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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제 3 장. 겨레의 꿈

14


936년 9월.

고려왕 왕건은 드디여 십여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후백제정벌에 나섰다.

이미 한해전에 왕건은 귀순한 후백제왕 견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를 태자와 함께 천안부에서 후백제를 정벌할 준비를 갖추게 하였었다.

왕건이 삼군을 거느리고 천안부에 가서 병력을 합세하여 일선군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접한 후백제왕 신검도 곧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십여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맞받아나왔다.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마지막대결전이였다.

량군은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진을 쳤다.

비록 적아의 력량차이는 비슷했으나 그 힘에 있어서는 고려군이 훨씬 우세했다.

국력에 있어서나 또 군사의 정예함에 있어서 고려군은 후백제보다 강대했던것이다.

후백제의 신검도 역시 나라의 모든 국력을 기울여 전장으로 달려왔지만 후백제군의 태반이 벌써 전투의욕을 잃고있었다.

그것은 고려군측에 옛 왕 견훤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왕건은 견훤과 말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십여만명의 대군을 사열하였다.

승전을 믿어의심치 않는 십여만명의 고려군사들은 왕건이 지나칠적마다 하늘이 무너지게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왕건이 방대한 무력을 이렇듯 한곳에 쉽게 집중시킬수 있은것은 바로 류차달, 어제날의 응통의 헌신이 있어서였다.

류차달은 자기의 전재산인 수천필의 군마와 수레를 내였을뿐아니라 가산마저 몽땅 팔아서 수만섬의 군량까지 보장했던것이다.

말그대로 대승 류차달은 평생을 두고 모아온 전재산을 통일성업에 바친것이였다.

고려대왕 왕건이 투구에 갑옷차림으로 말우에 올라있었다.

대장기가 높이 솟아 기세차게 나붓기기 시작했다.

십여만군사들이 모두 긴장된 시선으로 말우에 높이 앉은 왕건을 바라보고있었다.

왕건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후백제군도 전렬을 가다듬고 싸움준비를 갖추고있었다.

후백제왕 신검은 기어이 왕건과 천하를 다투려는 기세였다.

드디여 왕건은 장검을 뽑아들고 이렇게 웨쳤다.

《모두 저기 하늘과 땅을 보라. 더는 이것이 갈라져있어서는 안된다. 통일대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싸우자.》

왕건대왕의 령에 맞추어 북소리가 천지를 뒤엎을듯 맹렬히 울렸다.

십여만명의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성이 일어났다.

용암의 거세찬 분출마냥 십여만명의 대군은 후백제군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고려의 대군이 홍수처럼 밀려오자 후백제진중에서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비록 력량상 거의 비슷한 처지라고는 하지만 고려의 위용은 후백제군을 압도하고 남음이 있었던것이다.

후백제군의 모든 장졸들은 고려의 위용에 완전히 넋을 잃고있었다.

장검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은 신검은 저도 모르게 한쪽볼을 경련적으로 떨기 시작했다.

신검에게 깃들었던 그 모든 야망과 위용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듯 온몸의 넋이 한줌으로 가드러들었다.

신검은 겨우 자기자신을 수습하고 곧 후백제군의 맹장들인 좌장군 효봉, 덕술, 애술, 명길 등에게 중군에 배속된 삼만명의 정예기병으로 고려군의 진격을 가로막으라고 령을 내렸다.

효봉 등이 이끄는 후백제기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고려군을 향해 맞받아달렸다.

수만의 말발굽에 채인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하늘의 해를 가리웠다.

신검은 불안한 가슴을 눅잦히느라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 보았느냐? 어서 북을 계속 울리도록 해라. 내가 선두에 서겠다. 전군은 총공격하여 왕건을 사로잡으라.》

그러나 신검이 기뻐하기에는 너무도 때가 일렀다.

고려군을 맞받아 공격에로 나갔던 효봉, 명길 등이 이끄는 후백제의 기마군사집단이 갑자기 진격을 멈추는것이였다.

앞을 가리웠던 뽀얀 먼지구름이 걷히여지자 신검의 눈앞에 전장의 전경이 펼쳐졌다.

효봉 등이 이끄는 기마군사들이 모두 투구를 벗어던지고 말에서 내려 왕건대왕의 만세를 부르고있었다.

《죽일 놈들!…》

신검은 너무도 기가 막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효봉, 명길이 이끄는 기마군사들은 곧 말머리를 돌리더니 후백제군을 향해 짓쳐왔다.

고려군은 전전선에 걸쳐 총공격에로 넘어갔다.

미친놈처럼 안절부절 못하고있던 신검이 단말마적인 비명을 질렀다.

《맞받아나가라, 이대로 물러서면 우리는 모두 망한다.》

하지만 후백제군사들은 고려군의 진격에 얼혼이 빠져 차츰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류차달은 말우에 앉아 치렬한 대격전이 벌어진 전장을 주의깊게 둘러보고있었다.

싸움은 첫시작부터 고려군이 압도적인 공세를 들이대고있었다.

후백제의 진중은 완전히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효봉, 명길 등이 이끄는 반변군을 선두로 삼만명의 고려군이 뒤따라 후백제군의 중군을 들이치자 적진은 눈석이처럼 무너져내렸다.

치렬한 싸움의 함성이 천지를 뒤집는듯 하였다.

류차달의 눈에는 투구, 갑옷마저 벗어던지고 아우성치며 도망치는 후백제군사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류차달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바야흐로 자기가 그토록 바라던 통일대업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있었다.

이 땅, 이 하늘이 겨레의 간절한 념원속에 하나로 되여가고있었다.

이 한번의 대격전으로 모든것이 끝나야만 다시는 겨레가 서로 갈라져 싸우지 않을것이였다.

십여만명의 고려군은 맹렬히 싸움을 벌려 후백제군의 좌우날개를 분질러버렸다.

후백제왕 신검은 단말마적인 발악으로 만명의 호위병을 내몰아 기울어진 사태를 역전시켜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낭떠러지로 굴러내리는 싸움형세를 바로잡을 그 어떤 기적도 생겨나지 않았다.

후백제왕 신검은 무너져내린 전선의 여기저기를 미친듯이 뛰여다니며 죽기내기로 들고뛰는 군사들을 멈추어세우려고 하였으나 그의 마지막기도마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오른쪽에서 함성이 일어나더니 난데없이 수천명의 기병이 본영의 배후를 기습하는것이였다.

《무슨 일이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능환이 말을 때려몰며 달려왔다.

《대왕, 이젠 글렀소이다. 박… 박영규가 반란을 일으켰소이다.

아마도 효봉, 명길의 무리와 사전에 약조가 되여있는 모양이오이다.…》

신검은 기가 막혀 피범벅이 된 능환의 얼굴만 바라보고있었다.

완전히 피의 란무장으로 화한 전장에서는 후백제군사들이 수천명씩 무리로 쓰러졌다.

신검의 손에서 장검이 스르륵 맥없이 떨어졌다.

《대왕, 어서 여길 피하셔야 하오이다. 자칫하면 붙잡힐수도 있소이다.》

신검은 능환이 이렇게 웨쳐서야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허둥지둥하는 능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던 신검은 혐오감으로 몸서리쳤다.

이것이 바로 부왕까지 밀어내고 내가 올라선 권력의 대가인가.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 오늘의 치욕이 차례질줄 어찌 지금에야 깨닫는것일가.

신검은 정신이 나간것처럼 능환의 멱살을 부여잡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마지막까지 싸울것이다. 내가 어떻게 싸웠는가를 반드시 력사에 남기겠다.》

능환은 좌우에 대고 눈짓하였다.

몸집이 우람찬 두명의 군사가 달려들어 미쳐울부짖는 신검을 붙잡아 억지로 수레에 올려실었다.

신검은 이렇듯 패하고 능환과 함께 남쪽으로 쫓겨 달아났다.

일리천대격전에서 고려는 천하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후백제군은 완전히 패하여 수만명의 주검을 남겨놓고 일제히 패주하였다.

고려군은 숨돌릴새없이 패주하는 후백제군을 뒤쫓아 황산군에까지 이르렀다가 탄령을 넘어 마성에 주둔하였다.

더이상 싸워야 승산이 없다는것을 깨달은 신검은 량검, 룡검 두 동생과 함께 스스로 결박을 지고 고려군 진중에 와서 투항하였다.

제 아들들의 가련한 몰골을 보는 순간 견훤은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뛰여나왔다.

《이 무도한 놈들, 그래 오늘이 있을줄 몰랐단 말이냐?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에 배은망덕한 역적자식들을 내 손으로 릉지처참할것이다.》

견훤이 장검을 뽑아들고 신검형제에게 달려들자 좌우의 제장들이 황급히 붙들었다.

왕건대왕이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어 천천히 견훤에게로 다가갔다.

《상부, 진정하시오. 모두가 능환의 부추김을 받아서 한노릇이니 어찌 신검의 죄로만 돌리겠소.》

견훤은 왕건이 나서서 극력 말리자 슬그머니 장검을 내리웠다.

아들에 대한 원한은 이가 갈리도록 가슴에 쌓였지만 실지 가련한 처지에 빠진 신검을 대하고보니 아비로서의 련민의 감정이 싹트는것을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왕건은 직접 신검 등의 결박을 풀어주었으나 능환만은 그대로 두었다.

이어 왕건은 능환을 무섭게 꾸짖었다.

《네 이놈, 신하된자의 도리로 어찌 왕자들을 반역에로 추동하고 자기 임금을 가둘수가 있느냐? 여봐라, 이놈을 끌어내여 목을 쳐라.》

왕건의 추상같은 호령에 능환은 기가 질려 고개를 떨구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바라본 류차달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도 한때 형제처럼 지낸 능환이 저런 가련한 모습으로 있는것을 차마 마주볼수 없었던것이다.

처형장으로 끌려나가다가 류차달과 시선이 마주친 능환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능환은 제발 자기의 이런 비참한 모습을 그가 보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고 또 빌었었다.

그런데 피할수 없는것이 운명이라더니 가혹한 운명은 이렇듯 마지막순간에도 그들 두사람을 한자리에 세워놓았던것이다.

류차달이 엄한 눈길로 굽어보며 능환에게 다가갔다.

능환은 제발 그가 자기에게 침을 뱉으며 타매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류차달은 아무말없이 엄한 시선으로 말없이 굽어보기만 하는것이였다. 용기를 내서 옛지기의 얼굴을 가까스로 올려다본 능환은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류차달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고여있는것을 보았다.

아! 능환은 절망으로 몸부림쳤다. 이것은 천만개의 검보다 더 아프게 그의 가슴을 허비는것이였다. 모든것이 권력야심때문이였다.

완산에서 비명에 돌아간 아버지 영창의 뜻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였더라면 이렇게까지 비참한 지경에 굴러떨어지지 않았을것이였다.

능환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되는 진심을 담아 류차달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나서 처형장으로 걸어나갔다.

류차달은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능환의 뒤모습을 마지막까지 바래주었다.…

왕건의 령으로 능환은 형장으로 끌려나갔고 량검, 룡검은 진주로 귀양보냈다가 며칠 지나서 처형하였다.

신검은 견훤의 정상을 보아서 그리고 스스로 항복해온 공로를 참작하여 죽이지는 않았다.

이후로 고려군은 진격을 계속하여 마침내 후백제의 수도 완산을 타고앉았다.

후백제의 수도에 들어선 왕건은 곧 전군에 이런 명을 내렸다.

《적의 큰 괴수들은 이미 항복하였으니 죄없는 백성들을 건드리지 말라.》

왕건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재능에 따라 등용하였으며 군령을 엄격하게 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후백제의 불안하던 민심은 이렇게 왕건의 현명한 처사에 의해 인차 안정되였다.

마침내 고려에 의한 삼국통일의 성업이 이루어졌다.

완산의 성루에 높이 오른 류차달은 하나로 합쳐진 강토를 뜨거운 시선으로 굽어보고있었다.

단군성왕님의 후손인 겨레가 한하늘아래 하나된 땅에서 모여살려는 꿈을 이루었던것이다.

이 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로고를 바쳤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한줌 흙으로 스러졌던가.

이 모든 영광을 받아안지 못하고 일찌기 세상을 떠난 사람들앞에 떳떳하려면 통일된 천하, 하나로 모인 겨레가 다시는 갈라지지 않도록 모든 힘을 다 바쳐야 할것이였다.

아, 하늘이여, 땅이여!

단군성왕의 넋이 어린 이 하늘, 이 땅은 천만년세월이 흐른다 해도 언제나 하나의 하늘, 하나의 땅으로 남아있을것이오이다.

그 어떤 불행으로 다시 찢겨져나간다고 해도 하나로 굽이치는 대하의 물결마냥 반드시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는것은 력사가 단군성왕의 후손인 우리 겨레 모두에게 가르쳐준 철리였던것이다.

류차달은 남은 여생의 한순간, 한순간을 오직 겨레의 꿈을 지키는 길에 깡그리 초불처럼 태울 결심으로 오래동안 완산의 성루를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류기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의 이야기는 비록 길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통일위업을 위해 한생을 바친 대승 류차달!

정녕 그의 한생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력사의 갈피속에 깊이 새겨준 한생이였다.

단군민족의 한 성원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어디에 있건간에 오직 하나로 지향되는 겨레의 념원을 지키기 위해 모든걸 다 바치는 길만이 민족의 꿈을 이루는 길이라는것을 가슴에 새겨주는 뜻깊은 이야기였다.

아무리 강대한 민족이라도 분렬되면 력사의 이슬로 사라지고 겨레가 힘을 모으면 그 어떤 광풍에도 끄떡없음을 철리로 새겨주는 이야기라고 할수 있었다.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설사 그가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진정으로 민족을 위하고 겨레의 단합을 바란다면 력사가 기억하는 공적을 세울수 있다는것을 우리들의 가슴에 새겨주는 이야기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2013년 8월, 우리 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에 의해 삼한벽상공신이며 왕건의 통일위업에 적극 기여한 대승 류차달의 분묘는 옛 모습보다 더 웅장하게 개건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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