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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5


대원수님께서는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의 물줄기를 멀리 바라보시며 만경대를 향해 발걸음을 다그치셨다. 높고낮은 언덕들을 넘어 만경대가 가까와올수록 지난날의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는것이였다. 얼마나 머리속에 그리며 보고싶던 곳이였던가. 할아버님, 할머님들은 편안하시며 동무들과 마을사람들은 그대로들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와할가 하고 생각하시니 어서 빨리 만경대에 도착하고싶으셨다.

언덕에 오르시자 만경봉이 바라보였다. 대동강의 맑은 물이 굽이쳐흐르고 우뚝 솟은 만경봉이 보이자 벌써 고향마을에 도착한 기분에 휩싸이셨다.

몇해전에 동무들과 함께 만경봉에 올라가서 얼마나 재미있고 유쾌하게 놀았던가.

대원수님께서는 만경봉을 향하여 큰소리로 고함이라도 쳐보고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셨다.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만경봉의 나무 한그루, 바위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생하게 떠오르셨다.

대원수님께서 마지막언덕을 넘어서시자 그립던 고향마을인 안동네가 한눈에 안겨왔다. 피곤하던것도, 다리아프던 생각도 천리, 만리로 달아나는듯싶으셨다.

어느덧 대원수님께서는 오매에도 잊지 못하시던 고향집앞에 이르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대원수님께서는 큰소리로 부르시며 사립문안으로 뛰여들어가시였다.

뜻밖에 대원수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래방문이 활짝 열려졌다.

《아니, 이게 누구냐? 증손이가 아니냐?》 하며 물레질을 하시던 할머님은 버선발로 뛰여나와 두팔을 벌리시고 대원수님을 한가슴에 꼭 그러안으셨다. 할머님께서는 대원수님의 얼굴에서 그리운 아드님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한꺼번에 그려보시는것이였다.

이윽고 멍석을 트시던 할아버님께서도 뛰여나오셨고 빨래하러 나가셨던 작은어머님과 밭에 거름을 내시던 작은아버님께서도 때마침 소를 몰고 들어오셨다. 온 가족을 만나는 순간 대원수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지셨다. 몇해동안 헤여져있는 사이에 대원수님께서는 그 어느 한때도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넓고 따뜻한 사랑의 품을 잊어본적이 없으시였다.

보고싶던 얼굴, 하고싶던 말 그리고 제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떠난 후의 가지가지 서글프던 사실들이 한꺼번에 눈물로 솟구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원수님의 앞을 눈물로 가리운것은 그것만이 아니였다. 헤여져있는 동안에 대원수님께서는 늘 할머님과 할아버님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보군 하셨다. 그때마다 대원수님의 머리속에는 몇해전에 헤여지던 그때의 할아버님, 할머님의 모습이 떠오르군 하셨다.

그런데 오늘의 할머님과 할아버님의 얼굴은 대원수님께서 줄곧 머리속에 그리시던 그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도 엄청나게 늙으신 모습들이 아닌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두 무척 늙으셨구나. 원쑤놈들때문에 고생해서 더 늙으셨을거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순간 대원수님의 눈앞은 흐려지셨던것이다. 눈물을 흘린것은 대원수님뿐만이 아니였다. 할머님도 그립던 손자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지으셨고 작은어머님도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씻으셨다. 대원수님께서 허리를 굽혀 절을 하실 때에 할아버님의 주름진 얼굴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님께서 멀고먼 곳으로 떠나시게 되자 원쑤놈들은 눈이 벌컥 뒤집혀 할아버님, 할머님을 끌어간다 집뒤짐을 한다 하면서 날마다 야단법석이였다. 놈들은 개발같은 신발로 방안에 마구 뛰여들어와서는 천정을 쑤셔보기도 하고 궤짝을 벌컥 열고 뒤져보기도 한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놈들은 한달에도 몇번씩 달려들어 아들이 어디 갔느냐, 무슨 편지가 왔느냐, 아들이 보낸 사람이 언제 왔댔느냐 하며 마치도 그 어떤 단서라도 잡은듯이 넘겨짚어가면서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할아버님이나 할머님의 입에서 놈들은 꼬물만한 트집거리나 비밀도 찾아낼수 없었다. 놈들은 할아버님과 할머님을 위협도 해보고 때로는 얼려도 보았다. 이러느라니 어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으며 다리를 펴고 주무실 날이 없었다.

그러나 온 가족은 놈들의 발악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굳게 마음을 다지셨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도우면서 억세게 살아나가셨다. 오로지 아드님이 조선독립을 위하여 용감히 싸워이길 그날만을 기다릴뿐이였다.

《밖에서 이러구만 있겠느냐? 어서 들어들 가자.》

할아버님의 말씀이였다.

모두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키가 큰 사람은 문지방에 이마가 부딪칠 지경으로 작은 오막살이초가집이였으나 대원수님께서는 고향집이라 퍽 정다우셨다.

《그래, 너 혼자 오는거냐?》 하고 할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예!》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는 두루마기를 벗어 홰대에 거시였다.

《천리길을 오면서 자동차라도 좀 타보았냐?》 하고 작은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이렇게 성한 두다리가 있는데 자동차를 타선 뭘해요. 자동차는 돈많은 부자놈들이나 실컷 타구다니라지요.》

《네 말이 옳다. 가난하둑새 열통이 이렇게 커야 한다.》 하시며 할아버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천리길을 어린것 혼자 내보내다니. 너의 아버지는 정말 범보다 더한 사람이구나. 하기는 그러기 왜놈들이 너의 아버지 말만 들어두 벌벌 떨지 않니? 그리구 너두 그 먼길을 혼자 걸어온걸 보니 형직이 아들답다.》 하시며 할머님께서는 혀를 차시였다.

《참 할머니두. 천리길이 뭐가 멀다구 그러세요. 내 나이 어리다구 두 나라 지경이야 혼자 못다니겠어요.》

《그래, 신통히 너두 통이 큰 너의 아버지를 닮았구나! 네가 아마 몇해후면 백두산에 걸터앉아 동해에다 대고 발을 씻자고 할게다!》

대원수님께서도 처음 팔도구를 떠나실 때에는 천리길이 도대체 얼마나 먼길인가 하고 생각하셨는데 정작 걸어보시니 별게 아니라고 생각되셨다. 할아버님네 집이 차라리 제주도나 부산같은데 있었더라면 그곳까지 내려가면서 온 나라를 구경이라도 잘할수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천리길을 걸어보시니 2천리건 3천리건 얼마든지 걸을수 있는 자신이 생기셨던것이다.

《암, 네 말이 옳다. 형직이 아들이 천리길을 멀다고 해서야 되겠냐.》

할아버님께서는 사랑에 찬 시선으로 대원수님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아버님께서는 대원수님께서 어린시절부터 노시는 품이라든가 생각하시는것, 말하시는것들이 비범하여 장차 큰사람이 될것으로 내다보셨고 또 큰사람이 되도록 가르치시였다. 대원수님께서 아버님을 따라 북쪽으로 들어가신 후에도 할아버님께서는 대원수님에 대한 생각을 어느 한시도 잊지 않으셨다.

아드님께서 어련히 손자를 잘 교양하리라고는 생각하면서도 나라의 큰일을 한몸에 안고 낮과 밤을 이어 싸우는 몸이라 혹시나 대원수님에 대한 보살핌을 소홀히 하지나 않을가 해서 못내 잊지 못하고계셨던것이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홀몸으로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않고 찾아온것을 생각하시니 여간만 대견스러우신것이 아니였다.

(역시 제 부모를 닮았으니까 어련할라구.)

할아버님께서는 혼자 머리를 끄덕이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삿자리에 앉으시여 방안을 둘러보셨다. 여전히 방안에는 빨간 궤 한짝이 놓여있었고 그우에는 얇은 이부자리가 있을뿐 별로 눈에 뜨이는것이 없었다. 아래방 뒤문쪽으로는 물레가 놓여있었고 웃방에는 멍석 틀던것이 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것이 할머님과 할아버님의 일감이라는것을 곧 아실수 있었다.

《네 동생들도 잘 노느냐?》

할머님께서 물으셨다.

《예, 잘 놀아요.》

《어머니두 편안하구?》

《어머니는 늘 가슴앓이루 편치 않으셔요. 어머니두 그렇지만 아버지때문에 걱정이예요.》

대원수님의 대답은 퍽 쓸쓸하게 들렸다.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사실 할머님께서는 누구의 소식보다도 아드님의 소식을 먼저 알고싶으셨다. 그러나 건강한 몸으로 있을수 없다고 단정하고있는 아드님의 안부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으셨다. 안부를 물어야 반가운 소식은 못들으리라는것을 잘 알고계셨기때문이였다. 할머님께서는 벌써 두눈에 눈물이 글썽하여 대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계셨다.

《아버지는 지금도 몸이 부었다내렸다 하시는데 야단났어요.》

대원수님께서는 목멘 소리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할머님께서는 북받쳐오르는 설음을 참으려고 하시였으나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수 없으셨다.

멀리 떨어져있는데다 몸까지 성치 않다나니 더 그리워지는 아드님이시였다.

몇해전 아버님께서는 허약한 몸으로 감옥에서 나와 그자리에서 병석에 누우시게 되였다. 어머님께서는 밤잠을 주무시지 않으시고 성심성의로 간호해드리셨다.

정성스럽게 간호한 보람이 있어 아버님의 병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차차 몸이 추서게 되자 아버님께서는 그대로 누워서 병치료만 하고계실수 없으셨다.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내 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왜놈들과 싸워 이겨야 하겠다. 내가 싸우다가 다하지 못하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가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독립시켜야 한다.

이러한 생활의 신조를 간직하고계시는 아버님께서는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혁명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되자 놈들의 눈초리는 다시 아버님께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뻔질나게 만경대로 찾아들었고 아버님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는 날로 심해가기 시작하였다.

놈들의 심보를 잘 알고계시는 아버님께서는 병이 낫기를 기다릴 여유도 없이 만경대를 떠나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셨던것이다.

《천하에 악독한 놈들이지. 글쎄 네 아버지가 무슨 죄가 있다구 그 모양을 만들었겠니.》 하시며 할머님께서는 치마폭으로 눈물을 씻는것이였다.

《물은 제곬으로 흐르는 법이니라. 제놈들이 아무리 기승스럽게 굴어두 몇날 못가지.》

할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였다.

이때 작은어머님께서 세면물을 떠가지고 들어오셨다.

《세면해라. 글쎄 그 먼길을 혼자서 오다니. 용하기두 하지.》

《작은어머니두 참! 물을 방으로 떠들어올게 뭐야요. 우물에 나가서 씻으면 되겠는데두요.》

대원수님께서는 소랭이를 닁큼 받아드시고 밖으로 나가시여 저고리와 버선을 벗어놓으시고 세면도 하시고 발도 씻으셨다.

기분이 새로와지며 정신이 드는것 같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문지르시며 방으로 들어오셨다.

대원수님께서 종아리에 묻은 물방울을 씻으실 때 할머님께서는 대원수님의 다리를 만져보면서 무척 대견해하셨다.

《참 네 다리는 무쇠다리로구나. 글쎄 그 먼길을 어떻게 걸어왔니?》 하시며 혀를 낄낄 차셨다.

이때 옆에 서계시던 작은어머님께서 《먼길을 혼자 오기 무섭지 않더냐?》 하고 물으셨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잘못한 일이 있어야 무섭지 제 고향을 찾아오는데 무서울게 있어요?》

《나두 젊어서 길을 퍼그나 걸었다만 범이 무서우니 승냥이가 무서우니 해두 진짜 무서운건 사람이더라.》

할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대원수님의 머리에는 불길령부근에서 만났던 한 사나이의 모습이 떠오르셨다.

《할머니 말씀이 옳아요. 나두 오다가 한번 이상한 사람을 만났댔어요. 아마 그 사람은 내가 평양까지 간다니까 돈냥이라도 푼푼히 가지고오는줄 알았는지 치훑고 내리훑고 하더니 자기와 함께 주인을 정하자구 하지 않겠어요. 눈치를 보니까 그 사람하구 같이 가다가는 좋지 않을것 같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웃방에서 멍석을 틀려고 벼짚을 다듬고계시던 할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우리 아버지 친구가 이 근처에 있는데 그 집에 가서 자겠다고 하면서 슬쩍 다른 골목으로 피하구말았지요.》

《그것 참 잘했다. 큰사람이 되려면 사람을 가려볼줄 알아야 하니라. 농군들이 조밭에 숨어있는 가라지를 가려내구 모판에 섞여있는 돌피를 가려내듯이 큰일을 하려면 사람을 가려볼줄 알아야 한단 말이다. 사람의 얼굴이 제나름으로 다르듯이 마음도 천만가지란다. 누가 좋은 사람이구 누가 나쁜 놈인가, 어떤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이구 어떤 사람이 믿을수 없는 사람인가, 그걸 알아야 하느니라. 물론 사람의 마음을 알아본다는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기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밖에 안되는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 않니. 그렇다구 사람의 속은 알수 없다구만 생각해서야 안되지.》

《어떻게 하면 사람의 속을 알수 있나요?》

《사람의 속을 알려면 오래동안 지내보아야지. 오래 지내보느라면 그가 진짜배긴지 발라맞추는 놈인지 알수 있는 법이야.》

대원수님께서는 할아버님의 말씀이 마음에 드셨다.

《증손이는 여기저기로 이사다니는통에 고생은 많이 했겠지만 그대신 동무가 무척 많겠구나.》 하고 작은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는분도 많고 동무도 많아요. 참, 오다가 강동에서 살던분을 만났댔어요. 야학에서 아버지한테 글을 배웠다는분이였어요.》

《강동에서 네가 아주 어려서 떠났는데 그분의 얼굴을 알아볼만 하더냐?》

《처음에는 서로 몰랐지요. 그런데 그분은 빈 달구지를 타구가면서 나더러 자꾸만 타라구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사양하다못해 달구지를 타구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알게 됐어요. 저두 반가왔지만 그분도 굉장히 반가와하더군요.》

《그래, 이름이나 알아두었느냐?》

《예, 박창걸이라구 하면서 주소는 똑똑히 알려주지 않더군요. 말하는걸 가만히 들으니까 그분은 아버지하구 손잡고 일하시는것 같아요.》

《그럴수도 있지. 네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에 학교를 세운다, 야학을 한다 하는데 그것이 다 왜놈을 반대해 싸울 인재를 키우기 위한것이 아니냐. 더구나 강동은 네 아버지가 직접 불씨를 심은 곳인데 그 불길이 꺼질수야 없지. 네 아버지는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 온 나라의 독립운동자들을 묶어세우고있단다. 벌도 왕벌이 있고 기러기떼에도 길잡이가 있단다. 하물며 나라를 찾는 일에서 채잡이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게 아니냐. 두고보아라. 네 아버지가 묶어세우는 독립운동의 불길이 오래지 않아서 온 나라에 세차게 일어날게다.》

할아버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계속 멍석을 트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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