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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우리의 계승

4

생활은 희로애락의 교차로 이루어지는듯싶다. 심기가 편치 않은 오성권이 며칠째 별로 과묵해지고 걸핏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군 해서 저으기 랭랭하고 어설퍼졌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딴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친정집에 갔던 며느리가 돌아온때문이였다.

그새 꽤 벌차진 손자녀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릎두리를 분주스럽게 맴돌며 피워대는 소란이 적적하던 가정분위기를 일변시키는 활기를 가져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것 보라요, 외삼촌이 사다준 총이다. 땅땅 뚜루룩!》

번쩍거리는 장난감자동보총을 비껴들고 으시대며 돌아가는 어린것을 무릎우에 끌어다앉히면서 오성권은 비로소 며칠만에 시름없이 웃었다.

《에그, 미운 일곱살이라더니 녀석, 분주스럽기두…》

며느리와 손자가 인차 돌아오지 않는다고 속이 알알해하던 때는 언제였더냐싶게 마누라가 혀를 끌끌 찼지만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져서 큰 눈을 슴벅거린다.

이때 뜻밖에도 출장지에서 보낸 아들의 편지가 인편에 날아들었다.

아이들 학습장만큼이나 두툼한 편지였다.

(녀석두, 게서 장창 살것두 아닌데 생뚱같이 무슨 편지질을?!…)

의문이 앞섰으나 마음이 절로 급해난 오성권은 편지봉투를 정성들여 뜯어내느라 앵두입술을 감쳐물고있는 며느리를 재촉하게 되는것이였다.

《아에미야, 어서 읽어봐라. 크게!》

천성적으로 아련한 며느리는 좀 수집어하면서도 은방울 굴리는듯 고운 목소리로 거침없이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 집에도 들리지 않고 떠나온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어머니의 당부대로 동지날엔 꼭 집에 들리려고 했댔는데 바쁜 일이 있다는걸 턱대고 이 아들은 그냥 훌 떠나오고말았군요.》

왜서인지는 모를 일이나 아들은 분명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감정을 여느때없이 강렬하게 느낀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야 뭘 그리 장황하게 썼을가. 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한테 각근했던 녀석이지. 사람은 본태를 내버릴수 없는게야.

내심 흐뭇해서 앉아있던 오성권은 갑자기 퍼들쩍 놀라며 자기 귀를 의심했다.

《령감, 이제 뭐라구 했수?》

마누라도 방금 들은 며느리의 목소리가 믿어지지 않는듯 성권의 얼굴을 뻔히 쳐다본다.

오성권은 후두두 뛰는 가슴을 한손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며느리를 독촉했다.

《다시, 다시 읽어다오.》

《예.》 벌써 두볼이 연붉게 상기된 며느리는 공손히 대답했으나 그 다음부터 목소리가 몹시 떨려났다. 《아버지, 어머니! 놀라지들 마십시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위대한 장군님을 보좌하시며 최전선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글쎄… 글쎄 제가 와있는 부대에 들리시여 저를 몸가까이 불러주신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럼, 우리 아애비가 그분을 만나뵈웠단 소리가 아니우?》

마누라가 가뜩이나 큰 눈이 전지불만 해져서 또 남편을 쳐다보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좀 가만있지 못하겠소? 아에미야, 어서!》

《그날은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는 날이였습니다.

찬바람에 야전복자락을 날리시며 병실뜨락에서 저를 기다리시던 그이께서는 그간 집을 떠나 수고가 많았겠다고 하시며 저의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집필된 도서원고를 평양을 떠나오기 전에 다보았는데 노력을 많이 한것이 알린다고, 그와 관련해서 생각되는 몇가지 문제때문에 이야기를 나누고싶어 불렀다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저의 사업과 생활에 다심한 정을 기울이시며 관심해주시는 그이의 손을 부여잡고 저는 목이 메여서 아뢰였습니다.

〈저 같은게 뭐라고 이 추운 날씨에…〉

너무도 크나큰 격정이 끓어올라서 무슨 말씀을 더 드려야 할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이께서는 정답게 웃으셨습니다.

〈덕찬동무가 괜한 걱정을 하는구만. 나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눈보라 사나운 겨울은 인간의 힘과 의지를 키워주는 인상깊은 계절입니다. 수령님께서 그러하셨지만 장군님께서도 이런 겨울을 좋아하십니다. 겨울을 좋아하는것은 아마 우리 가문의 성격인것 같습니다.〉

그러시고는 장시간에 걸쳐 도서편찬사업에서 지켜야 할 원칙적인 문제들을 가르쳐주시고나서 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이의 귀중한 말씀을 수첩에 적어가던 저는 머리를 들었습니다. 순간 그이의 만면에 넘치던 자애의 빛이 사라지고 안광에서 번쩍 섬광이 발산하는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속에 쌓인 심려가 많으신듯 오른손을 야전복앞섶에 지르신채 흰눈깔린 뜨락을 오래도록 말씀없이 거닐으시던 그이께서 저에게로 돌아서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서에 오성권동지의 이름이 없더구만. 몹시 섭섭했소.〉

〈예?!〉

그제서야 저는 무엇때문에 그이께서 그리도 무거운 심려를 안고계시는지 깨달았습니다. 그 심려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자면 괴롭기는 하지만 하는수없이 객관적인 사유를 설명해드리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자각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저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시대적인 견지에서 랭정히 분석해보면서 그렇게밖엔 할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물론 저로서도 몹시 괴로왔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이야기를 자료적으로 말씀드릴수 있었습니다. 현대전쟁의 새로운 경지에 대해, 최신군사과학과 기술에 의해 변화된 현대전쟁의 양상과 방식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각종 사명의 위성들과 다목적의 비행기들, 성능높은 미싸일들과 각종 유도폭탄들 그리고 다종화된 핵무기들… 실로 다양하고 방대한 전쟁수단들은 이전의 세대들은 상상도 해볼수 없었던 비선형작전이나 비접촉전, 초수평타격전도 가능케 하고있지 않습니까. 작전들의 시공간적순서까지도 재래의 기존사고방식으로써는 리해조차 할수 없을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있는것이 현대전입니다.

하지만 군사예술의 영재이신 그이앞에서 총명과 박식을 자랑하는듯한 그런 무엄한짓을 감히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동지께서는 저의 마음속을 환히 들여다보신듯 정통을 찌르시는것이였습니다.

〈최고도로 발전된 현대전쟁에 지나간 전쟁의 경험은 맞지 않는다는 거겠지? 정말 그렇소?〉

〈예, 제 생각으로써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렇다면 동무는 근본적인 착오를 범하고있소. 우리가 명심해야 할것은 아무리 현대적인 전쟁이라고 해도 그것은 사람, 사상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조직하고 진행하는 싸움이라는것입니다. 인간의 사상과 의지, 능력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다는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동무는 인간의 그 위치에 발전된 무장장비들을 들여세워놓고 현대전을 론하고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전쟁로병들을 소위 현대전쟁이라는 마당에서 밀어내는짓까지 서슴지 않게 된것이요. 결국 동무는 오성권동지를 아버지로서는 존경한다고 해도 혁명선배로서는 존경하지 않았소. 무시해버렸단 말이요. 참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어쩌면 동무가…〉

그이께서는 아픈 마음을 달래이시려는듯 회색야전솜옷주머니에 두손을 꾹 지르신채 눈보라이는 먼 산발을 바라보고계셨습니다. 윙윙 휘파람소리를 지르며 몰려온 눈바람이 차거운 눈설을 휘말아뿌렸습니다. 차디찬 바람을 맞으시며 서계시는 그이의 야전복자락이 기폭처럼 펄럭이였습니다. 이 몸을 내대서라도 불어오는 눈바람을 막아드리고싶었지만 그럴수 없는것이 죄스러웠습니다.

저는 머리를 푹 수그렸습니다.

〈난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동무를 꼭 만나려고 결심했던것입니다. 이것은 부자지간의 문제이기 전에 우리 혁명의 선대와 후대간의 계승문제로 되기때문입니다.〉

〈예?!〉

〈우리의 참다운 계승이란 어떤것인가? 이걸 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혁명의 장래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기초적이고 관건적인 원리로 되기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새 세대들의 사업능력은 매우 높습니다. 동무는 자기의 능력을 이번에도 당당히 보여주었소. 그리고 동무가 말하듯이 세월의 흐름속에서 많은것이 변했습니다. 세기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였으며 그동안에 우리 인민군대가 장비한 전투기술기재들도 커다란 질적량적변화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바뀔수도 변할수도 없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따라 싸워온 우리 혁명선배들이 발휘한 필승의 혁명정신입니다.

전쟁승리의 첫째가는 요인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밝힌 주체의 진리는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변할수 없는 절대불변의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시대는 혁명선대들의 그 투철한 사상정신을 후대들이 그대로 이어받을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이번에 연구편찬하는 도서에도 항일선렬들과 전쟁로병들이 지녔던 바로 그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 담겨져야 할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아무리 현대적이고 성능높은 무장장비들이 동원된다고 하더라도 처참한 실패만을 초래하게 될것입니다. 그런즉 동무가 드러내보인 그 견해는 우리 혁명에 매우 유해로운 사상요소로 되는것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묵과한다면 우리 혁명에 참다운 계승이란 있을수가 없는것이요!

언제 그렇게 교만해졌는가? 어느새 혁명선배들을 몰라보는 인간이 되였는가 말이요!〉

그이의 말씀은 저의 가슴을 마구 두들기며 비로소 제정신을 차리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제가… 덜돼먹은 놈이였습니다. 흐흑…〉

잠시 머리숙였던 눈보라가 또다시 휘이익- 사납게 몰려와 눈가루를 사정없이 휘뿌렸습니다. 저의 두볼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에 떨어진 눈물방울은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내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을가?! 내딴에는 로쇠한 아버지에게 공연한 부담을 끼치지 않으면서 맡겨진 일을 원만히 해내겠다고 생각했을뿐인데…)

정말 알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로병인 심소장동지도 저의 견해를 동의해주지 않았습니까. 물론 처음에 주저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경애하는 그이께서 그토록 마음쓰시게 만들었으니 어이 감히 머리를 들수 있었겠습니까.

다음순간에 하시는 그이의 말씀을 듣고나서야 저는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던것인지를 알게 되였습니다.

〈덕찬동무, 나는 이번의 일을 단순히 현대전쟁과 혁명선대들에 대한 관계문제로만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민의 안녕과 평화를 수호하자면 있을수 있는 전쟁에 준비되여있어야 합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자면 현대적인 무장장비와 전략전술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것은 사랑과 믿음입니다.

사랑과 믿음! 나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혁명투쟁은 자기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하는 투쟁일뿐아니라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자기 군대와 인민, 혁명동지들에 대한 믿음으로 하는 투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국과 혁명을 위해 바친 오성권동지의 한생을 존중해주고싶었고 당과 수령을 위해 한생토록 순결한 진정을 다 바쳐온 혁명동지를 영원한 혁명전우로 끝까지 믿어주고싶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계승은 사랑과 믿음속에서만 이루어질수 있는것이기때문에 오늘 가슴아픈 소리를 했습니다.

내 마음을 리해해주시오.〉

눈보라 세찬 령길을 넘어 그이께서 타신 야전차는 떠났습니다. 했으나 저는 선자리에 굳어져 인사도 변변히 드릴수 없었습니다. 그이께서는 떠나가셨지만 남겨주신 말씀은 이 마음속에 끝없는 여운을 울려주었습니다.》

며느리의 목소리는 자주 동강나군 했다. 오성권은 사무쳐오르는 감격에 사로잡혀 편지에 씌여진 사연을 마지막까지 다 들어낼수가 없었다. 고막을 윙- 하고 울리며 김정은동지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다시 가까이에서 들려오는듯싶었다. 오늘 아침 심광진소장으로부터 믿음에 넘친 그이의 뜻을 전달받고 목이 메였던 그였다. 그 감격까지 겹쳐오르며 불시에 눈언저리가 확 달아올랐다. 맑은것이 눈에 핑 어리였다.

마누라가 팔굽을 툭 건드려서야 그는 자신을 다잡을수 있었다. 휘우듬한 눈섭이 촉촉히 젖은 마누라의 얼굴이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령감, 들으셨수? 그이께서 아애비더러 설날엔 꼭 집에 들어가보라구 하셨다우. 이 늙은것들이 기다린다구요. 정말 다심하기두 하시지. 어쩜 그런 일에까지…》

성권은 묵묵히 창가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원체 그런분이신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자신에게 어떤 영광이 약속되여있는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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