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5회

우리의 계승

윤 정 길

1

한해중에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날 아침이였다. 늦은아침까지도 하늘땅사이의 거대한 공간에 웅크리고있던 칠칠어둠이 드디여 쫓기여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간밤 푸짐히 내린 흰눈으로 은빛세계를 펼친 누리가 황홀한 자태를 드러냈다.

능금처럼 주렁진 가로등우에도, 실한 가지들을 창공에 기세좋게 뻗친 가로수에도 소담한 흰눈이 렴치좋게 올라앉았고 눈아래 굽어뵈는 소층아빠트들은 도두룩한 눈모자를 썼다.

얼마전까지만도 이런 아침이면 일곱살잡이 손자애녀석을 데리고 헐금씨금 아빠트층계를 내려 숫눈길달리기의 특이한 쾌감을 즐겨보았을 오성권이였다.

북방의 산골태생이여서 그런지 숫눈에 발목까지 푹푹 묻으면서 달음질칠 때면 정열과 희열이 심신에 끓어올라 젊음을 되찾는듯 했다.

하건만 오늘은 그럴 흥심이 나지 않아 덤덤한 기색으로 록색창가림천이 치렁히 드리워진 창가에 말뚝처럼 박혀서서 하염없이 밖의 세계를 관망할뿐이였다.

《창밖구경에 혼이 쑥 나가셨수? 죽이 다 식겠수다, 원.》

밥상을 챙겨놓은 마누라가 벌써 세번째로 하는 지청구였다.

젊어서는 남편에게 군소리할줄 모르던 마누라였건만 여든고개를 눈앞에 둔 지금에 와서는 이처럼 살가운 지청구가 많아졌다. 세월은 그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것이다.

오성권은 스적스적 창가에서 물러났다. 마누라의 잔소리에 이끌리기도 했지만 까닭없이 착잡하고 산란해진 마음이 더는 달랠수 없는것임을 깨달은것이였다.

길둥그런 밥상우에는 동지죽 두그릇이 모락모락 흰김을 피워올리고 한겨울에 도전이나 하는듯 푸른 진채며 시금치무침까지 곁들여놓였다.

성권은 무겁고 불안스러운 속마음을 드러내보이는게 싫어서 짐짓 헌헌한 표정을 짓고 밥상머리에 다가앉았다.

《눈이 많이 내리니까 어릴적 마음이 되살아나서 그래. 로친네, 생각나지 않소?》

《뭐가요?》

마누라가 순하게 생긴 눈을 들었다. 잔주름이 무척 많이 건너갔으나 나이에 비해선 살결이 아직 숫부드러운 얼굴에 성냥가치도 올려놓을만큼 남달리 긴 눈섭이 휘여올랐다. 그 눈섭만은 고왔던 한창나이적 그대로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홀가분해지면서 눈굽이 후더워오르는것이였다.

《옛날 고향서 자랄 때 말이요,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면 우리 사내애들은 눈썰매를 끌고 소록산에 오르군 했지. 언제였던가? 당신 내 썰맬 타겠다구 억지를 부리던게… 그때두 동지달이였던것 같애. 날도 밝지 않은 어뜩새벽에 당신 나를 따라나서지 않았댔소. 그 시절엔 몽당치마바람으로 사내애들 찜쪄먹게 눈판을 드달려다니던 당신이였지. 헌데 인젠 눈만 오면 손발이 시려하거던. 그것만 봐두 늙었어. 사람이 늙는건 어쩔수가 없는거지, 어허허…》

그런 시절이 있었다. 민들레꽃 뜯어들고 뛰놀며 천진란만했던 그 시절 한마을태생인 그들내외는 소꿉놀이도 같이하면서 함께 자랐다. 처마를 맞대고 사는 두집식구들은 한가정처럼 지냈고 어린 소년, 소녀의 마음속에는 썩 후날 불같은 련정으로 번져진 자별한 우정이 싹텄다.

마누라도 회억이 깊은지 큰 눈을 슴벅거렸으나 말투는 역시 지청구에 가까왔다.

《에그, 언제적 일을… 장난궂던 그때처럼 갱소년하구싶어서 아침부터 눈구경에 정신을 훌 파셨수?》

《허, 그게 어드래서! 갱소년하면 제일 좋아할건 로친네일것 같은데…》

그 말 한마디에 마누라의 기분도 어지간히 동뜨는것 같았다. 며느리가 손자애를 데리고 친정나들이 간 뒤로 닷새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속이 알알해하더니 이 아침의 한번 익살에 늙은 내외의 정분을 새삼스럽게 느낀 모양이다.

《그럼 어서 그렇게 하슈. 동지죽은 오그랭이가 보약이 된답데다. 오호호…》

팥물이 진한 죽그릇속에 수수와 찹쌀로 빚은 은행알처럼 동글동글한 오그랭이들이 다문다문 이마를 내밀고 구미를 한껏 돋궈준다.

아들내외와 손자녀석까지 없어서 별스레 설렁한 집안이다. 그때문에 마음이 설뚱해도 일부러 기꺼웁게 수저를 들던 성권은 문득 생각히우는것에 저으기 놀라며 두눈을 덩그렇게 치떴다. 오늘 아침 지방출장을 떠나기 전에 꼭 집에 들리겠다던 아들의 전화생각이 났던것이다.

《로친네, 아애비가 들어오겠다 했는데 뭐이 그리 바빠서 아침밥을 서둘렀나? 차라리 좀더 늦잡을게지, 쯔쯧…》

마누라는 호- 한숨을 내쉬였다.

《못 오겠대요.》

《못 오다니?! 엊저녁에 전화질을 해놓고선?》

《신새벽에 또 전화가 걸려왔댔수다. 바쁜 일이 생겼다나봐요. 부서에서 곧장 떠나겠대요.》

그제야 오성권은 이른아침부터 마음을 불안케 하던것이 무엇이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아들 덕찬이로 하여 생겨난 일이였다. 아니, 아들에게 굴절되여 현시된 그것, 인간생활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하는 《자연법칙》때문이였다.

한생을 군복입고 살아온 오성권은 나라의 군사과학리론을 발전시키는데 공헌해왔다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서울해방작전과 대전대포위전, 락동강도하작전을 비롯한 여러 전투들에 참가하였던 실전경험은 한생의 긍지였고 과학연구사업의 밑천이였다. 그런데 성벽같던 그 자부심에 균렬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들의 성장과 더불어 시작된것이였다.

우리 나라 군사과학교육의 최고전당을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하고 연구원과정까지 뛰여나게 거친 아들이 실천적인 경험을 터득할수 있는 여러 직무를 력임하면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은것은 몇해전의 일이였다.

거목처럼 자라는 아들을 두고 오성권의 가슴은 얼마나 부풀어올랐던가.

선대들이 마련해온 공적의 탑을 대를 이어 높이 쌓아갈 끌끌한 후대를 두었다는 흥분으로 며칠밤을 새웠는지 모른다.

덕찬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발기밑에 지난해 이맘때쯤 시작된 현대전쟁에 관한 리론적연구와 그에 대한 도서편찬사업을 아들이 책임지게 되였을 때 오성권은 무한한 희열과 행복감을 맛보았다.

군사학리론분야에서 국보적인 가치를 가지고 평화수호의 보검인 나라의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할수 있는 그것은 단순히 한권의 도서편찬발행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였다. 리론은 실천의 기초로 되는것이다. 하여 총참모부적으로 사업조직이 되고 군사과학연구의 거점인 연구소와 군사부문 출판사의 능력있는 일군들까지 보충적으로 인입되여 편찬조가 무어졌는데 그 책임자의 중임은 쟁쟁한 박사인 오덕찬에게 맡겨졌다.

첨단과학기술지식에 불타는 정열을 겸비한 인재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덕찬은 부서에서 침식하면서 불과 한해만에 자료작업과 원고집필을 기본상 끝내였다. 물론 연구집단을 이끌고 현지확인과 자료확증을 위해 지금도 드달려다니며 고심하고는 있지만 작성된 원고는 벌써 전문심의단계에 이르게 되였다.

오성권은 가슴을 조였다. 미흡한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과연 기본선에서의 탈선이 없겠는지?! 그래서 며칠전 아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넌지시 물었다.

《다른게 없겠냐? 원고를 내 한번 볼가?》

다심한 정과 사려가 담긴 그의 눈길을 아들은 심드렁하게 대했다.

《아버지, 너무 마음쓸건 없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어련히 해내지 않을라구요. 건강상태도 시원치 못한데 무리하지 마시고 몸조리를 잘하십시오.》

전쟁때 입은 부상의 후유증이 또 말썽을 부려서 한해가 넘도록 큰 병원에 입원했다가 얼마전에 퇴원한 일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덕찬은 금박으로 찍은 글자가 번들거리는 경옥고와 인삼정과단지를 가방에서 꺼내놓았다. 그러나 그런 값싼 동정과 위로에는 지금까지 습관되지 못한 성권이였다.

《음-》

군사과학연구사업은 그가 오랜 기간 심혼을 바쳐온 일이였다. 건강상태와 나이사정으로 몇해전부터 연구소 부소장직무를 내놓고 뒤전에 물러앉았으나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의 인식과 관록때문인지 중요한 심의가 제기될 때마다 심광진소장은 후보원사이며 교수, 박사인 오성권을 아직도 대사집의 주례잡이처럼 여겼다.

그런데 아들녀석은…

《거참 고맙구나. 이젠 늙은이의 간참이 싫다는 소리렷다?》

여간치 않은 노여움이 빈정기가 다분한 그의 어조에서 풍겨났다.

이즈음에 아들은 어떤 일에든 자신이 있다는 식의 태도가 여느때없이 당당해졌는데 자기 사업에 대한 자신심은 좋은것이지만 왜 그런지 오성권에게는 빈번히 야릇한 불만을 불러일으키는것이였다. 지나친 도고성은 쉽게 교만성으로 전이될수 있는것이다.

아버지의 고까움이 쉽게 삭을것이 아님을 직감했는지 덕찬은 잠시 숙이였던 머리를 쳐들었다. 하관이 빠른 얼굴에 굽실굽실한 반고수머리는 주견이 강하고 고집스럽기까지 한 성미와 잘 어울렸다.

《아버지, 왜 그런 옥생각을 하십니까. 정 그러시다면 털어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월은 흐르기마련이고 시대는 발전합니다. 그것은 모든것의 변화를 가져오지요. 특히 최근 세계적인 군사과학의 발전상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고있습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무장장비들의 갱신주기가 보다 짧아지고 그에 따라 전법도 계속 변화됩니다.

이번의 도서는 변화발전한 새 세기의 요구에 따라 편찬되는겁니다.

그러니… 위성과 각종 비행기와 미싸일들 지어 핵수단까지 포괄하는 최신전투기술기재들이 활용되는 현대전쟁을 어떻게 재래식대포나 땅크에 국한되던 전쟁과 대비하겠습니까. 저는 아버지에게 필요이상의 과중한 짐을 얹어드리지 않기로 한겁니다.》

(필요이상?!)

지나치게 직선적인 무시를 느꼈으나 성권은 할말이 없었다. 분격보다도 허탈감이 먼저 엄습해들었다.

두툼한 입을 꾹 다물고 앉아있는 아버지의 흰머리를 지그시 바라보며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덕찬은 괴로운 눈길을 떨구며 나직이 뇌였다.

《용서하십시오.》

성권은 짜증을 냈다.

《용서할게 뭐이 있다구, 알겠다!》

불쾌한 화제를 그것으로 대범하게 동강내버렸다. 원래 그는 옴니암니하는 성미가 아니였던것이다. 했으나 마음속은 단가마에 물 부은듯 빠직빠직 끓었다.

(그러니 재래식전쟁경험으론 현대전쟁리론을 론할수 없단 말이지? 건방진 녀석!)

이후에는 그렇게 따분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성권은 시쁜 감정을 잊으려고 애썼고 아들은 아버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긴 늘 바빠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는 덕찬이다보니 부자간에는 감정교감이 이루어질 기회조차 없었다.

《정월부터 섣달까지 늘 집 나가있는 그 애한테 한해 한번 먹는 동지죽은 꼭 먹이자구 별렀더니만.》

마누라의 푸념이였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들은 다 큰 어른이 되여도 애지중지 보살펴주고만싶은 자식인것이다.

성권은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손을 홰홰 내저었다.

《에에- 다 쓸데없어. 그녀석 가뜩이나 코대가 높아져서 허파에 바람 들었는데 죽까지 먹여놓으문 물렁팥죽이 돼.》

마누라는 기이한 물건이나 본듯 두눈을 크게 뜨고 한참 건너다보더니 한무릎 다가앉으며 대들었다.

《령감,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 웬 뒤욕질이요? 동지죽에 떡감이 든다는걸 모르시우? 물렁팥죽이란건 또 무슨 소리요? 젊은게 아버질 닮아서인지 책임자노릇 그만하면 잘한다구 다들 칭찬이던데…》

《모르면 가만히나 있소. 자식은 겉을 닮지 속을 닮는게 아냐. 이거야 속이 상해서 어디… 에익! 바깥바람이나 쐬야지 답답해 못 견디겠군.》

예전에 없이 울뚝해서 수저를 놓아버리고 일어서는 남편의 도도한 기상에 당혹해난 마누라는 매여달리듯 그의 팔을 부여잡고 늘어진다.

《창밖구경이 성차지 않아서 두억시니도 얼어죽을 이 추운 날 바깥구경이요? 그만두시우, 건강치도 못한 몸인데… 그렇잖아두 아애비가 새벽전화로 걱정합디다. 전쟁때의 부상자리가 또 도지지 않게 눈길달리기랑 제발 그만두게 하라구. 아, 지금두 눈썰매 탈 때하구 같은줄 아는게 아니시우? 어서 식살 하시구 애들이 걱정하지 않게 경옥고랑 인삼정과랑 또 건늬지 말구 잡수시라구요.》

마누라의 사설은 들은둥만둥 성권은 끝내 집을 나섰다. 꼭 다녀와야 할데가 있어서도 아니였다. 집안에 붙박혀있어야 허전한 마음이나 덧칠것 같고 더구나 마누라와 말씨름하고있을 생각이 없어서였다.

현관을 나서니 해빛아래 펼쳐진 흰눈의 세계에 눈이 부셨다. 그는 두눈을 쪼프리고 멀리 큰길쪽을 바라보다가 성큼 발을 내짚었다. 뽀드득 뽀드득 정갈한 눈가루가 발밑에서 기분좋은 소리를 내였다. 이마가 얼얼하도록 맵짠 동지추위의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며 삽시에 온몸이 거뜬해졌다. 하이얀 눈이불을 들쓴 산과 들, 하늘아래 가없는 순결의 세계는 마음마저 상쾌하게 해주는것이였다.

어디로 갈가 망설이다가 지나간 초가을에 이웃들과 함께 심어놓은 길거리의 감나무들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벼짚으로 두툼하게 보온해주기는 했지만 이 추위에 얼어죽지나 않겠는지.…

한그루한그루 들여다보며 걸어가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번거로운 상념에 빠져들다보니 벌써 동리아근을 두바퀴째 돌고있는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불쑥 마음의 한구석에 밀려나있던 아들에 대한 생각이 산골눈석이때의 눈무지처럼 사태쳐내렸다.

(뭐뭐? 재래식경험으론 안된다구?)

마누라에게는 손톱눈만치도 내색을 안했지만 생무우 먹고 체한것처럼 억한 심정이였다. 맞대놓고 아들을 탓할수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괴롭혔다. 아들에게는 너무도 명명백백한 론리가 있는것이다.

시대는 얼마나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것인가! 나라의 막강한 국력을 상징하는 우리 군대의 무장장비수준은 또 얼마나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가!

그 자랑찬 현실에서 가슴벅찬 환희와 긍지를 느끼면서도 오성권은 어쩔수없이 찾아드는 로쇠의 서글픔을 맛보게 되는것이였다.

(성 쌓고 남은 돌이라는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만…)

제풀에 마음이 달아오른 그는 두손으로 길가에 쌓인 깨끗한 눈을 한웅큼 퍼들고서는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앙증스러운 고깔모자가 달린 빨간 솜옷을 곱게 차려입은 귀여운 유치원생처녀애의 손목을 쥐고 스쳐앞서가던 녀인이 의아한 눈길로 그를 돌아보았다. 웬 할아버지이길래 저러시나 하는 젊은 녀인들 특유의 다심한 관심이 엿보이는 시선을 감촉하자 오성권은 제스스로 면구스러워 나서 으흠- 헛기침을 하며 탁탁 소리나게 손을 털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체험하게 되는게 이런 심정일게다. 그러니 타내지 말아야 해. 덮어놓고 젊은 사람들을 탓할 일이 아니야. 늙으면 노여움이 많아진다더니… 내가 그날 그 애한테 너무했던가봐.)

그렇게 생각하니 어지간히 옹쳤던 마음이 좀 풀리는것 같았다.

눈길우에는 이미 숱한 발자국들이 찍혔다. 크고작은 그 발자국들의 주인들은 저마끔의 일거리를 안고 걸음을 재촉하며 맡은 초소로들 출근했을것이다.

(오늘 이 길의 숫눈우에 첫자국을 찍은 사람은 누굴가?)

어이없게도 불쑥 이런 호기심이 일어났다.

젊어서 한때는 오성권 그가 숫눈길의 첫사람이 되군 했던 길이다. 오늘은 그를 앞서 숱한 사람들이 걸어갔다.

(그래그래, 지금까지는 우리 세대가 시대의 숫눈길을 걸어왔다면 이제는 후대들이 앞서가고있다. 수고많은 그네들한테 짐이 되지 말고 진정으로 고무격려해주는게 늙은 우리 세대에게 남은 몫이지.)

그는 자기자신을 납득시키고싶어 마음속으로 고집스럽게 되뇌이면서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크고작은 발자국들우에 그의 발자국이 덧찍혀 졌다. 그렇게 오성권을 비롯한 전세대의 인생말년이 흘러갈것이였다.

《엄마! 잘 가세요!》

목금소리처럼 또랑또랑 올리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원형무지개띠에 여러 송이의 해바라기가 곱게 그려져있는 유치원정문가에서 방금전에 앞서간 처녀애가 제 어머니에게 손목을 까딱하며 소리친것이다. 그 애의 손에는 어른의 주먹보다도 큰 구운 감자알이 수류탄처럼 쥐여져있었다. 간식으로 어머니가 들려준 모양이였다.

녀인은 그런 순간에 어머니된 행복감을 사뭇 느끼게 되는 모양 함박같은 웃음을 머금고 한참이나 손을 흔들어준 다음 갈길을 재우쳐간다.

길가에 렬맞춰 늘어선 감나무들도 다정한 그들이 부러운듯 소슬한 바람결에 가는 가지를 저었다.

뒤짐을 지고서서 그 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오성권은 새삼스러이 번뜩이는 생각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처녀애의 손에 들려진 감자를 보니 못 잊을 사연이 깃든 소중한 추억이 제방뚝을 넘어선 해일처럼 밀려왔다.

머나먼 북방의 출장길에서 친근하신 김정은동지를 만나뵈옵던 몇해전의 감격이 또다시 그의 가슴을 후덥게 달구어주는것이였다.

왜 이런 때 불쑥 그 추억이 밀물쳐오는것인지?!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