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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해군댕기

3

쿵…쿵…

적함포의 오만한 포성이 정적을 깨뜨린다.

멀리 수평선에 떠있는 여러척의 함선들이 겨끔내기로 불을 토하기 시작한다. 얼핏 떴다 사그라져버리는 불빛은 바로 그 함선들에서 일어나는 발사의 섬광이다.

피빛과도 흡사한 벌건 빛줄기가 부드럽게 숨쉬는 검푸른 물면에 잠간씩 비꼈다가 자취없이 사라져버리면 기다린듯 물결이 높아진다.

전마선 한척이 뒤설레는 파도를 타고 적의 군함들을 향해 다가가고있었다. 노대의 나지막한 마찰음이 어둠에 깃든 형언할길 없는 긴장과 서서히 줄어들고있는 폭발의 시각을 상기시켜줄뿐이다. 노를 젓고있는 사람도, 선수에 앉아 긴장한 눈길로 적함선들을 살피고있는 사람도 말한마디 하지 않고있다.

시간이 갈수록 파도는 더욱 높아지고있었다. 함포의 섬광도 한층더 강렬해졌다. 적함에 가까이 다가서고있는것이다. 이제는 파도가 일렁이는 서슬에 배우에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졌다.

《준빗!…》

《알았습니다.》

선수에 앉아있던 자그마한 그림자가 바싹 허리를 굽히고 선미를 향해 다가왔다. 파란 줄무늬의 얇은 해병샤쯔가 가냘픈 허리를 감싸고도 남아 바다바람에 기폭처럼 퍼덕인다. 힘에 부친 바다일에선 애숭이로 취급되기도 할만 한 나이이다. 노를 젓던 구대원이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노대를 끄당겨 선미에 가로놓은 다음 허리를 굽혀 물에 잠긴 바줄을 찾아쥐고 당기기 시작했다. 인츰 거밋하게 번들거리는 둥근 무쇠덩이가 보일가말가하게 물우에 드러났다. 기뢰였다. 그뒤로 또 하나의 무쇠덩이가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구대원은 기뢰들이 파도에 밀리지 않게 바짝 바줄을 당겨잡고 짤막하게 명령했다.

《안전핀 해체. …》

몸모양이 설핀 애숭이 《해병》이 자빠진 노대를 밀어놓고 흔들리는 쪽배의 고물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앞으로 조금 당겨주세요, 조금만 더…》

끙끙 갑자르며 기뢰의 안전핀을 뽑느라 애쓴다. 한동안 진땀을 흘린 그의 입에서 단숨과 함께 외마디 대답이 튀여나왔다.

《됐어요.》

《음, 안전핀을 뽑았단 말이지?》

구대원의 짧고 긴장한 목소리다. 애숭이는 이마에 돋은 땀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낮에 배워준대로 했어요.》

그는 허리를 펴고 제법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보였다. 구대원은 총부혁을 천천히 앞으로 당겨잡았다. 따발총을 벗겨들고 잠간 들여다보다가 애숭이 《해병》을 향해 나직한 어조로 명령했다.

《총을 받으라구…》

《총은 왜 내게 주나요?》

《어서!》

애숭이는 더 묻지 못했다. 구대원의 두눈에서 타오르고있는 엄한 불길을 보았던것이다. 총은 차겁고 무거웠다. 꿈에도 바라던 총을 받아들고서도 어덴가 못미더운지 상대편의 뻣뻣하게 굳어진 얼굴을 보고만 있을뿐이다. 구대원은 빛이 바랜 하늘에 한가득 돋아난 뭇별들을 보며 잠간 서있었다.

《총은 곧 목숨이야. 순간도 손에서 놓으면 안돼.》

《알았습니다. …》

《자, 이젠 선수쪽으로 물러서라구. …》

애숭이 《해병》은 잠간 머밋거렸다. 구대원의 의도를 알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곧 기우뚱거리는 좁은 배우에서 날렵하게 몸을 날려 선수쪽으로 물러갔다. 구대원은 어둠을 쫓느라 잔뜩 눈귀를 쪼프리고 물에 잠긴 기뢰의 상태를 꽤 오래동안 살펴보았다. 마침내 허리를 폈을 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있지 않았다. 드디여 적함선들과 대결할 시각이 다가온것이다. 기뢰와 련결된 바줄을 조심조심 풀어주고나서 무뚝뚝하게 애숭이 《해병》을 칭찬했다.

《괜찮아, 이젠 기뢰의 안전핀도 제법 해체할줄 안단 말이야. …》

애숭이 《해병》은 얄팍한 입술을 꽉 깨물고있었다. 아직은 삶과 죽음의 계선이 어디에 그어져있는지 그로서는 다 알수 없었다. 잠간 지척에 보이는 적함선을 쏘아보고있다가 나직이 대답했다.

《나도 이젠 당당한 해병이예요.》

《좋아, 이제 부대에 돌아가면 정치부에 제기해서 김수철동무가 조선인민군 해군에 입대하는 군인선서를 하게 해주지.》

《정말이나요?》

《그럼, 아직 군대냄새가 나려면 좀 멀긴 하지만… 소원대로 부모님들의 원쑤를 갚아야지?》

구대원은 싱긋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니 갓 서른에 접어드는 끼끗한 젊은이다. 그는 자기의 머리에서 하얀 덧카바를 씌운 해병의 둥글모자를 벗어들었다. 모자의 댕기가 손목에 감겼다.

《이 모자를 써봐. …》

《아주 날 줄래요?》

《그럴수도 있지.》

애숭이 《해병》의 입귀가 더욱 벙긋해졌다. 큰 모자가 머리우에서 빙글빙글 팽이질을 해댔으나 제법 욕심꾸러기답게 몫을 챙기려들었다.

《꼭 맞아요.》

구대원은 전마선바닥에 놓여있던 바람이 들어있는 쥬브짝을 찾아내여 바줄로 묶었다. 물에 불어난 바줄의 한쪽끝을 기뢰와 련결된 바줄에 이어놓고 쥬브를 물에 떨구었다. 그리고는 잠간 생각에 잠겨 애숭이를 여겨보았다.

《이젠 널 어떻게 부를가?》

《어떻게 부르다니요? 나도 이젠 당당한 군인입니다. 해병이지요.》

《그렇지, 조선인민군 해군 전사 김수철동무.》

생각지 않았던 군인대접이다. 애숭이 《해병》은 후렁한 해군샤쯔의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한켠으로 기울어진 모자를 바로잡았다.

《옛, 조선인민군 해군 특무상사동지, 어떤 명령이라도 주십시오.》

짜랑짜랑 여문 목소리다. 구대원은 어둠속에서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좋아, 첫 대렬점검에서도 합격이야. 바람이 세게 불면 모자가 날아나지 않게 댕기를 입에 꼭 물고있어야 해. 그리구 물에 뛰여들 때엔 군모의 댕기를 목에 꼭 감으라구. 해병이 댕기를 잃으면 어떻게 된다는걸 알지?》

《옛, 조선인민군 해군이라는걸 알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좋아, 그걸 잊지 말아. 이젠 작별하자. 어서 노를 잡으라구.》

애숭이 《해병》은 자꾸 어깨 한켠으로 처지군 하는 따발총을 바로 메려 애쓰며 묵직한 노대를 넘겨받았다. 구대원은 전마선의 선미에서 기뢰와 이어진 바줄을 풀었다.

《동무의 입대청원은 부대정치부에 보고해서 이미 승인을 받은거구 군복은 내 배낭속에 있는걸 줄궈입으면 될거야. … 사품도 배낭안의것들을 그대로 쓰면 돼. 그리구… 동문 날 잊으면 안돼.》

《?!…》

《자, 이젠… 잘 가라구. 》

애숭이 《해병》은 그제야 자기에게 무기를 넘겨준 구대원의 속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는 노대를 집어던지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예요. 나도 같이 가겠어요.》

구대원은 불이 이는 눈길로 애숭이를 쏘아보았다.

《동문 부대로 돌아가야 해. 기지장동지를 만나 내가 인춤 돌아온다고… 꼭 부대에 돌아올것이라고 보고해야 돼.》

자그마한 아량도 담겨져있지 않는 명령이였다. 애숭이 《해병》은 그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구대원은 뒤설레이는 바다물에 첨벙 몸을 던졌다. 검푸른 바다물은 소리없이 자기의 아들-해병 림병초를 넓은 품에 받아주었다.

물속에서 긴팔을 벌려 헤염을 치며 림병초가 나직이 소리쳤다.

《전마선을 잃어버리면 안돼. 그게 있어야 미국놈들을 이기구 고기잡이를 할수 있거던.》

《림병초동지…》

《빨리 이 수역을 벗어나라. 래일 저녁 부대에서 만나자.》

림병초는 멍청하니 서있는 김수철을 향해 싱긋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한손을 들어 뜻밖에도 군인의 거수경례를 보내주었다.

《잘 가라구, 수철이… 꼭 훌륭한 해병이 돼야 해.》

우리 조국의 바다에 깊숙이 기여들어 매일과 같이 함포사격을 해대던 미제침략군놈들의 군함이 3척이나 침몰된 소식은 기지의 해병들과 주변마을 인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놈들의 나머지 함선들은 우리 해안에서 부랴부랴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이제는 낮에도 밤에도 바다가마을들이 더는 적함포의 성화를 받지 않게 되였다.

그러나 림병초는 부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안전핀을 해체한 기뢰를 안고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적함선들을 침몰시켰던것이다.

얼마후 전쟁이 끝났다. …

《원수님, 림철순병사의 사진을 새로 형상하였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보시던 문건들을 한켠으로 밀어놓으시였다.

《어디 봅시다.》

최상민부부장이 가져온 사진은 두장이였다. 이미 보셨던 사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림철순이였다. 사진속의 병사는 끝없는 행복으로 환히 웃음을 짓고있다. 먼저사진과는 얼굴모양조차 달라져보였다.

《며칠전에 가져왔던 사진에서는 눈을 감고있었지. …》

김정은동지께서는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붉은 천에 휩싸인 림철순의 사진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시였다.

자신의 팔굽을 부여안고 의젓한 자세로 서있는 림철순이, 량볼은 발깃하고 줄 하나뿐인 해병견장을 단 어깨를 높이 추켜올리고 무척 뻐기는 자세다.

이렇게 씩씩한 청년이 입대를 앞두고 부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무슨 일때문인지 의기소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어떤 고민거리를 안고있었을가. 마음속에 응어리진것이라도 있어 그것을 풀지 못하고 희생되였다면…

《철순이는 훌륭한 해병으로 자라날 청년이였소. …》

그이의 어조에는 애틋한 정이 담겨있었다. 서로 어깨를 겯고 허물수 없는 성새마냥 자신을 옹위하고 선 름름한 해병들, 모두가 행복에 겨운 얼굴들이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의자를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구잠함에 승선했던 해병들이 전사했다는 가슴아픈 소식을 받으시고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떠나 평양으로 돌아오시던 길에 끝없이 가슴을 울려주던 심뇌의 목소리가 무엇이였던가를 그이께서는 진작 깨치고계셨다.

사랑하는 전사들에게 자신의 마음 한부분이나마 남겨줄 자그마한 가능성마저도 영영 잃어지고말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지는듯싶으셨다. …

(그들을 그렇게 떠나보내다니…)

김정은동지께서는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가을밤이여서 또글또글 여문 별들이 가없이 넓은 하늘끝까지 한가득떠 반짝이고있다.

《최상민동무, 지난 2월 함대기동훈련이 끝난 다음 전사들을 만났을 때… 림철순이만은 아버지에 대한 자랑이 없었지. 기억나지 않소?》

《최고사령관동지, 그때 철순이는 아버지가 돌에다 글을 쓰는 석공이라고 하면서 웬일인지 부끄러워했던것 같습니다.》

오랜 당일군인 최상민이 몇달전에 있은 일을 잊었을수 없었다.

림철순에 대해 뚜렷이 기억에 남게 된건 무엇때문이던가. …

그는 나이가 제일 어렸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에 대하여 별로 자랑할것이 없다는듯 한 인상을 주는것이 주의를 끌었다. 누구의 아버지는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친 용해공, 누구의 아버지는 영웅농장원…

하지만… 석공이라고 왜 자랑할것이 없겠는가. 그런데 그는…

그러나 대답만은 씨알이 먹었다고 할수 있었다.

《아버진 저에게 해병으로 바다에서 살며 바다를 지키는것이 좋겠다고, 사내에겐 전투함선을 타는것이 해볼만 한 일이라고 말하군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니 철순인 영원히 해병으로 바다를 지켜가겠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

그렇게 선명한 표정을 가지고 씩씩하게 군사복무를 하고있던 림철순이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붉은 천에 싼 사진들을 넓은 집무탁 한켠에 손수 차곡차곡 가려놓으시였다.

《이 사진들은 합격이요. 가족들에게 빨리 보내줍시다.》

《알았습니다.》

《용사묘가 다 되였다니 내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영결식을 하기 전에 그들에게 뭔가 더 해줄것이 없겠는지… 그리구 최상민부부장동문 김수철장령을 만나보아야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책상우에서 김수철소장이 올린 편지를 집어드시였다. 이제는 김수철장령이 제기해온 해병모자문제를 해결할 결심이셨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해군관을 해설하는 김수철소장이 인상깊었습니다. 남달리 키가 크고 얼굴은 너부죽하고… 아마 한땐 멋쟁이였을것입니다.

원산시를 페허로 만들려고 함포사격을 해대던 미제침략군함선들을 자그마한 전마선에 기뢰를 달고나가 족쳐댄 우리 해병들의 전투담은 체험자인 그가 아니라면 그렇게 실감있게 이야기하지 못할것입니다.

내가 새로 꾸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돌아보면서 영웅들이 남긴 유물들을 모두 거기에 가져다 진렬해놓으면 좋을것이라고 한 말을 듣고 그가 해병모자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상민의 얼굴에 어줍은 웃음이 피여났다.

《원수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그때 김수철동무가 해병모자에 담긴 긴 사연을 자초지종 다 설명해올리기에 제가 좀 싫은소리를 했던것 같습니다. 》

김정은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가 기억을 바로했다고 생각되시였다.

《마음이 고정한 아바이가 그 해병모자때문에 지금 무척 마음을 쓰고있을것입니다.》

김정은동지의 어조에는 근심이 담겨있었다. 나이가 적지 않은 사람이, 전우들에 대한 추억을 지팽이삼아 남은 생을 살고있는 로병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이 쩌릿해지는것 같으셨다. 그를 더 잘 돌보아주어야 하리라고 생각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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