴이 길쑴하고 귀가 류달리 크고 언제나 웃기 잘하던 정첫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죽었다는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였다. 동무들도 모두 정첫째를 생각하는 모양인지 한동안 방안은 고요했다.

《영길이는 어떻게 됐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영길이네는 황해도에 있는 자기네 먼 친척네 집을 찾아 이사해갔단다.》

《왜 여기서 떠났니?》

《여기서 못살게 되니까 하는수없이 떠났지 뭐. 남포지주네 빚때문에 영길이 누나는 공장으로 팔려갔구 그애네는 집이랑 의농이랑 함지랑 밥상이랑 할것없이 모두 빼앗겼단다.》

광호의 말이였다.

《남포지주네는 돈두 많구 쌀두 많다는데 영길이네 사정은 손톱만큼두 안보구 북북 다 긁어갔어. 야, 정말 너무하더라.》

《차압이라구 그러든가? 집에랑 농짝에다 붉은 딱지를 붙인 댐에는 꼼짝 손두 못대게 하더구나.》

마을아이들이 한마디씩 덧붙여 말했다.

《영길인 만경대를 떠날 때 우리하구 떨어지기 싫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니? 나랑 응화랑은 그때 성안에까지 따라갔댔어.》 하고 광호가 말했다.

《헤여지구 돌아올 때 광호는 울었단다.》 하고 응화가 말하자 《너두 울지 않았니?》 하고 광호가 대꾸했다.

《나두 좀 울기는 했지만 넌 소리를 내면서 쿨쩍쿨쩍 울지 않았니?》 하며 응화는 우는 시늉까지 했다. 이바람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소리를 내든 안내든 눈에서 눈물만 나오면 우는거야 결국 운건 같지 않니.》

두 동무가 이렇게 옥신각신하는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대원수님께서는 말없이 빙긋이 웃으셨다.

《그게 어디 영길이네만 당하는 일이겠냐? 우리 안동네에만 하더라도 빚에 쪼들리지 않는 집이 있다더냐? 그러기 예로부터 부자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구 그런단다.》 하고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정처없이 걸어가는 영길이의 어린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어느덧 압록강을 건너가는 많은 나그네들의 모습으로 변했고 강계를 썩 지나 명문고개에서 만났던 경상도에서 온다던 한 가족의 모습으로 변했다.

(영길이네도 그렇게 차리구 떠났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께서는 무척 서글퍼지셨다.

《영길이는 만경대에서 떠난 후에 소식이 없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소식이 없어. 자리를 잡으면 꼭 편지를 하겠다구 했는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편지를 부칠 돈이 없어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광호의 말이였다. 이때에 응화가 한마디 끼였다.

《아니야. 자리두 잡구 돈이 있대두 편지를 못할수 있어. 생각해보려마. 영길이두 글을 모르구 그애 아버지두 글을 모르는데 어떻게 편지를 쓰겠니?》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응화는 줄곧 무릎을 꿇고앉아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편안히 앉으라고 몇번 이야기했으나 그는 시물시물 웃기만 하면서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럴 때마다 광호는 주먹으로 입을 막고 깨득깨득 웃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응화가 편안히 앉지 못할 그 어떤 까닭이 있는것으로 짐작하시고 더는 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광호는 아까부터 대원수님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이야기를 할듯 하다가 다른 아이들이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말을 비치지 못하는것만 같았다.

《광호, 너는 아까부터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것 같구나.》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맞았어. 아까부터 한가지 물어보구싶은것이 있었어.》

이렇게 말하며 광호는 시물시물 웃는것이였다.

《그래 무슨 이야기냐?》

대원수님께서 호기심이 나서 물으셨다.

다른 아이들도 이애가 무슨 또 생뚱같은 소리를 하려나 하고 광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모두가 조용해서 자기를 지켜보는통에 어색해진 광호는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열었다.

《물어볼거란건 별게 아니야. 너 진짜 그 간도땅에서 여기까지 걸어나왔니?》

광호의 말이 떨어지자 다른 아이들도 정말 자기들도 알고싶었던것을 신통히도 잘 물어주었다는듯이 정색해서 대원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것이였다.

《걸어오지 않으면 별재간이 있니? 우리같이 돈없는 사람들이야 어딜가나 제 다리를 놀려야지 별수가 없거든!》

대원수님께서는 이러시며 동무들을 둘러보셨다.

《야!》 하며 둘러앉은 아이들은 희한한듯 대원수님을 우러러보며 환성을 올렸다.

《간도서 여기까지 몇리나 되나?》 하고 응화가 물었다.

《천리 좀 넘지. 말을 듣긴 천리가 굉장히 먼것 같지만 막상 걸어보면 그리 먼것두 아니야.》

대원수님의 대답이였다.

《천리가 멀지 않다구?》 하며 응화가 입을 쩍 벌리더니 눈을 크게 뜨고 동무들을 둘러보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영길이가 만경대를 떠난 후에 소식을 모른다는것이 궁금해서 인차 그애의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리셨다.

《그런데 영길이는 학교에 도무지 다니지 못했니?》

《못다녔어. 영길이는 우리 글두 모른단다. 그러니까 편지를 쓰구싶어두 못쓸수 있지 뭐.》

광호가 제법 어른답게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자 응화는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숙이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응화도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는것을 곧 알수 있었다.

《영길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한건 그애의 잘못두 아니구 그애 부모들의 잘못두 아니야. 왜놈들때문에 학교에두 못다니는거야.》

대원수님께서는 응화가 들으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제야 응화는 얼굴을 들며 대원수님을 바라보는것이였다.

이때에 안동네아이들이 또 한패 밀려왔다.

《응! 진짜 증손이가 오긴 왔구나!》

큰놈이가 대원수님의 아명을 부르며 맨 앞장에 서서 뜨락에 들어섰다. 다른 아이들도 주런주런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뜨락으로 뛰여나가 동무들의 손목을 부여잡으셨다. 동무들을 만나니 군함바위에 올라 왜놈치러 간다고 하면서 재미있게 놀던 일이며 썰매바위에서 씽씽 미끄러져내려가던 일이며 순화강에서 물싸움을 하던 일들이 생생히 떠오르셨다. 그리고 3.1인민봉기때에 동무들과 함께 만경봉으로 올라가서 목이 터질듯한 큰소리로 《조선독립 만세!》를 부르던 일이며 대렬을 따라 성안에까지 달려갔던 일이 어제일처럼 생생히 떠오르셨다. 얼마나 신바람나는 일들이였으며 잊을수 없는 추억들이였던가. 그때의 그 생활을 그대로 되풀이할수는 없지마는 아름다운 회상으로 머리속에 되살아나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오래동안 마음속에 그리고있던 만경봉에 올라가서 만경대를 둘러보고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셨다.

《할머니! 동무들과 함께 만경봉에 갔다오겠어요.》

《저녁이 곧 되겠는데…》

《올라갔다와서 먹겠어요.》

《마음대루 하려무나. 천리길을 걸어오구두 다리가 아프지 않냐?》

《괜찮아요. 할머니!》

《갔다가 곧 돌아오너라.》

《예!》

방안에 모였던 동무들은 우르르 일제히 일어섰다. 이때에 대원수님께서는 아까부터 알고싶었던 일도 있고 하여 응화의 발을 슬며시 살펴보셨다. 응화는 버선이라고 신었는데 엄지발가락이 밖으로 쑥 나와있었다. 아까 무릎을 풀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던 리유를 그제야 아실수 있었다. 그것만 보고도 응화네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짐작하신 대원수님의 마음은 매우 아프셨다. 응화는 자기의 발을 대원수님께 보이지 않으려고 동무들의 틈을 헤치고 남먼저 토방으로 뛰여나가는것이였다.

응화의 심정을 꿰뚫어보신 대원수님께서는 그것이 더 가슴 쓰리셨다. 자신이 신고계시는 버선이라도 벗어주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셨다. 그렇다고 신던 버선을 그대로 줄수도 없는 일이고 설사 벗어준대도 받아신을 응화가 아니라는것을 잘 아시는 대원수님께서는 나라잃은 백성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설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지 않을수 없으셨다.

동무들은 만경봉을 향하여 밀려올라갔다.

대원수님께서는 고향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그리고 바위와 오솔길까지도 모두가 반가우셨다.

이 모든 자연들도 또한 대원수님을 반겨주는듯싶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고향마을의 주위를 둘러보니 감개무량하셨다. 몇해전에 동무들과 밀려다니면서 재미나게 놀던 가지가지의 일들이 삼삼히 떠오르셨다. 그러나 눈앞에 안겨오는 자연에 대한 반가움을 모두 합친것보다도 동무들이 이렇게 찾아와서 반갑게 맞아주는것이 몇갑절 더 반갑고 기쁘셨다.

역시 고향이 좋다고 하는것도 나서자란 같은 또래의 동무들이 있기때문일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정첫째와 영길이의 모습을 볼수 없는것이 무척 서운하셨다. 모두 가난이 가져다준 쓰라림이였다. 영길이나 정첫째 부모들도 얼마나 부지런하고 착한분들이였던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리고 봄부터 겨울까지 어느 하루도 쉴날이 없이 일밖에 모르던분들이 아니였던가. 그런데 먹을것이 없어서 나서자란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고 급한 병에 걸린 아들에게 약 한첩도 써보지 못하고 끝내 목숨까지 잃게 하였으니 부모들의 심정인들 얼마나 아팠겠으며 죽은 정첫째는 얼마나 불쌍하게 되였는가. 아버님의 말씀에 의하면 쏘련이라는 나라는 임금이나 황제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로동자,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있기때문에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모두 학교에 다닐수 있고 누구나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수 있다는데 조선은 언제 그런 나라로 되여볼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며 걸음을 옮기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느덧 만경봉에 이르셨다. 만경봉에는 아름드리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오래간만에 그립던 만경봉에 오르시여 사방을 둘러보셨다.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눈앞에 안겨왔다. 평양성을 에돌아 유유히 굽이쳐흐르는 대동강의 푸른물은 옷깃을 적시면 파란 물이라도 들듯이 곱고 아름다왔다. 멀고 가까운 곳에 나무잎처럼 두둥실 떠있는 쪽배들이 감실감실 바라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서북쪽으로 눈길을 돌리셨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은 대보산은 만경대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앞으로 달음질치는 장군봉처럼 위엄있게 보였다.

대동강을 건너 두루섬과 고노섬은 형제인양 가지런히 자리잡고있는데 파릇파릇한 새싹이 섬을 덮었다. 섬이라기보다도 아름다운 놀이터를 펼쳐놓은것 같았다.

때마침 대보산우에 솜같은 흰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고있었다. 조금전만 하여도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점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서 피여올랐는지 산봉우리보다도 더 큰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대원수님께서는 먼 하늘을 바라보셨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아름답게 조화되여 만경대의 경치는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이때에 구름밑으로 독수리 한마리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빙빙 돌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독수리처럼 사람도 날아다닐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싶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렸을 때 자주 만경봉에 오르시였다. 동무들과 함께 나무칼을 휘두르며 왜놈을 치러 간다고 만경봉으로 밀려올라오군 하셨다. 만경봉에 올라와서는 뜀뛰기도 하시고 군사놀이도 하시면서 즐겁게 노셨다. 여름철에는 순화강에서 자맥질도 하시고 물싸움도 하시면서 재미있게 노셨다. 그러나 그때에는 만경대가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채 생각지 못하셨다.

중강진과 림강 그리고 팔도구로 이사를 다니는 동안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자주 만경대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군 하셨다. 그럴 때마다 대원수님께서는 만경대에 한번 다시 가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군 하셨다. 그런데 지금 만경봉에 다시 올라와보니 만경대란 과연 아름다운 곳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이 서있는쪽을 바라보시며 물으셨다.

《너희들, 여기를 왜 만경대라구 부르는지 아니?》

동무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바라보기만 할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는 대원수님을 바라보는것이였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이야기해달라는 눈치였다.

《일만가지 경치를 볼수 있다구 해서 만경대라구 부르게 됐다는거야. 보아라, 얼마나 경치가 좋으냐. 정말 우리 나라는 아름다운 나라야.》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천리길을 걸으면서 보신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경치들이 나타났다. 그 많은 아름다운 경치중에서도 만경대는 더욱 아름답게 생각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다시 대동강쪽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동무들은 줄곧 보는 경치여서 별로 아름다운것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지금 대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바라보니 모두가 새롭게 느껴졌다. 그들은 말없이 한동안 사방을 둘러보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렇듯 아름다운 강산을 빼앗기고 산설고 물선 멀고먼 곳에 가서 고생을 하고있는 수많은 우리 겨레들이 한없이 가엾게 생각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먼 하늘을 바라보시며 부모님들과 겨레들이 언제쯤이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셨다.

《너희들, 영길이네가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을 버리구 먼데로 이사갔는지 아니?》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가난해서 그렇지 뭐.》

《아니야. 남포지주놈이 나쁜 놈이 돼서 그래.》

《굶어죽어두 빚을 내다 쓰지 않아야 되는데 그애 아버지는 쓰기 좋다구 빚을 턱턱 내다써서 그랬지 뭐.》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나는대로 한마디씩 대답하였다.

《영길이네가 이렇게 살기 좋구 아름다운 고향을 버리구 떠나게 된것은 왜놈때문이야. 그놈들한테 나라를 빼앗겼기때문에 조선사람들은 거의가 다 가난하게 사는거야. 너희들 압록강에 가봐라. 조선에서 살수 없어서 간도로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무엇때문에 제 나라를 떠나서 쓸쓸한 간도루 건너가겠니.》

《야! 고놈의 오랑캐놈들을 몽땅 잡아치우는 수는 없나? 임진왜란때 나왔던 사명당같은 사람이 쑥 나와서 모주리 댕강댕강 할수는 없나?》 하며 응화는 동무들을 쑥 둘러보는것이였다.

그러나 동무들은 사명당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모양인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 진짜 있었을가?》 하고 응화가 다시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난 없었던것 같애. 누가 꾸며낸것 같거든.》

《어째서?》

《그런 재간이 있었다면 그런 재간을 아들에게 배워주구 아들은 손자에게 배워주구 손자는 증손자에게 배워주구 해서 오늘까지 그런 재간이 내려올게구. 그랬다면 우리 나라두 왜놈들한테 빼앗기지 않았을게 아닌가 말이야.》

《지금두 그런 재주를 가지구있는 사람이 있는지 누가 알겠니?》 하고 광호가 대꾸했다.

《그런 재주가 있으면 왜 아직두 나타나지 않았겠니?》 하고 응화는 목소리를 높였다.

《때를 기다리구있는지두 모르지.》

《때구 뭐구 내가 그런 재주를 가지구있다면 오늘이라두 당장 왜놈들을 모조리 족치겠다얘.》

응화는 제법 팔소매를 걷어올리며 을러멨다. 대원수님께서는 응화의 결기가 매우 마음에 드셨다.

《그건 응화의 말이 옳아. 서산대사니, 사명당들은 중인데 임진왜란때에 일본놈들을 반대해서 싸운것은 사실이지만 구리집속에 사명당을 넣고 숯불로 달구었는데 수염에 고드름이 달렸다는 그런 이야기는 중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야. 례배당에서 목사들이 천당이나 지옥이 있다고 하는 말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란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봐라, 내 말이 맞지 않았니. 너희들은 학교에 다닌다면서 그런것두 모르누나. 난 학교에 안다녀두 그런것쯤은 다 안단 말이야.》

응화는 노상 뻐기며 으시대는것이였다.

《넌 그럼 학교에 다니지 않는걸 자랑으로 생각하니? 그래서 너의 아버지는 장마당에 가면 쌀자루는 있어두 글자루는 없다구 하면서 공부시키는걸 반대하는 모양이구나.》 하고 광호가 툭 쏘아주었다.

이제까지 노상 으시대던 응화는 머리를 푹 떨구더니 무어라구 입속으로 중얼거릴뿐 말을 내비치지 못했다.

대원수님께서는 동무들을 둘러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응화인들 왜 학교에 다니고싶지 않겠니? 그리고 응화 아버지는 뭐 학교에 보내기 싫어서 안보내겠니?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못보내겠지.》

그제야 응화는 얼굴을 드는것이였다.

《그 말이 옳아. 광호, 너는 한동네에 있으면서 우리 집 사정을 그렇게두 모르니? 누군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안다니는줄 아니?》

응화는 입을 실룩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학교에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할게 아니가. 그리구 내가 학교에 가면 일은 누가 하겠니. 우리 어머니는 밤낮 앓기만 하구 우리 아버지 혼자서 농사를 지어서 일곱명의 식구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가. 요전에 우리 아버지는 송산으로 조상갔다가 술을 마시구 왔는데 나를 붙들구 울었단다.》

응화가 이렇게 말하자 동무들은 모두 눈이 둥그래서 그를 바라보았다. 왜 울었느냐고 묻는 얼굴들이였다. 응화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아버지가 술이 거나해서 들어오기에 〈아버지, 인제 돌아오십니까.〉하고 내가 인사를 하지 않았겠니.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는 아무말없이 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내 손목을 끌고 방안으로 들어가더구나. 나는 욕이라도 하려는줄 알구 하는수없이 끌려갔지 뭐. 그랬더니 방안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응화야, 너는 나를 애비라고 제법 인사까지 하는구나. 애비구실도 못하면서 무슨 낯으로 네 인사를 받겠니. 학교문앞에도 들여보내지 못하면서 무슨 렴치에 아버지란 말을 듣겠냐 말이다.〉 하면서 소리를 내서 엉엉 울지 않겠니. 그때 나도 울고 우리 어머니도 울었어. 세사람이 우니까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우리 누이동생들도 울지 않겠니. 온 집안이 서로 붙들고 한참 울었단다. 울어야 무슨 소용있겠니. 그래서 나는 학교에 안다녀두 좋다고 말했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뭐 나를 공부시키기 싫어서 학교엘 안보낸다구?》

이렇게 말하면서 응화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응화가 한없이 가엾게 생각되셨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도와주고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셨다. 그러나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으셨다. 월사금이나 학비가 문제라면 외할아버님께 말씀드려 그저 공부하게 할수도 있겠지만 집의 일손이 문제라는데는 방도가 있음직하지 않았다. 칠골서 만경대가 가깝기라도 했으면 날마다 응화를 찾아와서 글을 배워주겠는데 멀리 떨어져있으니 그럴수도 없지 않은가. 여름방학이라도 하게 되면 만경대에 와서 응화에게 글을 가르치리라고 생각하셨다.

이윽고 대원수님께서 만경봉에서 내려와 집에 돌아오시니 방안에는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가뜩 모여있었다. 그들은 대원수님께서 들어오시자 친자식이라도 만나는듯이 매우 반가와하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셨다.

이날저녁 대원수님께서는 오래도록 마을사람들에게 아버님, 어머님의 소식도 전해드리고 천리길을 걸어나오시며 보고 느끼신 이야기를 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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