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6
《성주 왔다지요?》
밖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앞집에 사는 광호와 웃마을에 있는 응화또래들이였다. 모두가 낯익고 무척 반가운 얼굴들이였다. 광호는 자기 아버지가 일할 때 입는 저고리를 입었는지 두루마기처럼 무릎을 가리우고 품이 큰 옷을 껴입었고 응화는 조끼도 입지 못했는데 저고리앞섶에는 큰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주머니에는 무슨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는지 불룩해있었다. 그립던 동무들을 만나니
《야! 너희들 오래간만이구나. 그동안 굉장히들 컸구나!》
《넌 우리들보다 더 크구 그러니? 네 키는 어른의 키만 하다야!》 하며 광호는 싱글벙글 웃는것이였다.
《여기들 앉아라.》
《큰놈이랑, 정첫째랑 그리구 영길이들두 다 잘 있니?》 하고
《큰놈이는 잘 있어. 네가 왔다는걸 알면 곧 올거야. 내 가서 데려오란?》
광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만둬. 이제 만날수 있겠는데 뭐. 우선 너희들한테서 얘기나 좀 듣자꾸나. 그런데 영길이랑 정첫째는 무슨 일이 있었니?》
광호는 잠시 머뭇거리며 응화쪽을 바라보더니 힘없이 대꾸했다.
《정첫째는 재작년여름에 죽었단다.》
《뭐, 정첫째가 죽었어? 그렇게 든든하던 아이가 죽었단 말이냐? 그것 참 안됐구나. 그애는 외아들이였지?》
《그러기 정첫째가 죽은 댐에 그애 어머니는 밥두 안먹구, 자지두 않구, 자꾸만 동네안팎으로 돌아다니면서 울기만 하다가 정신병자가 되구말았단다. 정말 불쌍하게 됐어.》
광호는 노상 어른처럼 이야기했다.
《그래, 지금두 여기 계시냐?》
《안계셔. 지난 겨울에 정첫째 아버지가 아주머니를 데리구 멀리루 이사했단다. 그댐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
《무슨 병에 걸렸기에 그렇게 든든하던 아이가 죽었니? 거짓말같구나.》
《아니야, 진짜야. 그렇지? 응화야.》
《응.》
응화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광호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배에 물이 잡혀서 이렇게 뚱뚱해졌댔단다.》 하며 광호는 손으로 자기의 배를 불룩해보이였다.
《병원에 가서 물을 뽑으면 될건데 돈이 없어 그랬겠구나.》
《맞았어. 병원에 갔으면야 죽지 않았을지두 모르지. 그런데 병원에 갈 돈이 있었다던? 하루에 두끼 죽쑤어먹을 쌀두 없었는데 어떻게 병원에 가겠어. 무슨 풀이라더라? 그 풀뿌리를 고아먹이면 낫는다구 하면서 그애 어머니는 매일 풀뿌리만 캐다 삶아주었단다. 그러니 나을게 뭐야? 배가 불러서 못먹겠다구 하는데두 그애 어머니는 마셔야 산다구 하면서 자꾸 물만 먹였단다. 정첫째는 살겠다구 먹기 싫은 약물을 수태 먹었지만 그냥 죽고말았어. 얼마나 좋던 아이댔니.…》
광호는 이렇게 말하면서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죽지 않을 아이가 결국 돈이 없어서 죽었구나.》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영길이는 어떻게 됐니?》 하고
《영길이네는 황해도에 있는 자기네 먼 친척네 집을 찾아 이사해갔단다.》
《왜 여기서 떠났니?》
《여기서 못살게 되니까 하는수없이 떠났지 뭐. 남포지주네 빚때문에 영길이 누나는 공장으로 팔려갔구 그애네는 집이랑 의농이랑 함지랑 밥상이랑 할것없이 모두 빼앗겼단다.》
광호의 말이였다.
《남포지주네는 돈두 많구 쌀두 많다는데 영길이네 사정은 손톱만큼두 안보구 북북 다 긁어갔어. 야, 정말 너무하더라.》
《차압이라구 그러든가? 집에랑 농짝에다 붉은 딱지를 붙인 댐에는 꼼짝 손두 못대게 하더구나.》
마을아이들이 한마디씩 덧붙여 말했다.
《영길인
《헤여지구 돌아올 때 광호는 울었단다.》 하고 응화가 말하자 《너두 울지 않았니?》 하고 광호가 대꾸했다.
《나두 좀 울기는 했지만 넌 소리를 내면서 쿨쩍쿨쩍 울지 않았니?》 하며 응화는 우는 시늉까지 했다. 이바람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소리를 내든 안내든 눈에서 눈물만 나오면 우는거야 결국 운건 같지 않니.》
두 동무가 이렇게 옥신각신하는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그게 어디 영길이네만 당하는 일이겠냐? 우리 안동네에만 하더라도 빚에 쪼들리지 않는 집이 있다더냐? 그러기 예로부터 부자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구 그런단다.》 하고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영길이네도 그렇게 차리구 떠났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영길이는
《소식이 없어. 자리를 잡으면 꼭 편지를 하겠다구 했는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편지를 부칠 돈이 없어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광호의 말이였다. 이때에 응화가 한마디 끼였다.
《아니야. 자리두 잡구 돈이 있대두 편지를 못할수 있어. 생각해보려마. 영길이두 글을 모르구 그애 아버지두 글을 모르는데 어떻게 편지를 쓰겠니?》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응화는 줄곧 무릎을 꿇고앉아있었다.
그런데 광호는 아까부터
《광호, 너는 아까부터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것 같구나.》 하고
《맞았어. 아까부터 한가지 물어보구싶은것이 있었어.》
이렇게 말하며 광호는 시물시물 웃는것이였다.
《그래 무슨 이야기냐?》
다른 아이들도 이애가 무슨 또 생뚱같은 소리를 하려나 하고 광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모두가 조용해서 자기를 지켜보는통에 어색해진 광호는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열었다.
《물어볼거란건 별게 아니야. 너 진짜 그 간도땅에서 여기까지 걸어나왔니?》
광호의 말이 떨어지자 다른 아이들도 정말 자기들도 알고싶었던것을 신통히도 잘 물어주었다는듯이 정색해서
《걸어오지 않으면 별재간이 있니? 우리같이 돈없는 사람들이야 어딜가나 제 다리를 놀려야지 별수가 없거든!》
《야!》 하며 둘러앉은 아이들은 희한한듯
《간도서 여기까지 몇리나 되나?》 하고 응화가 물었다.
《천리 좀 넘지. 말을 듣긴 천리가 굉장히 먼것 같지만 막상 걸어보면 그리 먼것두 아니야.》
《천리가 멀지 않다구?》 하며 응화가 입을 쩍 벌리더니 눈을 크게 뜨고 동무들을 둘러보는것이였다.
《그런데 영길이는 학교에 도무지 다니지 못했니?》
《못다녔어. 영길이는 우리 글두 모른단다. 그러니까 편지를 쓰구싶어두 못쓸수 있지 뭐.》
광호가 제법 어른답게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자 응화는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숙이는것이였다.
《영길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한건 그애의 잘못두 아니구 그애 부모들의 잘못두 아니야. 왜놈들때문에 학교에두 못다니는거야.》
이때에 안동네아이들이 또 한패 밀려왔다.
《응! 진짜 증손이가 오긴 왔구나!》
큰놈이가
《할머니! 동무들과 함께 만경봉에 갔다오겠어요.》
《저녁이 곧 되겠는데…》
《올라갔다와서 먹겠어요.》
《마음대루 하려무나. 천리길을 걸어오구두 다리가 아프지 않냐?》
《괜찮아요. 할머니!》
《갔다가 곧 돌아오너라.》
《예!》
방안에 모였던 동무들은 우르르 일제히 일어섰다. 이때에
응화의 심정을 꿰뚫어보신
동무들은 만경봉을 향하여 밀려올라갔다.
이 모든 자연들도 또한
역시 고향이 좋다고 하는것도 나서자란 같은 또래의 동무들이 있기때문일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정첫째와 영길이의 모습을 볼수 없는것이 무척 서운하셨다. 모두 가난이 가져다준 쓰라림이였다. 영길이나 정첫째 부모들도 얼마나 부지런하고 착한분들이였던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리고 봄부터 겨울까지 어느 하루도 쉴날이 없이 일밖에 모르던분들이 아니였던가. 그런데 먹을것이 없어서 나서자란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고 급한 병에 걸린 아들에게 약 한첩도 써보지 못하고 끝내 목숨까지 잃게 하였으니 부모들의 심정인들 얼마나 아팠겠으며 죽은 정첫째는 얼마나 불쌍하게 되였는가. 아버님의 말씀에 의하면 쏘련이라는 나라는 임금이나 황제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로동자,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있기때문에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모두 학교에 다닐수 있고 누구나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수 있다는데 조선은 언제 그런 나라로 되여볼가?
대동강을 건너 두루섬과 고노섬은 형제인양 가지런히 자리잡고있는데 파릇파릇한 새싹이 섬을 덮었다. 섬이라기보다도 아름다운 놀이터를 펼쳐놓은것 같았다.
때마침 대보산우에 솜같은 흰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고있었다. 조금전만 하여도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점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서 피여올랐는지 산봉우리보다도 더 큰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중강진과 림강 그리고 팔도구로 이사를 다니는 동안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자주
《너희들, 여기를 왜
동무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바라보기만 할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는
《일만가지 경치를 볼수 있다구 해서
동무들은 줄곧 보는 경치여서 별로 아름다운것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지금
《너희들, 영길이네가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을 버리구 먼데로 이사갔는지 아니?》 하고
《가난해서 그렇지 뭐.》
《아니야. 남포지주놈이 나쁜 놈이 돼서 그래.》
《굶어죽어두 빚을 내다 쓰지 않아야 되는데 그애 아버지는 쓰기 좋다구 빚을 턱턱 내다써서 그랬지 뭐.》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나는대로 한마디씩 대답하였다.
《영길이네가 이렇게 살기 좋구 아름다운 고향을 버리구 떠나게 된것은 왜놈때문이야. 그놈들한테 나라를 빼앗겼기때문에 조선사람들은 거의가 다 가난하게 사는거야. 너희들 압록강에 가봐라. 조선에서 살수 없어서 간도로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무엇때문에 제 나라를 떠나서 쓸쓸한 간도루 건너가겠니.》
《야! 고놈의 오랑캐놈들을 몽땅 잡아치우는 수는 없나? 임진왜란때 나왔던 사명당같은 사람이 쑥 나와서 모주리 댕강댕강 할수는 없나?》 하며 응화는 동무들을 쑥 둘러보는것이였다.
그러나 동무들은 사명당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모양인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 진짜 있었을가?》 하고 응화가 다시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하고
《난 없었던것 같애. 누가 꾸며낸것 같거든.》
《어째서?》
《그런 재간이 있었다면 그런 재간을 아들에게 배워주구 아들은 손자에게 배워주구 손자는 증손자에게 배워주구 해서 오늘까지 그런 재간이 내려올게구. 그랬다면 우리 나라두 왜놈들한테 빼앗기지 않았을게 아닌가 말이야.》
《지금두 그런 재주를 가지구있는 사람이 있는지 누가 알겠니?》 하고 광호가 대꾸했다.
《그런 재주가 있으면 왜 아직두 나타나지 않았겠니?》 하고 응화는 목소리를 높였다.
《때를 기다리구있는지두 모르지.》
《때구 뭐구 내가 그런 재주를 가지구있다면 오늘이라두 당장 왜놈들을 모조리 족치겠다얘.》
응화는 제법 팔소매를 걷어올리며 을러멨다.
《그건 응화의 말이 옳아. 서산대사니, 사명당들은 중인데 임진왜란때에 일본놈들을 반대해서 싸운것은 사실이지만 구리집속에 사명당을 넣고 숯불로 달구었는데 수염에 고드름이 달렸다는 그런 이야기는 중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야. 례배당에서 목사들이 천당이나 지옥이 있다고 하는 말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란다.》 하고
《봐라, 내 말이 맞지 않았니. 너희들은 학교에 다닌다면서 그런것두 모르누나. 난 학교에 안다녀두 그런것쯤은 다 안단 말이야.》
응화는 노상 뻐기며 으시대는것이였다.
《넌 그럼 학교에 다니지 않는걸 자랑으로 생각하니? 그래서 너의 아버지는 장마당에 가면 쌀자루는 있어두 글자루는 없다구 하면서 공부시키는걸 반대하는 모양이구나.》 하고 광호가 툭 쏘아주었다.
이제까지 노상 으시대던 응화는 머리를 푹 떨구더니 무어라구 입속으로 중얼거릴뿐 말을 내비치지 못했다.
《응화인들 왜 학교에 다니고싶지 않겠니? 그리고 응화 아버지는 뭐 학교에 보내기 싫어서 안보내겠니?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못보내겠지.》
그제야 응화는 얼굴을 드는것이였다.
《그 말이 옳아. 광호, 너는 한동네에 있으면서 우리 집 사정을 그렇게두 모르니? 누군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안다니는줄 아니?》
응화는 입을 실룩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학교에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할게 아니가. 그리구 내가 학교에 가면 일은 누가 하겠니. 우리 어머니는 밤낮 앓기만 하구 우리 아버지 혼자서 농사를 지어서 일곱명의 식구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가. 요전에 우리 아버지는 송산으로 조상갔다가 술을 마시구 왔는데 나를 붙들구 울었단다.》
응화가 이렇게 말하자 동무들은 모두 눈이 둥그래서 그를 바라보았다. 왜 울었느냐고 묻는 얼굴들이였다. 응화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아버지가 술이 거나해서 들어오기에 〈아버지, 인제 돌아오십니까.〉하고 내가 인사를 하지 않았겠니.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는 아무말없이 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내 손목을 끌고 방안으로 들어가더구나. 나는 욕이라도 하려는줄 알구 하는수없이 끌려갔지 뭐. 그랬더니 방안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응화야, 너는 나를 애비라고 제법 인사까지 하는구나. 애비구실도 못하면서 무슨 낯으로 네 인사를 받겠니. 학교문앞에도 들여보내지 못하면서 무슨 렴치에 아버지란 말을 듣겠냐 말이다.〉 하면서 소리를 내서 엉엉 울지 않겠니. 그때 나도 울고 우리 어머니도 울었어. 세사람이 우니까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우리 누이동생들도 울지 않겠니. 온 집안이 서로 붙들고 한참 울었단다. 울어야 무슨 소용있겠니. 그래서 나는 학교에 안다녀두 좋다고 말했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뭐 나를 공부시키기 싫어서 학교엘 안보낸다구?》
이렇게 말하면서 응화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것이였다.
이윽고
이날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