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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소원

탁 숙 본

군복입은 미술가인 리정철은 원래 편지를 길게 쓰는 성미가 아니였다. 병사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함경남도의 외진 산골에 자리잡고있는 한 자그마한 기계공장에서 직관원으로 일하고있는 그의 아버지는 군사우편엽서에 절반도 채우지 못한 아들의 편지를 받아볼 때마다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혀를 차군 했다.

《무슨 녀석이 이 모양인지, 그래가지구두 무슨 일을 치겠다구. …》

그때는 리정철이 부대에서 직관사업을 할데 대한 임무를 받아 수행하면서 장차 이름난 미술가가 될 꿈을 꾸고있던 때였다.

《영웅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며 군대에 나가더니… 군사복무나 착실히 할게지. …》

어머니도 편지를 보면서 섭섭함을 금치 못해했다.

이런 아버지, 어머니가 깜짝 놀라게 어느날 그는 밤늦도록 책상을 마주하고앉아 장문의 편지를 쓰고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로서는 우선 편지가 전에없이 긴데 놀랄것이고 그 내용을 읽어보고는 대번에 눈들이 커다래질 그런 편지였다.


1

밤이다.

비가 내리고있다. 바람이 불고있다.

대동강기슭에 늘어선 버드나무들이 잠시도 안정을 모르고 비바람에 휘휘 마구 뒤채이고있다. 리정철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허덕허덕 걷고있다.

뻐스는 집아근에서 멎었지만 사랑하는 안해와 자식들이 기다리고있는 불밝은 방안으로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강변으로 나온 그였다. 비를 그을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비를 맞으며 어디론가 끝없이 걷고 또 걷고싶었다. 다들 고이 잠든 한밤중에 조용히 집에 들어가고싶었다.

비는 계속 내린다. 주룩주룩주룩 비방울이 땅을 쉬임없이 두드려대는 소리가 마치도 자기를 질책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부진창작가… 자격…》

초저녁 퇴근하기 전에 상반년창작총화모임에서 창작사사장 한정민이 하던 말, 얼굴이 화끈했었다.

들을수 없었다. 귀가 멍멍해졌다.

뒤이어 수군수군 들려오는 소리…

《전엔 괜찮은 작품을 내놓았는데…》

《우연일수 있지.》

《하긴 전문대학을 못 나왔지.》

《기초가 약할수밖에…》

정철은 후- 하며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내가 정말 길을 잘못 든게 아닌가?)

정철은 방향없이 자꾸 걷기만 했다.

또다시 문득 들려오는 소리…

《에그, 이앤 앞으로 뭐나 되겠는지. …》

어머니의 한숨소리, 그것은 정철이가 중학교 2학년때 체육소조에서 미술소조에로 옮겨간 날 밤에 있은 일이였다.

아버지는 담배를 붙여물며 혀를 끌끌 찼었다.

꿈도 많던 정철이였다.

외진 산골마을의 크지 않은 중학교운동장에서 뽈을 찼지만 마음은 드넓은 세계의 이름난 경기장들을 달리고있었다. 처음엔 축구, 다음엔 롱구 또 다음엔 탁구, 다음엔 속도빙상…

《속도빙상이 좋을것 같소. 한필화선수와 같이 일본에 가서 이름을 낸 내 친구의 체격이 이 애와 비슷해.》

어느날 빙상훈련을 하다가 곤해서 쓰러진 자기의 다리를 뽐으로 재여보며 아버지가 한 말이였다. 아버지는 평양에 갔다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그런 멋있는 스케트를 사다주었다.

그만큼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도에서 진행된 500메터속도빙상경기에서 있는 힘껏 달렸지만 겨우 5등을 하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는 머리를 싸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빙상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럼 앞으로 무엇이 될것인가?…

얼마후 그의 생활에서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체육소조에서 미술소조에로 옮겨간것이다.

아버지는 아연해졌다. 그야말로 극단에서 극단이였다.

세상이 넓다좁다하며 뛰여다니던 애가 한자리에 꼼짝 안하고 앉아 그림을 그리다니…

체육교원과 미술교원사이에 많은 말이 오갔다고 한다.

《미술엔 천성적인 싹이 있어요. 정철학생은 미술을 해야 발전할수 있어요.》

미술시간에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미술교원이 교장선생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미술소조에 간 그는 처음엔 처녀애들이나 좋아할 소조라면서 맞갖지 않게 여기며 자주 뚜꺼먹군 했다.

처녀교원이 안타까이 집에 찾아다니며 요구했지만 아버지도 그닥 마음싸하지 않았다.

《뭐가 되겠는지, 난 앞이 통 보이지 않수다. 글쎄 앞으로 나처럼 이 산골에서 직관원은 할수 있겠지요.》

하지만 정철이도 날이 감에 따라 미술에 호기심이 동하는지 집에 와서 아버지의 화첩을 남몰래 뒤적거려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아버지가 보니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혹시 될수도 있지 않을가 생각해보았으나 이내 도리머리를 하군 하였다.

아무래도 미술가재목은 못된다고 생각했다.

나자신도 성공하지 못하고 고작 공장직관원에 머물지 않았는가. 그애마저 이 아비의 전철을?…

아버지의 속구구를 마치 알기라도 한듯 미술교원은 더욱 정열적으로 찾아다녔다.

《아버님, 걱정마십시오. 꼭 될겁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학교에 와서 그가 그린 그림을 보십시오. 교장선생님이 그 그림을 늘 가지고 다닌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고개를 기웃거리자 미술교원은 안타까이 말했다.

《정말입니다. 뜨락또르가 벼단을 가득 싣고 농장의 동구길로 연기를 퐁퐁 올려쏘며 달려가는 모습인데 얼마나 생동한지 몰라요. 확실히 정철이는 아이적 느낌을 생동하게 가지고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가 성공의 비결은 아이적 느낌을 일생 가지고있는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절 믿으세요.》

마침내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였고 정철이도 미술소조에 마음을 붙이게 되였다. 일단 미술소조에 정을 붙이게 되자 정철이는 오히려 남보다 더 극성이였다. 붓과 색감, 그림종이, 화판도 학교에 있는것보다 더 고급한것을 아버지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공장에서 직접 화판받치개를 만들어주면서도 아직은 미타해했다.

(그래도 빙상이 나았었는데…)

어느덧 중학교졸업시기가 닥쳐왔다.

이무렵 중학교졸업생들은 앞을 다투어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고있었다. 정철이도 례외가 아니였다. 오히려 주동이였다.

학교속보판에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조국수호의 영웅이 되자!》라고 쓴 호소적인 글발이 나붙었는데 그 힘있는 서체의 주인공이 바로 정철이였다.

정철이 군복을 입고 떠나는 날 아버지는 미술공부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마음쓰던 부담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며 여기 덥석, 저기 덥석 하더니 이젠 제 길에 들어섰다고, 사람구실을 하게 되였다고 시름을 놓았었다.

이렇게 군대에 입대하더니 1년만에는 뜻밖에도 직관임무를 맡아본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혀를 차지 않을수 없었다.

《전투영웅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떠나더니…》

리정철의 방향전환의 시발점은 중대정치지도원이 그의 학습장을 보다가 제목글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덧쓴 글씨를 본 때부터였다. 정치지도원은 대뜸 반색을 하며 그에게 전투소보를 써보게 하였고 거기에서 미술적인 재능이 있다는것을 알고 그에게 중대속보판을 만들게 하였다.

부대에는 조국청사에 새겨진 조국해방전쟁영웅들이 많았다.

강호영, 박원진, 조순옥…

영웅들이 당과 수령을 위하여 발휘한 위훈은 오늘 부대전투원들속에서 그대로 계승되고있었다. 정철은 전투정치훈련에서 매일, 매 시각 발현되는 전투원들의 모범을 순간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속보와 소보에 담아 소개했다. 그 과정에 미술적재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였다.

어느날 쌍방훈련에서 《적장》을 포로한 병사의 위훈을 소개하는 글과 함께 그 모습을 전투소보에 연필로 멋들어지게 그려넣었는데 이것이 중대정치지도원으로부터 크게 평가를 받게 되였다.

《정철동무는 확실히 미술에 재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대정치지도원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중대장에게 한 말이였다. 그무렵 인민군적인 미술작품전람회가 조직된다는 통보를 받고 중대정치지도원은 정철에게 말했다.

《중대생활을 그대로 그려 한번 본때를 보이자구, 중대의 명예를 걸고 말이요.》

정철은 흥분했다. 보람찬 병사생활을 정말 마음껏 그려보고싶었던것이다. 정치지도원의 방조속에 정철은 밤을 새워가며 붓을 달렸다. 마침내 《훈련에서 흘린 땀 남해에서 씻으리》, 《우리 부대 영웅들》을 완성하여 전람회에 올려보냈다.

작품을 올려보내고 그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가도 감감무소식이였다. 정철은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더니…)

그러던 어느날 땀을 흠뻑 흘리며 훈련을 하고나서 휴식시간에 전투소보를 쓰고있는데 중대정치지도원이 군인들을 전부 교양실에 모이게 했다. 중대정치지도원은 강연뒤끝에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리정철이 창작하여 올려보낸 그림 《훈련에서 흘린 땀 남해에서 씻으리》와 《우리 부대 영웅들》이 모두 1등으로 당선되였다는것이였다.

교양실에서는 환성이 터져올랐다. 정철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동무들은 앞을 다투어 정철의 손을 잡고 제일처럼 기뻐들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여 그후 정철은 부대지휘부로 소환되게 되였다. 그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모든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는 부대지휘부로 소환되여가던 도중 아름답게 단풍든 산천을 보고 뻐스에서 뛰여내려 화판을 펼치고 붓을 달렸다.

그 그림이 《내 고향의 단풍계절》이였는데 그 작품 역시 다음해에 열린 미술전람회에서 높이 평가되였다.

그리하여 리정철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태양의 빛발을 받아안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깊은 조치에 따라 리정철이 전문미술창작 기관으로 소환되였던것이다.

아! 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그때로부터 7년세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은?…

비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친다. 버드나무가 뒤설레인다.

또 옆에서 수군거리던 동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듯싶다.

그는 두주먹을 으스러지게 꽉 쥐였다.

아니, 그럴수 없다!

분발하자,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자.

그는 힘있게 걸음을 옮겼다. 다음날부터 새로운 결심을 안고 작품창작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이처럼 심혈을 다해 애써 그린 작품이 이번에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로부터 지적의 말씀을 받게 될줄이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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