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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해군댕기

2

소리도 없이 늠실대는 바다.

맞설수 없는 힘, 가늠할길 없는 미지의 세계…

밤바다는 자기의 억센 힘을 파도의 갈피마다에 깊숙이 묻어둔채 고요히 뒤설레이고있다.

침침한 물우에는 당장이라도 부서져버릴듯싶은 긴박한 정적이 떠 흔들리고있다. 끊임없이 뒤척이는 파도에 받들려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가고있는 전마선 한척…

물결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폭이 좁은 배는 자그마한 충격에라도 금시 뒤집혀버릴듯 불안스레 흔들리고있다. 바람에 불려 금방 물우에 떨어져내린 가랑잎같기도 한 그 배우에 두사람이 타고있었다.

후렁후렁한 해병내의로 무척 가냘파보이는 어깨며 잔등을 조심히 가리운 애숭이청년, 고물에서 노를 젓고있는 억척같은 사나이…

굵직한 어깨우에 따발총을 엇가로 멘 그는 바다와 한덩어리가 되였다기보다는 무엇으로써도 갈라놓을길 없는 바다의 한 부분인듯싶다.

머리에는 꼭 맞는 해병모자를 썼는데 그 모자 역시 바다와 쪽배와 서로 뗄수없이 어울리고있다. 희끄무레 색이 바랜 덧카바, 이따금 모자의 댕기가 땀에 젖은 볼편에 날아와 수염턱을 건드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볼편을 만지작이는 댕기가 전혀 거치장스럽지 않은듯싶다.

오히려 그것이 제멋대로 날리도록 머리를 엇가로 젓기도 한다. 이물에 주저앉아 그의 름름한 모습을 부러운듯 훔쳐보던 애숭이가 저으기 눌린듯 한 목소리로 묻는다.

《우리가 정말 미국놈들의 군함을 족쳐낼수 있을가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기만 한다면야…》

《아직도 포를 쏴대는군요, 죽일 놈들. …》

《얼마 더 날치나 보자. 기뢰견인바줄이 풀리지 않나 잘 살펴야 해.》

노대가 배전을 긁으며 삐걱- 갈린 소리를 낸다. 구대원의 두툼한 입술은 볼편에 날아와 지분대는 댕기를 아예 꾹 물고있다. 어둠속에서도 이마를 건너지른 깊숙한 주름이 보이는듯싶다. 애어린 《해병》의 얄팍한 입술에 즐거운듯 미소가 떠 남실거린다.

그는 바다에 나서면 두오리의 댕기가 펄펄 날리는 해병의 둥글모자가 무척 부러웠다. 아직 그에게는 군복이 차례지지 않고있는것이다. 그가 바싹 여윈 몸에 걸치고있는 푸른 줄무늬의 헐렁한 해병내의도 구대원의것을 얻어입은것이였다.

그러니 모자까지 넘겨달라고 비위를 부리기엔 아직 자기에게 무엇인가 부족되는것이 있음을 알고있는 까닭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있다.

그들은 지금 원산앞바다에 기여들어와 밤마다 함포사격을 해대는 적들의 군함을 찾아가고있었다. …

《전쟁의 마감무렵 우리 해병들은 기뢰로 적함선들을 답새기는 가렬처절한 육탄공격까지 단행하였습니다. …》


…하루일이 드디여 끝났다. 이제부터 김수철소장은 퇴근하기 전까지 지나온 날들을 더듬어 회상담 비슷한 글을 쓰군 한다. 집필은 늦게까지 계속되기가 일쑤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은 글이다.

호기심 많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학술연구사들조차 그에게 쓰고있는 글이 어떤것인지 말해달라는 청만은 드리지 못하고있다.

삑-

야무진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옆에서 퇴근준비를 서두르던 녀강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안녕하십니까? 강사 김송희 전화받습니다.》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았구만. 김수철소장동물 바꿔주시오.》

김수철소장은 펜을 놓았다. 수화기에서 울려오는 정치부장의 사려깊은 목소리를 알아들었던것이다. 책상우에 널린 종이장들을 간종그리며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림병초영웅의 아들과 영웅이 남긴 유물을 찾아내지 못하여 당중앙위원회에 사죄편지를 올린 그날부터 그는 심기가 편안치 못했다. 어쩐지 귀중한 해병모자를 이제는 영영 다시 볼것 같지 못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화 바꾸었습니다.》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았군요?》

《예, 그저 좀…》

무엇때문인지 가슴이 뻐근해지며 숨이 가빠났다. 우정 느릿이 늘구는 정치부장의 덤비지 않는 목소리가 진동판을 나직이 흔들었다.

《그럴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보내준 용사묘의 형성안을 보고 견해가 섰습니까? 가령 어느 방안이 더 좋을것 같다는 정도만이라도…》

《예, 두가지 방안중에 연필로 소묘를 한…》

김수철소장은 말을 더듬었다. 머리가 복잡한탓인지 선명하게 표현할 말마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성미가 차분한 정치부장은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짤막하게 당부했다.

《이제 그 형성안들을 가지고 사무실로 와주십시오.》

금방 쉰고개를 넘어선 정치부장은 피로가 담긴 얼굴에 언제나와 같이 웃음을 짓고 김수철소장을 맞이했다.

《퇴근시간을 지체시켜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이것도 바쁜 일같은데…》

김수철소장은 안고온 종이장들을 책상우에 내려놓았다. 색을 먹여 깨끗하게 다듬은 형성안보다 단필로 굵직굵직하게 골격을 세워놓은 하얀 모조지우의 연필화가 더 감각적으로 안겨왔다.

《저는 연필로 소묘한 이 형성안이 마음에 듭니다. 용사묘의 전반적분위기가 주변환경과 어울릴뿐아니라 문주, 묘비를 비롯한 묘소의 구성요소들에 내포되여있는 주제가 명백하고 독특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치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간 기다려주십시오.》

정치부장은 송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조용조용 얘기를 주고받았다. 김수철소장이 용사묘의 두 형성안중에서 연필로 소묘한 형성안이 주제가 뚜렷하고 구도가 독특하다는 견해를 가지고있다는 보고였다. 이야기끝에 단숨을 내쉬며 송수화기를 놓았다.

《한대 태우십시오. 상급정치부에서 잠간 기다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부탁한다는 말은 조금 억양을 높여 강조했다. 나이가 많은 장령을 늦도록 사무실에 《붙들어》두는것을 미안스레 생각하는듯싶었다. 이야기를 주고받은 대방에 대하여서는 설명이 없었다. 김수철소장은 이즈음 별로 입에 대지 않는 담배를 한대 뽑아들었다. 그러나 피울 생각이 없어 정치부장이 집어주는 라이터를 외면하며 뜨직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뭐 별로… 조금 기다려야 할것 같습니다.》

김수철소장은 책상우에 놓인 종이장들을 조심히 번져놓았다. 소묘한 형성안을 이윽토록 들여다보고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용사묘가 해병의 군모를 상징하고있는게 의미심장합니다. …》

《해병모자를 상징하고있단 말이지요. …》

정치부장의 입가에 느슨한 웃음이 떠올랐다. 나이에 비해 일찍 처지기 시작한 눈꺼풀이 수북한 장미와 피로에 눌려 한층 부드럽게 쪼프려졌다.

《지금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용사묘의 형성안을 두고 무척 마음쓰고 계시는줄로 알고있습니다.》

《…》

김수철소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름깊은 얼굴이 이름할길 없는 감동으로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말소리도 더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형성안이?!》

김수철소장은 더 묻지 않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푹신한 안락의자 한쪽귀퉁이에 몸을 싣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형상하는데 참가했던 어느 한 예술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나서 기념비미술의 생명력을 조형성과 상징성, 구체성과 섬세성으로 특징지은것은 우리 식 미술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것으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가령 우리 해병들의 군모에는 〈조선인민군 해군〉이라는 일곱글자가 씌여져있습니다. 희생된 용사들의 돌사진을 붙이게 되는 화강석묘석이 바로 해병모자의 이 댕기와 비슷하단 말입니다.》

《댕기라… 그럼 용사들의 돌사진은 그 댕기에 씌여진 글자들을 상징하고있다?》

정치부장의 눈에서 이미 피로의 흔적은 찾을길 없었다. 탄력을 잃고있던 볼편마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켕기우는것 같았다.

김수철소장은 그의 달라져버린 얼굴표정을 잠간 여겨보았다.

《바로 보았습니다. 연필로 소묘한 형성안은 그렇게 착상이 독특합니다. 묘소를 둘러싸고있는 이 란간을 보십시오. 군항의 부두에 늘여놓은 안전란간의 묵직한 쇠사슬고리들을 련상시킵니다. 이젠 용사묘의 주인공이 해병이라는걸 확신성있게 말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

《그리구… 돌사진을 붙이게 되여있는 이 묘석들을 보십시오. 서로 련결되여있으면서도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비돌처럼 처리되였습니다. 화환진정대는 또 어떻습니까, 화강석받침대우엔 군기가 묵직한 기폭을 드리우고있는것만 같습니다. 새로 건립된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의 주제상은 총대에 꽂은 공화국기발인데 여기엔…》

김수철소장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듯 대담하고 심오한 착상은 아무나 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의 기본주제상을 놓고 창작가들속에서 론의가 분분할 때 한상의 소묘로 그 문제를 완전무결하게 해결해주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영상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그때처럼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 연필화를 보내주셨다면…

전화기가 낮으나 또렷하게 신호를 울렸다. 전화를 받고난 정치부장은 김수철소장을 의미심장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서 현관으로 나갑시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오신다는 련락입니다!》

늦은저녁이였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난 뒤여서 청사는 깊은 고요에 묻혀있었다.

김정은동지를 모신 몇명 안되는 일행은 곧추 해군관에 들어섰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의 영웅적해병들이 얼마 되지 않는 함선들로 미제침략자들의 오만한 코대를 꺾어놓은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여있는 방이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해군관을 돌아보시는 전과정에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그저 묵묵히 벌써 몇번씩이나 들어주신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계실뿐이다. 김수철소장은 조국해방전쟁시기 주문진해전에서 우리 해병들이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언제나와 같이 커다란 긍지를 가지고 해설해드리였다.

《1950년 7월 1일 조선인민군 근위 제2어뢰정대의 해병들은 조국의 령해에 침입한 침략선들을 야간어뢰공격으로 소멸해버릴데 대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대원수님의 전투명령을 받게 되였습니다.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결전의 시각을 기다리고있던 우리 어뢰정대의 해병들은 다음날 0시, 기지를 두고있던 속초항을 떠나 조용히 남쪽방향으로 항행을 시작하였습니다. …》

김수철소장은 주문진해전이 있었던 해에는 아직 해병으로 군대에 복무하지 못하고있었다. 나이가 어렸던것이다. 그러나 미제침략자들을 징벌한 우리 영웅해병들의 전투이야기는 전쟁의 마지막시각을 해병으로 보낸 그에게 더없는 긍지와 자부를 안겨주고있었다. 그는 근위 제2어뢰정대에서 첫 병사생활을 시작했던것이다.

《새벽 4시경 주문진앞바다에 이르러 우리 어뢰정대는 어마어마하게 무어진 적들의 대함선집단과 조우하게 되였습니다.

당시 미제침략군의 움직이는 섬이노라 자랑하던 중순양함 〈볼티모〉호는 함선의 길이가 205m, 배수량이 1만 7천 300t, 승무원이 1 700여명이였으나 우리의 어뢰정은 길이가 21m, 승무원 7명, 배수량은 17t으로서 무장은 어뢰 2발과 고사기관총 1정이 전부였습니다.

배수량으로 계산한데 의하면 중순양함 〈볼티모〉호 한척으로는 어뢰정과 같은 함정을 1만 3천여척이나 만들수 있다고 합니다. …》

《가만 …》

김정은동지께서는 강사에게 손을 흔드시였다.

《그날 전투에 참가했던 해병들이 모두 기지로 돌아온것은 아니였지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하시는 말씀의 깊은 뜻을 김수철소장은 인츰 깨달았다. 그는 잠시 말끝을 고루었다. 선뜻 대답을 올리기에는 물으시는 말씀의 의미가 너무나 심오하다고 느껴졌다.

《최고사령관동지, 전쟁은… 역시 전쟁이였습니다. 근위 제2어뢰정대의 정대장이였던 김군옥영웅과 전쟁의 마지막시기 원산앞바다에서 적함선집단에 대한 기뢰공격을 단행하고 전사한 림병초영웅의 이야기를 통하여… 저는 그때 우리 해병들이 육탄공격이라고 할만큼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전투를 치르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적들이 받은 손실에는 비할바가 아니지만…》

《림병초영웅도 주문진해전의 참가자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한 영웅이였습니다. 그런데…》

김정은동지께서는 말씀을 맺지 못하시였다. 곧추 김수철소장의 얼굴을 응시하시였다.

《아바이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이제는 그가 남긴 해병모를 찾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됩니까?》

《저로서는… 제가 림병초영웅의 아들 림대복이를 만난것은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미국놈들의 폭격에 어머니마저 잃고 리당위원장의 집에 얹혀있었는데… 후에 다시 가보니 그는… 없었습니다. 그후에도 몇번 찾아보기는 했지만… 워낙 관심이 적다나니…》

《…》

《최고사령관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이제 무슨 낯으로…》

《아바이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김정은동지의 음성은 갈리여있었다. 김수철소장은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에 담겨진 깊은 뜻을 리해하지 못한듯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근위 제2어뢰정대의 기정인 어뢰정 21호에 게양하였던 공화국기발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파편에 찢긴 기발에는 가렬처절했던 전투의 흔적들이 여전히 그때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이 기발을 보니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국을 지켜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싸운 영웅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해병모자가 두명의 우리 영웅들을 구원해주었다는 감동적인 일화 역시 잊을수 없습니다.》

김수철소장은 가슴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자기들의 크지 않은 전투일화마저 알고계실줄은 생각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시는 전화의 그날들이 생동한 화폭으로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는 길게 숨을 들이긋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주문진해전에서 미제의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격침시킨 우리 해병들은 놈들의 추격을 받으며 귀항하던중 생사기로의 위기에 빠지게 되였습니다.

적함포사격으로 함정이 침몰하여 뿔뿔이 흩어진채 제각기 뭍으로 헤염쳐가야 했던것입니다. …》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평소와 달리 말을 더듬는 김수철소장을 바라보시며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뭍에 오른 우리 해병들이 해안경비대군인들과 인민들로부터 적군으로 오해를 받았던 사연은 나도 들어서 알고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 일까지…》

《바다에서 며칠을 보내며 헤염쳐오다나니 그때 우리의 영웅해병들은 인민군군인이라고 확인할수 있는 아무 근거도 가지고있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림병초영웅의 목에 감겨있던 해병모자의 댕기가 다행하게도 그들의 신원을 보증해주었다고 합니다. 댕기에는 〈조선인민군 해군〉이라는 글자가 씌여져있었던것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림병초영웅은 그때일을 두고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53년 7월 원산앞바다에서 저에게 자기의 해병모를 넘겨줄 때에도 어떤 경우에나 해군댕기를 꼭 자기 몸에 지니고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래야 조선인민군 해군, 김일성장군님의 해군이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싸울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 사연을 어떻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후 어느날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해군부대를 현지지도하시던 길에 근위 제2어뢰정대 해병들의 전투일화를 보고받으시였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얼마나 크시였는지 장군님께서는 미제침략자들의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격침시킨 영웅해병들에 대하여 여러차례나 추억해주시였습니다. 몇해전 가을 동해함대의 어느 한 군부대를 현지지도하시는 기회에 나에게도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장군님께 해병모자에 깃든 사연을 말씀드린 일군이 김수철장령인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 장군님께서 그렇게도 다심하시게… 그렇게 깊이 심중에 새겨두고계신줄은 생각 못하고있었습니다.》

김수철장령은 목이 메여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수십년전 현지지도의 길에서 들으신 한토막의 전투일화를 한생토록 잊지 않으시고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회고하시고 귀중한 유산으로 후세에 남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그 깊고 뜨거우신 은정을 우리 전사들이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

김정은동지께서는 감격에 흐느끼는 김수철소장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고 나직이 물으시였다.

《아바이는 구잠함 722호에 대하여 잘 알고있겠지요?》

《최고사령관동지, 제가 한때 그 함의 함장이였습니다.》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구잠함 722호가 전투항행중에… 잘못되였습니다. 함에 승선하고있던 해병들은…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김수철소장은 휘여든 가슴에 버쩍 힘을 주었다. 가슴밑굽에서부터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귀중한 해병들과 함대의 자랑으로 되고있던 함선이 잘못되다니…

그러니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지금 얼마나 가슴터지는 아픔을 안고계시겠는가. …

김정은동지께서는 무거운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가슴아픈 소식을 아바이에게 전하자니 마음에 걸려서… 내가 직접 왔습니다.》

김수철소장은 머리를 떨구었다. 그이께서 얼마나 걱정이 크시고 마음이 아프시였으면 이렇게 밤길을 걸으시여 자기를 찾아주시였으랴 하는 생각에 눈굽이 젖어들었다. 동시에 영웅의 해병모자를 꼭 찾을데 대한 그이의 간곡하신 가르치심에 어떤 깊은 뜻이 깃들어있는가를 가슴깊이 절감하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매일, 매 시각 돌보셔야 할 수많은 중대사들을 뒤로 미루시고 옛 함장을 위로해주시려 찾아오신 최고사령관동지께 무엇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로병은 미처 알지 못하고있었다.

귀중한 전사들이 조국의 바다를 지켜 아낌없이 생명들을 바치고있는데 이 늙은것은 걱정많으신 최고사령관동지께 무엄하게도 부담이 되는 글월을 올리는 주책없는 망동을…

《최고사령관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아바이, 이 최고사령관과 우리 해병들, 아바이와 같은 로병들이 다같이 구잠함용사들이 남긴 전투임무를 끝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그들의 전투항행을 전우인 우리가 이어가야 합니다.》

《전우라 하신 그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자신의 혈붙이로, 생사를 같이할 혁명전우로 생각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오열에 떠는 김수철소장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조국을 위하여 바친 전사들의 생을 빛내여주고 그들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는것은 우리들이 응당 해야 할 일이고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짬짬이 용사묘의 형성안도 그려보았습니다. 그것을 오랜 해병인 아바이에게 보이고 의견을 들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뭐라고…》

《정치부장동무의 보고를 받아보니 아마 아바이의 생각이 나와 신통하게 맞아들어간것 같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수철소장의 손을 잡으신채 환하게 웃음을 지으시였다.

김수철소장은 자기의 가슴속 깊은 곳에 더미더미 서려있던 맺힌것이 봄날의 눈개비마냥 한순간에 말끔히 스러져버리는것을 느꼈다. 김수철소장은 하얀 모조지를 펴들고 눈물젖은 목소리로 말씀올리였다.

《저는 이 형성안을 만점짜리라고 생각합니다. 해군댕기와도 같은 묘석과 거기에 〈조선인민군 해군〉이라는 글자를 상징하듯 또렷이 새겨진 돌사진…》

《그것이 알리면 됐습니다. 해병이라는 군종상특성이 돋아나게 하려고 마음을 좀 썼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수철소장의 손을 뜨겁게 잡아흔들어주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어쩌면 그렇게…》

그이의 젊고 억센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김수철소장은 어깨를 떨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시였다.

《당에서는 희생된 구잠함용사들의 합장묘를 잘 만들어놓고 그들의 영웅적위훈을 길이 전해가도록 하려고 합니다. 60여년전 림병초영웅이 남긴 해병모자도 꼭 찾아냅시다. 나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김수철소장의 울음섞인 목소리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해군관의 넓은 홀을 울리며 오래도록 메아리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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