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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해군댕기

4

쏴-처절썩-

바다는 끝없이 설레인다. 백사장을 어루쓸며 어리광치는 모양은 마치 천진한 어린애가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움켜쥐고 깨꾸막질하는 모습같다고 할가. …

나지막한 모래둔덕아래에는 발가숭이가 된 꼬마들이 따가운 모래불을 깔고 엎디여있다. 찌는듯 한 해볕은 그러지 않아도 까밋까밋하게 불독이 오른 여윈 잔등들을 사정없이 내리지지고있다.

휘- 호이- 휘-

조무래기들은 저마끔 자기가 늘여놓은 옹노쪽으로 새를 몰아가느라 입술을 오무리고 새된 소리로 휘파람을 불고있다. 금방 하늘을 덮으며 날아와 내린 《더비》란 놈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어 거드름스럽게 머리를 조아리며 두세자욱씩 다가들었다간 한자욱 뒤로 물러서며 애타도록 옹노를 살금살금 피해가고있다. 모래를 쫒기도 하고 두릿두릿 사위를 살피기도 하는 새들은 귀엽기 그지없어 아이들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게 한다.

그중에서도 아래도리에 홑잠뱅이마저도 걸치지 않고있는 자그마한 녀석이 누구보다 극성이다. 동네에서 말썽가마리로 소문내고있는 김수철이다. 그가 백사장에 늘어놓은 말총옹노가 대여섯발 잘되고있다.

문득 《더비》무리에서 푸드득 나래접는 소리가 나더니 한놈이 급기야 하늘을 바라고 날아오른다. 뒤미처 수십마리의 《더비》들이 나래를 퍼덕인다. 얼마나 새가 많은지 서로 나래 부딪치는 소리마저 들리는듯싶다.

《내거다, 내 옹노에 걸렸다.》

홈타기에 몸들을 숨기고있던 조무래기들이 와- 모래를 걷어차며 저마끔 옹노를 향해 내닫기 시작한다. 그런데 김수철은 웬일인지 발이 나가지 않는다. 다른 녀석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려 모대기는 《더비》를 손에 쥘듯 다가가고있는데 그는 옹노쪽으로 몇자욱밖에 옮겨놓지 못하고있다. 불현듯 누군가 뒤에서 다리를 걸어챈다. 김수철은 따가운 모래판에 얼굴을 박으며 넘어졌다. 확 뜨거운 열기가 이마를 지져주는 동시에 잔등을 내리밟는 모진 아픔이 다시한번 그의 온몸을 휘감는듯싶다.

《〈더비〉는 내거야.》

깔깔대는 웃음… 선주의 아들녀석이다. 여느 아이들보다 키가 한뽐이나 더 크다고 노상 으시대며 남을 업신여기는 고약한 버릇은 여전하다.

김수철은 짚신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발바닥이 불침이라도 맞는듯 뜨거워났으나 불끈 치솟는 분노를 누를길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두세걸음에 풀썩 꼬꾸라지고만다. 불판마냥 달아오른 모래판이여서 온몸이 그대로 불더미속에 갇혀버린듯만싶다.

《아…》

《더비》는 옹노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나래를 퍼덕인다. 말총이 견디지 못한다면…

아니, 놓쳐선 안돼…

불현듯 새의 나래가 유연하게 접힌다. 옹노에서 벗어난것이다. 하늘높이 날아올랐던 《더비》는 실망에 잠긴 아이들을 굽어보며 백사장을 유유히 두세바퀴 돌고있다.

아름다운 새는 드디여 하늘가 멀리로 사라져버리고말았다. 김수철은 이발을 사려물고 선주의 아들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멱을 움켜쥐고 힘껏 흔들어댔다.

《너때문에 새를 놓쳤다. 날 골려주려 우정 다릴 걸었지?》

《아, 수철이놈이 날 때린다. …》

…김수철은 참기 어려운 분노와 아픔, 갈증을 느끼며 힘겹게 눈을 떴다. 아스라하게 멀어져버린 어린시절의 환영을 되살려주는 자그마한 벗은 발들이 먼저 눈에 띄였다. 반짝이는 모래알들이 붙어있는 가느다란 종아리들…

모래판이 따가와선지 앙증스런 발가락들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있다. 옴지락거리는 그 자그마한 발모양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마을이 있을것이다. 마을에 가면…

《야, 눈을 떴다.》

《정말…》

애녀석들이 주고받는 호기심어린 말이다.

《나쁜 사람이 아닐가?》

사내애의 목소리다. 나이가 든 모양 말마디가 제법 여무지다.

《착한 아저씨야. 다리에서 피가 나왔지 않니?》

처녀애의 목소리가 나직이 변호했다. 김수철은 자기가 아이들의 의혹의 대상이 되고있음을 알았다. 림병초가 일러주던 말이 먼 꿈속에서 속삭이는 소리처럼 울려왔다.

《해병모자를 잘 간수해야 해. 주문진해전이 있은 날 우린 이 모자 덕에 살아날수 있었어.》

《조선인민군 해군》…

금박으로 새긴 글자들은 바다물에 거밋이 색이 꺼져있었으나 사람들은 미제와의 판가리결전을 벌리고있는 인민군용사들을 인춤 알아보았었다.

그러니…

김수철은 괴롭게 몸을 뒤척였다. 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림병초가 헤여지면서 머리에 씌워준 모자가 목에 매달려있었다.

《야, 인민군대… 해병아저씨다!》

사내녀석의 입에서 대뜸 탄성이 튀여나왔다. 김수철은 긴숨을 내쉬였다. 아이들이 해병아저씨를 알아보는것으로 미루어 자기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왔음을 알았던것이다.

캄캄한 밤…

적함에서 번뜩이던 포격의 차거운 빛줄기, 전마선이 부서져 자그마한 널쪼박에 의지하여 헤염을 쳐야 했던 때의 피타는 절망…

모든것이 괴로운 꿈마냥 아득히 멀어져갔다. 모래불도 더는 따갑지 않았다. 다리의 아픔도, 가슴을 조여주던 긴박감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래일이면 부대에 돌아가 림병초를 얼싸안고 내가 어떻게 헤염을 쳐 한적한 이 도래굽이에 이르렀는지 이야기하리라, 꼬마들의 속삭임이 얼마나 반갑고 다정하였는가 하는것도. …

김수철은 입술을 이그러뜨리며 소리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아픔을 잊고 머리를 모래판에 떨구었다. 의식을 잃었던것이다. …

《제가 인민들의 지성어린 간호로 건강을 회복하고 부대로 돌아갔을 때는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 2달이 더 지난 어느날이였습니다. …》

김수철은 당중앙위원회 최상민부부장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전후복구건설이 한창이던 어느날 뜻밖에도 최고사령부에서 한 젊은 장령이 내려와 담화를 하였다. 장령은 수철이네가 진행한 전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묻더니 미소를 지었다.

《동문 갓 입대승인을 받고 아직 군복도 입지 못했댔는데 어떻게 전투장에 따라나갔댔소?》

김수철은 머리를 떨구었다.

《미국놈들의 함포사격에 저는 집과 아버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 원쑤를 갚고싶어서… 떼를 쓰다가 무작정 전마선에…》

《음… 생각했던것보다 어린 동무구만. 몇살이요?》

《열여섯살입니다.》

《기특하오, 잘 싸웠소. 림병초동무의 행처에 대해선 지금껏 모르고있었다지. 이게 무엇인지 알수 있소?》

김수철은 장령이 내보이는 자그마한 쇠쪼박에 씌여진 수자를 읽었다.

《ㅎ053243… 이건 림병초동지의 군표입니다.》

《알겠소. 그를 잊지 마시오. 그는 참된 해병이였소.》

장령은 꼬마해병의 여린 두어깨를 꽉 잡고 흔들어주었다.

며칠후 김수철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자기들이 단행한 적함선에 대한 기뢰공격과정과 전투결과를 보고받으시고 몸소 높은 치하와 감사를 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전달받았다.

김수철은 부대지휘관들과 함께 어느 해변가마을을 찾았다.

높지 않은 야산언덕에 흙밥이 생생한 봉분이 솟아있었다. 묘지에는 정성들여 다듬은 자그마한 소나무말뚝이 세워져있었다. 이곳 인민들의 성의가 깃든 묘비였다. 10월의 해볕에 송진이 흐르고있는 묘비에는 먹으로 이런 글자가 정히 씌여져있었다.

《림병초, 조선인민군 해병.》

태여난 날은 물론 전사한 날자도, 묘주의 이름도 없었다. 김수철은 봉분앞에 무릎을 꿇었다.

《림병초동지, 부대에 돌아오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홀로 여기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

안내하던 군당위원장이 봉분에 깃든 사연을 이야기했다.

《얼마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원수님께서 우리 수산협동조합을 찾아주시였습니다.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 복구건설에 떨쳐나선 인민들에게 보내주자고 말씀하시던 원수님께서는 문득 정전을 며칠 앞두고 여기 앞바다에서 미제침략군 함선 3척이 단번에 침몰되는 큰 전투가 있었다고 하시면서 저희들에게 전투에 참가한 우리 해병들속에 전사자가 있는데 바다날씨가 나빠 찾을수 없었다고 가슴아프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래서 저희들이 정전되기 얼마전 우리 지역 앞바다에서 함포사격을 해대던 미국놈들의 군함이 침몰되는 전투가 있은 사실과 그후 한 해병의 시신을 찾아 안장한 일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보고를 받으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그에게서 다른 물건이 나진것은 없었는가고 다시 물으시는것이였습니다. 제가 군표가 나졌다고 말씀올리자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빨리 전사한 해병의 신원을 알아보라고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아…》

김수철은 그제야 자기에게 인민군장령이 찾아오게 된 사연과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친히 보내주신 감사표창에 헤아릴길 없이 크나큰 은정과 사랑이 깃들어있음을 알게 되였다. …

최상민부부장은 김수철장령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있었다.

《림병초영웅의 해병모를 그의 아들에게 전해주던 때가 기억됩니까?》

《물론이지요. 건강을 회복하고 부대로 돌아가던 길에 저는 림병초영웅의 고향에 들렸습니다. 그때에야 나는 전쟁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영웅의 안해마저 미국놈들의 폭격에 잘못된 사실을 알게 되였습니다.

나는 고아가 되여 리당위원장네 집에 얹혀살고있는 대복이에게 아버지의 유물인 해병모자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영웅칭호를 받지 못했던 때라 그저 아버지의 위훈담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후 군관이 된 나는 대복이를 데려다 함께 살려고 그의 고향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그해 가을 리당위원장은 밤중에 반동놈들의 수류탄습격을 받아 가족들과 함께 잘못되고 대복이는 피투성이가 된채 군병원으로 실려갔는데 그후엔 소식을 모른다는것이였습니다. 어느 마음 고운 사람이 자기가 대복이를 키우겠다면서 병원에서 데려갔다는데…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몇년간은 그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후엔…》

김수철소장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림병초영웅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때 미국놈들의 포격에 전마선이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부대에 돌아올수만 있었다면…


김정은동지께서는 오래도록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마음이 무거우셨다. 영웅의 유물을 찾으려던것이 이제는 영웅의 아들을 찾는 일로 되였다.

림대복이, 그는 어디에 있는가.

《김수철장령에게 영웅의 유물을 찾을데 대한 과업을 줄 때 이런 일도 예견했어야 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정전을 며칠 앞두고 있은 해병들의 적함에 대한 기뢰공격전투와 그후의 일들에 대하여 교시하시였습니다. 수령님의 교시를 마음속에 새겨두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선시찰의 길에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강원도의 바다가마을에 있는 림병초영웅의 묘소를 친히 돌아보시였습니다. 그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현지지도하실 때에도 림병초영웅이 남긴 해병모자에 대하여 뜨겁게 회고하시였습니다. …

그 해병모자에는 이렇게 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습니다.》

《원수님, 제가 대원수님들의 높으신 뜻을 다 알지 못하고 일해왔습니다. 그리구… 원수님께서 그 문제로 얼마나 마음을 쓰고계시는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동무 잘못이 아닙니다. 영웅의 모자를 함께 찾자고 할 때 나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렇게 깊은 곬이 패워져있으리라는것도 예견하였습니다. 우리가 찾는 답이 쉽게는 나오지 않을것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최상민부부장은 눈굽이 젖어들었다. 위인들의 한없이 뜨거운 인정의 세계가 헤아릴길 없는 중량감을 가지고 가슴에 안겨오는것을 느꼈다.

그이의 심원한 사랑의 세계에 살고있는 자기가 더없이 행복함을 감격속에 다시금 깨닫게 되였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확신넘친 어조로 말씀드렸다.

《원수님, 영웅의 아들을 꼭 찾아내겠습니다.》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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