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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회

제 3 장. 겨레의 꿈

12


사흘동안 따뜻한 남풍이 불었다.

거품을 일구며 흘러내리는 강물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고 비물에 불어났던 계곡과 시내물도 차츰 여위여갔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는 바람이 숙어들어 산허리에 안개가 감돌았고 메마른 들과 골짜기, 철원성의 높은 루각지붕우에도 뜬김이 피여올랐다.

광활한 대지는 생의 활력을 잃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응통은 반정이 있은 후 처음으로 송악성의 성루에 올라 무연하게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면서 오래동안 서있었다.

새롭고 매혹적인 새 세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응통은 가슴을 한껏 부풀리고서 눈앞에 펼쳐진 새 세상을 굽어보고있는것이였다. 맑고 무한히 푸르른 하늘이 응통의 눈을 부시게 했다.

어디선가 저 멀리에서 종달새의 꾸밈없는 지저귐이 들려왔다.

가슴을 설레이면서 사위를 둘러보는 그의 눈에는 과연 아버지 검용의 뜻을 지킬수 있을가 하는 근심이 비껴있었다.

포악한 폭군을 몰아내고 새로 등극하여 고려국을 세우는데 응통의 도움을 받은 왕건은 그에게 나라의 경제를 전반적으로 장악할수 있는 높은 벼슬을 주려고 하였으나 응통은 벼슬을 사양하고 그저 평범한 상인으로 있는것에만 만족해하고있었다.

상인이 권력을 업으려 한다면 결국은 두근이나 관나처럼 비참한 종말밖에 차례지지 않는다는것을 잘 아는 응통이로서는 십분 취할수 있는 행동이였다.

그는 권력도, 나라를 좌우지할만 한 재력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 검용의 뜻대로 갈라진 민족이 하나로 모여살고 옛날 고구려의 위용을 떨치기만을 념원하고있었다.

통일된 천하, 이 땅, 이 하늘이 하나가 되여 만방에 빛을 뿌린다면 더 바랄것이 없었다.

하여 지금까지 피땀으로 벌어들인 재부를 통채로 내여 옛 고구려의 도성인 평양성을 웅장하게 복구할 구상이였던것이다.

응통이 자기가 가지고있는 중원과의 해상교역권과 상단들을 나라에 모두 바치자 왕건은 그에게 벼슬을 주어 조정에 남게 하려고 하였었다.

하지만 응통은 처음의 자기 뜻대로 평양성을 옛 모습 그대로 복구하는 일에 몸바치기만을 원했다.

왕건은 하는수없이 응통을 떠나보내면서 어명으로 나라의 운송업을 독점할 권한을 주었다.

응통은 왕건이 제왕의 위엄으로 나라의 운송업을 맡겨주자 더이상 거절할수 없었다.

응통은 고구려의 넋을 이어 하나로 모여살려는 겨레의 넋을 이어가려는 마음에서 이렇듯 운송상단만 소유한채 평양성으로 내려가는 길이였다.

응통이 이러한 결심을 내릴수 있은것은 또한 현숙한 처인 미령의 적극적인 뒤받침이 있어서였다.

미령은 응통이 이런 용단을 내리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새로 고구려의 계승국인 고려국을 세운 왕건이 겨레의 나라들을 통일하고 북방으로 진출하여 옛 고구려의 령토를 되찾기 위한 한 고리로 평양성건설을 전국에 선포하고 이 중임을 사촌동생 왕식렴에게 일임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미령은 응통에게 여기에 적극 호응해나서도록 힘을 주었다.

실지에 있어서 평양성은 응통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였다.

아버지 검용의 넋이 깃들어있는 곳, 정다운 남강마을사람들의 소중한 모습이 간직되여있는 평양성!

응통의 눈에 흙이 들어간다고 해도 절대로 잊을수 없는 평양성이였다.

정녕 페허우에서 다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게 된 평양성의 하나하나의 성돌에는 응통의 남모르는 로고가 스며있었다.…


그때로부터 여덟해가 흐른 934년 7월, 고려의 서북변경으로 십여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들이닥쳤다.

옛 발해국 태자 대광현을 앞세운 발해유민들의 대이동이였다.

수천대의 수레가 길을 메우고 소, 말, 양떼가 하얗게 들을 덮었다.

2만명의 옛 발해군사들이 창을 세워잡고 길좌우에 늘어서서 십만명의 유민들을 보호하고있었다.

대오는 그 선두의 기치로부터 후미까지 연 백사십여리에 뻗쳐있었다.

뜨거운 태양열이 내리지지는 칠월의 열풍속에서도 십여만명의 대집단은 서경을 향해 앞으로만 움직이고있었다.

고구려의 자손으로 자처하는 발해유민들이라 그들의 목표는 역시 대고구려의 수도성이였던 평양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적강점지역에서 국권회복의 기치를 들고 싸우다가 힘이 진하게 되자 이렇듯 동족의 나라 고려에로 찾아오는 길이였다.

발해가 없어진지도 어언간 팔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동족의 나라 고려땅에로 개별적으로 혹은 부락을 단위로 찾아온 발해유민들의 수는 근 이십만명에 달하였다.

이번에 대광현이 이끌고온 십여만명의 군민을 다 합치면 그 수는 무려 삼십만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였다.

급속히 강화된 거란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발해국의 태자 대광현은 동모산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거란침략자들을 반대하는 결사항전을 과감하게 벌렸었다.

대광현이 추켜든 항전기치아래 모여든 발해유민은 모두 십여만명이 넘었다.

이들은 오직 나라를 찾는다는 희망 하나만으로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과감히 싸웠다.

수많은 유민들이 거란군에게 끌려 중원지방으로 강제이주당하고 적지 않은 유민들은 살길을 찾아 동족의 나라인 고려땅으로 떠나감으로써 거란침략자들과의 싸움은 점점 어려워만 졌다.

중과부적으로 날이 갈수록 거란군의 집요한 공격에 동모산지역은 차츰 황페화되였고 그들이 발붙일 곳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광현은 거란군의 토벌을 피해 여러번 자리를 옮겨가며 싸웠으나 무기, 식량 등의 부족으로 큰 곤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대광현이 이끄는 항전군은 압록강 이북지역에서 수만의 거란군의 대포위속에 들게 되였다.

이제 와서 대광현이 결심할 일은 두가지밖에 없었다.

그 하나는 십여만 군민이 결사항전으로 마지막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우다 죽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비교적 적이 없는 압록강쪽으로 길을 뚫어 고려땅으로 가는 길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가자! 고려로 가자!

대광현은 동족의 나라 고려로 찾아가는 길이 겨레의 꿈을 이루는 길이고 나아가서는 고국 발해의 령토, 대고구려국을 다시 찾는 길이란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마침내 고려의 왕건을 찾아가기로 결단을 내린것이다.

평양으로 찾아가자! 십여만 발해유민들은 군민이 하나가 되여 일제히 고려를 향해 노도와 같이 나아갔다.

서경 대도독 왕식렴이 수천명의 개정군을 이끌고 안북부(안주)성에까지 대광현을 마중나왔다.

대광현과 십만명의 발해유민들은 왕식렴의 안내를 받으며 서경으로 향하였다.

드디여 서경에까지 다달은 발해유민들은 울고 웃으며 환성을 올렸다.

그 얼마나 보고싶고 가고싶었던 평양성인가!

대고구려의 위용을 한몸에 담은 거대한 평양성이 옛날모습 그대로 복구되여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서있었다.

평양!

천년강대국 고구려의 옛 수도 평양!

그것은 고구려의 후손들인 발해유민들의 마음의 희망이였고 꿈에도 그리던 모습이였다.

대광현 이하 수많은 발해유민들이 평양성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또 흘렸다.

갈라졌던 겨레가 이제는 함께 모여살게 되였으며 그 뭉쳐진 힘으로 새시대를 열어나갈수 있다는 환희의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발해태자 대광현이 십여만명의 군민과 함께 동족의 나라 고려를 찾아 평양성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고려의 왕건대왕이 직접 송악에서 평양성까지 마중나왔다.

《저길 보시오, 대왕님께서 몸소 나오셨소이다.》

서경 대도독 왕식렴이 달려와 이렇게 소리치자 발해태자 대광현은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설마하니 왕건대왕이 몸소 평양에까지 마중나올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한 대광현이였다.

황색일산이 은은히 움직이는 속에 왕건대왕이 조정백관들과 함께 마중나오고있었다.

대광현은 황급히 그의 앞에 부복하였다.

《페하, 망국의 왕태자 대광현 뒤늦게야 동족의 나라 고려를 찾아왔소이다.》

대왕은 그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세우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짐이 먼곳에 있다나니 힘껏 도와주지 못한것이 한스러울뿐이요. 허나 피줄을 이어온 동족이 이렇게 하나로 모여살게 된것은 하늘의 뜻이요. 겨레의 념원이 드디여 이루어졌소.》

왕건대왕의 겸허한 몸가짐과 따뜻한 격려의 말에 대광현은 감격하여 눈물을 머금었다.

《페하, 저뿐아니라 여기에 있는 백성들모두가 페하의 백성으로, 하나된 대고구려국의 백성으로 사는것이 소원이오이다.

페하를 위해서는 일개 군졸이라도 사양하지 않겠소이다.》

대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광현의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짐을 믿고 불원천리 찾아온 그대를 어찌 그렇게 박대하리오. 여기가 고국이라고 생각하시오. 그저 갈라졌던 두 집안이 하나로 합친것으로 생각하면 될것이요.》

대광현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였다.

《대왕페하를 대하고보니 집을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듯 하오이다.

페하, 신뿐아니라 우리 발해의 유민들은 페하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소이다.》

왕건대왕은 서경에서 대광현과 발해유민들을 환영하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고려조정의 명망높은 재상들과 장군들, 대광현을 따라온 옛 발해국 조정의 높은 관리들, 여러 왕족들, 이주해온 유민들의 부로 수백명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이 뜻깊은 연회에 참가했던 응통은 뜻밖에도 등주의 발해관의 옛 총관인 여노자의 딸 수나를 만나게 되였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러 수나도 이젠 중년의 나이가 되였다.

수나는 응통에게 아버지가 중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림종의 자리에서 응통을 찾았다고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응통이도 한생을 상도를 지키는 길에서 고정하게 살아온 여노자의 모습이 눈에 삼삼히 밟혀와 회억의 눈물을 흘렸다.

왕건대왕은 물론이거니와 조정의 문무백관들모두가 발해유민들을 마치 한집안식구나 다름없이 허물없고 따뜻이 대해주어 연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끝을 모르고 흘렀다.

연회가 끝나자마자 왕건대왕은 곧 조서를 발표하였다.

《발해국 태자 대광현은 관리들과 백성 십여만명을 이끌고 고국재건의 항전을 벌렸을뿐아니라 이렇듯 동족을 찾아 불원천리 달려온 력사의 아들이다. 짐은 그의 공적을 평가하여 왕씨성을 주고 고려왕실족보에 등록하도록 한다. 또한 그에게 원보(4등급)벼슬을 하사하며 백주(배천)고을을 식읍으로 주노니 거기서 삼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도록 할것이다.》

조서가 발표되자마자 온 평양성은 감격의 환희로 들끓었다.

이어 대광현을 따라온 발해의 관리들과 장군들에게도 그 품계에 따라 고려의 벼슬을 주었으며 군사들과 백성들에게도 각각 땅과 집을 주어 안착시키도록 하였다.

대광현은 여러 장군들과 귀족들, 부로들과 함께 왕건대왕앞에 부복하였다.

《페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오나 우리가 어찌 아무 공적도 없이 페하의 은총만 받겠소이까. 실로 황송하여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대왕은 푸르른 하늘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이렇게 소리쳤다.

《발해는 동족의 나라요, 그 유민들도 모두가 짐의 수족들인것이요. 그대들이 고국을 찾아와 짐의 고충과 아픔을 멈추어주었는데 어찌 아무런 공적도 없다고 할소냐. 짐은 그대들에게 뭔가 더 못해주는것이 안타까울뿐이로다.》

대광현이하 발해인들은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었다.

《페하, 백골이 진토되여도 고려조정을 힘다해 받들어나가겠소이다.》

고려가 발해태자 대광현과 그가 거느리고온 유민들을 우대하였다는 소식은 날개가 돋친듯이 온 천하를 휩쓸었다.

거란의 폭압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던 발해유민들은 목마른 사람들이 물을 만난듯이 앞을 다투어 고려지경을 넘어왔다.

《가자! 고려에로 가자! 그 길만이 살길이다! 말도 풍습도 피줄도 같은 동족의 나라 고려로 어서 가자!》

발해태자 대광현의 이주 이후로도 발해인들은 끊임없이 고려를 찾아왔다.

그해 12월에 발해관료 진림 등 백륙십여명이 왔으며 938년에는 무려 옹근 한개 큰 고을의 인구인 삼천여호가 고려땅으로 넘어왔으며 980년 한해동안엔 수만명이나 들어왔다.

이후 130여년동안 기록에 남은것만 해도 열여덟차례에 걸쳐 수십만명이 넘어왔으니 실로 력사에 류례없는 민족의 대이동이였다.

동족의 나라 고려를 찾아온 발해유민들은 고구려의 후손답게 왕건대왕의 국토통일위업과 령토안정을 위한 길에서 자신들의 지혜와 피땀을 서슴없이 바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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