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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해군댕기

5

누군가가 포탄깍지로 된 종을 조심조심 두드리기 시작했다. 휴식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것이다. 미처 다듬지 못한 크고작은 석재들이 여기저기에 웅크리고있는 넓은 채석장에 다시금 착암기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쿵쿵 땅을 차는 압축기의 박력있는 동음은 먼곳의 북소리마냥 부드러우면서도 가락이 잘 맞는다.

《나는 림병초영웅의 아들이 아닙니다.》

60나이가 지난 석공반장의 목소리는 지나치다고 할만큼 무뚝뚝하게 울렸다. 캐낸지 얼마 되지 않는 화강석덩어리에 얹고있던 왼손이 경련이라도 인듯 보이지 않게 푸들거렸다. 그는 허리가 구부정한 장령의 긴장한 눈길을 잠간 일별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작업대에서 함마와 정대를 집어들었다.

《오래전에 전사한 사람의 아들을 왜 갑자기 찾는건가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때문이지.》

김수철소장의 목소리는 알릴듯말듯 떨리고있었다. 그는 피로가 몰린 사람이 그러듯 힘겹게 숨을 들이그었다.

《동무 아버지의 이름은 림병초였소.

이 편진… 동무에게 쓴 아버지의 마지막편지이고… 이 편지를 쓸 때 난 등잔불을 밝혀주며 곁에 함께 있었소. …》

김수철소장은 두툼한 편지를 석공반장앞에 내보였다. 그러자 상대편의 낯색이 갑자기 하얗게 질리였다. 두려운듯 한 눈길로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김수철소장은 먼 하늘가에 눈길을 준채 마치 자기 마음속의 그 누구와 이야기하듯 목소리를 낮추어 편지의 구절들을 읽었다.

…〈대복아, 보리장마가 지났으니 올감자를 캘 때가 되였구나. 농사가 잘되였다니 정말 기쁘다. 이제 미국놈들이 항복할 날도 멀지 않았다.

요즘은 전쟁이 끝나 고향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것인가 하구 함께 있는 꼬마해병 김수철이와 계속 론쟁을 하고있다. 너의 형님벌이나 될 이 꼬마는 고향이 통천의 바다가마을이여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많이 잡는것이 소원이다. 그는 나도 해병이니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것이 좋을것이라고 고집하고있다.

그러나 난 그에게 농사를 잘 짓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있다. 사람이 물고기도 먹어야 하지만 밥을 먹지 않고서야 살아갈수 없지 않니. 그러자면 농사를 잘 지어야지. …

대복아, 이것은 다 우리들의 자그마한 소원일뿐이다.

전쟁이 끝나 평화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해도 우리는 결코 손에서 총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 땅에 미국놈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평화로울수 없단다. 또다시 미국놈의 노예로, 천대받는 머슴으로 너와 내가 비참하게 살수야 없지 않느냐.

김일성장군님께서 그렇게 가르쳐주시였다.…

이제 몇분후면 나와 김수철은 자그마한 배를 타고 적들을 찾아 바다로 나간다.

출발준비를 마치고 너에게 이 편지를 쓴다.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살아서 돌아온다고는 더욱 말할수 없다. 그러니 이런 부탁을 남기는 날 리해해다오.

넌 꼭 훌륭한 해병이 되여야 한다. 그리고 대대손손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병으로 살기 바란다. …〉

동무 아버지는 편지를 마무리하지 못하였소. 난 이 편지를 반세기가 넘도록 가지고있으면서도 동무를 찾지 못했댔고…》

《편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나란 말입니까?》

《그렇소. 동문 전사한 림병초동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요.》

《미안하지만… 나의 아버진 3년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름은 대복이가 아니라…》

석공반장의 목소리는 고집스러웠다. 장령은 습관처럼 군모를 바로잡았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난 동무의 고향에 찾아갔댔소. 거기서 우리가 만났었지. 그땐 아마 동무의 나이가 8살도 되지 않았을 때였을거요. …》

《장령동지, 저를 다른 누구와 혼돈하지 않았습니까?》

김수철소장의 수북한 장미가 창끝처럼 곤두섰다. 안존하게 자리잡힌 두눈이 금시 서리칠듯 날카롭게 번뜩인다.

《대복이, 아직두 사실을 말하지 않을텐가!》

《?! …》

《동문 자기 아들이 군대에 나갈 때 보물처럼 간직하고있던 할아버지의 해병모자에서 이 댕기를 뜯어가져간데 대해 몹시 노여워했다지?…》

《…》

《동문 폭격에 어머니가 희생될 때 다친데다가 리당위원장네 집이 반동놈들의 습격을 받을 때 크게 다치여 늘 앓군 했소. 그때 상한 손때문에 군대에도 갈수 없었소. 그래서 철순이를 해병으로 키우려 마음쓴게 아닌가, 할아버지의 뒤를 잇게 하려고. …

철순이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찍은 가족사진에 얼굴색이 밝지 못한 사연을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직접 밝혀내시였소. 그때 동무는 철순이가 해군에 가지 못하게 된 문제로 초모사업을 맡은 부장동무와 한바탕 다툼까지 벌리지 않았는가. 그래서 철순이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얼굴색이 밝지 못했고…》

《…》

《물론 동문 군대에 가는 자식에게 한생토록 가슴에 맺혀있던 사연을 다 말해주진 않았소. 그러나 철순이는 일기에 자기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꼭 영웅해병이 되겠노라 맹세했소. 책임성이 높은 부장동무가 세해전 자기가 직접 나서서 입대자의 소원을 풀어준 사실을 벌써 잊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

《장령동지…》

석공의 돌가루에 매닥질된 손에서 빠져나온 함마가 털썩 바위우에 무겁게 떨어져내렸다. 이어 자그마한 정대가 쩡그렁- 소리를 내며 바위에 부딪쳤다. 커다란 화강석덩어리가 그 크지 않은 충격에 부르르 떠는듯싶었다.

김수철소장은 푸들푸들 볼편을 떨었다.

석공은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의 오른손에 난 상처자리가 수철소장의 눈을 아프게 자극했다. 석공은 어깨를 떨며 흐흑- 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음섞인 소리로 속을 터놓기 시작했다. …


대복이를 병원에서 데려간 집은 자식이 없었다. 3대독자 외아들이 전쟁때 학교 갔다오다가 미제놈비행기를 만나 기총탄에 잘못되였다고 했다. 새 아버지, 어머니는 친자식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고 돌봐주었다. 그들은 대복이를 미국놈들에게 잘못된 그 아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대복이도 그에 습관되여 학교에 갈 때 이름을 바꾸었다. 새 아버지는 석공이였는데 사람들이 대복이를 친아들로 믿게 하기 위해 여러번 이사를 했다.

《사회에 나와 전승기념관에 갔던 나는 놀랍게도 친아버지가 공화국영웅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가슴이 터질것처럼 놀랍고 기뻤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영웅의 아들이라는것을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지어 새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말입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제구실을 못하고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새 아버지, 어머니가 그처럼 극진히 돌봐주는데도 골골 앓기만 하면서 남의 짐이 되군 하였으니까요. 나가 일하는 날보다 병원침대에 누워있는 날이 더 많았구…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내가 제구실을 해서 영웅의 아들답다는 말을 들을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내가 바로 림병초영웅의 아들입니다.〉하며 나서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아글타글하기는 했지만 아직두 난…》

김수철소장은 가슴이 뻐근해옴을 느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동무는 아들을 잘 키우지 않았는가. 이 댕기를 보오. 이것이 그때 내가 동무에게 준 그 해병모댕기가 맞지?》

김수철은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해병모댕기를 꺼내보이며 갈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렇게 귀중히 여기시는 림병초영웅의 해군댕기가 전사한 철순의 몸에서, 동무 아들에게서 나왔단 말이요.

구잠함 722호의 수뢰수 림철순은 할아버지가 남긴 해군댕기를 품에 고이 간직하고 조국의 바다를 지켜 훌륭한 해병으로 군사복무를 하던중 장렬하게 전사했소. …》

김수철소장의 손에서 색날은 해군댕기가 바람에 불려 기발처럼 날린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멀리 하늘끝에서 들려오듯 커다란 진폭을 가지고 마주선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얼마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에 따라 동무의 아버지- 림병초영웅의 유해가 새로 건립된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안치되였소. 묘비에는 림대복이라는 이름이 묘주로 새겨져있소.》

돌을 깎으며 한생을 살아온 늙은 석공은 드디여 무릎을 꺾었다.

《그런줄 모르고… 전… 전…》

김수철소장은 영웅의 아들을 찾으려 애쓰던 이야기를 구태여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60나이가 썩 지난 석공의 돌가루발린 손에서 잃어진 손가락들을 찾아보는 그 눈빛을 통하여 과묵한 그의 마음속에 옹이져있는 아픔을 력력히 읽을수 있었다.

몸이 허약하고 손까지 상한탓에 군인선서를 할수 없었던 림대복은 무거운 마치를 들고 영원히 변치 않는 돌과 함께 한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걷던 길을 손자가 굳세게 이어가도록 마음을 썼다. …

《철순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널 아신다. 너의 할아버지도 다 알고계신다. 못난 이 아버지도…》

사랑하는 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듣고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는 드디여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가슴에 한생토록 배겨있던 무거운 돌을 삭여내는 뜨거운 눈물이였다. …

그는 아들이 인민군대에 입대하면서 품에 깊이 간직하고 떠나간 해병 모자의 댕기, 아버지의 유산인 해군댕기를 정중히 받아들었다.

댕기에는 반세기전과 다름없이 《조선인민군 해군》이라는 일곱글자가 또렷이 새겨져있었다.

11월 1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이 아침 손수 하얀 꽃 한송이를 용사묘의 화환진정대에 놓아주시였다.

함장 박명호로부터 마지막전사 림철순에 이르기까지 희생된 용사들의 돌사진도 하나하나 다 보아주시였다.

금시라도 뛰쳐일어나 자신의 품에 안겨들것만 같은 해군용사들의 름름한 모습을 보시며 그이께서는 지난해 2월에 있었던 그들과의 뜻깊은 상봉의 날을 돌이켜보시였다. 파도가 휩쓰는 갑판에 성벽마냥 어깨를 겯고섰던 모습들…

그이께서는 해군용사들이 순간도 자신의 곁에서 떨어져있은적 없었던것처럼 생각되시였다. 그들은 살아있을뿐아니라 오늘도 래일도 함대의 선두에서 우리 당 기발을 펄펄 날리며 자신과 수백만 전우들과 함께 영웅적인 전투항행을 계속하리라는것을 굳게 믿으시였다. …

바다바람에 힘차게 나붓기는 해병모의 댕기며 거기에 새겨진 《조선인민군 해군》이라는 글발…

마가을의 서느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용사묘의 뜨락에는 봄날과도 같이 따스한 해볕이 내려앉고있었다.

《김수철소장동무, 림대복동무… 이젠 마음들을 놓으시오.》

김정은동지께서는 화석마냥 굳어진 림대복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철순이는 조국을 위해 고귀한 생을 바친 영웅의 후손답게 살았소.》

《최고사령관동지…》

《앞으로 세월이 백년, 천년이 흐른다 해도 우리는 여기에 고이 잠들어있는 새 세기의 해군용사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입니다. …》

가을종다리 한마리가 푸른빛이 어우러진 하늘 어데선가에서 잘 여문 목청으로 짧게, 길게 소리를 뽑아내고는 푸드득 깃을 쳐 날아오른다.

그이께서는 구름 한점 없이 개인 하늘을 향해 눈길을 드시였다. 맑고 아름다운 종달새의 지저귐소리에 잠간 마음을 주셨다가 곁에 선 총정치국 부국장을 향해 말씀을 이으시였다.

《용사묘를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묘지에는 묘주가 있어야지. …》

《예, 합장묘인데다 태반이…》

총정치국 부국장이 말끝을 흐렸다. 희생된 용사들중 대부분이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들이여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로서는 답을 찾을수 없었던것이다. 그의 고충이 리해되셨다.

《희생된 용사들의 묘주는 응당 우리 당이 되여야 합니다. 묘비에 나의 이름을 새겨넣으시오. 이 용사묘의 묘주는 김정은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최상민부부장동무, 한생을 석공으로 살아온 림대복동무에게 과업을 줍시다. 그러면 아버지의 직업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림철순이가 아마 기뻐할것입니다.》

《알겠습니다. …》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수철소장과 림대복의 손을 잡으시고 오래도록 군항을 바라보며 서계시였다.

묘소에서는 군항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온다. 이제는 여기에 잠든 용사들이 자기의 사랑하는 군항과 전우들의 모습을 보며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쁨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게 되리라. …

군항의 부두에서 소금내 배인 바람이 불어왔다.

림병초영웅의 해병모자에서 두오리 댕기가 거대한 기폭마냥 나붓긴다.

나붓긴다. …


주체10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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