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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3


대원수님께서 명문고개를 넘으신것은 강계를 떠나신지 사흘째 되는 날이였다. 명문고개를 넘어서니 날씨가 한결 누그러지면서 눈이 녹기 시작하였다.

(벌써 봄이 다가오고있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봄이 더 그리워지면서 새삼스럽게 만경대가 보고싶어지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상쾌한 기분으로 산판을 둘러보시면서 언덕길을 내려가고계셨다. 멀고 가까운 산들에는 소나무들이 우거졌고 골짜기들에는 얼어붙은 시내가 그림처럼 구불구불 내려다보였다. 이제 오래지 않아 얼음이 풀리면 맑은 물이 소리치며 골짜기로 흐를것이고 산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겠구나 하고 생각하시니 저절로 마음이 흥겨워지고 발걸음이 빨라지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 명문고개를 절반쯤 내려오셨을 때였다. 길옆 양지바른 잔디우에 한가족으로 보이는 중년부부와 오롱조롱한 아이들이 가지런히 앉아서 다리쉼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멀리 걸었는지 매우 지쳐보였다.

석유상자에 멜빵을 단 남편의 짐에는 얇은 누데기이불과 짚신짝이 달려있었고 큰 보자기로 싼 안해의 짐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울툭불툭한데 끄슬린 남비와 바가지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안해의 등에는 젖먹이어린애가 업혀있었다. 남편옆에는 다섯살가량 되여보이는 사내아이와 여덟살가량 된 사내아이가 앉아있는데 작은 아이는 무우말랭이를 씹고있었고 큰 아이는 얼마나 피곤한지 무우말랭이를 몇오리 손에 든채 까닥까닥 졸고있었다.

(간도로 들어가는 가족들이로구나.)

대원수님께서는 대번에 이렇게 짐작하시였다. 이런 짐들을 이고지고 포평나루를 건너가는 사람들을 날마다 보아오셨기때문이였다. 정든 제 고장에서 살지 못하고 고향산천을 버리고 산설고 물선 타향으로 떠나가는 그들이 한없이 가엾게 생각되셨다. 더구나 어린것들이 더 불쌍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들과 이야기라도 나누어보고싶은 충동을 누를수 없으시였다.

그리하여 대원수님께서는 다리도 쉬울겸 그들곁으로 가시여 보따리를 바위우에 놓으시고 눈녹은 잔디우에 솔가지를 꺾어놓고 그들과 가지런히 앉으셨다. 남편인듯한 사람은 말없이 계속 담배만 피우고있는데 담배연기가 아니라 쑥냄새가 바람결에 사뭇 풍겨왔다.

《먼길을 떠나신 모양이구만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먼저 말을 꺼내시였다.

《그렇네. 우리네사 경상도서 간도로 가는 길이네. 늦가을에 떠난기 이제사 여기까지 왔네. 학생은 어디로 가능가?》

녀인은 등에 업은 어린아이를 앞으로 돌려 젖을 물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간도에서 고향으로 나가던 길입니다.》

간도라는 말이 나오자 그들은 귀가 솔깃해지는 모양인지 일시에 대원수님께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척이라도 보는듯이 반가와했다.

《간도서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 고향이 어덴고?》 하고 사나이가 물었다.

《평양입니다.》

《평양? 와 거기서 살지 않고 돌아가노.》

《부모님들은 아직 거기에 계십니다.》

사나이는 대통을 미투리에 툭툭 털더니 안해를 바라보며 《봐라! 늬 다리 아프다고 앙탈 자꼬 하더니 평양보다 간도가 살기 좋길래 남아있지 않능가.》 하며 안해를 흘겨보는것이였다. 오는 동안 안해한테 몰리우다가 아마 지지자라도 만난듯이 기쁜 모양이였다.

그러나 안해는 입이 쓴 모양인지 먼산만 바라볼뿐 아무 대꾸도 없었다.

《늬 고향에 있으면 이런 산천구경 해봤겠능가?》 하며 남편은 시물시물 웃었다.

이 말에 안해는 화가 벌컥 동하는 모양이였다.

《아따 그럼, 당신은 구경떠났소? 내사 서울구경 딱 싫더라. 우리 농군은 나물죽도 못먹는데 서울량반 펀펀히 놀며 흰쌀밥 먹고 인력거 타고다니는 꼴이사 어디 보겠더라꼬.》

그들은 어찌 떠들어대는지 꼭 싸움이라도 하는것 같았다.

안해의 이 말에는 남편도 동감이였던지 말없이 쌈지를 들춰 다시 쑥담배를 대통에 담는것이였다.

그는 대통에 불을 붙여물고 두세모금 연거퍼 빨더니 갑자기 무엇이 생각나는듯 대원수님을 바라보며 《참, 내 정신 봐라. 묻던 말을 고만 잊었고만. 간도가 좋다꼬들 하능기 참말인가?》 하고 물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두분이 싸움이라도 하면 어쩔가 하고 걱정이셨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는것을 보니 저으기 마음이 놓이셨다.

《간도라고 뭐 딴 세상인가요. 거기서도 돈있는 사람은 살기 좋구 돈없는 사람이야 매한가지지요.》

대원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보소, 당신 돈없는 인간이사 어디 가나 죽은 목숨이지. 한사하꼬 가자가자 하더니 꼴좋게 됐소. 복없는 당신이나 내사 어디 간들 씨원한 일 있겠소?》

안해의 말이였다. 그러나 남편되는 사람은 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간도에 땅은 넓다 하지 않능가?》 하고 대원수님께 다시 묻는것이였다.

《땅이야 아주 넓지요.》

《그러면 됐다. 내사 넓은 땅에서 농사를 한번 실컷 해보꼬 죽으면 원이 없겠다. 봐라. 땅만 넓으면 됐지 무슨 소리꼬?》

사나이는 그제야 다시 얼굴에 웃음을 짓고 안해를 바라보는것이였다. 안해도 이 말에는 귀맛이 도는 모양인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넓은 호남벌 곡창지대에서 왜 농사를 하지 못하고 간도로 들어가시는가요?》

대원수님께서는 묻지 않아도 짐작하실수 있는 일이지마는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 이렇게 물으셨다.

《아따 그 말 해서 뭘하겠는가. 호남벌이 땅좋고 살기 좋아 쫓겨난거 아닌가? 왜놈들이 까마귀떼처럼 밀려와서 땅을 모두 빼앗으니까 쫓겨났지.》

《그럼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많겠구만요?》

《우리 마실에만도 서른한집에서 열다섯집이 땅을 빼앗기구 알거지가 되였지. 큰놈이네, 확실이네는 벌써 상년에 간도로 들어갔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큰 사내애는 아버지의 짐에 기대여 어느덧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사내애는 이마살을 찌프리고 제 형의 손에 쥐여져있는 무우말랭이를 연방 바라보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큰 아이의 손에서 무우말랭이를 뽑아 작은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작은 아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쓱 닦더니 무우말랭이를 한입에 밀어넣고 몇번 씹더니 흐물렁 삼켜버렸다.

그러더니 조금후에 다시 칭얼거리는것이였다.

《봐라, 늬 다 먹구 뭘 또 그렇능고.》

어머니는 작은 보자기를 그애 코앞에 대고 흔들어보이는것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다리를 쭉 뻗치고 몸뚱이를 뒤틀면서 계속 칭얼대는것이였다.

이것을 보신 대원수님께서는 얼른 자신의 보자기를 풀어보셨다.

거기에는 닦은 콩이 몇옹큼 들어있었다.

《너 이거라도 먹겠니?》 하시며 대원수님께서 보자기를 어린애앞으로 내미셨다.

칭얼거리던 어린애는 눈이 둥그래서 대원수님의 얼굴과 보자기를 번갈아 바라보는것이였다.

《학생 자실걸 이놈에게 주면 어쩌겠능고.》

어린애 어머니는 펄쩍 뛰는것이였다.

《저는 고향에 거의다 왔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런데 너무 적어서 안됐습니다.》 하시며 대원수님께서는 어린애 어머니가 들고있던 보자기에 콩을 쏟아주셨다.

《에그, 착하기두 하다. 이 은혜를 언제 갚는단 말인고.》

어린애 어머니는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닦는것이였다. 그러더니 그는 콩을 조금 덜어서 작은아들에게 쥐여주고 나머지는 보자기에 싸서 짐속에 넣는것이였다. 이것을 보자 대원수님께서는 콩을 좀더 남겨오지 못한것이 한스러우셨다. 어린애는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콩을 받기가 바쁘게 입에 넣고 바작바작 씹었다.

이윽하여 그들은 다시 길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남편은 이불짐우에 작은아들을 올려놓더니 곁에 놓여있는 짐을 닁큼 들어 안해의 머리우에 이워주었다. 그는 다시 어린애가 앉아있는 짐을 지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방금 잠에서 깨여난 큰애 손목을 잡고 길을 떠나려는것이였다.

그런데 방금 잠에서 깨여난 어린애는 배가 고파서인지 아니면 잠에서 채 깨지 못해서인지 혹은 다리가 아파서인지 걸음을 떼자 휘청거리는것이였다. 아마 그 모든것이 뒤엉켜서 어린애의 걸음발을 붙잡았을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린애앞으로 달려가시여 《내게 업혀라. 고개까지 업어다주마.》 하시고는 자신의 등을 어린애에게 돌려대시였다.

《아니, 이래서 되겠능가요. 학생의 길도 되우 바쁘겠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대원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업으시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셨다.

일행은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먼 고개길을 톺아올라갔다. 대원수님께서는 고개마루에서 그들과 헤여지셨다. 그들부부는 너무 미안하여 대원수님께 뭐라고 인사를 했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대원수님께서는 언덕길을 내려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계셨다. 그들의 앞길이 한없이 가엾게 생각되셨다. 금은보화가 가득하고 오곡이 무르익는 산좋고 물맑은 아름다운 내 나라, 내 고향을 두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쓸쓸한 간도벌판으로 가는 그들이 한없이 측은했다.

(하기야 저 사람들의 처지만 그런건 아니지. 조선사람 거의 모두가 그런 신세니까.…)

대원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며 다시 고개길을 내려오기 시작하셨다. 걸음을 걸으시면서 대원수님께서는 계속 깊은 생각에 잠겨계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날 해질무렵에 삼치안처럼 생긴 아늑한 어느 한 마을에 이르셨다. 마을 한복판에는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덩실하게 자리를 잡았고 그 집 둘레로는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 마을에서 하루밤 쉬여가리라 생각하시고 골목길로 들어서시였다. 마을 한복판 기와집마당에는 새 자전거들이 네다섯대 주런이 놓여있는데 안에서는 술추렴을 하는지 왁작 떠드는 소리와 노래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집을 지나 오막살이앞에 가서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때마침 주인할아버지는 일하러 나갔다가 방금 돌아온 모양인지 세면을 하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모자를 벗어드시고 공손히 인사를 한 다음 먼길을 가던 학생인데 하루밤 신세를 질수 없겠느냐고 물으시였다. 할아버지는 어디서 어디로 가는 학생이냐고 묻더니 대원수님의 대답을 듣고는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원 그 먼길을 혼자서… 신세랄게 있나. 어서 들어가세.》 하며 할아버지는 오히려 방이 루추하다고 걱정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할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섯살난 외손자 하나를 데리고 살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모자를 벗어 벽에 거시고 밖으로 나가셨다. 이때 할머니는 뜨락에서 장작을 패고있었다. 그런데 장작이 좀처럼 쪼개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도끼질하는 솜씨가 시원치 않았던것이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원수님께서는 도끼를 받아쥐시고 힘껏 내리치셨다. 장작은 《찡》 하고 소리를 내며 보기 좋게 쪼개졌다.

《이제는 죽어야겠다. 장작개비두 사람을 숙보는구나.》 하며 할머니는 서글프게 웃었다.

대원수님께서는 퍼그나 쌓여있던 장작을 잠간사이에 모두 자름하게 패놓으시였다.

얼마후에 저녁상이 들어왔다. 시래기죽이였다. 메밀가루를 한줌이나 넣었는지 죽그릇에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네사람이 자그마한 나무상에 둘러앉았다.

《학생두 더러 이런 음식을 자셔보았습마?》 하고 할머니가 물었다.

《우리도 늘 타개죽을 쑤어먹습니다.》

《그래, 역시 가난한 집 아드님이구만. 그러기 일을 그렇게 잘하겠지. 맛은 없어두 많이 들라구.》

《예, 많이 먹겠습니다. 아주 맛이 좋습니다.》

사실 이날의 죽맛은 각별히 좋았다.

《첫째야, 너두 이 형님만큼 크면 혼자서 평양에 가겠니?》 하고 할아버지가 물었다.

《평양이 얼마나 머나? 읍장거리보다 더 머나?》

첫째는 죽그릇을 그러잡고 소담스럽게 먹다가 죽그릇을 내려놓으며 할아버지께 물었다.

《읍장거리보다 더 멀지. 한 백곱절 될거다.》

첫째는 다시 죽그릇을 들어 크게 한술 떠 들이키더니 《신만 있으면 갈테야. 할아버지, 내 고무신 사줄테야?》 하고 묻는것이였다.

《또 고무신타령이냐?》

《고무신만 있으면 땅끝까지라두 갈수 있어!》

《가만있어라. 올농사 지어서 가을에는 고무신두 사주구 조끼두 사주구 다 사주지.》 하고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작년에두 가을에 사주마더니 안사주구 올해두 또 가을에 사다준대. 할아버지는 가을밖에 몰라. 할아버지는 거짓말쟁이야.》

《허허, 그러니 어찌겠니. 농사지은것은 소작료니 빚값에 다 빼앗기구 목구멍에 풀칠두 할수 없는 형편인데.》

할아버지는 가늘게 한숨을 지었다.

《네 말이 맞았다. 올가을이라구 뭐 쌀자루가 하늘에서 떨어지겠니?》

할아버지는 외손자의 등을 쓸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큰 대접에 담은 죽 한그릇을 다 내고 다른 죽그릇을 끌어당겼다.

이때에 기와집에서 게사니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떠드는 소리가 할아버지네 집에까지 들려왔다.

《또 저것들은 오늘도 처먹는 모양이군.》 하고 할아버지가 긴 담배대로 재털이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저 집에서는 늘 저렇게 떠드는가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그놈의 집에서야 날마다 저 지랄이지. 오늘두 순사니 군청서기나부랭이들이 한패 밀려왔으니까 또 밤새도록 처먹고 지랄을 칠걸세.》

《배가 터지도록 실컷 처먹으라지요.》

할머니가 상을 물리고 솜으로 기름등잔심지를 꼬면서 맞장구를 쳤다.

《형! 나하구 여기서 같이 자자우. 잉?》 하며 첫째는 자리에 누우며 대원수님의 자리까지 잡아주는것이였다.

《낮에는 종일 혼자 놀라구 내버려두니까 사람이 그리워 그러는구나.》 하고 할머니가 외손자의 궁둥이를 투덕투덕 두들기며 말했다.

《첫째 아버지, 어머니는 안계시나요?》 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그애 부모들은 저거 하나를 낳구 죽었다네. 결국 첫째이자 막동이로 된셈이지.》

할머니는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두 늙은이가 딸자식 하나를 길러서 데릴사위를 맞아 3년을 같이 살았는데 왕가물로 큰 흉년이 들지 않았겠나. 다섯식구가 먹으면 겨울량식도 못되겠다고 하면서 저애 애비하고 에미는 탄광에 밥벌일 떠나지 않았겠나. 떠난지 석달도 되기 전에 탄광에서 로동자 한분이 왔더구만. 급한 일이 있으니 빨리 탄광으로 가자는걸세. 눈치를 보니 무슨 큰일이 벌어진게 뻔하더구만.

그래서 아이놈을 옆집에 맡기구 두 늙은이가 그 로동자를 좇아가지 않았겠나. 참 기가 맥혀서… 글쎄 굴이 무너지는 바람에 숱한 사람이 죽었다누만. 딸, 사위의 시체를 찾느라고 사흘이나 헤매질 않았겠나. 글쎄 굶어두 같이 굶구 죽어두 같이 죽을게지 탄광에는 뭘하러 보냈겠나. 시방도 그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리네. 이 늙은것들을 두구 끌끌한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죽다니. 생각을 하면…》

할머니는 말끝을 채 맺지 못하고 흐느끼는것이였다.

《할머니, 또 우나. 내가 크면 김두 매구 나무두 할게 울지 말어.》

자는줄 알았던 첫째가 벌떡 일어나 할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냐, 울지 않으마. 네가 있는데 왜 울겠니.》

할머니는 울던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외손자를 품에 꼭 안아주는것이였다.

《우리 두 늙은이는 이거 하나를 하늘처럼 바라구 이렇게 살아간다네. 이것이 있으니 이렇게 웃을 일두 있지 않겠나?》

할머니는 어느덧 서글프던 생각을 잊은듯 하였다.

기와집에서 또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도는 살기 좋다는데 내 나이 50만 된대두 뛰여들어가겠다. 내 저 지주놈이 꼴보기 싫어서 지레 늙는다니.》 하고 할아버지가 말하자 《팔자가 앞선다우. 간도라구 그런 놈들이 없을줄 아시우?》 하고 할머니가 대꾸했다.

《그래두 저놈들보다야 낫겠지. 그 개천집에서 아주 잘했어. 우리두 그때만 들어갔어두 이 모양으로는 살지 않을거야.》

《에그, 30리밖에두 못나가는 주제에 어딜 간다구 그러시우?》

이 말에 할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할아버지가 가난하게는 살지만 지주놈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나가는데 대하여 무척 존경이 가셨다.

그리고 인정있고 착한 할머니와 천진한 첫째가 더없이 친숙하게 여겨지셨다. 그처럼 어질고 착한분들이 무엇때문에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어째서 오직 하나의 희망으로 바라보고있는 외손자의 고무신 한컬레도 사주지 못해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대원수님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바람도 쏘일겸 밖으로 나가시였다.

그런데 기와집마당에서는 갑자기 게사니멱을 따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놈의 새끼가 우리 자전거나 망가쳤는가?》 하는 혀꼬부라진 소리가 밤공기를 째며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무심코 기와집쪽을 바라보셨다.

이때에 두세명의 소년들이 쿵쿵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할아버지네 굴뚝 모퉁이에 숨는것이였다. 그애들은 키득거리며 이런 말을 주고받는것이였다.

《흥, 저놈들 오늘 자전거를 끌구 30리길을 가려면 진땀날거야.》

《얘들아, 요다음에는 다이야만 꿰뚫지 말구 호구를 아예 꺾어놓자. 다이야나 꿰치면 그자리에서 때가지구 갈수 있거덩.》

《응! 그게 좋겠다.》

그들은 이런 말들을 주고받더니 집모퉁이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대원수님께서는 그애들이 사라진 골목을 통쾌한 기분으로 한동안 바라보셨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아침상을 물리시고 보자기에 남은 수수쌀을 꺼내시여 할머니에게 드리셨다. 그러자 할머니는 눈이 둥그래지며 펄쩍 뛰는것이였다.

《이게 무슨 일이나? 나를 밥장사할멈으로 아나? 어서 넣어두라구.》

할머니는 보자기를 닁큼 빼앗더니 수수쌀을 도로 보자기에 싸주는것이였다.

《아니, 받아두세요. 할머니네 살림도 넉넉치 못하겠는데요.》

《걱정말게. 죽은 사람이 불쌍하지 산 사람은 살아가기마련이라네.》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이때 첫째가 대원수님의 팔소매를 잡고 매달리며 말했다.

《형, 집에 갈래? 가지 말구 우리 집에서 살아. 잉?》

《갔다가 내 또 올게. 그때까지 잘 있어라.》

대원수님께서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였다.

《갔다가 언제 오나?》

《네가 이만큼 크면 오지.》

대원수님께서는 그애의 머리보다 조금 높게 손을 들어 시늉하셨다.

《그때 꼭 와야 해.》

《오구말구.》

대원수님께서는 떠나실무렵에 동전 열잎을 꺼내시여 첫째의 손에 쥐여주셨다.

《너 이걸루 사탕 사먹어라. 그리구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응!》

그애는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아니, 그건 왜 주나. 야, 그걸 형님께 돌려드려!》

할머니의 엄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첫째는 생글생글 웃으며 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두손으로 꼭 움켜쥐였다.

《이걸루 이담 사탕사다가 할머니두 줄게.》 하며 그애는 제법 할머니를 얼리려고드는것이였다.

《세상이 다 너같았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쓴웃음을 짓고말았다.

할아버지네 집 세식구는 밭은 친척이라도 왔다 돌아가는것처럼 동구밖에까지 따라나와서 대원수님을 배웅해주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얼굴에서 만경대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그려보실수 있었다. 아름답고 선량한 그들에게서 가난을 몰아내는 방법은 없을가 하고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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