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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2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하늘과 땅을 뒤덮을듯이 사나운 눈보라가 기승을 부렸다. 이깔나무, 봇나무, 황철나무가지들이 바람에 휘친거리며 아우성을 쳤다. 메새들도 먹이를 찾으러 가는것마저 잊어버렸는지 숲속에 옹크리고앉아 보르르 떨고있었다.

산마루에서 넘겨치는 눈보라는 순식간에 길을 묻고 웅뎅이를 메꾸었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웅뎅이인지 도무지 가려낼수가 없었다.

월탄에서 첫날밤을 주무신 대원수님께서는 이른아침에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고 다시 길을 떠나시였다. 여기서부터는 차차 길이 더 험해지면서 령길이 시작된다.

다섯개의 아름다운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하여 오가산이라고 불리워오는 이 령을 넘는 오솔길에 들어서면 낮에도 하늘을 덮는 천고의 밀림이 길 량편에 꽉 들어차 앞을 멀리 바라볼수 없다.

이깔나무, 전나무, 잣나무,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찼고 진대나무들이 가로세로 누워있는 이 원시림속은 낮에도 어둑컴컴했다. 머루와 다래넝쿨들이 칭칭 감긴 키높은 나무들에는 해묵은 머루와 다래송이들이 나무가지에 아직도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이렇듯 깊고 험한 산길이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간신히 길을 찾을수 있었다.

그러다가는 눈보라가 발자국을 메꾸고 눈무지가 치쌓여 다시 길을 잃게 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인적은 사뭇 고요한데 들리느니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뿐이였다.

오솔길을 더듬어 올라갈수록 수림은 깊어갔고 길은 험해졌다.

대원수님께서 허리까지 빠지는 눈무지를 겨우 헤치고나와 진대나무를 넘어서시는데 바위앞으로 큰 짐승의 발자국이 나있었다.

큰 짐승이 갑자기 달려나오면 나무우에라도 올라가실 생각으로 대원수님께서는 아름드리나무를 쳐다보시였다. 바로 이때 다래넝쿨속에서 와삭바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소리나는쪽으로 얼굴을 휙 돌리셨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노루 한마리가 대원수님을 바라보더니 산마루를 향하여 쏜살같이 치달아올라가는것이였다.

(노루란 놈한테 놀랬구나!)

대원수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눈길을 밟아 령마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다. 하늘을 찌를듯이 치솟은 천고의 밀림은 끝이 없었다. 가도가도 밀림은 깊어만갔다.

대원수님께서는 이토록 훌륭한 수림, 이렇듯 풍부한 재부가 우리 나라에 무진장하게 쌓여있구나 하는 자랑스러운 생각으로 하여 끝없이 펼쳐진 숲의 바다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시였다.

(이 나무들을 모두 찍어 조선사람들이 집도 짓고 물건을 만들어쓴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나 다음순간 대원수님께서는 두주먹이 불끈 쥐여지셨다.

제 나라에 이렇듯 무진장한 보물들과 기름진 땅을 두고도 괴나리보짐을 지고 험한 령길을 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낯선 이국땅으로 흘러들어갔을 수많은 우리 겨레들의 한숨섞인 숨결과 울분이 이 대원시림속에도 간직되여있는것만 같으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살아서 숨쉬듯 설레이는 이 대원시림의 숨결을 더 가까이 느끼시려는듯 숲속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시고 때로는 눈속에 파묻힌 숲이 간직하고있는듯한 신비경속에 이끌리여 엉키고 서려 가지가지의 형상을 나타내고있는 이깔나무, 봇나무, 박달나무들의 모습을 한참씩 바라보기도 하시면서 한걸음한걸음 령마루를 톺아오르시였다.

대원수님께서 높은 령을 넘으신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여덟살에 아버님을 따라 만경대를 떠나 중강으로 들어가실 때에도 우리 나라의 수많은 고개를 넘으시였다. 명문과 고인사이에 있는 명문고개도 어지간히 높았지만 강계를 지나 장강에서 갈라져 중강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로놓인 배랑령과 호래령들도 굉장히 높은 령들이였다.

오가산도 이에 못지 않는 큰 령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령마루를 바라보시며 쉬임없이 걷고 또 걸으시였다. 마음속에 간직된 울분이 있어 그런지 별로 힘든줄을 모르시였다. 어서 빨리 령마루에 오르면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일것만 같으시였다.

령마루에 오른다는것은 언제나 통쾌한것이다. 높고 험한 령을 정복하고 상상봉에 올라섰다는 그 기쁨도 크지만 앞을 막았던 장벽이 없어지고 일망무제하게 앞이 탁 트이는데서 오는 상쾌감도 또한 큰것이였다.

그러나 오가산 높은 령마루에 오르신 대원수님을 기쁘게 한것은 그것만이 아니였다.

그보다 더한 벅찬 기쁨이 대원수님의 가슴에 안겨왔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마에 내밴 땀을 훔치시고 붉게 상기된 얼굴을 드시여 눈앞에 펼쳐진 조국의 산야를 둘러보시였다.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맑게 개였는데 멀고 가까운 산들이 큰 바다의 물결마냥 줄지어 달리고있었다.

도도히 굽이치며 밀려드는 봉우리들을 굽어보시던 대원수님께서는 몸을 돌려 눈길을 동북쪽으로 옮기시였다.

《아! 백두산!》

순간 대원수님께서는 환성을 올리시며 천천히 모자를 벗어드시였다.

저 멀리 아득히 머리에 흰눈을 인 백두산, 우리 나라 조종의 산 백두산이 바라보이는것이였다.

수많은 대군을 거느린 장수인양 뭇봉우리들우에 거연히 솟은 백두산의 숭엄한 모습이 대원수님을 손저어부르듯 아득히 바라보였다. 이 나라 겨레의 불굴의 기상을 그대로 보여주듯, 슬기로운 조선의 넋을 그대로 담은듯 장쾌하고도 숭엄한 백두의 련봉들은 대원수님을 그 품에 안을듯이 다가서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백두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일듯 움직이지않고 서시여 그 웅장한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막혔던 가슴은 후련히 열리고 마음속엔 기쁨과 감격이 한가득 찼다.

대원수님께서는 위엄있게 솟아 천만년 그 모습 변치 않으리라 굳게 다짐이라도 하는듯한 백두산의 름름한 기상을 흐뭇한 감정으로 오래오래 바라보셨다.

대원수님께서는 백두산의 기상처럼 억세고 슬기롭게 자라리라고 속다짐하시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이깔나무숲사이를 걷느라니 문득 앞에 쉼터가 나타났다. 령마루로 올라오는 길가에도 이런 쉼터가 있었는데 여기에 또 나타난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쉼터에 보자기를 놓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움막처럼 지은것인데 그곁에는 두어단가량 되여보이는 땔감이 놓여있었다. 오고가는 길손들을 위하여 마련된 움막이며 땔감인것이다. 길손들은 여기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고는 쓴것만큼 나무를 주어다가 쌓아두고 가는것이다. 그러니 시키는 사람이 없건만 쉼터들에는 언제나 땔감이 무드기 쌓여있기마련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나무를 몇가치 쌓아놓고 불을 지피시였다. 잠간사이에 불이 일기 시작하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훈훈히 불을 쪼이시고 나무를 아까보다 세곱절이나 되게 주어다가 쌓아놓으셨다. 그리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셨다.

오솔길에는 역시 눈이 쌓여있었으나 내리막길이여서 그리 힘들지는 않으셨다. 몇천몇백년인지 짐작할수 없는 오래고오랜 기간 나무잎이 떨어져 쌓이고쌓인 원시림속으로 뻗은 길을 걷느라면 땅우를 걷는다기보다도 솜방석이나 용수철우를 밟는것 같은감을 느끼게 하는것이였다.

산릉선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니 길은 좁은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길 량편에는 깎아지른듯한 아아한 벼랑들이 늘어서있고 군데군데 수림속에는 화전들도 보이는데 먹을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것을 입지 못하는 가난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여주는 산전막귀틀집 두세채가 보였다. 낮에도 짐승들이 다닐것 같은 이런 무시무시한 산골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그들의 신세가 가긍하기 짝이 없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런 귀틀집, 아무렇게나 나무통을 쪼개서 지붕에 덮고 무거운 돌들을 오종종하게 눌러놓은 동기와집들을 수많이 보며 걷고 또 걸으셨다.

대원수님께서 구리를 캐내는 광산근처에 이르셨을 때였다. 열두어살가량 되여보이는 소년이 노닥노닥한 토스레옷을 입고 나무실은 발구를 끌고가다가 우뚝 서서 손에 입김을 호호 불고있었다.

《너 손 시리냐? 내가 좀 끌어다주지.》하며 대원수님께서 발구채를 잡으셨다. 소년은 대원수님을 바라보더니 발구채를 대원수님께 넘겨주는것이였다.

《너의 집이 어디냐?》하고 대원수님께서 물으셨다.

《광산마을에 있어.》

《그런데 왜 네가 나무하러 다니냐?》

《아버진 광산에 일하러 다니구 어머니는 남의 집에 빨래하러 갔어.》

《그래서 나무는 네가 해야 되니?》

《우리 집에서 때는 나무나 한다면 약과게 뭐.》

《그럼 또 남의 집의 나무두 해야 되니?》

《함바집에두 내가 해다주어야 돼.》

《그럼 너두 돈을 벌겠구나.》

《흥! 돈은 무슨 돈을 벌어? 이렇게 한발구 해다주면 10전밖에 안주는데두 돈벌이라구 말할수 있니?》

《아니, 한발구에 10전밖에 안준단 말이냐?》

《장마당에 끌구가면 30전은 받을수 있지만 그렇게두 할수 없구.…》

《왜, 장마당이 멀리 있니?》

《멀지는 않아. 함바집주인놈이 십장이란다. 그런데 돈을 좀더 받겠다구 장마당으로 나무를 가지구가면 아마 우리 아버지를 일판에서 떼구말게다.》

《그런 십장놈을 그대로 둔단 말이냐? 로동자들이 들구일어나서 혼쌀을 내주지.》

《그러기 광산에서는 뻔질나게 쌈이 일어난단다.》

《쌈은 누구들이 하니?》

《로동자들하구 광산주인놈하구 한단다. 한달전에두 또 쌈이 벌어졌댔는데 굉장했어. 굴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일곱명이나 죽었는데 로동자들이 왜 가만히 있겠니.》

《너의 아버지두 그축에 들었댔니?》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대원수님을 빤히 쳐다보는것이였다.

《누구들이 쌈판에 나섰구 누구네 집에 사람들이 모였댔구 하는걸 누구에게두 알려주면 안된대.》

《누가 그러던?》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대원수님께서는 소년의 아버지도 놈들을 반대해서 싸우는데 한축 들었다는것을 넉넉히 짐작하실수 있었다.

《앞으로는 누가 물으면 그런 대답두 하지 말구 그저 모른다구만 해라. 나쁜 놈들에게는 그런 말두 해서는 안돼.》

《응, 알겠어. 난 네가 좋은 아이루 보이길래 그런 말을 했어.》

대원수님께서는 두갈래 길앞에 이르셨다.

《자, 이제는 여기서 헤여져야 되겠구나.》하며 대원수님께서는 발구채를 소년에게 넘겨주셨다.

《고마워, 나때문에 수고 많이 했다.》

소년은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수고랄게 있니. 잘 있어라.》

대원수님께서는 그 소년과 헤여져서 좀 넓어진 신작로를 걷고계셨다. 광산이 개발되여서 그런지 퍼그나 큰 거리가 나타났다. 음식점간판을 건 집들이 여러채 있었고 뜨락에 엿고리를 놓은것도 세군데나 보였다. 그리고 리발소와 상점도 있었다.

대원수님께서 거리를 방금 지났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오는데 그의 곁에 한사람이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멀리 그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무심코 바라보셨는데 차차 가까와오는것을 보니 자전거를 타고오는 놈은 순사였고 걸어오는 사람은 포승에 묶이운 젊은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발걸음을 우뚝 멈추시였다. 가슴이 섬찍하셨던것이다. 잡혀오는 젊은이는 머리가 더부룩하고 수염도 깎지 못했는데 그의 두눈은 별처럼 사뭇 반짝이고있었다. 순사놈은 포승으로 손목을 묶어가지고오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인지 젊은이를 앞세우고 두눈을 깔끔거리며 뒤쫓아오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아까 소년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귀에 쟁쟁하는것 같으셨다.

(저 청년도 우리 나라의 보물을 빼앗아가는 왜놈광산주를 반대해서 싸웠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니 순사놈을 두들겨패고 젊은이를 구원해주고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셨다.

그러나 혼자서 더구나 맨손으로 그렇게 하실수는 없었다. 순사놈은 대원수님의 곁을 지나 거리쪽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그대로 서시여 멀어져가는 젊은이의 뒤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계셨다.

대원수님께서 가산, 화평을 지나 높은 직령을 넘어 강계에 도착하신것은 포평을 떠나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이날 저녁 해질무렵에 시내에 들어서시였다. 포평에서부터 장강까지는 초행길이였으나 장강을 지나서부터는 중강으로 들어가실 때에 한번 걸으셨던 길이여서 가지가지의 옛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는것이였다.

강계시내에 들어서시니 더욱 그러하였다. 중강으로 들어가실 때에는 강계시내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그동안 전기까지 들어와 가로등에 불까지 켜진것을 보시니 거리에 대한 인상을 한결 다르게 해주는것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큰거리를 지나고 골목길을 돌아 어느 한 동기와집대문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로정도에도 표시되여있고 중강으로 들어가실 때에도 들리셨던 리선생네 객주집이였다.

리선생은 대원수님을 만나자 매우 반가와하는것이였다. 그는 머리를 길렀고 흰 저고리에 검은 조끼를 입었는데 나이는 아버님과 비슷해보였다.

《오늘이나 래일쯤은 도착하리라고 생각하고있었네. 선생님께서 전보를 치셨더구만.》

리선생은 걸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니 집의 안부를 묻는것이였다.

《임자가 중강으로 들어갈 때에는 퍽 어렸댔는데 이제는 몰라보게 자랐구만!》하며 이 집 할머니는 친손자라도 만난것처럼 매우 반가와하였다. 이윽고 저녁상이 들어왔다.

《어서 자시게. 길떠나면 고생이라네. 먼길을 걷느라니 얼마나 다리도 아프구 시장했겠나.》하며 이 집 할머니는 대원수님의 저녁상곁에 앉아서 바리깨를 열어주었다.

《사양말구 많이 들라구. 이 집은 사양할 집이 아니야. 우리 애아버지는 임자 아버지를 선생님으로 모시구 큰일을 하고있다네. 할머니네 집에 온줄로 생각하고 많이 들라구.》

대원수님께서는 이 집 식구들이 모두 자기를 귀중한 손님으로 각별히 대해주는 바람에 가까운 친척집에라도 온것처럼 반갑기도 하셨지만 한편 송구스럽기 짝이 없으셨다. 이날 점심요기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종일 길을 걸으시여 시장하신데다가 이 집아주머니의 음식솜씨가 좋아서 대원수님께서는 밥 한그릇을 거의다 드셨다. 구수한 토장국과 깨보숭이를 듬뿍 친 새우젓은 각별히 입맛을 돋구어주었던것이다.

대원수님께서는 리선생이 아버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고있기때문에 왜놈들의 눈을 가리우기 위하여 형식상으로 객주집을 차리고있다는것을 짐작하고계셨다.

여러날동안 길걷기에 지치셨던 대원수님께서는 이날저녁 며칠만에 푹신한 솜이불을 덮고 편히 쉬실수 있었다.

다음날아침 대원수님께서는 리선생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셨다.

《강계시내 구경두 하구 강계읍 성터와 성문들두 구경하면서 며칠 푹 쉬라구. 그리구 그 먼길을 어떻게 걸어가겠나. 내 차부에 가서 자동차표를 한장 사오지.》

리선생의 말이였다.

이 말을 들으신 대원수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아저씬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이렇게 페를 끼치는것만 해도 안됐는데 자동차를 타구가다니요.

이제는 다리가 풀려서 얼마든지 걸을수 있습니다.》

《사양할 집이 아니래두 그러누만. 선생님께서 내게 돌려주시는 사랑과 지도를 생각하면 자동차정도겠나. 하여간 내 다른데 볼일도 있구 해서 나갔다오겠는데 푹 쉬면서 거리구경이나 하라구.》

리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대원수님께서는 아버님께 전보를 치기 위하여 거리로 나가시였다.

거리의 모습은 몇해전과는 딴판으로 달라졌다.

새집들이 거리 여기저기에 섰는데 일제의 무슨 관청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상점들도 더 많아졌고 전선줄도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늘여져있었다.

대원수님께서는 우편국으로 가시여 아버님께 강계에 도착했다는 전보를 치신 다음 다시 거리로 나가셨다.

강계는 실로 아름다운 고장이였다. 시내의 둘레에는 높고낮은 산들이 우쭐우쭐 솟아있는데 나무들이 우거졌다. 남산과 독산은 마치도 강계읍을 둘러친 병풍과도 같았으며 거리변두리로 흐르는 장자강은 강계읍의 풍치를 한층더 돋구어주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짓밟고 누르듯 거리 한복판에는 일제놈들의 관청들이 도사리고있어 주인행세를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놈들은 북방의 이 도시에까지 밀려들어 조선의 힘줄을 모조리 그러쥐고 우리 겨레의 피를 빨고있는것이였다.

더우기 일본계집년들이 게다소리를 내며 거리로 네활개를 치며 다니는것을 보셨을 때 대원수님의 눈에서는 증오의 불이 이글거리였다.

대원수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천천히 인풍루쪽으로 향하셨다. 퍼그나 높은 남산으로부터 뻗어내린 산줄기가 장자강에 뚝 떨어진 아슬아슬한 벼랑언덕우에 자리잡은 인풍루는 관서8경의 하나로 이름높은 곳이였다.

인풍루 앞뒤를 다 둘러보신 대원수님께서는 란간옆에 서시여 벼랑아래로 뻗은 장자강우에서 얼음을 타는 아이들을 한동안 내려다보시고 남산과 독산 그리고 거리를 바라보셨다. 여름철이 되여 산과 강변에 나무가 푸르고 장자강의 맑은 물이 굽이쳐흐르면 강계의 경치는 더욱 아름다우리라 생각되셨다.

대원수님께서는 일본놈들에게 지지리눌려 숨막힐듯한 우리 나라의 북방도시, 땅에 붙은 초가집들로 가득차있는 강계거리를 거닐기도 하시고 상점구경도 하시면서 오전시간을 보내시였다.

대원수님께서 주인집으로 돌아오신지 얼마 오래지 않아서 리선생이 돌아왔다. 그는 갔던 일이 잘되지 않은 모양인지 혼자 뭐라고 중얼대는것이였다.

《차표를 사지 못했수?》하고 그 집 아주머니가 물었다.

《글쎄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는구려.》

《고장난거야 인차 고치겠지요 뭐.》

《한 열흘 걸려야 고친다질 않소. 차라리 잘됐네. 우리 집에서 한 열흘 놀다가 자동차를 타구가라구.》

《자동차는 무슨 자동차를 타구가겠습니까? 래일 아침 일찍 떠나겠습니다.》

《그러지 말구 내 말대루 하라구. 그 높은 령길을 어떻게 걸어넘겠나.》

《제일 높은 직령을 넘어서 인젠 일없습니다.》

《아니, 아직두 고개가 많네. 불길령, 장산령, 명문고개, 원림고개 큰 령만 해두 아직 넷이나 있는데.》

《그렇지만 그 고개들은 가파롭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구경두 하면서 슬슬 걸어가는것이 더 좋습니다.》

《글쎄 생각해보라구. 내 집에 들렸던 자네를 걸어보내구서야 후에 선생님을 무슨 면목으로 만나겠나. 안그런가?》

《일없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천리길을 걸어서 나가라고 하셨는데 차를 타고갔다고 하면 오히려 제가 꾸중을 듣습니다.》

이 말을 들은 리선생은 한동안 말없이 대원수님을 바라보더니 머리를 약간 끄덕이는것이였다.

《역시 선생님의 기질을 닮아서 한번 먹은 마음 굽히지를 않는구만! 여보, 그럼 래일 아침을 일찍 지어주오. 차를 태워보낸다구 그러다가 공연히 길만 더디게 해서야 되겠소?》

대원수님의 결심을 꿰뚫어보기라도 한듯이 리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윽하여 점심상이 들어왔다. 흰쌀밥에 소갈비국을 끓여왔는데 찬도 상에 가득 차려왔다. 대원수님을 위해서 특별히 차린것이였다. 할머니는 구운 청어를 뜯어주면서 많이 들라고 권했다.

《자, 들라구. 모처럼 왔다구 아침부터 서둔게 기껏 이거구만.》

리선생의 말이였다.

《이거 너무 페를 끼쳐서 안됐습니다.》

《페를 끼치다니. 나는 정말 임자를 만난것이 선생님을 만나뵙는것처럼 반가우네.》

리선생은 숟가락을 들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 거리구경은 좀 했나? 내가 같이 나가야 할걸 안됐네.》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인풍루에두 갔댔구 거리구경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에보다 많이 달라졌더군요. 집들도 더 짓구 전기도 들어오고 그리구 왜놈들이 퍼그나 들어왔더군요.》

《우리 나라 살기 좋은 고장에야 왜놈들이 들어오지 않은데가 없지. 앞으로 더 많이 들어올걸세. 오면서 보았겠지만 구리를 내는 동점두 생기지 않았던가.》

리선생은 《후―》 하고 긴 한숨을 짓더니 이야기를 재촉했다.

《전기를 끌어온다, 철길을 놓는다, 공장을 짓는다, 쇠돌을 캔다 하는 이 모든것들이 무엇을 목적하는것이겠나? 결국 우리 나라에서 보물을 모조리 빼앗아가자는것이 아니겠나.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시는대로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될지언정 왜놈들과 끝까지 싸워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하네.

임자는 어디를 가서 어떤 공부를 하건 아버님의 원대한 뜻 〈지원〉의 사상을 잊지 말아야 하네. 그래서 나라를 꼭 찾아야 한단 말일세.》

다음날 이른아침에 대원수님께서는 주인할머니가 굳이 만류하는것을 뿌리치시고 강계를 떠나셨다.

리선생은 짚신을 두컬레나 장만해주었고 멀리까지 따라나와 배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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