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35 회

제 3 장. 겨레의 꿈

9


궁성후원에 미륵불을 앉힌 자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었다.

궁예가 워낙 불교광신자인데다가 또 자기를 미륵불로 자처하고있어 궁성안 도처에 부처상을 모신 별당과 암자가 수두룩하였다.

궁예는 물론이요, 궁성안에 있는 숱한 비빈들과 왕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암자들과 별당을 가지고있었다.

말그대로 궁성 그자체가 하나의 큰 사원이라고 할만 하였다.

미륵당은 왕후 강씨의 전용불당이였다.

지금 여기서는 강씨가 해명대사앞에서 참선을 하고있었다.

해명은 유일하게 궁성안에 있는 비구니였다.

궁예의 미침증이 도를 넘어 불교경전보다도 제가 집필한 《경전》을 강론하도록 강요하는 바람에 병을 핑게로 지금까지 두문불출하던 해명이였다. 왕후 강씨는 해명을 보살처럼 여기는 몸이라 이렇듯 미륵당에 찾아온것이였다.

해명이 한옆에 서서 목탁을 두드리는데 따라 강씨는 고요히 자기를 굽어보고있는 미륵상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참선이 끝나자 두손바닥을 우로 향한 불자의 례를 표하고나서 강씨는 불현듯 긴 한숨을 내쉬였다.

오십을 가까이하는 나이라고는 하나 강씨에게는 채 사라지지 않은 아름다움이 남아있었다.

류달리 흰 살결에 아직도 처녀처럼 날씬한 몸매를 지닌 강씨는 누가 보아도 중년의 녀인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고뇌의 흔적인듯 눈가에 깊숙이 패인 주름살은 녀인의 기품을 더욱 돋구어주는듯 했다.

하지만 녀인의 기색은 몹시 어두웠다. 처량한 슬픔이 그의 얼굴에 무거운 그늘을 던져주고있었던것이다.

강씨는 궁예의 미침증때문에 고통에 모대기고있었다.

포악하고 잔인하며 자기밖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고독한 인간, 천하게 지탄받는 몹쓸 인간이 한때는 그토록 사랑하였던 남편이였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강씨는 궁예를 몹시 사랑했다. 홀로 고독에 잠기기 좋아하는 그의 외로움을 지켜주고 자기의 사랑으로 그늘을 가셔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강씨의 그 어떤 사랑도 궁예를 건져줄수 없었고 지켜주지도 못했다. 강씨는 온갖 부귀영화나 사치보다도 오직 궁예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간절히 기다리고있었다.

과연 궁예가 자신을 뉘우치고 강씨의 곁으로 돌아올것인가.

강씨는 그 누구보다도 궁예를 잘 알고있는 태봉국의 유일한 존재였다.

또한 궁예의 그 포악성과 잔인성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이미 알고있었던것이다. 자기를 신적인 존재로 부각시켜 백성들의 머리우에 올라서겠다는 야망이 결국은 궁예라는 인간을 포악무도하고 잔인하게 만들었던것이다.

강씨는 궁예의 정사가 나날이 포악해지고 백성들은 물론 조정의 문무백관들까지 그를 외면하는것을 볼 때면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이제는 그 누구의 말도 귀등으로도 듣지 않는 궁예였다.

강씨는 바로 이러한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안고 해명대사를 찾아 미륵당을 찾은것이였다.

해명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강씨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마님, 소승은 이젠 떠날가 하오이다.》

《예?!… 어디로 가신단 말이오이까?》

《그저 구름처럼 정처없이 떠다닐가 하오이다. 더이상 궁성에는 머물고싶지 않나이다. 래일 저녁에 궁성안의 궁인들에게 하는 마지막강론을 마치고는 곧 떠나겠소이다.》

강씨는 걷잡을길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입을 벌렸다.

《다 내 불찰이오이다. 이제는 모두 대왕의 곁을 떠나가버리는군요.》

《마마님, 소승이 보건대 마마님에게도 꼭 무슨 화가 미칠것만 같소이다.… 차라리 궁예대왕의 곁을 떠나는것이 어떻소이까?》

해명이 힘겹게 물어보았다.

강씨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제가 가면 어딜 가겠나이까. 설사 그이의 손에 죽는다고 해도 대왕의 곁을 떠나지 않겠소이다. 언제든지 제게 돌아올 날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대왕의 시중을 마지막까지 들겠소이다.》

《궁예대왕을 원망하지는 않나이까?》

해명은 손에 든 념주를 헤아리며 서있다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강씨는 놀란듯 해명을 치떠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소승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부디 몸조심하소이다.》

해명이 하직인사를 하며 돌아서는데 왕후 강씨가 조심히 그를 불러세웠다.

《래일 강론장에서는… 부디 암주님의 성미를 누르고 강론하시오이다. 그러다 만약…》

해명은 왕후를 안심시키려는듯 환히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승을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맙게 받겠나이다. 하지만… 자기가 평생에 배운바를 어찌 기만하겠나이까. 설사 지옥의 기름가마가 절 기다린다고 해도 어찌 거짓을 말하겠나이까.》

《그래도 래일만은… 래일 하루만이라도 조심해주시오이다.》

해명은 강씨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듯 엄한 눈을 들어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직하게 탄식하듯 말했다.

《소승은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나이다.

이제 만약 처음부터 인생을 다시 살라면… 전 부처님이 아니라 그 사람을 택했을것이오이다. 이처럼 가장 소중한것과 바꾼 학문을 기만한다면 내 인생에 남은것은 무엇이겠나이까?… 아니, 죽어도 그렇게는 할수 없나이다.》

강씨는 눈물을 흘리며 해명을 바래웠다.

해명은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강씨에게 활력을 부어주던 유일한 존재였다.

이제 그마저 떠나간다면 공허하고 심란한 마음을 누구에게 의지할것인가.

그래도 해명이 있어 자기의 속마음을 터놓고 마음을 위안하며 살아온 왕후였던것이다.

강씨는 하염없이 미륵당앞에 홀로 서서 뒤돌아봄이 없이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나가는 해명대사를 바래우고있었다.…


해가 짧아서인지 저녁치고는 너무 조용한게 어쩐지 으시시한감이 들었다.

궁성은 온통 죽어버린듯 한적한것이 마치 역병이 휩쓸고 지나간 황무지처럼 느껴졌다.

궁예의 가까이에 가기 저어하는 환관들과 궁녀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후원에선 사람그림자 하나 볼수 없었다.

먹장구름이 저녁해빛도 새여나올수 없이 짙고 시꺼먼 날개로 철원을 짓누르고있었다.

궁성대문이 무겁게 열렸다.

열려진 문안에서 수수한 차림의 사나이가 륙척이 넘어보이는 긴 쇠몽둥이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왔다.

누런 비단으로 만든 두건을 얼굴이 반쪽이나 가리우게 푹 눌러쓰고 허리에는 반팔길이의 환도를 지르고있었다.

손에는 크고 무거운 쇠몽둥이를 들었는데 지팽이로 쓰기에는 너무 엄청난 물건이라는감이 느껴졌다.

그는 궁예였다.

그래도 일개 나라의 왕이라는 사람이 이런 해괴한 모양으로 길가에 나서는것이 몹시 민망스러웠던지 뒤따르는 호위무사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대왕님, 만약 항간에서 알게 되면 웃음거리가 될수 있소이다. 아무래도 대왕님의 위엄에 손상되는것 같으니 암행은 그만두심이 어떠하올지?…》

《감히 뉘앞이라고 망발하느냐? 도성안의 분위기가 께름하여 내가 몸소 나선것이다. 도무지 믿을 놈이 없거던.… 둘만 붙어앉으면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테지.…》

궁예는 피발이 선 외눈으로 지그시 호위무사를 쏘아보며 독기가 가득 서린 말마디들을 내뱉았다.

궁예는 아예 정신이 나간 놈처럼 헤덤비며 제잡담 궁성앞 큰길에 나섰다.

호위무사는 하는수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앞서가는 궁예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얼마쯤 큰길을 따라 걷던 궁예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섰다.

《해명이 강론하는 곳이 어디냐?》

《예, 저기 네거리에서 왼쪽골목을 지나치면 해명대사가 마지막강론을 한다는 순흥사이오이다. 그런데 굳이 해명대사의 강론장까지 가시는 의도는 무엇이오이까?》

궁예가 말없이 쇠몽둥이를 끌며 걷는데 호위무사가 조심히 물었다.

궁예는 삵의 웃음을 지었다.

그의 얄팍한 입술우로 잔인한 미소가 떠오르는것을 본 호위무사는 몸서리를 치며 물러서버렸다.

《궁안에서 듣는 강론이란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이렇게 밖에서 들어야지.… 오늘 밤은 해명의 마지막강론이 아닌가.》

말은 그럴듯하게 하였으나 끝까지 자기의 요구를 거절한 해명에 대한 앙심을 품고있는 궁예였다.

순흥사에는 발들여놓을 자리도 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앞쪽에는 주로 비구니들이 주런이 앉아있고 뒤켠에는 도성안의 명문거족출신의 부녀들이 있었다.

녀승인 해명의 강론이라 주로 부녀들이 많이 참석했다.

강론장에 미처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담밖에 둘러서서 한껏 키돋움을 하고있었다.

궁예는 천천히 사람들사이를 비집고들어갔다.

드디여 해명의 얼굴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위치까지 비집고들어간 궁예는 짜장 흥미있다는듯이 팔짱을 끼고 걸음을 멈추었다.

해명은 한창 《불설장아함경》에 대해 강론을 하고있었다.

《불설장아함경》은 부처의 래력과 그 전생이야기, 그의 교화생활과정, 부처의 설교와 그 기본교리, 이교도들을 교화하여 불교에 포함시킨 내용 등으로 엮어져있다.

이밖에도 이 경전에는 미래에 부처가 되여 세상에 나온다는 미륵보살에 대한 신앙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해명은 지금 미륵보살편을 강론하고있었다.

《암주님, 〈미록보살〉이라 하시는 궁예대왕님이 직접 서술하신 스무권의 경문을 내려보내주셨다는데 왜 그것은 강론하지 않으셨소이까?》

해명의 강론이 끝난 후에 비구니 한명이 일어서더니 이렇게 물었다.

해명은 피씩 쓴웃음을 짓고나서 입을 열었다.

《그 경문을 그렇게도 듣고싶으냐? 나는 부처님을 모신 제자로서 차마 그 잡설을 입에 올릴수가 없다. 정 듣고싶으면 궁성에 들어가 왕에게 직접 강론해달라고 청하거라. 아마 궁예왕은 기꺼이 네 청을 수락하실것이다.》

그 제자 역시 지지 않고 뻗대였다.

《그래도 소승은 그 경문이 일가견이 명백하고 현세를 〈도솔천〉으로 내세운 경문이라고 들었나이다.》

강론장이 웅성거렸다.

강론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이 긴장한 시선으로 해명을 주시하였다.

궁예까지도 무슨 말이 해명의 입에서 나올가 시선을 주고있었다.

해명은 태연하게 군중을 훑어보고는 비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똑똑히 알아듣거라. 나는 그따위 요사스럽고 잡스러운 경문을 알지 못한다. 〈도솔천〉은 궁예왕이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미륵님의 세상이다.》

해명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군중은 열기에 차서 환호하였다.

해명에게 환호하는 군중을 둘러보는 궁예는 미친듯이 외눈을 희번덕거리며 쇠몽둥이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이마에서는 손가락같은 검붉은 피줄이 일어서서 꿈틀거리고 사려무는 입에서는 이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왕님, 고정하옵소서. 궁에 돌아가 달리 조처하시는것이 어떠하올지…》

질겁한 호위무사가 급히 궁예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를 낮추어 간청하였다.

궁예는 쳐들던 쇠몽둥이를 내리웠다.

궁예는 어찌된 영문인지 호위무사가 끄는대로 순순히 궁성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호위무사는 강론장에서 궁예가 미친놈처럼 날뛰지 않은것만으로도 다행한것으로 여겼는지 밝아진 얼굴로 궁성으로 부지런히 길을 잡았다.

《가만, 궁성으로 가기 전에 네가 할 일이 있다.》

《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오이까?》

호위무사는 얼떠름한 기색으로 물었다.

《이제 당장 군사들을 끌고가서 저기 강론장에 모인자들을 몽땅 끌어오너라. 물론 해명 그년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리고 석총대사인지 뭔지 하는 늙다리도 끌고오라.》

궁예는 살기가 돋은 목소리로 소름이 끼치게 으르렁거렸다.

호위무사는 간담이 찢어질 정도로 놀랐다.

저 포악한 궁예가 해명의 강론을 듣고 횡포하게 나올것이라는것을 짐작은 하였지만 이렇듯 강론장에 모인 사람들을 몽땅 끌어오게 할줄은 미처 생각도 못한 일이였던것이다.

거역하면 릉지처참을 당할 궁예의 령이 두번씩이나 떨어졌는데도 호위무사는 입을 딱 벌린채 움직일념을 하지 못했다.

궁성으로 돌아온 궁예는 곧 후원에서 국문을 열기로 하고 형틀을 벌려놓았다.

화토불이 여기저기 치솟고 각종 형구가 절그렁소리를 내는것이 마치 지옥에 들어선듯 끔찍했고 살기가 떠도는 분위기는 공포에 질리게 했다.

궁예는 라찰(불교에서 이르는 귀신)같은 몰골로 당상에 높이 올라있었고 그의 좌우로 우악스러운 형리들이 수십여명이나 벌려서있었다.

아닌밤중에 국문장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모두 질겁하여 벌벌 떨었다.

이윽고 해명이 온몸이 결박된 상태로 태연히 국문장에 들어섰다.

《네년의 죄를 아느냐? 단매에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 감히 짐을 헐뜯어?》

궁예는 소름끼치는 쇠몽둥이로 대청바닥을 쿵쿵 올리며 독살스럽게 뇌까렸다.

해명은 고개를 쳐들고 일체 한마디도 없이 입을 다물고있었다.

《이년, 짐은 관심을 능히 하므로 너희놈들의 안팎이 다른것을 속속들이 꿰뚫고있다. 네년이 강론장에서 무어라고 지껄였는지도 다 알고있어.》

궁예는 여전히 한본새로 살기가 뻗친 고함만 질러댔다.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해명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평생을 누구에게도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살아온 해명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시선을 들어 궁예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그렇게 잘 알고있으면서 소승에게 무엇을 물어보는것이요?

이미 귀에 들어가기를 바라서 한 소리이니 그것이 비위에 거슬렸다면 이 몸을 때려죽이든 쪄서 죽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궁예는 아예 미치다싶이 되였다.

《너 이년, 어디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것이냐? 애들아, 저년을 인두로 지져라. 그래도 입을 놀리는가 어디 보자.》

궁예의 부추김을 받은 무지막지한 형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해명의 옷을 우악스럽게 찢고 불에 시뻘겋게 단 인두로 녀인의 등을 지져댔다.

사람의 살이 타는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숨막히는 고요속에 해명의 입에서 음울한 신음소리가 터졌다.

어찌나 이를 악물었는지 해명의 입새에서는 피가 흘렀다.

해명은 굴하지 않고 피의 절규를 하였다.

《대왕,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소. 대왕이 짓밟는다고 해서 이 나라 백성들의 의지를 꺾을수는 없을것이요. 당신의 죄과가 미륵부처로 자처한다고 해서 지워질것 같은가? 포악무도한 폭정으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고 해서 지워진다고 생각하는것은 어리석은 생각일뿐이요. 이제라도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속죄하여 새 사람으로 사는것만이 대왕이 갈길이요.》

궁예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쇠몽둥이를 짚고 해명의 앞에 섰다.

《무릎을 꿇고 빌어라. 이것이 그래도 한때 널 존경해온 내가 마지막으로 너에게 줄수 있는 은총이다.》

해명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간신히 쳐들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비웃음을 보고 포악한 궁예도 뒤걸음치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까지 경멸하여마지않던 궁예에게 억눌려 살아야 했던 해명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절규하였다.

《한가지만 명심하라. 이제 너는 비참하게 종말을 고할것이며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새시대가 열릴것이다.…》

해명은 이 말만 남기고는 벌떡 몸을 솟구쳐 섬돌에 힘껏 머리를 짓쪼았다.

사람들이 미처 놀랄새도 없이 해명은 머리가 으깨여져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그러자 궁예는 아예 정신나간 놈처럼 외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맨 앞줄에 포박당한채 서있는 석총대사의 멱살을 잡고 힘껏 끄당겼다.

《네놈이 말해보거라. 그래 〈도솔천〉이 누구의 세상이라고?…》

석총은 측은한 시선으로 궁예를 내려다보며 힘있게 입을 열었다.

《대왕, 정신을 차리시오. 그래 부처님이 되겠다면서 이런 무도한 만행을 자행하면 어찌할것이요? 〈도솔천〉은 당신이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미륵님의 세상이요!》

순간 궁예는 쇠몽둥이를 들었다가 석총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석총은 머리가 깨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궁예는 피범벅이 된 쇠몽둥이를 쳐들고 진저리를 치며 물러서는 군중을 향해 돌아섰다.

석총을 제 손으로 때려죽이면서 아예 미쳐버린 궁예는 무작정 첫눈에 걸리는 한 유학자의 멱살을 잡아 끄당겼다.

그 유학자로 말하면 석총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명망이 높은 태봉국의 재사였다.

《이놈아, 네놈은 뭐 무사할줄 알았느냐? 네놈도 저기 중놈들처럼 짐에 대한 악담을 퍼부었지?…》

《하늘이 내려다보오이다. 신은 절대로 그런적이 없소이다. 악!…》

유학자도 궁예가 휘두르는 무지막지한 쇠몽둥이에 골이 박살나 땅에 쓰러져버렸다.

궁예는 닥치는대로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앞에 서있는것이 부녀이건 로인이건 심지어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궁예의 쇠몽둥이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군중은 혼비백산하여 아우성을 치며 흩어져버렸다.

국문에 참가하였던 고관대작들은 물론이요, 형리들마저 이 스산한 자리를 모면해보려고 앞을 다투어 멀리 달아났다.

지어는 궁예의 신변을 호위해야 할 호위병들마저 공포에 질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텅 빈 궁성마당에는 오직 궁예 혼자였다.

처참하게 제 손으로 때려죽인 시체들사이에 궁예만 홀로 남았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