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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4


대원수님께서 평양에 도착하신것은 포평에서 떠나신지 열사흘만이였다. 평양거리는 여전히 번잡하고 소란스러웠다. 전차가 《때래랭땡》 종을 치면서 분주히 오갔다.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인력거들이 쉴 사이없이 지나가고 지나왔다. 무슨 일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길이 메이게 사람의 물결이 움직이는것이였다.

골목골목에서는 누데기옷을 걸친 거지애들이 깡통을 차고 행여나 무엇이 있지 않나 해서 오물통을 뒤지기도 하고 분주히 이집저집 대문안을 넘겨다보며 한술 달라고 하는것이였다.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학교는 고사하고 먹을것과 입을것이 없어 죽음의 장막속에서 허덕이고있는 거지애들을 보신 대원수님의 가슴은 쓰리고 아프셨다.

거리를 걸으시는 대원수님께서는 이전과는 판판 달라진 모습을 찾아보실수 있었다. 그것은 날도적인 왜놈들이 더 많이 눈에 뜨이는것이며 거리의 빛갈도 왜색이 더 짙어진것이였다. 《마쯔모도》상점이니 《후지야마》철물상이니 하는 왜놈들의 상점들이 큰 거리의 가는 곳마다에서 눈에 띄였고 일본 무슨 은행지점이니 일본 무슨 보험지점이니 일본이름이 붙은 상사니 하는 따위의 번쩍거리는 간판들이 시선을 복잡하게 하였다. 그리고 관청들이 거리 한복판의 큰집들을 차지하고 거만스럽게 들어앉아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사람들의 상점이나 영업소들에는 잡화상이니 포목상이니 사진관이니 약방이니 도장방이니 무슨 수리소니 음식점이니 하는 작은 간판들이 수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리고 담벽과 전선대들에는 《인단》, 《가오루》 등 약광고들과 연극, 영화, 공연을 알리는 광고들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평양거리에 들어서신 대원수님께서는 모란봉과 청류벽도 돌아보고 큰 상점과 책방에도 들려보고싶으신 생각이 없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런것들은 후날에 보기로 하고 어서 만경대로 달려가 할머님과 할아버님을 비롯한 그리운 가족들과 친한 동무들을 만나보고싶으셨다.

평양에 도착해서도 전보를 치라는 아버님의 말씀대로 대원수님께서는 우편국으로 찾아가셨다. 평양우편국은 강계우편국에 비하여 집도 크고 일보는 사람도 많았고 차려놓은 시설도 으리으리하였다.

전보를 치신 대원수님께서는 우편국에서 나와 새로 생긴 거리로 접어드셨다.

새로 만든 넓은 길에는 아스팔트까지 하고 가로수를 줄지어 심었는데 길 량편에는 보기 좋은 새집들을 가뜩 지어놓았다. 여기에는 조선사람들의 집이라고는 한채도 없고 모두 왜놈들의 집들뿐이였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와 노래소리는 모두 왜놈들의 목소리뿐이였다. 영 딴 나라같았다.

(왜놈들이 남의 나라에 기여들어와서 판을 치고있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새 거리를 노려보셨다. 불쾌하기 그지없으셨다. 왜놈들의 집에서 들려오는 《샤미센》소리도, 아스팔트우로 끌고다니는 게다짝소리도 듣기 싫으셨고 구역질이 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느덧 새 거리를 지나 약간 경사진 언덕으로 올라서시였다. 길은 오른편으로 꺾이면서 왼편으로 높다란 군대병영담장이 성벽처럼 쳐다보였다.

(이 담장너머에는 왜놈군대들이 가뜩 있겠구나. 흥! 담장을 저렇게 높이 쌓은걸 보니 조선사람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길옆에 높이 쌓은 담장을 옆에 끼고 발걸음을 옮기고계셨다.

담장우에라도 올라가서 그안에서 놈들이 무슨짓들을 하고있는지 한번 보았으면싶으셨다.

이때에 뒤에서 저벅저벅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셨다. 일본군대놈들이 총들을 제각기 어깨에 메고 넉줄로 서서 발걸음을 맞추어 신작로 복판으로 걸어오는것이였다. 백명은 훨씬 넘음직하였다. 멀리서 걸어오는 모양인지 이마에서는 땀들이 흘러내렸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놈들이 들어서는 정문앞을 천천히 지나시면서 그안을 들여다보셨다. 거기에는 넓은 마당이 있는데 군대놈들이 여기저기 무데기로 모여서 무슨 훈련들을 하고있었다.

총에 칼을 꽂아가지고 사람처럼 만들어세운 허수아비앞으로 한놈씩 달려가서 《아―악》소리를 지르며 찌르는 놈들, 뜀뛰기대를 한가운데 놓고 그앞으로 달려가다가 그것을 뛰여넘는 놈들, 륵목을 빨리 오르내리는 련습을 하는 놈들, 괴상망측한 옷과 모자를 쓰고 마주서서 몽둥이로 만든 검으로 서로 찌르며 악악 고아대는 놈들… 별의별짓을 하는 놈들이 다 있었다.

(저 강도놈들! 저렇게 훈련을 해서 뭘하자는것인가? 결국 우리 조선사람들을 죽이자는 수작이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의 두눈에서는 불이 이는것 같으셨다.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여지시는것이였다.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우려면 저놈들보다 더 강한 조선군대가 많이 있어야겠구나!》

대원수님께서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셨다. 그런데 지금 조선군대란 단 한명도 없지 않는가.

기막히는 일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언젠가 동무들과 군대놀이를 하시다가 이전에 조선군대는 어떤 군복을 입었고 견장은 어떤것을 달았고 모자는 어떤것을 썼으며 훈련은 어떻게 했는가를 알고싶으셨다. 이왕이면 조선군대식으로 군대놀이를 해보고싶으셨던것이다.

그래서 아버님께 그것을 물으셨다.

《조선군대식으로 군대놀이를 해보겠다는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런데 조선군복과 훈련법이 너무나 변동이 심해서 어느것을 조선군대식이라구 해야 좋겠는지 종잡을수 없구나. 우선 조선군대가 해산되기 직전에 입던 군복과 훈련법을 이야기해주지.》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종이와 연필을 꺼내드시고 군복과 모자 그리고 견장들을 그려주시였다. 그리고는 간단한 훈련법까지 설명해주시는것이였다.

《그런데 왜 조선군대는 군복과 훈련법이 자주 변했습니까?》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씀이 끝나신 다음 이렇게 물으셨다.

《소위 정사를 한다는 놈들이 백성들은 굶든지 죽든지 돌보지 않고 제놈들의 배나 채우기 위해서 날뛰였고 저마다 권력이나 빼앗으려고 당파싸움에만 눈이 뒤집히다나니 나라의 꼴이 뭐가 되였겠느냐. 제국주의강도놈들은 저마다 우리 나라를 삼키려고 넘겨다보고있는데 나라에서는 강도들을 막아낼만한 힘도 없었고 또 힘을 내보려고도 하지 않았구나. 옳게 되려면 그런 때일수록 나라에서는 자기의 힘을 길러 자체의 힘으로 강도놈들을 막아내고 자기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워야 하건만 웃자리에 앉은 놈들은 우리 나라에 대해서 군침을 삼키고있는 크고 강해보이는 나라들에 등을 대고 나라를 부지하려고 했으니 결국 범에게 아이를 맡긴격이 아니겠냐.》

아버님께서는 격해서인지 잠시 말씀을 끊고계시더니 다시 이으시였다.

《너도 력사책에서 보아서 알겠다만 우리 나라는 옛날부터 남의 나라를 침략한 일이라구는 한번도 없지 않느냐. 그러기에 우리 나라 력사는 우리 선조들이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친 슬기롭고 용감한 이야기들로 가득차있지 않느냐. 그것은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그러니 조선군대는 다른 나라에 가서 싸움을 할것이 아니라 어차피 조선땅에서 싸울것이 아니겠느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을뿐더러 북쪽에는 산악이 많고 남쪽에는 평야가 많은 우리 나라 지리와 지형에 맞는 그런 싸움훈련을 해야 정작 원쑤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쳐물리칠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데 그런 전술과 전법은 누가 생각해내야 하며 그런 훈련을 누가 시켜주어야 하겠느냐?》

《우리 조선사람들이 생각해내야 합니다.》 하고 대원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네 말이 맞았다. 우리 조선사람들이 생각해내야 한다. 어느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 배워줄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웃자리에 앉은 놈들은 남의 나라만 쳐다보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단 말이다. 한때는 일본이 강한듯 하니까 일본〈교관〉을 불러다가 일본식으로 훈련을 받다가 얼마후에는 청나라가 강하게 보였던지 청나라〈교관〉을 불러다가 청나라식훈련을 받지 않았니. 그러는데 청일전쟁이 일어나서 청나라는 패하구 일본이 이기지 않았니? 이렇게 되자 사대주의자들은 다시 일본놈〈교관〉을 불러다가 일본식훈련을 받았구나.

그러다가 로씨야가 일본보다도 강해보였던지 이번에는 로씨야〈교관〉을 불러다가 로씨야식훈련을 받게 되였지. 그러는데 로일전쟁이 일어나서 로씨야가 패하구 일본이 이겼단 말이다. 그러자 사대주의자들은 다시 일본놈〈교관〉을 불러오지 않았겠니.》

《아버지, 이제는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 〈교관〉놈들이 바뀔 때마다 군복도 매번 달라졌겠구만요.》

《네 말이 맞았다.》

아버님께서는 큰소리로 껄껄 웃으셨다.

《아버지, 일본놈들이 조선을 먹으려고 하던 때인데 조선군대를 훈련시켜달라면 그놈들이 제대로 훈련시켜줄수 없지 않습니까?》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네가 바로 알아맞추었다. 그러기에 그놈들은 조선군대를 훈련시키는척 하고는 조선군대를 점점 약하게 만들었단 말이다. 더구나 일본놈들이 조선에 마수를 뻗치면서 조선군대를 줄이고 또 줄여서 나중에는 만명도 되지 못하게 하였고 무기는 낡고 뒤떨어진것만 가지고있었으니 무슨 일을 치르겠느냐. 그나마도 〈정미7조약〉을 맺은 조금후에 일본침략자들은 조선군대를 강제적으로 해산하고말았단다.》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깊은 한숨을 짓는것이였다.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강한 조선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군대가 없이 나라를 찾자는것은 빈 말공부에 지나지 않으며 터없이 집을 짓자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대원수님께서는 그때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되새기시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아버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에서 학교를 세우시고 청년들을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각처에 널려있는 독립단체책임자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을 한데 묶어세우기 위하여 노력하시고 무기를 구해들이는 이 모든것이 모두 조선군대를 만들기 위한 준비라는것을 대원수님께서도 짐작하셨던것이다. 일본군대놈들처럼 저렇게 내놓고 훈련은 하지 못하지만 아버님께서 지도하시는 조선군대들이 어느 산속깊이에서 왜놈들을 치기 위한 훈련을 하고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아버님께서는 자주 멀리 나가시면 여러날만에야 돌아오시군 하셨는데 조선군대들에게 훈련을 시키려구 가시는지두 모를것이 아닌가. 나두 빨리 조선군대가 되여 왜놈을 족쳐야겠어!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며 군대병영을 지나 파출소 맞은편 네거리에 이르셨다. 이때에 맞은편 언덕우에 크게 지은 학교에서 방금 오전공부가 끝났는지 정문이 메이게 아이들이 밀려나왔다. 그 순간 대원수님께서는 마음이 흐뭇해지셨다. 아까 골목에서 거지애들이 깡통을 차고 오물통을 뒤지는것을 보셨을 때에는 가슴이 아프셨는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무척 기쁘셨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시고 그들이 밀려오는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런데 그애들은 저저마다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값진 외투에 가죽구두까지 신고 류창한 일본말로 지껄이는데 알고보니 심상소학교에 다니는 왜놈의 아이새끼들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놈들한테 속은것도 분하셨지만 그보다도 조선애들은 그처럼 헐벗고 굶주리고있는데 강도놈들의 애새끼들은 저렇게 큰 학교에서 호강을 하고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두주먹이 후들후들 떨리셨다. 생각같아서는 달려가서 모조리 두들겨패주고싶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매우 불쾌한 기분에 휩싸여 작은 언덕을 넘어서시는데 문득 평양감옥담벽이 앞에 보였다. 두세길이나 될만한 높은 담벽이였는데 밖으로는 군데군데 벋장이 세워져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담벽이 보이자 우뚝 발걸음을 멈추셨다. 마치도 오지 않을 곳을 왔거나 보지 않을것을 보신것처럼 불덩이가 가슴 한복판에 울컥 치밀어오르는것 같으시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무서운 눈초리로 감옥담벽을 한동안 노려보셨다.

대원수님의 눈앞에는 어느덧 몇해전에 있은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시는것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놈들에게 붙잡혀 평양감옥에서 옥중투쟁을 하고계실 때였다.

이른봄 어느날 대원수님께서는 어머님을 따라 아버님을 면회하시기 위하여 성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날 어머님께서는 이른새벽에 보리떡 몇덩이를 꾸려가지고 대원수님을 앞세우시고 30리길을 떠나셨다. 이때 대원수님의 나이는 일곱살이였다. 어머님께서는 조용한 시간이면 언제나 대원수님께 애국적인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군 하셨다. 그러나 이날만은 칠골외가집을 들려 30리길을 같이 걸으시면서도 깊은 생각에 줄곧 잠겨계신듯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다만 왜놈들은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 싸우는 아버님같으신분들이 무섭기때문에 감옥에 가두었다는것, 아버님을 만나서 울어서는 안된다는것 그리고 원쑤놈들앞에서 덤비거나 무서워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셨을뿐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모를것이 있으면 언제나 어머님께 물으셨고 어머님과 이야기하기를 즐기셨지만 이날만은 말없이 발걸음만 다그치셨다. 무명두루마기를 입고 목도리를 감으신 대원수님께서는 어머님의 앞장에 서시여 성안을 향하여 걸으시였다.

어머님과 대원수님께서는 어느덧 감옥앞에 이르셨다. 그때 대원수님께서 쳐다보신 감옥담벽은 산봉우리처럼 높게 보이였다. 저 담벽을 뛰여넘는 재주는 없을가? 사람에게는 왜 새처럼 날개가 달리지 않았을가. 내게 날개가 있다면 저놈의 담을 넘어가서 아버님을 모셔내올수 있지 않겠는가.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감옥 남쪽에 있는 정문옆 접수구앞에서는 면회신청서를 접수시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대서방에 가서 면회신청서를 써가지고오시여 맨뒤에 서시였다. 그뒤로도 면회하러온 사람들이 계속 줄을 지어 섰다.

이윽고 간수놈이 나타났다. 앞에 섰던 사람들이 우르르 간수놈앞으로 밀려갔다. 간수놈은 장부책을 들여다보면서 접수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면회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찾아온분의 이름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있었다. 이름이 나온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간수놈은 몇사람의 이름을 부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어리였다.

간수놈이 세번째 나왔을 때에야 김형직선생님의 이름을 불렀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머님을 따라 큰 문에 달린 작은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대합실로 찾아가셨다. 거기에서도 역시 기다려야 하셨다.

간수놈이 대합실문을 열고 갇히여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그를 면회하러온 사람들이 대합실곁에 있는 면회실로 들어가서 면회를 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면회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면회하러 들어가서도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마주서서 울기만 하다가 나오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청하니 마주 바라보기만 하다가 시간이 되여 그냥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서도 돌아갈줄을 모르고 그냥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원수님께서는 방 한켠에서 말없이 그들의 얼굴들을 바라보고계셨다. 그들이 만나러온 사람들도 아버님처럼 왜놈들을 반대해서 싸우다가 붙잡혀왔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쩐지 한마을사람처럼 반갑게 느껴지셨고 친척처럼도 생각되셨다.

그들모두가 불쌍하게만 보이셨다.

얼마후에 간수놈이 대합실문을 열고 아버님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님께서는 대원수님의 손목을 이끄시고 면회실로 들어가셨다.보통온돌방 한칸만한 넓이가 될가말가한 방인데 나무창살이 얼기설기 꽂혀있었고 그안에는 흰 포장이 드리워있었다.

두분이 나무창살앞에 다가서시자 간수가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포장이 벗겨지면서 살창사이로 아버님의 얼굴이 나타나셨다.

그 순간 대원수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지금까지 그려보시던 아버님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시게 되였기때문이였다.

(왜놈들이 우리 아버지를 붙들어다가 저렇게 되게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의 두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지셨다.

아버님을 만나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더라면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실번 하였다. 세분은 지금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서고계시건만 넓은 강이라도 앞에 가로놓인듯싶었다.

《아버지!》 하고 대원수님께서는 두팔을 힘껏 내미셨다. 그러나 손이 닿을리 없었다.

《오! 성주 너두 왔구나. 그래, 그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구 잘 있었느냐?》

《예!》

《철주두 잘 놀구?》

《예! 철주두 이젠 무척 컸어요. 벌써 걸음마를 타요.》

《그래? 네가 잘 돌봐주어라.》

《예!》

《여보, 만경대집이랑 칠골집들에서두 편안들 하시우?》

《집에서는 모두 편안하신데 당신때문에 걱정이예요.》

《허허허… 내 걱정은 아예 하지 마오. 먼길을 걷는 사람이 어찌 큰길로만 걷겠소. 오솔길도 걸어야 하고 때로는 높은 고개길도 넘어야 할것이 아니겠소. 당신의 앞길에도 사나운 눈바람과 거친 폭풍이 있을것이요. 이제부터 든든히 각오하는것이 좋겠소.》

《알겠어요. 나도 요즘 생각되는 점이 많아요.》

어머님의 얼굴에서는 숭엄한 결심의 빛이 넘쳐흘렀다.

《당신이 강동에서 겨울을 났다는 말을 들었소. 참 잘했소. 그런데 〈농업〉은 요즘 잘되오?》

어머님께서는 그 말씀이 조선국민회사업이 잘되는가에 대한 암호라는것을 곧 아셨다.

《〈농업〉이 아주 잘돼요. 때아닌 우박이 좀 내렸어도 남새가 아주 잘 자라요. 그리고 요즘 〈한난계〉는 계속 오르고있어요.》

《그렇다니 매우 반갑소. 그리고 칠골댁에 부탁한 의서를 더 많이 구해서 들여보내달라구 하시오.》

《의서요?》

《그렇소.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어야겠소. 몸에 든 병과 마음에 든 병을 함께 고쳐주어야겠소.》

《알겠어요.》

《그런데 당신 무척 상했구려. 요즘 집에 물것이 많이 달리오?》

《많이 달려요. 그것들때문에 아버님이랑 어머님께서 날마다 고통을 겪고계셔요.》

이 말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번갈아 바라보셨다. 집에는 빈대나 벼룩같은것은 한마리도 없고 모기나 파리는 아직 나올 때도 되지 못했는데 물것이 달린다는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수 없으셨다.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 날마다 고통을 겪는것은 순사놈들이 와서 못살게 구는것뿐이 아닌가?

대원수님께서는 순사나부랭이들을 물것으로 부른다는것을 곧 깨달으셨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말씀은 계속되였다.

《그것들은 오래지 않아서 소멸될거요. 당신도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서 더욱 힘써야 할거요.》

《알만 해요. 나도 물것 없는 깨끗한 집을 꾸리기 위해서 싸우겠어요.》

《요즘 내동에서는 무슨 소식이 없소?》 하고 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있어요. 계속 아침마다 나팔소리가 울려퍼진답니다. 그리고 새학기에 명신학교를 다시 연다구 하더군요.》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요. 모두 당신이 애쓴 보람이구려.》

아버님의 얼굴에서는 만족한 웃음이 넘쳐흘렀다.

《저야 뭘 했다구요.》

어머님께서는 얼굴을 숙이시며 잔잔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참! 어머니와 이야기하는통에 성주와는 별로 이야기를 못했구나. 요즘 공부두 잘하구 동무들과도 재미있게 놀겠지?》

《어머니한테 매일 글을 배우고있습니다.》

《음, 그래야지.》

《아버지! 그런데…》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얼굴을 들어 아버님을 쳐다보셨다. 대원수님의 얼굴에서는 꼭 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는것을 력력히 읽을수 있었다.

《아버지께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어서 하려무나.》

아버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언제 집으로 돌아오시나요? 어머니는 백밤자면 돌아오신다고 하셨는데 왜 아직 돌아오지 못하시나요.》

대원수님께서는 애타는 심정으로 이렇게 물으셨다. 아버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리라고 벼르고계시던 물음이였다.

아버님께서는 말없이 사랑에 찬 시선으로 아드님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였다.

이때 시계를 들여다보던 간수놈이 새된 목소리로 고함치듯이 말했다.

《면회시간이 끝났다!》

간수놈은 어느덧 포장에 달린 노끈을 잡아당겼다. 포장이 스르르 닫기고말았다.

《아버지!》 하며 대원수님께서는 닫긴 창살을 주먹으로 두드리시였다.

《걱정말아라. 아버지는 곧 나가게 된다. 너두 멀고 험한 길을 걷기 위해서 신들메를 든든히 매는것이 좋겠다.》

포장뒤에서 아버님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말씀의 뜻을 리해할수 없으셨다. 그러나 말씀그대로를 머리에 깊이 간직하셨다.

아버님의 발걸음소리는 차차 멀어져갔다.

대원수님께서는 귀를 기울이시고 멀어져가는 아버님의 발걸음소리를 들으셨다. 그 소리는 차차 약하게 들려오더니 이윽고 사라지고말았다.

그러나 대원수님께서는 움직이지 않으셨다. 어머님께서도 한동안 그대로 서시여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간수놈이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가자.》

어머님의 부드러우신 손길이 대원수님의 어깨에 닿았다.

어머님을 따라 밖으로 나오신 대원수님께서는 한동안 감옥을 노려보시며 발걸음을 떼지 않으셨다.

《어머니! 큰댐에 저놈의 감옥을 내 손으로 짓부셔버리구야말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대원수님께서는 두주먹을 힘있게 쥐시였다.

《오냐, 그래라.》

어머님께서는 대원수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때에 보신 아버님의 모습을 기억에서 영원히 잊을수 없으셨다. 그리고 이때 아버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가끔 되새겨보군 하셨다.

《너두 멀고 험한 길을 걷기 위해서 신들메를 든든히 매는것이 좋겠다.》

그때는 이 말씀의 뜻을 리해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날과 달이 가고 해가 바뀌일수록 그 말씀은 점점 더 똑똑히 가슴에 안겨오는것이였다.

그러기에 팔도구에 계시면서도 아버님의 비밀련락임무를 가지고 압록강을 수많이 넘나들었던것이며 천리길을 걸어온 오늘의 이 길에도 결국 멀고 험한 길을 걷기 위해 신들메를 든든히 매라는 아버님의 원대하신 뜻이 스며있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으실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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